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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라면 정조처럼-김준혁] 새로울 건 없지만 서도... | m o r i 2020-09-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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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리더라면 정조처럼

김준혁 저
더봄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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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딱히 새로울 건 없다. 책 제목대로 특성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칭찬 일변도에서 벗어났으면 어땠을까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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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군주는 단연 세종이다.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다음은 아무래도 정조가 아닌가 한다. 사도세자의 아들로 왕세손임에도 살해위협을 넘나들었다. 결국은 살아남아 개혁을 추진하고 백성을 사랑했던 왕으로 존경받는 모습은 뭇 사람의 감동을 유발한다. 1776310, 22대 국왕으로 즉위하며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선언하는 모습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희열을 준다. 그는 개인적인 복수를 버렸다. 신하들의 공포심과는 달리 정조는 국가의 개혁과 백성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정조의 죽음을 아쉬워한다. 그가 추진한 대로 국가 개혁을 이루었다면 후일의 아픔이 조금은 덜했으리라는 기대감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극복해 내지는 못했으나, 긍정적인 평가는 사극이나 영화의 주요 소재나 시대적 배경으로 자주 등장케 한다. 그만큼 정조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정조 전문가 김준혁 교수는 <리더라면 정조처럼>이라는 책을 통해 정조의 리더십을 소개한다. 앞서 말한 대로 정조는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소개할만한 새로운 내용이 흔치 않다. 역사 매니아거나 정조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인상깊을 얘기는 없다. 다만, 리더의 자질이라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정조의 모습들을 재분류해서 전달한다. 전체 749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편 당 짧은 내용으로 구분되어 있어 하루 한 두 편씩 읽는 다면 한 달 안에 정조에 대해서 개략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정조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만큼 이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관건이기에 이러한 시도는 필요하다. 다만, 역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실상은 실용서라고 보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49편을 만들다보니 세부내용에서 다소 반복, 중첩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한 사람의 일생이나 모습, 업적이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보니 불가피한 부분이다. 주역의 이야기를 활용해 49개의 꼭지를 만들어냈지만 그 꼭지를 채워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아닐까. 정조에 대해서 통합적으로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적당하지 않다. 게다가 칭찬만 듣다보면 불쾌할지도 모르겠다. 정조 역시 위대한 인물임에는 분명하지만, 완벽한 인물은 아니다. 그 역시 문체반정과 같은 역행을 거듭하기도 하는 등 조선의 전통적인 사상을 벗어나거나 극복하지는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런 부분은 아마도 책의 주제에 벗어나겠지만, 균형을 잡기위해서라면 반면교사로 라도 얘기가 나옴직도 할 부분이다.

리더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정답은 없다. 시대마다 요구하는 유형도 다를 것이며, 사람마다 취할 수 있는 태도 역시 다르다. 성공적인 리더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성공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견이 존재한다. 게다가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시대에서 완벽한 리더는 존재할 수 없다. 정조와 같이 근면성실하고,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다 해서 꼭 좋은 리더가 아님은 우리가 이미 수없이 경험했다. 중요한 건 방향성이 아닐까. 그 방향성의 진정한 모습은 수원화성을 축성하면서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없었(p.497)”다는 사실에 기대어 본다면,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되새겨 봄직하다.

 

거대한 형태의 문화재, 온갖 치장이 들어간 문화재만이 우리의 자랑이 아니다. 오랜 세월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문화재야말로 진정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p.448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고 하지 말라.(p.232)”고 했던 정조의 말을 되뇌며 하루를 반추해보자.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리더로 살아가기에 어떤 방향성이 필요한지를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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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은 바로 정양할 때의 공부이고 성찰은 바로 행동할 때의 공부이다. 그러나 본체가 확립된 뒤에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학자의 공부는 당연히 함양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함양만 중요한 줄 알고 성찰에 힘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러기에 덕성을 존중하고 학문을 하는 것 중 어느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된다.”p.226

사람을 쓰는데 도가 있으니 오직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을 취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눈앞에 좋지 않은 사람이 없고 천하에 버릴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p.229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 하려고 하지 말라.” p.232

정조는 자신의 행차를 단순한 행차가 아닌 행행幸行으로 규정했다. 국왕의 행차가 백성들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296

정치는 소통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정조의 비밀어찰의 핵심인 것이다. p.396

