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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와 선비-백승종] 우리에게 선비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 Memento 2020-08-2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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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신사와 선비

백승종 저
사우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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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다시 선비(정신)을 소환하는 이유는 한국의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길은 외국이 아닌 우리 내면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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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킹덤> 시리즈의 유행으로 세계적으로 갓이 유행했다. GOD와 발음의 유사성 때문일까. 정작 한국인들은 의아한 반응이었다. 사실 갓 하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상투와 비실용적인 도포와 함께 고지식하고 답답한 선비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조선사회를 이끌었던 선비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아픈 역사의 원흉으로 기억한다. 근대화 시기에 성리학에 매몰되었던 그들은 고고한 이상을 실현하기는커녕 지금까지도 역사의 상처를 남겼다. 물론 선비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런 와중에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할 만한 문화를 해외에서 주목해주니 멋쩍은 기분이 든다.

<신사와 선비>는 묻는다. “오늘의 우리에게 선비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p.287)” 과거의 고리타분한 유물일까. 아니면 역사의 과오에 불과할까. 저자는 대척점에 있는 두 존재를 비교하여 설명한다. 동양(한국)에 선비가 있다면 서양에는 신사가 있다. 이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주목하는 것은 차이점이다. 서양의 신사는 자기 문명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면, 동양의 선비는 그렇지 못했다. “서구에서는 신사의 길이 결국 시민의 길이 되었다. 그러면 선비의 길에도 과연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p.11” 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선비라는 존재에 질문을 던진다.

결론적으로 책은 우리의 선비들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낙관적이었다.(p.287)” 평한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이상적인 선언은 학자나 사회의 선생으로서 역할을 할 때는 무방하다. 오히려 권장할 만하다. 문제는 국가를 경여하고 운영함에서다. 세상일은 이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물론 이상 없이 현실만으로 살아갈 때, 그 현실은 지옥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국정 운영자로서는 아마추어일 수 밖에 없다. 정치든, 삶이든 결국은 이상과 현실 간 타협의 연속이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수기치인의 성리학적 정치는 분명 이상적이고 좋은 의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갓과 같이 선비 역시 되살아 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전통의 계승이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일이 아니며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후세가 공감하는 가치와 태도를 되살리는 것이면 족(p.13)”하다. 그래서 책은 힘줘 말한다. 선비 혹은 선비정신은 한국 사회를 구할 길이다. 우리는 잊어버린 문화유산에서 시민들이 높은 문화적 수준에 도달한 분권적 사회를 지향하는 것. 지식인과 시민이 공고한 연대를 구축한 사회 (p.379)”를 만들어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한국인이라면 조선에 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가 지금껏 문제라고 생각하는 수 많은 굴레들이 이 시기에 유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상 500년의 왕조를 유지한 사례는 흔치 않다. 그것도 무력을 동원한 통치가 아닌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할지 모른다. 그 체제가 500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 어떠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지배층이었던 선비는 분명 어떤 탁월함을 지녔을 테다. 저자는 그 힘을, 우리가 잊고 살았던 탁월함에 대해 얘기한다. “문화적 전통은 단속적으로 후세에 영향을 준다.(p.12~13)” 그렇기에 지금 선비에 대해 고민할 시기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길은 멀리 있지 않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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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지혜로운 선비는 평소에 서류를 잘 정리해둔다. 임기가 끝난 그다음 날 소리 없이 관아를 떠나는 것은 맑은 선비의 법도다. 모든 장부를 투명하고 바르게 마감하여, 절대 이러쿵저러쿵 잡음이 나지 않게(p.5)하는 것이 지혜 있는 선비가 할 일이다.” p.6

신사의 길과 선비의 길에는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았으나, 양자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신사의 길은 중세 기사도에서 비롯되어, 결국 근대 시민사회의 미덕으로 승화되었다. / 선비의 길은 그렇지 않았다. 조선 500년 동안 숱한 역사적 굴곡을 겪으며 선비의 길은 더욱 세련되고 빛났으나, 퇴락한 점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가(p.10) 조선왕조의 멸망과 더불어, 선비는 명맥조차 잇기 어렵게 되었다. p.11

서구에서는 신사의 길이 결국 시민의 길이 되었다. 그러면 선비의 길에도 과연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p.11

문화적 전통은 단속적(p.12)으로 후세에 영향을 준다. ... 전통의 계승이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일이 아닐 것으로 믿는다.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후세가 공감하는 가치와 태도를 되살리는 것이면 족하다. p.13

