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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
죽음 체험을 통해 인생을 돌아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사랑하며 ..... 2014-07-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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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합의서

죽음에 대하여...

 

돌이켜보건데, 저의 인생은 죽음과 가까운 삶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살았고, 또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살아왔으니까요. 뜻한 바 있어 일하게 된 보험회사에서는 늘 죽음을 입에 담고 살아야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30대 말에서 40대말까지 10년을 보험회사에 일했으니 어쩌면 죽음과 가깝게 살 운명었다고나 할까요. 

 

어려서부터, 비록 타인들의 죽음이었지만 죽음은 늘 우리 삶 가까이 있었습니다. 아니 삶의 한가운데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 땐 다들 그랬지만 장례를 동네에서 치루었기에 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가깝게는 먼 친척 누나의 자살, 또 먼 고모뻘 되는 아주머니의 죽음, 멀게는 동네 어른들의 상여가 나가는 것을 보며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살았으니까요.  

 

20대 말에는 국민학교 친구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가까지 지냈는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갑자기 자살하는 사건이 있어 젊은 날에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친구의 장례를 치룰 때, 상여를 직접 매고 죽음의 의식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자식을 강건너 묻었을 때 부모님 마음은 어떠했을지 생각하면 죽음은 참으로 아득하기만 합니다.       

 

제게 직접 닥친 일만 해도 많았습니다. 아버님께서 58세에 돌아가셔서 상주를 했고, 백부모님 두 분 돌아가실 때도 상주 노릇을 했으니 저만의 특별한 죽음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여동생을 먼저 보내고 또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었으니 참 기구한 운명, 불쌍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습니다.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불쑥불쑥 나타나 인생에는 삶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있는 것이라고 경고하는 듯 합니다.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이니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라고 충고하는 것 같습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더 잘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인간의 관념이 상대적인 반대 개념을 통해서만이 더 잘, 그리고 제대로 이해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내가 없이 떨렁 셋남 남아서 사는 아내(가 없는) 부재의 삶을 통해서 아내와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했고 가치있던 삶이었는가를 알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죽음보다 더 강렬한 체험은 없을 것입니다. 삶이 죽음을 통해서 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체험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죽음을 체험하고나서 다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체험하고 싶어도 직접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가끔 죽음 가까이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전과는 전혀 다른 변화된 아름다운 삶을 사는 것을 보면 가상으로나마 죽음을 체험해보는 것은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있어 가장 인위적인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뜻하지 않게 감옥에 가 구속된 삶을 살아보았을 때 우리는 그와 대비되는 관념으로서 자유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됩니다. 평소에 가고 싶은 곳에 마음껏 가보고, 하고 싶은 것을 아무런 방해없이 누리는 자유로운 삶이 자유롭다고 느껴지지는 않지 않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이런 자유로운 삶에 대해서 자유롭다고 느끼고 그 자유로움을 누리는 행복을 맛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유를 구속당한 후에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삶이 자유로운 것이구나 하고 느끼고 감사하며 또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지 않습니까. 이처럼 삶이라는 것도 그 반대되는 개념인 죽음과 대비됐을 때 제대로 이해되고 아름다운 삶을 잘 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많이 생각하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은 후에 많은 것을 깨달았던 것처럼 죽음이라는 자극을 받거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삶을 충실하게 사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주 강력한 충격이 아니면 우리는 삶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관성의 법칙이랄까 혹은 타성에 젖어서 현재의 삶을 그냥 유지하면서 살게 마련이지요. 자기 삶을 돌아볼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삶에 문제가 없으면 모르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자신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가거나 삶을 좀먹게 되고 나아가 상대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지 인식할 기회가 없어서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지요.

 

제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에서처럼 과거로 돌아가 다른 삶을 살아 현재를 바꿀 수 있었다면 하고 삶을 반성해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때 이러저러했더라면 오늘날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저는 전 생애를 바꾸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도, 사랑도, 그리고 인생도 결국은 사람들 모두 각자가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각자의 책임이기 때문에 아내에게도 제가 해줄 수 있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이렇게 가슴 아픈 상황에는 처하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사실 저희 부부는 성격 차이가 컸습니다. 어느 부부나 다 마찬가지기는 하겠지만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성격 차이로 더는 같이 못 살겠다며 이혼하자는 말이 여러 번 있었답니다. 링크 건 글에서처럼 급기야 이혼 합의서까지 작성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성격 차이로 이혼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혼할 거라며 저는 반대를 해 왔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하도 강경하게 반대를 하니까 아내는 체념한 것 같았습니다. 아, 아무리 해도 안되겠구나 해서 더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한편 후회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힘들게 저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병이 오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라면 차라리 이혼을 해서 이 세상에 살아있게 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은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단순히 성격 차이로 이혼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격 차이가 없는 부부가 없을 테니까요. 성격 차이는 극복되어야할 하나의 문제이지 언제까지 장애물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성격 차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아무 것도 아닌 문제입니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벽 앞에 서게 되면 성격차이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평소 치약을 어떻게 짜느냐 하는 문제로 티격태격하는 부부가 한쪽이 갑자기 병에 걸려 죽게 된다고 해도, 치약을 잘 짰니 못 짰니 하면서 다투겠습니까.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일에서 있어서 제가 더 잘 했어야만 했지만 아내도 좀더 이해의 폭이 넓어지거나 변화될 필요는 조금은 있었습니다. 고부 갈등을 좀더 현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도 어머님의 속상한 말에 많이 힘들어 하기도 했으니까요. 이점에 있어서 냉정하게 생각해봐도 아내가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오시느라 형성된 어머님 당신만의 고집 혹은 집착이 있었던 것인데,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더라면 고부간의 갈등으로 인한 고통은 덜 받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지요.

 

 

에피소우드.... 가상 죽음 체험

 

제가 가치있는 일을 한다면서 모 생명보험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보험회사에서서는 3W라고 해서 일주일에 3건씩 계약을 하는 활동 습관이 있는데 입사하자마 그걸 이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심한 목감기가와서 말을 할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 포기를 했습니다. 2개월이 넘도록 괴롭혀 온 기침감기가 낫고 다시금 열심히 일한다고 결심하여 기왕이면 일주일에 5건씩 계약을 하자고 마음을 먹어 거의 10주 연속 5W를 하고 있을 때, 영업 교육을 소개하러 온 분이 있었습니다. 내용이 너무나 좋아보여, 그 회사를 찾아가 프로그램 내용을 확인하고 교육을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5박 6일 동안의 교육기간에 교육비가 120만원인가 해서 쉽게 참석하기 어려운 교육이었습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투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말로는 설명하기조차 힘든 그 영업교육은 간단히 요약을 하면 '죽음 체험을 통해 삶을 다시 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고나 할까요. 비록 가상이지만, 내일 죽는다는 가정하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가까운 가족들에게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하고 유언을 남기는 작업을 합니다.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데 어떻게 내일 죽는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그런 상황에 잘 빠져든 사람들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엄청난 눈물을 흘리더군요. 모든 게 자기 자신의 잘못이고 그동안 아프게 했거나 잘 못 했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며,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잘 살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정말 큰 변화를 겪더군요. 이혼을 하려고 했던 부부들, 갈등이 심한 부모와 자식들, 반목했던 형제 자매들. 각자 원망하고 미워하고 고통받았던 대상들은 달랐지만 한결 같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고, 또 용서를 구하고, 마침내 사랑의 마음이 충만한 상태가 됩니다.

 

5박 6일동안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변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에 일찍부터 깨우치는 사람, 중간에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깨닫는 사람,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마지막 날의 체험에서 터져 대성통곡을 하는 사람 등등. 6일 동안에 실행됐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특정한 사람에게는 더 생각하고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한가지를 프로그램을 소개하면, 둘이 한 조가 되어 험한 곳 - 도랑이나 좁은 다리를 지나기도 하고, 높은 곳을 오르기도 하고 푹 떨어질 정로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도 하는 - 을 걸어가는데 한 사람은 눈을 완전히 가리고 다른 한 사람이 안내를 합니다. 눈을 가리고 뒤에서 따라갈 경우, 의심이 많은 사람을 발을 내딛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발을 잘못 내딛어 조금 기우뚱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두려워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합니다. 앞에서 안내하는 사람은 온몸에서 땀이 비옷듯 내립니다. 안내를 잘 하려고 온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둘이 시궁창에 떨어져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안내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안내하는 사람을 믿고 완전히 자신을 맡기는 조는 앞으로 잘 나아갑니다. 그만큼 믿음이라는 게 중요하더군요. 그런데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고 고집을 부리니까 잘 나아가지도 못하고, 위험한 곳에서는 안내하는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해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게 되더군요. 서로 바꿔가면서 이 경험을 하는데 이 간단한 경험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일은 사실 현실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입니다. 집에서는 부모가 자식들을, 직장에서는 상사가 부하직원을, 부부 관계에서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정말 잘 인도하거나 안내를 하려고 무척 신경을 쓰고 고민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상대가 되는 사람들은 그런 상대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하지요. 이렇게 교육받은 체험이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관계가 많이 좋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역지사지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저는 전에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혼자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미리 죽음 체험을 해 보았기에 전체 프로그램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영업적으로 어떻게 적용하여 사람들을 잘 설득하느냐 하는 영업적 적용이 제게는 더 필요했지요. 나중에 같이 일하게 된 동생과도 함께 교육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5박 6일동안에는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작업을 주로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영업 훈련을 하는 시간을 충분히 포함시켜 12박 13일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는데 그 때도 참여를 했었구요. 오랜 기간 이 영업교육을 참여하고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많이 변화되는 것을 목격했지요.

