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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실망 | 2011-03-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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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저/김희상 역
갤리온 | 201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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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격하게 말하자면, 기만적인 제목이네요. 제목대로라면 자신의 정의관념과 상충하는 의뢰인을 만났을 때 변호사가 느끼는 고민이 다루어졌을 것 같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기대로 이 책을 읽게 되었고요. 변호인은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변호사도 직업인인 동시에 인간이기도 한 만큼 정말 악한 의뢰인을 만났을 때 고민이 되겠지요. 편들어 주고 싶지 않은 인간을 변호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고민에 대한 해답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건 아닙니다.

 일단은 재미있게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입니다. 11건의 형사 사건 이야기를 단편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잘도 써 내려갔더군요. 웬만한 범죄 소설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모두 실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 편히 즐기기가 어려워요(진정으로 감동을 받으면서 뒷맛도 개운했던 이야기는 열한 편 중에서 단 하나, 맨 마지막 '에티오피아 남자' 뿐이었습니다. 마음에 걸릴 만한 피해자가 없는 유일한 사건이기 때문이지요). 모든 사건이 결국 변호사의 승리로 끝난 사건들인데, 대부분 석연찮은 부분이 한두 군데씩 있습니다. 정말 이대로 끝내고도 괜찮을까.

 특히나 사건을 대하는 이 스타 변호사의 태도는 잘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일단 의뢰인에 대해서라면 무비판적으로 편을 들거든요. 자기 의뢰인이 심지어 살인 청부업자라는 강한 정황이 있어도, 저자는 그에 대해 아무런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그를 정당방위로 빼내는 데 몰두하는 과정만을 그립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명백한 범인이 풀려나는 사건도 아무 비판 없이 '재밌지?' 하는 태도로 서술해 놨더군요. 물론 그게 바로 형사사건 변호인의 이상적인 태도겠지요. 외부적으로는 당연히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직업적 의무와 인간적 신념이 충돌할 때 노련한 변호사라면 내적으로 그 충돌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였다는 말입니다. 무비판적으로 할 일만 유능하게 해내는 저자에게 정이 가질 않더군요.
 
 "의뢰인이 정말 무죄일까 하는 의문은 중요한 게 아니다. 변호사의 1차적인 임무는 의뢰인의 변호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그러나 변호사라고 해서 기계인 것도 아니고, 속으로 의문이 들고 양심이 따가울 때가 없다는 말일까요? 이 변호사는 이미 십수년이나 변호사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충돌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요? 편하겠네요. 오랫동안 뛰어난 형사 전문 변호사로 활약해 왔다는 사람이 책에서 할 이야기가 이것뿐인가, 하는 실망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가볍고 선정적인 사건집처럼 보일 뿐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잘난 변호사인가 하는 자랑담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문체는 짧고 간결해서 얼핏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치 소설처럼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외모나 감정 묘사가 아주 구구해요. 그래서 신뢰감이 약간 저하되지요. 변호사라면 '진실' 이라는 걸 알아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텐데도, 부담없이 소설처럼 당시 관련자들의 심리 상태를 전지적으로 묘사해 놨습니다. 만약 피해자가 이미 사망하고 없다면 이 변호사가 그 때 당시 피해자의 심리를 어떻게 짐작했겠어요? 당연히 자기 의뢰인인 가해자의 입을 통해서가 아닙니까? (물론 객관적인 정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진술도 참고를 하기는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양 당사자 중 한쪽의 진술이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게 '진실' 이라고 확신하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묘사할 수가 있지요? 이런 태도는 법조인인 저자가 논픽션에서 취할 만한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건질 만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변호사는 수사관이 지어 놓은 증거라는 가건물에서 될 수 있는 한 틈새를 찾아내려 노력한다. 우연은 변호사의 친구이다. 성급하게 그럴싸한 겉보기를 진리라고 고집하는 것을 막는 게 변호사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어떤 경관은 대법원 판사에게, 변호사는 정의라는 이름의 자동차에 장착된 브레이크처럼 자꾸 제동만 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때 법관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가 얼마나 위험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형사 재판은 이런 힘겨루기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이 부분은 좋더군요. 이런 논의를 좀 더 발전시켜서 책에 써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변호사가 어떻게 정의의 '장애물' 이 아니라 정의의 '브레이크' 로 순기능을 할 수 있는가, 그에 어울리는 사건을 좀 더 통찰력 있게 제시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

 "변호사가 증인 심문을 할 때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다.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게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은 아니며, 의뢰인의 운명을 가지고 게임을 벌여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은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법정과 실제 법정의 결정적 차이를 정확히 짚어낸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대륙법계인 독일(이 책 저자는 독일 변호사지요)이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헐리우드의 나라이자 쇼비즈의 나라인 미국 법정에서조차도 영화처럼 극적인 증언이나 증거가 공판 도중에야 비로소 갑자기 튀어나와 사건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일은 없다고 하더군요. 공판 전에 길고 지루하고 꼼꼼한 사전 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하거니와, 공판 도중의 갑작스러운 국면 전환은 판사도, 검사도, 변호인도, 피고인도, 배심원도,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고요. 진짜 재판은 그렇게 즉흥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해결할 일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번역 면에서는, 전체적으로 문장이 심하게 어색한 부분은 없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은 듯한 오류가 종종 발견됩니다. 본문 중에 사건 해결 확률이 95%이니 범인이 일곱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잡히지 않는 셈이라는 문장이 있어요(5퍼센트가 잡히지 않았다면 열일곱 명 중 한 명 꼴이겠지). 6을 세 번 곱한 게 18이라는 말도 있고(세 번 더한 거겠지!). 그리고 용어도 좀 삐걱거립니다. 형사 사건에서는 피고라는 말이 없어요. 원고 피고는 민사 용어이고 형사 사건이라면 '피고인' 이지요. 그리고 정확한 용어는 정당방어, 과잉방어가 아니라 정당방위, 과잉방위입니다. 아무리 전문성이 그리 도드라지지 않는 책이라지만 법률용어는 감수를 받는 게 좋지 않았을까. 독일 지역명이나 풍습에 대해 열심히 각주를 달아 놓은 것에 비해 그런 부분에서의 세심함이 떨어지더군요.

 리뷰를 쓰느라 책 정보를 찾다 보니 2권도 있는 모양인데, 심심할 때 재미있게 읽을 만은 하겠지만 1권을 읽을 때 가졌던 기대감은 완전히 버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냥 가볍고 흥미로운 사건 이야기 모음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편이 낫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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