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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의 설계자들-하세가아 쓰요시] 종전의 설계자들이 만든 전후세계 | Memento 2021-08-18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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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종전의 설계자들

하세가와 쓰요시 저/한승동 역
메디치미디어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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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의 설계자들이 만든 전후 세계는 가해자들보다 피해자들에게 혹독했다. 여전히 우리는 그 세계 속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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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과거로서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이란 가정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정을 통한 사고실험은 과거의 사실와 역사적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저자 역시 말한다. 역사의 가정은 실제로 선택된 결정의 성격을 더 명확하게 복기하는 효과가 있다.(p.908)”.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중 하나가 독립의 순간이다. 김구 선생은 일본의 항복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천신만고로 수년간 애써서 참전할 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일본이 갑작스럽게 항복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당당히 참전국으로 인정받아 통일된 한반도를 이뤄냈을까? 통일에도 불구하고 6.25전쟁과 똑같은 비극을 겪고, 분단의 아픔을 재현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알 수 없다.

<종전의 설계자들>은 이런 가정에 도움될 만한 명확한 사실을 제시한다. “미국과 소련 미국과 일본, 소련과 일본 간의 치열한 각축과 흥정, 모략과 술수가 낳은 이 20세기적 전후질서는 지금도 우리 삶의 규정적 요소로 작동하고 있으며,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한 한반도의 근현대는 패전국 일본보다 더 가혹하게 굴절됐고, 전후질서 짜기에서도 다르지 않았다.(p.18)” 일본의 무조건 항복 수락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우리는 철저한 반성과 청산을 전제한 일본 패전후의 질서가 아닌, 전쟁범죄 은폐와 담합과 무책임으로 얼룩진 종전후의 질서(p.28)”속에 살고 있다고 역자는 덧붙인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었고, 여전히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다. 그렇기에 <종전의 설계자들>을 통해 “‘태평양전쟁은 어떻게 종결됐는가를 복잡한 국제관계와 국내 정치역학의 긴밀한 연계를 중심으로 자세히 검토(p.46)”해 봄으로써 미국, 소련, 일본의 선택을 복기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무기력했던 옛날을 돌아보고, 여전히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기에 부족한 현재의 한계를 진단 해볼 수 있다.

이 책은 원폭이 일본의 전쟁 계속 의지를 완전히 잃게 만들어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최대 요인이었다는 통설을 부정한다.(p.43)” 미국이 일본 본토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경우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이미 이오지마 전투에서도 경험했다. [일본군 극비문서 입수 일제는 한반도를 총알받이로 쓰려 했다”]는 경향신문의 단독 보도(’21.8.7.)를 감안하면, 이는 일본 본토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었을 테다. 연합군이 일본 점령지를 모두 정리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미국은 자국의 희생을 억제하고, 일본의 전쟁의지를 꺾기 위해서는 소련의 참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반대로 소련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 복잡한 외교전 속에서 미국은 원자폭탄 투하를 선택했다. 미국 군부의 선택을 미국 대통령이 묵인했다. 미국의 회심의 일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군부는 옥쇄작전을 감행할 의지를 불태웠다. 많은 미국인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실제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p.529)” 원자폭탄은 강력한 한 방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는 원폭투하 결정은 포츠담선언이 발표되기 이전에 이뤄졌으며, 오히려 포츠담선언이 원폭투하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표됐다.(p.479)”고 말한다. 일본이 거부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어려운 조건을 붙인 포츠담선언을 발표(p.479)”한 게 그 증거다.

그렇다면 일본이 전쟁을 포기했던 결정적인 한방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소련의 참전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소련을 통해서 연합국(미국)과의 협상을 시도했다. 일본 국내의 정치적인 문제로 강력하게 추진하기는 어려웠다. 종전 조건조차 내부적으로 논의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영부영 하는 사이에 시간은 지나갔다. 반면 소련은 이 협상의 과정을 통해 이득을 얻고자 했다. 일본에게 얻어낼 조건을 기다리며, 동시에 대일전쟁에 참여할 시간을 벌었다. 그러던차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소련은 초조해졌다. 일본이 항복을 하게 되면 원하는 이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소련은 대일전 참전을 선언하고 신속하게 남하하기 시작한다. 소련의 참전은 일본의 마지막 희망을 무너뜨렸다. 패배와 항복은 같은 것이 아니다. 항복은 정치적인 행위다.(p.920)”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서 항복을 협상하기 위한 의지했던 중재자를 상실했다. 저자는 소련이 참전하고 나서 비로소 화평파 지도자들은 포츠담선언 수락을 기초로 해서 전쟁을 종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p.634)”다고 본다.

