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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진중권] 새로운 서사가 필요할 때 | Memento 2021-08-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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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저
천년의상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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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논리는 낡았고, 진보세력의 기득권화로 민주화 서사 마저 붕괴했다. 기존 것을 고쳐쓸 것인가, 제3의 길을 찾을 것인가. 전자를 위해서는 이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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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어떤 명분을 가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신뢰하는 정치인을 다시 잃을 수 없다는 마음, 정당한 권력을 행사해 민생을 부양해 달라는 의사, 비리를 척결하고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대의. 그 어느 명분도 이 명제에 예외를 부여할 수 없다. 비판 받지 않는 권력은 어긋날 수 밖에 없다. 마치 살찌는 것과 같다. 권력의 몸집이 커지는 만큼 자기통제가 어렵고, 공격 받는 면적이 커진다. 각종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과연 이러한 사태를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하는 걸까. 비난의 강도는 점점 거세진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창출이다. 그렇기에 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비난할 수 없다. 다만, 정치성향을 떠나 행정의 신뢰성과 정책의 지속성에 관한 문제다. 역점으로 꼽았던 부동산 문제는 선거와 표를 의식해서 누더기가 되었다. 정책의 미비를 보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행보는 혼란과 분노만 가중할 뿐이다. 방역도 마찬가지다. 말 잔치속에서 희망보다는 고통이 부각된다. 통계와 숫자 속에서 K만이 난무할 뿐, 정작 국민들은 K를 체감하기 어렵다. 그들이 본받고자 했던 사람의 정신에는 실책을 겸허히 인정했던 사람이 있지 않았던가.

진중권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강하게 비판한다. 노선을 갈아탔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비교적 피아구분 없이 모두를 까는 사람이다. 관종이라면 할 말 없지만, 괜히 모두까기 인형이라 불리는게 아니다. 진중권은 말한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 서사와 함께 민주화 서사도 파탄(p.332)”났다. 수저를 잘못 문 대다수 젊은이들은 민주화의 위선을 경멸하며, 민주화한 사회의 현실에 절망한다.(p.333)” 변화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젊어지려면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살해당해야 한다.(p.334)”고 말한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비장하게 만들었을까.

현재의 상황은 진보세력의 보수화, 기득권화에 있다. 민주당이 진보세력,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다면 국민의 힘당은 보수세력, 산업화 세력을 대변한다.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보수세력은 무너지고 진보세력이 3번째 정권을 쟁취한다 산업화 시대의 논리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파열음은 민주화 시대의 논리가 현재 사회와 괴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주화 세력의 “‘존재는 오래전 기득권층으로 변했으면서, ‘의식으로는 자기가 진보라 믿(p.331)”을 따름이다. 몸과 생각이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 갇혀 현재를 보지 못하고 있다.

과거 민주화 운동시절 대중과 함께 했었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일했고, 대중과 함께 행진했다. 하지만 기득권 된 그들은 대중과 괴리되었다. 특히 청년 세대가 그렇다. 그들이 전쟁 이야기에 넌더리를 냈던 것처럼, 요즘 젊은이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늘어놓는 민주화 서사를 냉소한다. 그들이 외쳤던 기존의 도덕은 변화된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잘난 민주화가 이뤄진 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은 상속과 세습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p.333)”이다. 자신들은 최소한 일자리와 아파트 한 채라도 받았지만, 현 세대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그들만의 먹고사니즘과 내 자식을 위한 내로남불은 젊은 세대의 분노를 일으킨다. 낡아버린 그들만의 도덕은 청년세대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 타도하고자 했던 괴물을 어느새 타도한 사람들이 닮어버린 셈이다. 아니 그들이 살해한 나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p.332)”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촛불혁명에 따른 촛불정권은 본연의 서사를 상실하고, 코로나19 속에 휘청이고 있다. 하지만 꼭 코로나19 탓만은 아니다. 혁명은 성공하는 순간 반혁명이 된다.(p.261)” 이는 불가피하다. 또한, 우리가 접하는 수 많은 비리와 부패는 진보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은 바뀌어도 권력은 늘 그 자리에 있(p.56)”기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든 결국 기득권이라면 부패한다. 결국 우리는 제3의 길을 모색하거나, 기존의 것을 고쳐써야 한다. 산업화도 민주화도 어느 정도 이룩한 새로운 시대에 화두는 무엇인가. 기존의 정치, 좌우가 쇄신할 방법은 무엇일까. 그저 거수기로 남아있는 청년세대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에는 거기에 대한 대안 제시가 없어 아쉽다. 다만, 우리가 기존의 것을 다시 써야 한다면, 진중권의 비판은 참고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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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뜻하는 팩트(fact)의 어원은 라틴어 팍툼(factum)이다. 팍툼은 만들어진이라는 뜻이다. 결국 사실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p.16