거대한 형태의 문화재, 온갖 치장이 들어간 문화재만이 우리의 자랑이 아니다. 오랜 세월 만고풍상을 겪으면서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문화재야말로 진정 우리의 귀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p.448

정조시대 화성 축성에서는 단 한 명도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없었다. p.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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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로렌츠 바그너] 역설 | Memento 2020-09-1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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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로렌츠 바그너 저/김태옥 역
김영사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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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라는 아들이 있어 헨리 마크람이 성장하고 발전했듯, 변화에 민감한 반응이 과도하다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자폐가 그렇고, 우리의 삶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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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책임감이 약해. 우리 시대보다 나약해 졌어.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늘상 하는 말이다. 한때는 반항적으로만 생각했지만, 어쩌면 젊은 세대는 진짜 약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뒷 세대의 잘못이 아니다. 단적으로 앞선 세대와 뒷 세대의 성장 환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앞선 세대는 농촌을 기반으로 한 문화였고, 현 세대들은 도시 문화에 익숙하다. 농촌과 달리 도시는 변화가 빠르다. 결국 생존을 위해서 요구하는 가치가 다른다. 농사는 끈기와 긴 안목을 요한다. 하지만 현재는 조금 다르다. 주변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모든 걸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위해 민감도를 끌어올려야 하지만, 결국은 지치게 된다. 매 순간 강하게 버텨내는 게 불가능하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자극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버티겠는가.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 입니다>는 세계적인 뇌 과학자인 헨리 마크람과 그의 아들 카이의 이야기다. 누구보다 뇌를 잘 알지만 자신의 자식은 뇌에 문제가 생겨난 아이러니, 그리고 이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그려냈다. 로렌츠 바그너는 독일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로 뛰어난 문체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헨리 마크람이라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카이라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은 인상깊다. 그는 카이로 인해, 카이를 위해 자폐증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규명해 냈다. 강렬한 세계 증후군이라고 요약하는데, 자폐증은 뇌의 기능이 떨어진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활발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거다. 결국 우리는 잘못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자폐인에게 공감능력이 결여됐다고 말해왔다. 아니다. 그건 우리에게 결여된 능력이었다. 그들에게 공감하는 능력 말이다.(p.221)”

마크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존경스럽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절박한 부모의 심정이기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공감능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253쪽의 헨리와 카밀라의 대화는 어쩌면 과학의 본질적인 면을 부정한다고 느껴진다. 그간의 발견들이 문제가 있었고, 카이에게 독이 되었던 점은 확실하다. 이러한 과학의 본연적 속성 때문에 본인이 문제를 좀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향후 본인의 발견 역시 똑같은 이유로 부정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게 과학의 힘이라 들었기에 매우 아쉽다. 지금의 세대가 뒷 세대에게 약해졌다고 타박할 때가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연구도 진리가 아닌 이상 또 다른 마크람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그가 좋은 사람이고 좋은 부모일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일하기에 좋은 사람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질환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이유는, 저자의 말대로 진단기법이 발달해서 일 수 있다. 아니면 우리 머릿속에 그 원인이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가 추진하는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는 분명히 신기원을 열 것이다. 하지만 쉬운 길도 있다. 앞선 세대가 뒷 세대보다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덜 강렬한 세계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정된 세계에서 변화를 버텨낼 시간을 부여 받았고, 뒷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다. 카이와 달리 어린 시절 변화가 제한적이었던 시골에 살았던 게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변화가 느리고 지루했던 그곳에서의 삶이 오히려 내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차분히 변화를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는 그런. 물론 아직도 그 여파로 도전이나 변화에 약한지 모르겠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다.

마크람이 카이가 있었기에 오히려 성장하고 발전했듯, 우리의 삶도 때로는 느리고 변화가 적어야만 할 때도 있다. 변화와 진화, 돌연변이는 생명체라면 당연히 가지는 현상이다. 다만, 이것들이 늘 종의 차원에서 생존을 담보해주더라도, 해당 개체의 생존을 담보하지 않는다. 때로는 과거의 방법으로 돌아가는게 나라는 개체의 생존을 강하게 해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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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뉴런의 수보다 뉴런들의 소통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어린아이의 뇌가 자랄 때는 신경세포의 수가 아니라 세포 간의 연결 개수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 연결에 장애가 생기면 아이는 다르게 성장한다. p.43

