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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재구성-도진기] 다양한 방법의 판결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 Memento 2020-09-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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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판결의 재구성

도진기 저
비채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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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되지 않는 권력이기에 더욱더 견제받고 공정해야 한다. 그래서 새롭게 다양한 방식으로 판결의 내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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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 삼권분립의 정신에 입각해서 헌법을 꾸렸고, 그에 따라 살아간다. 이 원칙은 때론 무시되기도 하고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다. 어디까지나 믿고 있을 뿐이고 실재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주의깊게 보지 않는 이상 확인하기 힘들다. 게다가 일반적인 인식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 하다. 광화문1번가나 특이민원이 기사화 되는 사례를 보면, 입법사법행정의 분립 보다는 누구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느낀다. 사실 무엇이 중하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입법부든 사법부든 행정부든 구분이 무의미하다. 누구든 내 문제를 해결해주고, 살기 좋게 해주면 좋을 따름이다.

 

하지만 실재로 그런식으로 일이 해결되기는 힘들다. 뉴스 등을 통해 공론화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수 많은 불만과 노력과 아픔들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간 덕에 시간만 날아가고 있다. 삼권분립은 우리가 믿고 있지만, 실재로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입법부와 행정부는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서 일꾼을 선출한다. 그렇게 국민에 대한 민감도를 높인다. 주인인 국민이 잘 찾아오지 못한다면, 일꾼이 찾아가면 된다. 선거를 통해서 움직이고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반면 (최소한 한국에서의) 사법부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선출이 아닌 임명된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당성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절차가 선거에 의한 선출임에도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3개의 축 중에 하나는 이와는 별도로 굴러가고 있다. 선거를 통해 법관을 임명하는 것도 명암이 있으니, 그것을 따지자는 건 아니다. 이 독립되고 고립된 권력기관이 점점 동떨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서다. 이들은 입법, 사법기관의 선출된 자들과는 달리 임기가 보장된다. 자연스럽게 대중들과는 괴리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양심능력은 믿지만 그럼에도 판결의 결과에 터져나오는 불만들은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한 때는 내부자였던, 지금은 외부자인 도진기 변호사의 책, <판결의 재구성>은 그래서 흥미롭다. 다른 책들이 비교적 내부자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면, 판결의 재구성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외부자의 입장에서 쓰였다. 늘 그렇듯 외부자의 시선은 판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합리적 의심이나 판사적 양심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법원을 통해 최종적 판단을 받지만 그 최종적 판단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게 한다. 판사라는 한 인간의 고뇌의 결과물이 얼마나부족한지를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좀 더 법을, 법원을, 그들을 알아야만 한다. “무풍지대인 판결의 안쪽(p.5)”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법부 역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려운 용어를 줄이고, 한글로 쓰고, 논리적이고 쉽게 쓴다지만 판결문은 여전히 견고한 벽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판결을 분해해 주는 사람이 고마울 따름이다.

 

여기에 가장 큰 장점은 저자 그 자신이다.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한 그의 개인적 이력이 책 속에 가득 녹아있다. 일반적인 책들이 이성과 합리 위주로 사회적인 책임이나 대의명분, 정의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와 다르게 추리소설 작가다운 소설적 상상력을 통해서 사건을 보거나 설명해 준다.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법관들의 생각을 추리소설과 유사하게 풀어주어 색다르게 다가온다. 법관들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에 대해 합리적 상상력을 통해 추론하는 내용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좋다. 단순히 논리와 이성만으로 풀어내기에는 인간은 너무도 감성적이기 때문일까.

인간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사법 시스템의 기초다.(p.320)” 그렇다면 그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논리와 이성이 세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시대는 애저녁에 지났다. 현재로서 마땅한 대안이 없겠지만, 판결의 내부를 들여다 보는 일이 대안을 찾아가는 방법이 될법도 하다. 더불어 판결의 내부를 다양한 방법으로 들여다 보는 일은 더 중요하다. 다양성은 불안함의 토대가 될 수 있지만, 생존을 위한 변화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새로운 방법으로 판결의 내부를 살펴보게 하는 저자의 책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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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유전무죄나 정치가 아니라 판결의 올바른 결론을 보장하는 논리상식이다. 과연 그 부분은 시민의 절대적인 승복에 값할 만큼 완벽할까. 늘 그렇지 못하다는 게 나의 솔직한 생각이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폭주하듯, 비판받지 않는 논리는 독선에 빠진다. 무풍지대인 판결의 안쪽에 안주하며 내적 연마를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닌지. p.5

