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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 도서 리뷰 2020-06-0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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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저/이시형 역
청아출판사 | 2020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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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러워 보이는 금색과 검은색 디자인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더욱 무게감있게 전하는 듯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던 책이었지만 부끄럽게도 읽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책이었다. 내용도, 책 제목도 그 당시 어린아이였던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 재미없어 보이는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땐 그저 재미있는 소설책에만 관심이 많았던, 그야말로 책 편식이 심했던 시절이었다. 뭐, 요즘도 아니라고는 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좋은 기회로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저자인 빅터 프랭클이 수용소에서의 생활과 경험을 토대로 창시한 '로고테라피'라는 정신분석 요법에 관한 책이다. 1장은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2장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3장은 비관 속에서의 낙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학교 수업 시간, 각종 매체들에서 접했던 내용 그대로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자유가 억압된 그 참혹함 속에서도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존재했다. 인간의 마지막 자유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이다.


악마와도 같은 수용소 안의 감시자와 카포에게 굴복하여 짐승처럼 살아갈 것인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성자'와 같은 삶을 살 것인지.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자유' 의지이다.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모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지만, 환경으로 인해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것은 개인이 선택하고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운명이 자기 대신 결정해 주기를 원한다. 나도 그 보통 사람들에 포함된 평범한 사람이다. 피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 낙관을 찾기보다 운명이 나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내 팔자를 탓했다. 운명에 나의 마지막 자유를 맡긴 것이다. 그러면서 자유를 빼앗겼다 울부짖었다.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자기계발 서적과 에세이 등을 탐닉했다. 자기개발 서적을 읽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화려한 스펙과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찾아오는 허무함과 허탈함은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싶은 의문을 남겼고, 자연스레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지 궁금해져 에세이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순 없었다.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많은 공감과 교훈은 얻었지만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도무지 발버둥 쳐도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과  미래에 대한 희망은 꺼져갔고 우울증이 찾아왔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인 생각까지(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하게 되었기에 스스로 심각한 상태라고 느꼈다.


일적으로 바쁜 탓도 있었지만 '정신병원'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이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원인 중 하나였다. 하루하루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지쳐있었고, 당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하기 싫은 일을 기약도 없이 억지로 맡아서 해야만 했기에 우울증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우울증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서부터 서서히 치유되어 갔다. 그것은 바로 '그림'이었다. 어느날, 예쁜 그림을 보고 아무 생각없이 따라 그렸던 적이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잘 그려져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내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인터넷이었다. 당시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내가 그린 그림을 조심스레 업로드했다.


결과는 무척 따뜻했다. 빈말일지라도 잘그렸다는 칭찬과 나를 인정해주는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의욕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갈 거야'


어릴 적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작은 목표. 잊고 있던 '꿈'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 솔직히 '왜' 살아가야 하는지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된 것만 해도 전과 달리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마음을 울리는 구절들을 하나 둘 적다 보니 어느새 하얗게 비어있던 공책을 빼곡히 채웠다.



책을 읽고 난 후 돌이켜 생각해보니 '피할 수 없는 시련'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수많은 운명이 존재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처한 좋지 않은 환경 때문에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운명을 탓했는데 사실 스스로 운명에게 내 삶의 주도권을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라는 책 속의 구절처럼 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아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약 없이 억지로 짊어진 일을 해야 했던 그 시절,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해치우는데 여념이 없었고 내가 꿈꾸는 미래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자는 목표가 생기자 하루 종일 일하기 싫다는 생각만 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퇴근 후 그림을 그릴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비록 아직도 원치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변화하고 있다.


p109.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p168. 상황을 더 이상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내가 자기개발 서적에 열중했던 또 다른 이유는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었다. SNS 속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현실에선 그것들은 실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나는 다른 부분에서라도 자신을 '포장'해야 했다.


행복하지 않으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였고,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내 모습은 남들 앞에서 당당할 수 없는 '결점' 그 자체였다. 이와 같은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지금도 여전히 남들이 하는 것을 쫓게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p170.


오늘날 정신 건강 철학은 인간은 반드시 행복해야 하며, 불행은 부적응의 징후라는 생각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가치 체계가 불행하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더 불행해지면서 피할 수 없는 불행의 짐이 더욱 자우되는 상황을 만들어 온 것이다.


시련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불행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시련에 수치심보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그것을 품위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고 있다.'


나는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 불행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어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해 보이게 포장한다. 그러다보면 허무주의에 빠지기 쉬워지는 것 같다.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행복하지 않은 나의 삶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럼 삶의 의미란 무엇이며,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삶의 의미를 찾는 세 가지 방법이 등장한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꼭 시련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피할 수 있는 시련은 피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불행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시련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고통의 실체를 알게 되면 시련은 시련이기를 멈춘다.


나는 아직 내게 주어진 시련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림을 그리며, 창작활동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조금씩 명확하게 규정해 가고 있지만 내가 겪고 있는 시련에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나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앞으로 시련이 주는 삶의 의미와 시련에 대한 태도를 찾아나갈 것이다.




--


글을 마치며 <죽음의 수용소에서> 본문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발진 티푸스로 죽음을 앞에 둔 여인이 빅터 프랭클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게 뇌리에 박혔다. 여인은 프랭클에게 나무가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프랭클은 여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타까워하며 여인에게 물었다. 나무가 어떤 대답을 하느냐고.


여인이 말했다.


"나무가 이렇게 대답해요. 내가 여기 있단다. 내가 여기 있단다. 나는 생명이야. 영원한 생명이야."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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