소련의 참전함으로써 소련은 얄타에서 약속받은 대가를(p.607)” 받아내야만 했다. 반면 미국의 정책 결정자는 만주, 조선, 북중국에서의 소련 팽창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강대국 간의 역학관계는 가해자 일본이 아닌 피해국들을 향했다.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일본은 비교적 온건하게 점령되었다. 더군다나 일본은 북방영토 증후군히로시마 증후군때문에 일본인도 전쟁 피해자였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 피해자 의식이야말로 일본인들이 과거 자신들의 군국주의, 식민지정책, 침략을 직시하고 진지한 윤리적 책임을 공유하는 것을 막아왔다.(p.939)” 일본이 더 빨리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전쟁 종결 결단을 내렸다면 원폭투하도 없었을 것이고 소련의 참전도 없었을 것이(p.940)” 지만 일본 내에서 이에 대한 비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 내 정치 역학관계, 미국과 소련의 경쟁관계, 일본과 소련의 관계가 달랐다면, 각 국가의 지도자들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우리의 운명은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민주주의를 이룩했음에도 국제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끼어 있는 상태다. 종전 결과에 메여있고,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기 힘들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국가 간의 역학관계는 단순히 이념과 기분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영원한 아군은 없다. 국제관계는 지정학적 이득, 경제적 관점, 대의명분 등 복잡한 것들이 다양하게 얽혀 있다. 우리는 최대한 우리만의 이득을 최대한 추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찬성, 무비판적인 동의는 우리의 운신의 폭을 좁힐 뿐이다. 그렇기에 <종전의 설계자>들을 통해 우리의 상황을 가정해봐야 한다. 과거의 선택을 명확히 보고, 앞으로의 선택을 준비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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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미국과 소련 미국과 일본, 소련과 일본 간의 치열한 각축과 흥정, 모략과 술수가 낳은 이 20세기적 전후질서는 지금도 우리 삶의 규정적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저자가 한국 독자들에게 쓴 짧은 글에서 지적했듯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한 한반도의 근현대는 패전국 일본보다 더 가혹하게 굴절됐고, 전후질서 짜기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p.18

이 책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 수락이 실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음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철저한 반성과 청산을 전제한 일본 패전후의 질서가 아닌, 전쟁범죄 은폐와 담합과 무책임으로 얼룩진 종전후의 질서를 설계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그 설계가 어떠한 이상과 신비에 기대고 있으며 그 실체의 실상은 어떠했는지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p.28

태평양전쟁 종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 미국, 일본, 소련 3국의 역사가들은 각자 관심 있는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태평양전쟁 종결론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역사가는 원폭투하에, 일본의 역사가는 전쟁종결 당시 천황을 둘러싼 정치지도자들의 역할에, 그리고 러시아 역사가는 극(p.31)동의 소련군 역할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이 모두를 포괄해서 전체상을 그리는 역사적 연구는 아직까지 없다. p.32

이 책은 태평양전쟁 종결 문제를 미국, 일본, 소련 3국의 복잡한 관계를 면밀히 검토해서 국제적인 관점에서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것은 서로 연관된 세 가지 서브플롯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대일 전쟁을 수행하면서 전개된 스탈린과 트루먼 간의 복잡한 각축이다.(p.35) ... 두 번째 서브플롯은 뒤엉킨 일본과 소련 간의 관계 검증이다.(p.36) ... 마지막으로 이 책의 세 번째 서브플롯은, 일본 정부 내의 화평파와 계전파 사이의 목숨을 건 각축이다.(p.38)

