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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로렌츠 바그너] 역설 | Memento 2020-09-1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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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입니다

로렌츠 바그너 저/김태옥 역
김영사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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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라는 아들이 있어 헨리 마크람이 성장하고 발전했듯, 변화에 민감한 반응이 과도하다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자폐가 그렇고, 우리의 삶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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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책임감이 약해. 우리 시대보다 나약해 졌어. 앞선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늘상 하는 말이다. 한때는 반항적으로만 생각했지만, 어쩌면 젊은 세대는 진짜 약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뒷 세대의 잘못이 아니다. 단적으로 앞선 세대와 뒷 세대의 성장 환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앞선 세대는 농촌을 기반으로 한 문화였고, 현 세대들은 도시 문화에 익숙하다. 농촌과 달리 도시는 변화가 빠르다. 결국 생존을 위해서 요구하는 가치가 다른다. 농사는 끈기와 긴 안목을 요한다. 하지만 현재는 조금 다르다. 주변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모든 걸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위해 민감도를 끌어올려야 하지만, 결국은 지치게 된다. 매 순간 강하게 버텨내는 게 불가능하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자극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버티겠는가.

<나는 자폐 아들을 둔 뇌과학자 입니다>는 세계적인 뇌 과학자인 헨리 마크람과 그의 아들 카이의 이야기다. 누구보다 뇌를 잘 알지만 자신의 자식은 뇌에 문제가 생겨난 아이러니, 그리고 이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그려냈다. 로렌츠 바그너는 독일 저널리스트이자 전기 작가로 뛰어난 문체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헨리 마크람이라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카이라는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은 인상깊다. 그는 카이로 인해, 카이를 위해 자폐증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규명해 냈다. 강렬한 세계 증후군이라고 요약하는데, 자폐증은 뇌의 기능이 떨어진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활발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거다. 결국 우리는 잘못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자폐인에게 공감능력이 결여됐다고 말해왔다. 아니다. 그건 우리에게 결여된 능력이었다. 그들에게 공감하는 능력 말이다.(p.221)”

마크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존경스럽지만,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절박한 부모의 심정이기 때문이겠지만, 어쩌면 공감능력이 다소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253쪽의 헨리와 카밀라의 대화는 어쩌면 과학의 본질적인 면을 부정한다고 느껴진다. 그간의 발견들이 문제가 있었고, 카이에게 독이 되었던 점은 확실하다. 이러한 과학의 본연적 속성 때문에 본인이 문제를 좀 더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향후 본인의 발견 역시 똑같은 이유로 부정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게 과학의 힘이라 들었기에 매우 아쉽다. 지금의 세대가 뒷 세대에게 약해졌다고 타박할 때가 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본인의 연구도 진리가 아닌 이상 또 다른 마크람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그가 좋은 사람이고 좋은 부모일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일하기에 좋은 사람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질환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이유는, 저자의 말대로 진단기법이 발달해서 일 수 있다. 아니면 우리 머릿속에 그 원인이 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가 추진하는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는 분명히 신기원을 열 것이다. 하지만 쉬운 길도 있다. 앞선 세대가 뒷 세대보다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덜 강렬한 세계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안정된 세계에서 변화를 버텨낼 시간을 부여 받았고, 뒷 세대는 그렇지 못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다. 카이와 달리 어린 시절 변화가 제한적이었던 시골에 살았던 게 행운이었는지 모른다. 변화가 느리고 지루했던 그곳에서의 삶이 오히려 내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차분히 변화를 받아들이고 준비할 수 있는 그런. 물론 아직도 그 여파로 도전이나 변화에 약한지 모르겠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여전히 유효한 방법이다.

마크람이 카이가 있었기에 오히려 성장하고 발전했듯, 우리의 삶도 때로는 느리고 변화가 적어야만 할 때도 있다. 변화와 진화, 돌연변이는 생명체라면 당연히 가지는 현상이다. 다만, 이것들이 늘 종의 차원에서 생존을 담보해주더라도, 해당 개체의 생존을 담보하지 않는다. 때로는 과거의 방법으로 돌아가는게 나라는 개체의 생존을 강하게 해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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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뉴런의 수보다 뉴런들의 소통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어린아이의 뇌가 자랄 때는 신경세포의 수가 아니라 세포 간의 연결 개수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 연결에 장애가 생기면 아이는 다르게 성장한다. p.43

연륜은 삶을 좀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 p.44

연결의 오류는 발달을 저해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발달장애는 자폐증이다. p.46

아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될 때 어른은 많은 것을 배운다. 어린아이들이 피부색을 신경 쓰지 않는다든가, 친구가 자기와는 뭔가 다를 때에도 그에 대해 별생각을 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그냥 그런것이다. p.91

위기와 현명함은 서로 떼놓을 수 없다. 조작의 대가. 뭔가 낯설지 않았다. p.100

감정이 있는 존재의 고통을 대가로 쓰느니 차라리(p.122) 삶을 버리겠다.” - 마하트마 간디p.123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든 곳에서 이방인이다. p.173

