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도 20세기 후반 들어 새로 생긴 트렌드 중 하나가, 사람의 한 생애 전체를 놓고 그 소득의 추이와 기대가 어떤 패턴으로 형성될지를 연구하는 분야였습니다. 물론 계획이란 오늘 하루부터를 알차고 보람되게 보낼 궁리, 관심이 최우선이라야 합니다. 허나 눈 앞에 닥친 시간을 아무리 메뚜기처럼 열심히 채워도, 그 열심히 뛰어다닌 노고가 자신의 먼 미래까지 내다본 장기 비전 위에 서 있지 않으면, 결국 소용 없는 노력으로 그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대체 무슨 목표를 위해 그런 노력을 쏟았는지, 그 장기적 전략 목표의 수립이 더 중요하다는 점은 거의 모든 이들(전문가이든 그저 일상인이든)이 동의하고 넘어갑니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껏 많은 저서를 집필, 출간하신 교육학 부문의 달인이십니다. 저는 이분의 교과서류 전문 서적도 몇 권을 전에 읽었습니다만, 그보다는 모 기관에 강연 나오셨을 때 그닥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과 평범한 학벌을 바탕으로 어떻게 이 자리에까지 우뚝 서게 되었는지 진솔하고 설득력 있는 술회를 들었던 기억이 오래 남습니다. 저서를 읽어 보면 전문성이 매우 높은데다, 기존의 연구 성과를 단순 취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지평을 연 대목이 적지 않아서, 여러 학교나 기관에서 교재나 레퍼런스북으로 채택된 도서가 많습니다. 그런 책만 보다가 이처럼 대중들이 편히 읽을 수 있는 제안, 권유, 아이디어를 담은 책을 보니 무척 반갑기도 합니다.
사람의 한 생애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습니다. 긴 생애라면 길어서 단단히 채비를 갖춰야 하고, 짧다면 그 얼마나 밀도 있는 설계가 요구되는 소중한 시간들이겠습니까? 한국이 요즘 극심한 경기 침체,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소비 심리 저하를 겪는 것은, 노인층의 수요가 도통 자극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은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여 손을 벌려 오지, 몸 이곳저곳 아픈 데는 많지, 모아 둔 재산은 나갈 데 까먹을 구석은 많아도 이자는 쥐꼬리처럼만 붙지, 이 험한 세상에서 의지할 데가 점점 줄어드니 돈이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계획이 필요한 젊은이들은 뭘 아껴 쓰고 말 것도 없을 만큼 일자리, 수입이 빈약합니다. 노인들은 무작정 아끼는 게 능사인 줄 알고, 젊은 층은 계획이 사치인 줄 압니다. 이러니 공동체의 장래가 밝게 전망될 수가 없죠.
경제 체제 안의 모든 참여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습성이 길러져야, 경제 공황이나 재앙이 드물게 닥칩니다. 투기꾼이나 한탕주의 세력이 크게 털어 먹는 사회는, 그런 행위자들의 도덕성이나 탐욕을 탓하기 이전에, 계획성 없고 소비 행위나 투자를 분별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개개인의 어리석음이 자초한 면도 있습니다. 만약 체계적으로 지출과 수입을 통제하는 습관이 들었다면, 누가 솔깃한 말로 꼬셔도 일단 몸에 밴 현금 입출금 루틴이 일차 경계 경보를 발령할 것이며, 다음으로는 그 체계적인 습관이 마인드 속에 알게 모르게 심어 둔 알뜰한 합리주의가, 지금 이 제안이 그리 건전하지도 유망하지도 못함을 알아서 결론 내어 줄 것입니다. 이처럼, 건강한 생애 설계는 그 자체가 든든한 인생의 버팀목입니다. 최근 대기업 계열 보험, 금융사 등에서 라이프타임 기간을 염두에 둔 각종 상품을 출시하는 것도 이런 추세를 반영해서입니다.
어쩌면 이처럼 빈약하고 미숙하게 태어난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고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미래를 대비하고 전략을 짜는 습성이야말로 외부의 도전에 대처하고 종의 진화를 이끄는 본체적 흐름을 형성했다고 하겠습니다. 즐겁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려면, 무엇보다 한 톨의 시간, 한 줌의 동전도 낭비하지 않는 지혜로운 설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