연륜은 삶을 좀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p.44

연결의 오류는 발달을 저해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발달장애는 자폐증이다. p.46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될 때 어른은 많은 것을 배운다. 어린아이들이 피부색을 신경 쓰지 않는다든가, 친구가 자기와는 뭔가 다를 때에도 그에 대해 별생각을 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그냥 그런것이다. p.91

위기와 현명함은 서로 떼놓을 수 없다. 조작의 대가. 뭔가 낯설지 않았다. p.100

감정이 있는 존재의 고통을 대가로 쓰느니 차라리(p.122) 삶을 버리겠다.” - 마하트마 간디p.123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곳에서 이방인이다. p.173

우리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흡수하도록 설계됐다.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불쾌한 것조차 흡수했다. ... 뭔가를 탐색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p.214) ... 자폐증이 있는 아이는 일반적인 빛을 동굴 속에서 사막의 햇볕 아래로 나갔을 때와 같이 느낀다. 우리에게는 일시적으로 몰려왔다 지나가는 세계를 아이는 민감하게 마주한다. p.215

신이 세상을 창조했더라도 우리에게 그것을 이해시키는 일은 신의 주된 관심이 아니었을 것.” -아인슈타인 p.218

우리는 자폐인에게 공감능력이 결여됐다고 말해왔다. 아니다. 그건 우리에게 결여된 능력이었다. 그들에게 공감하는 능력 말이다.” p.221

강렬한 세계 증후군 (p.222) 자폐의 스펙트럼은 장애부터 천재성까지 아우른다. 천재성은 예외이며 자폐인은 대부분 기능이 제한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자폐증 약물은 뇌를 자극한다. 우리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자폐인의 뇌는 억제되어 있지 않으며 지나치게 성능이 좋다. 뇌는 과하게 네트워크화되어 있고 과도한 정보를 저장한다. 자폐인은 세상을 적대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으로 강렬하게 경험한다. p.223

자폐인은 세상을 조각조각으로 의식한다. 자극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조각을 과도한 주의력과 무서울 정도의 기억력을 갖고 뒤쫓는다. 이는 특정 영역에서만 천재성을 보이는 결과로 이어지며, 동시에 움츠러듦과 반복행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p.225

자폐인이 사람과 교류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감정이나 신호를 해석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감정표현 불능증도 아니고 공감능력이 부족하지도 않다. 단지 세상을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서 눈을 맞추지 않고 움츠러드는 것이다. p.226

자폐인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만 편도체의 활동이 과도하기 때문에 눈길을 주지 못하거나 회로 어딘가에서 스위치가 내려가는 것이다. 뇌는 자극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돼야 한다. p.230

객관적인 세상은 없다. 기대는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p.231

부모나 가족은 언제나 저 방법을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해요.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그게 자폐증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거예요. 안아주는 것. 공감해주는 것. 그들에게는 그런 안정감, 편안함, 따듯함이 간절해요. 그걸 느껴야 하는 거죠. 저는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이렇게 조언해요.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아이들 곁에 있어주라고. 그리고 그 순간(p.241) 사랑을 주고 붙잡아주라고. 그들은 그런 행동이 기계적이고 인위적인지 아니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지를 정확히 알아요. p.242

자폐인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을 조각난 상태로 받아들인다. 이는 아이들의 삶을 극적으로 만든다. 자폐증이 있는 아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귀를 막는 것은 배로 슬픈 일이다. 고통과 더불어 삶에 필수적인 자극까지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달이 어려워진다. 지금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미래를 망쳐버린다. p.245

뇌에는 망각이 쓰레기 수거와 같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은 과거에 사로잡힌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정신은 질식하고 만다. p.246

보살핌을 받지 못하거나 학대받은 아이들이 자폐인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p.246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사하려면 그들의 현재를 느리게 만들어줘야 한다. p.248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곳에는 항상 기술혁명이 함께 일어난다. 인류가 경험한 가장 커다란 변혁은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발명하여 사람들에게 지식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그들은 읽는 법을 배우고 읽기와 쓰기를 통해 사고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사고를 통해 연구를 수행했다. 중세 시대에는 과학이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했다. 이미지는 한 번에 많은 것을, 그리고 전체를 묘사한(p.265). 반면에 글은 한 번에 하나씩 설명한다. 따라서 과학은 선형적으로, 일다 세부를 본 뒤 전체를 보게 됐다. p.266

컴퓨터는 구텐베르크 시대 이전처럼 이미지로, 즉 총체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p.272