우리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흡수하도록 설계됐다.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불쾌한 것조차 흡수했다. ... 뭔가를 탐색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p.214) ... 자폐증이 있는 아이는 일반적인 빛을 동굴 속에서 사막의 햇볕 아래로 나갔을 때와 같이 느낀다. 우리에게는 일시적으로 몰려왔다 지나가는 세계를 아이는 민감하게 마주한다. p.215

신이 세상을 창조했더라도 우리에게 그것을 이해시키는 일은 신의 주된 관심이 아니었을 것.” -아인슈타인 p.218

우리는 자폐인에게 공감능력이 결여됐다고 말해왔다. 아니다. 그건 우리에게 결여된 능력이었다. 그들에게 공감하는 능력 말이다.” p.221

강렬한 세계 증후군 (p.222) 자폐의 스펙트럼은 장애부터 천재성까지 아우른다. 천재성은 예외이며 자폐인은 대부분 기능이 제한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자폐증 약물은 뇌를 자극한다. 우리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자폐인의 뇌는 억제되어 있지 않으며 지나치게 성능이 좋다. 뇌는 과하게 네트워크화되어 있고 과도한 정보를 저장한다. 자폐인은 세상을 적대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으로 강렬하게 경험한다. p.223

자폐인은 세상을 조각조각으로 의식한다. 자극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조각을 과도한 주의력과 무서울 정도의 기억력을 갖고 뒤쫓는다. 이는 특정 영역에서만 천재성을 보이는 결과로 이어지며, 동시에 움츠러듦과 반복행동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p.225

자폐인이 사람과 교류하기 어려워하는 것은 감정이나 신호를 해석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감정표현 불능증도 아니고 공감능력이 부족하지도 않다. 단지 세상을 너무 고통스럽게 느껴서 눈을 맞추지 않고 움츠러드는 것이다. p.226

자폐인은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만 편도체의 활동이 과도하기 때문에 눈길을 주지 못하거나 회로 어딘가에서 스위치가 내려가는 것이다. 뇌는 자극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돼야 한다. p.230

객관적인 세상은 없다. 기대는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p.231

부모나 가족은 언제나 저 방법을 머릿속에 담고 있어야 해요.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그게 자폐증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거예요. 안아주는 것. 공감해주는 것. 그들에게는 그런 안정감, 편안함, 따듯함이 간절해요. 그걸 느껴야 하는 거죠. 저는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이렇게 조언해요.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아이들 곁에 있어주라고. 그리고 그 순간(p.241) 사랑을 주고 붙잡아주라고. 그들은 그런 행동이 기계적이고 인위적인지 아니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지를 정확히 알아요. p.242

자폐인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을 조각난 상태로 받아들인다. 이는 아이들의 삶을 극적으로 만든다. 자폐증이 있는 아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귀를 막는 것은 배로 슬픈 일이다. 고통과 더불어 삶에 필수적인 자극까지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달이 어려워진다. 지금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미래를 망쳐버린다. p.245

뇌에는 망각이 쓰레기 수거와 같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은 과거에 사로잡힌다.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정신은 질식하고 만다. p.246

보살핌을 받지 못하거나 학대받은 아이들이 자폐인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p.246

아이들에게 미래를 선사하려면 그들의 현재를 느리게 만들어줘야 한다. p.248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곳에는 항상 기술혁명이 함께 일어난다. 인류가 경험한 가장 커다란 변혁은 구텐베르크가 활자를 발명하여 사람들에게 지식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그들은 읽는 법을 배우고 읽기와 쓰기를 통해 사고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사고를 통해 연구를 수행했다. 중세 시대에는 과학이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했다. 이미지는 한 번에 많은 것을, 그리고 전체를 묘사한(p.265). 반면에 글은 한 번에 하나씩 설명한다. 따라서 과학은 선형적으로, 일다 세부를 본 뒤 전체를 보게 됐다. p.266

컴퓨터는 구텐베르크 시대 이전처럼 이미지로, 즉 총체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p.272

왜 우리 시대에 이렇게 많은 자폐증, 우울증이 있고 그 밖에 다른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지 궁금해 한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진단기술의 발전에 있다. 그리고 도 다른 원인은, 예전이라면 정서불안이에요.”라고 말했을 증상도 과도하게 살펴보고서 ADHD 판정을 내리는 데 있다. 그러나 환자 수가 증가하는 정도를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어쩌면 이젠 휴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아이들이 너무 적기 때문은 아닐까. p.283

