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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에 대한 단상 -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 천개의 이야기 2010-02-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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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거래하는 인쇄소 분들과 종종 e-book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대부분 ‘조만간’ e-book으로 대체되지 않겠냐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그러나 그 말씀 이면에는 씁쓸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흐름에 역행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기술의 선도에 설 수도 없는 이들의 안타까움이죠.

 

현재 인쇄소는 포화상태라고 합니다. 예전보다 일감이 줄어들진 않았지만(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물론 대박의 가능성은 희박해지지만) 인쇄소가 너무 많다보니 늘어난 일감으로도 운영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라더군요. 이러한 상황에서 e-book이 주류로 등장하게 되면 인쇄소, 제본소, 배본사 등 기존 종이책 관련 업체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게 되겠죠. 심하게 과장하자면 출판계의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것이죠.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면이 있는 반면 노동을 해야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구조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거나 축소시킴으로써 일자리를 위협하는 면도 존재하겠죠. 이미 신흥 산업이 다수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는 기술의 발전이 소수의 일자리 창출에 국한될 게 명약관화합니다. 이 문제는 단지 e-book에 국한된 건 아니겠죠.

 

“뭐, 이건 100명 잘살게 되고, 몇천 명 거리로 나앉게 되는 거죠.”

씁슬한 웃음과 함께 툭 던지신 한 인쇄소 부장님의 말씀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여유가 그로 인해 소리소문없이 밀려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고르게 나눠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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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에 대한 단상 - 경계 허물기 | 천개의 이야기 2010-02-2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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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러니까 블로그나 미니 홈피가 등장하기 이전 인터넷 세상에선 메일진이라는 게 있었죠. 지금도 메일링 서비스를 하는 사이트들이 존재하지만 개념이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웹 매거진을 만들어서 이메일을 등록한 구독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쏴주는 방식이죠. 기억으로는 당시 4~5개의 메일진 서비스가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제법 유행을 했던 방식인데 지금처럼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누구나 발언을 하고 서로 소통하는 방식에 비해 발언자와 구독자가 어느 정도 구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출판 구조 역시 발행인과 독자가 구분되어 있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일진에 비하자면 분명한 구분이죠. 물론 요즘 1인 출판이 늘면서 그 경계가 많이 느슨해졌지만 아무래도 제작비 등 경제적인 부담이 있으니 여전히 벽은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만약 e-book이 활성화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만일, 앱스토어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e-book을 제작해서 등록을 할 수 있다면 굳이 출판사를 통할 이유가 없어지지 않을까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앱스토어에 올려 적정가를 붙여 팔 듯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분들이 e-book을 제작해서 등록할 수 있게 된다면, 발행인-저자-독자의 구분은 지금보다 훨씬 흐릿해질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간 축적해 온 출판사만의 노하우나 자금력이 개개인에 비해 앞선 부분이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현재와 같은 공급자-수요자의 경계는 분명 허물어질 것 같습니다.

 

경계가 허물어진다는 게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수십 만개의 어플리케이션이 있다고 모든 게 유용한 건 아니듯이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책을 출간한다고 내용이 풍성해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시장 논리에 의해 출간이 기피되는 일은 분명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가능성은 높아질 것입니다. 홈레코딩 기술의 보편화와 카메라의 대중화 등으로 인디 음악이나 영화들이 늘어난 것처럼 말입니다.