사법부의 결정은 따라야 한다. 이건 우리 사회의 질서이다. 하지만 판결 안의 추론 과정에 마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늘 옳다는 보장이 없고, 얼마든지 헤집어볼 수 있다. 유전무죄 비판과 진영 논리들 때문에 오히려 면책되었던 판결의 내부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그래야 판결이 졸지 않고, 외곬 논리는 도태된다. p.6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원칙은 법률가라면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원리를 어느 경우에, 어디까지 적용할 것인지는 각자의 척도가 다른 것 같다. ‘의심의 취향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계량화되거나 더 세부적인 기준이 있으면 좋으련만, 지난한 작업이다. 많은 부분이 판사 개인의 결단에 맡겨진 현재는 사법부와 대중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 p.44

세상에는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발장형범죄만 있는 게 아(p.53)니다. 더 많은 돈을 탐한 이욕 범죄도 있다. 오히려 살인에는 이쪽 동기가 더 흔하다. p.54

유죄로 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바늘 끝 같은 의심도 들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극한의 입증을 요구할 때 발생하는 재판 불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절충으로 확립된 형법상 원칙이다. p.56

형사책임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환상 하에 유지되고 있다. 심신상실은 자유 의지가 없었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이다. 그래서 형사책임을 지우지 않는다. 이 경우는 이 아니라이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p.63

전문가에게는 논리 협곡이라고 불러도 좋을 맹점이 존재한다. 한 우물을 깊게 파 들어갈수록 보이는 하늘은 좁아진다. 분석이 깊어지면 종합은 죽는 것이다. 사회의 정서와 동떨어졌다고 질타당하는 결정들이 혹시 이런 논리 협곡에 빠진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일도 가치 있을 것이다. p.78

판결을 순전히 논리적 측면에서 요모조모 살펴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모든 작업은 비판을 견디고 진화해나가며, 판결도 예외일 리 없다. p.110

판례에서 수없이 언급되는 전체적, 종합적 고찰은 다른 말로 하면 확률론이다.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완전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종합적 증명력이 있다는 것으로 판단되면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법리는 살인사건의 재판에 종종 인용된다. 풀어보면, 각각의 증거들이 범죄를 입증할 개별 확률은 높지 않는다 해도 그것들이 한 사건에 다 모일 확률은 얼마나 낮은가, 하는 의미가 되겠다. p.129

재판은 무죄추정, 마음은 유죄추정. 이것이 법관의 현실일지 모른다. 기소된 사건 대부분이 유죄이기에 객관적 통계에서 우러나는 그 선입견은 완전히 지울 수 없으리라. p.171

지옥의 가장 밑바닥은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 되어 있다.” - 단테 p.179

헌신을 강요하는 건 일회성으론 먹힐지 몰라도 영속적이지 못하다. 효율을 위해서도 그렇다. 좋은 제도는 윤리를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p.191

음란물 여부를 직관적으로 인지하는 건 논리의 영역이 아니란 얘기다. 그 실체란 어쩌면 우리 공동체 정서에 거슬린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p.196

창조는 어렵고, 규제는 쉽다. 만드는 게 어렵지, 망가지는 건 순간이다. p.239

법은 감정의 제국이다. 모든 형벌과 법제도의 근간은 감정이다. p.248

절차라는 것이 빠져나가는 악인을 잡아내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재판을 방해하고, 태클을 거는 쪽이다. 영화 속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렇다. p.284

현대법의 트랜드는 한마디로 절차의 실체에 대한 우위로 표현될 수 있다. 절차는 다 아는 그 절차고, 실체는 풀어 말하면, ‘올바른 결론’, ‘진상정도가 되겠다. 즉 사건의 진상에 다다르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절차를 꼬박꼬박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방향으로 기울었다는 의미다. ... ‘절차적 정의’ p.288

형사소송법은 악인을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한 법이다. p.291

한국에는 5천만 명이 살고, 5천만 개의 정의가 있다. 각자의 정의만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우긴다면, 혹은 힘을 얻은 세력의 정의만이 지배한다면 사회는 끝장이다. 개인의 정의관도 변하며, 지배세력은 바뀐다. 누가 옳은지 누가 판단 할 것인가. 판사도 모른다. 정의만을 좇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안전수칙, 즉 절차를 지키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치주의이다. p.292

인간에 대한 불신이야말로 사법 시스템의 기초다.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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