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청새치님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tetrapturus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청새치
청새치님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15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인사말
일상
나의 리뷰
구매리뷰
북클럽리뷰
태그
내용이 없습니다.
2020 / 0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최근 댓글
이렇게 세밀하게 자신.. 
남의일 같지 않네요. .. 
가까운 시일에 좋은 .. 
잘 보고 갑니다 
잘 읽고 갑니다. 
새로운 글
오늘 2 | 전체 1675
2009-05-19 개설

전체보기
Bookcafe in Europe / 삼례 책마을 방문기 | 일상 2019-06-17 19:00
http://blog.yes24.com/document/1139238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1. 서지사항


- 서명 : 북카페 인 유럽(BOOKCAFE IN EUROPE)

- 저자 : 구현정 / 프리랜서 작가

- 출판사 : (주)위즈덤하우스

- 출판일 : 2011년 3월 2일


2. 리뷰와 일상


  "아침 일찍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비텐베르크 플라츠역에서 나와 5분 정도 걷는다. 서점까지 가는 동안, 나무에서 떨어진 조그만 열매를 툭 맞은 것처럼 늘 반갑고 번뜩거리는 아이디어가 머리에 툭 하고 내려앉는다. 그렇게 2층 북카페의 내 자리에 앉아 메모하는 순간을 기대하며 걸어가는 아침의 기분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늘 같은 바닐라 시럽을 추가한 카페라떼의 달콤함을 느끼면서, 이곳 문구코너에서 심혈을 기울여 산 금박 테두리에 레드벨벳 표지의 노트를 펼친다. 들어오기 전, 내 머리로 떨어진 조그만 열매의 맛에 대해 써 내려간다. 손에 힘을 뺸다. 펜은 날개를 달고 다음 페이지로 향한다." - 본문 중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그 가운데는 책과 커피 모두를 좋아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나도 그런 인구 중 한명이다. 한적한 아침, 산보하듯 나와, 여유롭게 햇볕 드는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하면서, 조금은 가벼운 에세이를 읽으며, 그런 휴일을 보내는 것이 나의 오랜 로망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나의 로망을 삶 속에서 이루며 사시는 분이다. 그저 배경이 유럽(특히 독일)일 뿐이다. 사실 책을 읽으며 많이 부러웠다. 유럽의 멋진 풍경 속에서 사는 것 보다는, 프리랜서 작가라는 직업 특성으로 인해 북적이는 휴일이 아니라 한적한 평일에 북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며 아늑한 분위기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물론 삶의 면면을 들여다보자면 저자의 삶 또한 그야말로 '삶'이겠으나, 로망은 그저 로망으로 남겨두자.


  많은 여행기를 보지만, 북카페만을 눈 번뜩이며 찾아 가보고 책으로 엮은 것은 또 드문 콘텐츠가 아닌가 싶다. 유려한 문체와 약간은 거친 인쇄종이로 만들어진 책은 그 자체로 북카페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인 생각에, 북카페의 매력은 고즈넉한 분위기, 실내를 채우는 커피향, 그리고 손때 묻은 책들의 향연에 있지 않을까 한다. 때로 어떤 북카페는 오래된 책들과 얼마 지나지 않은 깨끗한 책들이 섞여 종이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종이향과 커피향의 조화는 어찌 그리도 그윽한지.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저자가 다녀온 북카페들도 하나같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들이다. 어떤 곳은 창 밖으로 탁 트인 넓은 호숫가가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바삐 오가는 광장이 보이기도 한다. 또 어떤 곳은 마치 대작가의 서재를 본따 만든 듯 고풍스럽지만, 또 어떤 곳은 원두 포대에 책을 담아 자유롭게 쌓아두기도 했다. 사소한 형식과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어떤 곳이든 책과 커피가 주는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보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북카페라는 곳을 처음 가본 적이 언제였을까. 전문적인 북카페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고등학교 시절 집 근처 대학로에 있었던 '민들레 영토'가 아마 내 첫 북카페의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어찌되었건 자유롭게 비치된 책을 보며 차를 마실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 때만해도 커피맛을 몰랐던지라(카페인 따위 없어도 밤새워 공부할 수 있는 창창한 시절이었다.) 무얼 마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손님이 들어오면 첫 응대와 함께 내주었던 소위 '민토차'의 맛만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구수한 첫 맛과 달콤한 끝 맛. 그동안 집에서 녹차나 둥굴레차만 마시던 내게 차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차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수국차였다.) 무튼 친구와 야간자율학습을 부모님 몰래 빠지고는 그곳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보다가, 수다도 떨다가, 차도 마시다가, 그렇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흘러 지방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북카페와는 좀처럼 연을 맺지 못했다. 종합대학이 있는데도 큰 서점이 몇 없었던 탓이다. 청계천을 따라 늘어서있던 헌 책방들과 교보문고, 종로서적, 반디앤루니스, 그리고 영풍문고. 너무 크고 북적여서 조금은 정신없는 분위기라 생각했던 서점들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도서관은 왠지 모르게 서점과는 다른 분위기라 지나친 고요함에 주눅이 들었다. 편하게 이리저리 책을 둘러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데 더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돈도 없고, 시간 여유도 없던 때라 책에 대한 갈증은 인터넷 서점이나 E-book을 통해 채울 수 밖에 없었다.


  또 시간이 흘러 첫 직장에 입사를 했다. 차로 30분 혹은 버스로 1시간 거리라고는 해도 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출근길이다. 무료하게 창밖을 보며 지나다니던 어느날, 버스가 지나는 길가에 '삼례 책마을'이라는 입간판이 세워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책의 거리도 아니고, 책의 마을이라. 호기심에 잠깐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충격을 받았다. 매일 지나다니던 그 길의 그 건물이 커다란 헌책방을 겸한 북카페였다니! 이름하야 '삼례 헌책방'이다. 주말이 되자마자 아침 일찍 출근 버스에 다시 올랐다. 그리고 늘 지나던 길에서 내렸다. 세상에.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이런 곳이 있는지를 몰랐다니. 얼마나 나는 무심한 사람인가. 오래된 쌀 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건물의 한 쪽에는 그야말로 청계천을 방불케하는 헌 책방이 자리했고, 다른 한 쪽에는 구매한(구매를 해야 책을 카페로 반입할 수 있다. 오래된 책이 많아 책을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책을 가지고가서 읽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널찍한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헌 책방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들떴다. 80년대 국한문 혼용의 세로쓰기 서적부터 2000년대 책까지, 연식이 오랜 책들이 꽂힌 서가가 바닥부터 저 높은 천장까지 닿아있었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났다. 예전에는 쌀을 보관했었고, 이제는 책을 보관하고 있는 이 창고는 그야말로 보물창고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이곳을 찾은 것은 인생의 발견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들러 서가에서 보물찾기를 했다. 교수님 서가에 있었던 오래된 한학(漢學) 서적도 보였고, 읽고 싶었지만 미처 읽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지나갔던 베스트셀러 소설들, 심지어는 박물관이나 미술대전의 전시도록들도 있었다. 좀 낡기는 했지만,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없었던 시대의 서적들인지라 오히려 콘텐츠의 질이 지금보다 더 충실하고 높았다. 지금 이런 도록을 사자면 설명은 별로 없고 그림만 많은 도록을, 그것도 돈 깨나 주어야 했을텐데 세세한 설명과 그림을 곁들인 세계 박물관 전시품 도록 모음이 권당 15,000원, 전질 15만원이었다.