현인신에서 인간 천황으로의 전환은 미군 점령하에서 이뤄진 것이 아닐 항복 결정 과정에서 이미 완수되었던 것이었다. p.42

이 책은 원폭이 일본의 전쟁 계속 의지를 완전히 잃게 만들어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최대 요인이었다는 통설을 부정한다. p.43

이 책이 목표로 삼는 것은 태평양전쟁은 어떻게 종결됐는가를 복잡한 국제관계와 국내 정치역학의 긴밀한 연계를 중심으로 자세히 검토해서 그려내는 일이다. p.46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소련의 관계는 역사가 조지 알렉산더 렌센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기묘한 중립이었다. ... 일본과 소련 사이에 존재한 중립은 따라서 취약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양국의 전략적 이익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 준수됐으나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 바로 파기될 운명이었다. p.81

다네무라는 전쟁을 끝까지 수행하는 것을 전제로 논리를 구축했다. 승리할 확률이 91일지라도 거기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고 논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패배할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책도 갖(p.203)고 있지 않았다. “만약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봤자 아무 소용없고 오직 그것을 무릅쓸뿐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때가 되면 일본 국민 모두 옥쇄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는 사상이 감춰져 있다. 대 일본제국 육군은 1억 일본 국민을 길동무삼아 자폭할 각오였다. 참모본부의 대다수 중견장교가 이 끔찍한 생각을 지지했다. p.204

다네무라 보고는 미국이 무조건 항복을 수정해서 황실의 유지를 약속한다면 일본은 그 수정된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열쇠를 제공한다. 다네무라로 대표되는 중견 장교들은 미국이 국체의 파괴를 노리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입헌군주제하의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근본적으로 국체에 저촉된다고 보고 있었다. 따라서 입헌군주제일지라도 그들은 미국이 제시한 조건에 저항했을 것으로 보인다. p.204

육건성, 참모본부의 상층부, 특히 군의 두뇌라고 해야 할 작전부와 군무국 같은 유력 부국들은 소련의 중립을 전제로 작전을 구축하고 있었다. 따라서 소련이 대일전에 실제로 뛰어들었을 때 그것은 예상되었던 일인 만큼 군이 아무런 충격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p.205

소련의 참전을 막는 것이 일본 외교, 군사정채의 최고 목적으로 설정된 것, 그리고 이것이 외상, 해군상, 총리 뿐만 아니라 육군상, 육군 참모총장, 군령부총장의 동의를 얻었다는 사실을 여기에 강조해둘 필요가 있다. 이 최고 목적이 무너질 때 일본 외교, 군사정책이 최대의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은 필지의 사실이었다. p.237

마셜을 올림픽작전의 사상자 집계를 63천 명에서 19만 명까지로 봤다. 이 집계는 나중에 트루먼과 스팀슨이 원자폭탄을 정당화하기 위해 든 1백만 명이라는 사상자보다는 훨씬 적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매우 값비싼 희생이어서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결정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음에는 틀림없다. 매클로이는 이런 희생을 지불하지 않고 전쟁을 종결할 여러 대체 방안을 논의할 수도 있었으나 원폭개발 사실을 모르는 참가자들을 앞에 두고 원폭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토의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p.329

히로타-말리크 회담은 일본 외교의 비참한 파탄을 상징했다. 일각을 다투는 그 중대한 시기에 도고가 히로타에게 개인 자격으로 말리크와 교섭하도록 의뢰한 것은 큰 실책이었다. 덧붙이면, 히로타는 거물이긴 했으나 이런 미묘한 교섭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없었다. 히로타는 일반론으로 시종하면서 그 교섭의 최대 목적, 즉 일본이 종전을 위해 소련의 중개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조차 시사하지 않았다. 귀중한 한 달이 낭비됐던 것이다. p.346

모스크바의 알선은 일본의 위정자들에게 가혹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준 아편이었다. p.348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일본 정부는 전쟁종결을 위해 특사를 파견하면서도 종결조건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고 있었다. 구체적인 조건을 토의하는 것은 곧 내각 내의 분열을 의미했기 때문에 오히려 결정할 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p.379