왜 우리 시대에 이렇게 많은 자폐증, 우울증이 있고 그 밖에 다른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지 궁금해 한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진단기술의 발전에 있다. 그리고 도 다른 원인은, 예전이라면 정서불안이에요.”라고 말했을 증상도 과도하게 살펴보고서 ADHD 판정을 내리는 데 있다. 그러나 환자 수가 증가하는 정도를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어쩌면 이젠 휴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아이들이 너무 적기 때문은 아닐까. p.283

우리의 세상을 지금처럼 만든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것들이었다. p.308

자폐인은 강박에 거의 무력하다. 스스로의 행동을 바꾸거나 조절하기란 아주 어렵다. 피나는 노력으로 배워야만 한다. 그러기 위한 전제는 강박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처럼 그들의 강점이자 약점을 돌보는 것이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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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주강현]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에 놓쳐버린 자신 | Memento 2020-09-1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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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주강현 저
서해문집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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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이라는 이름하에 놓쳐버린 우리 자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책이다. 우리가 소흘히 여겼던 것들에서 우리의 뿌리, 우리 문화의 힘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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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학교 정문에는 Y자 모양의 교차로가 있어서 Y로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중간에 I자 모양의 탑이 있었다. 인근 잔디밭에서 술자리가 이어지다보면 슬슬 말거리라 떨어질 때쯤, Y로와 탑의 진실(?)에 대해 알려주곤 한다. 남녀의 성기와 관련된 음양의 이야기. 특별나거나 유별날 얘기는 아니었다. 어느 동네, 어느 지역에나 한 가지 이상씩 있을 법한 그런 얘기였다. 학교는 발전이 필요했다. 건물이 바뀌었고, 와중에 Y로는 사라졌다. 그 자리엔 다른 광장이, 누구도(학생 만은 절대 못들어간다.) 들어갈 수 없는 잔디밭이 생겼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런 식으로 발전(?) 해 왔다. 미신타파, 개화, 근대화. 다양한 이름의 발전. 당장 먹고 살기 바빴기에, 명분은 충분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발전했고, 그만큼 급격하게 과거로부터 단절을 추구했다. 그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너무도 정신없이 달려왔다. 살만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아무리 앞으로 빨리 달려나가도 채워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깨닫고 뒤돌아보는 순간, 때는 이미 지났다.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음을 깨닫는다. 민속학자 주강현의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이런 깨달음의 반성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알려준다.

도깨비 없이 태어난 세대를 위하여라는 책의 부제는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급하게 채워 넣은 발전은 우리의 문화를 급속도로 대체했다. 외국의 문화가 우리의 것이라 생각하고 산다. 저자가 지적했듯 우리가 아는 도깨비의 모습은 사실 일본의 오니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엄숙주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본다. 국뽕도 잘못되었지만,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네 성문화가, 장승과 마을()나무가 계도되어야 하고, 베어넘겨야 할 미신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외국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의 옛 것은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문화의 정본이자 교과서’”라는 출판사의 평가는 지당하다. 지나친 국뽕도, 과도한 자기비하도 아닌 적당한 선에서의 우리 문화를 평가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쳐 버린 많은 것들을, 사소하게 여겨져 무시하던 것들을 돌아본다. 문화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세계화를 지나 세방화를 넘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힘은 우리 내부에서 나오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문화의 뿌리가 어디인지 책과 함께 살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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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풍속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매우 엄숙하기만 했을 것 같지만, 정자 민중의 생활 속에서 유전하던 성풍속은 참으로 인간적이기만 했다. 비록 유교의 덕목 탓에 남근신앙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더라도 그들 남근조차도 마을공동체의 공유물로 만드는 민중의 슬기를 보여주었다. p.124

민중의 삶 속에서 성과 반란의 욕구는 분명 역사책의 상식을 앞서 가고 있었다. ... 전통시대의 성관념은 성의 과감한 노출조차도 공동체의 산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마을 입구에 버젓이 남근이 서 있어도 음탕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백년 동안 마을 사람이 오고가는 길목에 남근을 세워두고, 그것도 1년에 한 번씩 줄다리기가 끝나면 옷을 입힌다고 짚을 감아주었다. 오히려 공개된 사회적 성 상징물을 묵인하는 건강한 분위기다. / 오늘날은 어떤가. 만약 선남선녀가 오고가는 신촌 네거리에 남근을 세워둔다면 외설 시비로 논란이 거듭될 것이다. p.125

