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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발부비새, 푸른 발로 부비부비 / 김선우 | 詩 읽는 시간 2022-09-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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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발부비새, 푸른 발로 부비부비 김선우

 

바스락, 푸른 발

한쪽씩 들어 보이며 구애를 하지

으쌰으쌰, 받아줘받아줘사랑하자사랑하자

 

바스락, 푸른 싹

봄마다 새잎 밀어 올리는 이 힘은 대체 어디로부터

으쌰으쌰, 사랑하자사랑하자네게갈게네게갈게

 

다정하고 장엄한 이런 아침

네가 웃자 바스락,

네 뺨을 감싼 공기의 한줄기 끝에서

새싹이 돋듯

이랑이 막 깨어난 듯

 

인생 별거 없다

안다

그래도 좋다

그래서 좋다

이런 순간이

 

바스락, 으쌰으쌰, 사랑하자사랑하자인생별거없다그래도좋다그래서좋다너를안으니좋다

단순한 낙천성의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힘

 

꼬리를 살랑거리다 가버린 빛에 대해 말하는 것이

꼬리를 끌고 막 도착한 빛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이런 바스락,

 

우리에겐 다만 빛 드나드는 마음의 창문을 열어두는 연습이

으쌰으쌰, 으쌰으쌰

바스락, 바스락

 

내 따스한 유령들

김선우 저
창비 | 2021년 08월

 

**

푸른발부비새라는 새가 있는지,

그 새가 어떤 새인지는 모르겠다.

시로 봐선 무척 사랑스러운 새일 것 같다.

하지만 굳이 어떤 새인가 찾아보고 싶지는 않다.

생김새는 중요하지 않지만, 혹시라도 생김새에 실망하는 수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래, 인생 뭐 별거 없는데

사랑하며 살고 싶다.

단순한 낙천성으로

9월에는 푸른발부비새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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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오다 / 이시영 | 詩 읽는 시간 2022-08-1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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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 오다 이시영

 

  방금 참새가 앉았다 날아간 목련나무 가지가 바르르 떨린다

  잠시 후 닿아본 적 없는 우주의 따스한 빛이 거기에 머문다

 

  달랑 2행의 짧은 시.

  목련나무가 바르르 떠는 것은 참새가 날아갈 때 생긴 진동의 단순한 반작용일까요? 아님 참새가 날아감으로 인해 혼자 남은 존재의 정서적 반응일까요? 둘 다 가능할 것 같은데, 저는 왠지 후자로 보고 싶네요. 그럴 경우 '우주의 따스한 빛'은 존재의 슬픔을 위무해주며 그 슬픔을 추스르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는 어떤 것이 되지 않을까요? 

  짧은 대신 많은 여운을 주는 시네요.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박성우,신용목 공편
창비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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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그리고 그리움 | 좋은 말, 좋은 글 2022-08-1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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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에서 떨어져 나와 나무 속으로 들어간 빛들이 태양을 그리워하며 하늘 쪽으로 가지를 뻗어 올립니다. 나무들의 모양, 꽃들의 빛깔들이 다른 것은 태양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살구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풋살구가 살구나무 가지 쪽으로 튀어 오르고 침묵 위에 떠 있던 말들이 침묵 속으로 다시 녹아드는 것도 그리움의 한 표현 방식일 것입니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은 다 섬이며 섬엔 그리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함민복의 에세이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에서)

 

   "나무들의 모양, 꽃들의 빛깔들이 다른 것은 태양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은 다 섬이며 섬엔 그리움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책에서 눈을 떼고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아주 특별하지 않은 듯도 한, 그러나 시인의 깊은 생각이 담긴 이 두 문장이 그랬습니다.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함민복 저
시공사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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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그늘에 대하여 | 문학 2022-08-1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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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근대 일본과 일본인의 삶과 문화,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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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과 일본인의 삶과 문화,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산문집 - 그늘에 대하여 | 문학 2022-08-1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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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늘에 대하여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고운기 역
눌와 | 2005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근대 일본과 일본인의 삶과 문화, 사고방식을 잘 보여주는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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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의 산문집 그늘에 대하여를 읽기 전까지 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에 대해 알지 못했다. <옮긴이의 글>을 통해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은 <옮긴이의 글>에서 퍼온 글이다.

