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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정재찬] 그래, 이것도 인생 | Memento 2020-05-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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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저
인플루엔셜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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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과 책, 시, 그리고 쓸데없는 단상들. 오랜만의 기분 좋은 연휴가 그렇게 저문다.(절대 책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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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휴는 왜 이렇게 졸린 지 모르겠다. 새해가 시작하고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날, 리뷰는커녕 책장 펼치기 어려웠던 시간들이었다. 틈틈이 노력했음에도,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때론 스스로 채찍질에 그만하면 되었음에도 무리하기도 했고, 은근한 압박 속에 속앓이도 했다. 그렇게 수개월, 간만의 여유시간에 드디어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쳐 들었다. 전작 <시를 잃은 그대에게>를 보며 펑펑 울고 다시 일어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힘겨운 삶의 터널 속, 이번에도 같은 기대 속에 페이지를 넘기건만 책을 읽는지 꿈을 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순간이 계속되어 짜증이 벌컥 났다. 이건 전적으로 저자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책의 탓도 아니다, 지쳐버린 내 몸의 탓이다. 그렇게 크레마를 내 얼굴에 던지며 몇 번을 뒤척거리며 읽었다.

사실 시와 나는 그렇게 친하지 않다. 시는 나에게 늘 no.2. 시집을 간혹 사서 읽곤 하지만 딱히 선구안이 좋지 않다. 시를 대하는 내 태도는 마치 히트곡만 골라 듣는 사람과 같아서, 시집을 사는 일이 꺼려지기도 했다. 만약 산다 해도 시집 전권 1권을 통틀어 맘에 드는 시를 1개라도 찾으면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면 좀처럼 시집을 집어 들기 어려웠다. 시와 친하지 않다보니 이름값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시인들의 언어는 수수께끼 같고, 글 속에 힌트는 없었다. 끈기 있게 시를 들여다보고, 내 삶을 비춰봐야 한다.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 효율성이라는 변명, 피곤하다는 현실에 몇 권 되지도 않는 시집조차 구석 한 켠에서 먼지만 쌓이곤 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그런 나에게 위로를 준다.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늘 어려운 언어들로만 시가 쓰이는 것이 아니며, 어떻게 시를 바라볼 수 있는지 실마리를 얻게 해 준다.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시는 이 모든, 우리가 인생 혹은 삶이라 부르는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다. 항상 시는 준비되어 있다. 다만 내가 관찰하고, 인내하고, 생각하는 것이 부족할 뿐이다. 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를 생각해야하고, 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p.301)

세 번째로 크레마를 내 얼굴에 떨뜨린 순간. 벌떡 일어나 얼굴을 두드린다. 오늘 따라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살랑거린다. 사방은 조용하고, 공기는 깨끗하다. 오랜만의 여유. 비록 기대한 만큼의 독서는 못했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책을 끼고 불편한 맘 없이 조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싶다. 그래 이렇게 읽고, 다시 또 읽고. 다시 못 읽으면 또 어떠랴. 길게 쓰지 못하면 어떠랴.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게 아닐까. 졸음과 책, , 그리고 쓸데없는 단상들. 오랜만의 기분 좋은 연휴가 그렇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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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고독하고 혼자 삽니다. 그래서 실은 직업이라는 형태로 나의 부족한 점들을 서로 메꿔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결핍된 그 무엇이 있을 거예요. 그걸 채워주기 위해서 누구는 재화를, 누구는 용역을 제공하고 교환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직업의 본질이란, 이처럼 사람들이 모두 같이 살려고, 너도 살리려는 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p.39) ... 서로의 이마에 손을 내밀고 그 손에 이마를 맡길 수 있는 존재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게 우리 모든 업의 본질이 아닐까요. p.40

죽어라 일하는데 왜 나는 죽지도 않고 왜 일은 줄지도 않는가?” ... “일은 하면 할수록 늘기 때문이라고, 갓 취업해서 제대로 일할 줄 모르면 선임들이 격려해줄 때 하는 말이 그것 아닙니까. “괜찮아, 일은 하다 보면 늘어라고. , 정말 일은 늡니다.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는게 아니라 정말 일은 늘면 늘지 줄어드는 법이 없습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줄지 않는 것이 일입니다. 과로로 죽을 판인데, 과로하지 않으면 더 죽을 판으로 일이 넘쳐 어쩔 수 없이 과로라도 해서 일을 줄이려는데, 그러면 그새 일은 또 늘어나는 악순환인 겁니다. p.55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무엇은 명사겠지요. 의사, 교사, 공무원, 회사원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 가령 명사 (p.64)는 정말 이삼십 대 안에 되든지 안 되든지가 결정이 납니다. 하지만 가령 형용사 존경스러운교사는 정년까지도, 아니 평생토록 이루기 힘듭니다. 생의 목표는 그런 게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어쩌면 존경스러운사람이 되는 게 내 인생의 꿈이고, ‘교사의사따위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들인지도 모릅니다. ... 그런 의미에서라면 시 같은, 아름다운, 낭만적인,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요? p.65