비슷한 것만 나오면 중국의 영향 운운하는 주장은 하나의 모화주의에 다름이 아니다. p.138

도깨비는 실제로 괴상한 짓을 많이 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인간에게 해코지만 하는 미물은 아니다. 허깨비가 몹쓸 환상이라면 도깨비는 쓸 만한 환상이다. 쓸 만한 환상은 꿈을 불러일으키고, 그 꿈은 문화를 다채롭게 한다. 꿈을 불러일으키는 도깨비가 곳곳에서 출몰하던 (p.154) 조선시대에 구전문학도 르네상스를 맞았음을 상기해보라. p.155

일본의 오니가 우리 도깨비로 둔갑하여 동화채과 텔레비전을 장식한다. 아이들은 오니를 우리 도깨비로 착각한다. p.165

문화란 어떤 영향 관계에 놓였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경우는 없다. 늘 상대적 독자성을 지니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p.180

오늘날 생태 환경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면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리사이클링의 중요성이 부쩍 주목받고 있다. 쓰레기를 재생하는 문제가 늘 제기되지만, 리사이클링은 되돌려주기 위해 또 다른 열량을 요구한다는 문(p.200)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추어보면, 똥돼지문화는 어쩌면 가장 완벽한 리사이클링이란 생각이 든다. ...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됐고, 똥은 그야말로 물에 씻겨 강물로 흘러들어갔다. (p.201) ... 폐기물이 아니라 영원한 재생품이던 똥을 버림으로써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인가. ... 깨끗한 수세식 처리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도리어 새로운 환경 훼손의 시작임을 안다면, 우리의 서구식 청결관은 쳥결도덕주의에 불과하다. p.202

돼지 사육과 사료 문제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돼지고기를 금기 식품으로까지 만들게 된 원인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이슬람교도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그 원인을 자연 환경이 변하면서 사료가 불충분해진 데서 찾았다. p.206

역사는 늘 그랬다. ’바련이라는 이름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했고,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파괴했다. p.319

<황금가지>는 우리 자신의 당나무를 깊이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왜 우리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거나 침묵하는 것일까? 내가 그의 황금가지를 끌고 온 이유는 바로 우리의 황금가지가 자라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에서다. p.384

도대체 미신이란 무엇인가? ’문명인의 관점에서 야만인을 덜 개화된 인종으로 비하해서 보는 것과 같이 미신이란 다분히 제국주의적,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믿음으로 인정되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당당한 정신이 된다. 이에 반해 바깥 사회의 국외자에게는 미신이 된다. 더욱이 마을나무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거론되는 것인데, 이를 미신나무로만 몰아댄 우리의 편협한 이해방식이 안타깝다. p.402

욕설은 결코 단순한 욕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한다. 따라서 욕설은 인간 심층심리와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민속문화의 하나다. p.521

신화를 단순한 허구나 전설 같은 이야기로 여기는 풍조는 근대 이래의 지나친 계몽주의적 지식관에서 비롯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신화학자 쿠르트 휘브너가 갈파한 신화의 명예 회복을 꿈꾸며, 우리 신화 속에서 여신과 남신의 자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신화의 원형이야 말로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삶의 비밀을 보여주는 청동거울이기에. p.526

하늘과 땅의 통치자, 올림포스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가부장제 신화를 우리 여시 답습하는 중이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여신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이 땅은 아직까지 간 큰 남성이 살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다. 물론 조금식 균열을 보이고 있는 중이기는 하다. 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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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이건범 외] 유예된 논쟁, 예견된 분쟁 | Memento 2020-09-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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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이건범,김하수,백운희,권수현,이정복,강성곤,김형배,박창식 공저
한겨레출판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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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시대에 호칭의 문제는 관심 밖이 었다.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씨앗을 남겨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다. 이 책은 그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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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관관계에서 호칭은 가변적이다. 누구냐에 따라, 어떤 사람과 있느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호칭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남성이자, 한 가정의 아들이자, 한 직장의 일원이고, 누군가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다. 여기에 누군가의 친구이자, 선배이기도, 후배이기도 하다. 여기에 친밀한 정도에 상황적 맥락까지 추가 된다면 같은 사람도 무궁무진한 호칭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호칭의 다양성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나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만큼, 개인의 존재가 풍부하게 비쳐질 수 있는 면이 있기도 하다.