또 다른 일본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도 번역했던 사이덴스티커(가와바타 야스나리와 14년 동안 교유하며 그의 대표작 <설국(雪國)><천우학(千羽鶴)>을 영어로 번역, 서구에 소개한 미국인)는 다니자키가 1968년까지 살아 있었다면 그에게 노벨문학상이 갔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다니자키의 작품을 빼버린다면 일본의 근대문학은 꽃 없는 정원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다니자키는 1958년 펄 벅에 의해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이래 1965년 사망할 때까지 매년 후보에 올랐다. (207p)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소설가로 이름을 날린 작가이지만, 이 책 그늘에 대하여는 소설집이 아니라 산문집이다. ‘수필집이라고 하지 않고 산문집이라고 한 것은 수록된 작품들 각각의 분량도 만만치 않고, 분량에 비례하여 글의 내용도 꽤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산문집 그늘에 대하여에는 <그늘에 대하여>, <게으름을 말한다>, <연애와 색정>, <손님을 싫어함>, <여행>, <뒷간>, 이렇게 모두 여섯 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여섯 편의 산문의 분량을 살펴보면, <그늘에 대하여> 62, <게으름을 말한다> 24, <연애와 색정> 50, <손님을 싫어함> 16, <여행> 34, <뒷간> 11쪽으로, <그늘에 대하여><연애와 색정>, <여행> 같은 경우에는 중단편 소설에 해당하는 분량이라 할 수 있다.

 

여섯 편의 산문 중 앞에 수록된 세 작품 <그늘에 대하여>, <게으름을 말한다>, <연애와 색정>은 소재에 대한 주관적 감상 토로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은 산문이다. 서양 문화와의 대비를 통해 일본 문화와 일본인의 삶과 의식에 대해 말하면서, 당시 세태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보여주고 있다.

 

표제작 <그늘에 대하여>는 그늘을 예찬하면서 그것을 잃어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산문이다. 작가는 글의 말미에서 이 글을 쓴 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이런 글을 쓴 취지는, 몇몇 방면, 예를 들면 문학?예술 등에 그 손실을 보전할 길이 남아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나는 우리가 이미 잃어가고 있는 그늘의 세계를 오로지 문학의 영역에서라도 되불러 보고 싶다. (67p)

 

그러면, 이 글을 통해 작가가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늘이란 무엇(혹은 어떤 것)인가?

옮긴이는, <그늘에 대하여>의 원제가 음예예찬(陰?禮讚)’이라고 하면서, “‘음예는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이다. 그러나 글을 옮기면서 일단 그늘이라 하기로 한다(7p).”라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음예현대식 조명이나 밝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보인다. 아래 인용문을 보자.

아무래도 요즈음의 우리는 전등에 마비되고, 과잉된 조명에서 빚어지는 불편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감각해져 있는 것 같다. 달 구경의 경우는 아무래도 좋지만, 대합실, 음식점, 여관, 호텔 따위가 대체로 전등을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다. (59p)

 

이 글에서 작자가 다루는 내용은, 건축(장지문, 조명, 난방, 변기 등), 칠기, 요리 등을 망라하는데, ‘그늘은 언급하는 대상이 어스름한 어둠의 광선에 둘러싸여, 구별을 몽롱하게 한 상태에 놓이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늘을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희읍스름함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작자는 그늘에서 보는 것(칠기, 여인 등)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다.

우리들은 문지도리 뒤나 꽃병 주위나 선반 아래 등을 메우고 있는 어둠을 바라보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그늘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의 공기만이 착 가라앉아 있는 듯한, 영겁 불변의 고요함이 그 어둠을 차지하고 있는 듯한 감명을 받는다. 서양인이 말하는 동양의 신비라는 것은 이처럼 어두움이 갖는 어쩐지 으스스한 고요함을 가리키리라. (36~7p)

 

<연애와 색정>은 독자의 편견을 깨뜨리고 있는 산문이다. 오늘날 일본은 하면 섹스 관련 상업이 발달한, ‘()진국이라 불릴 만큼 성적으로 개방된(나쁘게 말하면 문란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 글에 따르면 옛날에는 오늘날과 완전히 달랐던 것 같다. 작자는 일본에 대해 연애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비천하게 보고, 게다가 색욕에 담백한 민족”(123p)이라고 말한다.

일본 예술에 대해서도 전통은 연애의 예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심은 크게 감동도 하고, 살짝 그런 작품을 향락한 것도 사실이지만,겉은 되도록 시치미를 뗐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조심스러움이며, 누구랄 것 없이 사회적 예의가 되었던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서양과 대조가 된다고 한 견해는 탁견으로 보인다.

 

<게으름을 말한다>게으름을 예찬하는 글이다. 작자가 말하는 게으름“‘나른한생활 가운데 나름대로 별천지가 있음을 알아, 거기에 안주하여 그것을 그리워하고 즐기고, 어떤 경우에는 그런 경지를 보거나 얻을 수 있는 경향을 의미한다. 작자는 이런 경향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서양인과 구별되는 동양인의 경향이라고 본다.

