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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조봉암 평전-김삼웅] 그게 바로 민주주의니까... | Memento 2021-08-1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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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죽산 조봉암 평전

김삼웅 저
시대의창 | 201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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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 선생은 씨만 뿌리고 떠났다. 뿌린 씨앗은 꾸준히 자랐고 우리가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이념에 갇혀 있다. 정당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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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다룬 만화, <! 한강> 3권에 다음과 같이 대사가 나온다. “나는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대통령과 싸울 사람조차 없다는 국민이 너무 불쌍하다. (p.143)” 죽산 조봉암이 했던 말이다. 조봉암은 제2대 대통령선거(1952. 8. 5.)에서 80여만 표, 3대 대통령선거(1956. 5. 15.)에서 216여만 표라는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지지의 결과는 참혹했다.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재심청구 기각 다음날인 1959731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명백한 사법 살인이다. 20079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진보당 조봉암 사건에 대해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 사건으로 결정했다. 재심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조봉암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권고했다. 2011120일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 일치로 무죄가 선고되어 복권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국가유공자로 서훈 받지 못했다.

<죽산 조봉암 평전>은 이런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항일운동가로서 그의 활동은 어떤 사람보다 치열했다.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p.29)”. 다만, 그 방법이 공산주의였음이, 우리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이념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하물며 전후 시절에는 더욱더 어마어마했을 테다. 아무리 씻어내려 해도 씻어낼 수 없는 제약으로 작용했다. 농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농지개혁을 이루고, 국회부의장으로 활동했더라도 반공주의 체제하에서 간첩이라는 딱지는 사형과 다름없는 효력을 발휘했다. 민주주의의 경험이 짧았던 당시에 대통령 각하의 명령은 헌법과 상식을 초월해서 작용했다. 문득문득 뉴스를 보면, 우리는 지금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설사 그가 간첩이었다 하더라도, 법에 따라 정해진 절차가 아니면 그 누구도 처벌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사법 살인임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다. 이건 가정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를 공유하는 우리들에게는 엄연한 사실이다. 조봉암은 사법살인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씨를 뿌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를 뿌려놓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네.(p.587)”

2020519일 주간조선은 조봉암에 대한 혐의를 입증할 만한 극비문서가 발견되었다고 단독 보도했다.(“52년 만에 공개된 김일성의 고백” 2020.5.17.) 이를 근거로 2007년 과거사정리위원회와 2011년 대법원의 무죄 선고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문서 발견자인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박사는 김일성이 주장했듯이 조봉암이 북한의 승인을 받아 출마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확실히 그렇게 주장할 수 있도록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기사에서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댓글 분위기는 다르다. 본인의 입맛에 맞는 정보가 나왔다고 다시 조봉암을 일방적으로 간첩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다. 새로운 정보가 발굴된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이렇게 또 정당한 평가를 위한 시간은 계속 유예된다. 그토록 북한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국 수장의 말은 그다지도 신뢰를 하는지 의문은 접어두더라도.

청주 간첩단 사건으로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청주 간첩단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결과는 알 수 없다. 간첩의 실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간첩은 조작된 경우도 많았다. 역사는 말한다. 국가나 조직의 붕괴는 외부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시작한다. 적은 내부에도 있다. 다만, 내부의 적은 외부의 지원이나 이념에 따라서만 생기지 않는다. 가장 강력한 내부의 적은 부정부패나 민심이반, 생활고와 같은 내부모순에 기반 한다. 내부의 실책과 외부의 지원이 함께 작용해야만 발생하는 현상이다. 월남의 패망을 말할 때, 간첩의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첩이 생기된 이유, 국민들이 베트콩이 되어 목숨을 걸고 공산당을 더 지지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외면한다. 근본적인 이유는 외면한 채, 간첩이니 배신자니 현상적인 부분에만 주목한다면 미봉책만 계속될 뿐이다. 그리고 그 미봉책이 계속되는 와중에 누군가는 간첩이 되어 피해를 입고, 내부의 적은 계속해서 증가할 뿐이다.