문제는 호칭의 강압성이다. 호칭은 내가 호출 당하는일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지 않는다. 사회적 위치, 신분적 차이, 문화적 맥락 등 여러 조건들에 따라 불합리하게 불려진다. 특히,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가부장적 제도의 정착은 현재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는 이러한 논쟁을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한겨레에서 책을 쓴 이유는 서두에 나오듯, 본인들의 기사에서 호칭 문제로 호되고 논란을 당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이게 왜 문제가 되었는지 이해가 잘안되지만, 이 책이 그 논란의 해명에 그치지지 않기를 바랬다. 제목과 목차를 보고 책을 집어든 이유는 우리 전체 사회에 호칭의 문제에 대해서 궁금했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부분들은 많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p.233p.240에서 <한겨레>에서 문제가 생겼던 사안이 책을 쓰게 된 계기라고 했고, 그 계기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분석을 빙자한 소극적 해명 혹은 시대의 흐름이 본인들의 표현에 따르지 못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일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해당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기에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저자가 제시한 보다는 가 적절하다고 본다. 뉴스는 객관성을 중시하는 만큼 이라는 표현보다는 를 통해서 누구든 동등하게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호칭의 사용을 공평하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지, 개인적으로 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라고 느낀다.

호칭은 인정의 문제라는데 깊은 공감을 한다. 결국은 상대방을 어떻게, 얼마만큼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냐는 차이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호칭은 오랜 역사적 맥락을 지니겠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면 바꿔야 겠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방법을 찾아가고 고민해야 할텐데, 쉬운길은 아닐테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호칭 문제들에 대해서 동의하는 부분도,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도 많다. 각 기업에서 실시한 호칭의 변화도, 시민단체에서 실시했던 캠페인의 한계도 여기서 비롯되었을 테다. 시대가, 시대 의식이 바뀐만큼, 호칭도 따라가야 했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다. 결국 미뤄진 토론은 싸움으로 번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다면 좋은 현상이겠지만...

언어에 민감하신 분들이셔서 그런지 고유어를 많이 써서 좋다. 언어나 호칭등에 관심이 많으신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만큼 영어식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다양한 저자들이 참여한 만큼 개개인의 특성의 차이까지 강제할 수는 없었을 테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부분도 있다. 전문적인 용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반드시 그런 단어를 써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누군가의 글을 첨삭하거나 할 처지는 아니지만, 호칭과 국어의 얘기를 하면서 굳이 외국의 전문적인 용어만을 차용해서 쓰는 모습은 좋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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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은 인정의 문제고, 인정의 출발점이다.(p.26) ... 누군가 나를 부르는 호칭에는 이 정체성의 일부분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호칭으로 불리길 원하고, 그런 기대와 현실이 어긋날 때 자신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 또는 도전으로 느껴진다. p.27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호칭은 단순히 정체성 인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서열 인정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그래서 호칭을 둘러싼 갈등은 그 양상이 치열하고 졸렬하다. p.27

호칭은 개인이 속한 크고 작은 사회에서 그의 정체성과 서열을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바로 맞닿아 있다. p.28

호칭 문제는 단지 인간관계와 사회구성이 복잡해진 데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니다. 민주사회라는 선언과 갑질 사회라는 현실의 충돌이 더욱 결정(p.31)적이다. p.32

호칭은 인정의 문제이므로, 호칭을 개혁함으로써 새로운 인정의 문화, 서열(p.34) 인정이 아닌 인격 인정의 문화를 시작할 수 있다. p.35

우리 사회의 호칭 민주화에서 관건은 나이지위남녀의 차이에 따른 호칭의 서열을 어떻게 녹여버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세가지는 어쩔 수 없는 차이를 인격의 차이로 확대시켜 차별을 정당화하는 전통적인 서열 기준이다. p.35

나이는 왜 깡패 노릇을 하게 되었을까?(p.40) ... 나이는 다른 무엇으로도 왜곡되지 않는 공평한 서열 기준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 사회적 조건이 결부되지 않은 자연상태에서 가장 공평한 서열 기준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호칭과 높임법은 공평한 서열 기준에 걸맞는 권리와 의무일 뿐이다. p.41

우리 사회의 위계질서는 한 개인의 삶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처음 세워지고, 그것은 호칭과 높임말로 뚜렷하게 틀지워져 굳는다. p.44