서양인은 단적으로 게으름뱅이도 아니려니와 게으름 피우기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체질, 표정, 피부색, 옷차림, 생활양식 등 모든 조건으로부터 그렇게 되었기에, 가끔 뭔가 사정 때문에 불결이나 규율을 어기는 일을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일은 있을지라도, 동양인이 게으름 가운데 갖는 어떤 편안한 별세계를 타개한 듯한 마음가짐을 꿈에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 (76~7p)

 

이러한 작자의 견해는 수긍되는 측면도 있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없지 않았다. 가령 다음과 같은 내용은 동양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고 한다면 적용되는지 몰라도 한국인으로서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노인의 이가 새하얗게 가지런한 것은 적어도 동양인의 용모와는 조화가 되지 않는다. 틀니를 하더라도 가급적 자연에 가깝게 해야만 하는데, 나이 들었다는 핑계로 너무 젊고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십 넘어 두꺼운 화자’, 정말로 불쾌한 것이다.” (83p)

 

이상 세 작품과 달리 <손님을 싫어함>, <여행>, <뒷간>은 개인적 성향이 강한 글이었다.

<여행>의 중간쯤에서 공중도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일본인에 대한 작자의 지적이 나오는데, 공중도덕을 잘 지키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남의 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았다.

 

이 책에 수록된 산문들은 기본적으로 작자의 개인 성향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밝음보다는 그늘을 좋아하고, 떠들썩함보다는 고요함을 좋아하며, 편리함보다는 불편함 속의 은근함을 좋아하는 등의 성향. 그러나 개인적 성향 고백을 넘어서서 서양과의 비교를 통한 일본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근대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의 삶과 사고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훌륭한 산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읽어볼 책 리스트에 올려둘 책이다. 그리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도 읽어보고 싶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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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 시인을 통해 듣는 변방의 그 시절 이야기, 그리고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 | 문학 2022-08-0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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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장장이 성자

권서각 저
푸른사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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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목소리의 구수한 입담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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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문학나눔 우수도서인, 권서각 시인의 산문집 대장장이 성자어느 변방 시인의 기억 창고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부제만 봐도 이 책이 어떤 성격의 책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으로 그동안 3권의 시집(눈물반응, 쥐뿔의 노래, 노을의 시)을 펴냈다. 등단 40여 년(시력은 50년이 넘을 수도)3권의 시집이면 과작이라 할 수 있다. ‘쥐뿔을 한자로 쓴 서각은 필명이고, 본명은 권석창이다.

시인은 소백산 아랫마을인 경북 순흥 출생으로, 인근의 영주, 풍기, 안동 지역을 묶어 변방이라고 표현했다. 순흥면에 대해서는 은근한 이끌림이 있음을 밝히며 조선 초기까지 부사가 있는 도호부였다가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운동 사건으로 세조가 도륙내어 폐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라고(33p) 소개하고 있다.

 

대장장이 성자에는 모두 30여 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이 산문들은 모두 저자의 기억 속에서 끄집어낸 것들이다. 어떤 한 사람의 기억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것을 되살려내서 글로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의미가 있는 기억이길래 그것을 끄집어내 글로 쓴 것일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이런 의문은 풀렸다.

 

이 책, 대장장이 성자는 저자 자신이 겪은 이야기, 자신이 만난 인물의 이야기, 떠도는 소문 혹은 전설 같은 것을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겪은 이야기 같은 경우는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그 과정에서 시인이 살던 당시의 사회상과 세태를 알게 해준다. 자신이 만난 인물에 관한 이야기나 떠도는 소문 혹은 진실에 관한 이야기 역시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그 시절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묘미가 있다.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한 개인의 기억 속 이야기이지만 단순한 사적 이야기를 넘어서는 산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단순한 회고 취향의 글이 아니라 기록할 의의가 있는 것을 적은 글이라는 말이다. 저자가 글 속에서 자신을 기록자, 혹은 복두쟁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젊은 시절 일본에 다녀온 후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목욕하는 버릇을 굳게 지켰던 것이다. 그의 죽음을 두고 마을에 말이 떠돌았다. 어떤 이는 일본에서 배운 것을 그렇게 오랜 세월 굳게 지켰으니 대단한 친일파라 했다. 어떤 이는, 헤엄 잘 치면 물에 빠져 죽고 나무에 잘 올라가면 나무에 떨어져 죽는다더니, 옛말 하나 그른 거 없다 했다. 기록자는 적는다. 산천은 그대로인데 이제 그런 말을 할 사람조차 없음을 애석해하노라. (48-49p)

 

이 이야기는 너만 알고 있어.”

위득이는 위협하듯 말했다.

그래, 위득아. 니 이야기 난 못 들은 거야.”