기사도라는 중세적 유산이 신사도로 변형되어, 근대 시민국가의 건설에 이바지한 것이었다. p.19

기사도 정신은 서양 중세 귀족문화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기사의 도덕성이 강조되었고, 전통적인 상무정신이 문자로 고정되었다. 기사는 영주에 대한 봉사를 신성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기사와 왕 또는 영주의 관계 역시 법제화되었고, 거기에 종교적 신성함까지 부여되었다. p.34

하나의 제도와 관념이 후대에도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거기에는 모종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숨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통의 재발견은 그 전통이란 것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리라는 사회문화적 확신에서 출발한다. 망각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화려한 수사의 옷을 입고 부활하는 배경이다. p.38

어느 사회에서든지 지배층은 그들의 가치관에 합당한 도덕과 규범을 상정한다. 또한 그들은 계급적 취향에서 비롯한 독특한 미적 관점을 공유하기 마련이다. 지배층의 미학적 관점과 도덕 규범은 역사의 용광로에서 녹아, 하나의 독특한 세계관을 형성한다. p.83

사상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이고 다카모리 등은 구한말의 위정처사파에 해당했다. 그들은 유교적 세계관을 옹호했고, 서구 지향의 근대화를 끝까지 반대했다. 그런 점에서 양자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였으므로, 무력투쟁을 통해 나라의 장래가 결정되(p.89)었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여서 끊임없는 논리적 공방이 계속되었다. 결과적으로 저들은 6개월간의 전쟁을 통해 장차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조선의 찬반양론에는 끝이 없었다. 어느 편이 더 나았을까. 대답하기 난처한 문제다. 그러나 어느 편이 더 효율적이었는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간명하다. p.90

베네딕트의 일본관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나의 관심을 끈다. 첫째, 그의 평가는 중요한 사안을 모두 이항대립으로 설정했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면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관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평가는 인류사회의 어느 집단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 (p.95) 둘째, 일본에 대한 베네딕트의 호기심과 긍정적인 관점이 내게는 충격적이다.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은 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난 뒤였다. 그러므로 그의 연구는 미국이 한창 일본과 전쟁을 벌이던 1940년대에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베네딕트는 적국인 일본이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 베네딕트가 니토베의 책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p.96

서양인들이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호감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서너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17세기부터 일본은 네덜란드와 부단히 교류했다. ... 둘째, 19세기 후반 서양에 다량으로 전파된 일본의 다색판화도 일본 문화에 대한 평반을 좌우했다. (p.97) ... 또한 에도시대에 일본에서 생산된 도자기 역시 서양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 셋째, 일본은 비 서구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서구식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였다. ... 이에 더해 니토베 같은 일본의 근대적 지식인들은 서구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자를 다수 간행했다. p.98

기사와 사무라이의 차이(p.100~102), 선비와 사무라이의 차이(p.102~103)

지난 1000년 동안 기사도는 유럽 사회의 변화를 추동한 힘이었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p.104

클라크는 <맬서스, 산업혁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신세계>라는 책에서, 세계 주요 국가의 역사적 인구통계를 비교, 분석했다. 다각(p.108)적인 연구 고찰을 통해서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영국의 상류층은 하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자녀를 출산했다는 것이다. (p.109) ... 상류층의 사회문화적 특징이 영국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 인구 증가와 가치관의 변화가 산업혁명의 주요한 동인이며, 산업혁명의 효과를 배가시켰다. (p.113) ... 상류층의 자녀들이 사회 각 부문에 진출하자, 사회윤리 또는 가치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p.117

이러한 영국의 인구 동향은 일본 및 중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동아시아의 강대국에서는 상류층의 인구 증가가 저조했다. 하층민의 자녀 수보다 약간 많은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일본과 중국의 상류층은 자녀의 신분이 강등될까 염려했다. 그래서 출산율을 낮추는 데 힘을 쏟았다는 것이다. p.114

내가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영국 산업혁명의 주축은 젠트리였다는 점이다. p.129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은 1750년경이었다. 혁명이라고 표현했으나, 그것이 말 그대로 혁명적이지는 않았다. 기술혁신의 과정은(p.130) 대단히 복잡했다. 산업화 과정 또한 순탄하지 않았다. p.131

18세기 영국인들이 경험한 역사적 변화 가운데서 나의 주목을 끄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기술상의 발전과 진보가 눈부셨다. ... 둘째,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에는 유별난 점이 있었다. (p.133) 나라처럼 사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보장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사유재산권을 신성시했다. 특허권까지도 인정하는 사회가 영국이었다. 셋째, 영국인들의 세계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따. 여기에는 칼뱅주의의 영향이 컸다. 그들은 근면한 태도로 생업에 종사하여 재산을 증식하고자 노력했다. 칼뱅주의자들의 이러한 윤리관은 노동과 선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p.134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여덟 가지로 정리하고 싶다. 1. 농업생산력의 발전, 2. 인구 증가, 3. 기술상의 진보, 4. 지리적 이점, 5. 사회간접자본의 발달, 6. 영국의 세계 지배, 7. 정치적 안정, 8. 사상적 이유. p.136

