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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체험을 통해 인생을 돌아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사랑하며 ..... 2014-07-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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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합의서

죽음에 대하여...

 

돌이켜보건데, 저의 인생은 죽음과 가까운 삶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살았고, 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살아왔으니까요. 뜻한 바 있어 일하게 된 보험회사에서는 늘 죽음을 입에 담고 살아야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30대 말에서 40대말까지 10년을 보험회사에 일했으니 어쩌면 죽음과 가깝게 살 운명었다고나 할까요. 

 

어려서부터, 비록 타인들의 죽음이었지만 죽음은 늘 우리 삶 가까이 있었습니다. 아니 삶의 한가운데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 땐 다들 그랬지만 장례를 동네에서 치루었기에 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가깝게는 먼 친척 누나의 자살, 또 먼 고모뻘 되는 아주머니의 죽음, 멀게는 동네 어른들의 상여가 나가는 것을 보며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살았으니까요.  

 

20대 말에는 국민학교 친구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가까지 지냈는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갑자기 자살하는 사건이 있어 젊은 날에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친구의 장례를 치룰 때, 상여를 직접 매고 죽음의 의식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자식을 강건너 묻었을 때 부모님 마음은 어떠했을지 생각하면 죽음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합니다.       

 

제게 직접 닥친 일만 해도 많았습니다. 아버님께서 58세에 돌아가셔서 상주를 했고, 백부모님 두 분 돌아가실 때도 상주 노릇을 했으니 저만의 특별한 죽음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동생을 먼저 보내고 또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었으니 참 기구한 운명, 불쌍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습니다.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불쑥불쑥 나타나 인생에는 삶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있는 것이라고 경고하는 듯 합니다.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이니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라고 충고하는 것 같습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인간의 관념이 상대적인 반대 개념을 통해서만이 더 잘, 그리고 제대로 이해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내가 없이 떨렁 셋남 남아서 사는 아내(가 없는) 부재의 삶을 통해서 아내와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했고 가치있던 삶이었는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죽음보다 더 강렬한 체험은 없을 것입니다. 삶이 죽음을 통해서 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체험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죽음을 체험하고나서 다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체험하고 싶어도 직접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가끔 죽음 가까이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전과는 전혀 다른 변화된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을 보면 가상으로나마 죽음을 체험해보는 것은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있어 가장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뜻하지 않게 감옥에 가 구속된 삶을 살아보았을 때 우리는 그와 대비되는 관념으로서 자유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됩니다. 평소에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가보고, 하고 싶은 것을 아무런 방해없이 누리는 자유로운 삶이 자유롭다고 느껴지지는 않지 않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이런 자유로운 삶에 대해서 자유롭다고 느끼고 그 자유로움을 누리는 행복을 맛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유를 구속당한 후에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삶이 자유로운 것이구나 하고 느끼고 감사하며 또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이처럼 삶이라는 것도 그 반대되는 개념인 죽음과 대비됐을 때 제대로 이해되고 아름다운 삶을 잘 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많이 생각하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은 후에 많은 것을 깨달았던 것처럼 죽음이라는 자극을 받거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삶을 충실하게 사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강력한 충격이 아니면 우리는 삶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관성의 법칙이랄까 혹은 타성에 젖어서 현재의 삶을 그냥 유지하면서 살게 마련이지요. 자기 삶을 돌아볼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삶에 문제가 없으면 모르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자신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가거나 삶을 좀먹게 되고 나아가 상대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인식할 기회가 없어서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지요.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에서처럼 과거로 돌아가 다른 삶을 살아 현재를 바꿀 수 있었다면 하고 삶을 반성해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때 이러저러했더라면 오늘날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저는 전 생애를 바꾸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도, 사랑도, 그리고 인생도 결국은 사람들 모두 각자가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각자의 책임이기 때문에 아내에게도 제가 해줄 수 있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이렇게 가슴 아픈 상황에는 처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실 저희 부부는 성격 차이가 컸습니다. 어느 부부나 다 마찬가지기는 하겠지만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성격 차이로 더는 같이 못 살겠다며 이혼하자는 말이 여러 번 있었답니다. 링크 건 글에서처럼 급기야 이혼 합의서까지 작성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성격 차이로 이혼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혼할 거라며 저는 반대를 해 왔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하도 강경하게 반대를 하니까 아내는 체념한 것 같았습니다. 아, 아무리 해도 안되겠구나 해서 더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한편 후회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힘들게 저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병이 오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라면 차라리 이혼을 해서 이 세상에 살아있게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은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단순히 성격 차이로 이혼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격 차이가 없는 부부가 없을 테니까요. 성격 차이는 극복되어야할 하나의 문제이지 언제까지 장애물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성격 차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아무 것도 아닌 문제입니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 서게 되면 성격차이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평소 치약을 어떻게 짜느냐 하는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부부가 한쪽이 갑자기 병에 걸려 죽게 된다고 해도, 치약을 잘 짰니 못 짰니 하면서 다투겠습니까.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일에서 있어서 제가 더 잘 했어야만 했지만 아내도 좀더 이해의 폭이 넓어지거나 변화될 필요는 조금은 있었습니다. 고부 갈등을 좀더 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도 어머님의 속상한 말에 많이 힘들어 하기도 했으니까요. 이점에 있어서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아내가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오시느라 형성된 어머님 당신만의 고집 혹은 집착이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더라면 고부간의 갈등으로 인한 고통은 덜 받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지요.

