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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됨 이전에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며 | 자유로운리뷰 2022-06-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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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깨어있는 부모

셰팔리 차바리 저/구미화 역
나무의마음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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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부모됨에 있어서는 좋은 부모가 되고자하는 똑같은 디폴트값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부모가 대체 무엇일까? 좋은 부모됨 이전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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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부모

- 내 안의 상처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 셰팔리 차바리 지음

 


나는 아이를 키우는 매 순간 궁금했다.

 

다들 우아하게 아이를 키우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아이의 행동을 참아내지 못하는지. 패배감과 좌절감이 깃든 육아를 하는지.

 

내가 문젠가?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나지 않으세요

때론 놀이터 건너편에서 빈 유모차를 세워두고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아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엄마에게 가서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대답은 아주 느리게 찾아왔다. 세상에는 아이에 관한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고, 전문가가 있었고, 책도 있었다. 거긴 내게 딱 맞는 답은 없었다. 어쩌면 엄마의 내적기질이라고 치부되고 말거나 끝이 안보이는 산후우울증처럼 단편적인 대답에 그쳤다. 그러한 대답으로는 부족했고, 나는 여전히 궁금했다.

 

<깨어있는 부모>는 어쩌면 진부한 제목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달랐다. 육아, 부모교육, 양육자의 심리, 프로이트까지 아우르는 이 책은 부모님과의 관계가 힘든 이에게도 적합하다. 이 책을 읽으며 붙인 인덱스들이 책을 다 읽었을 즈음에는 꽃갈피처럼 빼곡했다. <깨어있는 부모>의 표지에 튤립이 만개하듯, 꽃갈피를 만들어가며 책을 읽었다. 왜냐하면 내가 늘 궁금해 하던 답이 책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요구에 마음이 찢기고 부서지고 뒤틀리는 느낌이 들어도, 남들의 평가가 두려워 숨기고 만다. 결국 우리는 대부분 혼자라고 느끼며 부모의 길을 걷는다. 이따금 아이를 낳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완벽이라는 틀 너머로 손을 뻗으면 다른 부모와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의 감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다분히 인간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p180

 

아이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돌발행동을 하거나, 두 아이가 심한 장난을 칠 때는 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렇게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며 사람들은 엄마인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엄마가 집에서 어떻게 키웠으면, 애들이 나와서 저럴까. 하는 말없는 시선들을 느끼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건 아동기 남자아이들의 당연한 기질인데도, 그 행동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전전긍긍 했다.

 

나는 남들의 평가에 아주 기민한 사람이었다. 우수한 성적을 받아도 티나게 칭찬하지 않는 부모님의 태도에 나는 내 스스로의 성취감보다 다른 이들의 인정을 더욱 갈급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무의식중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렇게 하면 아빠가 정말 좋아하시겠네.” “의젓하게 앉아서 진료를 보면 의사 쌤이 칭찬하시겠는걸?” 아이가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북돋는게 아닌 결과에 대한 타인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것이 아이 스스로 쌓아올릴 단단한 자존감을 와해시키는 것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아이의 느린 아동발달에 대해 상담하러 갔던 곳에서 첫 면전에 의사가 한 말은 잊히지가 않는다. 그 말은 나의 정곡을 찔렀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진료실에 들어와 하는 행동을 말없이 쭉 지켜보던 의사. 내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에는 '엄마'라는 주체가 없다고 말했다. 엄마의 역할이 들어가야하는 자리에 '엄마'가 언급되지 않네요. 왜 육아에서 자기 자신을 배제하세요?