20세기에 인류사회가 겪은 많은 변화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무엇일까.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민적 가치의 보편화가 아닐까 한다. 전통사회의 최대 약점이었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사회질서가 마침내 그 수명을 다했다. 영국의 젠트리가 선도한 산업혁명이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혁신한 셈이다. p.148

기독교는 보편종교다. 지난 2000년 동안 기독교는 거듭된 도전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서양의 역사를 견인하는 놀라운 힘을 잃지 않았다. p.153

스포츠맨십 교육을 유난히 강조한 학교는 영구의 퍼블릭스쿨이었다. 중세 기사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p.157) 명백하다. 퍼블릭스쿨에서는 스포츠맨십을 젠틀맨십, 곧 신사도의 실천으로 간주했다. 청소년들이 신사다운 성품을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교과목이 스포츠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페어플레이란 곧 신사도였고, 그 근본정신은 기사도에 맞닿았다. p.158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선례를 따랐다. 그들 역시 시민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고전인문 교육을 교과의 중심으로 삼고, 시민의 인격을 도야했다. 유럽 각국은 애국적이며, 질서 있고, 건강한 시민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따. 그 과정에서 신사도의 핵심 가치인 예절과 명예심, 애국심과 희생정신, 지도력과 근면, 성실이 강조되었다. 또 신사도를 강조하는 스포츠가 학교 교육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체육 활동의 일환으로 시민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 들었다. p.166

인간의 삶에 쾌락을 선사하는 선을 추구한다. 반면에 불행의 원천인 악을 피한다.’ 이런 주장은 중국 고대의 철인 맹자의 성선설과도 유사하다. 조선 선비들의 심성론과도 맥락이 일치한다. / 그러나 동서양의 철인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선비들은 개인과 사회의 도덕심을 배양하는 데 중점을(p.169) 두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도덕보다는 인간의 권리를 강조했다. 그들은 인간의 쾌락 또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인간은 누구나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바, 이것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라는 확신이었다. 선비들은 끝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p.170

근대사회의 지배권을 행사한 것은 부르주아지였다. 그런데 그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은 젠트리 또는 전통귀족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신사도는 근대사회를 거쳐 현대의 시민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적지 않다. p.182

유럽인들은 중세 이후 수백 년 동안 많은 역사적 경험을 축적했다. (p.194)편으로 그들은 기사도와 신사도의 전통을 의식적으로 계승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법과 기독교 신앙의 영향 아래 근대 자본주의의 싹을 틔웠다. 그리하여 현대사회는 시민의식이라 불리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에 이르렀다. p.195

한편 서구사회는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도, 합리적 판단 또한 중시한다. 그들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만 구별하는 단계에서 벗어났다. 자치와 연대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는 분위기다. 서구 시민사회는 여러 가지 여사적 경험을 겪으며 점차 저항적 존재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현대 시민사회의 미덕으로 부각된다. 21세기 서구의 시민권은 대략 그와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p.195

수기치인은 순수한 도덕적 개념이다. 나 신과 온 세상을 교화 한다는 것이다. 가르쳐서 크게 변화시키는 실천적 행위다. 물리적으로 외압을 가해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형정이다. 순전히 도덕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예악이다. 선비가 추구한 수기치인의 길은 예악을 매개로 한 것이었다. p.206

조광조는 경연에서 여형의 사례를 자세히 아뢰었다. 그와 그의 부조를 표창하자고도 주장했다. 조광조는 여형의 예를 들어,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타고난 귀천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누구든지 정심성의로 수기에 전념한다면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광조에게 사노 여형의 사례는 여간 고무적인 것이 아니었다. / 그런데 불행히도 1519(중종 14) 겨울, 조광조의 시대는 일찌감치 막을 내리고 말았다. p.222

성리학자들은 예악을 형정보다 앞세웠다. 그들은 물리적인 힘(형정)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화를 통해서 살 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 같은 시기 서양에서도 예절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 서양 사람들에게 예절이란, 신분과 교양의 차이를 드러내는 수단이자 정중하고 품위 있는 사교생활을 위한 도구였다. 그에 비해 조선 선비들의 관점은 전혀 달랐다. 선비들은 예절을 성리학적 이념의(p.232) 정화라고 확신했다. p.233