 

마침 교육비를 충당할 여건도 되어 아내와 어머님께서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라고  설득했지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설득하기가 가장 힘든 것 같습니다. 여러번 권유를 하였지만 끝내 참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 때 어머님과 같이 참여하여 서로를 좀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더라면 살면서 고부간 갈등도 줄어들었을 것이고, 아내 자신도 더욱 내면에 충실한 아름다운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보아도 다시 없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얼마나 감동을 많이 받았던지, 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하였으며, 나중에는 일반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없을까 연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교육을 통하여 사람을 다시 살지 않는 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세계에만 갇혀 살게 되고 끝내 자신이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이 참고를 했던 책이 있는데 참으로 좋은 책입니다. 여러 권의 좋은 책을 펴낸 디팩 초프라라는 인도 출신의 의사가 쓴 책인데 마음이라고 하는 동양의 정신세계를 공부하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혹 관심있으시다면 그가 쓴 다른 많은 책들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공을 부르는 마음의 법칙 일곱가지

디팩 초프라 저
삶과꿈(L&D) | 1995년 09월

 

참으로 행복한 삶으로 이끄는 마음의 세계를 탐험해보자

http://blog.yes24.com/document/7734508

 

 

 

그렇다면 한가지 의문이 들 것입니다. 그럼 그런 교육을 한번 받은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알고 싶을 것입니다. 그 교육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을 다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잘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뒤에도 여러분을 만나 보았습니다만, 다시 원래 대로 돌아가는 경향이 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왜 그럴까 하고 깊이 있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깨달은 상태에서 늘 깨어있는 삶을 살면 정말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텐데... 하고 많이 안타까워 했습니다.

 

 

깨어 있는 삶

 

세살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번 습관이 형성되면 그 습관은 너무나 강고하게 자리를 잡아 절대 바뀌지 않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강한 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평생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의 습관만 이런 것이 아니라 생각 또는 사고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려서 형성된 가치관이나, 혹은 주관, 신념 등은 워낙에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어 쉽게 바뀌지를 않습니다. 그것이 좋고 나쁘고, 또 진실한 것이나 거짓된 것이나 상관없이 개인의 성격 혹은 인격이 되어서 평생을 가게 됩니다. 정말 개과천선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이런 것은 자신의 존재와 관계가 없는 '거짓된 자아'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그런 개성은 사실 황금에 들러붙어 있는 흙에 불과한 것인데도 마치 자신 존재와 동일시하여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학문적인 지식이나 기술도 배워서 습득된 것으로 본래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것인데도 자기자신과 동일시 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거부당하면 존재의 상실감에 빠져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건강에 관해서 비유해 말씀드리면, 서양의학에 근거해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분들이 다른 치유방법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길만이 진리인줄 믿고 살아갑니다.  만약에 다른 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존에 갖고 있는 이런 거짓된 자아의 뿌리가 워낙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 깨달은 아직 덜 자란 마음이 채 뿌리를 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새로운 습관이 완전히 굳어질 때까지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가 너무나 나약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위를 돌아보아도 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주관이 아주 확실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의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식, 혹은 관념 체계에 반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나가기 어려운 것이지요.

 

가상 죽음을 통하여 깨달은 것이 직접 죽음을 체험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완전한 깨달음이라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설프게 깨달은 것인데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더욱 성장하여 성숙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여건이 되지가 않아서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때문이기도 합니다. 길고 긴 인생에 있어서 며칠 동안 실로 충격적인 경험을 하지만 어찌보면 일시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요. 사람은 망각의 존재이기도 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도 점점 잊고 살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일상 속에서 파묻혀 살다보면 곧 간접 체험의 충격도 잊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된 것입니다. 책을 통하여 배워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더욱 깊은 의미를 깨달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의 강렬한 체험에 머무르고 맙니다. 제가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책에도 수준이 있어서 진짜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많이 있거든요. 인기가 있다거나 잘 읽히는 책들은 사실 깊이가 있는 책이라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정규분포상에서 보면 중간에 위치한 대역에 많은 경우의 수가 분포하는 것이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소구하는 것뿐이지, 그것이 바르거나 옳다거나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 영역대를 지나면 분포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의식이 성장하고 발전하면 점점 우측으로 더 나아가게 되는데 말입니다.

 

아내의 경우를 보면, 죽음을 앞두고서야 정말 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잘 못 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했고, 잘못했다는 말을 전해주려고 했지요. 저에게는 물론, 자식들, 시어머니이신 저희 어머님, 제 동생들, 그리고 아내의 친동생들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지요. 원망하고 미워했던 마음이 다 자기 탓이었다고 깨달았던 모양입니다. 달리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꼭 그렇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하는 통렬한 반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처하게 되면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찌나 슬프고 안타깝던지 모릅니다. 좀더 일찍 그런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게 한 없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더욱 안타까웠던 점은 나중에 ** 선생님을 만나서 들은 얘기였습니다만, 영혼 공부를 했어야 할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능성이 있었는데 미쳐 그걸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으니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어쩌면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이 자신을 밝히는, 자신을 아는 일이니까요.

 

인생을 살면서 금기시 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생각해보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되니까요. 삶과 죽음이 결코 둘이 서로 떨어진 완전히 다른 관념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한쪽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마련이지요. 아마도 내일 갑자기 죽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사소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면 사소한 것 때문에 고민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 더 편안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깨어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에 머무는 즐겁고 평안한 삶. 별것 아닌 일에 화내지 않고 평정을 누리며 사는 삶. 어떻게 하면 더 내욕심을 차릴까 골머리를 썩이지 않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삶. 자연스럽고 평안한 호흡을 하는 삶. 정말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삶.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혹시 TV 등에서 보셨는지 모르지만 관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조사를 해보니 어느 종교단체서인가 죽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어둠컴컴한 밤에 깊은 숲속에서 관에 드러눕고 관뚜껑에 못질이 되는 가운데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에 직면하면서 죽음에 대해서, 역으로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생전에 이런 죽음 체험을 해보신다면 아마 많은 반성을 하게 될 것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이런 체험을 하지 못한다면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

 

조용한 밤에 책상에 앉아서 유언장을 써보는 것입니다. 내일 죽는다는 생각을 하고, 아내나 남편에게 그리고 자식들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써내려가보십시요. 미처 생각치 못한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시간대를 확 줄여보면 10년 단위로 눈금을 먹인다고 하면 50년이라는 인생도 다섯눈금 안에 들어오게 되고 쏜살 같이 흘러갈 인생에서 어느때인가 반드시 직면하게 될 누구나 겪는 사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리 앞당겨서 생각해본다면, 남은 그 인생의 방향이 새롭게 변할지도 모를 것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들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체험에서 별로 배우는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이 아니냐, 그것은 운명이 아니냐 하면서 그다지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죽어 있게 하는 일반적인 통념 속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사회적 인식 체계라는 것은 강력하게 개인을 규율합니다.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고정된 관념도 역시 사회적인 의식체계에서 오는 것이지요. 그것이 좋건 나쁘건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관념을 벗어나 살기가 매우 어렵지요.

 

사람이 사회적 존재이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홀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한 개인에게 있어 세상은 결국 나와 상대라는 관계에 속하게 됩니다. 나와 남편 혹은 아내, 나와 가족, 나와 사회, 그리고 나와 자연, 물질, 혹은 세상, 우주 등의 1대1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 나 이외와의 상대와 어떻게 관계를 잘 맺고, 의미를 부여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내가 바로 서야만 합니다. 내가 흔들리고 내가 없는 가운데 맺어지는 관계는 언제나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나와 외부적인 관계가 있습니다만, 다른 하나는 나의 내부와의 관계가 있습니다. 나 자신이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존재로 여기느냐, 그리고 그 내면의 나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는 어쩌면 외부 관계보다도 훨씬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내 생의 의미를 깨닫고, 내 내면 세계를 만들어가는 것에 따라 외부와의 관계도 훨씬 의미있는 관계가 될 것이며, 깊이 있는 관계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가상 죽음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내부에 깊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로부터 배운다면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기치게 될 것입니다.