 

그 말은 내재된 무의식을 건드렸는지, 속으로 발끈하는 동시에 그마저도 나를 향한 질타라 생각해 처음보는 의사선생님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눈물을 줄줄 흘렸었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육아가 벅찼고, 아이들의 행동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완벽한 불협화음에 기쁨보다는 좌절감과 낙오감이 더 컸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부모가 되는 것보다 정서적으로 더 예민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여정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감정적인 반응을 유발할 때마다 우리는 정신적 성장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가 된다는 건 우리의 정서적 그림자에 환한 조명을 비춤으로써 우리 내면의 민감한 반응을 다스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p97, 98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며 내가 얼마나 타인의 시선을 중심에 두고 생활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좋은 엄마여야하고, 우리 아이들은 침착하고, 올바르며, 예절있게 행동하고 밖에서 말썽을 피우지 않는 좋은 아이들이어야 해. 그건 내가 바라는 이상을 일방적으로 아이들에게 투사한 것이고, 그 근저에는 나의 무의식이 기반하고 있다는 것. 책에서는 에고라는 말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는 어떤 식으로든 어렸을 때 느꼈던 것과 똑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상황을 자초하든, 그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든 피할 도리가 없다. 무의식에 남아 있던 어린 시절의 감정은 의식으로 통합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우리 아이들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그러니 아이가 부모의 무의식을 비춰주는 것은 귀중한 선물과도 같은 일이다. 아이는 부모가 무의식에 빠지는 바로 그 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면 우리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어렸을 때 길들여진 방식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을 기회를 얻게 된다. p37

 

내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는 에고를 깨닫고 바라보는 것. 거기서 벗어나는 것. 아이의 행동에 감정을 덧씌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 편협한 에고의 욕구에서 벗어나 일관된 태도로 아이를 대할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깨어있는 부모>.

 

달리 말하면 부모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도전이라고 여기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처리해야할 사명이 있다. 바로 부모 스스로 최대한 깨어있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현실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양육의 기반이 된다. 이것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이나 기대, 지배나 통제가 필요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단지 깨어있는 상태로 아이들에게 적절히 대응하기만 하면 된다. p28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지침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들은 심플하면서도, 직관적이다. 그래서 책을 다시 몇 번이고 보지 않고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책에서 배운대로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다. 책을 덮는 순간 적어도 한뼘 정도는 달라지리라. (우리가 육아서를 읽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아닌가)

 

적어도 하루에 한번은 아이의 유머를 즐겁게 받아주며 아이와 함께 웃는게 중요하다. 또한 매일 아이가 자기 자신이나 부모에 대해서 뭔가를 알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밤이 오고 잘 시간이 되면 그 시간을 성스럽게 만들어 보자. 아이가 원한다면 당신 품에 안겨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게 해주자. 그러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행복한 의식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p222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또 다른 조치는 무언가를 사주는 대신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장난감을 사주는 대신 아이를 동물원에 데려가는 식이다. 비디오 게임을 하나 사주는 대신 자전거를 함께 타러 나간다. p236

 

방이나, , 머리 모양 같은 부분을 결정할 때는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현명하다. 아이가 자기 내면 세계를 어떻게 드러낼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p239

 

부모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홀로 조용히 내면과 교감하며, 매일 먹는 음식과 운동 그리고 겉모습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등을 통해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전부 아이에게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도록 가르치는 방법이다. p262

 

한주 내내 <깨어있는 부모>를 읽으며 무수한 끄덕임과 입술을 깨물며 반성하는 타임이 핑퐁처럼 오갔다. 두 아이의 엄마인 내가 가야하는 방향은 나의 무의식 속이 아닌, 현재에, 아이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깨달았다. 작가의 철학을 담은 질문들이 책 안에 빼곡하다. 그 질문을 하나씩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깨어있음의 첫 시작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계속해 나에게 물었다. 내가 그때 그렇게 한 이유는? (대부분은 타인의 평가와 내 감정에 의한 것들이었지.)

 

책 속의 갈무리한 문장들을 노트에 하나씩 적어가며 마음에 새겨본다. 마음공부와 심리학을 접한 저자의 통찰은 비단 아이를 키우는 부모만이 아니라, 현재 삶에 충실하고픈 누구에게라도 꽃같은 조언이 되리라.

