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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알베르트 슈페어 저/김기영 역
마티 | 201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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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서술한 나치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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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대전과 나치 독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한번 정도는 이름을 들어봤을 알베르트 슈페어. 슈페어는 독일의 군수장관이자 히틀러의 예술욕을 채워준 건축가로 유명하다. 이 책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20년 형을 선고 받은 슈페어가 출소 직후인 1966년 발표한 회고록으로, 원제는  'Erinnerungen (기억)'이다. 밀덕으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한지가 인생의 반을 넘겼는데, 지금껏 읽은 회고록 중 가장 알찬 내용이지 않았나 싶다. 나치당이 정권을 잡은 이래 히틀러와 가장 가까운 사이이자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했던 이의 회고록이기 때문. 괴링, 괴벨스, 힘러를 비롯한 나치당의 수뇌부들은 모두 자살하거나 형장의 이슬이 되어 의미있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에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더불어 슈페어 개인의 삶 역시 무척이나 흥미로운 편. 그저 무명 건축가였던 한 젊은이가 끝내는 독일국의 장관 위치에 올랐으니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이라 하겠다.

이 전쟁의 기이한 점 가운데 하나로, 히틀러가 영국의 처칠이나 미국의 루스벨트보다 자국민에게 요구한 바가 훨씬 적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에서조차 모든 노동력의 총동원령이 내려진 반면, 독재국가였던 독일에서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은 민심이 흩뜨려질까 두려워하는 독재 정권의 불안을 잘 드러내준다. 독일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희생하거나 혹은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할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적당히 타협해 국민의 사기를 최고 상태로 유지하기만을 원했다. 히틀러와 그의 정치적 동지들은 군인으로서 1918년 11월 혁명을 목격했고,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대에 속한다. 히틀러는 사적인 대화에서 1918년 혁명을 경험한 이후 모든 일에 너무도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불만을 차단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돈이 소비를 위해 지출되었다. 처칠은 국민들에게 오로지 피와 땀과 눈물을 약속했던 반면, 히틀러는 전쟁이 다양한 국면을 맞거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최후의 승리는 우리 것"이라고 외쳐댔다. 정권의 취약점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이하 기억)'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은 단락은 이 부분이었다. 막연히 서슬 퍼런 나치 정권이 독일 국민들을 옭아맸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민주주의 체제와의 태생적 차이로 인해 전국민적 동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니 상당히 의외의 모습. 오히려 그들의 숙적인 소련과도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스탈린이 대조국 전쟁이란 미명하에 사관생도부터 여학생까지 가리지 않고 전선으로 내몰고, 노동자들을 우랄 산맥 너머로 강제 이주시킨 것을 상기해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군수장관으로 임명된 나는 시작부터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오류와 실책을 거듭 발견했다. 모순이지만 히틀러 자신도 전쟁 기간 중에 이런 말을 반복했다. "이번 전쟁에서 지는 쪽은 가장 큰 오류를 범한 쪽일 것이다." 히틀러의 연속된 오판이 생산 능력을 떨어뜨렸고, 지고 있던 전쟁의 종말을 앞당겼다. 예를 들어 그는 영국 공습작전 때도 혼란스러운 판단을 했다. 전쟁 시작부터 U-보트는 부족했다. 전체적으로 전쟁 전반에 대한 기획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숱한 독일의 기록들이 히틀러의 결정적인 실수를 언급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요소들이 아니었더라면 독일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하인츠 구데리안이나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회고록에서도 지적하듯이 히틀러가 가진 전략적 식견의 부재 역시 기억에서 강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가지 놀라운 점이라면 슈페어가 히틀러를 만난 직후부터 독일이 독소 전쟁에서 패전을 향해 기울기 전까지 히틀러는 종종 전문가들도 생각치 못하는 날카로운 혜안을 보여주는 장면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슈페어가 서술한 바에 따르면 히틀러는 '복잡한 문제의 핵심을 매우 기민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있으나 너무 쉽게 핵심에 접근한 나머지 과정의 중요성을 생각치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고 하니 그의 예술가적 기질이 발휘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전황이 점차 좋지 않게 흘러가고 전쟁이 길어짐에 따라 나치당의 수뇌부들이 보이는 반응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특히 괴링이 그러한데, 인용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괴링 역시 1942년 말 즈음에는 지친 기색이 뚜렷했다. 그를 위해 특별이 지어진 본부에는 히틀러의 벙커에서 사용되는 딱딱한 가구 대신 푹신한 의자가 놓여있었다. 괴링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 독일이 1933년도의 국경을 유지할 수만 있어도 춤을 추겠네." 그는 재빨리 진부하고 긍정적인 말을 덧붙여 방금 한 발언을 번복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발뺌에도 불구하고, 괴링은 패배가 가까워졌음을 직감하는 듯 보였다.

여기서 포인트는 '패배주의적' 발언을 성급히 내뱉고는 자신의 말을 주워담으려 애써 노력하는 괴링의 모습이 상당히 웃기다는 점. 여러 기록을 통해서 접한 괴링의 인격으로 능히 짐작 가능한 모습이라 어쩜 이리도 기대에 부합하는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패전을 앞두고 점차 히스테리컬해지는 히틀러와 조금이라도 전쟁의 무게 추를 승리쪽으로 기울이려 동분서주하는 슈페어의 모습은 흡사 고전 비극의 주인공을 보는듯한 기분마저 든다. 분연히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부여받은 운명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의 주인공. 허나 히틀러를 비롯한 지도층의 죄는 결국 독일 국민들의 피로써 씻게 되었으니 실로 아이러니한 일일 수 밖에.

명령 이행에 대해 정치인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자신이 정권의 지도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데서 발생하는 집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국가의 통치자를 둘러싼 측근 인사들이 아니라면, 누가 이 일련의 사태를 책임져야 합니까? 그러나 집단적인 책임은 세부적인 사항이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에만 적용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독재 체제라 하더라도 지도자들의 집단 책임은 존재합니다. 참사가 일어난 마당에 그 누구도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정권의 지도부는 분명 집단 책임을 열렬히 옹호하고 나섰을 것입니다. 정권의 수장이 독일 국민과 세계 시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해버린 이상 저에게 그 의무가 있습니다.

'기억'이 갖는 가장 큰 허점은, 대부분의 회고록이 그러하듯 교묘한 자기 변명과 윤색이 가득하다는 점. 물론 그들이 실제로도 그러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슈페어와 한번이라도 대립한 적이 있었던 나치당의 수뇌부들은 천하의 비열한으로 묘사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하인리히 힘러와 마르틴 보어만인데 이들이 '기억' 전체에서 좋게 묘사되는 장면을 한점이라도 찾을 수 없다. 또한 슈페어 자신은 독일의 전쟁범죄에 대해 막연히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결코 그 실체에 대해 모르는 채로 나치 독일에 봉사했다고 서술되어있는데, 과연 그것이 진실일지는 오직 그만이 알 일. 군수장관이자 히틀러의 친구로 산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엔 신빙성이 낮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전 동안의 독일 수뇌부에 대해서 이렇게 생생히 조명했던 책은 없으니 흥미가 있는 이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본인 역시 앞으로도 두고두고 읽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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