조봉암에 대해서 주어진 사실은 부분 부분 조각난 파편들뿐이다. 그의 행적과 말,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기록, 그리고 최근 밝혀진 극비문서 같은 조각난 사실들이다. 이 사실들을 조합한다고 온전히 조봉암의 삶을 재구성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농지개혁을 이뤄냈던 사실, 분명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6.25 전쟁당시 공산화를 막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의 전향(?)이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목숨을 걸고 행동으로 나섰음을 생각해 본다. “단일화가 되건 안 되건 이번 선거는 이승만이 이기게끔 돼 있지만, ‘이승만 박사가 무서워서 대적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 국민이 너무 불쌍하다는 그의 진심에 조금 더 신뢰가 간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니까...(<!한강> 3,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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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시간을 따라 흘러오지만 역사의식은 시간을 거(p.23)슬러 간다.” p.24

권리는 스스로 지키는 힘이 없으면 빼앗기게 된다.’ p.24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조봉암, ‘어록에서 p.29

미래에는 선과 악이 끔찍한 공존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p.31

환경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지리, 풍토, 역사의 영향을 받게 된다. 모든 사람은 유전적, 환경적 요소에 의해서 나고, 필연적으로 이 두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생물학적 실체라고 하겠다. p.73

감옥이란 이상한 곳이어서 의지가 강한 사람은 더욱 강하게 단련시키고, 약한 사람은 허물어지게 만든다. 일본인 사이고 다카모리의 시구가 있다. (p.89) 옥 속에서 쓰고 신 맛 겪으니 뜻은 비로소 굳어진다. 사내가 옥 같이 부서질지언정 기왓장처럼 옹글기 바라겠나(함석헌 역) p.90

조봉암의 특징 중 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주저앉거나 좌절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그는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 않는 의지의 인물이었다. p.183

조봉암은 1932년 체포되어 1939년에 출옥하였을 때, 그 당시 대부분의 사상범처럼 전향서를 썼을 가능성이 있지만, ‘휴식을 했을지언정 변절되었다고 할 만한 자료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는 감옥생활을 성실히 보냈는데, ‘전향서쓰는 것을 아마도 요식행위로 판단하였을 것이다. p.273

개혁은 조봉암다운 것이기는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승만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대통령은 농촌의 혁신과 개발이 급선무이며 그것이 성공해야 공산당을 이긴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다. 농촌정책에서 어떤 때는 대통령이 더욱 반지주파였다. p.316

내각책임제를 지지하고 부산정치파동에 대해 이승만 측에 강력하게 항의했던 그가 오히려 발췌개헌안 통과에 적극 나섰다는 것은 그의 정치활동에 또 하나의 오점이었다. (p.348)히 이 발췌개헌안이 이후 이승만 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의 길을 열어준 최초의 사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발췌개헌안에 대한 조봉암의 적극 지지는 자신의 정치생명 뿐 아니라 육체적 생명까지 재촉하는 자살행위였다. p.349

이승만은 국회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없어지자 전쟁 중인 정국에서 발췌개헌을 통해 직선제로 헌법을 바꿨다. 헌법이 특정인의, 특정인을 위한 장식물이 된 시초이다. /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나서고자 하는 후보가 없었다. ... 그러나 조봉암은 명색이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의 단일후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신익희 의장에게 출마를 권고했다.(p.353) ... 당선과는 상관없이 민주주의의 가치와 전통을 위해서 몸을 던지기로 한 것이다. p.354

내가 대통령 입후보를 한 데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 입장은 간단하고 확실했습니다. 불법행위를 권력으로 눌렀으니까 법을 지키는 대통령을 선거해야 된다는 것이고, 우리의 울분을 국민 앞에 호소하고 국민의 억울하고 울분한 심정을 내 입을 빌어서 대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승부는 전연 고려에 넣지 않았습니다. p.354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이 총선에서 떨어지면 정치인이 아니다.” p.373