무조건 항복의 요구, 소련의 참전, 원폭, 이 모두가 일본에 대한 최후통첩의 시간표속에 연결돼 있었다. p.423

원폭투하 결정은 포츠담선언이 발표되기 이전에 이뤄졌으며, 오히려 포츠담선언이 원폭투하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표됐다. p.479

왜 트루먼은 일본이 거부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어려운 조건을 붙인 포츠담선언을 발표했을까? 무엇보다 먼저 트루먼이 무조건 항복에 매우 집착하고 있었던 점, 특히 천황의 처우에 대해 양보하기를 꺼렸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츠담선언이 원폭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트루먼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 트루먼은 대통령 명령으로 원폭투하를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군사지도자들이 이미 내려놓은 결정에 간섭하지 않았을 뿐이다. p.497

스탈린이 필사적으로 공동선언에 참가하려던 시도는 비참한 실패로 끝났으나, 그 실패가 오히려 일본이 한층 더 소련의 알선을 믿고 의지하는 정책을 계속하게 만든, 굴러온 호박과 같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스탈린은 모든 것을 꿰뚫어본 만능의 지도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행운아였을 뿐이다. p.506

많은 미국인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실제로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p.529

트루먼에게는 프(p.572)랭크가 주장하듯이 원폭 외에 다른 수단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충분히 선택할 수 있었던 수단을 의식적으로 취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단지 미국 병사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 참전 전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들이미는 것이 또 다른 목적이었다. 원폭은 그의 모든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수단이었다. p.573

포츠담회담은 일본의 전쟁을 종결짓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트루먼은 소련을 빼놓고 원폭투하로 일본을 항복시키려고 했다. 한편 스탈린은 트루먼이 소련을 따돌리고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려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미국의 비밀작전에 신속하게 대처했다. p.556

히로시마 원폭투하가 도고, 천황, 기도에게 전쟁종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사다가 주장하듯이 그것은 곧바로 포츠담선언을 수락해서 전쟁을 종결해야만 한다는 정책 변경까지 가도록 압박하진 않았다. 정부도 궁중도 여전히 소련의 알선을 통해 전쟁을 종결하겠다는 정책을 유지했던 것이다. p.595

외몽고, 뤼순, 다롄에서의 특별한 권익을 스탈린이 집요하게 주장한 이유는 일본이 전쟁 뒤 다시 일어나 소련에 위협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탈린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지정학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에게 대일 참전 최대의 목적은 얄타에서 약속받은 대가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 대가는 당연히 소련에 주어져야 하는 것인데, 다만 얄타조약에서 정한 중국과의 조약 체결이라는 선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그 대가를(p.607) 희생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p.608

참전을 계기로 소련이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는 만주, 조선, 북중국에서의 소련 팽창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소련의 참전이 미국의 정책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해 독자적 군사행동 결의를 한층 더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했다. / 전쟁의 결과는 전후 극동에서 두 초대국의 역학관계를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p.624

그날 일본 지도자들의 행동을 보면 소련 참전이 화평파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으며, 그것은 원폭보다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이 참전하고 나서 비로소 화평파 지도자들은 포츠담선언 수락을 기초로 해서 전쟁을 종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p.634

대통령의 허가 없이 원폭을 투하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 그것은 트루먼이 원폭 사용에 대해 대통령의 의사를 행사한 최초의 행위였다. p.647

원폭과 소련 참전이라는 이중 충격은 화평파와 계전파의 힘 관계에 변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p.656

소련과 미국 사이에 새로운 경쟁이 시작됐다. 그것은(p.846) 어느 쪽이 다롄에 먼저 도달해서 항구를 점거하느냐는 경쟁이었다. 미국에도, 소련에도 다롄 점거는 중요했다. 두 나라 모두 군사충돌을 피하려고 했으나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다. p.847

연설에서 이 부분은 스탈린이 극동에서 군사작전을 펼친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스탈린은 무엇보다도 지정학적 이익을 추구했으며, 이데올로기나 혁명적 이익은 그의 동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는 스탈린 개인만 품고 있던 동기가 아니라 소련의 정치, 군사엘리트들이 널리 공유하고 있던 가치였다. p.902