  보고 싶은 책을 저렴한 가격에 몇 권 구매하여 카페에 앉았다. 널찍한 폴딩도어로 만들어진 창가 밖으로 책방 앞에 자리한 잔디밭과 길 건너편 오래된 성당이 보였다. 낮이면 햇빛이 잘 들어 환했고, 밤이면 잔디밭의 조명이 은은한 감성을 뽐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책을 읽기 편한 높이와 안락함을 갖춘 테이블과 의자였다. 종종 회전율을 높일 목적으로 좌석을 불편하게 해두는 카페가 종종 있는데, 여기는 몇 시간이고 앉아서 책을 봐도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곳에 오래 있을 때는 적어도 음료를 두 잔 이상 시켜먹는다. 좋은 장소와 음료를 제공해주시는 주인장께 대한 나름의 예의다.) 카운터에서는 간단한 베이커리와 음료 주문을 받고 있었다. 몇 번의 방문 끝에 이 곳의 베스트 메뉴를 알아냈다. 뱅쇼에이드다. 뱅쇼에 물과 얼음을 붓고 레몬을 넣은 뒤 계피가루를 살짝 뿌린 이곳의 뱅쇼에이드는 많이 시지도 않고, 달달하면서도 깔끔하니 맛이 좋았다.


  내친 김에 이쪽 거리 전체를 돌아보기로 했다. 책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니 건너편에는 '삼례문화예술촌'이라는 곳이 있었다. 몇몇 공방이 자리하는 듯 했다. 잠시 설명하자면, 이쪽 지방의 특징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평평하고 넓은 대지가 펼쳐져있다는 점이다. 건물 사이 공간이 널찍했다. 그리 큰 곳은 아니지만 널찍한 공간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보니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헌책방이 주는 묘미만은 못했던지라 발걸음을 돌려 나왔다. 


  헌책방에 다시 갈까 고민하는 차에 성당을 조금 지나쳐 걸어가니 또 다른 카페가 보여 들어가 보았다. 아,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여기는 그야말로 북카페였다. 자유롭게 놓여진 책을 보면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 이름하야 '휴앤안' 카페. 둘러보니 근처 우석대학교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이 주 고객층인듯 했다. 한쪽에서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앉아 농사짓는 이야기, 마을 신문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고, 한쪽에서는 대학생들이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맘에 든 것은 큰 서가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편하게 쌓여 읽히기를 기다리는 무수한 책더미들이었다. 편하게 집어와서 보고,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공간. 헌 책방이 말쑥한 도서관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청계천의 헌 책방 느낌이다. 게다가 직접 만든 베이커리와 밀크티, 딸기우유 등 먹을 거리도 아주 수준급이었다.


  이 곳을 찾아낸 후로 동선이 조금 바뀌었다. 책은 헌 책방에서 사고, 나와서 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 책과 음료는 북카페에서 즐기는 것으로. 자주 가다보니 주인 어르신과 안면도 조금 트였고, 늘 앉는 자리도 생겼다. 나만 이 곳이 좋았던 것은 아닌지, 퇴근길에 들르면 늘 벽쪽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분이 보였다. 아마도 '북카페 인 유럽' 책의 저자처럼 프리랜서 작가이실지도 모르겠다. 그 앞자리, 창가 볕이 잘 드는 자리가 내 자리다. 미니식빵과 밀크티를 시키고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헌 책방에서 사서 읽은 책의 리뷰를 한참 적어내려갔다. 그 어느 때보다 손이 가볍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편안한 공간이 주는 은총이다. '에디톨로지'의 저자 김정운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곳이 나의 '슈필라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리뷰를 쓰고 카페를 나서니 해가 지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버스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가만히 하루를 돌아본다. 헌 책방에서의 보물찾기, 그리고 북카페에서의 글쓰기 시간. 근래 보낸 휴일 중 최고의 휴일이었다. 로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의 감격은 의외로 덤덤했다. 마음이 확연히 들뜨기보다 편안하고, 느긋하고, 여유롭고, 그런 중에 잔잔한 즐거움이 있었다. 잔잔하지만 오래 가는 즐거움, 한 주 내내 지금 이 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겠지. 일주일간 열심히 일해야 할 의미가 하나 늘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3        
운전면허 도전기(1) - 필기 편 | 일상 2019-06-14 19:28
http://blog.yes24.com/document/1138590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 운전면허에 도전할 마음을 먹다.


  지난 일요일부터 운전면허 취득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사실 운전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이미 일 년이 넘었다. 재직중인 직장에서부터 집까지의 거리가 대략 25km. 그리 멀지는 않은 거리지만 막상 움직여보면 경로가 무척 미묘하다. A시에서 출발해서 B군을 지나 C시로 들어가야 한다. 물론 그래도 자동차로 가면 비교적 쭉 뻗은 국도와 산업도로를 따라 넉넉잡아도 정속주행 30분이면 도착할 거리다. 심지어 모 택시 기사님은 비오는 날 산업도로에서 140km/h를 사뿐히 밟아주시며 15분만에 주파해주신 적도 있다.


 문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다. A시의 시내좌석버스를 타고 구불거리는 농로를 따라 B군에 속한 D읍을 빙글 돌아 그곳의 공용버스 터미널에서 하차 후 다시 C시의 시내버스를 타고 직장 앞에서 내려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 앞이 A시 버스의 종점이고, 직장이 C시 버스의 한적한 정거장 바로 앞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은 도보를 포함 1시간이다. 이 무슨 시간 낭비란 말인가. 15분 거리를(실은 30분) 60분이 걸려 오다니. 지방의 시외버스야 다들 굽이굽이 다닌다고는 해도 지나친 시간 낭비다.


  마음을 넓게 써서 60분 걸린다고 해도 괜찮다. 수도권은 출퇴근하는데 편도 2시간도 걸리는데 1시간 정도야 대수겠는가. 내가 버스에서 책을 보거나 스마트폰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그 시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중증의 멀미 환자다. 표현이 우습지만 경험한 사람은 '환자'라는 표현에 공감해줄 것이다. 종류 불문, 모든 차마는 물론이고, 심지어 무궁화호, 새마을호, KTX 기차에서도 나는 멀미를 한다. 가만히 앉아만 가도 멀미가 나는 판이니, 잠깐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날리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두통이 머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잠이라도 들면 좋겠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잠도 들지 않는다. 그저 멀뚱멀뚱 1시간 동안 창 밖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 고통인 것은 그 시간동안 자신을 덮쳐오는 오만가지 생각들이다. 1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보면 정말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 중에 기쁘고 행복한 생각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루 2시간을 번잡스러운 생각에 휩싸여 보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운전면허를 따서 자가용으로 출근하기로.