우리의 세상을 지금처럼 만든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것들이었다. p.308

자폐인은 강박에 거의 무력하다. 스스로의 행동을 바꾸거나 조절하기란 아주 어렵다. 피나는 노력으로 배워야만 한다. 그러기 위한 전제는 강박을 인식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처럼 그들의 강점이자 약점을 돌보는 것이다.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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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수수께끼-주강현]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에 놓쳐버린 자신 | Memento 2020-09-1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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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주강현 저
서해문집 |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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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이라는 이름하에 놓쳐버린 우리 자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책이다. 우리가 소흘히 여겼던 것들에서 우리의 뿌리, 우리 문화의 힘을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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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학교 정문에는 Y자 모양의 교차로가 있어서 Y로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중간에 I자 모양의 탑이 있었다. 인근 잔디밭에서 술자리가 이어지다보면 슬슬 말거리라 떨어질 때쯤, Y로와 탑의 진실(?)에 대해 알려주곤 한다. 남녀의 성기와 관련된 음양의 이야기. 특별나거나 유별날 얘기는 아니었다. 어느 동네, 어느 지역에나 한 가지 이상씩 있을 법한 그런 얘기였다. 학교는 발전이 필요했다. 건물이 바뀌었고, 와중에 Y로는 사라졌다. 그 자리엔 다른 광장이, 누구도(학생 만은 절대 못들어간다.) 들어갈 수 없는 잔디밭이 생겼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런 식으로 발전(?) 해 왔다. 미신타파, 개화, 근대화. 다양한 이름의 발전. 당장 먹고 살기 바빴기에, 명분은 충분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발전했고, 그만큼 급격하게 과거로부터 단절을 추구했다. 그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너무도 정신없이 달려왔다. 살만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아무리 앞으로 빨리 달려나가도 채워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깨닫고 뒤돌아보는 순간, 때는 이미 지났다.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음을 깨닫는다. 민속학자 주강현의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는 이런 깨달음의 반성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알려준다.

도깨비 없이 태어난 세대를 위하여라는 책의 부제는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급하게 채워 넣은 발전은 우리의 문화를 급속도로 대체했다. 외국의 문화가 우리의 것이라 생각하고 산다. 저자가 지적했듯 우리가 아는 도깨비의 모습은 사실 일본의 오니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엄숙주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본다. 국뽕도 잘못되었지만,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네 성문화가, 장승과 마을()나무가 계도되어야 하고, 베어넘겨야 할 미신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외국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우리의 옛 것은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 문화의 정본이자 교과서’”라는 출판사의 평가는 지당하다. 지나친 국뽕도, 과도한 자기비하도 아닌 적당한 선에서의 우리 문화를 평가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쳐 버린 많은 것들을, 사소하게 여겨져 무시하던 것들을 돌아본다. 문화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세계화를 지나 세방화를 넘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힘은 우리 내부에서 나오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문화의 뿌리가 어디인지 책과 함께 살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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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성풍속의 이중성에 주목한다. 매우 엄숙하기만 했을 것 같지만, 정자 민중의 생활 속에서 유전하던 성풍속은 참으로 인간적이기만 했다. 비록 유교의 덕목 탓에 남근신앙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더라도 그들 남근조차도 마을공동체의 공유물로 만드는 민중의 슬기를 보여주었다. p.124

민중의 삶 속에서 성과 반란의 욕구는 분명 역사책의 상식을 앞서 가고 있었다. ... 전통시대의 성관념은 성의 과감한 노출조차도 공동체의 산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마을 입구에 버젓이 남근이 서 있어도 음탕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백년 동안 마을 사람이 오고가는 길목에 남근을 세워두고, 그것도 1년에 한 번씩 줄다리기가 끝나면 옷을 입힌다고 짚을 감아주었다. 오히려 공개된 사회적 성 상징물을 묵인하는 건강한 분위기다. / 오늘날은 어떤가. 만약 선남선녀가 오고가는 신촌 네거리에 남근을 세워둔다면 외설 시비로 논란이 거듭될 것이다. p.125

비슷한 것만 나오면 중국의 영향 운운하는 주장은 하나의 모화주의에 다름이 아니다. p.138

도깨비는 실제로 괴상한 짓을 많이 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인간에게 해코지만 하는 미물은 아니다. 허깨비가 몹쓸 환상이라면 도깨비는 쓸 만한 환상이다. 쓸 만한 환상은 꿈을 불러일으키고, 그 꿈은 문화를 다채롭게 한다. 꿈을 불러일으키는 도깨비가 곳곳에서 출몰하던 (p.154) 조선시대에 구전문학도 르네상스를 맞았음을 상기해보라. p.155

일본의 오니가 우리 도깨비로 둔갑하여 동화채과 텔레비전을 장식한다. 아이들은 오니를 우리 도깨비로 착각한다. p.165

문화란 어떤 영향 관계에 놓였다고 하더라도 일방적인 경우는 없다. 늘 상대적 독자성을 지니고 발전하기 마련이다. p.180

오늘날 생태 환경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면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리사이클링의 중요성이 부쩍 주목받고 있다. 쓰레기를 재생하는 문제가 늘 제기되지만, 리사이클링은 되돌려주기 위해 또 다른 열량을 요구한다는 문(p.200)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 비추어보면, 똥돼지문화는 어쩌면 가장 완벽한 리사이클링이란 생각이 든다. ...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됐고, 똥은 그야말로 물에 씻겨 강물로 흘러들어갔다. (p.201) ... 폐기물이 아니라 영원한 재생품이던 똥을 버림으로써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인가. ... 깨끗한 수세식 처리가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라 도리어 새로운 환경 훼손의 시작임을 안다면, 우리의 서구식 청결관은 쳥결도덕주의에 불과하다. p.202

