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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이건범 외] 유예된 논쟁, 예견된 분쟁 | Memento 2020-09-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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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이건범,김하수,백운희,권수현,이정복,강성곤,김형배,박창식 공저
한겨레출판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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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시대에 호칭의 문제는 관심 밖이 었다.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씨앗을 남겨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다. 이 책은 그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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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관관계에서 호칭은 가변적이다. 누구냐에 따라, 어떤 사람과 있느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호칭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남성이자, 한 가정의 아들이자, 한 직장의 일원이고, 누군가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다. 여기에 누군가의 친구이자, 선배이기도, 후배이기도 하다. 여기에 친밀한 정도에 상황적 맥락까지 추가 된다면 같은 사람도 무궁무진한 호칭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호칭의 다양성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나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만큼, 개인의 존재가 풍부하게 비쳐질 수 있는 면이 있기도 하다.

문제는 호칭의 강압성이다. 호칭은 내가 호출 당하는일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지 않는다. 사회적 위치, 신분적 차이, 문화적 맥락 등 여러 조건들에 따라 불합리하게 불려진다. 특히,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가부장적 제도의 정착은 현재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는 이러한 논쟁을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한겨레에서 책을 쓴 이유는 서두에 나오듯, 본인들의 기사에서 호칭 문제로 호되고 논란을 당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이게 왜 문제가 되었는지 이해가 잘안되지만, 이 책이 그 논란의 해명에 그치지지 않기를 바랬다. 제목과 목차를 보고 책을 집어든 이유는 우리 전체 사회에 호칭의 문제에 대해서 궁금했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부분들은 많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p.233p.240에서 <한겨레>에서 문제가 생겼던 사안이 책을 쓰게 된 계기라고 했고, 그 계기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분석을 빙자한 소극적 해명 혹은 시대의 흐름이 본인들의 표현에 따르지 못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일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해당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기에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저자가 제시한 보다는 가 적절하다고 본다. 뉴스는 객관성을 중시하는 만큼 이라는 표현보다는 를 통해서 누구든 동등하게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호칭의 사용을 공평하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지, 개인적으로 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라고 느낀다.

호칭은 인정의 문제라는데 깊은 공감을 한다. 결국은 상대방을 어떻게, 얼마만큼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냐는 차이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호칭은 오랜 역사적 맥락을 지니겠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면 바꿔야 겠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방법을 찾아가고 고민해야 할텐데, 쉬운길은 아닐테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호칭 문제들에 대해서 동의하는 부분도,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도 많다. 각 기업에서 실시한 호칭의 변화도, 시민단체에서 실시했던 캠페인의 한계도 여기서 비롯되었을 테다. 시대가, 시대 의식이 바뀐만큼, 호칭도 따라가야 했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다. 결국 미뤄진 토론은 싸움으로 번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다면 좋은 현상이겠지만...

언어에 민감하신 분들이셔서 그런지 고유어를 많이 써서 좋다. 언어나 호칭등에 관심이 많으신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만큼 영어식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다양한 저자들이 참여한 만큼 개개인의 특성의 차이까지 강제할 수는 없었을 테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부분도 있다. 전문적인 용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반드시 그런 단어를 써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누군가의 글을 첨삭하거나 할 처지는 아니지만, 호칭과 국어의 얘기를 하면서 굳이 외국의 전문적인 용어만을 차용해서 쓰는 모습은 좋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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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은 인정의 문제고, 인정의 출발점이다.(p.26) ... 누군가 나를 부르는 호칭에는 이 정체성의 일부분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호칭으로 불리길 원하고, 그런 기대와 현실이 어긋날 때 자신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 또는 도전으로 느껴진다. p.27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호칭은 단순히 정체성 인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서열 인정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그래서 호칭을 둘러싼 갈등은 그 양상이 치열하고 졸렬하다. p.27

호칭은 개인이 속한 크고 작은 사회에서 그의 정체성과 서열을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바로 맞닿아 있다. p.28

호칭 문제는 단지 인간관계와 사회구성이 복잡해진 데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니다. 민주사회라는 선언과 갑질 사회라는 현실의 충돌이 더욱 결정(p.31)적이다. p.32

