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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교토의 1만 년-정재정] 역사에서 그랬듯 앞으로도 | Memento 2020-08-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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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서울과 교토의 1만 년

정재정 저
을유문화사 |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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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를 통해 한일관계사를 살펴보고, 앞으로 양국의 관계도 고민해 볼 수 있는 책. 더불어 교토 여행시 필수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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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일본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다. 주변 이웃국가에 중국과 러시아가 있지만 워낙 대국이다보니 이웃나라라고 해도 친근감이 덜하다. 반면 일본은 (한반도 보다 확실히 크지만) 비교적 규모 면에서도, 문화 면에서도 비슷하다. 인정하기 싫을 수 있겠지만, 일본과 한반도는 끊임없이 교류를 해왔다. “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p.8)” 먼저 교류를 주도 했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고, 나중에 기회를 주었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얽히고 설킨 두 민족간의 갈등은 그칠줄 모른다. 역사 그 자체가 나라간의 관계에 이렇게 직접적인 변수로 영향을 주는 사례도 많지는 않을 듯 싶다.

<서울과 교토의 1만 년>은 일본사에 정통한 정재정 교수의 시각에서 본 교토의 역사다. 나의 관심은 사실 교토보다 서울이었다. 일본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직접 방문해 볼 기회가 없다보니 그저 먼 나라에 불과했다. 그 중에서도 교토라면 문화재가 많고 대학이 많은 도시정도의 이미지다. 그런데 교토와 서울과 1만년 동안 무슨 관계를 맺어왔다는 말일까. 아니면 양국의 오랜 수도였던 만큼 교토 역시 비교대상이란 뜻일까. 개인적으로 교토와 경주를 비슷하게 여겼는데, 서울과 대비한다고 해서 남다른 궁금증을 가졌다. 실질적으로 서울 그 자체보다는 한반도를 의미하는 느낌이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 등 해외에 대한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쿄토와 오사카는 한국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장소다. 그래서 자주 방문했거나, 내용에 대해 충분히 아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교토를 자주 방문해보지 못했거나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무엇보다 교토의 형성부터 시작해서 일본과 현재 관계까지 고민케 하는 흐름은 역사를 어떻게 봐야할지 생각하게 해준다. 일본과 한국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오랜기간 교류해 왔고, 교류해 갈 것이다. 교토에 묻힌 많은 유적들이, 양국간 얽혀 있는 다양한 유전자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갈 수 많은 양국의 관광객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자기본위로만 바라보면 갈등과 대립의 측면이 부각되고, 두 나라 국민은 서로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을 갖게 된다.(p.75)” 지금 한일 양국, 먼나라이지만 가까운 이웃나라 간에 기로에 섰다. 역사는 쟁점화되고, 군사관계는 약화되고 있다. 미국은 양국을 압박하고 있고, 중국은 날로 위세를 높여 간다. 여기서 두 국가의 연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역사가 교묘하게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역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한일 양국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역사 문제를 다뤄 온 경험, 수법, 실적을 이미 많이 축적하고 있다. (p.709)”

이 책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지구가 파괴될 때까지 아마도 티격태격 두 나라는 살아갈 것이다.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는 그렇게 함께 성장한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그리고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 내는가가 유년기를 넘어 청장년기를 넘어 인생 전체를 현명하게 보낼 수 있게 한다. 양국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그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작은 실마리를 교토에서 찾아보자. 정재정 교수의 이 책이 충분한 답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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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명의 교류는 평화롭게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침략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과 일본은 지구상에서 인종적,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문명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 , >라는 명저에서 이런 한국과 일본을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로 비유했다.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을 되풀이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게 한일 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라고 촉구하는 그의 경구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교토의 유적, 유물에는 그런 충고를 뒷받침해 주는 사연이 너무나 많이 깃들어 있다. p.8

인구 150만 명에 불과한 교토가 어떻게 이렇게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학술 기관과 첨단산업을 많이 보유할 수 있게 되었을까? 나는 그 답이 옛것을 우려내 새것을 창조한느 노하우, 곧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시대 변화에 맞게 변형하고 발전시켜 가는 혁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법고창신 즉, 옛것에 토대를 두고 변화를 주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지혜야말로 교토의 역사 그 자체고, 발전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p.71

한국과 일본의 문명 교류를 파악하는 데는 세 가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편리하다. 인간의 이동, 전쟁의 충격, 물자의 교역이 그것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엉켜 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분리하여 설명하기는 어렵다. p.73