기술적 상상력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 그리하여 언젠가 다가올 미래에서 바람직한 사회의 비전을 가져와 지금 여기에 실현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선동가들은 대중이 가진 이 기술적 상상의 욕망을 흘러간 과거로 데려가, 이미 벌어져서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잘못을 부정하고 은폐하고 변명하는 가망 없는 노력에 낭비하게 만든다. p.19

현대의 대중은 사실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루한 일상에 충분히 지쳐 있다. 그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멋진 환상이다.” - 괴벨스 p.25

비리가 터질 때마다 도대체 청와대나 정권실세 이름이 빠질 때가 없지 않은가. 정권은 바뀌어도 권력은 늘 그 자리에 있다. p.56

이 이론은 그 어떤 유신론보다 더 원시적인 것으로 호메로스의 사회이론과 유사하다. 호메로스는 이 땅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올림푸스의 신들이 벌이는 공모의 결과라 믿었다. 사회의 음모론은 이 유신론, 즉 신의 변덕과 의지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믿음의 한 변종이다. 그것은 거기서 신을 떼어내고 대신 이렇게 물을 때 성립한다. ‘신이 아니면 누가?’ 신의 자리는 이제 여러 유력자 혹은 유력 집단들로 채워진다.” (칼 포퍼) p.57

사회란 각 개인, 계층, 계급의 욕망을 필연적 법칙이나 우연적 계기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합력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고대에는 사회과학이 없었기에, 그 시절 사람들은 모든 사회 현상을 신화로, 즉 신들이 끼리끼리 속닥거려 세상을 움직인다는 이야기로 설명하곤 했다. / 음모론은 인간의 의식을 과학에서 신화의 시대로 되돌려 보낸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퇴행이 아니다. 현대의 음(p.60)모론은 과학 이후의 이야기라, 신화와 달리 나름 합리적 추론과 과학적 논증의 외양을 띠기 때문이다. 음모론의 절반은 사실, 나머지 절반은 상상이다. 절반의 거짓이 그냥 거짓이듯이 절반의 사실도 실은 허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허구는 사실의 자격을 요구한다. 그 요구를 반박하는 것은 아주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다. p.61

음모론은 일견 합리적 추론의 외양을 띠나 그것과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음모론은 대개 비경제적이다. 그것은 설명해주는 것보다 설명해야 할 것을 더 많이 남긴다. ... 둘째, 음모론은 편집증적이다. 그래서 고려해야 할 수 많은 요인 중 특정한 것에만 집착한다. ... 셋째, 음모론은 망상적이다. 그리하여 음모의 효과를 과대평가 한다. p.62

음모론은 과학 이후의 이야기라서 이처럼 과학(?)의 지원을 받곤 한다. 전문가들의 개입은 사실과 상상이 뒤섞인 이 허구에 과학의 외관을 입힌다. 그들의 권위에 기대어 시민들은 자기가 합리적으로 추론한다는 착각에 빠진 채 미신을 믿게 된다. 이렇게 음모론에 동원되는 순간 과학은 신화의 도구로 전락한다. p.65