그렇게 말했지만 들은 건 들은 거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복두장이가 이 비밀을 말하면 죽여버리겠다는 임금님 때문에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해 병이 났다고 하지 않는가? 나도 복두장이처럼 병이 날 것만 같았다. (중략) 내 친구 위득이는 개로 인하여 좋은 승용차를 얻었고 나는 개로 인하여 복두장이 병을 얻었다. 내일은 개고기 집에 가서 소주 배불리 먹고 모두 잊을 생각이다. (55-56p)

 

위득이가 너만 알고 있으라고 하며 한 비밀 이야기는 인용한 부분의 앞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위득이가 서울에서 출세한(?) 이야기인 그 이야기는 귀로 듣거나 글로 읽게 된다면 누구라도 배꼽을 잡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인용한 글에서 저자는 복두장이 병을 얻었다.”라고 했지만 실은 이미 다 까발린 것이다. 갈대밭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외친 복두장이처럼.

 

30여 편의 산문을 통해 알 수 있는 독자는 저자의 이력, 곧 어린 시절, 중고등학생 시절, 교대생 시절, 초등교사 시절, 고교교사 시절, 정년퇴임 후의 이력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입이 짧았던, 그리고 바른생활 어린이였던 어린 시절,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으나 가정형편으로 인해 변방의 종합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학업에 흥미를 붙이지 못했던 이야기, 그리고 역시 원치 않았던 변방의 교대로 진학하여 유급하고 간신히 졸업한 이야기, 벽지 아닌 벽지에서 초등교사를 시작하여 의무연한 5년을 끝으로 그만둔 이야기, 다시 공부하여 고교교사가 된 이야기, 은퇴 후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저자는 그들을 강호 뻐꾸기라고 표현한다)과 어울리는 이야기 등.

그리고 시인이 된 이야기, 첫사랑(그때는 사랑인 줄 몰랐거나 수줍은 성격 탓으로 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던)과의 추억과 해후에 관한 이야기,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 생활 이야기 등, 이런 이야기들이 평범한 듯하면서도 은근히 읽는 재미가 있었다. 내용도 그렇지만 그 내용을 전하는 저자의 말투,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백한 말투 속에 은근히 담고 있는 해학과 풍자가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글이 많았다.

 

이 책 대장장이 성자에 실린 산문 대부분은 시간이 좀 지난 옛날의 이야기이지만, 그렇지 않은 산문도 있다. 저자가 생활 터전인 변방 지역 사람들의 정치 성향에 대해 풍자하고 있는 <아무도 할배를 말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은 과거의 이야기이면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야기이다. <아무도 할배를 말릴 수 없다>에서 저자는 우리의 아픈 현대사의 시공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야기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이 효순이 추모제에서 추모시를 낭송한 이야기,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 분향소에서 추모시를 낭송한 이야기,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해서 추모시(271-273P)에 시가 인용되어 있다)를 낭송한 이야기,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시(275-277에 수록되어 있음)를 낭독한 이야기 등. .

맨 마지막에 실린, 아동문학가 권정생 씨를 추모하며 쓴 <부치지 못한 편지>는 가슴 아프면서도 뭉클한 이야기였다.

 

어느 변방 시인의 기억 창고라는 부제를 보고, 가졌던 선입견과 의문은 책을 읽고 난 지금 말끔히 해소되었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전에 간행했던 산문집 그르이 우에니껴?를 펴낸 후에 재미 있고 의미 있다는 몇몇 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그때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서 썼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나 또한 이 작가에게 혹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더 이어서 책을 펴내주기를 응원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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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대장장이 성자 | 문학 2022-08-0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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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목소리의 구수한 입담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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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터, 노인들을 위한 공원 | 이런 얘기 저런 얘기 2022-08-0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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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근린공원이 있다. 오후 늦게 산책 겸 동네 지리도 익힐 겸 나섰다가 이곳까지 가게 되었다. 원래는 집 바로 뒤에 있는 □□ 산공원 둘레길을 돌 계획이었는데, 어제 오후에 둘레길을 돌다가 산모기에 물린 생각이 나서 방향을 바꾼 거였다. 이곳에 들른 건 꽤 오랜만이다. 몇 년 전 이곳에서 벼룩시장이 열렸을 때 와본 후로는 처음이다.

  오랜 만이어서일까, 기억 속의 공원과 많이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공원은 달라지지 않았거나 아니면 달라졌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달라졌으면 어떻고 달라지지 않았으면 어떤가. 어쨌든 공원은 공원 아닌가.

  그런데 내 기억은, 하마터면 무심코 지나칠 뻔했던 어떤 표지판 하나에 대해 분명 예전에는 없던 거라고 우겼다.

