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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강양구 외] 반복된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 Memento 2021-01-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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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강양구,권경애,김경율,서민,진중권 저
천년의상상 | 2020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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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노무현의 유산을 이은 정권이라면 그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때가 아닐까. 이상마저 잃는다면 남는 건 최악의 경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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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딴지를 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같은 나라를 경험해 본 적 없다. 당연하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 변화와 경쟁을 신봉하는 나라에서 같은 경험을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역사는 반복한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지닌 한계에서 유래한다. 인간은 어리석고, 잘못된 욕망은 우리의 눈을 가린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역사는 반복하는 듯 보이는 이유는 반복된 실수의 모습이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현상은 유사하다. 이러한 현상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낸다면 유사성이 보이고, 하나의 진단이 가능해진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를 부제로 가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진단중 하나다. 한국 정치역사상 진보정권은 3번째 집권중이다. 어느 정도 경험과 역사가 쌓였다. 실수들의 묶음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현상을 살펴볼만하다. 책의 제목은 대통령의 말을 비꼬는데서 보이듯 그 수위가 높다.

지금의 진보정권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에서 비롯되었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대부분 그와의 인연을 전면에 내세운다. 여기에 본인이 옳다고 믿었고 그렇기에 타협하지 않았던 전 대통령의 모습은 출판물과 다큐멘터리, 방송 등을 통해 공고해 졌다. 많은 사람들이 (뒤늦게라도) 그의 옳음에 공감을 했고,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인적, 정신적, 물질적 자본들을 자산을 바탕으로, 현 정권은 우월적 지위를 확보했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현 정권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권은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상대가 더 못해서 정권을 얻었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가 아닐까. 정당 내에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취해야만 한다. 그래야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힘을 얻고 난 후가 중요하다. 그의 유산을 넘어서려는 순간 기반을 잃고 만다. 노무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상 발전은 없다. 지금의 상황은 분명하다. 옳은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쳐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소위 대깨문으로 불리는 극성지지자들의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전의 트라우마와 경험으로 철저히 무장해 있다. 우리가 옳으며, 옳은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끝까지 버텨내야 한다 믿는다.

정치는 자기편을 늘리고 적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적이 너무 많았다. 그의 노선과 생각은 선명했기에 피아의 구분이 확실했고 피아의 투쟁이 강렬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옳다(부동산이든, 방역이든, 뭐든). 진짜 옳은지는 따져봐야 안다. 설사 오늘 내가 맞아도 내일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항상 옳을 수도, 매번 옳을 수도 없다.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이, 도덕적 우월성을 바탕으로 한 판단들은 수 많은 적을 만든다. 적들은 상대가 오판하기를 기다린다. 적이 많다면 불가피한 상황이다. 타협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억지로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잘못을 인정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항상 옳지 않다는 사실은 염두 해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사건들이 현 정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반 국민들 그리고 지지자들도 보기에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생긴다. 의문에 대한 대답이 정무적 침묵판단으로 일관하고, 정치적 공학과 수사에만 그친다면 노무현의 유산을 이었다는 사람들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을,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말인가. 말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 실언한다면 100년의 정권창출은커녕 다음에 바로 몰락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노무현 정신을 이었는지, 아니면 노무현 정신의 껍데기만 이었는지 고민해야 한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옳음도, 정권도, 이상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봄직하다. 최소한 이상이라도 지켜야 한다. 모든 것을 지키려다 보면 아무것도 손에 남는 게 없는 법. 보수가 자신들의 가치를 잃었을 때 촛불정국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순간을 경험했다. 진보가 자신들의 이상을 잃고 정권만 갈구하게 된다면 그때는 진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이뤄지지 않을까.

말도 안 된다고만 생각한다면 나아질 수 있는 건 없다. 어떤 얘기라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 다만, 지난 역사에서 배운 게 없다면 그 양상은 반복된다. 계속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반복된 실수는 없다. 결국 그게 실력이고,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실수의 반복 끝에는 대한민국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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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저마다의 정치적 포지션이나 가치관에 따라 각 언론사들이 지향하는 나름의 어젠다를 갖고 있었습니다. 언론사 편집국은 그 어젠다를 세팅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취재 활동을 통해 다양한 뉴스들을 생산했습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가 주목받는 뉴스와 그렇지 못한 뉴스로 큐레이션하면서 뉴스 콘텐츠들이 모조리 포털 사이트의 주목 경제 속으로 수렴되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들이나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데스크 모두, 뉴스 가치를 판단할 때 이 시가를 썼을 때 주목받을 수(p.21) 있을까? 없을까?’에 자신들의 모든 언론 활동을 맞추게 됩니다. ... 자신의 언론사 어젠다 세팅에 부합하거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뉴스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볼만한 콘텐츠에 기자들이 눈길을 주기 시작하고, 데스크도 그런 기사를 발굴하라고 독려하면서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p.22

