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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홍승은] 홍승은의 글쓰기, 나의 글쓰기 | Memento 2020-04-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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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저
어크로스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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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글쓰기가 그렇다면, 나의 글쓰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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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글쓰기란 무슨 의미인가? 의미보다는 의무감이다. 어쩌면 의미를 남기고자 하는 최후의 발버둥일지 모른다. 이 블로그가 그렇다. 어떤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순간. 심리 치료 중, 좋아하는 일을 해보라는 말에 무작정 서점을 찾았다. 그저 책 냄새, 잉크 냄새가 좋았다. 문득 잊고 살았던 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샀고, 뭔가를 끄적였다. 아마 그게 시작이었다.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을 걱정 없이 토해내기 위해서. YES 포인트는 덤이었다. 글쓰기는 그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시원하게 토해내기 위해 시작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목적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저 가끔씩 울컥거리는 내 안의 감정들을 토해내고, 기록하는 정도로 그쳤어야 했다. 그걸로 끝이어야 했음에도 손가락을 목구멍으로 집어넣고 억지로 토해내고 있었다. 최소한 A4 1장 분량은 토해내자. 그래야만 꿈(으로 포장된 허황된 목표)을 이루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듯했다. 그리고 덤이었던 YES포인트는 그 실적을 계량화 해 주었다.

깊은 숙취나, 장염에 걸려본 사람들은 잘 안다. 토 하는데 한계가 있다. 위액마저 토하고 나면 고통만 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는다. 그저 헛구역질 해대며 고통 속에 몸부림 칠 따름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놀이가 의무가 되는 순간, 즐거웠던 독서도 고통으로 다가온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그 고통의 시간이 당신을 성장케 할 것이라고. 하지만 반복된 고통은 병의 신호일 따름이다. 억지로 토해내면 ?현대인의 불치병인-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뿐이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말했다. ”니체는 너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너를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더 강조했어야 할 말은 그 정도 고통이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작년, 그리고 지금. 그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비염으로 너무도 힘들다. 실재 삶도, 글도 더 이상 토해낼게 없는 순간 몸은 무너져 내렸다. 재가 되었고, 병원비만 우수수 깨져나갔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기에, 돈벌이를 멈출 순 없으니. 그리고 다시 토해내고자 움직여 본다. 별다른 생각은 없다. 그저 토해낼 뿐.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니다. 나를 위해서. 나에게 글쓰기란 아직까지는 그 정도다. 그래도 계속 써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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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연결될 때, 삶과 문장은 단단해 진다. p.2

서사가 부재한 곳에 정보만 남아요. 나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써요. 하나의 정보로 존재가 납작해지지 않도록, 제가 자유롭기 위해서요. p.6

어떤 글은 존재를 입체적으로 증명하지만, 어떤 글은 존재를 납작하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다. 글쓰기에서 가치판단이 적용되는 기준이(p.10)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글, 고유한 개개인을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는 글을 위험하다. p.11

내 경험을 말했을 뿐인데, 세상이 딸꾹질했다. p.14

적어도 성폭력에서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는 말은 거짓이다. 때린 놈은 편하게 자지만, 맞은 사람은 모든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밤을 지새운다. p.16

내 세계를 타인에게 보이는 일, 타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일. 타인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p.20)에 고개 돌리지 않는 일. 나에게 읽고 쓰는 과정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이었다. p.21

성장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난관을 마주하게 됩니다. 가시화에 대한 두려움, 가혹한 시선과 비판에 대한 두려움,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죽음을 제외한 이 모든 두려움을 이미 침묵하며 지나왔습니다. -오드리 로드, <스스터 아웃사이더> p.37

글이 짓는게 아니라 살아내며 쓰는행위라면 시야가 좁거나 무례한 사람에게 권위를 줄 경우, 글뿐 아니라 삶이 막히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p.58

질문에 대답하는 더 나은 방식 찾기. 질문을 다시 질문하는 방식. 그리하여 어떤 존재를 늘 질문으로 만드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질문하게 된다. -사라 아메드 p.71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못된 여자는 어디든 간다. p.74

우리는 모두 이미지와 이야기의 세계에 살고 있고,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야기에 상처받으며 살아간다. 운이 좋으면, 우리를 받아주고 축복해주는 다른 이야기를 찾거나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리베카 솔닛 p.74