호칭은 인정의 문제이므로, 호칭을 개혁함으로써 새로운 인정의 문화, 서열(p.34) 인정이 아닌 인격 인정의 문화를 시작할 수 있다. p.35

우리 사회의 호칭 민주화에서 관건은 나이지위남녀의 차이에 따른 호칭의 서열을 어떻게 녹여버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세가지는 어쩔 수 없는 차이를 인격의 차이로 확대시켜 차별을 정당화하는 전통적인 서열 기준이다. p.35

나이는 왜 깡패 노릇을 하게 되었을까?(p.40) ... 나이는 다른 무엇으로도 왜곡되지 않는 공평한 서열 기준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 사회적 조건이 결부되지 않은 자연상태에서 가장 공평한 서열 기준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호칭과 높임법은 공평한 서열 기준에 걸맞는 권리와 의무일 뿐이다. p.41

우리 사회의 위계질서는 한 개인의 삶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처음 세워지고, 그것은 호칭과 높임말로 뚜렷하게 틀지워져 굳는다. p.44

서열 기준은 곧 인정 기준이다. p.45

이 자연적 평등에 기초한 서열은 어떤 방법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인지(p.45)라 너무도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 오직 나이 든 사람들만의 천국이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사회적 불평등에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자연적 평등을 빌미로 디미는 유일한 잣대이지만, 어찌 보면 못난 자들이 인정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디미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p.46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로 정치적 권위주의가 무너진 뒤에도 큰 변화가 없었으나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혼란에 빠졌다. 나이와 직위가 발을 맞추는 연공서열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p.51

일터에서 호칭과 높임법은 이 서열 질서를 확인하는 신분증 노릇을 한다. p.55

인정 욕구는 인간관계의 친밀성이라는 속성과 대화관계의 사회적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p.74

말 문화는 계속 바뀌므로 훗날을 대비해 이름 없는 일자리, 새로운 일자리에 번듯한 이름을 붙이는 일을 쓸데없다고 내팽개쳐선 안 된다. p.90

조직 분위기가 억압적이지 않다면 반드시 수평적이어야만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p.105

우리는 시간과 대화의 힘을 믿어야 한다. 새 신을 처음 신었을 때는 발이 편할 수 없지만 신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해지는 것처럼 새 말과 새로운 호칭도 그렇다. p.124

말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 낸다. 현실이 말의 체계를 통해 파악되는 한, 말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할 뿐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체계이자 구조다. 말이 말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임지현 교수 p.134

우리는 이 호칭을 가짐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고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언어적 능력(권능)’을 지니게 되었다. 물론 그 요구를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상대방의 권력과 더 큰 관계가 있다. p.153

호칭은 모든 대화의 첫 번째 관문을 여는 열쇠다. p.153

그러나 대화는 아무렇게나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예의가 있으며, 공동체의 인습이 있다. 다시 말해서 말하는 사람이 임의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지만 그 구조 속에서 타당하게 인정되는 언어 사용법을 중심으로 대화가 전개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화의 규칙이다. p.154

한국 사회는 더욱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언어적으로는 끊임없이 차별화’, ‘차등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큰 문제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지향점과 언어 사용의 실태 사이에 서로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말로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은 사회구조를 유지시켜나가는 접착제로서의 언어는 아직도 1차산업혁명 이전의 사회를 모델로 삼고 있는 셈이다. p.161

현재 한국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호칭의 다양성은 사실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측과 바닥으로 내몰리지 않으려는 또 다른 세력 간의 숨가쁜 수싸움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p.171

사회 혁신 에너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일상에서 나날이 사용하는 언어를 새로운 가치에 걸맞게 바꾼다면 익숙지 않은 새로운 것을 사용할 때마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이 솟구치지 않겠는가. p.172

어린이는 어른의 물리적 과거가 아니다. 대개 좀 작을 뿐, 본연의 오롯한 인격체다.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p.277

필자의 주장은 앞에서 압축, 제시 됐다. / “상대에게 꼭 들어맞는 호칭을 힘들여 찾기 보다 맥락에 맞는 상황어를 발굴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 “대인고나계의 상대성을 일일이 따져 고정적 호칭을 찾기 보다는 새로운 호칭을 위한 기제를 개발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 p.277

미래는 초연결사회의 특징을 띌 것이라 한다. ‘연결을 위해서는 협력연대가 밑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도 익숙한 것과의 물리적 결합이 아닌 이종간의 화학적 결정이 절실하다. 바로(p.278) 잡종과 혼성의 힘, 하이브리드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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