  하지만 그렇게 결심한지가 벌써 1년이 흘렀다. 귀찮다는 이유로 미뤄오기도 했지만, 이미 운전면허 필기에 2번이나 떨어져 본 나의 경험이 자꾸 발목을 잡았다. 이런 말을 하면 모두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책 안 보고 시험 봤지요?" "아니요. 저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데 문제부터 풀어보라고 하니 하도 답답해서 그냥 도로교통법 조문을 공부했습니다. 문제집 풀고 오답정리도 했습니다. 그런데 떨어졌어요." 공부는 해서 법규는 달달 외웠는데, 문제는 외우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패착이었다.


  그렇게 남들 다 붙는 운전면허 필기를 두 번이나 떨어지고 나는 운전면허에 대한 마음을 접어버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마음 먹고 공부를 하자니 도무지 손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내 생활을 좀먹는 멀미와 이별하려면 면허를 따야 했다. (운전하는 사람은 멀미하지 않는다고 누군가 그랬다. 나중의 일이지만 장내기능 교육을 받아보니 왜 멀미를 안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 필기시험을 공부하며 든 생각, 시험이 바뀌어야 한다!


  면허 취득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거리니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문제은행 식으로 출제되며, 도로교통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문제은행 전체를 다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링크를 찾아 들어가니 문제가 무려 1000문제다. 그 중에 40문제가 나온다 하니 4%의 확률이다. 찍어 풀기에는 확률이 너무 낮았다. 목표로 한 시험 날짜는 10일, 문제를 다운 받은 것은 7일. 3일간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인가. 일단 3일간 1000문제니 하루 500문제씩 풀고 마지막 날은 틀린 문제, 헷갈리는 문제를 복습하고 시험을 보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5지선다 문제인데 생각보다 지문이 길어 계획대로 독파하려면 제법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100문제 풀고 복습하고, 또 100문제 풀고 복습하고, 그렇게 500번까지 풀고 다시 전체적으로 틀린 문제를 복습하니 어느새 7시간이 지나 있다. 하루 저녁 시간을 그렇게 온통 문제와 씨름을 하고 나니 지치다 못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파일을 닫고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남들 다 그냥 대충 보는 시험에 이렇게 골몰해서 공부를 하고 있나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때려칠까'로 발전하는 생각을 얼른 붙들었다.


  아니지, 원래 운전면허는 이렇게 공부하고 따야되는거 아닌가? 대충 봐도 맞을 시험을 내니까 김 여사님, 김 기사님들이 도로에 출몰하시는 거다. 외국처럼 1년이 걸려 면허를 취득하도록 할 것까지야 없지만 좀 더 시험을 유의미하게 바꿀 필요는 있다. 문제은행 식을 탈피하기는 어려울 듯하고, 좀 더 현실적인 수정 방법을 제안하자면 공부해야 할 과목을 세분화하는 것이 어떨까. 법규에 대한 문제는 무척 많지만 막상 차량 자체에 대한 문제는 몇 되지 않았다. 당장 필기를 마치면 실제 차량에 앉아 장내기능 시험을 봐야 하는데, 차량에 대한 지식을 얻기는 어려워 보였다. 물론 장내기능 교육을 통해 그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상 다들 시험을 패스하기 위한 '공식'을 가르쳐줄 뿐이 아닌가. 그럴바에야 필기시험에서 기본 법규와 더불어 차량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이해, 점검 및 유지에 대한 지식까지 다루어 주면 훨씬 낫지 않을까. 수능이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진행되듯, 과목과 교시를 나누어 세부적으로 문제를 출제하면 실제 운전에 필요한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다양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시험 진행은 어떨까.


* 제 1과목 :교통법규

  - 도로교통법 조문 자체에 대한 이해


* 제 2과목 : 차량의 구조와 작동 원리

  - 동력원, 차체 구조, 브레이크 등 주요 부속품에 대한 이해


* 제 3과목 : 운전 기능 및 조작

  - 핸들, 페달, 각종 버튼 등 차내 주요 조작 기능에 대한 이해


* 제 4과목 : 차량의 유지 및 보수 

  - 각종 부품의 점검법 및 교체 주기

  - 겨울철 점프스타터를 이용한 시동 켜기 등 비상 상황에서의 대처법


* 제 5과목 : 주행

  - 주행시의 도로 흐름 파악

  - 우천, 경사로 등 특이 상황에서의 주행법에 대한 이해


  지금 같은 필기시험으로는 면허를 취득하였더라도 차에 대한 지식은 전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운전에 앞서서는 각 자동차 회사에서 배포하는 차종별 기능설명서를 보아야만 하는데, 이걸 매우 꼼꼼하게 읽고 제대로 숙지하는 분들이 과연 몇이나 될런지 싶다. '차 몰다보면 알겠지'가 아니라 알고 나서 차를 모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사족으로, 내 분야가 아니니 잘 모르기는 하지만, 위와 같은 시험 과목의 설치와 문제 출제를 위해서는 우선 자동차 제작 분야에서 특정 부속 및 기능들에 대한 표준화가 필요할런지도 모르겠다.)


  3일간 문제 풀이와 복습을 반복하니 문제가 슬슬 눈에 익기 시작한다. 이러다가는 소위 '답치기', 즉 문제를 푸는게 아니라 외운 답에 그냥 표시하는 시험이 될 것 같았다. 문제은행 방식의 시험이니 어쩔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은, 사실 문제은행의 분량 자체가 많지 않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지 싶다. 무튼 그렇게 1000문항을 모두 공부하고 월요일 오후에 시험을 보러 면허시험장을 방문했다.


# 3번만의 필기 합격


  면허시험장 민원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학과교육 인터넷 접수는 하고 왔는데, 어디로 가서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정신 없는 중에 안내 데스크가 보였다. 가서 물으니 대뜸 적성검사는 했냐고 묻고는 나를 적성검사실로 보냈다. 쭈뼛거리며 들어가니 직원분이 우선 응시 원서를 쓰고 적성검사를 받으라고 하신다. 도로교통공단에서 안내하는 운전면허 취득 절차에는 '학과교육 - 적성검사 - 응시원서접수 - 필기시험'의 순이었는데, 뭔가 순서가 뒤집힌 느낌이었다. 내가 맞게 지금 안내를 받은 것인지 의구심이 들어 다시 직원분께 확인하니 학과시험 보러온거 아니냐고, 가서 교육 접수해서 듣고 시험을 보라고 한다. 바쁜 직원분께 더 캐묻기도 뭐하여 같이 옆에서 원서를 쓰고 있는 수험생을 따라 눈치껏 학과교육을 접수하고(인터넷 접수를 했더라도 다시 민원실 창구에서 본인확인 및 접수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인터넷 접수했다고 바로 교육장 들어가서 교육 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는 좀 인터넷 접수 페이지에서 안내라도 해주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응시원서에 학과교육 이수 여부를 표시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리고 적성검사를 해서 시력 측정 결과가 나와야 이수 과목, 즉 2종인지 1종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도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시력이 0.8이 나오지 않으면 1종 시험에는 응시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니, 그러면 애초에 안내를 '응시원서작성 - 적성검사 - 학과교육 - 응시원서접수 - 필기시험'의 순으로 명시했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뒤집어 써 놓는 이유가 뭘까. 인터넷에 안내된 순서만 보고 온 수험생 입장에서는 대혼란 그 자체였다. 그나마 전에 두 번 해본 이력이 있으니 가물거리는 기억을 좇아 눈치껏 사람들을 따라 움직였지, 안 그랬으면 정말 정신없을 뻔했다.


