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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연재] 성수의가 174 | 연재 소설방 2014-06-0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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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이 잡낭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두 개의 청록색 뿔과 붉은 눈 뿐이었다. 적실영과를 입속에서 굴리며 나른하게 퍼져 있던 설아가 귀찮다는 듯이 두 눈만 빼곰히 잡낭 밖으로 내밀어 보였던 것이다. 설아의 그런 모습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지어 보인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들어가서 보령환 하나만 꺼내 줘"

그러자 마지못해 모습을 드러냈던 청록색 뿔 마저 다시금 잡낭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는 듯 잡낭 속이 잠시 부산스러워졌다. 한편 초혜의 부상을 염려하여 전투가 끝난 후 가장 먼저 초혜를 살피러 온 설지와 달리 진소청은 천마신교 흑룡대의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설지가 있으니 초혜에 대한 걱정은 접어 두고 의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부상자들을 일일이 살펴 가며 간단한 처치 까지 해나가던 진소청이 한순간 멈칫했다. 괴수들과의 전투에서 천만다행히도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제법 엄중한 부상을 입은 이는 여럿 되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가 지금 진소청의 눈 앞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흑룡대의 대주인 추자의였다.

기식이 엄엄한 추대주를 발견한 진소청은 서둘러 부상 정도를 살펴 보았다. 우선 가지런하게 눕힌 후 세심한 손길로 여기저기를 살펴 보던 진소청은 침통에서 침 몇개를 꺼내 주요 대혈에 시침을 했다. 그러자 거의 의식이 없던 추대주가 억눌린 기침과 함께 검붉은 선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진소청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추대주의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기도가 막히지 않게 조치한 후 답답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면밀히 살펴볼 것도 없이 가장 심각한 부상 부위가 한눈에 들어 왔던 것이다. 가슴 쪽이었다. 대부분의 갈비뼈가 부러져 버렸는지 거의 함몰된 모습으로 내려앉아 있었으며 거기에 더해 각혈을 하고 호흡이 곤란한 것으로 보아 장기 까지 손상된 듯 보였다. 이에 진소청이 혁련필 쪽으로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설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초혜를 살펴 보면서도 진소청의 그런 기척을 알아차린 설지가 때를 맞춰서 질문을 했다.

"청청 언니! 거긴 어때?"
"예. 아가씨. 부상자가 많긴 하지만 사망자는 없습니다. 헌데 대주 아저씨의 상태가..."
"응? 대주 아저씨가? 어떤데?"

"아가씨가 직접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가슴이 함몰 되어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입니다"
"그래? 그럼 이리로 모셔"
"예. 아가씨"

대답한 진소청이 자리에서 일어나 설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별다른 동작도 없이 걸음을 옮기는 것 같은 진소청을 따라 의식이 혼미한 추대주의 몸이 둥실 떠오르는가 싶더니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하는 덧이 아닌가. 절정에 달한 허공섭물이었다. 하긴 가슴 부위가 내려 앉아 목숨이 위태로운 부상자을 옮기는 방법으로 허공섭물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신들의 대주가 걱정이 되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던 흑룡대원들은 하나 같이 경악한 표정을 얼굴에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들도 가끔가다가 허공섭물을 시전하는 무인들과 마주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런 무인들도 기껏해야 작은 찻잔 하나 정도를 옮기거나 경지가 깊은 무인인 경우에는 검이나 도 같은 자신들의 무기 정도를 허공섭물로 움직이는 것이 전부였었다.

그렇기에 사람을 그것도 어린 아이가 아닌 부상당한 자신들의 대주를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진소청을 보며 경악을 넘은 경이로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아가씨!"
"응! 여기 초혜 옆에 모셔"
"예"

진소청에 의해서 조그마한 미동도 없이 허공섭물로 옮겨져 초혜 옆에 누인 추대주를 잠시 살펴 본 설지가 심각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흑룡대원들과 혁련필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신녀! 어떻소이까? 목숨은 건지겠소이까?"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혁련필의 질문을 들은 설지가 이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심각한 표정을 풀었다.

"어머! 죄송해요. 교주 할아버지"
"허허, 아니외다. 그보단 추대주는 어떻소이까?"
"며칠 꼼작 않고 정양을 해야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설지를 보며 잠시 멍해지는 혁련필이었다. 언뚯 보기에도 추자의의 상태는 생사를 가늠할 수 없어 보였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지금의 추자의는 설사 화타나 편작이 되살아나 황급히 달려온다 하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며칠간 정양을 하면 된다고 너무도 쉽게 장담하는 설지의 말이 쉬이 믿기질 않았던 것이다.

"그,그게 무슨 말이오? 언뜻 보아도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거늘"
"호호, 걱정 마세요. 대주 아저씨를 봐야 해서 질문은 이만 받을게요."
"그,그러시구려. 흠, 흠"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자신의 반응이 과했음을 뒤늦게 깨달은 혁련필이 어색한 헛기침으로 마무리하며 입을 닫았다.

"설아! 보령환은?"

잡낭 속에서 보령환 한알을 꺼내 양쪽 뿔 사이에 얹고 있던 설아의 머리가 그제서야 잡낭 밖으로 빠져 나왔다.

"고마워, 설아! 한알만 더 꺼내 줄테야?"