전세룡의 이 같은 뜻을 담은 서한은 전달되지 못하고 말았다. 조봉암이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조봉암의 행적은 비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일제와 치열하게 싸우고 수년간의 감옥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이 아무리 위급한 처지라고 해도 대통령 선거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은신해버린 것은 떳떳한 행동이 아니었다. 독재자와 싸우는 정치지도자가 민주전선에 피를 뿌리는 각오를 하지 않고 국민이 흘린 핏덩이에 장미꽃이나 바칠 요량이라면, 지도자의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도자의 지도자다움은 위기에 어(p.437)떻게 대처하고 처신하느냐가 가장 큰 덕목이다. ... 조봉암이 몸을 던져 부정선거를 고발하고 전국을 누비며 공세적인 선거전을 폈다면 상황은 어찌 됐을까 궁금해진다. p.438

역사에서 가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는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지도자가 용기를 잃고 결단을 회피할 때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조봉암이 그때 비겁하지 않았다면, 4년 뒤 그렇게 허망하게 단두대에 서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p.439

조선왕조 500년의 군주체제에서 곧바로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근대적인 정당정치의 훈련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1950년대 한국의 정당, 특히 권력의 통제장치를 갖지 못한 야당의 경우는 여전히 사회적 위계와 연공서열이 중요시되었다. 이 같은 현상은 이념정당의 성격이 강한 혁신계 정당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p.453

모든 정치적 과제들은 인류의 새 이상을 한국 실정에 적용케 해서 실천하자는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 한국의 진보주의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 진보당 창당대회 개회사, 조봉암 p.475

죽산의 법정대리인인 김춘봉 변호사는 죽산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 “판결은 잘 되었다. 무죄가 안 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환갑이 다 된 사람이 징역을 살고 나면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정치란 다 그런 것이다.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에는 한쪽이 없어져야만 승리가 있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를 하자면 그만한 각오는 해야 한다.” p.568

독재자들이 향용 쓰는 말이 법대로또는 법치이다. 자신들은 초법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면서 국민들에게는 준법을 요구하고 법치를 강요한다. 위법, 불법 행위가 드러나면 권력의 장막 속으로 숨거나 어용 언론, 지식인, 법조인들을 내세워 합법을 논리화한다. p.583

19565.15 3대 정, 부통령 선거 투표를 며칠 앞두고 암살의 위기 앞에서 몸을 사렸던 조봉암이 이제 사법살인의 가면을 쓴 망나니의 칼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데도 오히려 비루한 짓을 말라며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연유일까. / 사마천은 죽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가 어려운 문제이다.”라고 말하면서, 남근이 잘리는 치욕을 딛고 살아남아 불후의 명저 <사기>를 집필하였(p.586). 그는 죽기보다 더 어려운 삶을 택하여 업적을 남겼지만, 조봉암은 비루한 삶보다 차라리 떳떳한 죽음을 택하고 평화통일론과 고루 잘사는 진보정치의 씨를 뿌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 “결국엔 어느 땐가 평화 통일을 할 날이 올 것이고, 바라고 바라던 밝은 정치와 온 국민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네. 씨를 뿌린 자가 거둔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씨를 뿌려놓고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네.” p.587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법령 때문에 사형이 집행되었다는 보도는 물론이고 장례와 묘비조차 세울 수 없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보도조차 하지 못했던 당시 언론인들의 비굴함에, 한때 언론계에 몸담았던 필자는 참괴함을 느낀다. ‘시대(p.588)모순이라는 한마디 단어로 처리하기에는, 그 시대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의 몰상식과 반지성에 분노를 느낀다. 이로 인해 뒷날 박정희 정권에서 인혁당사건과 같은 유사한 사건이 날조되어 8명의 아까운 인재들이 사법살인을 당하게 되었다. p.589

해방 조국에서 총독부 판사 출신들이 독립운동가에게 애먼 누명을 씌우고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형한 것은 반문명, 반이성, 반민족의 극치다. ...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 사법부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 참담하다. p.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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