한일관계의 역사를 이렇게 자기본위로만 바라보면 갈등과 대립의 측면이 부각되고, 두 나라 국민은 서로 좋지 않은 기억과 감정을 갖게 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충돌이 정치, 외교를 제약할 정도의 비중을 가진 만성적인 현안으로 대두되어 있다. 두 나라 지도자가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에 빠져 정상회담조차 꺼려하고 있는 요즈음의 현실은 편협한 역사 인식의 덫이 한국과 일본 사(p.75)이를 얼마나 강하게 옥죄고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p.76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를 이야기 할 때 조심할 사항이 하나 있다. 흔히 아시아 대륙과 일본열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한반도 일대가 문화 교류에서 교량의 역할을 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교량은 인간이 건너다니는 연결고리일 뿐,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한반도 일대는 옛날부터 한국인이 살아왔고, 독특한 문명을 발전시켜 온 역사 전개의 무대이다. 따라서 한반도 일대가 아시아 대륙 문명을 일본열도에 전달하는 고량의 구실을 해 왔다는 표현은 자칫하면 한반도 일대에 살아 온 한국인의 존재와 그 역할을 무시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역사 인식의 왜곡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p.83) ... 아시아 대륙 문명은 한반도 일대에 수용된 후, 이곳의 주인공인 한국인에 의해 한국식으로 소화되고 변형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아시아 대륙의 문명만이 아니라, 한반도 일대에 산 한국인의 창조적 활동에 의해 형성된 개성적인 한국 문명이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p.84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이웃 나라 간에 이루어진 사람의 이동과 문화의 교류를 균형 감각을 가지고 파악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p.103

동서고금의 역사 전개에서 어떤 나라가 선진 문명을 직접 받아들일 만한 지리적 위치에 있지 못하거나 그것을 직접 소화해 낼 내재적 능력이 모자랄 때, 인접 국가에서 일단 걸러지고 새김질한 문명을 수용하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과 일본은 문명 전환에서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p.106

어떤 이가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의식과 소비 양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받아들인 것을 한 번 쓰고 내버리는 설사 문화, 일본은 받아들인 것을 꼭꼭 쌓아 두고 우려먹는 변비 문화라고. p.149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4백 여 년 전에 죽은 역사의 인물이 아니라 교토인들의 일상 속에 살아 있는 현실의 위인이다. p.305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여 나는 19세기 이래 조선이 점차(p.402) 쇠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세계정세의 변화와 국제무역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당시의 위정자들이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적절한 대책을 강구했더라면 조선은 외세의 압박을 극복하고 스스로 근대국가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p.403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인력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갑신정변은 그 주력을 제거해 버린 뺄셈의 쿠데타였고, 메이지 유신은 그 대군을 키워 낸 덧셈의 혁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p.424

료마가 일본에 남긴 최대의 업적은 메이지 유신을 추진하는 세력이 표방한 존왕양이 사상에서 양이(오랑캐를 물리침)’를 빼고 그 자리에 막부가 시도한 근대화를 집어넣은 데 있었다. 곧 두 적대 세력이 각각 지향하는 좋은 점만 골라서 황금 결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메이지 유신을 적은 비용을 들여 많은 이익을 거둔 저비용 고수익의 혁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 그 공적의 많은 부분을 료마에게 돌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p.426

역사를 추체험(追體驗)하는 것은 역사 인식을 달련하는 데 유익 p.521

일본은 민족주의가 신앙과 결합하여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반면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직설적인 언설로 주입하여 억지로 마음에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537

남한과 일본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의 천황숭배 군국주의 체제와 전혀 다른,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미국의 통치를 함께 경험했다. ... 현대의 한일 관계는 바로 이런 공통의 문명 기반 위에서 맺어지고 영위됐다고 할 수 있다. / 반면 북한은 일제강점기 말기와 오히려 유사성이 강한 소련군의 통치를 겪었다. 그리고 6.25 전쟁과 그 이후에는 일당 독재정치와 사회주의 통제경제에 익숙한 중국과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는 일제강점기 말기의 유산과 결합하여 북한식의 독특한 사회 체제를 만들어 내는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서로 다른 문명 기반을 지닌 북한과 일본이(p.641)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지 예측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남북한의 통일 또한 그러하다. 그것은 3국 모두에게 또 한 차례의 문명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642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역사 문제로 인해, 일본에 자주 민족 감정을 표출하거나 사죄와 반성을 촉구했다. 일본은 한국에 대해 지은 죄가 있는데다가 훨씬 발전한 선진국이라는 자부심도 있어서 한국의 거친 언동을 어느 정도 받아 주었다. 한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특수한 관계라는 점을 서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패전과 해(p.707)방 이전 세대를 체험한 인물들이 사회의 중추에서 물러나게 되자 특수 관계에 대한 공통 인식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일 관계는 이제 보통 관계처럼 되어 버렸다. 지금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잦은 충돌과 갈등은 특수 관계에서 보통 관계로 변한 상황에 대해 두 나라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p.708

그렇지만 한국과 일본은 70년의 현대사에서 잦은 마찰과 갈등을 겪었지만, 세계의 수준에서 보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성과를 꽤 많이 거두었다. 두 나라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인권 옹호 등 글로벌한 가치를 공유하는 동질의 국가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각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동아시아의 안전과 평화를 담보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또 국민의 생활양식과 문화 수준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선진성과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다. 국민 속에 침투한 한류와 일류라는 대중문화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성취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협력의 방법을 모색한다면 세계 문명 발전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p.708)이다. p.709

양국 국민은 먼저 역사 문제의 책임을 다음 세대에 미루기보다는 지금 세대에서 해결하겠다는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양국의 정치가와 여론 주도층은 인류가 지향해 온 보편적 가치의 기준에서 한일 관계의 역사를 해석하는 식견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서 자신들이 솔선하여 역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와 함께 양국의 국민을 납득시키고 선도할 수 있는 전략과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일 양국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역사 문제를 다뤄 온 경험, 수법, 실적을 이미 많이 축적하고 있다. p.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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