 

핵심은 유통 구조겠죠. 현재의 유통 구조가 유지된다면 다양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대중들과 접할 수 있는 공간의 부족으로 금세 사그라들거나 소수의 취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중고 장터나 개방형 앱스토어처럼 생산과 유통, 소비가 자유로운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e-book의 개방성은 자본력에 의해 그 빛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따라서 몇몇 대형 서점이 주도하는 유통이 아니라 주제별로 다양한 개방형 유통 공간이 형성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됩니다. 특정 단말기로만 접속이 가능하고 구매가 가능한 방식도 지양되어야 하겠죠. 책과 정보, 지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누구나 쉽게 대할 수 있는 보편적 접근권일 테니까요. e-book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보편적 접근권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미래를 채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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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에 대한 단상 - 첫 번째 이야기 | 천개의 이야기 2010-02-2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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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러니까 90년대 초중반 정도(제가 처음 접한 시기 중심으로)에 삐삐라는 ‘신기술’이 등장했었죠. 처음엔 단지 상대방에게 내가 받을 수 있는 전화 번호를 찍어 연락을 취하는 정도였는데 그것도 참 놀라운 기술로 여겨졌었죠. 그러다가 종종 영화에서(주로 홍콩영화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자를 찍어 보내는 걸 보고 ‘저건 또 뭐야’ 했었는데 그 기술 역시 보편적인 기술이 된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아마 그 즈음에 농담삼아 ‘이러다가 전화기 들고 다니는 거 아냐?’라며 웃었던 장면들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농담을 했다는 자체가 웃음을 유발하는 시절이죠. 아직 접해보진 못했지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 폰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이 영화를 예로 드는 것도 좀 진부한 걸까요?)가 그리 먼 얘기는 아니라고 조용히 일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IT 기술의 발전은 생물학적으로 먹는 나이보다 빠른 속도로 IT 나이를 새롭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쫓아가려 해도 용어들은 점점 복잡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면서 그것이 구현된 제품들이 ‘나도 좀 봐줘’라며 손을 들어대니 나름 젊게 산다고 자부하는 저마저도 문자 전송 앞에서 매번 좌절하시는 노모처럼 한숨만 내뱉게 됩니다.

서론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결국 ‘신기술’이란 녀석이 빠른 대처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출판계에서도 다를 게 없는데, 바로 그 주범은 e-book이죠. 고백부터 하자면 여전히 e-book이라는 녀석의 정체를 잘 모르겠습니다. 제 구형 핸드폰에도 ‘전자책’ 기능은 있습니다. 책 내용을 텍스트(txt 확장자) 파일로 변환시켜서 담으면 자그마한 액정으로 읽을 수 있죠. 그러나 이러한 포맷을 굳이 e-book이라고 부르진 않겠죠. 흔히들 ePub이란 포맷과 PDF 파일 등을 e-book의 범주에 넣는 것 같습니다. 대충 찾아보니 ePub 포맷은 XML과 유사한 형식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일종의 웹페이지라고 이해하면 될까 싶고, PDF야 컴퓨터를 통해서 이미 많이 접한 파일 형식이죠.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e-book이라는 게 전혀 새로울 건 없는 셈이죠. 다만, 그것을 책처럼 들고 다니며 볼 수 있는 단말기가 예전엔 없었고(pdf는 노트북으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킨들을 비롯하여 e-book용 전용 단말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요. 물론 제대로 이해하진 못하지만 e-link라는, 기존 액정과는 다른 액정 기술도 e-book 보급에 긍정적 요인이라고 하더군요. 터치 기술도 플러스 요인이겠죠, 아마도? 또한 아이패드의 출시가 e-book 논의에 기름을 붙는 역할을 한 면도 간과할 수는 없겠죠. 아이패드 출시 이후 소위 IBM용 컴퓨터 제조회사들도 슬레이트 형 테블릿을 서두르고 있다고 하니까요.