팬덤은 상상의 공동체. 팬에게는 오직 팬 객체만이 중요하지만, 팬덤에게는 그 대상을 사랑하는 이들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느낌이 더 중요하다. 이 집단정체성이야말로 팬 현상과 구별되는 팬덤의 본질이다. ‘정체성은 본디 배타적인 것. p.74

팬덤은 지지자가 아니라 구축자다. 그들은 팬 객체를 통해 자신들의 상상계를 실현하려 한다. 그들에게 정당이란 리비도적 나르시시즘의 수단일 뿐. ‘너희는 현실을 연구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그 현실을 너희들은 나중에 연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팬덤의 멘탈리티다. p.80

정치가 마케팅이 되면 정당은 기업이 된다. 기업의 목적은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정당이 기업이 되면 공공선은 더 이상 활동의 목적이 아니게 된다. p.88

유권자가 정치 서비스 시장의 소비자로 행세하는 곳에서는 당연히 철학을 가진 정치인이 등장할 수 없다. 그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수동적으로 대중의 니즈에 영합하는 무색무취의 정치인, 아니면 능동적으로 대중의 니즈를 조작할 줄 아는 포퓰리스트 선동가뿐이다. / 마케팅 정치는 공적 사안을 사적 용무로 바꾸어놓는다. 공적 활동으로서의 정치가 사적 소비행위로 사라질 때 위기에 처하는 것은 공화국의 이념이다. p.91

근대 이후 삶은 과도하게 진지해졌다. 놀이는 삶의 주변으로 밀려나 아이들의 것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나마도 안 되어 아이들도 놀지 못한다. p.94

구술사회는 항상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구술사회는 늘 현재에 살기에, 이제는 필요 없게 된 기억을 지움으로써 평형 혹은 항상성을 유지한다.” (윌터 옹) 구술사회는 늘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의 기억을 재편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필요 없는 기억을 지워버려도 되는 것(p.118)은 물론 말은 글과 달라서 발화되는 순간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리라. p.119

숨은 신은 하늘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우리 안의 저 깊은 곳에 계신다. 그리고 거기서 역사하신다. p.136

전광훈 목사는 한국의 기독교가 아직 종교성의 현대적 수준에 이르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개신교 일각의 이 중세적 광신이야말로 이 땅에 횡행하는 수많은 이단의 밑거름인지도 모른다. p.139

그러므로 두려워하자. 하지만 정확히 두려워하자. 그리고 연대하자. 코로나19보다 무서운 것이 혐오 바이러스다. p.162

선교사들은 이 땅에 먼저 병원과 학교부터 세웠으나, 그 후예들은 구약으로 과학을 대신하고 기도로 병원을 대신하려 한다. p.174

진화론이 등장했다고 해서 기독교가 무너지지는 않았(p.174). 그것은 교회가 세심한 해석을 통해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말씀의 본질을 보존해왔기 때문이다. 해석학적 무능은 성서에서 미신과 편견만 읽어냄으로써 기독교를 시대에 뒤진 종교로 만들 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타인을 죄인이라 부르는 것은 외국에선 처벌받는 범죄이며, 무엇보다 성서에 위배된다. 예수는 타인을 함부로 정죄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p.175

민주주의의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고 반대편에는 꽤 견고한 견제세력도 존재한다. 고로 이 정권을 파시스트 정권으로 규정한다면, 그 역시 부당한 선동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커뮤니케이션이 강한 전체주의적 특성을 보인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p.207