 

부모가 아이에게 제공해야 하는 것이 정서적인 안정감, 인정과 안전이라면, 아이가 부모 인생에 초대받은 이유는 오직 아이만이 가르쳐줄 수 있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에 충실한 자세로, 진심을 다해서, 즐겁고 자발적으로 인생을 대하는 법이다.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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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직업 (2021 한경신춘문예 수필등단작 '인테그랄'을 쓴 작가의 신작) | 자유로운리뷰 2022-03-3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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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를 찾아가는 직업

유성은 저
마음산책 | 2022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결혼은 때론 혼란스럽다. 행복과 사사로운 성가신것들이 함께 온다. 그 속에서 나를 정화시키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글을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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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직업>

-유성은

 

자꾸 잊는다. 해야 할 일들 앞에서 가장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건 자신이다. 자신을 잊어버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그게 가능하다. ‘엄마가 되고서야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엄마라는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엄마의 지난 푸념들이 그저 일상에 지쳐 내는 한숨이 아닌, 현실이라는 햇볕아래서 점점 바래져 가는 사진처럼 자신을 잊어버림을 안타까워하는 탄식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이 책을 쓴 작가의 첫째가 학교에 들어갔고, 우리 둘째 역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다.

 

그간의 시절들이 롤 필름처럼 착착착 넘어가는 듯하다. 지난하고 길었다. 남편이 없는 시간들은 흑백사진처럼 떠오른다. 그 시절은 그에게도 중요한 시기였음을 안다.

 

유성은 작가는 2021년 한경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등단을 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녀가 쓴 작품은 <인테그랄>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 함께 실려 있다.

 

<인테그랄>은 나와 너무 달라 이해할 수 없던 남편의 기기묘묘함을 쓴, 또 그런 그에게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편지 같은 글이었다. 스탕달의 <적과 흑> 같은 명작도 번역본에 오타가 두 개나 있어서 읽기 싫다며 라면 받침으로 쓰던 그에게 <인테그랄>의 초고를 내밀었을 때 그가 물었다.

 

도대체, 이런 글은 왜 쓰는 거야?”

p.170

 

재봉틀 앞에서 단정하게 재단한 하얀천을 들고 내도록 소창기저귀를 만들어도, 남편, 아이가 있는 일상에 단단히 나를 붙들어 놓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쓰여지고 만다.

 

지금까지 나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예술성의 흔적을 지우는 데 썼다. 잠자는 것까지 잊고 끼적이던 글들도, 친한 친구에게 언젠가 꼭 글을 쓰고 싶다고 전한 진심도 주정으로 덮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병 같은 것이었나 보다. 늦은 나이에도 결국 문학의 길을 밟은 할아버지처럼, 대를 이어 도망가기도 끊기도 어려운.

p.85

 

때로 나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도 이렇게 복잡할까? 나는 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다가올 날들에 대한 걱정은 걱정대로 얽히고 설켜 꿈 속에 나오기도 하고, 계속해 첫 문장이 된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써야하는 사람이구나.

 

유성은 작가는 수필로 등단한 후, 어떤 글을 써야할까 고민했다. 단정한 표지를 한 여행에세이 라든가, 감성 에세이등 여러 가지를 떠올렸지만, 그녀에게 출간을 제안한 <마음산책> 출판사는 작가였다가 주부가 된 사람은 많지만, 반대로 주부였다가 작가가 된 사람은 드물다며 그 이야기를 써보길 권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쓰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써내는 것. 이야기를 써가며 진솔해지는 것. 내 자신에게, 힘들었지. 그래 힘들었어. 그렇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은 당신도 그랬다니. 그게 위로가 되네. 힘이 되고.