글쓰기는 단지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끈질긴 사유와 해석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기존의 관념을 비틀어 존재를 자유하는 언어를 구사하고, 경험을 다각도로 해석할 때, 내가 쓴 글은 단지 개인적인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답이라고 여겨졌던 상식에 글쓰기를 통해 질문을 더니면, 그 질문은 파장을 일으켜 누군가의 실제 삶에 자유를 선물할 수 있다. p.78

몸문화연구소의 임지연 교수는 죄책감이 부분적인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감정이라면, 수치심은 전면적으로 자아를(p.88) 문제시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p.89

들리지 않는 것, 말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은 말을 한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결정적인 한마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를 입에 담지 않는 침묵에서 나온다. -찰스 백스터, <서브텍스트 읽기> p.92

고통을 스스로 언어화하지 못할 때 속이 썩는다는 말은 정확하다. 고통의 원인인 모든 부정의가 오로지 나라는 존재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p.97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꼭 가족이거나 연인일 필요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만큼 이해 받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몰래 글을 쓰는 모습은 쓸쓸하다. 그 관계가 다른생각 자체를 막아버리진 않을(p.113)지 걱정되기도 한다. 각자의 고유한 자국을 존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을 텐데. p.114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문학평론가 신형철 p.115

내가 쓰는 글을 통해 누구에게 힘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은지 스스로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따라오는 비난에 대해서도 조금은 의연해질 수 있었다. p.121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당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해요. 나를 망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에요. 다른 말로, 나를 망칠 권리는 오직 나에게만 있어요. p.127

글이 삶을 관통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거라면, 소수자의 위치에서 나오는 글은 언제나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실패할 테고 영원히 사적이라는 딱지를 뗄 수 없을지 모른다. p.133

내면적인 것은 여전히, 그리고 항상 사회적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순수한 자아에 타인(p.135), ,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자 자신의 인류학자이다. -아니 에르노 p.136

대화와 글쓰기는 나와 타자의 소통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대화에서는 즉각적으로 아록 물어줄 사람이 있지만, 글쓰기는 물어줄 사람이 없으니 내가 나에게 질문하며 써야 한다는 점이다. 읽는 사람이 라고 물을 만한 부분을 내가 먼저 보여주려는 노(p.148)력이 필요하다. p.149

나는 글의 고유성과 힘은 문장력 이전에 서사와 질문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내가 통과해 온 시간을 말할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기에 내 이야기를 쓸 때 글을 가장 고유해진다. p.149

자신으로 인해 슬픔을 가져야 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기대를 건다. 자신의 경험을 배반하지 않는 그들 우리로부터 은 시작된다. -조한혜정, <글 읽기 삶 읽기> p.164

사라 아메드는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정의로우리라는 보장은 없다며 망설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촘촘하게 차별로 연결된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촘촘하게 사유하고 망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p.181

누군가를 풍경의 배경으로 여기는 것만큼 고유성을 지워버리는 간편한 방식은 없다. 글에 생기가 줄고 관점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나는 먼저 내 애정을 의심한다. 눈앞의 존재를 고정된 물체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지 묻는다. p.188

글쓰기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맑은 길로 가로지르는 과정이 아니라 뿌옇게 흐린 길을 더듬으며 내 위치와 감정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관성적으로 쉬운(p.272) 길로 가려고 할 때마다 잠시 제동을 걸어 일부러 길 잃기를 선택하는 게 쓰기의 과정이 아닐까. 내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거나 느낄 수 없는지 이리저리 각도를 바꾸어 살피고, 첫 판단을 버리고 낯선 시선을 탐색해가면서. p.273

자기 서사를 쓰는 일은 자서전처럼 모든 일대기를 쓰는 일이라기보다, 내 기억과 일상을 낯설게 보고 기록하는 일이다. 권태에 눌리지 않고 감각을 열어 지금을 살아갈 때, 과거와 지금의 경험에서 글감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게 아닐까. p.301

여유 없는 사람들은 천박할 수밖에 없고, 나는 그 점을 말과 글로 옹호한다. 상대가 천박해(p.319)서 불편하다면 내 소갈머리를 살펴야 한다. 천박을 옹호하려는 내 말과 글이 고상한 단어들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 삶과 언어의 치명적인 한계다.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덜 천박하다면 내 삶의 여유에서 비롯된 배운 년의 체면과 껍데기 때문이다.“ p.320-최현숙

세상의 모든 글은 콜라보이자 타인의 흔적이다.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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