태평양 전쟁은 두 가지 경쟁이 맞붙어 펼쳐진 격렬한 드라마로 끝이 났다. 하나는 스탈린과 트루먼 사이에 펼쳐진 경쟁이었다. 트루먼이 소련 참전 이전에 원폭을 투하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스탈린이 일본의 항복 이전에 전쟁에 참가해서 얄타에서 약속받은 대가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경쟁이었다. 또 다른 경쟁은 일본 지도자들 사이 화평파와 계전파의 싸움으로, 일본은 전쟁을 종결할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또는 전쟁을 종결할 요량이라면 어떤 조건 아래(p.907)서 이를 실행할 것인가를 두고 경쟁했다. 그리고 두 경쟁은 서로 얽혀 있었다. p.908

역사가들 중에는 역사에 가정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길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역사의 가정은 실제로 선택된 결정의 성격을 더 명확하게 복기하는 효과가 있다. p.908

일본의 위정자들은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패배와 항복은 같은 것이 아니다. 항복은 정치적인 행위다. 원폭과 소련 참전이라는 이중의 충격 없이 일본의 지도자들이 간단히 항복을 받(p.920)아들이진 않았을 것이다. p.921

윤리적 책임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p.934

소련의 참전 문제와 함께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도 일본인들에게 일본이 부조리하고 용납하기 어려운 공격을 받았다는 감정을 안겨주었다. 프린스턴대학의 사회학자 로즈먼이 말했듯이, ‘북방영토 증후군히로시마 증후군은 형태를 바꾼 일본의 내셔널리즘이며, 일본인들에게 일본인도 전쟁 피해자였다는 피해의식을 심어 놨다. 그리고 그 피해자 의식이야말로 일본인들이 과거 자신들의 군국주의, 식민지정책, 침략을 직시하고 진지한 윤리적 책임을 공유하는 것을 막아왔다. p.939

일본에서는(p.939) ‘불난 집에 도둑질을 한 소련의 행위나 미국의 원폭투하를 비난하는 소리는 있어도 전쟁종결을 지연시킨 일본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만일 일본 정부가 더 빨리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전쟁 종결 결단을 내렸다면 원폭투하도 없었을 것이고 소련의 참전도 없었을 것이다. p.940

원래 정치지도자의 지도력은 기구의 제약을 넘어서 발휘되는 것이다. 특히 긴급사태에서는 그런 지도력이 요구된다. p.340

태평양전쟁 종결 드라마에는 영웅도 없고 악인도 없다. 이에 관여한 지도자들은 살아 있는 인간들이었다. (p.944)꿔 말하면, 태평양전쟁은 각자의 욕망, 공포, 허영심 분노, 편견을 지닌 채 결정을 내린 인간들의 드라마였다. 하나의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그 뒤의 결정을 위한 선택지가 좁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폭이 투하되고 소련의 참전을 거의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렇게 드라마가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코 숙명이 아니었다. 지도자들은 다른 결정을 내리고 다르게 종결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p.944

슈뢰더 총리 연설이 드레스덴 폭격 피해자들의 아픔과 함께 피해자들에 대한 나치의 책임과 추도를 포괄함으로써 전쟁의 승자와 패자가 화해할 수 있게 한 것이었던 것에 비해 간 총리의 연설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만을 특별히 드러내고 일본의 전쟁행위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추도와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당연히 미국인들로부터 원폭투하로 사죄한다면, 일본인들은 진주만공격에 사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돌려받게 될 것이고 승자와 패자의 화해는 불가능해집니다. p.952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면 전쟁 수행상의 정의를 위반하는 어떠한 수단도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요? 이 문제야말로 원폭투하의 윤리적 의의와 현재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연결하는 중대한 요점입니다. p.972

나는 정의로운 전쟁을 수행하는 데 전쟁 수행상의 정의를 무시하는 것은 정의로운 전쟁의 대의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알카에다든, 히틀러의 나치즘이든, 일본이 군국주의든 악을 상대로 싸우는 선의의 방법(p.977)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 법의 지배에 대한 헌신, 인도적인 국가로서의 상을 높이 내걸고 거기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p.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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