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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쓰려고 읽습니다

이정훈 저
책과강연 | 2023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쓰기와 읽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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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짓는 글들이 통 입에 맞지 않는다. 맛은 없어도 그럭저럭 씹어 삼킬 만은 했던 글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을 때마다 돌 섞인 밥알처럼 서걱거려 도로 뱉어내고 싶은 심정이다. 불과 두 달 사이에 일어난 변화다.

지난 연말, 유난히 분주하긴 했다. 안 그래도 바쁜 학기말에 예정에 없던 업무 일정이 추가되었고 거기에 첫 번째 책 출간 작업이 겹쳐지면서 쓸 시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일과 가정, 거기에 쓰기까지 끌어안고 싶은 욕심에 한 톨의 시간까지 쓸어모으며 살았지만, 잔정 없는 시간은 하나쯤은 포기하라고 얄미운 으름장을 놨다. 게다가 마흔둘 끝자락에 간당간당 걸친 몸뚱이까지 보태어 아직 혈기 왕성한 마음을 조롱이라도 하듯 삐걱거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간신히 새벽 책상에 끌어다 놓으면 더없이 선명해야 할 머릿속이 안개처럼 뿌옇기 일쑤였고, 어쩌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밀리고 밀려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그 귀한 새벽 두 시간을 써버렸다. 한정된 시간과 체력 안에서 내가 질끈 눈을 감고 제쳐야 할 것은 '쓰기'라는 게 자명해 보였다. 분통이 터지고 불안이 흘러넘쳤다.

쓰기를 멈춘다는 것은 찝찝한 불안이었다. 세탁기 속 다 돌아간 빨랫감을 깜빡하고 외출한 뒤의 느낌이라든지, 혹은 식사 후 타이밍을 한참 놓친 양치질 같은 그런 불쾌함이었다. '내일은 꼭 써야지' 고작 몇 번 밀어냈을 뿐인데 그것이 시간에 파도에 밀리고 부서져 자갈처럼 쌓인 모양이었다. 그게 지금의 먹기 힘든 서걱거리는 글을 짓게 한 것일지도.

감(感)이라는 것, 얄궂게도 엉덩이 한번 참 가볍다.


그렇게 서걱거리는 일상을 보내던 중 책과강연 이정훈 대표의 신간, <쓰려고 읽습니다>가 출간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내 생의 첫 책(다시 앉은 작은 의자)의 시작부터 완성까지의 모든 가닥을 함께 세어주신, 내 쓰기 인생의 첫 스승인 분이다. 평소 이분이 가지신 읽기와 쓰기에 대한 남다른 지론을 잘 알고 있었기에 책의 내용을 얼추 짐작할 수는 있었지만, 못마땅한 쓰기가 이어지던 그 시기에 때맞춰 내 손에 와준 '쓰려고 읽는다는'스승의 책이 반갑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껏 써지지 않으니 냉큼 펼쳐 읽어야 했다.

 

삶의 결을 같이 하고픈 스승의 책을 평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처음부터 작정하고 연필을 눕혀 쓰겠다는 치우친 의지일지도 모르나, 날 때부터 편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인 것. 눕혀 쓴 글을 받아들이는 몫 또한 개인 각자의 상황과 의지에 달렸기에 나는 현재 나의 시선과 태도에 맞추어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대해 하고픈 말을 모두 적자니 수십 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해야 할 듯하여 애써 마음을 누르고, 나로서 가장 격하게 공감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꽤 많은 독자들의 의아함을 살만한 부분 한곳에 대해 주력 언급하려 한다.


우선 책의 큰 흐름을 훑어볼 요량으로 목차를 짚어보는데, 책 한 권 써 본 것도 이력이라고 목차의 구성부터 쉬이 지나쳐지지 않는다. 무려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 속 내용이 양쪽으로 펼쳐진 두 페이지, 고작 그 손바닥만 한 작은 공간 위에 달랑 몇 개의 문장만으로 시원하게 일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독만 하면 뭐 합니까?

책을 그렇게 읽으니 발전이 없죠.

자, 1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변화 성장의 알고리즘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쓰기로 풀지 못하는 문제는 없습니다.(사실, 읽기보다 쓰기가 먼저여야 합니다.)

그 쓰기를 잘 하려면 이렇게 읽어야 해요.

궁금한 게 있으실 것 같아 적었습니다.

- 목차로 한 권 쓰기의 정수('쓰려고 읽습니다.'의 목차 발췌)

백 번 읽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 목차만으로도 책의 전체 내용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쯤은 수많은 책에서 익히 들어온 것이었지만, '아 목차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뼛속까지 와닿는 이해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목차의 문장을 그대로 이어 적기만 해도 하나의 글이 된다니. 내 두 번째 책의 목차도 이렇게 흉내라도 내보자 싶은 생각이 든다.


켜켜이 쌓인 삶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쓰기'가 필요하고

밖으로 표면화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읽기'가 필요합니다.