서열 기준은 곧 인정 기준이다. p.45

이 자연적 평등에 기초한 서열은 어떤 방법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인지(p.45)라 너무도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 오직 나이 든 사람들만의 천국이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사회적 불평등에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자연적 평등을 빌미로 디미는 유일한 잣대이지만, 어찌 보면 못난 자들이 인정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디미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p.46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로 정치적 권위주의가 무너진 뒤에도 큰 변화가 없었으나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혼란에 빠졌다. 나이와 직위가 발을 맞추는 연공서열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p.51

일터에서 호칭과 높임법은 이 서열 질서를 확인하는 신분증 노릇을 한다. p.55

인정 욕구는 인간관계의 친밀성이라는 속성과 대화관계의 사회적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p.74

말 문화는 계속 바뀌므로 훗날을 대비해 이름 없는 일자리, 새로운 일자리에 번듯한 이름을 붙이는 일을 쓸데없다고 내팽개쳐선 안 된다. p.90

조직 분위기가 억압적이지 않다면 반드시 수평적이어야만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p.105

우리는 시간과 대화의 힘을 믿어야 한다. 새 신을 처음 신었을 때는 발이 편할 수 없지만 신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해지는 것처럼 새 말과 새로운 호칭도 그렇다. p.124

말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 낸다. 현실이 말의 체계를 통해 파악되는 한, 말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할 뿐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체계이자 구조다. 말이 말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임지현 교수 p.134

우리는 이 호칭을 가짐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고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언어적 능력(권능)’을 지니게 되었다. 물론 그 요구를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상대방의 권력과 더 큰 관계가 있다. p.153

호칭은 모든 대화의 첫 번째 관문을 여는 열쇠다. p.153

그러나 대화는 아무렇게나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예의가 있으며, 공동체의 인습이 있다. 다시 말해서 말하는 사람이 임의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지만 그 구조 속에서 타당하게 인정되는 언어 사용법을 중심으로 대화가 전개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화의 규칙이다. p.154

한국 사회는 더욱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언어적으로는 끊임없이 차별화’, ‘차등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큰 문제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지향점과 언어 사용의 실태 사이에 서로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말로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은 사회구조를 유지시켜나가는 접착제로서의 언어는 아직도 1차산업혁명 이전의 사회를 모델로 삼고 있는 셈이다. p.161

현재 한국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호칭의 다양성은 사실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측과 바닥으로 내몰리지 않으려는 또 다른 세력 간의 숨가쁜 수싸움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p.171

사회 혁신 에너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일상에서 나날이 사용하는 언어를 새로운 가치에 걸맞게 바꾼다면 익숙지 않은 새로운 것을 사용할 때마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이 솟구치지 않겠는가. p.172

어린이는 어른의 물리적 과거가 아니다. 대개 좀 작을 뿐, 본연의 오롯한 인격체다.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p.277

필자의 주장은 앞에서 압축, 제시 됐다. / “상대에게 꼭 들어맞는 호칭을 힘들여 찾기 보다 맥락에 맞는 상황어를 발굴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 “대인고나계의 상대성을 일일이 따져 고정적 호칭을 찾기 보다는 새로운 호칭을 위한 기제를 개발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 p.277

미래는 초연결사회의 특징을 띌 것이라 한다. ‘연결을 위해서는 협력연대가 밑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도 익숙한 것과의 물리적 결합이 아닌 이종간의 화학적 결정이 절실하다. 바로(p.278) 잡종과 혼성의 힘, 하이브리드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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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장훈] 삶과 글에서 중요한 것은 끈기, 끊기 | m o r i 2020-09-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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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

장훈 저
젤리판다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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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삶을 보고, 끈기와 끊기를 되새겨 본다. 공무원도 근원적으로는 월급쟁이, 직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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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특성상 글쓰기를 지속해야 한다. 문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빈 칸을 채우다보면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회의감이 든다. 잘하고자 하는 욕심과 잘 할 수 없는 능력의 괴리 속에 끝없이 가라앉는다. 완벽함은 꿈이다. 그저 적당한 분량, 적당한 내용으로 하루하루를 잘 버티기도 쉽지 않다. 글은 생계의 수단에 불과한 걸까. 정훈의 <어쩌다 공무원 어쩌다 글쓰기>를 통해 말한다. 글은 삶이라고.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고 말한다. 어쩌다가 정무직(별정직) 공무원으로 삶을 시작했고, 그렇게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되었다. 연설문, 메시지 작성만큼 말과 단어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사람도 드물 테다. 무엇보다 자신의 말이 아닌 남, 다른 사람의 말을 만드는 일만큼 머리털 빠질 일도 없겠지 싶다. 그런 그가 출퇴근 시간 짬을 내어 글을 썼다. 그리고 책 한권으로 묶어 냈다.