  간신히 학과 교육을 받고 민원실에 가서 응시료를 내고 원서를 접수한 뒤 PC 시험장으로 향했다. '기억이 잘 나야 할텐데, 이런 정신없는 중에 잘 볼 수 있을까, 이번에도 떨어지면 무슨 망신이야.' 잡다한 생각들 가운데 신분증과 원서를 제시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문제를 많이 풀어보니 확실히 편하다. 40분의 제한 시간이 여유로웠다. 20여분 동안 40문제가 다 풀렸다. 천천히 다시 체크한 답을 확인하고 시험 종료를 누르니 바로 점수와 결과가 뜬다. 결과는 다행히 '합격'이었다. 점수는 98점. 도대체 뭘 틀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오답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조금 아쉬웠다. 원서에 합격 도장을 받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이제 이대로 귀가하면 되는건가? 마지막까지 나는 헤매고 있었다. 특별히 더 필요한 절차는 없는 듯 했다.


# 다음 순서는? 장내 기능 시험!


  시험장을 나와서 곧장 시험장 앞 카페로 들어갔다. 긴장이 풀리면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시원한 음료를 하나 주문해서 훌쩍 들이켰다. 이제사 좀 마음이 놓인다. 드디어 합격이었다. 이제 누가 물어봐도 낯 붉혀가며 필기 떨어졌다는 고백은 안녕이다. 이제 다음 순서를 알아볼 차례다. 이제부터는 정말 모든 것이 처음이다. 부디 오늘같은 정신없는 상황만은 없었으면 했다.(물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필기 시험 후 장내 기능 교육을 받고 기능 시험을 보고, 도로주행 연수를 받고 도로주행 시험을 보면, 다 합격했다는 전제 하에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주변에 운전 가르쳐줄 사람이 없으니 이제는 학원을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다시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내일이야 또 어찌되든 오늘은 합격의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지. 그렇게 드디어 나는 운전면허 필기에 합격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3)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3        
19_모비 딕 | 구매리뷰 2019-06-10 19:08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137597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모비 딕

허먼 멜빌 저/김석희 역
작가정신 | 2011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읽기 쉽지 않은 문장을 읽게 하는 훌륭한 번역.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1. 서지사항


- 서명 : 모비딕

- 저자 : 허먼 멜빌

- 역자 : 김숙희

- 출판사 : 작가정신

- 출판일 : 2013625

 

2. 리뷰

 

# <모비 딕>을 이해하는 키워드, 이중성

 

  언제 읽어도 <모비 딕>(사실 내게는 <백경>이라는 제목이 더 친숙하기는 하다.)은 참으로 끝까지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매번 도대체 멜빌은 왜 이 소설을 썼을까?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풀리지 않는 의문을 동반한다. 사실 아직도 나는 멜빌이 왜 이 소설을, 아니, 이런 소설을 썼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나마 몇 페이지 읽지도 못했던 처음의 도전에 비해 지금은 완독이라도 해내고 있다는 것에 얄팍한 의의를 두고 싶기도 하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포경업에 관한 사실적 르포라고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도 같다. 도대체 이 소설의 주제는 무엇인가? 마지막 장을 겨우 읽어낸 졸렬한 독자의 지극히 사소하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소설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이중성이 아닐까 싶다.

 

# 이슈메일의 관찰자적 시선이 보여주는 인간의 이중성

 

  그 유명한 첫 구절 나를 이슈메일이라 부르라.’는 말로 서술을 시작하는 이 이슈메일은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다. 그것도 아주 시니컬한 관찰자. 허무주의에 빠져 괜히 세상을 등지고 바다로 나가고 싶어하고, 그래서 상선에 몇 번 타본 경험을 믿고 아주 담대하게도 3년의 항해가 예정된 포경선에 덥썩 올라탄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도대체 왜 그는 바다로 나갔을까. 이슈메일의 행동은 우울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보이는 충동적 감정과, 그에 따른 예측 밖의 행동과 유사해 보인다. 무기력과 무의욕이 지배하는 허무하고도 우울한 감정 속에서 불현듯 솟구치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 그 갈망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감정은 이슈메일을 바다로 몰아간다.


  "당분간 배를 타고 나가서 세계의 바다를 두루 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내가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혈액순환을 조절하기 위해 늘 쓰는 방법이다. ... 특히 심기증에 짓눌린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보는 족족 후려쳐 날려보내지 않으려면 대단한 자제심이 필요할 때, 그럴 때면 나는 되도록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권총과 총알 대신이다." - 본문 중에서


  무척 아이러니한 것은, 그것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내면의 충동에 의한 타의적 선택인 동시에 또한 그 충동에 휩쓸리기 원하는 이슈메일의 자의적 선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배를 타다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처럼 시니컬한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그 속에서 묘한 활력을 얻는 이중적인 모습. 그 이중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이슈메일의 철저한 방관자적 태도다. 그는 현실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하면서도 현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하고 파악하려 든다. 글 초반부의 에이해브 선장에 대한 이상할 정도의 집착에 가까운 관심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겠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의 허무와 거기서 비롯되는 우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붙어있는 한 현실에 발 딛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기독교도인 그에게 있어 자살은 죄악이기 때문에, 허무와 우울 속에서도 삶을 지속해 가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어쩌면 이슈메일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가 보여주는 인간의 이중성

 

  한편,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인 에이해브 선장은 흰 고래 모비 딕에 대한 광기에 휩쓸린 인물이다. 그의 광기는 독특하다. 바다에서 가만히 잘 살고 있던 고래에게 먼저 사냥하려 달려든 것은 인간이다. 고래는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적의를 보이며 창으로 찔러대는 인간에 대항해 싸운다. 그러한 싸움의 과정 중에서 고래는 지느러미에 3개의 작살이 꽂혔고, 에이해브 선장은 다리를 잃었다. 서로 카운터를 주고받은 1:1의 무승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모비 딕에 대해 엄청난 증오와 집착, 광기를 뿜어낸다. 이는 모비 딕을 경험한 다른 인물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감정이다.