돼지 사육과 사료 문제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돼지고기를 금기 식품으로까지 만들게 된 원인도 거기서 찾을 수 있다. 이슬람교도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그 원인을 자연 환경이 변하면서 사료가 불충분해진 데서 찾았다. p.206

역사는 늘 그랬다. ’바련이라는 이름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했고,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파괴했다. p.319

<황금가지>는 우리 자신의 당나무를 깊이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왜 우리는 자신의 것을 포기하거나 침묵하는 것일까? 내가 그의 황금가지를 끌고 온 이유는 바로 우리의 황금가지가 자라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에서다. p.384

도대체 미신이란 무엇인가? ’문명인의 관점에서 야만인을 덜 개화된 인종으로 비하해서 보는 것과 같이 미신이란 다분히 제국주의적, 인종주의적 편견에서 나온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 믿음으로 인정되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당당한 정신이 된다. 이에 반해 바깥 사회의 국외자에게는 미신이 된다. 더욱이 마을나무는 우리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거론되는 것인데, 이를 미신나무로만 몰아댄 우리의 편협한 이해방식이 안타깝다. p.402

욕설은 결코 단순한 욕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한다. 따라서 욕설은 인간 심층심리와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민속문화의 하나다. p.521

신화를 단순한 허구나 전설 같은 이야기로 여기는 풍조는 근대 이래의 지나친 계몽주의적 지식관에서 비롯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신화학자 쿠르트 휘브너가 갈파한 신화의 명예 회복을 꿈꾸며, 우리 신화 속에서 여신과 남신의 자리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신화의 원형이야 말로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삶의 비밀을 보여주는 청동거울이기에. p.526

하늘과 땅의 통치자, 올림포스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가부장제 신화를 우리 여시 답습하는 중이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여신은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이 땅은 아직까지 간 큰 남성이 살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다. 물론 조금식 균열을 보이고 있는 중이기는 하다. 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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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이건범 외] 유예된 논쟁, 예견된 분쟁 | Memento 2020-09-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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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이건범,김하수,백운희,권수현,이정복,강성곤,김형배,박창식 공저
한겨레출판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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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한 시대에 호칭의 문제는 관심 밖이 었다. 첨예한 갈등과 대립의 씨앗을 남겨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지다. 이 책은 그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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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관관계에서 호칭은 가변적이다. 누구냐에 따라, 어떤 사람과 있느냐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한다. 호칭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의 정체성은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남성이자, 한 가정의 아들이자, 한 직장의 일원이고, 누군가의 배우자가 될 사람이다. 여기에 누군가의 친구이자, 선배이기도, 후배이기도 하다. 여기에 친밀한 정도에 상황적 맥락까지 추가 된다면 같은 사람도 무궁무진한 호칭을 가질 수 있게 된다. 호칭의 다양성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나의 정체성을 대변해주는 만큼, 개인의 존재가 풍부하게 비쳐질 수 있는 면이 있기도 하다.

문제는 호칭의 강압성이다. 호칭은 내가 호출 당하는일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지 않는다. 사회적 위치, 신분적 차이, 문화적 맥락 등 여러 조건들에 따라 불합리하게 불려진다. 특히,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가부장적 제도의 정착은 현재 다양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는 이러한 논쟁을 살펴보기에 적합하다. 한겨레에서 책을 쓴 이유는 서두에 나오듯, 본인들의 기사에서 호칭 문제로 호되고 논란을 당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이게 왜 문제가 되었는지 이해가 잘안되지만, 이 책이 그 논란의 해명에 그치지지 않기를 바랬다. 제목과 목차를 보고 책을 집어든 이유는 우리 전체 사회에 호칭의 문제에 대해서 궁금했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부분들은 많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p.233p.240에서 <한겨레>에서 문제가 생겼던 사안이 책을 쓰게 된 계기라고 했고, 그 계기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분석을 빙자한 소극적 해명 혹은 시대의 흐름이 본인들의 표현에 따르지 못했다고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일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해당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기에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저자가 제시한 보다는 가 적절하다고 본다. 뉴스는 객관성을 중시하는 만큼 이라는 표현보다는 를 통해서 누구든 동등하게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문제는 호칭의 사용을 공평하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지, 개인적으로 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라고 느낀다.

호칭은 인정의 문제라는데 깊은 공감을 한다. 결국은 상대방을 어떻게, 얼마만큼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냐는 차이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호칭은 오랜 역사적 맥락을 지니겠지만,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면 바꿔야 겠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방법을 찾아가고 고민해야 할텐데, 쉬운길은 아닐테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호칭 문제들에 대해서 동의하는 부분도, 이건 아니다 싶은 부분도 많다. 각 기업에서 실시한 호칭의 변화도, 시민단체에서 실시했던 캠페인의 한계도 여기서 비롯되었을 테다. 시대가, 시대 의식이 바뀐만큼, 호칭도 따라가야 했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아왔다. 결국 미뤄진 토론은 싸움으로 번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다면 좋은 현상이겠지만...