 

미리 잘 죽어보시길, 그리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영위해나가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 자신도 더욱 깨어있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2014. 7. 7.

19:25

 

 

 

참으로 가슴 아픈 삶을 살고 있는

고서 김선욱

 

 

* 교정: 2015. 2. 17. 07:4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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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옛날로 돌아가 사랑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겠다

또다시 쓰라린 인생 고백을 해야할 시간입니다. 아마도 이 밤을 까맣게 지새워야만 할 것 같습니다.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 아니라 부끄럽고 창피한 삶을 드러내야만 하니 속까지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감추고 싶은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합니다.

 

언젠가 커밍 아웃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고 한없이 떨어져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때를 말입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삶이었기에 저는 행복했고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평온했던 시간이었습니다.

 

I**생명에서 10년 한많은 보험재정상담사의 일을 타의에 의해 정리하고는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경제적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한 아내를 위해서 제 꿈이나 목표를 포기하고, 또 생명보다 더 가치있게 생각했던 진리 추구의 삶을 보류하고라도 앞으로 10년은 아내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했답니다. 그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삶이라 할지라도 더는 아내가 경제적인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때늦은 결심이었지만 말입니다.

 

작년 말, 큰 마음을 먹고 Yes 블로거 독서 토론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딸과 함께 4월에 참석한 이후 내내 시간을 내지 못해 한해가 다 가기 전에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수.목요일에는 하던 일을 쉬고 다른 일을 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기 때문에에 주말에 있는 제제 모임에는 참석할 수가 없었지요. 하루 일을 쉬고 모임에 참석한 것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더는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헌데 만남 직후에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미래 신랑감에 대한 조건을 언급하면서, 파란하늘님께서 두목님께 아래와 같은 의미심장한 조언을 했었지요. 참 맞는 얘기다 싶었지요. 그러면서 제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지요. 난 참 못난 남편감이었구나 싶은 게 속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 같은 경우는 제 자신의 꿈과 야망만을 쫓다가 아내를 많이 힘들게 했기 때문에 두어해 전에 크게 반성을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목님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게 되었는데요. 푸른하늘(파란하늘)님은 좋은 남편감으로 쌀 떨어지게 하지 않을 사람이면 된다고, 책임감 있는 남자를 꼽더군요. 남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를 먹여살려야 한다고 강조를 하더군요. 얼굴이며 키는 별게 아니라는 돌직구를 날렸지요. 파란하늘님이 좋은 남자 친구를 소개시켜 줄 것이 확실합니다. 주변에 건실한 청년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ㅎㅎ

 

[출처] : 제제 회원들과의 상봉 1 - 1부 정찬 / http://blog.yes24.com/document/7527407

 

이런 대화를 나눌 때, 그래도 저는 뒤늦게나마 아내를 위한 삶을 결심했고 힘든 일이지만 꿋꿋하게 해나가고 있을 때라 조금은 덜 캥겼답니다.  

 

그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오랜 시간을 함께 했지요. 그런데 2차인가 3차 자리에서 대화 중에 느닷없이 파란하늘님께서 제게 질문을 하시더군요. 뜨끔했습니다. 그래도 이미 책도 한권 냈고, 지적인 대화를 나누는 독서 모임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을 얘기하려니 창피하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둘러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해야겠구나 싶었지요.  

 

치킨집에서인지, 아니면 카페에서인지...

파란하늘님께서 갑자기 제게 질문을 하셨어요!

 

"고서님, 무슨 일 하세요?"

 

나는 갑작스런 질문에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아직 준비가 안 되었지요. 그래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백수(건달) 인데요~~" ^^

 

아마 옆에 앉으셨던 분들은 들으셨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백수가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  기회에 coming out 할 예정입니다!

 

 

[출처]: 제제 모임 만남 3부 - 치맥 대화, 책벗님들 사랑합니다! / http://blog.yes24.com/document/7534878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참으로 험한 일을 하던 때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말았답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굳이 다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말입니다.

 

고백을 하기 전에 어렸을 때의 경험을 잠깐 들려드려야겠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여름 방학 때 알바로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했습니다.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친구 따라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질통질을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마련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아마 용돈을 벌려고 했을 겁니다.

 

그때는 알바 같은 게 뭐 있었겠습니까. 이것저것 알아볼 것도 없이 친구와 함께 일하러 갔지요. 먹여주고 재워주는 조건으로 하루 일당 만천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농삿일을 거들며 자랐던 저는 덩치는 작지만 어려서는 힘께나 썼답니다. 쌀 - 아 볏가마인가 싶네요 -  한가마는 번쩍번쩍 들었으니까요. 벽돌을 지게에 져 나르는 일을 했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하루 일을 마치고 나니 죽겠더라구요. 그래서 일을 마치고 난 후 친구에게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 하루 백십만원을 준다고 해도 나는 못 하겠다며 집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말 한마디가 저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너 이거 하나 못하면 나중에 아무 것도 못 한다. 니가 이걸 견뎌내고 하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은 다 굶어죽어도 너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오기를 불사르는 친구의 저 말 한마디에 저는 이를 앙다물고, 그래 버텨보자, 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곰빵질을 약 한달간이나 했고, 노가다 알바 일을 마쳤을 때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적지 않은 돈을 만져볼 수 있었지요. 그 뒤로도 알바를 할 때는 주로 노다가 일을 했습니다. 철탑 공사하는데 시멘트 져나르는 일, 공장 짓는 현장에서 불룩 튀어나온 콘크리트 깨는 일 등 노가다 중에서도 힘든 일을 마다 않고 했었지요. 이런 경험을 한 게 3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작년에 이 험한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3월에 다니던 일터에서 쫓겨난 뒤 4월부터 백수로 지내게 되었지요. 3개월 쉬고 있을 때, 일이 꼬일려고 그랬는지, 갑자기 동생이 세차장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며 좀 도와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정말 싫었는데, 동생이 하도 간곡하게 청하는 바람에 뜻하지도 않은 세차일을 하였습니다. 정말 힘들 일이더군요. 무더운 여름이라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안쓰던 근육을 쓰려니 근육이 땡기고 하니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시간 내에 세차를 마쳐야 하니까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잘 견뎌냈습니다. 아마 어려서 힘든 일을 한 경험이 있어서 그랬을까요. 한달인가 그렇게 몸을 쓰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일을 돕는 일이라 돈은 아주 조금밖에 받지 않았는데 그걸로는 생활비를 하기가 힘들어, 그리고 둘씩이나 매달려서 할만큼 손님이 많지 않아 저는 그만두었습니다.

 

가족 생계를 더는 외면할 수가 없어 노가다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 해본 경험도 있고 해서 한번 해보자고 강하게 마음 먹고 작업복을 챙겨 새벽 일찍 인력 사무소에 갔습니다. 첫날부터 가장 힘든 일에 투입되었습니다. 30년 전에 했던 곰빵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힘이 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벽돌, 시멘트를 높은 곳으로 옮겨주는 일을 했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나중에는 40KG짜리 세면 한포를 들어올리는데 허리가 꺾어지는 것 같더군요. 정말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간신히 버틸 수 있었지요. 땀은 비오듯 쏟아지는데 냄새나는 화이바를 뒤집어 쓰고 일을 하려니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농땡이 부리거나 꾀를 부리지 않고 벽돌 쌓는 기술자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지요. 제가 보조를 했던 사람이 둘이었는데 한분은 벙어리 기술자였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데 눈치로 뭘 원할까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써포트를 하니 나중엔 그분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 일당이 10만원이었습니다. 땀에 절어 번 10만원을 집에 갖다 주려니 흐뭇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막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30년전 힘이 장사였을 때를 생각하고 시작한 막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이게 초짜라고 힘든 일은 저를 시키더군요. 막일 하던 사람들이지만 인정이라고는 없더군요. 하루는 폼이라는 걸 쌓는 작업을 하루 종일 했는데 하도 무거운 걸 들어올리려니 인대가 늘어나더군요. 나중에는 왼팔을 잘 쓰지를 못했답니다. 무거운 걸 들수가 없었지요. 20년 넘게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영업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50이 넘어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려니 몸이 견디지 못하겠더군요. 

 

몸이 천근만근 무겁다는 의미가 뭔 소린지를 절절하게 느꼈답니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씻고는 쓰러져 자기 일쑤였습니다. 온몸의 뼈가 다 아프더군요. 어찌나 아팠던지 아침에 일어날 때면 악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새벽 3시 50분에는 일어나야 했는데, 그야말로 전쟁과 같은 하루하루였지요. 그런데 저는 삶에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단 한번도 늦게 일어난 적이 없고, 처음부터 십며칠을 쉬지 않고도 일을 나갔습니다. 사무실에 제일 일찍 도착하여, 바로 문 입구에 앉아 노가다 일지를 쓰고, 또 돌아올 때는 시를 쓰는 삶을 해나갔지요.