 

가끔 내가 힘이 빠지는 순간은 단순했다. 음악을 들어야지. 그런데 나는 어떤 음악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았지? 한참을 찾다가 결국 일할 때 들으면 기분좋아지는 노래모음에 손이가고 마는 것. 나는 무엇을 원하지? 나는 뭐가 되고 싶었지?

 

유성은 작가의 첫 책의 제목이 <나를 찾아가는 직업> 이란게 너무 이해가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를 아는 것은, 나 역시 그러한 이유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지도 모를 때, 책 읽기는 참 도움이 된다. 자전거 타고 오르막을 올라가는 내 등을 밀어주는 기분이다. 그래, 이 감정, 나도 이 감정을 알아. 하고 키보드 위에서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이 내겐 정화다.

 

이제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 한 가지는 확실히 해결한 듯하다. ‘태어났다다음의 문장도 이어 쓸 수 있다는 것. 글을 마음에 담고도 넘쳐 이렇게 책까지 쓸 수 있다는 것. 나는 오늘도 애정을 담아 편지를 쓴다. 내 모든 글의 첫 번째 독자이자 수취인, 친애하는 나에게.

p.150

 

글을 쓰는 이에게도 한 권, 결혼을 앞둔 이에게도 한 권, 10년의 결혼 생활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한 권. 지인을 만나러 나서는 길 <나를 찾아가는 직업>을 챙겨 넣었다. 나는 좋은 엄마이고, 아내이고 싶다. 그렇지만 가장 되고 싶은건 바로 나 자신이다

 

딸에게 밝힌 나의 바람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수많은 꽃을 피우는 튼튼한 뿌리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그냥 나이면 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세상에 나라는 정서를 작게나마 피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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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와이너 신작) | 자유로운리뷰 2022-02-2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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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에릭 와이너 저/김승욱 역
어크로스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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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만큼 재미있다. 신(God)과의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동서양을 종횡무진한 에릭 와이너의 신작. UFO를 믿는 라엘교부터 동양의 도교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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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왜 신을 믿으세요?

 

라는 질문을 갖고 있다. 믿음에 열성적인 사람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저렇게 신의 품안에 폭 감싸안겨, 저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사는데, 나는 왜 신을 따르지 않는가? 내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매번 디폴트 값처럼 존재한다.

 

믿음 속에서 충만한 이들을 향해 세속적인 질문을 가차없이 던지는 사람이 있다.

 

<누구에게나 신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의 저자 에릭 와이너다. 작년,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알렸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익살꾼, 철학 전도사 에릭 와이너의 신작이다. 미국에선 <소크라테스익스프레스>보다 먼저 출간된 책인데, 저자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판도 출간되었다. <행복의 지도><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만으로는 부족했던 독자에게 보란듯 어크로스 출판사가 던져준 510페이지에 달하는 에릭 와이너의 종교탐사기는 무척 흥미진진하다.

 

8개의 종교가 등장한다. 미국인인 에릭에게는 낯선 불교, 도교, 샤머니즘은 오히려 아시아 독자인 내게는 편안하다. 늘 측은지심, , 무소유 같은 것들이 우리곁에 있다.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는 식으로 읽었다. (나는 꽤나 도교적인 인물이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8개의 종교 중, 구미가 당기는 종교 먼저 읽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삶이 잿빛같고 무료하고 지루하다면 라엘교를. 내 삶의 주인공이 나라는 감각, 내 삶은 내가 잘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이 필요하다면 위카를.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에 쫓기는 기분이라면 불교를.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에는 가톨릭 프란체스코회를. 흐트러진 내 생활에 기둥같은 규율이 될 무엇이 필요하다면 유대교 카발라를

 

종교에 대한 큰 관심이 없는 내가 이 책에 푹 빠져서 읽었던 이유는, 신을 바라보는, 혹은 신을 믿는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가 나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경험하는 양가감정이 내것과 똑같이 느껴졌다.