언어에 민감하신 분들이셔서 그런지 고유어를 많이 써서 좋다. 언어나 호칭등에 관심이 많으신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만큼 영어식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다양한 저자들이 참여한 만큼 개개인의 특성의 차이까지 강제할 수는 없었을 테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부분도 있다. 전문적인 용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반드시 그런 단어를 써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누군가의 글을 첨삭하거나 할 처지는 아니지만, 호칭과 국어의 얘기를 하면서 굳이 외국의 전문적인 용어만을 차용해서 쓰는 모습은 좋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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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은 인정의 문제고, 인정의 출발점이다.(p.26) ... 누군가 나를 부르는 호칭에는 이 정체성의 일부분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기대하는 호칭으로 불리길 원하고, 그런 기대와 현실이 어긋날 때 자신이 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부정 또는 도전으로 느껴진다. p.27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호칭은 단순히 정체성 인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서열 인정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그래서 호칭을 둘러싼 갈등은 그 양상이 치열하고 졸렬하다. p.27

호칭은 개인이 속한 크고 작은 사회에서 그의 정체성과 서열을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바로 맞닿아 있다. p.28

호칭 문제는 단지 인간관계와 사회구성이 복잡해진 데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니다. 민주사회라는 선언과 갑질 사회라는 현실의 충돌이 더욱 결정(p.31)적이다. p.32

호칭은 인정의 문제이므로, 호칭을 개혁함으로써 새로운 인정의 문화, 서열(p.34) 인정이 아닌 인격 인정의 문화를 시작할 수 있다. p.35

우리 사회의 호칭 민주화에서 관건은 나이지위남녀의 차이에 따른 호칭의 서열을 어떻게 녹여버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세가지는 어쩔 수 없는 차이를 인격의 차이로 확대시켜 차별을 정당화하는 전통적인 서열 기준이다. p.35

나이는 왜 깡패 노릇을 하게 되었을까?(p.40) ... 나이는 다른 무엇으로도 왜곡되지 않는 공평한 서열 기준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 사회적 조건이 결부되지 않은 자연상태에서 가장 공평한 서열 기준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이에 따른 호칭과 높임법은 공평한 서열 기준에 걸맞는 권리와 의무일 뿐이다. p.41

우리 사회의 위계질서는 한 개인의 삶에서 나이를 기준으로 처음 세워지고, 그것은 호칭과 높임말로 뚜렷하게 틀지워져 굳는다. p.44

서열 기준은 곧 인정 기준이다. p.45

이 자연적 평등에 기초한 서열은 어떤 방법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인지(p.45)라 너무도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 오직 나이 든 사람들만의 천국이다. 그러니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사회적 불평등에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자연적 평등을 빌미로 디미는 유일한 잣대이지만, 어찌 보면 못난 자들이 인정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디미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p.46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로 정치적 권위주의가 무너진 뒤에도 큰 변화가 없었으나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혼란에 빠졌다. 나이와 직위가 발을 맞추는 연공서열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진 것이다. p.51

일터에서 호칭과 높임법은 이 서열 질서를 확인하는 신분증 노릇을 한다. p.55

인정 욕구는 인간관계의 친밀성이라는 속성과 대화관계의 사회적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p.74

말 문화는 계속 바뀌므로 훗날을 대비해 이름 없는 일자리, 새로운 일자리에 번듯한 이름을 붙이는 일을 쓸데없다고 내팽개쳐선 안 된다. p.90

조직 분위기가 억압적이지 않다면 반드시 수평적이어야만 창의력이 높아진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p.105

우리는 시간과 대화의 힘을 믿어야 한다. 새 신을 처음 신었을 때는 발이 편할 수 없지만 신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해지는 것처럼 새 말과 새로운 호칭도 그렇다. p.124

말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 낸다. 현실이 말의 체계를 통해 파악되는 한, 말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할 뿐 아니라 현실을 만들어나가는 체계이자 구조다. 말이 말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임지현 교수 p.134

우리는 이 호칭을 가짐으로써 우리가 원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고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언어적 능력(권능)’을 지니게 되었다. 물론 그 요구를 받아들일지의 여부는 상대방의 권력과 더 큰 관계가 있다. p.153

호칭은 모든 대화의 첫 번째 관문을 여는 열쇠다. p.153

그러나 대화는 아무렇게나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규칙이 있고, 예의가 있으며, 공동체의 인습이 있다. 다시 말해서 말하는 사람이 임의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지만 그 구조 속에서 타당하게 인정되는 언어 사용법을 중심으로 대화가 전개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화의 규칙이다. p.154

한국 사회는 더욱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언어적으로는 끊임없이 차별화’, ‘차등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큰 문제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사회의 지향점과 언어 사용의 실태 사이에 서로 모순이 생기는 것이다. 말로는 4차산업혁명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면서도 사실은 사회구조를 유지시켜나가는 접착제로서의 언어는 아직도 1차산업혁명 이전의 사회를 모델로 삼고 있는 셈이다. p.161

현재 한국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호칭의 다양성은 사실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측과 바닥으로 내몰리지 않으려는 또 다른 세력 간의 숨가쁜 수싸움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p.171

사회 혁신 에너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일상에서 나날이 사용하는 언어를 새로운 가치에 걸맞게 바꾼다면 익숙지 않은 새로운 것을 사용할 때마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이 솟구치지 않겠는가. p.172