김장생과 송시열 등이 추구한 예학에 폐단이 없지 않았으나, 거기에도 순기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의와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도달하고자 한 구극의 세계가 있었다. 그것은 무한히 평화롭고 조화로운 대동의 세계였다. 차별과 대립이 완전히 소멸된 유교의 이상이 바로 대동 세계였다. 수기에 관한 송시열의 인식은 17~18세기 노론의 공통적인 가치관이기도 했다. p.234

가난하면 자신의 몸을 홀로 착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모두 착하게 만드는 것이다.” (<맹자> 진심장) 그는 이것이야말로 선비가 벼슬에 나아갈 때든, 집에 있을 때든 꼭 명심해야 할 가르침이라고 여겼다. p.237

천인합일설은 미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선비들의 굳센 의지를 표현하는 개념이었다. p.254

우리의 선비들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낙관적이었다. 인간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선비들의 이러한 신념만으로는 현실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려웠다. p.268

조선 선비들의 이상을 세 가지 측면 ... 천인합일에 관한 그들이 철학적 모색 ... 하늘의 명령에 순응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그들이 그린 천명도 ... 시끄러운 세상사를 잊고 조용히 자연에 묻혀 살면서도 언제나 자신을 다련하고 후학을 기르기에 여념이 없던 선비들의 일상 p.286

오늘의 우리에게 선비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선비들은 지나치게 추상적인 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또 자연과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체계적, 분석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고 비파할 수도 있다. / 그러나 솔직히 말해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현대인에게 결핍된 많은 미덕이 있었다. ... 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망각한 채 살았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적 자산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p.287

어지러운 세상에서 창고한 뜻을 세우기도 어렵지만, 그러면서도 심신을 온전히 지키기란 더욱 곤란한 일일 것이다. p.325

평생 인과 선을 실천에 옮기며,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애 쓰는 것. 이것이 출처의 근본이었다. p.331

선비답게 산다는 것은, 허다한 난관을 뚫고 마지막 순간까지 내면의 높은 지향을 견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요체였다. p.333

16세기부터 조선 사회는 윤리적 인간의 시대를 맞이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선비들이 윤리적으로 완벽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윤리적 하자가 발견되면, 세인의 호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조선 사회처럼 윤리적 기준이 높은 사회에서는 자칫하면 위선으로 흐르기 쉬운 법이다 실제로 선비들의 언행을 살펴보면 위선이 의심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물론 위선은 금물이다. 그러나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p.333

성리학을 근간으로 운영되었던 조선 사회의 굵직한 폐단을 몇 가지만 예시해보자. 첫째가 서얼차대, 둘째가 당쟁의 폐단, 셋째가 문체반정, 넷째가 금서를 통한 사상의 탄압, 다섯째가 위정척사를 내세운 쇄국정책이었다. p.339

풍속이 임금보다 무섭다, -장자 p.343

겉으로 보면,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국가였다. 그러나 그 실질은 달랐다. 조선은 마을공화국의 연맹체나 다름없었다. 선비들이 건설한 조선 사회의 실상은 우리가 지레짐작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 그로부터 우리는 한국 사회가 나아갈(p.378) 방향을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시민들이 높은 문화적 수준에 도달한 분권적 사회를 지향하는 것. 지식인과 시민이 공고한 연대를 구축한 사회라야 희망이 있다. 이야말로 비인간적 차별과 양극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한국 사회를 구할 수 있는 길이다. p.379

서당은 선비들의 정치적, 문화적 활동 거점으로 훗날 서원의 모체가 되었다. 또한 성리학을 연구하는 장소이자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p.416

조선시대의 스승과 제자는 정치적 운명을 함께했다는 점이다. 김종직의 제자들, 즉 정여창의 동문들은 거의 전부 무오사회와 갑자사화 때 중형을 받았다. 이렇듯 스승과 제자는 단순히 지식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학문적 이상을 공유하는 운명공동체였다. p.492

한국의 어느 기업이 공생자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내 생각에 유교자본주의는 동아시아의 현주소가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꿈이다. 만약 선비의 전통을 제대로 계승한다면 언젠가는 유교자본주의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p.501

바우만의 분석에 따르면, 시민들은 이러한 해방(자유)’를 원하지 않았다. 갑자기 확대된 자유란 무능의 동의어다. 인간이 책임과 의무를 버리면 권리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현대사회의 비극은, ‘사람들이 자유로움 그 자체를 싫어하고, 해방의 전망에 오히려 분노할 수 있다는 점이다. p.504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미래사회에 영감을 제공하는 전통의 가치를 함께 확인했기를 바란다. 이 시대의 좌표를 역사적으로 조망하는 기회가 되었다면 실로 다행이겠다. p.509

좋은 사회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결코 현재로는 충분하(p.509)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p.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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