다시금 잡낭 속으로 쏙 사라져 버린 설아가 잡낭 안을 뒤적여 보령환을 꺼낸 후 캬악 하는 소리와 함께 위로 던져 올렸다. 그러자 설아의 손을 떠난 보령환은 곧바로 잡낭 밖으로 빠져 나왔으며 어렵지 않게 설지의 손에 안착되었다.

"청청 언니! 이거 초혜에게 먹인 후 나머지 부상자들을 살펴봐 줘"
"예, 아가씨"

진소청이 혼절한 초혜에게 보령환을 먹이고 자리를 떠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추자의도 설지가 입속에 넣어준 보령환을 삼키고 있었다. 추대주가 보령환을 무사히 삼키는 모습을 잠시동안 지켜 보며 약력이 돌기를 기다리던 설지가 잠시 후 함몰된 추대주의 가슴으로 섬섬옥수 고운 손을 가져 갔다.

다음 순간 대부분의 갈비뼈가 완전히 으스러져 일견 복구가 불가능하게 보이는 추대주의 가슴에서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 아니 기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부서진 갈비뼈가 하나씩 원래의 모습을 찾으면서 함몰된 부위가 점차 제모습을 찾아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꽤나 오래 걸렸다. 더구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심력의 소모도 많은지 설지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어느 사이엔가 현진 도사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꼭 잡은 채 설지를 바라보고 서있던 사도연이 조심스럽게 나직히 입을 열었다.

"현진 오라버니, 설지 언니 이마에서 땀이 나"
"그러게"
"지금 가서 땀 닦아 주면 안되는거지?"

"응! 집중력에 방해가 될테니 안그러는게 좋을 것 같아"
"그치만 땀이 눈에 들어가면 따가울텐테..."
"녀석, 괜찮을거야, 설지 누님이 누구냐? 성수신녀 아니냐? 그러니 걱정하지마"
"그럴까?"

거의 반시진이나 지나서 으스러진 갈비뼈를 모두 맞추는데 성공한 설지가 안도의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자 하얀 무명천을 들고 이제나 저네나 기다리고 있던 사도연이 쪼르르 달려와 설지의 이마에 맺힌 땀을 꾹꾹 눌러 닦아내기 시작했다.

"호호, 고마워, 연아"
"응, 응, 이제 다 된거야?"
"아니. 아직, 그러니 무명천은 이리 주고 물러나 있으렴"
"응! 알았어, 여기"

무명천을 건네 받아 이마의 땀을 훔쳐낸 설지가 다시 추대주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복구된 가슴 쪽을 유심히 살펴 보기 시작했다. 살펴 보기를 끝낸 설지가 이번에는 침통에서 침을 꺼낸 후 추대주의 상반신에 시침을 하기 시작했다. 스무개가 넘는 장,단침을 추대주의 상반신 여기저기에 시침한 설지가 이내 자신이 시침한 것을 만족스럽다는 듯 바라 보며 고개를 끄덕엿다. 연후 혁련필을 향해 고개를 돌린 설지가 입을 열었다.

"이제 외상은 거의 다 잡은 것 같아요. 문제는 파손된 장기와 내상의 치료인데 그러자면 제가 대주 아저씨의 기운을 살펴봐야 해요. 괜찮으시겠어요?"
"그 말은...?"
"예. 제 말은 그러니까... 대주 아저씨가 익힌 내공 심법의 흐름이 고스란히 제게 알려진다는거예요"

설지의 말을 들은 혁련필이 흠칫했다. 설지의 말을 종합해보면 천마신교의 무공 중 하나가 고스란히 성수의가로 누출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잠시 고심하던 혁련필은 자신의 생각이 소림과 무당으로 까지 이어지자 이내 기우라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지워 버렸다. 소림과 무당이 가진 대부분의 무공이 이미 설지에게 개방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들 천마신교의 입장에서 보면 늘 편협한 모습으로만 비춰지던 정파의 양대 기둥인 소림과 무당이 스스럼없이 자신들의 무공을 개방했는데 천마신교에서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시오, 단, 성수의가 밖으로는 신교의 무공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오"
"그건 걱정마세요. 제가 약속드릴게요."

그때였다. 혼절해 있던 초혜의 입에서 끙하는 신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어머! 이제 정신이 드나 보네"

설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음과 함께 감았던 눈을 스르르 뜬 초혜가 깜짝 놀라면서 튕기듯 상반신을 일으켰다.

"앗! 어,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망둥이 처럼 날뛰다가 혼절한거지"
"그,그랬어, 헤헤"

"헤헤는 무슨, 잔말말고 깼으면 서둘러 운기나 해. 보령환을 한알 먹었으니까"
"보령환을? 별로 큰 도움이 안될텐데?"
"그래도 해, 아깝잖아"
"응, 아,알았어'

초혜의 말 그대로였다. 어려서 부터 공청석유와 함께 좋다는 영약들을 주워 먹은 초혜에게 보령환은 내공 증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푼 정도 내력이 늘어난다면 다행이라고 여길 정도로... 허나 일시에 전내력을 방출한 무력감에 잠시 혼절했었던 초혜의 기력 회복에 보령환이 도움이 되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성수보령환 한알에 목숨 마저 걸수 있다는 강호의 무인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다들 입에 거품을 물거나 혹은 배가 아파서 서둘러 우화등선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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