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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라는 시대 1-도널드 킨] 가장 성공의 시대를 이끌었지만, 가장 베일에 쌓인 인물 | Memento 2020-03-0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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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메이지라는 시대 1

도널드 킨 저/김유동 역
서커스출판상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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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성공의 시대를 이끌었음에도, 가장 베일에 쌓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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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과 일본 근대화의 성공은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가장 큰 변곡점이다. 일본의 성공은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불행이 되었다. 이웃의 성공이 배 아파서가 아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 기인한다. 한반도는 대륙 세력이 해양으로, 해양 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다.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침이 이를 증명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 민족이 주도권을 잃었던 때가 있으니, 몽골()나라의 간섭기와 일제의 식민통치기가 그 때다. 특히 세계사적인 일본의 성공은 우리 역사에 깊은 상흔을 남겼고, 남북분단, 친일파 문제 등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청산하기 힘든 문제들을 남겼다.

반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광의 시기(?)를 맞이하는 준비기다. 그렇기에 이 시기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많다. 일본의 근대화의 성공 이유는 당시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중요한 연구 과제다. 그럼에도 관심과 연구 대상에서 비껴 있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메이지(明治) 천황이다. 나름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메이지 천황에 대한 정보는 그 유명한 이름이 전부다. 그마저도 메이지 유신이 아니었다면 기억조차 못할 일이었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 하나로 두꺼운(전자책이라 실제로 두께는 없지만) 책을 집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알 수 없다.’ 너무 싱거운 결론이지만, 이 두꺼운 책의 끝까지 읽어도 메이지 천황에 대한 구체적인 인상은 떠오르지 않는다. 남아있는 사료들의 한계인지, 아니면 신으로 추앙 받던 존재이기에 인간적인 모습들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메이지 천황의 개인적인 성향이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유교적 교육을 받았고, 그렇기에 이상적인 군주는 유교적인 계명에 따라 나라를 통치해야 하며, 개인적으로는 인내하고 참아내야 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루한 의식과 이야기들의 반복 속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건, 어쨌든 그는 극도로 개인의 감정이나 의견 등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저자가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빈 공간을 메꾸긴 하지만 좀체 그 이상의 모습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근대화의 과정에서 천황의 역할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본 근대화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지만, 가장 그 역할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 오히려 꼭두각시, 얼굴마담에 그쳤다고 믿어지는 사람. 하지만 일본의 천황 중 가장 위대한 천황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 받는 사람. 그를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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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왕양이파들의 천황에 대한 충성은 항상 막부 타도라는 형태로밖에는 표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막부를 넘어뜨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 즉 막부를 쓰러뜨림으로써 일본이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이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일단 천황의 권위를 회복한 다음, 천황이 감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는 소흘히 생각했다. 물론 천황이 국민의 의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식의 전제군주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다다야스를 비롯해 어린 천황을 에워싸고 있는 궁중 신하들은 애매하게 규정된 천황의 비호 하에 나라를 통치하는 현재의 막부 권력이 송두리째 자신들에게 넘어오기를 바랐을 것이다. p.366

조선에서 프랑스인 선교사 아홉 명과 미국 상선의 수병 몇 명-그중에는 영국인 승무원도 있었다-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 막부는 조선에 사절을 보내 구미 열강과 전쟁을 하게 될 경우 불리한 점을 설명하면서 이 분쟁의 중재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p.370) ... 2세기 반에 걸쳐 서양과의 접촉을 끊어 온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는 적절한 방법으로 다른 나라에 조언하는 입장에 서려 한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일본은 만일 조선이 서구 열강에 공격당하는 일이 벌어지면 이웃나라인 일본에도 영향이 미치리라 우려했을 것이다. p.371

서양의 외교 관례로 볼 때 이날 그리 특기할 만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외교관 접대를 위한 향연은 일본에(p.556)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게다가 그것을 당당하게 벌인 것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고메이 천황 사후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 놀라웠다. 고메이 천황은 결코 외국인을 만나려 하지도 않았고, 신성한 일본 땅에 외국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들에 대한 말로 다할 수 없는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어린 천황은 자진해서 외국인을 만나려 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언제나 호의적이었다. p.557

무사의 의상을 폐기처분함으로 봉건제도에 속하는 낡아빠지고 야만스러운 습관의 붕괴를 촉진시킨 것만큼은 확실하다. 실제로 의복 혁명은 일본이 여러 외국과 동등한 형제라는 것을 온 세계로 하여금 인정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W.E.그리피스 p.639

서양 문명을 거부한 고메이 천황의 아들은 근대 일본의 상징적 지도자가 되었다. 일본이 근대 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할지 모를 것들을 용감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천황은 동양의 영원불변한 지혜를 전하는 모토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을 잊지 않았다. p.649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사회 구조 자체는 그대로 둔 채 그 지도자들을 바꿔 버린 것이다. 그러나 폐번치현은 이보다 훨씬 강력한 여파를 미치게 된다. 2백만 명 가까운 무사 계급이 지금까지 다이묘에게 받고 있던 봉록을 잃어버리고 영구히 실업자가 될지도 모를 운명에 직면한 것이다. 몇 년 뒤 무사들은 지위를 상실한 대가로 정부로부터 일시불로 돈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새 출발을 위한 자금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사들은 다른 일에 서툴렀다. 새로운 일본에서 돈벌이를 할 일에도 어두웠다. p.655

경우에 따라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창조성이나 독창성이니 하면서 우러러볼 만한 자질을 가진 인간이나, 엄청난 정력과 행동력을 갖춘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착실하고 평범한 인간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p.693

서양 열강이 일본에 한 것과 똑같은 짓을 지금 일본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조선에 요구했다. 즉 조선에 행정(p.835)과 관세 자치의 주권을 조인해 양도받고, 유럽인이 일본에서 행사할 때 공평과 정의를 짓밟는 것이라고 비난하던 온갖 치외법권을 조선국이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p.836 ? Joseph H. Longfod, The Evolution of New Japan. p.105

메이지 천황의 반응이 설혹 있었다 하더라도 <메이지 천황기>에는 그러한 것이 기록되지 않는다. 기록할 가치가 없는 활동들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의식, 승마, 원로원 행차, 황태후에게 문후 올리기 위해 아오야마 어소를 찾는 일 등을 제외하고 천황의 일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주로 근대화를 향한 착실한 진보와 직접 관계된 일들이다. p.845

일반적으로 메이지 정부의 결정은 모두 관료가 내리고 천황은 오직 이를 승인할 뿐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부 고관들의 의도에 반해 천황 자신이 결단을 내린 사례다. p.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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