  노리터(老利攄)라? 괄호 속에 병기한 한자가 없었다면, <놀이터>를 재미있게 <노리터>로 쓴 것으로 여기고 가볍게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괄호 속 한자를 보는 순간, 발걸음은 저절로 멈추어졌다. <노>자, <리>자는 알겠는데 <터>자는 모르는 자였다. 인터넷 사전 검색을 하니 <터>자는 '펴다, 생각이나 말을 늘어놓다'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했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그 기발함에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서야 <노리터> 위에 적힌 <어르신 야외 여가활동 공간>이라는 노란색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이 공원은, 아니 공원 전체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표지판이 서 있는 곳은 특별히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공원을 다시 둘러보니 아이들 놀이시설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서넛이 잔디밭에서 야구공 주고받기를 하는 것을 빼면 다 어르신들이었다.

  사실 예전에는 <공원>이라고 하면 나이 든 사람들이 연상됐었다. 대표적으로 파고다 공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놀이터>라고 하면 어린이들이 연상됐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어린이들의 놀이터도 <놀이터>라 하지 않고 무슨무슨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공원>이라고 해도 아이들의 <놀이터>가 연상될 때가 많았다.

  이제 공원은 <놀이터>와 <노리터>를 포괄하는 용어가 된 것 같다. 전자인지 후자인지에 대한 판단은 공원에 갖추어진 시설과 주 이용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출산률 저하로 인한 문제점도 많지만, 점점 노령화 사회로 진행되어 가는 상황이니 만큼 <노리터>를 조성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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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로 만나는 시 이야기 8 - 윤동주의 '새로운 길' | 이런 얘기 저런 얘기 2022-07-3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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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이 시는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예전에 읽었던 윤동주 시집을 다시 들춰보니, 1938년 5월 10일 작으로 되어 있다. 1938년은 윤동주가 연희전문에 입학한 해이다.

  윤동주의 대표시들이 씌어진 때가 대략 1940년대 초('병원'이 1940년, '십자가', '또 다른 고향', '서시', '별 헤는 밤', '간'이 1941년, '참회록', '쉽게 씌어진 시'가 1942년 등)라고 보면, 이 시는 윤동주 시의 초기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초기 시 중에도 '자화상'처럼 수작이 있지만, 1930년대의 시는 아무래도 1940년대 초의 시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이다.

  5연으로 된 이 시는 형태상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다. 3연을 축으로 하여 1연과 5연이 수미상관을 이루고, 2연과 4연은 약간의 변조가 이루어진 대응 관계를 보여준다. 내용도 단순하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길, 그러니까 새로울 게 하나도 없는 길을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하며 그 길을 가겠다는 설렘과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 길은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나는, 바람이 이는) 내나 숲, 고개 같은 자연이기도 하면서, (아가씨가 지나는) 마을이라는 사람 사는 곳이기도 하다. '길'을 인생의 비유라고 본다면, 자연과 사람들과 더불어 초지일관의 변함없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시비를 만난 곳은 지지난주 일요일 서울둘레길 7코스 봉산, 앵봉산 구간에서였다. 이 구간은 은평둘레길과 겹치는 구간이기도 하다.

 
  서울둘레길 7코스의 시작점은 가양역 3번 출구이지만, 서울둘레길을 종주하려는 게 아니고 이 시비를 보러 가기 위한 거라면, 굳이 거기에서 시작할 필요 없이, 지하철 6호선 증산역 3번 출구로 나와 증산체육공원으로 가서 서울둘레길(혹은 은평둘레길) 이정표를 보고 따라가면 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길은, 증산체육공원을 지나서 서울둘레길 이정표를 보고 능선을 향해 가다가 계속 서울둘레길로 진행하지 말고(능선을 다 올라가지 말고) 도중에 오른쪽 첫번째 샛길로 진행하면 걷기도 쉽고(서울둘레길은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고, 샛길은 조금 낮은 둘레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두 길은 나중에 만난다.), 최근 은평구에서 야심차게 조성한 편백나무 숲 코스를 만나게 되는 길이다.

  이 포스팅을 할 생각을 못 했기에, 사진을 제대로 찍지는 않았는데, 편백나무 숲은 조성한 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나무가 작지만, 멀지 않아 서울의 명품 숲으로 핫 플레이스가 되지 않을까 한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편백나무 숲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쉼터도 만들어져 있다.


  * 편백나무 숲이다. 편백나무 사이로 무장애 데크길이 보인다. 저 길을 걸으면 된다.

  서울둘레길 안내 책자에는 봉산, 앵봉산 구간이 대규모 팥배나무 군락지가 있고, 서어나무를 비롯한 100여 종의 수종이 있어 다른 산에 비해 자연 그대로 숲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숲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볼 만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봄 가을도 좋지만, 여름에도 숲이 많아 걷기에 괜찮다고 생각한다.