어린이는 어른의 물리적 과거가 아니다. 대개 좀 작을 뿐, 본연의 오롯한 인격체다. 함부로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p.277

필자의 주장은 앞에서 압축, 제시 됐다. / “상대에게 꼭 들어맞는 호칭을 힘들여 찾기 보다 맥락에 맞는 상황어를 발굴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 “대인고나계의 상대성을 일일이 따져 고정적 호칭을 찾기 보다는 새로운 호칭을 위한 기제를 개발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 p.277

미래는 초연결사회의 특징을 띌 것이라 한다. ‘연결을 위해서는 협력연대가 밑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도 익숙한 것과의 물리적 결합이 아닌 이종간의 화학적 결정이 절실하다. 바로(p.278) 잡종과 혼성의 힘, 하이브리드다!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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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이상아] 비교해서 읽어보는 재미 | Memento 2020-09-1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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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경성을 쏘다

이성아 저
북멘토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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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을 쏘다와 1923 경성을 뒤흔들 사람들을 함께 읽어보면 재미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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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재미는 다양성에 있다. 같은 주제, 같은 내용이라도 저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큰 뼈대는 바뀌지 않더라도, 표현하는 방식, 무게를 두는 지점은 저자별로 다르다. 역사를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설이지만) 삼국지나 초한지 같은 고전도 전체적인 줄거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판본들이 존재한다. 이문열의 삼국지와 같이 정석이나 표준으로 통하는 작품도 있지만,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맣은 저자들과 판본 덕에 원전의 생명력이 길어진다. 소설가 이성아 <경성을 쏘다, 김상옥 이야기>와 기자 출신 김동진의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은 역시 그렇다. 전작은 김상옥이라는 인물에, 후자는 의열단에 초점을 맞췄지만 전체적인 큰 줄기는 유사하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었기에 큰 줄기는 동일 할 수밖에 없다.

역사도 인문학의 한 갈래로 결국은 문학 작품이다. 역사와 소설은 상상력을 동원한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가장 큰 차이는 실재한 사실에 어느 정도 기반을 두느냐 일 텐데, 역사 소설의 경우에는 이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다. 역사 역시 망각된 부분이 많은 만큼 상상력을 기반으로 추론을 해야 하며, 역사소설도 마찬가지다. 간혹 이런 창작물과 관련해서 역사적 진실 논란이 발생한다. 지나친 왜곡이나 상상력이 가미된 경우 소비자의 오해를 살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것은 비단 역사소설이나 사극에만 해당하는 부분이 아니다. 전통적인 역사서도 충분히 빠질 수 있는 위험이다.

차이는 표현 방식에 있다. 개인적 취향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다. 좀 더 생동감 있고, 인물에 이입을 하고 싶다면 소설가 이상아의 책이 맞을 테다. 개인의 생각과 마음까지 상상하는 소설은 인물을 더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 감정이입이나 인물의 행동까지 추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와 닿을 수 있다. 좀 더 객관적으로 사건을 보고 싶다면 논픽션에 해당하는 기자 출신의 김동진의 책을 보면 된다. 소설보다는 생동감이 덜하고, 딱딱할 수 있지만, 다양한 사료들이 소설보다 좀 더 객관적으로 제시 될 수 있다. 각자 장점이 있고, 재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의 엄밀성을 가지느냐다.

두 책을 비교해서 보면서 독립운동이 떠오른다. 독립의 길은 다양하게 이어져 있다. 그럼에도 방법의 차이, 생각의 차이로 얼마나 분열되었던가. 이는 우리 민족의 역량 문제보다 일제의 견제와 탄압, 시대적 흐름, 인간이라는 존재에 근원적 문제겠지만, 이 두 책의 모습과 유사하다.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기억의 목적은 동일하다. 의열단 이야기는 김동진에 의해 시작되고, 이상아의 소설로 되살아나서, 영화 <암살>로 전 국민에게 각인되었다. 혹자는 정치적, 이념적 프레임으로 불편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러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독립운동의 목표가 결국 조국의 독립이었듯, 기억을 되살리는 문제들도 결국 우리 사회를 낫게 만들기 위함이다. 방법과 방향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 되는 기억은 없다. 좋건 나쁘건 그 기억의 영향들은 우리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기억을 직시하고, 토의하고, 싸워야 한다. 그 수많은 방향 속에서 수많은 갈등 끝에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역사와 소설, 인문학의 힘은 여기서 비롯되지 않을까. 거창한 게 싫다면 그저 재미로 두 책을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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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백성으로 태어난다는 건 원죄 같은 것이었다. 갓 태어난 너를 보며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아비를 이해할 수 있을지. 선교사들이 뭔가를 가르쳐 준다길래 무작정 다녔던 교회에서 원죄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식의 숙명론적 올가미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온몸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모욕감까지 들었다. 그런데 갓 태어난 너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 바로 원죄란 말이었다. 모욕감이나 거부감은, 그러니까 식민지 백성이라는 나 자신에 대한 자각이었던 것이다. p.43