 

  한 예로 에이해브 선장의 지난 항해에 함께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항해사 스타벅, 그는 모비 딕에 대해 섬뜩한 광기를 토해내는 선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말 못 하는 짐승한테 복수라니!” 스타벅이 외쳤다. “그 고래는 단지 맹목적인 본능으로 공격했을 뿐인데! 이건 미친 짓이에요!” - 본문 중에서

 

  또한 에이해브와 같이 모비 딕에게 팔을 잃은 새뮤얼 엔더비호의 영국인 선장은 흰 고래를 두 번이나 다시 만나고도 왜 잡지 못하였냐?’는 에이해브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잡고 싶지도 않았소. 팔 하나로 충분하잖소? 남은 이 팔마저 잃어버리면 어쩌란 말이오? ... 그놈이 삼켜버린 그 팔은 내가 알 바 아니야. 그건 녀석이 마음대로 해도 좋아. 이제는 어쩔 수도 없는 일이고, ... 이제 흰 고래는 딱 질색이야. 한번은 그놈을 잡으려고 보트를 내렸지만, 나는 그걸로 만족했어. 놈을 죽이면 대단한 영광이겠지. 그건 나도 알아. ... 하지만 그놈은 가만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야.” - 본문 중에서

 

  잃은 것이 없는 스타벅에 비해 영국인 선장은 한 팔을 잃음으로써 에이해브와 가장 가까운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체념에 가까운 감정을 내보이며 에이해브의 광기와 더욱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대체 왜 에이해브는 유달리 모비 딕에 대한 광기를 품게 된 것일까.

 

  고래는 보통 색이 어둡다. 흰 고래는 아마도 알비노증에 해당하는 돌연변이 개체였을 것이다. 흰 색이 주는 신비로운 이미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알 수 없는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거기다 모비 딕은 거대하고 영리하기까지 하다. 영국인 선장의 말처럼 사냥꾼에게 최고의 영예를 가져다 줄 사냥감, 그것이 모비 딕인 것이다. 뛰어난 선장이었던 에이해브에게 모비 딕은 엄청난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였을 것이다. 포경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잡기를 꿈꾸는 이상이자 목표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는 이 이상에 도전하여 이미 한 번 처절한 패배를 경험한 바 있다. 문제는 이 패배에 대한 반응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가는가이다. 영국인 선장은 이상에의 좌절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잃어버린 팔이 뼈아프기는 하지만 다른 고래를 잡다가 실패한 것과 그리 다를 바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에이해브는 이상에의 좌절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실패의 경험은 그에게 엄청난 실망과 충격과 분노를 안겼고, 마침내 그의 분노는 집착으로, 광기로 발전해간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판지로 만든 가면일 뿐이야. ... 죄수가 감방 벽을 뚫지 못하면 어떻게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겠나? 내게는 그 흰 고래가 바로 내 코앞까지 닥쳐온 벽일세. 때로는 그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 하지만 그게 어쨌는 건가. 그 녀석은 나를 제멋대로 휘두르며 괴롭히고 있어. 나는 녀석한테서 잔인무도한 힘을 보고, 그 힘을 더욱 북돋우는 헤아릴 수 없는 악의를 본다네. 내가 증오하는 건 바로 그 헤아릴 수 없는 존재야.” - 본문 중에서

 

  놀라운 것은 영국인 선장이 그런다고 뭐가 바뀌겠소?’라 했던 질문의 답을 에이해브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모비 딕을 잡는다고 무언가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 끝에 허무만이 남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광기를 버리지 않는다. 상처뿐인 승리일지라도 그 결과를 자신을 얻어내고야 말겠다는 선연한 의지.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이중성을 볼 수 있다.

 

  욕망의 화신인 인간에게 있어 무언가를 갈망하고 취하고자 하는 의지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갈망하던 무언가를 얻었을 때, 과연 인간은 행복할 것인가에 있다. 지극한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내었을 때, 우리는 한편으로는 세상을 얻은 듯 뿌듯해 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겨우 이것을 얻어내고자 그 많은 것들을 스스로가 희생하였던가 싶은 허탈감을 느낀다. 그 끝에 있는 것이 허무뿐일지라도, 어떤 수를 써서든 그 끝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 참으로 모순된 태도가 아닌가. 그것이 에이해브의 광기가 보여주는 또 다른 인간의 이중성이다.

 

# 요나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인간의 이중성

 

  이슈메일과 에이해브 선장을 태운 피쿼드호의 항해를 앞두고 한 목사가 와서 축도 예배를 한다. 그는 항해에 대한 축복의 기도와 더불어 선원들에게 구약의 요나서를 주제로 설교를 나눈다. 네 개 장으로 구성된 요나서의 내용은 단순하다. 선지자로 택함 받은 요나는 하나님께 한 도시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그 명령이 싫었다. 거기에 가서 복음을 전한들 사람들이 듣지도 않을 것이며, 그 도시는 죄로 인해 하나님께 벌을 받아 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고민 끝에 요나는 배를 타고 하나님을 피해 도망간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누구시던가. 온 천지의 주재이시요,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 아니던가. 요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피하지 못한다. 그가 탄 배가 풍랑에 휩쓸려 모두 죽을 지경이 되자 선원들은 그것이 요나의 탓임을 깨닫고 그를 바다에 던져 버린다. 이윽고 요나는 고래에 삼켜지고, 고래 뱃속에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올린다. 육지에 도달한 고래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맡기신 바로 그 도시의 해변에 그를 뱉어 놓는다. 결국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복해 그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그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난다.

 

  목사가 이러한 내용의 설교를 나눈 것은 요나를 삼킨 것이 고래였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리바이어던이라는 거대한 바다 괴물이 등장한다. 악어라고도 이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소설의 서두에서 멜빌은 이를 고래로 인식하고 관련된 문장들을 수집해 둔 바 있다. 에이해브에게 본의 아니게 엄청난 좌절과 광기를 안긴 흰 고래, 모비 딕은 그 크기며 악랄함이(에이해브의 시점에서) 리바이어던에 견줄만한 존재다. 그래서 서두에 등장하는 요나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요나는 인간이 만든 배를 타면 하느님의 지배가 미치지 않고 이 지상의 수령들만 지배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나는 요파 부두를 살금살금 돌아다니며 타르시시로 가는 배를 찾지요. ... 대서양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바다였던 그 고대에 요나가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을 것입니다. ... 요나는 물고기의 배 속에서 꺼내달라고 주님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하지만 그의 기도를 듣고 중요한 교훈을 얻으세요. ... 그는 모든 구원을 하느님에게 맡기고 여기에 만족합니다." - 본문 중에서  