- p.9 프롤로그 중

고작 공문서 몇 줄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게 최선의 쓰기였던 삶으로부터 이제는 온전히 쓰는 삶으로 들어서겠다 마음먹은 사람으로서 이 부분을 절절히 공감했다. 왜 쓰느냐 묻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 고작 글자 몇 개 끄적대는 행위로 어떻게 현실의 문제가 발견되느냐 반론하는 사람도 여전히 적지 않다. 이해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쓰기는커녕 이런 질문이 파고들 틈조차 없는 납작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쓰기는 멈추어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가고 있는 중인 일상을 붙들고 가닥가닥 훑어내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것은 지금 내 앞에 당면한 현실을 있게 한, 저 깊은 수면 아래 감추어져 있던 그때 그 사건들을 서서히 떠오르게 만드는 일이다.

재작년 3월부터 시작한 백일 글쓰기. 나는 매일 그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울고 웃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작스레 마주했던, 나조차도 돌보지 않고 팽겨쳐두었던 나를 마주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마흔한 해가 넘도록 해결되지 않았던 인생의 자물쇠를 열었다.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그 문을 연 순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책상에 엎드려 꺽꺽 쏟아냈던 눈물과 희열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우주의 존재를 모르는 이에게 정오의 흰 하늘을 가리키며 저것은 허구요 실체는 저 너머 어둠이라고 한들 그는 믿지 못한다. 별을 보기 위해 밤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야 하듯, 쓰기의 힘을 알고 싶다면 직접 흰 공백의 두려움을 마주해봐야 할 것이다.

쓰기가 희미하게 가려진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일이라면 저자에게 읽기는 또 어떤 의미일까? 그에 의하면 읽기는 도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갑자기 훅하고 반감이 드는가? 그렇다면 더더욱 책의 마지막 장까지 포기하지 않고 저자와 분투하길 바란다.

한때 나도 양적인 독서론에 심취해 소화하기도 버거운 책들에 덤벼든 적이 있었다. 방대한 양의 인문학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믿기 힘든 천재성이 발현된다는 말을 덥석 물고는(지금 와 생각하면 그게 주술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동이 트도록 붙박이처럼 한자리에 앉아 책을 읽은 적도 있었다. 그 위대한 책들을 읽었던 시간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당시 내가 탐욕했던 껍데기가 수치스러웠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면서 잘 먹었다며 배를 두드린 위선이 부끄러웠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어떻게든 지금보다 한걸음 나아지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내 삶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우리는 전략적인 독서를 할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흘러넘치는 게 시간이라면 양적인 독서에 열광할 필요도 없지 않겠는가? 한 트럭의 양서를 흡수한다 한들, 그것이 당장의 내 삶에 불필요한 지식이라면 무의미하다. 쓰기를 통해 문제를 구체화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거쳐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찾아 읽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이다.

첫 책을 쓰고 나서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아무리 많은 걸 깨달았다고 해도 단지 쓰고 읽었을 뿐인데, 과거에 그토록 고통스럽던 일이 단숨에 행복한 일로 바뀌는 게 가능한 것이냐 묻는 것들이었다. 단언할 수 있다. 그렇다.

물론 쓰기와 읽기가 내 삶의 문제를 깔끔히 도려내 준 것은 아니다. 나는 쓰기를 통해 고통의 시간을 하나하나 더듬었고 그 과정에서 미쳐 내가 보지 못한 숨겨진 작은 행복들을 보았다. 그리고 읽기를 통해 내가 느낀 행복들을 재차 확인했을 뿐이었다. 즉 쓰기와 읽기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한 문제가 사실은 문제가 아니었음을, 아이들의 환한 웃음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사사로운 감정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준 셈이었다.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과거 내가 느낀 불편, 불만족들은 여전히 내 세상에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들은 더 이상 나를 어쩌지 못한다. 쓰기와 읽기를 통해 나는 쉽게 넘어지지 않는 힘을 길렀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양팔을 연달아 쓸었다 내렸다. 책의 저자가 계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목적 있는 쓰기와 읽기의 효과. 그것을 다름 아닌 내가 직접 체험한 셈이 아닌가. 이 책의 살아있는 증거가 나라는 것을 피부가 먼저 알아차렸다. 쉼 없이 소름이 돋았다.

 

'이거였구나.'

한동안 서걱거리고 불편했던 내 글의 원인이 바로 목적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한동안 쓰지 않은 데서 오는 감의 부재도 이유였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니 긴 글을 쓰는 게 엄두도 나지 않았고, 애꿎은 시간 탓만 하며 슬그머니 발을 뺀 게 아니었을까. 새벽마다 영감을 얻어 수집하고 고친 문장들은 때때로 작은 위안이 되었을 뿐 그것이 긴 글 한편을 적어내는 힘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었다. 방향 잃은 쓰기가 이런 것이구나.

스승의 책을 읽으며 내 다음 책의 방향을 자연스레 그려본다. 이제부터 진짜 쓰기를 시작해야겠다.

간절한 목적으로 간절하게 쓰고 읽어야겠다. 다시 한번 일보 전진을 꿈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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