형님은 두려움과 공포의 차이를 알아요?” / “말해 보게.” / “두려움은 예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것이죠. 반면 공포는 미지에 대한 거예요.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물을 모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겁니다. 물에 뛰어들 용기만 있으면 공포는 사라지죠. 총을 한 방이라도 맞아 본 자가 한 방 더 맞는 게 별게 아니라는 걸 아는 것 처럼요. 가장 나쁜 건, 죽음 바로 직전까지 갔다 오는 거예요. 지옥문 앞에서 돌아온 자, 갔으되(p.112) 경험하지 못한 것, 그게 공포로 남는 거 아니겠어요?” / “무슨 말인지 알겠네. 끔찍하고 잔인한 육체적 고문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겠지. 하지만 그런 식의 이성적인 추론을 넘어서는 자도 있네. 그게 처음이든 백 번째든, 끝내 이겨 내겠다는 의지를 가진 자들 말이야.”/ “그런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 “나는 그렇게 믿어. 한 인간의 운명은 그 지점에서 갈린다고 생각해.” / “운명이 갈린다.”/ “똑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목숨을 걸고 누구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한다. 그것을 가르는 것이 무엇인 거 같은가?” / “글세요, 양심 같은 거?” / “양심, 그렇지만 목숨을 걸기에는 좀 약하지 않나?” / “그럼 뭔가요?” / “나는 존엄성이라고 생각하네. 자기 존엄성.” / “존엄성?” /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은 정말 지켜야 되는 게 뭔지 알고 있지.” / “그들이 그런 사람들인가요?” (p.113) / “그들은 영혼이 순결한 사람들이야. 존엄성이니 이런 걸 생각도 하지 않는 순결한 영혼.”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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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정모] 정치적 선명성이 강점이자 약점 | Memento 2020-08-29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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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이정모 저
바틀비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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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재미있고 쉽다. 과학적 태도를 익히기에 좋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선명하다.(마지막은 단점일 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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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어렵다. 어린시절 세상의 무서움을 모를 때, 꿈이 과학자였다.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을 것 만 같았던 시기였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 과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은 실패를 이겨내는 힘이었다. 실재로는 수학에 약해서였지만, 사실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들(p.340)”임을 알았다면 꿈조차 꾸지 않았을 테다. 그런 나에게 이정모 관장의 <저도 과학이 어렵습니다만>은 제목만으로도 울림이 있었다. “스스로를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을 역임하고 계시다. 나름 과학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책의 첫 번 째 강점은 쉽고 재미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제일 어려운 부분이 어려운 부분을 쉽게 쓰는 것이다. 대부분의 글을 쓰다보면, 있어보이게 하기위해 쉬운 부분을 어렵게 쓰곤 한다. 이정모 관장의 글은 다르다. 과학이 쉬울리는 없겠지만, 최대한 쉽게 쓴다. 게다가 위트까지 들어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과학적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두 번째 강점은 짧은 분량의 글 안에 과학 이야기와 생각할 거리들이 다양하다. 특히,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은 깊게 새겨봄직하다. 우리는 과학이 진실이자 신앙인 시대를 살고 있다.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이 과학자는 제사장이라고 평했는데, 현 시대의 상황을 잘 진단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정모 관장은 이러한 상황을 경계한다. 과학은 틀린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만(p.10)”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이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게 아니다. 과학이란 의심을 통해서 잠정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p.142)”이므로,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김상욱, p.11)”이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고, 이 책은 그 연습을 위해 가장 좋은, 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지막 강점은 정치적 선명성이다. 되려 약점이 될 수 있겠지만, 선명하게 본인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다. 아인슈타인이 에이브러햄 링컨 탄생 130주년에 한 말을 인용하며, “과학자에게는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적극 나설 의무가 있습니다.”(p.223)고 주장한다. 여기에 눈살을 찌푸리며 정치 과학자라고 욕할지 모르겠다. 분명히 정치적인 계산만으로 행동하는 과학자가 있다면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위선이고 과학을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계산으로 데이터를 조작하고 부정을 묵인하고 도덕적 문제에 침묵한다면 절대적으로 잘못이다. 하지만, 자신의 과학,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을 올바르게 표명하는 거라면 적극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로간의 적극적인 정치 속에서 과학이 또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도 싶다.

나도 과학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은 겸양의 표현이든, 인간의 유한함을 의미하든, 과학이란 학문의 위대함을 의미하든 결론적으로 한 가지를 보여준다. 과학은 단순 학문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임을. “틀린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만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p.10)”. 한때 모든 학문이 과학적이라는 말로 객관성을 얻으려 노력했고 나름의 성과(비판도 있겠지만)를 냈다면,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생활에서의 과학적 태도가 필요한 때인지 모른다. 가짜뉴스가 판치고, 극단적인 의견들이 넘쳐나는 지금. 지금 알고 있는 사실이 진리가 아님을, 언제든 증거들이 쌓이면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것. 이런 삶의 태도가 중요한게 아닐까. 오히려 과학이 신앙이 되어가는 시대에 과학적인 태도가 가장 부재하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과학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 살지만 비과하적 태도가 많아지는 지금 이런 글들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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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지식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매일 틀린 지식을 쌓고 있는 셈이다. 틀린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것만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p.10