 

세상에서 가장 험하고 천한 - 생계를 위해 이보다 더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 일을 하면서도 저는 굳게 결심한 게 있었습니다. 절대 절대 노가다 근성은 배우지 말자. 일시적으로 가정 생계를 위해 험한 일을 하게 되었지만 나중에 위대한 일을 할 수도 있고, 큰일을 할 수도 있으니 나쁜 습성은 배우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답니다. 절대 꾀를 부리지 말자. 절대 힘든 일이라고 피하지 말자. 절대 힘든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자. 절대 대충대충 일하지 말자. 절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자 등등.

 

단순하게 벽돌 쌓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왕궁을 내손으로 짓는다는 마음으로 일을 했습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얘기입니다만, 그게 진실이다는 것을 몸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에 따라 위대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비록 남들 눈에 비천하게 보일지라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 그렇게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니 사람들이 하나둘 다가오더군요. 매일 일찍 나와서 뭔가를 쓰니 궁금하게 생각하여 말을 거든 사람들도 있고, 먼저 나간 현장에서 나중에 오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일터의 상황을 알려주기도 하니 고마워 하는 사람도 생기더군요.

 

이런 마음 가짐으로 일을 하니 육체적으론 훨씬 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농땡이 피우거나, 피하는 일을 마다 않고 하려니 자연히 일을 더 하게 되었습니다. 담배피는 사람들은 인정받는 쉬는 시간을 가졌지만 저는 담배도 피우지 않으니 아무래도 일을 더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같이 일할 때는 다 같이 쉬니까 일을 더 하지는 않았지만, 혼자 일을 할 때면 묵묵히 일을 하니까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일을 어느 정도 했을 무렵에도 계속 뼈마디가 쑤시고 아파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일을 해오니 익숙하기도 하고 또 단련이 되어서인지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의 경우는 2개월, 3개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몸이 힘든 것은 여전하더군요. 아마 오랫동안 육체적인 일을 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일이년의 세월이 흘러야 몸에 배고 적응이 되어야 힘이 덜 들고 아프지 않게 되는가 싶었습니다.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기쁘게 일했습니다. 또 집에 돈 가져다 주는 재미도 쏠쏠했구요.  10원 한장 쓰지 않고 아내에게 고스란히 가져다 주니 적은 돈이었지만 아내는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도 일을 하고 있었는데에다 고정적으로 계속 돈이 들어오니 가계가 점차 안정되어 갔던 것이지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여유를 갖게 되었고, 아내는 지인들과 그리고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가운데도 이대로만 머물러서는 안 되겠다 싶어 남들이 쉬는 토요일, 일요일에도 일을 나가고 평일에는 시간을 내어 다른 일을 하자 싶어 일주일에 5일은 막일을 하고 이틀은 영업을 하자는 계획을 세워 놓았지요. 그래서 수, 목에는 영업을 뛰기로 했답니다. 막상 그렇게 계획을 세워놓고 몇번은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워낙 몸이 힘드니 깔아지기 일쑤더군요. 그래도 최소한 5일은 막일을 했답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편안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걱정은 없으니 일마치고 돌아와서는 글을 쓰자 다짐을 해서 행복론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씻고 간단히 저녁 차려먹고 컴 앞에 앉으면 정말 뒤에서 수십명 잡아당기는 것처럼 몸이 깔아지더군요. 아무리 정신을 오롯이 차려 글을 쓰려했지만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내일, 내일 하면서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네, 당시에 저의 직업은 노가다 - 막일 혹은 일용 건설 노동자 등 다른 용어가 있지만 게다가 일본말이지만 현실감 있게 그대로 표현하자면 - 였습니다. 하루하루 몸을 팔아 먹고 사는 날품팔이. 그렇지만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열심히, 행복하게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하도 힘들어 하니 아내는 당신이 할 일이 아니라며, 빨리 다른 일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걱정이더군요. 하지만 인생 경험을 위해서도 한 일년은 일해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비록 밑바닥 인생 경험이었지만 배우고 깨닫는 점도 많이 있었구요. 아내를 위해서 앞으로 10년 내 인생은 없다 생각하고 살기로 굳게 다짐하기도 했으니 너무나 힘든 일이어지만 얼마든지 견딜만 했습니다.

 

이 험한 막일을 하면서도 의미있었던 점은 절친 후배 P를 만난 일이었습니다. 저보다는 2살 아래로 막 노동일에 잔뼈가 굵어 힘도 세고 일도 잘하는 친구인데 뜻이 맞아 함께 일하면서 매일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약 두달 동안 함께 짝이 되어 일을 했는데 하루 종일 하하, 호호 웃으며 일을 했습니다. 일하는 동안에는 천국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큰 공장의 각종 설비 증.개축 현장에서 안전시설반 - 말이 안전이지 각종 청소를 하는 쉽지만 어려운 일을 하는 - 에서 함께 일을 했는데 단짝이 되어 청소하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아주 더러운 하수구 같은 곳을 청소하기도 했고, 높은 철제빔의 먼지 등 쓰레기를 치우기도 했는데 더러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일을 할 때는 몰입해서 열심히 했고, 또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으며 하루 종일 웃으며 지냈습니다. 어쩌다가 그 친구가 심통이 나서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저는 늘 웃으며 대하였는데 나중에는 감복을 하여 형이라 부르며 따르더군요. 비록 남남 사이로 서로 개성도 현저하게 다르고 환경도 많이 다르지만 마음이 맞고 뜻이 같으면 얼마든지 화합할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즐겁고 행복하게 어울려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부부지간이라도 이처럼 산다면 바로 이 지상에서 천국과 같이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점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내가 구운 계란도 마련해 주어 간식을 싸갖고 가 나눠먹기도 하며 작은 것을 함께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답니다. 나중에는 이 절친 후배와 같이 술 한잔 나누며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형이라고 부르며 자주 안부 전화도 하고 만나자고 합니다. 참 많은 교훈을 얻은 소중한 만남이었습니다.

 

가정도 안정이 되고, 아내도 조금씩 여유를 갖게 되고 하여 행복이라는 것이 깃들기 시작할 무렵 아내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내도 아프기 직전 열심히 일해 능력을 인정받았던지 두 곳에서 매니저로 일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던 때라 더욱 안타까움이 큽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오랫동안 힘들고 어렵게 사는 동안 마음 고통이 심했던지 그게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지, 일견 행복해 보이는 때에 중병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속속들이 말씀드리지 못한 또다른 아픔으로 인해 마음에 병이 컸던 것 같습니다.

 

시간 여행자의 아내라는 영화에서처럼 미리 아내의 운명을 알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다 해봅니다. 비록 제가 뒤늦게 힘든 막노동 일까지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을 했지만, 좀더 일찍 그렇게 했어야 하지 않았나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혹시 나중에 더 소상하게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뒤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도움을 준다는 신념하에 생명보험회사에서 사명감을 갖고 보험재정상담사로 일하는 한편 진리를 추구했던 삶은 제게 참으로 보람있고 가치 있던 삶이었습니다. 비록 그런 마음으로 10년 동안 보람있게 일했지만 결국은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초래하여 아내를 고생하게 했던 것이니 아무리 후회없는 삶이었다고 소신있게 생각해왔지만 후회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제 아내 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면서 세상을 구원하고,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얼마나 가소로운 일입니까.

 

이렇게 고통스럽게 참회의 글을 쓰는 것은 아내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고 없지만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저의 잘못을 고백하고 또 용서를 구하고자 함입니다.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다면, 제 아내라는 국한된 존재가 아닌 한 사람의 위대한 존재로서 더 아름답고 멋진 삶을 영위하며 일생을 행복하게 살며 나아가 깨달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처절하게 반성하는 마음에서 세상 떠난 아내에게 사죄를 드리고자 함입니다. 행복하게 빛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평화롭게 안식의 길에 들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사람의 앞일은 누구도 모르겠지만,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산다면 누구나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큰 마음의 고통이 없다면 건강하게 장수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권리인 것이지요. 누구나... 생명을 지킨다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토대입니다. 살아있어야 행복도 느끼고, 살아있어야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깨달음의 길을 걷든, 사랑의 길을 걷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의 깨달음과 행복을 위해 헌신한다 다짐했던 적이 있건만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약에 아내가 이리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아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을 것입니다. 제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서라도,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더라도 저는 달리 살았을 것입니다. 저의 전 생애를 희생해서라도 아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진정 사랑하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제 사랑의 힘을 통하여 아내가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면 분명 더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니까요. 한달만이라도 아니 하루만이라도 온전하게 사랑하며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더라도 이리 절통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제 곁의 누군가가, 제 주위의 지인들이, 나아가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건강을 잃고 이 세상을 갑자기 하직하는 일은 정말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건강하게 참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 세상이 사랑과 행복과 건강으로 충만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2014. 7. 2.