삶이 그렇듯 글쓰기도 끈기끊기의 절묘한 줄타기다.(p.62)” 변화의 시대에 꾸준함이 더 필요하다. 실력과 운도 중요하지만 성공할 때 까지 버텨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꾸준하게, 틈나는 대로 쓰되, 적당하게 끊어 낼 수 있다면 그 나름대로 성공이 아닐까. 게다가 글쓰기는 성찰이다. 커서의 깜빡임에 따라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단어를 다르게 보고, 문장을 나눠보고, 입으로 읊조려 본다. 자연스레 관찰과 통찰을 이끌어 낸다. 그래야만 글을 쓸 수 있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갈 지라도 평소에 생각한 바가 없다면, 글이 나올 수 없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자신이 드러난다.

장훈의 글을 보니 그 사람이 누군지 자연스레 느껴진다. 자신이 배운 바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느끼게 한다. “기록은 곧 존재의 증거(p.107)”이기에, 이 책은 그의 존재다. 자신을 돌아보고, 일터를 고민하는 모습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어쨌든 공무원이 되었고, 어쨌든 공무원도 직장인이다. 일반 직장인과 다른 의무감이 있어야겠지만, 결국은 월급쟁이다. 관계에서 상처받고 후회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함을 깨닫기도 하고, 숫자 놀음에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우리의 고민이 그렇듯 정답은 없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특별할 것 없는 직장인의 이야기로 보아도 좋다. 별정직 공무원이니 만큼 일반적인 공무원과는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공무원의 삶과 생각법이 어떤지 궁금하다면 읽어 봄직도 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장훈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엿볼 수 있다. 더불어 나 역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다. 내 작은 꿈을 돌아보며 꾸준히 버텨내는 삶, 기다리는 삶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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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순발력이고 글은 지구력이다. 말은 재치를 더해 주고, 글은 정확성을 더해 준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만의 유희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 메시지를 기획하고 완성하는 일이다. p.27

글쓰기도 끈기끊기의 절묘한 줄타기다. p.62

살아가다 보니 관찰과 통찰을 이끄는 힘이 끊임없는 성찰임을 깨닫게 된다. p.77

관찰의 핵심은 다르게 보기이다. ‘낯설게 보기라고도 할 수 있다. 규칙적이고 일상적이지만 의미 있게 느끼고 보는 힘이다. (p.79) ... 통찰의 핵심은 묶어서 보기이다. 잘 묶으려면 잘 나누어야 한다. 나눔도, 묶음도 바른 가치관과 틀이 있어야 한다. (p.80) ... 성찰의 핵심은 솔직히 보기이다. 나의 내면을 보는 힘, 나를 나대로 볼 수 있는 힘이다. 나를 제대로 봐야 세상도 제대로 볼 수 있다. 세상을 보는 좋은 틀은 성찰에서 시작된다. p.81

기억이 존재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기록은 곧 존재의 증거다. p.107

후회라는 기회비용은 늘 발생한다. 그 기회비용을 최소화 하는 것이 곧 생각의 시간이고, 글쓰기 연습이다. p.110

배려는 배려로, 호의는 호의로 끝나야 하는데 그에 상응하는 상대방의 태도를 기대하게 된다. 그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을 때 더 큰 실망으로 작용한다. p.186

내가 겪었던 과거를 보상받으려 하지 말자. 소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p.187

다수에게도, 소수에게도 민주주의의 원리는 함께 적용되어야 한다. p.198

정치라는 것은 사람을 모으는 게임이다. 인재를 영입하고, 지지자를 넓히고, 민심을 불러오는 일이다. 누구 한 사람의 천재적인 기획력과 지도력으로 이끌어지는 세상이 아니다. p.231

모든 시민이 미디어다. 시민이 매체이자, 콘텐츠다. 모든 메시지는 시민으로부터 나온다. p.245

어른이 되면서 마음에서 출발한 감정이 몸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닫히게 된다. p.335

숫자는 지배자의 언어이다. (p.337) 관리를 위한 효율의 표식이다. ... 개개인의 정체성과 숫자는 그리 의미 있는 관계가 아니다. 나는 나로 불려야 하고, 세상의 둘도 아닌 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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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