  요나는 인간의 이중성을 매우 극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다. 그가 도망가려 탔던 배는 그가 있는 곳으로부터 가장 멀리까지 항해하는 배였다. 세상의 끝으로 도망가려 했던 것이다. 그러한 요나의 모습은 신의 뜻을 거역하고 그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인간의 독립성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지라 결코 창조주인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바다를 잠잠케 하시지 않으면 배는 세상의 끝은 커녕 파도에 휩쓸려 가라 앉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게다가 바다에 던져진 요나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부지한 것은 고래로 하여금 그를 삼키게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의 결과였다. , 인간은 신의 은총의 없이는 스스로 삶을 부지하지 못한다. 그것이 또한 요나가 보여주는 인간의 연약함이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이래, 유럽은 계속해서 신성의 지배 아래 존재해왔다. 성경은 중세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학문이었으며, 그들의 삶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교황에게 파문당하여 내세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모든 삶이 신에 의해 주재 되고 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 인간은 점차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신이 정해준 운명 따위 거부해 버리고, 자신들의 뛰어난 이성에 따라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마침내 니체는 이렇게 선언하기에 이른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신의 섭리가 아니면 인간은 호흡 한 줌 제대로 부지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신의 은총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면서도 신을 거부하고 떠나기 원하는 인간의 이중성은 앞서 말한 이슈메일, 그리고 에이해브의 이중성과도 닮아있다.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이 보여주는 이중성은 요나가 보여주는 모순의 한 편린이라 볼 수 있다. 한없이 지혜로운 만물의 영장이면서도 또한 맨 몸뚱아리로는 자기 몸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가 인간이기에 인간에게 삶은 숙명이면서도 굴레다. 그것이 모든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모순이며,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모순의 확고한 근간이다. 그래서 인간은 삶을 벗어나기 원하면서도 숭고한 삶을 원하는 이중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로 인해 이슈메일과 같은 허무주의, 혹은 에이해브와 같은 광기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모순을 숙명처럼 끌어안고 때로는 거부하면서, 때로는 순응하면서, 우리 자신도 모순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인간은 이 모순을 해결하고자 과학, 철학, 도덕, 이성, 신앙 등 모든 학문을 탐구해 그 답을 구해왔다. 인간 사유의 역사는 곧 인간의 본질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였던 셈이다. 따라서 이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인간은 끝없는 탐구를 통해 끝없이 진보할 것이다.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해결하고자 갈망한다는 또 다른 모순을 낳으면서 말이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본질적 모순의 위대한 의의일 것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5        
청장관 이덕무의 기호(記號)를 읽으며 | 일상 2019-06-09 14:57
http://blog.yes24.com/document/1137279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청장관 이덕무의 기호(記號)를 읽으며


  어제 리뷰를 적었던 책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에는 청장관 이덕무의 '기호(記號)'라는 글의 일부가 실려있다. 내용인즉슨, 제목 그대로 자신의 호(號)에 대해 쓴 것이다. 이덕무의 호는 대표적인 것이 청장관(靑莊館)이다. '해오라기'라는 뜻이다. 해오라기가 뒤나 옆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는 그 시야가 맘에 들었던듯 싶다. 그러나 '기호'에서 밝히는 바, 그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썼던 호는 '영처(어린아이 영, 處)'다. 어린아이(어린아이 영)의 천진함과 처녀(處)의 순수함을 의미하는 뜻에서 스스로 그리 지었다 한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 학문과 올바른 길에 대한 천진무구한 마음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 들어있다.


  '기호' 외에도 선비들은 호를 짓고나서 그에 담긴 뜻을 정성들여 글로 쓰거나 혹은 존경할만한 선배에게 부탁하여 자신에 대한 글을 써주기를 청탁했던 모양이다. 앞에서 설명한 청장관 이덕무와 여유당 정약용이 전자에 해당하고 단원 김홍도가 후자에 해당한다. 그만큼 '호'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과 뜻을 정성스레 담은 이름이었다.


  몇년 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사석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교수님께서 느닷없이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느냐 물으셨다. 명리학을 공부하시는 분이라 사주를 한 번 봐주시겠다는 뜻이었다. 따로 신앙을 갖고 있는 바, 그런 것을 믿지는 않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순순히 날짜를 말씀드렸다. 핸드폰으로 계산을 잠깐 하시더니 뜬금없이 '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사주에 물(水)이 없으니, 호를 지을 때는 바다 해(海)자나 삼수변이 든 글자를 쓰도록 하게."


  한참의 시간의 흘러 인터넷 문화(블로그, 카페 등)에 한 발을 걸치기 시작하면서 '호'에 대한 생각은 느닷없이 다시 떠올랐다. 닉네임이라는 것은 별명, 별호에 해당하니 일종의 '호'가 아니던가. 며칠을 '호'를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막연히 호를 지을 때는 바다와 관련된 단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생이 제주도민인지라 바다를 워낙 좋아했던 탓이다. 공교롭게도 명리학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과 아귀가 맞아들었다. 왠지 그 때 그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 같아 보일까 싶어 마음이 쾌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호'이니 내가 맘에 드는 글자와 뜻을 담아 짓고 싶었다.


  문득 어류도감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쓰시던 낚시용 어류도감이다. 물고기 이름을 갖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이왕이면 대양을 마음껏 누비는 먼 바다의 물고기를 골라야겠다. 연안의 탁류에 사는 물고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창창한 바다를, 깊은 심연에서부터 반짝이는 수평면에 이르기까지 힘차게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물고기였으면 했다. 한참을 도감을 뒤적거리니 '청새치'라는 물고기가 보였다. 몸 길이가 1m를 넘으니 상당히 거대한 어류였다. 생김새도 특이하다 앞 코가 마치 창과 같아 '창어(槍魚)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생김새 때문인지 이동 속도가 물고기 중에서 수위를 다툰다 했다. 학명은 Tetrapturus audax. 영문 아이디를 Tetrapturus로 하고 닉네임을 청새치로 하면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 부르기 어렵지 않고, 다들 한번 쯤은 들어보았지만 그렇다고 흔하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물고기는 아니니, 중복의 걱정도 없고. 소리내어 몇 번 불러보니 어감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닉네임을 '청새치'로 정했다.