08:37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고서 김선욱 (쓰다) 

 

 

 

* 교정: 2015. 2. 17. 14:39 ~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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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된 통장, 멈춰버린 사랑 | 사랑하며 ..... 2014-06-24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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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옛날로 돌아가 사랑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겠다

어쩌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감탄할 수도 있고, 작은 고마운 일에 기쁨을 느끼며 살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마음이 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만도 행복이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감사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더욱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런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세상은 정말 살만한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구나 이 세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할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바라본 구름낀 노을이 꽤나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내가 살아있음으로 해서 이런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 정말 산다는 일은 감사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없으니 이런 작은 행복도 사치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제 아내도 오래오래 살아서 함께 누렸어야 할 생의 아름다움이었어야 한다는 생각에 슬픔이 몰려오더군요. 어쩌면 누구나 누려야할 권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구요. 참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나 큽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말입니다.

 

아내가 입원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한 권의 책을 읽게 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작은 변화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병세가 위독하니 아내는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걸 지켜봐야 하는 제 마음은 쓰라렸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날이 오기 전에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내가 책을 읽도록 하려고 부단히 애를 써 왔습니다. 어쩌면 좀 짜증날 정도로 책읽기를 권했습니다.

 

리딩 프라미스를 읽고 딸아이와 독서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많이 커버려 아빠가 책을 읽어주기에는 늦은 나이였지요.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하는 격언에 따라 함께 책읽기를 시작했어요.

첫 날은 제가 읽고 딸아이가 들었답니다.다음날은 딸아이가 읽고 제가 들었어요.
이렇게 해서 우리집 독서 마라톤은 시작되었답니다.

적극적 참여를 위해서 약간의 꼼수를 부렸지요. 하루 15분의 책을 읽으면 1,500원을 주고 일주일 동안 연속해서 읽으면 4,500원을 추가해 15,000원을 준다고 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아들도 참여했고 아내도 동참을 하게 되어 우리집은 가족 전체가 독서 마라톤을 뛰게 된 것입니다.

돈으로 주다가 딸아이와 아내는 적금통장을 만들어 매주 만오천원씩 입금해주었어요.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조금 밖에 안 되는 적은 돈이었지만 모이면 아내가 나중에라도 쓰고 싶은데 마음껏 쓰라고 만들어 준 독서 마라톤 적금통장.

지난 2월 아내가 갑자기 아파 병원에 다녀오면서 해지했어요.얼마 안 되는 돈이었지만.

너무나 가슴 아프게도 아내는 끝내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지요. 우리의 독서 마라톤이 멈추고 난지 얼마 지나지 못해 사랑도 멈추고 말았어요.

아내가 책을 읽으며 살기를 간절히 바랬어요.그래서 생일 때나 결혼 기념일 등에는 늘 책을 선물했습니다.

아내도 한 때는 책을 읽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울기도 했다고 말했었거든요. 그 때 저는 무척이나 기뻤답니다.

그 뒤로 아내의 책읽기는 중단되었고, 저는 늘 다시 책을 읽으라고 권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독서 마라톤을 하면서 비록 제가 읽어주는 책을 듣는 것이었지만 책읽기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네요. 너무나 황망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남겨두고 말입니다. 읽지 못한 책도 남겨둔 채.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꽃을 선물할 걸 그랬나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꽃을 더 기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까요.

하지만 아내가 책을 읽고 더 성장,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책이 우리의 영혼을 구하고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답니다.

아내가 계속 책을 읽어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2014. 6. 24.
13:24


독서 전도사
고서 김선욱

 

 

제 막내 여동생이 병문안을 올 때 책을 들고 왔답니다. 자기가 읽어서 너무나 감동을 받았던 책이라며 언니가 읽어보라고 가져온 것이지요. 자기가 읽었던 여러 권의 책들에서 병의 치유에 도움이 될만한 구절들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글을 써와서 읽어주었지요.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그랬을지를 저는 알거든요.

 

참으로 슬픈 사실이지만 5살 아래 제 여동생도 작년 1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막내 여동생은 그 때는 아직 조언을 해 줄만한 수준이 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하나 밖에 없는 친언니를 보내야했기에 뼈에 사무치게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 후로 1년 동안 열심히 책읽으며 공부한 결과 나름대로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책들도 읽어왔고, 또 의식 세계가 넓어지기도 해서 새언니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책을 들고 온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가 깨달은 바에 따라 기도도 열심히 했구요.

 

그 책을 읽어보라고 아내에게 기회가 되면 이야기를 했지만 읽을 수가 없었답니다. 제가 읽어준다고 해도 싫다고 하더군요. 여러사람이 함께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방해가 된다 싶었을 것입니다. 정말 돈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1인실에 입원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책도 읽어주고 또 간략하게 요약하여 이야기해줄 수도 있었으니까요.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아내가 좀더 일찍부터 책을 읽으면서 정신적인 깨달음의 길을 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그랬더라면, 어쩌면 중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과정 중에 있더라도 치유가 되었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병의 치유에 중요한 것이 정신적인 측면이니까요.

 

차제에 충심을 담아 참고삼아 병의 치유에 도움이 되는, 나아가 인생에 진짜 도움이 되는 독서에 관해서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책을 읽으라고 했지만 아무 책이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정신의 성장, 발전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어야만 합니다. 그런 책들을 읽는 것은 일반적인 책읽기 혹은 취미로 읽는 책읽기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독서를 강조한 것은 책읽는 습관을 들여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측면에서 책읽기를 강조한 것입니다. 결코 아무 책이나 읽으라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당장 병의 치유에도 도움이 되고, 긍국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은 쉽지 않은 책들입니다. 독서를 한다고 해서,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저절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도적인, 그리고 체계적인 독서를 해야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독서와 거리가 멀다고 보아야 합니다.

 

막내 여동생 같은 경우는, 장손인데다 홀 시어머니를 둔 남편에게 시집을 가 힘들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정말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어느날부터 책을 잡고 인생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남동생까지 이미 깨달음의 길을 걷으며 인생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도 저희를 찾아와 묻지도 않고, 독서를 통해 스스로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났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제가 읽었던 책들 - 같은 저자의 다른 버전의 책이나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 과 유사한 책들을 읽어왔고, 읽은 책속에 언급된 책들을 읽고 하면서 정신적인 성장, 발전을 거듭해왔던 것입니다. 어찌나 기특한지 몰랐답니다. 얼마나 지혜롭게 그 배운 바를 가족들에게 적용해서 잘 실천했는지 저보다도 오히려 훨씬 훌륭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자신은 물론 가족들이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길에는 사실은 정답이 있습니다. 책에도 진짜 좋은 책들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유행을 따르거나 부분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는 책들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드러낼 수 있는 아름다운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책들을 찾아 읽고 그걸 체화해야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길을 함께 걸으려고 아내에게 책읽기를 종용해왔습니다만 저의 사랑이 부족하여 그만 그 길로 안내를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제와서 한탄하고 후회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만은 책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고 인생을 잘 경영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책을 읽어나가셨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제가 오랫동안 이번 생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공부를 한 결과, 사실 우리는 모두 한생명 한세포인 셈이더군요. 쉽게 이야기하면, 낯 모르는 이웃들도 결국 우리 모두의 형제며 자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대의 연결고리만 거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된다면서요. 페북에서 경험한 것인데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친구맺기로 연결이 되더군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친구의 친구로, 또 그 친구의 친구들도 서로 연결이 되더군요. 

 

이 세상에서 제 아내처럼 중병에 고생하고 계실 어느 이름모를 자매, 또 앞으로 혹 암에 걸려 고생하게 될지도 모를 제 딸 친구의 아버지 등 형제를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책읽기를 권하고 싶고, 특히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고 나아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데 도움이 되는 책읽기를 권하고 싶답니다.

 

독서 인생의 청사진을 그려놓고 책을 읽는다면 참으로 지혜롭다 할 것입니다.

 

사랑했던 아내가 참으로 그리운 밤입니다!

 

 

 

2014. 6. 24.

22:31

 

 

 

아내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정말 가슴 아픈

고서 김선욱

 

 

교정: 2015. 2. 17. 16:13 ~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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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없습니다 2 | 사랑하며 ..... 2014-06-23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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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먹고 사는 일이구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입니다. 낙담하여 집에만 처박혀 있으며 지독한 슬픔에 싸여 있을 때입니다. 아내 장례를 치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습니다.

 

"야, 뭐해? 집에만 있지 말고 나와라!"