무지한 분야인 기술 얘기라 쓰면서도 제대로 정리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무지하더라도 출판사에서 일하는 만큼 e-book을 외면할 수는 없더군요. 그리고 e-book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살짝 겹쳐져 있습니다. 바로 종이 문제인데요. 책의 주재료인 종이가 어떻게 생산되는지는 다들 아실 테니 넘어가겠습니다. 요즘엔 재생지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제작비 상승(재생지가 일반 본문용지에 비해 싸지가 않습니다)의 부담이 솔직히 있습니다. 게다가 제작비 상승을 안고 감에도 일부 독자분들은 싸구려 종이 쓰면서 비싸게 받는다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기술적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재생지는 표면이 약간 거칠거든요. 이런 종이 특성이 경우에 따라 매력적인 요소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대체로 그다지 환영받는 용지는 아니랍니다. 더군다나 재생지 사용이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말도 더러 있습니다. 어쨌든, 아마존이 눈물을 흘리는 데에 종이 생산이 일조한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죠. 종이책을 만든다는 자체가 반환경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e-book은 종이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얼핏 보면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방식입니다. 물론, e-book용 단말기 제작이 가져올, 그리고 e-book 단말기 사용이 가져 올 환경 파괴적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현재로서는 종이 사용량을 줄이는 데 다른 대안은 없어 보입니다. 좀 다른 경우이지만 웹팩스도 현재 전화선 팩스에 비해 종이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겠죠. 이렇듯 기술 발전이 기존 방식을 대체하면서 가져올 긍정적 측면이 있습니다. 쓰다 보니 종이 사용량 줄이는 게 마치 최우선 과제이고 환경 파괴의 주범이 종이책인 것처럼 이야기가 흘렀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e-book 대 종이책’에 대해 생각할 때 무시할 수 없는 면이 바로 종이 사용량이라는 걸 말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책은 계속 생산되어야 하는데, 그럴수록 종이 사용량이 증가한다면 종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식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e-book이 그런 노력의 결과는 아니지만 하나의 대안으로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기존의 생산 방식과는 다른 종이 생산이 가능할 수도 있겠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아무튼, 분명한 점은 e-book이 기존 책 제작 과정을 혁명적으로 교체할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죠. 제작뿐만 아니라 내용 생산 과정, 유통 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고, 생활 방식의 한 축을 뒤바꿔 버릴 수도 있죠. e-book이 성공한다면 말이죠. 한 예로 도서관도 각 가정에서 직접 책을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에 좀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즉 접근성은 기존 종이책보다는 월등히 수월할 가능성은 있죠. 물론, 그런 인프라는 개인적 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보편적 접근권을 국가가 보장해줘야 하겠죠. 현재의 e-book 단말기나 컴퓨터는 책 한 권 가격에 비하자면 너무 비싼 편이니까요. 통신료도 무시할 수 없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조건이 종이책에 비해 이로운 면은 있어 보입니다. 모든 신기술이 그러하듯이 쌍수 들고 무조건 환영할 수 없는 이면은 존재하지만.... 그 이면의 이야기는 다음에 또 쓰도록 하겠습니다.

사족. 그럼에도 제가 낡은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인지, 여전히 ‘책=종이“라는 아날로그적 집착이 있습니다. 모두가 한번쯤 꿈꾸는 근사한 서재를 갖고 싶은 욕망도 여전하지요. 물론 책이 ’소유하는 것인가‘라는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종이책의 소유욕은 ’머리 따로, 마음 따로‘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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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 누구냐, 넌. | 천개의 이야기 2010-02-2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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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와 인터넷 글쓰기가 보편화되면서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분위기가 생긴 듯 합니다. 물론 제가 다니는 몇몇 사이트에서는 아주 엄격하게 인터넷 용어나 맞춤법 오류를 통제, 지적하기도 합니다만 예전에 비하면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사실 띄어쓰기, 맞춤법..어렵습니다. 동일한 모습의 단어라도 그 의미에 따라 붙여 쓰거나 띄어 써야 하며(들어주다/들어 주다, 따먹다/따 먹다 등등), 용인은 되지만 되도록 띄어 써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본용언과 보조용언은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붙여 써도 된다고 나오며, 복합명사의 경우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는 일단 띄어 써야 하지만 사전 등재라는 게 원래 언어 습관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애매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각 출판사마다 띄어쓰기 범례를 별도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상급심은 맞춤법 규정이지만 자체 통일성을 위해서는 필요하더군요. 천권의 책 역시 범례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 사전, 저 사전 찾아보고 이 책, 저 책 뒤적이면서 띄어쓰기라는 게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헷갈리기도 하더군요. 물론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들은 존재해야겠지만 의미 파악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게 과연 의미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이러한 정확한 규칙이 또 하나의 권력이 되거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닌지, 그래서 그것이 ‘수준’을 가르는 칼날이 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한편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책 작업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사전에 손이 가고 쌍심지를 켤 수밖에 없는 게 이 세계의 생리인가 봅니다.