 

 

에피소우드.... 가상 죽음 체험

 

제가 가치있는 일을 한다면서 모 생명보험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보험회사에서서는 3W라고 해서 일주일에 3건씩 계약을 하는 활동 습관이 있는데 입사하자마 그걸 이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심한 목감기가와서 말을 할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 포기를 했습니다. 2개월이 넘도록 괴롭혀 온 기침감기가 낫고 다시금 열심히 일한다고 결심하여 기왕이면 일주일에 5건씩 계약을 하자고 마음을 먹어 거의 10주 연속 5W를 하고 있을 때, 영업 교육을 소개하러 온 분이 있었습니다. 내용이 너무나 좋아보여, 그 회사를 찾아가 프로그램 내용을 확인하고 교육을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5박 6일 동안의 교육기간에 교육비가 120만원인가 해서 쉽게 참석하기 어려운 교육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투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말로는 설명하기조차 힘든 그 영업교육은 간단히 요약을 하면 '죽음 체험을 통해 삶을 다시 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고나 할까요. 비록 가상이지만, 내일 죽는다는 가정하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가까운 가족들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하고 유언을 남기는 작업을 합니다.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데 어떻게 내일 죽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그런 상황에 잘 빠져든 사람들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엄청난 눈물을 흘리더군요. 모든 게 자기 자신의 잘못이고 그동안 아프게 했거나 잘 못 했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며,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정말 큰 변화를 겪더군요. 이혼을 하려고 했던 부부들, 갈등이 심한 부모와 자식들, 반목했던 형제 자매들. 각자 원망하고 미워하고 고통받았던 대상들은 달랐지만 한결 같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고, 또 용서를 구하고, 마침내 사랑의 마음이 충만한 상태가 됩니다.

 

5박 6일동안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에 일찍부터 깨우치는 사람, 중간에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깨닫는 사람,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마지막 날의 체험에서 터져 대성통곡을 하는 사람 등등. 6일 동안에 실행됐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특정한 사람에게는 더 생각하고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한가지를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둘이 한 조가 되어 험한 곳 - 도랑이나 좁은 다리를 지나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기도 하고 푹 떨어질 정로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도 하는 - 을 걸어가는데 한 사람은 눈을 완전히 가리고 다른 한 사람이 안내를 합니다. 눈을 가리고 뒤에서 따라갈 경우, 의심이 많은 사람을 발을 내딛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발을 잘못 내딛어 조금 기우뚱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두려워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합니다. 앞에서 안내하는 사람은 온몸에서 땀이 비옷듯 내립니다. 안내를 잘 하려고 온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둘이 시궁창에 떨어져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안내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안내하는 사람을 믿고 완전히 자신을 맡기는 조는 앞으로 잘 나아갑니다. 그만큼 믿음이라는 게 중요하더군요. 그런데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고 고집을 부리니까 잘 나아가지도 못하고, 위험한 곳에서는 안내하는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해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게 되더군요. 서로 바꿔가면서 이 경험을 하는데 이 간단한 경험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일은 사실 현실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입니다. 집에서는 부모가 자식들을, 직장에서는 상사가 부하직원을, 부부 관계에서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정말 잘 인도하거나 안내를 하려고 무척 신경을 쓰고 고민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상대가 되는 사람들은 그런 상대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하지요. 이렇게 교육받은 체험이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관계가 많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역지사지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저는 전에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혼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미리 죽음 체험을 해 보았기에 전체 프로그램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영업적으로 어떻게 적용하여 사람들을 잘 설득하느냐 하는 영업적 적용이 제게는 더 필요했지요. 나중에 같이 일하게 된 동생과도 함께 교육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5박 6일동안에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작업을 주로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영업 훈련을 하는 시간을 충분히 포함시켜 12박 13일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는데 그 때도 참여를 했었구요. 오랜 기간 이 영업교육을 참여하고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많이 변화되는 것을 목격했지요.