 

 오늘 10권의 책을 곁에 쌓아두고 이 책들을 집어 삼킬 기세로 읽다가도, 내일은 그저 죽었으면 좋겠다는 양극단에 치우치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감기인 우울증을 지독하게 앓고 있는 내 마음을 헤아리는 문장이 나온다.

 

<내게는 두 가지 상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친 듯이 움직이거나 아니면 마비된 사람처럼 꼼짝도 안 하거나. 뭐든 억지로 해내려고 자신을 들들 볶든지, 아니면 아예 인생을 포기해버린다. 하지만 이 두가지 말고 제3의 방법이 있다. 도교의 방법인 무위. 힘들이지 않고 하는 것. 노자가 뭐라고 했더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미완성으로 방치되는 것도 없다. 나도 이말을 믿고 싶다. 아니, 이 말대로 살 수만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p343>

 

'그렇지, 그래 내 상태가 딱 이건데.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도교적 인간에 딱맞아. 그래 도교랑 딱 맞아.'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계속 마음에 걸리는 구식 문제, 즉 믿음의 문제다. 나는 고만고만한 여러 신들이 내게 말을 걸거나 나 대신 끼어드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이 많은 신들의 존재를(내 왼손 새끼손가락이나 노트북컴퓨터의 존재를 믿듯이) 내가 믿지 않는다는 것이 차가운 현실이다. p398>

 

신의 코앞까지 가까이 간 것 같다가도 기어코 고개를 들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현실감각에, 이 무시무시한 이성적 균형이 이번 책의 묘미이며, 정수다. (나도 진실로 신을 믿고 싶어.)

 

에필로그를 읽을 땐 일부러 더 천천히 읽었다.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아쉬웠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종교는 추구하는 바도, 따르는 신도 제각기 달랐다. 그러나 신을 믿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에너지가 있었고 그들이 지닌 에너지는 삶을 살고 싶게 만드는 화수분같은 역할을 했다. 책의 말미에 다다라서도 "신은 역시 존재해" 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작가가 만난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확신으로 삶에 임하고 싶었다. 신은 그러한 확신으로 나아가는데 일말의 역할을 할 것인가? 그럼 나는 어떤 신이든 취해야 할까?

 

유대교 출신인 에릭의 마지막 여정이었던 유대교 카발라는 마침내 방황하던 그(무신론자)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었을까?

 

유대교 카발라 경전을 읽고, 교리를 공부하며 드디어 핏속에 녹아있던, 자신의 무의식에 명령을 내리던 유대교를 마침내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에릭와이너는 합리적 이성주의자며 무신론자다. 그가 내린 결론은 커스터마이즈 customize다. 그가 만난 모든 종교에는 삶을 끌어안는 삶을 기꺼이 살아내는 에너지가 있었고, 장점도 많았다. (이 고생스러운 여정을 보고도 그 중 하나만(하나의 신만) 고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에릭이 경험한 종교체험같은 것은 가히 상상이상인데?)

 

그는 천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독자로서도 흡족한 마음에 책을 덮었다. 그가 선택한 자신의 신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종교, , 믿음과 상관없이 '사는건 뭐 이럴까?' 하는 의문정도만으로도 이 책에 빠지기에는 충분하다.

 

* 아마존에 들어가 에릭와이너를 검색해 한국에 출판되지 않은 그의 책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전작주의를 하고 싶어지는 작가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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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거면 혼자 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이런 개인주의는 어떠세요) | 자유로운리뷰 2022-01-1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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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럴 거면 혼자 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최민지 저
남해의봄날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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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아니지만 개인주의는 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내공이 담겨있는 친절한 개인주의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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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란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건 고1 화학과목 제일 첫 장에 등장하는 Atom이라는 단어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a-tomos에서 온 것으로 우리 말로는 '원자'라고 한다. 일상적인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를 일컫는 개념이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며 더 이상 나눌수 없는 개인'인 우리는 사회 속 원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과 원자가 만난 표현을 살짝 들여다보기만 해도 우리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바로 체감할 수 있다.