  윤동주 시비는 편백나무 숲을 지나 봉산(예전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해서 봉산이다)을 지나 <서오릉 고개 녹지 연결로>가 시작되는 곳에 있다.


 * 시비 부근에 이런 이정표가 있다.


 * 서오릉 고개 녹지 연결로이다.


 

  <서오릉 고개 녹지 연결로>에는 시인들의 시를 새긴 목판도 있다. 연결로를 지나 서울둘레길을 계속 따라가면 구파발로 가게 되는데, 그냥 이쯤에서 걷기를 그만해도 된다. 혹 아쉽다면, 근처에 서오릉이 있으니, 서오릉 숲길을 걷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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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현대소설 선집 - 살아내기 위한 다양한 삶의 모습들 | 문학 2022-07-2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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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살아내기 위한 수많은 삶

라우라 오르티스 등저/송병선,엄지영 공역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살아내기 위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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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그러니까 이 책을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은 책 덮개가 독특하면서 참 예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예쁜 표지의 책의 제목이 왜 살아내기 위한 수많은 삶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살아내기 위한 삶이란 말은 어떤 부정적인 상황을 전제하고 그 상황을 인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가. 물론 인내하는 가운데 희망과 기대를 품을 수는 있겠지만, 왠지 예쁜 표지와는 엇박자가 나는 것 같았다.

선집의 경우 수록 작품 중의 한 작품의 제목을 책 제목으로 정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만큼, 혹 수록된 작품 중의 한 작품의 제목인가, 하여 살펴봤으나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아내기 위한 수많은 삶에 실린 작품의 선자(選者)가 수록 작품들의 다양한 내용에서 살아내기 위한 삶이란 공통점을 추출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외국 작품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 나라만의 문화 혹은 상황 같은, 어떤 독특한 분위기이다. 그리고 실제로 독서를 통해 외국의 문화 혹은 상황을 접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살아내기 위한 수많은 삶이란 책 제목에서 내가 예측한 건 작품들이 콜롬비아의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건 살아내기 위한이란 말에서 체념, 좌절, 인내, 저항 등의 단어가 머리를 스친 탓이었다. 또한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접한 남아메리카(그것이 콜롬비아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음)의 불안정한 정국에 관한 뉴스도 어렴풋이 기억 난 때문이다.

 

살아내기 위한 수많은 삶은 콜롬비아 대표 현대소설 선집으로 모두 10편의 단편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의 면면은 하나같이 굉장하다. 가히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소설가들이라 할 만하다.

 

10편의 작품 중, 특별하게 다가온 작품은 <개구리>. 이 작품은 첫 문장부터 뜻밖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건 첫 문장(“대사와 장관, 그리고 몇몇 장군의 공식 연설이 끝나고, 빨간 베레모를 쓴 한국 소녀 합창단이 국가를 부른 다음, 참전 용사들과 그들의 가족은 스파클링 와인이 준비된 초록색 천막으로 이동했다.”)한국이란 단어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거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더 몰입하며 읽었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참전 용사들을 위한 행사에 참여한 참전 용사와 그들 가족이 어울려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내용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전쟁 때 참전한 UN 16개국에 콜롬비아가 있다는 생각이 났다. 이 작품은 타자(외국인)의 입을 통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추체험하게 했다. 체험에는 다음과 같은 전쟁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그들은 *포크촙 힐 전투와 불모 고지 전투에 대해 말했고(87p) / 불모 고지에서 전사했어요.”(106p) * 포크촙 힐 고지는 강원도 철원 인근에 있는 고지(현재는 비무장지대)로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다. 그리고 불모 고지는 경기도 연천군 북방 천덕산 진지 중의 하나였다. 콜롬비아군은 이 두 고지에서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우리 계획은 중공군의 손안에 있는 진지까지 가는 것이었어요. 스물다섯 명의 콜롬비아 병사들은 무릎까지 눈 속에 파묻혔고, 각자 전투복 위의 흰색의 재킷과 바지를 걸치고 있었어요.”(112p)

다음의 구절처럼 한국 여자에 대한 불유쾌한 언급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낡은 C-7 폭탄 상자를 가지고 임시로 만남의 장소를 세웠고 홀쭉한 한국 여자들은 50센트에 몸을 팔았다. (107p)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내용이 소설의 다는 아니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콜롬비아 내부의 문제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세상 반대편으로 가서 우리 가족을 지킨다는 것 말이야. 여기에서 우리는 이미 우리끼리 서로 죽고 죽이고 있잖아. (95P)

여기, 그러니까 푸엔테 데 보야카에서 두 마을 떨어진 곳에서 정권의 명령을 따르는 경찰이 적들의 목을 베었으며 군대가 여자들을 강간하면서 사욕을 채웠다는 내용이었다. (96p)

1950년 당시의 콜롬비아는 인용한 두 부분의 밑줄 친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이야기하면서 콜롬비아 내전을 같이 이야기하는 소설 <개구리>는 단순하지 않은 작품이다.