칼 세이건은 과학은 단순히 지식의 집합이 아니다.(p.10) 과학은 생각하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존경하는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과학은 지식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자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p.11

지식을 쌓는 것은 부지런하기만 하면 되지만 생각하는 방법과 삶의 태도를 바꾸는 데는 연습이 필요하다. p.11

창의성은 심심할 때 나온다. 좀 쉬자. p.35

당장은 무용해 보여도 언젠가는 우리 삶을 바꾸는 것이 과학이다. p.47

과학적이라는 것은 최대한 간단하게 잘 설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오컴의 면도날 ... 것은 탐욕이며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것은 바로 염치. 염치만 있으면 누구나 과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p.108

과학이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게 아니다. 과학이란 의심을 통해서 잠정적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이야기가 멈추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 p.142

믿음을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남을 해롭게 한다.” <맹자> p.143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심은 진실로 가는 첫걸음이다. p.177

대화의 기본은 팩트와 스토리를 구분하는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내가 머릿속에서 지어낸 스토리인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스토리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먼저 팩트를 이야기하고 확인해야 대화가 된다. p.201

과학은 의심하고 질문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p.202

약학 칼럼니스트 정재훈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세 가지를 의심해야 한다. 자신의 눈, 자신의 기억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말이 바로 그것이다.” p.207

권위에 도전하고 신화를 부숨으로써 사회를 진보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과학인데, 때로는 오히려 권위와 신화를 공고히 만드는 데 과학이 복무하기도 한다. p.221

과학자에게는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적극 나설 의무가 있습니다. ... 과학자는 ... 어렵게 얻은 정치적, 경제적 신념을 똑똑히 밝힐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에이브러햄 링컨 탄생 130주년에 한 말이다. p.223

자연에 평화로운 죽음이란 없다. 그것이 바로 자연사다. p.244

인간 사회가 동물의 왕국과 다른 것은 서로 존중하고 공정한 규칙 안에서 경쟁하고 협력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이 재미있다고 인간 사회마저 동물의 왕국처럼 만들면 안 된다. 자연을 반면교사로 삼고 인간 사회를 더욱 명랑한 곳으로 만들려고 고민하기 위해 필요한 곳이 바로 자연사 박물관이다. p.244

놀면서 사회를 배우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호모 사피엔스의 결정적인 장면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동물 가운데 유년기가 가장 길다. 부모는 자식들을 오랫동안 돌봐야 하며 자식들은 성장하기 전까지 한참을 놀았다. 이에 반해, 네안데르탈인은 가능한 한 빨리 자라서 연장자의 자리를 채워야 했다. 그들은 유년기가 훨씬 짧았다. 유년기는 놀면서 배우고 사회성과 창의력을 개발하는 시기다.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 비해 인지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p.253

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수컷은 암컷을 꼬시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한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부질없는 짓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수컷 가운데 죽기 전에 암컷 곁에 한번이라도 가본 개체는 전체 수컷 가운데 4%에 불과하다. 나머지 96%의 수컷은 평생 짝짓기 한 번 못해보고 생을 마감한다. 여기에 비하면 인간 남성은 정말로 복받은 존재다. p.287

철학자는 자신이 누군(p.309)지 찾는 사람이고 천문학자는 자신의 위치를 찾는 사람’ p.310

본질에 접근하는 수준에서 문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학의 대중화다. (p.310) ... 그저 쉽고 재밌게 설명한다고 해서 과학 대중화 운동은 아닌 것이다. p.311

도마뱀 꼬리 잘라내기는 힘센 놈들이 자신의 죗값을 힘없는 약자들에게 온전히 덮어씌우고 빠져나가는 행위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런 데 도마뱀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도마뱀은 그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도마뱀은 남의 꼬리가 아니라 자기의 꼬리를 잘라낸다. 엄청난 자원을 포기한 것이며 이후의 삶도 만만치 않을 것을 잘 알면서 잘라낸다. 그리고 일생에 단 한 번만 꼬리를 잘라낸다. / 그런데 돠뱀 꼬리 잘라내듯 곤경을 모면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자기가 아니라 남을 도려낸다. 거의 모든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부분을 포기할 뿐이다. 그리고 꼬리 자르기를 한 번만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평생을 그렇게 산다. 도마뱀이 그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 재생능력은 하등한 생명체에게만 있다. 왜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일까? 몸이 불편해진 사람들을 아직은 멀쩡한 사람들이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손과 발과 눈이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p.327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들이다. p.340

변화는 도둑처럼 찾아온다. p.366

이제는 완전히 다른 시대다. 부모의 지난 인생 경험이 자식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다. 부모가 살았던 시대는 자식이 살아갈 시대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의 권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야 하는 시대다. 다만 부모의 애정만은 가슴에 품으면서 말이다. p.368

창의성이란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게 아니다. 무슨 괴상한 생각을 해내는 게 창의성이 아니다.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 창의성이란 있는 것들을 이렇게 엮고 저렇게 편집하여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창의성의 근본 바닥에는 기억된 지식이 있다. 기억이 없으면 창의성도 없다.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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