“<1987>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해 통제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즐길 거리를 쏟아 부어 사람들을 통제한다. 한마디로, 오웰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 봐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우리가 좋아서 집착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봐 두려워 했다.”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p.9~11) / p.25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p.39

사실을 뜻하는 팩트(fact)의 어원은 라틴어 팍튬(factum)입니다. 팍튬은 제작된이라는 뜻이에요. 결국 사실을 제작되는 것이라는 얘기가 됩니다. ... 다시 말해서 저에게 사실이란 이미 일어난 일로서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면, 두 사람에게는 사실이란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고 언제라도 변경할 수 있는 것인 셈이죠. p.44

미디어는 의식을 재구조화한다.” - 윌터 J. p.55

언론은 두 가지 기능을 하는데요. 하나는 팩트를 보도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어젠다 세팅입니다. 진리에는 두 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응설적 진리(인신론적 진리)에요. “비가 온다”, 진짜 오면 참이죠. 이건 팩트의 문제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직 없는 걸 만드는 게 진리(존재론적 진리)라는 관념입니다. 예를 들어 스티브 잡스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게 현실이 됐잖아요. 진리란 이런 식으로 없는 것을 있는 걸로 만들어내는 거라는 겁니다. 이게 존재(p.80)론적 진리인데, 언론에서 하는 어젠다 세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을 보면 이 부분이 과도하게 정치화되어 있어요. 왜냐면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게끔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p.81

이런 행태를 거짓 등가성이라고 부르는데요. 저널리스트들이 균형을 진실과, 의도적인 중립성을 정확성하고 혼동하고, ‘양측을 모두 보여주라는 압력에 굴복한 결과인 거죠. p.88

음모론들은 인간의 의시을 과학에서 이야기의 시대로 되돌려 보낸 것인데, 이것은 단순한 퇴행이 아니에요. 현대의 음모론은 과학 이후의 이야기라, 고대의 신화와 달리 나름 합리적 추론과 과학적 논증의 외양을 갖추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이들에게 그것들은 그저 사이비 논증과 엉터리 추론에 불과하지만, 거기에 빠진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그 오류를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죠. p.95

오늘날 보수와 진보의 스테레오 타입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보수60대 이상의 건물주라면, ‘진보50대 초중반의 대기업 부장 또는 임원이다. 60대 건물주가 20대에게 요구하는 것은(p.313) 높은 월세 정도로, 자산 소유를 기반으로 한 경제적 착취 관계다. 하지만 50대 초중반 고참 부장은 자녀들에게 경제적 교육 투자뿐만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기업체 인턴 기회를 알아봐주는 등 사실상 경쟁자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60대 중반 건물주를 상대로 적폐 청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설득력을 가질 리 만무하다. 비싼 월세는 화가 나긴 하지만 돈을 벌어서 지불하면 되는 문제라면, 교육과 노동시장에서의 불공정한 경쟁은 교육과 일자리라는 근본적인 기회및 그 결과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귀동, <세습중산층사회>(p.263~264) p.314

사람들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죠.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p.330)이에요. p.331

최근 10년의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도, 심지어 작년(2019)의 조국 사태도 결국은 노무현 대통령 트라우마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p.343

박근혜 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저는 무척 절망하고 실망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박정희에 대한 진정한 마무리, 극복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번 사태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새로운 마무리, 극복의 계기가 되었(p.350)으면 좋겠는데요. ... 노무현 대통령이 지켜내고자 한 진보의 가치를 계승하지 않은 채, 그의 죽음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p.351

586세대가 주류 세력이 되었다는 것은 곧 그 세대를 대표하는 엘리트 계층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층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국 사태는 그들이 그 동안 구축한 특권과 기득권을 2세에게 대물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요. 586세대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서민층이고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중상위층이에요. 이들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잡고 정치도 경제도 점점 장악하고 있어요. p.354

보수냐 진보냐는 태도의 문제라고 봐요. ‘바꿀 것보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사람이 보수입니다. 이제는 지킬 게 너무 많은 이들이 저들인 거죠. 또 하나는 뭔가를 바꾼다고 할 때 그 개혁이 향하는 방향입니다. 바꾸는 그 행위가 사회 전체가 아니라 자기들의 기득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게 보수인 거죠. p.364

전 세계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성찰과 반성 가운데 하나가 21세기 들어서 계급 정치의 의제, 즉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기보다는 피해 가면서 오히려 정체성 정치에 치중했다는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를 앞에 내세우면 얼핏 보면 오연을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죠. p.370

정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목적이고,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사회를 바꾸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에요. p.375

헤겔이 칸트에게 지적 질한 너는 뭍에서 헤엄을 배우고 나서 물속으로 뛰어 들거나.” p.394

칼 마르크스가 급진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안의 뿌리로 가는 것이라고 했죠. 급진적(radical)이라는 말이 원래 뿌리를 의미하는 라틴어(radix)에서 온 거잖아요. 제대로 된 진보라면 우리 사회의 고통의 근원, 그 뿌리로 들어가 그것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죠.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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