 

선생님께서는 전화를 하셔서는 저를 불러내셨습니다. 아무 데서도 연락이 없어 한없는 외로움을 느끼며 칩거하고 있을 때 저를 불러내 밥도 사주시고, 못 드시는 술도 한잔 사주시며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아내가 입원해 있을 때는 병원으로 반찬을 싸들고 병문안까지 와 주셨지요. 어느 병실에 입원하고 있는지 알려드리지도 않았는데 불쑥 찾아오신 것입니다. 밥까지 사주시고, 또  조금 밖에 안 된다며 치료비에 보태라고 봉투까지 건네주셨습니다.

 

장례식 때는 선생님께 나이어린 사람이 먼저 떠나는 아픔을 보여드리지 말자 싶어 장례식장도 알려드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시고 문상을 와 주셨지요. 찾아와 주신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적지 않은 부의금까지 내셨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해드린게 아무 것도 없는데 저는 이렇게 늘 받기만 했습니다. 선생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기만 하니 이 은혜를 언제 다 갚아야할지 모릅니다.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제게 한없이 베풀어주시기만 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허허 웃으실 뿐입니다. "사랑은 그냥 주는 거야,임마." 아마 속으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실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제게 잘 해주셔서만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른다운 모습을 온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시고, 게으른 후배들을 따끔하게 나무라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연세드신 노인으로 사시는 게 아니라 아직도 꿈을 꾸며 열정을 갖고 사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눈이 나빠 글자 읽기도 쉽지 않으신데도 꼿꼿하게 앉아 책을 보시는 아름다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틈나는 시간마다 책상에 앉아 밑줄을 치며 책을 읽으시며 배움의 길을 멈추지 않는 청년이시기 때문입니다. 가게 한구석 자리에 늘 책탑을 쌓아놓고 독서삼매경에 빠져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요? 우리 젊은이들이 배워야할 삶의 자세가 아닌가요?

 

제가 류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제가 헌책방 순례를 할 때, 수원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선생님과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4월경이니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닙니다.

 

 

오복서점. 집중적으로 탐방해 보려는 서점이다. 하지만 남문서점이 먼저다. 그곳은 길 좌측에 자리잡고 있다. 남문서점을 지나고 국민은행을 지나 남문쪽으로 조금 더 가니 오복서점이 나타난다. 어떤 서점일까 궁금했다. 밖에서 사진을 몇컷 찍고 지하 1층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바닥이 깨끗하게 청소된 아주 깔끔한 서점이었다. 헌책방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일반서점과 같은 느낌이다. 서가 사이도 널찍하게 떨어져 있어 책 구경하기도 좋다.  가방을 놓고 자세를 잡는데, 주인인듯한 분이 내려오셨다. 우선 책들을 살펴보며 한바퀴 쭉 돌아보았다. 어쩜 그렇게 깔끔하게 진열해두었는지 보기도 좋았다. 책을 쇼핑하고 있는데 연세가 조금 드신 분이 들어오셔서 주인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형님 동생하며 나누는 대화가 정겹게 들렸다. 이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행복한 만남이 예비되어 있던 것일까.

 

2권을 골랐다.

이제 손님으로 오신 그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차례가 되었다. 책은 많이 읽으셨냐, 이곳 서점엔 오신지는 오래되셨느냐고 여쭤보았다. 한눈에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독서, 여행 등 진짜 전문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하신다. 선생님께선 음식문화에도 조예가 깊어 보이셨다. 서가를 보여주면 책을 소개를 해주시기도 하셨다. 명함을 드리고 인사를 드리며 보험설계사라고 하니까 상담하는 사람들은 꼭 봐야 한다면서 다른 책 한 권을 꼭 집어 추천해주셨다. 서점 내에도 있을 것이라면 사장님과 같이 찾아 주셨다. 전문가가 소개해주는 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책이 틀림이 없다. 또 꼭 봐야 할 책이라며 다른 책도 소개해 주셨다. 식객, 신의 물방울(만화를 본다고 하니), 부의 미래, 희망의 밥상, 노는만큼 성공한다는 책을 소개해 주셨다

 

 

[출처]: 고서의 헌책방 순례기 - [대학서점 + 오복서점] http://blog.naver.com/myinglife/70016853487

 

제가 류선생님을 만나뵌 곳은 다름 아닌 헌책방이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만남이었지요. 아마 그때 우연히 그곳에서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책이, 헌책방이 선생님과 저와의 만남에 다리가 되어준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서 우연한 만남은 자주 일어납니다. 우연한 만남을 좋은 인연으로 만들어가려면 잘 가꿔나가야 할 것입니다. 비록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삶의 환경도 달랐지만 서로에게 반했을까, 저도 선생님을 가끔이나마 찾아뵈려고 했고, 좀 뜸하다 싶으면 선생님께서도 제게 전화를 주셔서 놀러 오라고 하셨지요. 어쩌면 간담상조한 만남이었기에 지속적인 만남으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사실 작은 또 하나의 계기가 있다면 제가 칼국수를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서울, 경기 지역 몇몇 칼국수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마침 사모님께서 칼국수 가게를 하고 계셨는데, 선생님게서는 서빙 알바를 하시고 계셨지요.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칼국수를 자주 먹어 물릴 법도 한데 저는 커서도 칼국수를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을 뵈러 가면 좋아하는 칼국수를 먹을 수 있었으니 이점이 조금은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칼국수도 좋아해야합니다!

 

종로칼국수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 곳에 가면 재미난 일이 있습니다!

 

 

 

 

종로칼국수_수원맛집추천 : 무엇을 먹을까 / 제니의 일상

< http://blog.naver.com/jenny8283/220026888728>

 

 

1. 칼국수 마음으로 먹으면 맛이 끝내줍니다!

 

 

메뉴는 칼국수뿐입니다. 40년간 오로지 칼국수만 끓여냈습니다. 여름에는 오로지 콩국수만 내놓습니다. 여름에 뜨거운 칼국수 요구하시면 쫓겨납니다. 조심하세요!^^

 

음식도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한다고 합니다.

이 때 칼국수는 단순한 먹거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문화인류사적인 측면에서 먹는 일에 대한 의미있는 얘기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류선생님께서는 요리, 음식에 관한 책만 약 1,000권의 책을 수집하셨다고 하니 요리 혹은 음식문화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갖고 계신 셈이죠.

 

음식점이든 다른 업종이든 공간을 파는 것이야말로 마켓팅 혹은 영업의 핵심이라는 원칙하에 옛스러운 멋을 고집하면서도 현대적인 멋을 제공합니다.

 

 

 

2. 클래식 음악이 흐릅니다!

 

 

칼국수와 클래식 음악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먹는 음식은 먹는 즐거움을 배가 시켜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음식은 기본에 보너스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식사하는 시간 동안 음악을 틀어주는 공간을 보너스로 제공하는 셈입니다. 손님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음식의 맛과 귀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먹는다면 어쩌면 음식맛은 더 좋게 느껴질 것입니다.

 

지난 6월 14일부터 21일까지 수원 화성 국제음악제가 있어, 수원시 클래식 음악 저변 확대를 위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벌써 4년전부터 클래식 음악 발전을 위해 기여를 해 온 셈이니 앞선 사고를 갖고 계시다고 봐야겠지요?

 

 

 

3. 책 구경을 하실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근처의 헌책방에서 구입하신 책이 족히 2,000권은 될 것입니다.

가게 안 이곳저곳에 책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러다 얼마 안가 가게가 온통 책으로 쌓여 손님 앉으실 자리도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됩니다.

 

헌책 사랑이 - 그렇다고 꼭 헌책만 보신다는 것은 아니고 - 대단하십니다.

틈나는 대로 책을 읽으시니 우리 젊은 사람들이 배워야하지 않을까요.

밑줄 치고, 포스트잇 붙이고, 노트에 정리하시면 책 읽으시는 모습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0이 넘으신 분이 책읽고 배우면 얼마나 써먹겠다고 늘 책을 읽으시면서 배움을 지속하는 자세는 우리가 정말 배워야할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아끼는 후배들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책 읽지 않으며 자기계발에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야단을 맞을 것입니다.

몸소 실천하시는 바를 강조하는 것이니 끽소리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책을 읽지 않는 분들은 칼국수 한 그릇 사드시고 야단도 좀 맞으세요. 그래야 인생이 바뀔 것이 아닙니까?

 

 

 

4. 블로그를 운영하시고, 스마트 폰을 사용하십니다!

 

 

책 읽으신 후, 또 사시는 이야기를 가끔씩 블로그에 포스팅하십니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이야기를 쓰시느라 고민도 하십니다.

한번 들러보십시요.

 

파랑새의 꿈은 희망이다 http://blog.daum.net/sos0110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할 줄 모르거나

블로그가 없는 분들은 야단 맞으십니다.