  이제 '청새치'의 이름을 가지고 '호'를 지어볼 차례다. 중국어 사전과 자전을 뒤적거려가며 한참을 찾은 뒤에야 '청새치'를 한자로 '유어(諛魚 ; 아첨할 유, 물고기 어)'로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푸른색을 띈다는 의미의 청(靑)자를 남기고 유(諛)자를 가져오려 했더니 유(諛)자의 대표 의미가 '아첨하다'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청유'라는 발음은 좋았다. 좋아하는 푸른색에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는 '유'의 발음이 괜찮았다. 자전을 또 한참 뒤적여서 비슷한 글자를 찾았다. 다랑어 유(魚+有)자다. 청새치와 참치는 맛이 비슷해 청새치를 비롯한 새치류가 '참치의 아류'로 불리기도 하고, 실제 그렇게 먹기도 하니 이 글자를 써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청유(靑/魚+有). 지어놓고 보니 썩 마음에 들었다. 오랜 고민의 끝에 지은 내 첫 호는 '청유'가 되었다. 하고 많은 물고기 중에 왜 청새치인가. 청새치의 특성을 살펴보자. 위키백과에서는 청새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청새치는 돛새치목 돛새치과의 한 종으로, 인도양에서 태평양까지 따뜻한 열대 바다에서 살며, 낮에는 2~3마리가 짝을 지어 해수면 가까이에서 헤엄쳐 다니다가, 밤이 되면 깊은 바다로 내려간다. 최고 무게는 500 kg, 최고 길이는 600 cm 까지 기록이 남아 있다.청새치는 돛새치목 돛새치과의 한 종으로, 인도양에서 태평양까지 따뜻한 열대 바다에서 살며, 낮에는 2~3마리가 짝을 지어 해수면 가까이에서 헤엄쳐 다니다가, 밤이 되면 깊은 바다로 내려간다. 최고 무게는 500 kg, 최고 길이는 600 cm 까지 기록이 남아 있다." - 위키백과, <청새치>


  큰 바다에 살면서 해류를 따라 헤엄쳐 산란지와 서식지 사이를 이동해 다니는 특징이 있다. 낮에는 해류를 따라 이동하고, 밤에는 깊은 바다로 내려가 휴식하고.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모습이었다. 앞에서 서술하였듯 앞 코가 뾰족하니 창과 같이 생겨서, 그 창을 휘둘러 먹이를 베어 잡는다  한다. 덩치가 크고 속력이 빨라서 천적은 드물다. 범고래, 청상아리 정도나 되어야 한다. 너른 바다의 해류를 타고 심연과 해수면을 오가며 유유히 헤엄쳐가는 청새치의 모습. 그것이 내가 바라고 원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틀에 박힌 사람이었다. 시쳇말로 애늙은이라고나 할까. 가난한 집안의 첫째가 가진 숙명이다. 어린 나이에 이미 집안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버려서 어리광 한번 피우지 못하고 착한 아이로 자라왔다. 변화를 싫어하고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그런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다. 학창시절에는 그런 자신이 무척이나 유용했다. 소위 모범생의 생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가고, 착실하게 부모님 말 잘 듣고. 그때만 해도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독립을 하고 나니 내 자신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욕구를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지니 이제는 삶을 누리고 즐길 수 있는 때가 되어도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답답했다. 내가 나에게 씌운 틀을 이제는 벗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나에게 자유를 준 것이 새롭게 가진 신앙이었다. 친구의 소개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를 무한히 사랑하시고 이해하시고 나의 필요를 채우기 원하시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위로가 되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분의 품 안에서, 진리 안에서 자유케 되고 싶었다. 한없이 깊고 넓은 은혜와 평강의 바다를 마음껏 누비며 자유함을 누리는 사람, 탕자와 같이 멀리 그 품을 떠났다가도 언제나 다시금 그 품으로 돌아오는 사람, 은혜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오로지 그 분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 유혹과 죄악 앞에서 단호히 칼을 휘둘러 자신을 죽이고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로 사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다. 믿음의 항해자. 그래서 '청유', 청새치다.


  늘 그렇듯 졸렬한 글이 되었으나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이것이 나의 기호(記號)다. 내가 살고 싶은 삶, 내가 원하는 삶이 고스란이 들어있는 이름, '청유'. 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살고 싶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4        
18_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구매리뷰 2019-06-08 22:20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137167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한정주 저
다산초당 | 2015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호(號)에 담긴 선비들의 삶과 정신. 그 집대성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1. 서지사항


- 서명 :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 저자 : 한정주 / 역사평론가

- 출판사 : 다산북스 / 경기도 파주

- 출판일 : 2015년 6월 10일


2. 리뷰


# 선비의 삶과 정신을 담은 이름, 호(號)


  전공 분야의 역사를 배울 때, 호(號)와 관련하여 인상 깊었던 두 가지 기억이 있다. 하나는 해당 과목을 공부하면서 상당히 애를 먹었던 기억이다. 다름 아닌 명(名 ; 이름), 자(字), 호(號) 때문이다. 유난히도 이 분야의 역사적인 인물 중에는 장(張)씨가 많았고, 그들의 명, 자, 호가 제각각인데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주장하는 이론마저 제각각이었으니,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내용을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또 하나는 그 과목을 가르쳤던 교수님의 호(號)에 대한 당신의 설명이었다. 당신도 멋진 호를 갖고 싶어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큰 태양, 큰 빛'의 의미를 담은 호를 지었다고 하셨다. 지을 당시에는 상당히 멋지다 생각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으로 건방진 호가 아니냐며 웃으셨다. 지금은 다른 호를 쓰고 계신다 했다.


  명(名)은 보통 집안 어른들이 지어주시는 이름, 즉 본명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두 자, 혹은 석 자 이름들이 모두 명(名)이다. 자(字)는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웃어른이나 스승께서 지어주시는 이름, 특별히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친밀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보통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칭할 때는 자(字)를 불렀다. 그리고 이 책의 주제인 호(號)는 보통 자신이 마음의 어떤 뜻을 담아 지은 별칭으로, 여럿이 공공연히 모인 자리에서 이름 대신 사용하는 호칭이었다. 자칭한 것도 많으나 종종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람의 특징을 보고 붙여준 호도 있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작가들의 필명이 일종의 호(號)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일상에서 잘 와닿지는 않지만 지금도 학계에 계신 많은 교수님들은 자신만의 호(號)를 갖고 계신다. 정년 퇴임 기념 논문집의 출간 즈음에 이르러서야 그 제목에 '00 000교수'라 하여 그때에나 교수님의 호(號)를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만 해도 호(號)를 쓰는 것은 선비들 사이에서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다. 선비들은 호(號)를 통해 자신이 마음에 품은 뜻과, 자신의 처지와, 자신의 취향을 가감없이 드러내었다. 즉, 호(號)를 키워드로 하여 그 인물의 삶과 정신을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의의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명(名)과 자(字)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생물학적 자아(태생적 자아)에 가깝다면, 호(號)는 선비가 자신의 뜻을 어디에 두고 마음이 어느 곳에 가있는지를 나타내는 이른바 사회적 자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호를 살펴보면 그의 사람됨과 더불어 그 삶의 행적과 철학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더욱이 호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자의식)를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뜻과 의지 역시 읽을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우리 각자가 삶의 방식과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좌우명이나 혹은 마음에 새긴 멋진 명언 하나씩을 갖고 있듯, 조선시대 선비들은 자신의 뜻을 담은 문장을 압축해 두 세 자의 호를 씀으로써 '나 이런 사람이요'를 사람들에게 나타낸 것이다. 또한 그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선비들은 자신이 세운 뜻과 방향을 다시금 인식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가다듬었으니 실로 호는 각 사람의 거울이라 하겠다.


