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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박훈]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 | Memento 2021-02-1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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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박훈 저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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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일본과 우리.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고, 그 차이의 결과가 어떠한지 살펴보는 와중에 미래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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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가 둘 있다. 하나는 중국이고 하나는 한국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중국을 우습게 보는 나라는 딱 하나 있다. 어딘 줄 아느냐? 한국이다."(중국을 무시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는? 프레시안, 2010.12.10.) 떼놈, 왜놈이라 하며 중국과 일본을 무시하는 역사는 길 것도 같다. 수많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늘 싸웠어야 했다. 수천 번의 외침 속에서 상대를 놈으로 격하하고, 외부인을 적으로 규정해서 내부 결속을 다질 필요가 있었을 테다. 그래야만 우리 스스로의 존재감을 유지할 수 있었을 법도 하다. 떼놈과 왜놈은 길고 긴 투쟁의 과정에서 핍박받고 상처받아 생긴 단어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고난의 역사를 보여주는 인식체계라 생각한다. 이처럼 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근원적인 인식,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똑같은 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두 국가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크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반도보다 강자였다. 분열의 시기도 있었지만, 대국으로서 압도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군사력과 문화적 우위는 중화세계의 근원적인 힘이었고, 그 체제 속에서 한반도는 겨우겨우 독자적인 생활을 영위해 왔다. 떼놈의 어원이 어쨌거나 비하의 의미에는 상위 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다. 반면, 왜놈은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게 한다. 비하의 의도는 명확하다. 우리를 창구로 중국의 문물을 수용했고, 우호적인 세력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역사가 길다. 반면, 임진왜란, 식민지 지배의 경험은 강한 증오심을 갖게 한다. 언제부터 한반도의 역량을 초월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메이지 유신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일본의 우위를 명확하게 나타내는 분기점이다. 여기에는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테다. 서세동점의 근대 세계에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식민제국으로 성장했다. 천조국이라 불리는 미국과 전면전을 한 거의 유일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그만큼 강한 일본에 대해 한반도는 늘 모순적인 감정을 가져왔다. 왜놈이라 비하하지만, 한 때는 우리는 지배했던 민족. 경제 강국이지만 점차 노쇠해가는 일본. 그럼에도 아직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 그런 와중에 극일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극일을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단계가 극복 대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만 한다. 그 시작은 분명히 메이지 유신이다. 메이지 유신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역사로 배우면 쉽다. 나아가 역사 속에서 활약한 인물들을 알아야 한다. , 유신을 설계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박훈 교수의 <메이지 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여기에 가장 적합하다.

지금의 일본은 여전히 메이지 유신의 그늘 아래 있다. 메이지 유신과 일본 제국, 그리고 세계2차 대전 후 촉발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현재의 일본을 설명하는 큰 줄기다. 이 줄기는 메이지 유신에서 시작된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메이지 유신이 촉발된 시기를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한 시대를 확인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영웅과 위인, 역사상 유명인물을 살펴보는 것이다. 역사상 유명인물이란 것은 특정 시기에, 특정 세력에 의해, 특정한 이유로 현창된 것이 쌓여 우리 앞에 제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자체가 역사적(historic이 아닌 historical) 산물’(p.112~113)”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을 살펴볼 때 보통 인물의 위대함과 한계를 살펴본다. 인물의 한계와 위대함은 당시의 시대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역사적 인물이 누구건 절대로 시대적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아무리 훌륭하고 민본주의적일지라도 조선을 현재의 민주주의국가로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를 통해 일본이 전성기를 향해가는 시대적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다.

이 흐름에 매혹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현실로 마주한다. 일본은 근대화를 성공하며 수많은 문화적 자산을 남겼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위상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은 근대화에 실패했다. 식민지를 거쳐 내전과 냉전의 격전지의 상처로 여전히 날개가 꺾여있다.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주도권을 잃은 채 시대에 휩쓸려 다닌다. 메이지 유신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들은 가능했지만 우리는 왜 실패했을까. 역사적 인물에도 마찬가지다,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유신삼걸(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등등 인재가 넘쳐났다. 우리는 왜 그렇지 못했는가. 누가 있을까? 실패한 개화파, 시대착오적인(또는 오해받는) 위정척사파는 우리 기억 속에서 희미하다. 역사에서도, 인물에서도 극명하게 비교된다. 메이지 유신, 4명의 인물을 살펴보며 박지원, 김옥균 등의 개화파와 비교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역사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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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무시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일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일본을 존경한다 해도 우리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다. p.15

우리는 모두 하늘이 펼쳐놓은 그물망 속에서 산다. 달리 말하면 시대적 제약이다. 역사상 위업을 이룬 인물들은 이 그물망의 한 부분을 뚫고 나간 사람들이다. 이들의 영웅적 활약에만 흥미 본위로 집중하다 보면 영웅사관에 빠지거나 궁중사극의 재판이 될 것이고, 그물망 분석에만 치중하다 보면 역사에서 인간의 주체성은 희미해질 것이다. p.19

영웅과 위인은 그 시대적 제약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한 겹, 두 겹, 혹은 세 겹 벗겨낸 사람들이다. p.20

역사상 유명인물이란 것은 특정 시기에, 특정 세력에 의해, 특정한 이유로 현창된 것이 쌓여(p.112) 우리 앞에 제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자체가 역사적(historic이 아닌 historical) 산물인 것이다. p.113

어떤 시대에 어떤 인물들이 교과서나 위인전에 실리고 동상과 지폐초상으로 등장하는가는 그 사회의 사상과 지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지점이다. p.113

도쿠가와 시대 사람들에게 국가는 일본 전체가 아니라 자기 번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국가의 틀을 넘어, 천하로 인식되던 일본을 새로운, 유일한 국가로 창출해가는 것, 그리고 번주에 대한 충성을 천황에 대한 충성(존왕주의)으로 전환해가는 것, 이것(p.119)이 메이지유신의 과정이었다. p.120

메이지 유신의 과정을 보면 이런 점진적 개혁의 연속이다. 구세력에 단호하게 대처하되 퇴로는 열어둔다. 오도 가도 못할 궁지에 몰아넣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이 큰 무력충돌 없이(p.275) 개혁이 진행된 이유다. p.276

일본 전통과 일본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을 유럽적인 하나의 제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p.282

철벽같은 체제를 부수고 백척간두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정말 미친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이 부국강병을 이루었을 때에는 정신을 가라앉혀야 한다. 부국강병을 손에 쥐고도 계속 이런 자세라면 대사를 그르치게 될 것이다. 이들이 여전히 제정신을 못 차린다면 국가의 핵심에서는 제거해야 한다. 초기 메이지 정권은 이에 성공했고, 1930년대 이후 일본은 이에 실패했다. p.292

메이지유신은 지금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역사 기억투쟁의 주전장 중 하나다. 그러니 우리가 현대 일본의 유래와 현재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깊게 이해하려면 메이지유신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있어야 한다. p.311

메이지유신은 그 자체로도 혁명사의 흥미로운 사례다. 거대한 변혁을 수행하면서도 기존사회의 어떤 부분은 잔존시켰고 연속성을 중시했다. 천황제의 온존은 대표적이다. 그 과정은 격렬하지만은 않았고 매우 타협적이었다. ‘연속하면서 혁신한 것이다.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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