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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노승대] 종교의 절대성 | Memento 2020-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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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노승대 저
불광출판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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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절대적이겠지만, 종교는 절대적이지 않다. 사람의 일, 사람이 하는일이 늘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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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든 모든 부산물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자연발생 하더라도 그 시발점은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종교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저마다의 신이 실존하더라도 종교는 결국 사람의 일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필연적으로 상호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학(천도교)이나 대종교 역시 우리의 토착 종교지만 결국 서학(천주교)이나 다른 외국의 종교에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종교의 토착화 역시 같은 맥락이다. 종교가 아무리 절대적이라 할지라도, 전도가 이뤄지고 전파가 되려면 상대를 이해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언어로, 문화로 설득해야 하는데 종교의 토착화는 불가피하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순수한’ ‘고유의 종교는 존재하기 어렵다. 인간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익숙함으로부터 고유함을 뽑아낼 수밖에 없다. 얼마나 토착화를 잘 하는가가 외래 종교의 성패를 가늠한다. 특정 종교의 기원을 따지고 가다보면 필연적으로 원종교와는 상이한 이교의 문화가 포함되는 일은 불가피하다.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머니도 산다>는 불교가 토착화를 하면서 어떤 모습을 띄었는지 살펴 볼 수 있다. 불교는 삼국시대에 전래되어 고려시대 국교로서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존재해온 종교다.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띌 수밖에 없다. 불교의 도입은 전제왕권 강화와 관련해서 상당히 반발을 샀다. 이차돈의 순교 등의 전설이 이를 대변한다. 우여곡절 끝에 공식 종교로 채택이 되었지만, 분명히 대중적이기 위해서는 이를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방법은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념과 융합하는 게 가장 좋았을 테다. 이 과정에서 도깨비도, 삼신할머니도, 산신령도 기타 다양한 동식물들이 자연스레 불교와 융합했을 테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전국 각지에 남아서 당시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그때의 불교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불교를 넘어 무엇을 욕망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흔히들 종교는 절대적이라고 믿고 이를 신봉한다. 인간은 토론과 이성으로 많은 것을 해결 할 수 있지만, 종교 분야는 유독 어렵다. 믿음의 영역은 이성이나 감성을 뛰어넘어서야 하는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절대적이고 초월적인(혹은 그렇다고 믿는) 종교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변화의 폭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봐야할까. 종교라는 게 결국은 사람의 일인 만큼, 절대적이고 목숨 걸 일인가 싶기도 하다. 우리 역사와 오랫동안 함께해온 불교의 토착화를 바라보며, 종교보다는 오히려 사람의 근본적인 욕망이 변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욕망을 어떻게 담아내느냐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문화에 따라 변화할 것이고, 그게 종교의 대중화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종교는 사라질 테고, 그 신은 잊혀 지거나 숭배자를 잃을 테다. 벼락 맞을 소린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 모든 게 급변하고 있다. 일상에서 당연했던, 차 마시는 모임조차도 두려워하게 되었다. 종교도 다르지 않다. 당연했던 모임(예배)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히려 모임을 강행했다가 집중포화를 맞았다. 신의 뜻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펼치는 악마가 되기도 했다. 종교는 만남과 모임에서 근원적인 힘이 창출된다. 서로의 의지를 다지고, 공동의 행위를 통해 내부의 결속을 다진다. 이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닿아있다. 하지만 지금은 일상적인 종교 행위가 불가능해졌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온라인을 통해서 간신히 유지하지만 대면보다는 아무래도 약할 수밖에 없다. 종교를 믿는 세대의 고령층은 특히나 대면 문화에 익숙하다.

신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종교는 사람의 일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변한다. 종교도 변할 수밖에 없다. 변하지 않는다면 종교 역시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흑사병이 기독교의 쇠퇴와 중세 시대의 몰락에 기폭제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코로나는 우리 시대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종교는 또 한 번 큰 기로에 섰다. 어떤 길을 찾아갈지, 어떤 기록을 남길지. 코로나 시대의 종교는 또 다른 토착화가 필요하다. 옛날의 불교가 도깨비와 삼신할머니를 포용했듯.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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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이르러서는 사찰 불사를 전담하던 스님들의 맥이 많이 끊어지고 건축부터 불상 조성, 불화 작업 등이 거의 다 민간의 전문가에게 넘어갔다. 그래도 절집에서 민화를 자구책으로 받아들인 덕분에 서민들의 소망이 담긴 벽(p.198)화들이 고찰마다 남아 있어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p.199

연을 표시하는 간지를 세차, 월을 표시하는 간지를 월건, 일을 표시하는 것을 일진, 시간을 표시하는 것을 시진이라 한다. 곧 간지로 연월일시를(p.215) 다 표시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간지를 사주라 하고 모두 합치면 여덟 자이기 때문에 팔자라고 한다. p.216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은 아주 아득한 옛날 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담배는 임진왜란 무렵에 처음 일본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그리 먼 시절도 아니다. p.231

불행하게도 1980년 이후 사찰에서 비불교적 요소의 그림들을 지워 버리는 운동이 전개되는 바람에 대다수 대중들의 정서를 담았던 벽화들이 사라지는 아픔이 있었다. 순수불교를 주장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포용했던 불교(p.233)의 융통성이 없어진 것이기도 하다. p.234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행원은 승속을 떠나 모든 불자들이 반드시 행해야 할 구도의 지침이며 목적이다. p.295

불교에서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고 보현보살은 행원을 상징하고 있듯이 사자는 백수의 왕으로서의 지혜와 용맹을, 코끼리는 거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정진과 원력을 상징한다. p.314

어느 나라가 되었든 그 나라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들의 민간신앙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느 민족이나 고대로 올라 갈수록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있다. p.333

원래 귀신이란 글자에서 귀는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초인적 존재이고, 신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초인적 존재였다. ... 유일신 신앙이 들어오면서 귀신이라 하면 모두 미신의 대상이 되어 싸잡아 나쁜 의미로 변하게 되었다. p.333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오욕에 물든 세상이지만 중생의 마음이 청정해지면 이 세상이 바로 정토요 극락세계라는 것이다. 곧 번뇌와 망상이 다 떨어진 자리, 그 자리가 바로 극락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마음을 어(p.397)떻게 쓰느냐에 따라 행복도 만들어 내고 불행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p.398

새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수명을 함께하는 새이기 때문에 머리는 둘이지만 몸은 하나로 되어 있다. (p.488) ... 모든 중생은 공명조의 운명과 같다. 이것이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저것이 멸하면 이것이 멸하는 법이다. 지구 환경이 나빠지면 모든 중생이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마음만 비우면 고생의 삶을 살 수 있다. p.494

조선은 국가 운영 이념으로 유교를 선택하였지만 도덕과 윤리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곧 중생들의 원초적 희망인 무병장수와 질병퇴치, 사후명복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불교라고 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기도할 수 있는 공간과 의식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도 불교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대 사회부터 인류는 하늘에 빌든, 산천에 빌든, 바위에 빌든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빌어 왔다. 그렇게 비는 문화는 인지가 발달하면서 고등종교인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로 옮겨갔지만 인간의 소망을 비는 풍습은 없어지지 않았다. 조선 시대 들어와서도 국가의 이념은 유교였지만 안녕과 장수, 선왕의 명복을 비는 것은 절집에 의존했고, 그렇게 해서 생긴 원당사찰이 도처에 있다. p.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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