일이냐, 삶이냐, 문제는 그 둘 간의 조화와 균형을 생가하지 않고 우리 인생을 일과 삶의 대립으로 간주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 (p.75)차피 일도 인생이고 삶도 인생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을 사랑하는 자는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편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p.76

미래의 교사가 되길 꿈꾸는 제자들에게 제가 해주(p.101)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육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신념이 뭔지 아느냐고.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가르치려드는 것은 위선이거나 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교육자가 꼭 갖고 있어야 할 지혜가 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교육은 훈육이 되기 일쑤다.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교육은 힘들고 위대한 것이다. p.102

변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잔소리하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집착의 징표입니다. p.102

돌아보니 인생은 나를 돌봐준 이와 내가 돌볼 이로 이루어진 돌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p.139

쉰 넘어보니 딴 거 없습니다. 내 몸이 나입니다. 웰비잉하지 않으면 웰다잉도 없습니다. 돈 벌고 일하느라 애쓴 내 몸, 남들 위해 바친 내 몸, 내가 아니면 누가 돌보겠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이 말을 참 오랜만에 꺼내보는 나이인 겁니다. p.148

결심이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내 몸에는 너무 많은 관성이 들어 있습니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몸 구석구석에 살뜰히도 배어 있습니다. 그것과 싸워 이겨내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호락호락한 사람들입니다. p.150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고 먹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인은 식사법을 말한다면서 우리에게 사는 법을 강론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은 매우 경건한 일입니다. 먹는 것처럼 산다는 것도 그러해야 합니다. ... 죽을 때까지 밥을 먹듯, 죽기까지 성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p.161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브리야샤바랭 p.162

예전보다 먹을거리가 풍요롭고 다양해진 것도 사실인 반면, 대중화되고 획일화된 경향도 그만큼 강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p.163) ... 대중문화의 풍요는 평등을 가져다 줬습니다. 누구나 같은 코카콜라를 마시고, 캠벨수프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평등한 권력의 추가 점점 기울어져가면서 획일화의 위험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중문화의 양면성입니다. 풍요는 다양화를(p.164) 선물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코카콜라만이 아니라 다양한 청량음료를 만들어주었고, 다양한 스푸를 만들어주었죠. 그러나 그것들은 자기 생태계 내부의 다양화만 허락할 뿐, 골목식당과 집밥의 생태계를 위협합니다. p.165

맛은 추어이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훌륭한 맛이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허영만, <식객> p.167

내가 잘 먹고 잘 살려면 내 몸만이 아니라 내 몸을 먹이는 이의 몸을 잘 지켜줘야 합니다. p.171

저는 긍정의 힘은 믿어도 긍정의 미신은 믿기 싫습니다. p.177

냄새란 지울 수 없는 것, 내 의지와 노력과 무관하게 환경으로 인해 그저 내 몸에 베어버리는 그런 것. 삼겹살집에서 회식하면 누구나 공평하게 냄새가 배는 법인 것을, 내 탓이 아니라 환경와 문화 탓인 것을, 마치 나의 잘못이나 결함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당하고 차별당하는 것. 피부색이 달라서, 여자라서, 가난해서 선 밖으로 밀려나는 것. p.185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말도 스스로에게 너무 강요하게 되면 자신에게 가혹하고 타인에게 굴종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p.186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 p.203

목표가 이끄는 삶, 그래서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매일 결심과 각오를 새로이 하며 사는 인생도 훌륭하지만, 그저 과정에 충실하고 결과에 감사한 삶이면 가히 족하고 남습니다. 어차피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는 삶, 긍정도 하고 부정도 하는 삶이지만, 내가 헛것에 빠지지 않고, 뭔가를 욕심낸 바람에 내 삶이나 주위 사람들을 희생하는 일도 없이, 기왕이면 선한 말, 칭찬하는 말 많이 베풀며 이냥저냥 살아가면 내 마음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p.206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p.209

관찰은 창의성과 인성을 낳고, 그럴 때 창의성과 인성은 서로 배반하지 않습니다. 세렌디프의 왕자들 이야기를 기억해보십시오. 무엇보다도 그들은 관찰을 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관찰이란 세계의 숨겨진 질서, 감춰진 비밀을 바로 보는 일일 겁니다. p.228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절망한다. -이상 p.230

우리는 공부의 프로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마추어를 야성상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p.242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용어를 빌리자면, 컴퓨터 게임의 과정은 아동의 실제 발달 수준에서 잠재적 발달 수준으로 건너가도록, 마치 건물 공사장의 임시 발판처럼 비계를 만들어주는 스캐폴딩과 유사한 겁니다. p.245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한준 p.246

세렌디피티란 뭔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냥 우연에만 맡겨진 것도 아닙니다. 저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p.246) 분야에서 꾸준히 관찰하고 공부하고 숙련해온 아마추어 출신의 프로들입니다. 그렇게 축적된 능력이 어느 날 필요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겁니다. 마치 세렌디프의 왕자들처럼 말이지요. 세렌디피란 이름의 창의성, 그것은 사실 준비된 우연, 어쩌면 그런 이들에게 허여된 필연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p.247