정치가 피아 구별로 이해되고 민주주의가 다수결(p.231) 환원될 때, 1930년대 독일처럼 민주주의는 반대물로 진화한다. p.232

그들이 원하는 것은 김대중-노무현의 정신이 아니다. 그들의 손에서 두 대통령은 이미 마케팅에 필요한 상표로 전락했다. p.249

소련의 예가 보여주듯이 혁명은 성공하는 순간 반혁명이 된다. 권력을 잡은 혁명은 그 권력으로 먼저 혁명가들부터 제거하기 때문이다. p.261

법이 작은 원이라면, 윤리는 그것을 포함한 큰 원이라 할 수 있다. 큰 원에서 작은 원을 뺀 여집합이 법적 판단과 별도로 존재하는 윤리적 판단의 영역이다. 바로 거기가 지도자의 도덕 역량이 발휘되는 영역이며, 거기서 우리는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엿본다. 하지만 =윤리라는 야쿠자 등식은 그 영역을 증발시킨다. 설 곳을 잃은 통치 철학은 이제 지지율의 정치공학으로 대체된다. p.274

대통령 윤리는 그가 자기를 위해 일하는 이들에게 정해주는 기준을 통해, 혹은 의회와 법원이 그들에게 정해주는 기준을 통해 가장 잘 알려진다.”(S.C. 길먼) 즉 대통령은 기준을 정해주는 행위로써 국가공동체의 성격을 결정한다. p.275

원래 공화국은 공무(re publica)’를 뜻한다. 그런데 마음에 빚이 있다라는 말은 사적 감정의 표현으로, 공화국의 대통령이 공식석(p.275)상에서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국가 공동체의 가치를 세워야 할 대통령이 윤리적 판단의 영역을 없애고, 그 공백을 내 식구철학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p.276

그것은 그저 통계학상의 추상적 수치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어머니와 할머니, 남편과 아내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개의 생명과 개개의 인간의 존중받는 공동체입니다.” - 메르켈 p.287

팬덤 정치의 문제는 대의민주주의 절차를 건너뛰고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정당정치의 시스템이 망가지는 것이다. p.291

권위주의 파괴의 연출이 필요한 것은 정권이 여전히 권위주의적이라는 얘기다. ... 연출은 그게 일상이 아닌 곳에서나 필요한 것이다. p.298

정체성이란 이렇게 현실적 자아를 이상적 자아로 착각하는 오인의 결과로 발생한다. p.317

한국 정치는 그동안 두 개의 큰 이야기로 움직여왔다. ‘산업화민주화서사. 이 두 서사는 동시에 두 세대를 대표한다. 산업화를 이끈 할아버지 세대와 민주화를 이룬 아버지 세대. 202021대 총선을 통해 사회의 주류는 전자에서 후자로 교체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산업화에 대한 민주화 서사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586세대가 주류로 등극함으로써 민주화 서사 역시 해당 서사로서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p.324

존재는 오래전 기득권층으로 변했으면서, ‘의식으로는 자기가 진보라 믿는 것이다. p.331

그들은 이렇게 바꿀 것보다 지킬 것이 더 많은 보수층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살해한 나쁜 아버지보다 더 나쁜 아버지가 되었다. 산업화 세대는 적어도 그들에게 일자리도 얻어주고 아파드도 한 채 갖게 해줬다. 하지만 586세대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일자리도 아파트도 주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식들에게 재산과 학벌을 물려주느라 그 검은 커넥션을 활용해 다른 젊은이들에게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린다. p.332

산업화 서사와 함께 민주화 서사도 파탄이 났다. 우리(p.332) 세대의 전쟁 이야기에 넌더리를 냈던 것처럼, 요즘 젊은이 세대는 아버지 세대가 늘어놓는 민주화 서사를 냉소한다. 그 잘난 민주화가 이뤄진 사회에서 성공의 지름길은 상속과 세습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수저를 잘 물고 태어난 소수를 제외하고, 수저를 잘못 문 대다수 젊은이들은 민주화의 위선을 경멸하며, 민주화한 사회의 현실에 절망한다. p.333

사회가 젊어지려면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살해당해야 한다.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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