 

 

 

5. 고민 상담도 해드릴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어려운 문제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가서 툭 터 놓고 속내를 얘기할 수 있나요?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본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나요? 책도 읽지 않고 다른 선지식엑 배우지도 않는데 어찌 제대로 조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고민거리를 싸들고 가시진 마세요. 상담료가 무지 비쌉니다.^^

좀 친해지시거든 여쭤보세요. 우리는 뭐든 정보는 공짜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상담에 대해 댓가를 지불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칼국수 몇 그릇 드시러 다니시면 자연히 마음을 나누는 관계가 되겠지요.

 

 

 

6. 단, 보수꼴통은 가지 마십시오!

 

무쟈게 혼나실 것입니다. 손님이라도 냉정하게 내쫓으십니다.

공부하지 않은 표시이고, 책 한줄 읽지 않은 증거이며, 생각없이 산다는 의미이니까 단단히 야단을 맞을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며 살고 싶으시다면 야단맞아도 좋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도 전에는 보수꼴통이셨답니다.

10년도 더 전에 병환의 죽음의 문턱을 넘어설뻔한 적이 있으신데, 그 때 이후 새롭게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되셨다고 합니다. 책읽고, 젊은 후배들에게도 배우고 하면서 다방면에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갖추게 되셨답니다. 물론 근현대사를 몸소 겪은 경험에서 우러난 지혜는 기본으로 갖고 계시겠지요.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위아래 없이 사람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직접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지요.

칼국수 팔아서 얼마나 많이 벌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작은 것을 나누고 계시지요. 저만해도 선생님 술 한잔 제대로 대접해드린 적도 없고 오히려 이것저것 얻어먹기만 하고 있는 형편이니 말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선생님에 대한 아주 일부분에 불과할 것입니다. 가히 무불통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칼국수도 드시고, 마음의 양식도 드셔야 하지 않나요?

 

 

7. 근처에 헌책방(오복서점, 남문서점)과 통닭거리가 있고, 화성행궁도 있으니 볼거리 먹을 거리 읽을 거리 구경 거리를 함께 즐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알바를 하시는 3시 이후에는 혹 가이드를 해주실지도 모르지요.

 

 

어떠신가요?

이번 여름 여름철 별미 콩국수도 맛보시고, 인생에 자극이 되는 계기를 마련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2014. 6. 23.

09:32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쓰는

고서 김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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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 사랑하며 ..... 2014-06-02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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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옛날로 돌아가 사랑할 수 있다면 진정으로 사랑하겠다

그러게, 있을 때 잘 하지…”

 

이 진부하리만치 평범한 말이 늘 머리 속에 맴돈다. 적어도 내게는 진실이다. 아내 살아 생전에 조금이라도 더 잘 해주었더라면 덜 후회하며 지내고 있을지 모른다. 아내 질병에 대한 무한책임론을 갖고 있는 내게는 더욱 뼈저린 말이다. 정말 곁에 있을 때 조금 더 잘 했더라면이렇게 사무치게 마음 아프지는 않을 텐데

 

후회하는 마음은 떠나 보내는 사람만 느끼는 게 아닌 것 같다. 잔인한 4월 세월호 대참사로 갑자기 부모나 가족 곁을 떠나게 된 아이들이 남긴 문자 메시지를 보면 가슴 아픈 후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모두 자기가 잘 못했다는 마음을 전하기에 바쁘다. 미안해 하며 사랑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슬픈 일지만, 그 아이들에게도 진실이었던 것이다.

 

살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는 극히 어렵다. 가까운 이들에게 얼마만큼 잘 하고 있는지 혹은 잘 못하고 있는지 돌아보지 못한다. 있을 때 잘 하자, 하는 마음으로 늘 자신을 돌아보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면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리라.  

 

살고 있는 곳이 도회지 끝자락이라 밤이 되면 논에서 개구리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온다. 아내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며, 혼자 사는 쓸쓸함이 더욱 깊어진다.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이 사무친다. 어서 이 봄이 가고, 또 몇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가 좀 덤덤하게 아내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병원에서 아내를 간호하던 생각을 하면 고통스럽다. 아내를 살리고 싶었던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일까, 병원에서 힘들게 지내던 생각을 하면 칼로 맨살을 도려내는 듯 아프다. 악몽이었다. 만일, 만일 출혈이 없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되짚어 생각해본다.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갑자기 혈변을 보아 급하게 응급실에 입원하였는데 병원에서는 십이지장궤양에서 출혈이 있는 것 같다며 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했다. 출혈 때문에 수혈을 하며 내시경 검사를 했고 지혈 처치를 했다. 출혈이 멈추지 않고 계속 혈변을 보아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다섯 번이나 내시경 검사와 처치를 하면서 수혈을 많이 했다. 환자가 고통스러웠던 것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으며 지켜보는 나도 애간장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암이 매우 위중하다지만 출혈이라는 게 더 급하고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피가 계속 혈관계 밖으로 빠져나오면 창졸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 이는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생명의 이치인 것이다. 그렇게 급박한 상황에서 수혈을 지켜보면서 생각한 것이 있다. 만일 피가 없었다면 아내가 수혈을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 누군가가 헌혈했기에 생긴 피로 위급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만일 사람들이 헌혈을 하지 않았다면 피를 공급받지 못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새삼스레 헌혈한 사람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 때, 마음 속으로 자신과 약속을 했다. 나중에 꼭 헌혈을 해서 적어도 아내가 수혈했던 만큼은 갚아주자, 는 품앗이 헌혈을 약속했다. 얄팍한. 이 마음 속의 약속을 아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는 않았다.

 

치유를 위해 생명이라도 걸고 싶은 나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끝내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가슴 아프고 슬프게도. 나에게도 많은 한을 남긴 채,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갑자기 떠나고 말았다. 도저히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 사람의 생명이 갑자기 꺼질 수도 있는 것인 지 하늘이 원망스럽기조차 했다.

 

4월 어느 날, 아내가 떠난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페북에서 헌혈 축제라는 모임에서 올린글을 보게 되었고, 헌혈을 해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임 참석을 예약해두었다.

 

약속을 하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운 법. 어느덧 5 31일 예약일이 다가왔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자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아내를 살리지도 못했는데,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약속을 꼭 지키려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할까, 하는, 비겁한 생각이 약한 내 마음을 비집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헌혈을 하려니 혹시라도 에이즈에 걸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핑계거리를 찾으며 약간 두려운 마음도 생기거니와 귀찮은 마음도 들었다. 수원에서 헌혈 축제가 있는 서울 광화문 헌혈의 집까지 가려면 넉넉하게 2시간 전에는 집을 나서야만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촉박한 마음도 들고 해서 에이 그만둘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참으로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이 아닌가. 그래도 군자와 같은 삶을 추구하고 싶은 내가 양심을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핑계거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뭉그적거리다가 외출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여러 가지가 불편한 상황이었다. 하필 당일, 친구와 함께 밤새우고 들어온 딸아이가 친구를 데리고 들어와 잠을 자고 있으니 새옷을 찾아 입기도 불편했다. 밥먹고 씻고 외출 준비를 해야만 하는데 게으른 마음에 얼른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갔다. 갈수록 귀찮은 생각이 더 들었다. 참 이런 일 가지고 자기와의 싸움을 벌이자니 한심하기도 하다.

 

참고로, 밥해 먹는 사는 게 참 고역이다. 전 같으면 아내가 다 해주었던 일을 내가 고스란히 다 해야 하니 여간 귀찮고 힘든 일이 아니다. 배가 고파 무엇인가를 먹어야 하는데도 아내가 없으니 밥을 해먹는 게 쉽지가 않다. 밥을 해서 차려먹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귀찮고 힘들다. 배가 고파도 선뜻 일어나 밥을 차려 먹지도 못 한다. 개기고 개기다가 더는 못 참겠다 싶으면 라면이나 끓여 먹고 만다. 국물에 남은 밥이라도 있으면 후르륵 말아먹는 게 일상이다. 웃긴 이야기지만 아내의 노고를 뒤늦게 절절하게 깨닫고 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자고 결단을 내렸다. 빵을 먹을까, 씨리얼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헌혈을 하려면 든든하게 먹어야 할 것 같아 밥통에 조금 남아있는 밥을 차려먹고 몸을 씻고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했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을 극히 싫어하는 성격이라 마음이 급했다. 가방에 전철을 타고 오가며 읽을 책도 챙겨 넣었다. 혹시 몰라 한권을 더 챙겼다. 또 수원화성국제음악제의 모든 프로그램을 관람할까 해서 예약해두었던 계좌번호도 옮겨적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쇼핑가방도 챙겨넣었다. 일부러 장을 보러가느니 귀가하는 길에 장을 보려고 장바구니와 아내가 쓰던 지갑을 쇼핑 가방에 넣어 가방에 집어 넣었다. 새 옷도 찾아 입지 못하고 입던 옷 바지는 겨울에 입던 두꺼운 바지고, 셔츠도 아내가 아프기 전 겨울에 몇 번 입었던 옷 - 을 그대로 입고 집을 나섰다. 11 47분에 마을버스 정류장에 섰다. 버스가 늦게 와 다행히 셀카를 찍는 여유를 부렸다.