감히 선학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지, 언제 저렇게 되지 싶었고, 칸트나 헤겔처럼 철학사의 빛나는 성좌들을 보면 나는 왜 저 빛에 도달하지 못할까. 아니 평생 도달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좌절이 있었습니다. 실은 내 마음 속에 있던 그 빛들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으면서 그땐 그걸 몰랐던 것입니다. 그저 그리움과 열병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비로소 앵두가 익을 무렵이면 간신히 그리움도 견딜만해집니다. 여하튼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과 함께하다 보면, 누구나 결실을 맺을 수 있으니까요. 익는다는 건 그런 일입니다. 제법 넉넉해지고, 뒤돌아볼 줄 알게 되고, 지난날에 대한 긍정과 감사를 보내게 되는 겁니다. 앵두도 그리 되는 겁니다. 크지 않아도, 위대하지 않아도, 밤하늘의 성좌가 못 되어도, 우리 (p.256)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겁니다. 긴 시간 견디어 이루어낸 모든 앵두들에게 우리가 경의를 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p.257

사람들은 말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듣기에 참 부러운 말입니다만, 살아보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참 없습디다. (p.263) ... 그런데 그러던 사이, 생각이 바뀝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 길을 찾는 것도 훌륭하지만, 이 길에서 뜻을 찾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 다운 일인가 하고 말이죠. 그 이후로 비로소 남들의 길이 아니라 내 안의 길에서 뜻을 찾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 그때부터 길은 조금씩 고분고분해집니다. 꽃으로 수를 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땀을 식혀주기도 합니다. p.264

세월은 안으로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녀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가면 좋겠습니다. 늙음은 젊음의 반대말도 아니고, 젊음이 모자라거나 사라(p.268)진 상태도 아닙니다.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 안고 더욱 크고 푸른 나무가 되어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는 결코 멈춰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p.269

우리 얘기 좀 해라고 말하기 전까지 보내는 침묵의 시간이 자기의 주장을 더 강화할 논리를 준비하는 시간이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태를 돌아보는 침묵과 인내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대화를 시작할 때는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시비를 덮은 자리에서 오로지 화해를 위한 이야기만 준비해가지고 나와야 하는 겁니다. p.296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구속을 택할 것인가 하는 자유뿐일 것입니다. p.298

사랑은 책임인 것입니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함께해온 그 사람을 책임지고, 그 사람에게 나를(p.303)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란 말입니다. 부당한 억압이나 고통스러운 책무가 아니라 아름다운 의무이자 권리인 것입니다. p.304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신형철 평론가 p.304

현대사회에서 사랑이란 늘 이상한 신화를 갖게 됩니다. 반드시 사랑에 성공해야 한다는 이상한 신화 말입니다. ... 사랑의 문제를 대상의 문제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즉 사랑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고 쉬운 일인 데 비해, 사랑할 만하거나 사랑받을 만한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렵(p.317)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문화는 거래라는 과년ㅁ에 기초하고 있죠. 하여, 사랑은 자유이지만, 자기가 지닌 교환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비애가 성립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할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p.318) ... 외부 조건들이 내가 원하는 삶을 계속 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선택지는 많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래서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겁니다. p.319

어리석은 자는 한 평생 다하도록 현명한 이를 가까이 섬겨도 참다운 법을 깨닫지 못한다.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이. <법구경> p.329

이래서 SNS를 못 끊습니다. 기존의 미디어가 접근할 수 없거나 침묵해버린, 그렇다고 일일이 직접 가볼 수 없는 저 특별한 시공간의 정보와 경험들,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멋진 신세계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직접 안아주기란 불가능하지만 그 대신 이렇게 공감을 하고 체온을 나누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 우리로 하여금 그 세상의 모든 인싸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SNS의 순기능 아니겠습니까. p.344

선행은 의무와 강요에서가 아니라 공감과 소통에서 오고, 공감과 소통은 경험의 공유에서 옵니다. 하지만 경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인데 그나마 너무 짧아서 남의 인생, 다른 인생은 살아보지도 못하니까요. 간접 경험과 대리 경험이 소중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p.346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말하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외로움은 견딜 수 없는, 극복하고 개선해야 할 상태이지만, 고독은 즐길 만한, 누리고 유지해야 할 기회이기도 한 것이죠. p.401

읽은 책은 읽어서 못 버리겠고,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아서 못 버리겠다고 핑계 대며 살지만, 실은 그냥 지나온 시절 그대로 부여안고 버텨보려는 것뿐임을 제가 압니다. p.430

우리는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삶의 가장 평범한 일들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일만 챙기는 데도 바쁘다 보니 일상에 소흘히 대할 수밖에 없었다며 핑계대어 보지만, 결국 소중한 건 저 특별하지도 딱히 귀해 보이지도 않는 일상이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p.448

인생이란, 요약하면, 살다가 죽는 것 아닐까요. p.462

애도는 상실에 대한 적절한 거리와 태도를 뜻합니다.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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