한국전쟁 이야기에서 개구리와 관련된 이야기로 흘러가는, 이 소설이 다루고자 하는 진짜 주제는 진실과 허위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 살라사르는 수많은 세월 동안 수많은 참전 용사들의 모임에 참석해왔다. 그런데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전쟁 참전을 위한 훈련은 받았지만, 참전 전에 탈영했으면서 참전 용사 행세를 해 온 것이다. 진실을 숨기고 허위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허위의 삶을 사는 사람이 또 있다. 참전 용사 모임에서 만난, 한국으로 출발 5개월 전 참전을 위한 훈련을 함께 받았던 구티에레스 중위의 아내다.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낯이 익다고 생각하던 주인공은 그가 탈영병으로 숨어 지내던 시절, 그녀를 만났던 것을 기억해낸다.

주인공은 탈영병 시절 살아 있는 개구리를 구해서 시내 임상 검사소에 파는 일을 했다. 임상 검사소에서는 개구리를 통해 임신 여부를 판별했기 때문이다. , 개구리는 임신 진단을 위한 도구였다.

이 검사소에는 불안감을 안고 방문하는 여자 손님이 많았는데, 한국전쟁에 참전 중인 구티에레스 중위의 아내 메르세데스(그 당시는 약혼녀)도 그중 한 명으로,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개구리 검사를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둘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러나 서로의 허위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한다.

, 미안해요.” 그때 메르세데스가 말했다. “당신 역시 전쟁터에 있었지요. 너무 당연한 건데.”

그렇습니다, 부인.” 살라사르가 말했다. “거기에 있었습니다. 당신 남편처럼 은성 훈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거기에 있었습니다.” (127P)

그러다가 작품의 끝부분에서 주인공은 속이고 왜곡하며 살아온 삶에 피로를 느끼고 숨겨온 진실을 밝히려 한다. 그렇지만 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아메리카 호랑이 : 판테라 온카>8살 소녀(밀레나)가 서술자인 소설이다. 밀레나는 엄마와 둘이 사는데 아직도 걸핏하면 오줌을 싼다. 엄마는 코카 잎을 팔아서 생계를 꾸려가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녹록하지 않다. 이네들의 삶이 힘든 것은 세상이 변한 때문이다. 엄마는 말한다. “얘야, 전에는 이렇지 않았단다.”라고세상이 변한 것은 <총을 들고 지키는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마을 중심 도로 초입에서 총을 들고 지키는 이가 우리에게 신분증을 내놓으라고 한다. 엄마가 플라스틱으로 된 신분증을 건네주자, 그는 괜히 인상을 쓰며 읽는 척한다. (중략) 잠시 후, 그는 엄마가 정말 시골에서 일하는지 확인하겠으니 손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러곤 엄마의 손을 잡고 들여다본다. (중략) 그는 우리를 통과시켜 준다. 그런데 그때 엄마에게 예쁜이라고 말한다. (12P)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못된 짓을 일삼는 자들이란다. 특히 우리 여자들한테 말이야. 그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지, 차마 내 입으로는 말을 못 하겠구나.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엄마가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28P)

그런 어느 날 밤부터 엄마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곧 밤마다 어딘가 갔다 오는 행동을 하는데,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엄마만은 아니었다. 엄마를 미행한 주인공은, 엄마가 밤마다 숲속에 있는 우리를 찾아가 호랑이 혹은 재규어 암컷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주인공에게 여자 호랑이를 우리에서 꺼내 줄 생각이라고 말한다.

얘야,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마. 토요일에 여자 호랑이를 우리에서 꺼내 줄 생각이니까. 그 아이도 우리의 뜻을 잘 헤아려 줄 거야. 그러고 나면 자유의 몸이 될 거란다. 사실 너와 나도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아무쪼록 그 아이가 그 우리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어야 해. 이제 곧 우리 여자들은 모두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될 거야. (32P)

인용한 부분의 자유속박이란 말에서도 드러나듯, 이 작품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 ‘우리콜롬비아를 비유하고, ‘여자 호랑이자유를 상징한다.