 

 

 

성대역에서 마을버스에 내려 가까운 농협으로 가 온라인 송금을 했다. 6건이라 시간이 꽤 걸린다. 송금을 마치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고 다시 성대역으로 걸어갔고 구둣가게에서 모처럼만에 구두도 닦았다. 3,000원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서울행 전철에 올랐다. 아내에게 쓰는 편지를 쓰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종각역에 도착하니 1 30, 헌혈의 집에 도착하니 11 50분쯤이나 되었다.

 

참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의 내용을 적는 이유는 헌혈의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내면적 갈등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약속을 지킨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걸 스스로도 경험했으니깐 말이다.

 

집을 나섰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는데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헌혈의 집에 도착해서는 여유를 갖고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헌혈과정은 순조로웠으며, 걱정했던 것처럼 큰 일도 없었다. 게다가 채혈이 잘 되어 쉽게 피를 뽑았다. 이상 증상도 없었다. 헌혈하는 과정에서 생각한 점이나 느낀 바도 참 많았다.

 

헌혈의 집은 참 깨끗했다. 한마디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헌혈할 수 있도록 아담하게 잘 꾸며 놓았다. 번호표를 뽑아 대기하며 안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홍보용으로 붙여놓은 사진에는 헌혈을 100번이나 한 사람들이 꽤나 많았는데 적지 않게 놀랬다.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 이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일을 참 오래도록 해 왔던 것이다.

 

 

 

 

 

내가 뽑은 번호가 49번이었는데, 꾸준하게 젊은 사람들이 헌혈을 하러 오는 게 아닌가. 와서는 컴퓨터에 앉아 문진을 하는데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헌혈을 하고 있으며, 얼마나 헌혈을 해왔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들 때문에 수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수술도 하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니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참으로 기특하고 사랑스럽지 않은가.

 

 

 

 

 

나는 평생 헌혈 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다. 이번 헌혈이 처음이었다. 길거리서나 어디서나 헌혈차들을 자주 본 기억이 있는데도 한번도 헌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어쩌면 무척이나 신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무신경했던 것일까, 아니면 제 몸 하나 챙기느라 그랬을까?

 

사실 나는 헌혈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병원 치료, 즉 서양의학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지난 2001 10 2일 결심한 이래 단 한번도 병원이나 약국엘 가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의 지켜야 한다는 신념하에서이다. 서양의학적 치료는 대증요법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지 못한다는 한계에서 올바른 길이 아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고, 2014 3월까지 지켜왔던 것이다. 그 동안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편도선이 많이 아프기도 했고, 심한 몸살 감기로 끙끙 앓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견뎌내고 병원에 가지도 않았고, 약도 한번 먹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병은 오지 않았다. 건강에 관한 한 불굴의 신념의 가지고 있어, 심지어 나는 금강불괴지신이다고, 내 자신에게 늘 주지시키고 있다.

 

사람이 신념을 버리는 게 죽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나는 그런 신념을 버리고 헌혈을 하기로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헌혈을 한다는 약속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런 신념을 갖게 되려고 그랬던지 나는 평생 헌혈 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다.

 

드디어 문진 차례가 왔다. 이것저것 컴퓨터로 미리 자가 진단서를 냈는데 간호사는 건강 상태도 묻고, 약을 먹는 건 없는지, 위험지역에 다녀온 적은 없는지, 또 밥은 잘 먹고 왔는지, 술은 먹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마지막으로 혈압을 재고 헌혈을 순서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헌혈하는 것을 살펴보니 오랫동안 피를 뽑는 것 같아서 스마트 폰과 채혈하면서 읽을 책도 챙겼다.

 

 

 

 

 

드디어 호출을 한다. 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우니 간호사가 와서 주사기를 꼽는다. 병원에서 수도 없어 보았던 무시무시한 바늘이다. 주사 바늘을 꼽는데 조금 따끔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사기를 꼽자마자 피가 콸콸 흘러내렸다. 스마트폰을 들여대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유의사항을 적은 코팅한 양식을 주며 읽어보라 한다. 사진 찍기에 바빠 조금 지나서야 휘리릭 읽어보았다. 평생 처음 하는 헌혈이라며 디카를 열심히 찍는 걸 보더니 아가씨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폼잡고 사진을 한장 찍었다. 하도 피가 잘 나오는 것 같아 왜 이렇게 채혈이 잘 되냐고 물으매, 혈관이 좋아서 그렇다고 한다.^^ 5분이 지났을까 채혈이 끝났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까 나보다 먼저 헌혈을 하고 있던 저분들은 아직도 채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채혈을 해야하는데도 헌혈을 하는 분들이라니 참 대단한 분들이었다. 7분 더 휴식을 취하고 침대에서 내려와야 한단다. 선물이 있다며 고르라고 했다. 혹시 세아이(헌혈축제)에서 오신 분들은 선물을 어떻게 처리하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했다. 아침에 나올 때 손톱을 깎고 나올까 싶었는데 바빠서 깎지 못했기에 손톱깎이를 골랐다. 그러고 있는 사이, 내 인생 최초의 헌혈을 증거하는 헌혈증이 나왔다. 헌혈을 마치고 나갔는데도 그분들은 아직도 채혈을 하고 있었다.

 

 
 

 

 

 

 

 

 

 

 

 

 

 

 

 

 

헌혈축제 관계자들과 만났다. 헌혈증은 바로 기부를 했다. 선물도 혹시 내놓겠냐고 물으셔서 손톱이 길어 손톱깎이를 탔는데 이건 그냥 쓰고 싶다고 했다. 세아이에서 인터뷰까지 했다.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할 내가 아니라 인터뷰에 응했다. 이후 헌혈축제 (혹은 세아이) 멤버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아 앞으로 미력한 힘이나마 도와야겠다고 또 속으로 약속을 했다.

 

 

 

 

 

 

 

 

 

 

 

 

 

 

 

 

 

헌혈하는 사람들이 많은 데에 다시 한번 놀랬다. 낯 모르는 그들이 고맙게도 느껴졌다. 2시경에 받은 내 순번표가 49번이었는데 5시경에 나올 때 보니 96번이었다. 3시간 남짓한 사이에 47명이나 더 헌혈을 한 것이다. 참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헌혈의 집을 마지막으로 나서기 전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했다. 매우 젊은 아가씨가 침대에 누워 헌혈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저 젊은 아가씨는 어떤 마음으로 헌혈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젊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특히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기에도 바쁜 텐데 헌혈의 집을 찾아 조용히 남들에게 자신의 생명의 피를 나눠주는 일을 하는 저 아가씨는 대체 어떤 연유로 헌혈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는 아닐까 싶었다. 

 

 

누구에게나 약속은 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스스로 한 약속일수록 더욱 지키기가 어려울 텐데 사랑하는 아내를 살기기 위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졌던 때에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싶다.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도 반대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꾸준히 헌혈을 할 생각이지만 굳은 약속은 하지 못하겠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요즘 같이 못 먹고 지낸다면 영양실조에 걸릴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섭취하는 영양이 형편없는데도 계속 피를 뽑다간 건강을 잃을 지도 모르기에 장담할 수는 없다. 빨리 혼자 밥해먹고 반찬해먹는 일에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게으른 마음을 떨쳐내고 말이다.

 

내 생애 첫 헌혈 날에 다른 큰 일도 경험했지만 일단 헌혈에 관해서 여기까지만 흔적을 남긴다. 나중에 내 마음이 약해져 헌혈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 글로 삼아 흔들리는 마음을 경계할까 한다. 사소한 약속일망정 꼭 지키고자 노력하자고 다짐하는 바이다.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일 게다.

 

아내가 있을 때 잘 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고통은 겪지 않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후회막급이다. 사람은 어리석게도 누구나 자기 가진 것에 만족하거나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는 못하는 것 같다. 대게 소중한 것을 얻으려고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은 잘 하지 못한다. 부재의 고통을 모르기 때문이리라.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질 수도 있다면 누구나 곁에 있을 때 잘 할 텐데 말이다. 조금 더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혹시나 아픈 마음이 없는지 살펴보고 바라는 것은 없는지 물어볼 일이다. 자신만의 즐거운 시간을 더 가지려 노력하기보단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을 더 가지려 노력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언제 어떻게 그러한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있을 때 잘 하자, 고 자신의 마음 다그쳐 볼 일이다.

 

헤이~, 거기 다 잘 돼 가고 있나요? 

 

 

 

 

2014. 6. 2.

02:46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감사한

고서 김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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