 

마침 교육비를 충당할 여건도 되어 아내와 어머님께서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라고  설득했지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설득하기가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여러번 권유를 하였지만 끝내 참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때 어머님과 같이 참여하여 서로를 좀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더라면 살면서 고부간 갈등도 줄어들었을 것이고, 아내 자신도 더욱 내면에 충실한 아름다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보아도 다시 없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얼마나 감동을 많이 받았던지, 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하였으며, 나중에는 일반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없을까 연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하여 사람을 다시 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 살게 되고 끝내 자신이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이 참고를 했던 책이 있는데 참으로 좋은 책입니다. 여러 권의 좋은 책을 펴낸 디팩 초프라라는 인도 출신의 의사가 쓴 책인데 마음이라고 하는 동양의 정신세계를 공부하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혹 관심있으시다면 그가 쓴 다른 많은 책들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공을 부르는 마음의 법칙 일곱가지

디팩 초프라 저
삶과꿈(L&D) | 1995년 09월

 

참으로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마음의 세계를 탐험해보자

http://blog.yes24.com/document/7734508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럼 그런 교육을 한번 받은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고 싶을 것입니다. 그 교육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을 다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잘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뒤에도 여러분을 만나 보았습니다만, 다시 원래 대로 돌아가는 경향이 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왜 그럴까 하고 깊이 있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깨달은 상태에서 늘 깨어있는 삶을 살면 정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텐데... 하고 많이 안타까워 했습니다.

 

 

깨어 있는 삶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번 습관이 형성되면 그 습관은 너무나 강고하게 자리를 잡아 절대 바뀌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강한 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평생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습관만 이런 것이 아니라 생각 또는 사고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려서 형성된 가치관이나, 혹은 주관, 신념 등은 워낙에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어 쉽게 바뀌지를 않습니다. 그것이 좋고 나쁘고, 또 진실한 것이나 거짓된 것이나 상관없이 개인의 성격 혹은 인격이 되어서 평생을 가게 됩니다. 정말 개과천선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이런 것은 자신의 존재와 관계가 없는 '거짓된 자아'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개성은 사실 황금에 들러붙어 있는 흙에 불과한 것인데도 마치 자신 존재와 동일시하여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학문적인 지식이나 기술도 배워서 습득된 것으로 본래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데도 자기자신과 동일시 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거부당하면 존재의 상실감에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건강에 관해서 비유해 말씀드리면, 서양의학에 근거해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다른 치유방법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길만이 진리인줄 믿고 살아갑니다.  만약에 다른 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존에 갖고 있는 이런 거짓된 자아의 뿌리가 워낙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 깨달은 아직 덜 자란 마음이 채 뿌리를 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새로운 습관이 완전히 굳어질 때까지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나 나약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위를 돌아보아도 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주관이 아주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의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식, 혹은 관념 체계에 반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나가기 어려운 것이지요.

 

가상 죽음을 통하여 깨달은 것이 직접 죽음을 체험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설프게 깨달은 것인데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더욱 성장하여 성숙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가 않아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때문이기도 합니다. 길고 긴 인생에 있어서 며칠 동안 실로 충격적인 경험을 하지만 어찌보면 일시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사람은 망각의 존재이기도 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도 점점 잊고 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일상 속에서 파묻혀 살다보면 곧 간접 체험의 충격도 잊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된 것입니다. 책을 통하여 배워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더욱 깊은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의 강렬한 체험에 머무르고 맙니다. 제가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책에도 수준이 있어서 진짜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많이 있거든요. 인기가 있다거나 잘 읽히는 책들은 사실 깊이가 있는 책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정규분포상에서 보면 중간에 위치한 대역에 많은 경우의 수가 분포하는 것이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소구하는 것뿐이지, 그것이 바르거나 옳다거나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 영역대를 지나면 분포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의식이 성장하고 발전하면 점점 우측으로 더 나아가게 되는데 말입니다.