 

원자화된 개인

현대의 대중 사회 속에서 홀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개인. (출처. 구글 WORDROW 국어사전)

 

개인 자체를 불완전하게 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어딘가 소속 되어야 하고, 어딘가 연결되어야 완전해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적령기' 라는 표현으로 어느 세대든 시기마다 속할 곳을 은연중에 부여하고, 그렇게 되기를 다그치는 바가 있다.

 

결혼 적령기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룰에 동조한 1인으로, 10년의 결혼 생활을 이어오면서 역설적으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그 안의 개인의 정체성을 또렷이 세워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동명웹툰과 tv시리즈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테디셀러 며느라기는 한 개인이 결혼과 함께 자신이 아닌, 가족이 바라는 이상적인 며느리, 아내로 행동하며 자신의 내면에서 충돌하는 가치관들과 내면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질문들에 직면하게 되는 민사린이 등장한다. 왜 개인은 공동체 안에 들어가면 무색무취한 1인이 되는 걸까.

 

며느라기없는 결혼 생활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왜 모든 것 중에서도 개인으로 존재하기를 가장 빨리 포기할까.

 

그에 대한 해법으로 든 책이 <이럴거면 혼자 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였다.

 

집단이 정한 공식과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우연히 일치한다면 행운이지만, 불일치한다면 공식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며 살거나 문제 자체를 안 푼 반항아로 낙인찍힌다. 정답이 하나뿐인 집단적 과제 앞에 개인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p18, 19

 

가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은 더 많이 동일화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가족이 나와 다른 개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일어난다. 자식이 진정으로 잘되길 바란다면 가족 안에서도 일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p28

 

자유론을 썼던 존 스튜어트 밀은 1장에서 밝힌다. 자유와 권력의 관계는 개인과 다수자의 투쟁문제를 포함한다고. 자기 자신에만 관계있는 일에 대해서는 개인이 다수자의 전제에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게 요지다. 그러나 우리 삶은 정말 만만찮다. 대입, 취업, 결혼, 자녀계획, 양육까지 어디에서나 침범하는 경계선 없는 걱정과 조언들은 우리 삶을 정말 피곤하게 만든다. 존 스튜어트 밀이 이 광경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런지. 한국인의 종특이라고 할만한 오지랖 문화는 요람부터 무덤까지가 가능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개인의 자유 침해 수준을 넘어선다.

 

여기서 고통받지 않으려고, 선제적으로 결혼제도에 들어가고 자녀들도 낳아 키웠지만, 개인을 누르고 수행하는 역할극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개인성의 회복. 청년시절 가졌던 청운의 꿈을 다시금 회복하는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 책은 응원의 손길이 되었고 작가의 목소리는 결코 내가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게 아님을 지지해주었다.

 

30대의 나이에 이모든 경험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온 작가의 삶은 개인주의자를 고수하면서도 지혜롭게 조직생활, 결혼, 양육의 세계로 들어갔기에 어느새 나는 작가의 삶을 선망하는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다.

 

최민지 작가가 전하는 개인주의에 대한 통찰이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의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점을 분명히 밝혀준다.

 

- 조직에서 개인주의하면 팀웍(team-work)이 가능할까?

 

그러나 나 하나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심마저 개인주의로 둔갑시킬 수는 없다. 동료가 개인주의자인지 이기적인지는 어떻게 구분할까? 본인 한 사람의 편의만을 생각하느냐, 다른 동료의 권리도 생각하느냐로 가늠할 수 있다. p53, 54

 

동료들이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에 끌려 이곳에 왔음을 헤아리고, 너와 나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관계. 네가 나와 같지 않음을 알고, 각자의 개성으로 조직에 이바지하리라 믿는 관계, 그런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동료를 나만큼 중한 존재로 여기는 개인주의에 있다. p57

 

- 개인주의자가 어떻게 결혼을 해?