# 호(號)의 집대성을 통해 살펴보는 조선의 사상사


  책의 구성에 대해 잠깐 살피자면, 이 책의 분량은 무려 703쪽에 이른다. 명, 자, 호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집필 의도를 밝힌 서문을 지나면 조선의 이름난 선비들의 호와 삶을 조명한다. 그리고 첫번째 부록으로 작호(作號), 즉 호를 짓는 방법에 대해 잠시 논하고(사실 읽다보면 이 부분에 가장 관심이 갈 것이다. 나도 '호' 하나 멋지게 지어볼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두번째 부록으로 본문에 수록되지 않았던, 조선시대 유명 인물들의 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모아 실었다. 그리고 세번째 부록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 정주영 전 현대 회장, 조지훈 시인 등 근현대 인물들의 호에 대한 설명을 실었다. 그야말로 호 대사전이다. 어찌보면 별 것 없는 작은 소재 같지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책을 펴내기까지 한 저자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분야는 좀 다르지만 한때 학문의 길을 꿈꾸었던 한 사람의 후학으로써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바다.


  호(號)에 의미를 담아 쓸 정도면 이미 양반 계층인데다, 그 뜻을 고전에서 갖고오는 경우가 많았으니, 호에 대한 거창한 설명이 붙으려면 벌써 유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어야 한다. 저자가 의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조선시대 대표 문인들의 삶과 생각을 집대성한 셈이다. 본문을 읽다보면 그러한 방향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비록 시대 순서로 인물을 싣지는 않았으나 삼봉 정도전에서부터 사림의 거두였던 정암 조광조, 율곡 이이, 퇴계 이황,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의 대표 인물 여유당 정약용, 연암 박지원에 이르기까지 한편의 조선 유학사(儒學史)가 그려진다. 거기에 더하여 매월당 김시습,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고산 윤선도, 추사 김정희에 이르는 또 한 축이 자리하는데, 이는 조선 미술사(美術史)의 흐름이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성급한 일반화가 아닐까 염려하지 마시라. 여기에 빠진 인물들은 부록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 호(號)라는 작은 단서를 통해 조선의 흐름과 역사를 어렴풋이 드러내는 저자의 통찰이 놀랍다. 아쉬운 것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 시대 순서가 아니기 때문에 흩어진 퍼즐 조각을 제자리로 이어 붙이는데는 독자의 노력이 다소 필요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어떤 의도로 이런 순서를 정하였는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대순으로 챕터를 정렬해서 읽는 것이 내용 이해에도 오히려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 거친 인생의 파도를 헤쳐나가는 지혜 '여유당(與猶堂)'


  내용을 쭉 읽어가다 보니 특별히 한 인물의 호(號)가 인상 깊다. 조선 후기 실학자 '여유당(與猶堂)' 정약용이다.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를 비롯해 수많은 저작을 남긴 조선의 지식인 정약용. 흔히 알려지기로 그의 호는 '다산(茶山)'이다. 우리나라 차(茶)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답다. 그의 호가 다산이 된 것은 그가 차를 매우 즐겨 마시기도 하였거니와, 유배되어 간 강진 지역의 만덕산의 별칭이 '다산(茶山)'이었다. 예로부터 질 좋은 차가 많이 나서 다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정약용의 입장에서 힘든 유배 생활 가운데 만덕산에서 나는 좋은 차(茶)가 그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었던지 만덕산의 다른 이름 '다산'을 기꺼이 그의 호로 삼아버린다. 그러고보면 그의 인생에 있어 상당히 후대에 지어진 호가 '다산'인 것이다. 그럼 그 이전에는 어떤 호를 썼을까? 500여 권이 넘는 그의 문집은 또 다른 호인 '여유당(與猶堂)'의 이름을 달았다. 바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다.


  '여유당(與猶堂)'이라는 호는 '다산'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붙은 것으로 보인다. '여유당'의 유래가 된 문장은 <노자(老子)>에 등장한다.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與兮若冬涉川).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猶兮若畏四隣)" - 본문 중에서


 이 두 구절에서 각각 앞 글자를 따와 만든 것이 '여유당(與猶堂)'이라는 호다. (당(堂), 재(齋) 등의 한자는 집을 뜻하는 글자로, 호(號) 뒤에 흔히 붙여 쓰곤 한다.) 정조에게 많은 총애를 받고 능력을 펼쳤으나 그로 인해 오히려 많은 시기와 비난을 받은 이가 정약용이다. 정조 생전에도 천주교로 인해, 실학 사상으로 인해, 노론의 공격을 당했던 이인지라, 정조 사후 노론이 권력을 잡자 그의 인생은 끝없는 유배 생활 속으로 내던져지기에 이른다. 삶을 온통 쥐고 흔드는 인생의 풍상 속에서 그는 신중하고 경계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내딛기 힘들었을터다. 격렬한 세파 속에서 처절한 인고(忍苦)의 시간을 담아 지은 호, 그것이 바로 '여유당(與猶堂)'이었다.


# 이 시대에 호(號)를 쓴다는 것은


  "호는 권위의 상징도 아니고 과시의 수단도 될 수 없다. 따라서 고상한 뜻과 우아한 멋을 담아 지은 호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간결하고 소박하며 평범하더라도 자연스러움과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는 호가 더 좋은 호라고 할 수 있다. ... 필자는 가장 훌륭한 작호(作號)란 인위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에서 찾아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호(號) 문화'가 다시금 이 시대에 이어져 가기를 바라고 있다. '구태의연하게 요즘 누가 호를 쓴다고.'라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으나 필자 또한 저자의 의견에 동감한다. 자유롭고 진솔하게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세상에 선포하는 것. 그것이 호가 갖는 의의라면,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호 문화'는 더욱 필요하다.


  옛 선비들은 약관의 나이에 이미 '입지(立志)', 즉 뜻을 세웠다. 서른이면 이미 뜻을 세우고도 수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서른을 '이립(而立)', 즉 '이미 세웠음'의 의미로 불렀다. 신분 질서가 엄격하여 타고나기를 잘못하면 뜻을 세우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을 시대다. 하물며 그런 시대에도 꿈을 펼 자유를 얻은 이들은 뜻을 세웠을진대,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말이다. 마음에 '뜻'을 세워 품고 사는 이가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꿈을 좇아 살던 젊은 시절은 지나갔다고 이야기 할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젊은 학생들을 붙들고 물어보시라. "학생은 꿈이 뭔가요?" 많은 학생들이 이렇게 답한다. "없는데요."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있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마음에 품은 '뜻'이 있는가, 그 '뜻'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부록에 실린 근현대 인물들의 호를 보면, 꼭 어려운 한자어만이 호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순한글을 쓰기도 하였고, 세례명을 쓰기도 하였다. 저자의 말만따나 형식은 자유다. 그저 솔직하면 그만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용한 밤, 가만히 앉아 자신의 '호'를 조심스레 골라보자. 내 마음에 품은 뜻을 멋지게 세상에 선포하는 그런 '호'를 정성들여 지어보자. 그리고 그 '호'에 당신을 비추어보라. 그 안에 당신의 인생이 담겨있을 것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3)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