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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시대,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정혜신] 단 한 가지 | Memento 2020-04-0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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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세트] 지혜의 시대 (총5권)

김대식,김현정,노회찬,변영주,정혜신 공저
창비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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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워야 하는 단 한가지만 꼽으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잘 이별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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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 날. 수많은 영상 중 아직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영상 하나가 있다. 침몰하는 배 속, 플라스틱 의자로 창문을 내려치지만, 깨지지 않는 창문. 해수면 아래로 사라져 가는 주저앉아 좌절하는 학생의 모습. 그 절망스런 표정, 무력한 감정. 그 날 이후로 슬픈 영화나, , 드라마는 가급적 피하고 있다. 그 모든 슬픔의 순간, 좌절의 경험 속에 그 날의 영상이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많은 상흔을 남겼다. 수많은 생명이 가라앉고, 한국 사회의 오랜 병폐가 올랐다. 개인 차원의 문제도 드러냈다. ‘가만히 있으라그만해라, 그 정도 했으면 됐다.’ 우리 개개인의 공감 부족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다.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벼락같은 이별을 한 이들의 삶과 한 치도 다르지 않(p.10)”음을 외면한 채, 조롱하고 비난하고, 심지어는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겹다고, 돈에 환장했다고 말한다. 알고 있다.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모두가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의 염치는 가질 수 있을 텐데... 한 때, 그런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했다. 타인의 고통을 저렇게도 비난한 사람 역시 똑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고통을 겪기를 말이다. 상실의 고통을 겪을 때 그 누구에게도 공감 받지 못하기를. 오히려 철저히 외면당하고 그 아픔과 절망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를 말이다.

책을 보며 저주를 거둬들였다. 우리는 매 인생을 살면서 이별하고 있음에도, 누군가에게도 이별하는 배운 법이 없다. 나 역시 이별의 순간마다 들은 말을 떠올려 보면 가만 있으라’, ‘그만하면 됐다였다. 슬픔을 나눌수록 약점이 되어 돌아오는 세상이다. 결국은 참고, 견디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올바르게 배울 기회가 없었다. 슬픔을 해소하고 나눠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공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혜신 박사님이 말하는 심리적 사회안전망’, “내 가족이나 친구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혹은 내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그 고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는 것(p.24)”의 중요성을 되새겨본다. 우리 사회는 물리적 사회안전망도 약하지만, 심리적 사회안전망은 더욱 심각하다. 정이 많은 한국인이라지만, 그 정을 나눌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서로의 심리적 사회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가해자들은 모른다. 오히려 죄의식이 없다. “희생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나눠가(p.82)”진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슬픔에 대처하는 법(p.31)”을 배워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까. 고통은 상처를 드러내는 데서가 아니라 드러낸 상처(p.7)에 대한 내 시선이나 태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결정된다.(p.8)” , “‘사랑하고 사랑받은 삶을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진정한 대비(p.123)”.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 자신을 드러내고 말하는 일은 어렵다. 오히려 가족이나 연인처럼 가까운 사이가 더 어렵기도 하다. “무조건 피하려고 하면 나중에 그에 대한 심리적 대가를 고스란히 치르게된다. “에누리는 없(p.140)”.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우리는 서로의 심리적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고 사랑 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p.125)”해야 한다.

온갖 비난과 악플을 쏟아냈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어쩌면 그들은 사랑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공정성이나 경제적 잣대를 들이대며 울고 있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그 자신이 사랑받지 못했기에 그러는지 모르겠다. 결국 그들도, 우리도, 피해 받은 사람들도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사람이다. 사랑하는 일, 그래야만 우리가 서로에게 안전망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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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치유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내 상처의 내용 자체를 드러내는 데서 비롯하지 않는다. 드러낸 상처(p.7)에 대한 내 시선이나 태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치유가 결정된다. (p.8) ...

삶을 제대로 사는 것(1)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가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조망하고 확인인하는 행위(2). p.9

사랑하는 사람과 급작스럽게 이별을 한 사람들의 남은 삶이 주체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은 상당 부분 삶에 대한 정리와 확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p.9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벼락같은 이별을 한 이들의 삶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벼락처럼 잃고 홀로 남거나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이별의 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채 떠나(p.10)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 둘 중 하나가 우리의 삶이다. p.11

본래 사회안전망이란 ...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합니다. 우리 삶의 물리적 토대가 되는 최소한의 장치인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조금 더 폭넓은 관점에서 사회안전망을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안전망은 내 가족이나 친구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혹은 내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그 고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24

다들 이제 그만하라는 말 때문에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죄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그만해라, 그 정도 했으면 됐다.’라는 말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 슬픔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극단의 고립감을 부추기는 무서운 말입니다. p.27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뒤 슬픔에 대처하는 법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살면서 한번은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p.31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다. p.45

슬픔이나 고통의 감정을 누르면 즐거움, 기쁨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도 같이 눌러집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선 자체가 평평해지는 겁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전보다 덜 힘들고 잘 견디다 싶어 내가 더 성숙해졌나 착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p.58

상처를 존중받고 아픔을 깊이 공감받는 과정을 통해(p.61) 상처 입은 사람은 다른 상처의 치유자가 됩니다. p.62

목숨을 버리는 이유는 각자가 처한 환경과 기질, 심리적 상황에 따라 다 다르지만 대개의 자살자들이 목숨을 끊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직면하는 감정은 자기모멸감과 무력감입니다. p.76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희생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나눠가집니다. 죽음에 책임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겁니다. p.82

타인의 고통과 심리적으로 연결된 존재, 감정이입을 잘하는 탁월한 공감력의 소유자들이 갖는 감정이 죄의식입니다. p.82

큰 슬픔을 당했을 때 눈물 흘리며 슬퍼하고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참담한 재앙의 현장 속에서 널빤지 조각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 있다는, 살아갈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여 한 인간으로 생생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p.84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습니다. 어떤 감정이 떠오르든 옳습니다. p.96

노는 일, 휴식은 성찰과 깨달음, 자기객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깨달음과 자기객관화가 일어날 때까지 쉬는 것이 내게 필요한 적정 휴식 시간입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존중이고 예의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p.109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는 그렇게 열어둬야 할 것 같아요. 실제 상황은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와 전혀 다를 테니까요. p.115

죽음을 위한 대비는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 (p.122) ... 더 정교하게 말하자면 사랑하고 사랑받았다가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받은 삶을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진정한 대비인 것 같습니다. p.123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하는 행위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것이 제가 내리는 사랑의 정의이기도 합니다. p.125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용서를 말하는 사람은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사람입니다. p.130

사랑의 실체를 알고 서로 확인하는 일. 그것을 딸아이의 삶에 빛의 속도로 퍼부어주는 일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딸과 엄마 모두를 꼿꼿하고 단단하게 지켜주는 유일한 방패가 될 거에요. 죽음 앞에서는 아이나 어른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p.133

우리 어른들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충고나 성급한 조언이나 염려를 보태지 않고 아이들의 옆에서 견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조바심이나 편견,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이 어른들이 노력하고 해내야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p.137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한다는 건 그만큼 괴롭다는 증거입니다. 무조건 피하려고 하면 나중에 그에 대한 심리적 대가를 고스란히 치르게 됩니다. 에누리는 없습니다.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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