소설은 주인공과 엄마가 어느 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야음을 틈타 트럭을 이용해서 사는 곳을 벗어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들리는 말로는, 열두 시간 후면 에콰도르에 도착할 거라고 한다. 환호성과 함께 박수갈채를 보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다. 나는 안다. 여자 호랑이가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37P)

소설의 끝 장면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총을 든 자들이 다스리는 세상을 벗어나 망명을 시도하는 이야기이다. 맨 처음에 수록된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소설집의 제목에서 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살아가는 것과 살아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이 소설은 살아내는 삶을 살던 주인공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콜롬비아를 탈출하는 이야기이다. 콜롬비아의 상황은 제대로 모르지만,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살기에는 생지옥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택 연금>은 좀 황당한 이야기였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열아홉 살 때 경찰로서 어떤 장애인 수감자를 감독하는 일을 맡았을 때의 일을 이야기한다. 경찰로서 주인공의 일은 몸이 불편한 가택 연금자를 찾아가서 가택 연금 조건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거였는데, 그러다가 가택 연금자의 아내인 에마에게 홀딱 반해서, 나중에는 그녀와 종종 성관계를 갖게까지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녀는 나이는 쉰 살 정도 돼 보였지만, 취미가 고상하고 교양있는 여자였다. 게다가 여전히 탄력있고 탱탱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의 가벼운 옷차림에 아름다운 맨발을 드러내고 긴 머리를 풀어 어깨 위로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욕정을 느끼게 된다. 그날 이후로도 그녀는 셔츠 단추를 끌러 놓거나 애교를 부리면서 나를 유혹하려 했다. 그리고 어느 날엔 자기를 좋아하냐고 묻기도 했고, 나는 언제나 그녀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이상의 서술은 주인공인 위주의 서술이다. 그녀를 원한다는 내 말에 대한 다음의 반응을 보면 그녀가 정말로 나를 유혹한 것인지에는 약간의 의문이 있다.

나는 유부녀야. 그리고 남편을 사랑해. 그것만큼은 분명히 알아 둬. 그녀는 자기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만약 나랑 자고 싶으면, 남편이 보는 앞에서 해야 해. (52P)

 

변태가 아니라면, 아무리 욕정이 인다고 해도 남편이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와 성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아내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와 섹스를 하고 싶다면, 남편 몰래 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 아들뻘의 한참 어린 남자에게 욕정을 느끼고 성관계를 갖고 싶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건 어쩌면 우회적인 거부가 아니었을까? ‘는 남편의 가택 연금을 감시하는 자, 곧 갑이고, 에마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로서 의 욕정을 채워줌으로써 남편이 무사히 가택 연금을 끝낼 수 있도록 한 건 아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에마의 삶 역시 견디어내는 삶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런 식의 견디어냄이라는 것이 당혹스럽다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사실도 밝히지 않을 수 없다가택 연금 담당자가 다른 순경으로 바뀐 후에도 나와 그녀의 관계가 지속된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러면 이렇게 해석해야 하나? 그녀가 와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곧 성행위를 할 수 없는 남편의 대리만족을 위해 남편 아닌 남자와의 성관계를 견디어내는 것으로.

드문 경우였지만 에마와 단둘이 있을 때 나는 그녀에게 남편이 우리를 보면서 즐기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면 그녀는 내 질문이 믿어지지 않는 듯이 목을 움츠렸다. 그녀는 남편이 우리를 보면서 분명히 즐기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자기에게 요구한다고도 했다. (55P)

어떻게 해석하든 개운하지 않은 작품이다. 콜롬비아의 성 문화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19금 음란물을 보는 것 같은 기분도 배제할 수 없었다.

다만, 에마가 그녀의 장애인 남편을 사랑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내가 남편을 잘 위해줄 때까지는 관계가 유지되었지만, 어느 날 내가 남편을 괴롭히는 걸 보고는 나를 내쫓았으니까.

 

어느 날 택시 운전사의 횡포를 겪은 후, 수치심을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생각으로, 곧 물리적 방법(택시 운전사를 총으로 쏴죽이는)으로 정의를 구현해나가는 내용 전개, 그리고 엉뚱한 자가 범인으로 몰리며 끝나는 해프닝을 다룬 <선순환>도 인상적이었다. 여기에서 자세히 다루지 못한 나머지 작품들도 저마다 각양각색의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작품은 상징적이어서 난해하기도 했고, 어떤 작품은 내용이 황당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작품들은 평범한 듯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기도 했다.

오래 전에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를 읽은 이후로 오랜만에 콜롬비아 소설을 읽었다. 콜롬비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이 소설 선집을 통해 콜롬비아 사회의 분위기며 그들의 생활상, 사고방식 등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책은 다 읽고 난 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모든 책이 그런 건 아니다. 살아내기 위한 수많은 삶은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이유의 힌트는 콜롬비아의 대표 문학 선집이라는 데 있다. 물론 모든 작품이 다 좋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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