 

남편과 나의 결혼생활을 식기에 비유한다면 티포원(tea for one)이 아닐까. 찻상 앞에 마주 앉아 함께 차를 마시되 각자가 원하는 차를 1인용 티포트에 우려내는 것이다. 커다란 티포트에 하나의 차를 우려 두 찻잔을 채우는 날도 있지만, 때로는 수색과 향취가 다른 차를 마시고 싶은 날도 있는 법. 티포원을 꺼내면 함께라는 큰 울타리 속에서 로 분리될 수 있다. p89

 

우리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이유는 인간생활의 공허함과 단조로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 안에서도 너무 바짝 달라붙으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만다. 여기에서의 적당한 간격은 무엇일까? p107

 

부모 자식 관계, 가족 관계라 해도 나와 동일시 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는 정도의 적절한 거리감, 이게 바로 가족 간에 필요한 정중함과 예의 아닐까? p107

 

- 개인주의자가 결혼했다면 딩크? 아이 있는데 개인주의가 가능해?

 

서로에게 일정한 역할이 주어진다는 것을 수긍하고, 그것을 균형 있게 분담하는 육아. “그래, 네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은 그거구나. 그럼 내가 이 역할을 해볼게. 다른 집들은 보통 저렇게 한다지만 우리는 이렇게 한 번 해보자하며 조율과 협의에 공을 들이는 육아다. p219

 

아이 삶의 밑그림을 짜임새 있게 그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펜을 아이 본인에게 쥐어 주기로 한 것이다. 밑그림이 대단하지 않으면 어떠랴. 살아가면서 빈 공간에 채우고 싶은 것들이 자연히 생겨날 테고, 그때마다 부분 부분을 제 힘으로 채워 가면 되는 거다. p204 3, 육아, 작은 개인과 함께 사는 일

 

기존 질서에 질문을 던지는 이들로 인해 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과감하게 묻는다. 개인주의가 널리 전파되고 있다가 아니라, 개인주의는 팽배하다고 낙인을 찍는지. 개인주의자라서 할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개인주의자라서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들에 기꺼이 빛을 비춘다.

 

지속되는 코로나19, 비혼과 함께 부상하고 있는 1인가구의 등장. 생활동반자법을 근간으로 한 혈육과 결혼이 아닌 새로운 가족의 결합 등, 개인의 존재가 더욱더 부각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르네상스 시대는 (god) 중심이던 중세에서 개인(individual)에게 주목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로부터 7세기가 지나고 2022년의 서막이 열렸다. 과거처럼 빛나는 문화부흥을 이끄는 르네상스가 아닌 코로나19시대가 되었지만, 시대의 흐름속에서 와해되는 공동체는 다시 객체화된 개인으로 환원되었다. 온전한 개인으로 돌아온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동을 삼가며 타인을 지키고자 하고, 필요할 때는 연대를 통해서 다시 공동체를 구성한다.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인간과 인간이 만나 이루는 공동체의 바탕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중략)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이 더해질수록 이런 생각은 더욱 견고해졌다. 개인주의는 성숙한 관계 맺기의 기본 바탕이기도 하니 말이다. 누군가가 나의 친구, 연인, 동료이기 이전에 나와 다른 의견과 가치를 지닌 개인이라는 것을 알고, 존중해야지만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p 9, 프롤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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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라라슨의 패싱(문학동네) | 자유로운리뷰 2021-12-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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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패싱

넬라 라슨 저/박경희 역
문학동네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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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라 라슨 패싱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일을 상상한다. 넬라 라슨은 마치 인간의 그런 심리를 직접 들여다본 것 같다. 언어로 구체화 시킬 수 없는 생각들이 작품 속에서 문장이 되어 등장한다. 모종의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가.