이 글에도 혹시 띄어쓰기가? 그냥 편한 마음으로 올리렵니다. 없어져야 할 건 아니면서도 또 그다지 고마운 존재도 아닌, 띄어쓰기. 도대체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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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편집자, 그리고 | 천개의 이야기 2010-02-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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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는 것과 편집자라는 직업을 갖고 책을 읽는 건 사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우선, 독자일 때에는 제가 읽고 있는 책의 판매량은 딴 세상 이야기죠. 많이 팔리든, 적게 팔리든 독서에도, 구매에도 고려해야 할 정보가 아니었죠. 하지만 편집자가 된 이후에는 책을 읽음과 동시에 습관적으로 판매량을 알아 봅니다. 베스트 순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 판매가 되는지 알 길은 없지만, 그리고 몇몇 서점에선 판매지수를 보여주나 구체적 판매량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찾아 보게 되더군요. ‘이렇게 만든 책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어떨까’,가 책 내용과 더불어 머리 한켠을 차지합니다.

두 번째, 독자일 때에는 책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웠습니다. 어디다 리뷰를 써서 올리든, 지인들과 사석에서 논하든을 떠나 아주 쉽게 잘근잘근 씹어댈 수 있었죠.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고 등등. 마치 책에 관한 한 전문가이자 판관인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막상 책을 만드는 직업을 갖게 되자 책에 대한 비판이 조심스러워지더군요. 동업자 의식?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비로소 책을 만드는 과정의 노고가 책 이면으로 읽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안 좋은 책을, 심하게 말하자면 ‘쓰레기’인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없겠죠. 그러나, 제작 과정에서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그 결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는 듯 합니다. 그게 잘 나가는 출판사와 그렇지 못한 출판사를 가르는 기준선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뭔가 부족한 책을 볼 때에도 예전처럼 쉽게 비판을 하긴 어려워지더군요. 뭐, 그렇다고 독서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닙니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어 버리기도 하고, 오탈자를 발견하면 버럭! 화가 나기도 하죠.

아무튼, 전 저자의 손에서 떠난 텍스트는 더 이상 저자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롭게 해석하며 의미지평을 넓히는 독자(들)의 것이란 입장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저자에겐 하나의 텍스트지만, 독자들을 만나는 순간 n개의 텍스트가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겠죠. 여기에 편집자의 텍스트가 하나 추가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편집자의 텍스트가 온전히 세상과 만날 수 있느냐의 문제, 그러니까 저자의 텍스트와 편집자의 텍스트가 전혀 다른 텍스트인가의 문제도 있겠죠.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편집자의 의중이 녹아든 텍스트가 독자들과 만나게 되지만, 이는 여전히 ‘저자의 텍스트’일 테니까요. 그래도, 세상과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편집자의 텍스트 또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편집자의 텍스트는 과연 어디서 독자를 만나며 새로운 의미지평을 확장할 수 있을까요. 편집자에겐 허락되지 않은 만남이자 욕심일 수도 있겠죠. 그 간극을 줄이는 게 편집자라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이유로 소울메이트같은 저자를 만난다는 일만큼 편집자를 달뜨게 만드는 일은 없을 듯 합니다. 물론, 편집자 또한 저자에게 소울메이트같은 존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여전히 고민중이지만.. 어쩌면 소울메이트 중에서 저자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눈물의 조우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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