 

아내의 경우를 보면, 죽음을 앞두고서야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잘 못 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했고, 잘못했다는 말을 전해주려고 했지요. 저에게는 물론, 자식들, 시어머니이신 저희 어머님, 제 동생들, 그리고 아내의 친동생들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지요. 원망하고 미워했던 마음이 다 자기 탓이었다고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달리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꼭 그렇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하는 통렬한 반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처하게 되면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찌나 슬프고 안타깝던지 모릅니다. 좀더 일찍 그런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게 한 없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나중에 ** 선생님을 만나서 들은 얘기였습니다만, 영혼 공부를 했어야 할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능성이 있었는데 미쳐 그걸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으니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어쩌면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이 자신을 밝히는, 자신을 아는 일이니까요.

 

인생을 살면서 금기시 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생각해보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되니까요. 삶과 죽음이 결코 둘이 서로 떨어진 완전히 다른 관념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한쪽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마련이지요. 아마도 내일 갑자기 죽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사소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면 사소한 것 때문에 고민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 더 편안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깨어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 머무는 즐겁고 평안한 삶. 별것 아닌 일에 화내지 않고 평정을 누리며 사는 삶. 어떻게 하면 더 내욕심을 차릴까 골머리를 썩이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삶. 자연스럽고 평안한 호흡을 하는 삶. 정말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혹시 TV 등에서 보셨는지 모르지만 관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조사를 해보니 어느 종교단체서인가 죽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어둠컴컴한 밤에 깊은 숲속에서 관에 드러눕고 관뚜껑에 못질이 되는 가운데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에 직면하면서 죽음에 대해서, 역으로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생전에 이런 죽음 체험을 해보신다면 아마 많은 반성을 하게 될 것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이런 체험을 하지 못한다면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

 

조용한 밤에 책상에 앉아서 유언장을 써보는 것입니다. 내일 죽는다는 생각을 하고, 아내나 남편에게 그리고 자식들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보십시요. 미처 생각치 못한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시간대를 확 줄여보면 10년 단위로 눈금을 먹인다고 하면 50년이라는 인생도 다섯눈금 안에 들어오게 되고 쏜살 같이 흘러갈 인생에서 어느때인가 반드시 직면하게 될 누구나 겪는 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리 앞당겨서 생각해본다면, 남은 그 인생의 방향이 새롭게 변할지도 모를 것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들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체험에서 별로 배우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운명이 아니냐 하면서 그다지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죽어 있게 하는 일반적인 통념 속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식 체계라는 것은 강력하게 개인을 규율합니다.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고정된 관념도 역시 사회적인 의식체계에서 오는 것이지요. 그것이 좋건 나쁘건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관념을 벗어나 살기가 매우 어렵지요.

 

사람이 사회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홀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한 개인에게 있어 세상은 결국 나와 상대라는 관계에 속하게 됩니다. 나와 남편 혹은 아내, 나와 가족, 나와 사회, 그리고 나와 자연, 물질, 혹은 세상, 우주 등의 1대1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 나 이외와의 상대와 어떻게 관계를 잘 맺고, 의미를 부여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내가 바로 서야만 합니다. 내가 흔들리고 내가 없는 가운데 맺어지는 관계는 언제나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나와 외부적인 관계가 있습니다만, 다른 하나는 나의 내부와의 관계가 있습니다. 나 자신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존재로 여기느냐, 그리고 그 내면의 나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는 어쩌면 외부 관계보다도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내 생의 의미를 깨닫고, 내 내면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에 따라 외부와의 관계도 훨씬 의미있는 관계가 될 것이며, 깊이 있는 관계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가상 죽음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내부에 깊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로부터 배운다면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기치게 될 것입니다.

 

미리 잘 죽어보시길, 그리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영위해나가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 자신도 더욱 깨어있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2014. 7. 7.

19:25

 

 

 

참으로 가슴 아픈 삶을 살고 있는

고서 김선욱

 

 

* 교정: 2015. 2. 17. 07:4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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