 

넬라 라슨의 패싱에는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되는 비밀이 등장한다. 초반에 그 비밀을 놓고 아이린과 클레어의 남편 존 벨루가 공공연하게 논의를 이어가는 장면은 흡사 영화 바스터즈의 한스대령(유대인 소탕을 맡은 이)과 소샤나(한스대령이 어릴적 몰살시킨 가족의 일원)가 크림케익(슈트루델)을 놓고 나눈 대화의 긴장감을 떠오르게 한다.

 

이 비밀이 탄로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은 좀 더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바뀐다. 3부에서는 그 비밀의 키를 쥐고 있는 아이린(주인공)이 친구이 패싱 사실을 지켜주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드러내어 당사자를 곤경에 빠뜨리고자하는 심리의 충돌을 보여주는데, 인간의 양가감정을 이만큼 솔직하게 그려낸 작품이 있을까 싶다.

 

넬라 라슨의 패싱은 분량의 압박이 적기도 하지만 한 호흡으로 읽기에 적당한 책이다.

 

이 작품의 흡인력 포인트를 3가지로 정리해보자면,

 

1. 흑인혼혈 출신인 클레어는 패싱한 채 백인 남자를 만나 살고 있다. 남편이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이 등장하는 장면부터, 소설 속 시한폭탄은 독자의 손에 쥐어진다.

 

2. 아이린(주인공)은 클레어(친구)를 거부해야하는 것을 알지만, 계속해서 실패한다. (뒤돌아보면 안돼 라고 말하면 결국 뒤돌아 보게 된다. 오르페우스 신화)

 

3. 아이린은 남편과 클레어의 관계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면서, 클레어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은 충동에 휩쌓인다. 가장 쉬운 것은 클레어의 남편 에게 클레어의 패싱을 알리기만 하면 끝이다. 그리고 우연찮게 시내에서 아이린은 흑인 지인과 팔짱을 낀 채 쇼핑을 하던 중 클레어의 남편 을 마주치게 된다. “오늘 시내에서 존 벨루를 마주쳤어. 내가 흑인 친구와 있는 것을 보았지.”라는 말이 계속해 입속을 맴돌지만 이 말이 (클레어와 브라이언에게 오히려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어떻게 자신이 속한 일상을 뒤흔들지 모르기에 결국 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인종에 대한 본능적인 신의. 어째서 자신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까? 어째서 신의의 대상에 클레어를 포함시켜야 하나?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티끌만큼도 배려하지 않는 클레어를.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라기보다 무딘 절망에 가까웠다. 자신의 관점을 바꿀 수 없음을, 개인을 인종에서, 자신을 클레어로부터 떼어낼 수 없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p136

 

 

패싱은 두 가지 형태로 소설에 등장한다.

클레어가 택한, 백인행세를 하는 적극적인 패싱. 아이린이 의도적으로 백인인척 한 것은 아니지만 모욕적인 언사를 이어가는 존과의 티타임 대화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이 흑인임을 알리지 않은 것, 즉 소극적인 패싱으로.

 

1920년대에 발표된 이 작품은 그 당시 미국 사회 내 인종문제에 대한 부분을 짚고 있지만, 이는 현대에 와서는 젠더 정체성, 즉 타인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을 숨기는 커버링의 문제,다양한 소속 규정과 그 경계를 넘는 현상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다.

 

이 책을 추천하는 이가 많은 한 해 였다. 올해 신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의 출판은 100년 전이고, (이미) 고전의 반열의 오른 책이었다. (초반부 여자 3인의 티타임, 브라이언과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아이린의 심리, 3부 아이린이 겪는 갈등에 대한 치밀한 심리묘사가 대단하다. 읽어나갈수록 점점 숨통이 조여오는 기분으로 독서를 하게 된다.)

 

그녀가 말했다. “‘패싱이란 게 좀 묘하긴 해. 우린 그걸 비난하면서도 용납하잖아.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하기도 하고. 극도로 혐오하고 멀리하면서도, 눈감아주고.”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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