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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래디컬 헬프

힐러리 코텀 저/박경현,이태인 공역
착한책가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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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과 한파가 마을을 휩쓸었다. 주간보호센터가 사흘 연속 문을 열지 못했다. 도로가 얼어붙고 마을이 고립되었다. 하얀 눈에 뒤덮여 시간이 정지한 듯한 마을은 '잔혹동화' 같다.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반짝이지만 외롭다. 시골의 홀몸 어르신들에게 폭설, 한파, 폭염, 태풍과 같은 날씨는 그 자체로 위협이다.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어르신들 댁에 전화를 돌려 안부를 확인했다.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 혼자 계시는 어르신 댁을 방문했다. 

 

"선상님들이 오니께 나가 살어... 으이구, 어서 죽어야 하는디... 혼자서는 암 것도 못하는디 살면 뭣한당가..."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어르신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밤 사이 피해는 없었는지 집안을 살폈다. 다행히 보일러는 괜찮은데 수도가 얼어붙어 물이 나오지 않는다. 마실 수 있는 생수를 준비하고 따뜻한 식사와 매일 드시는 약을 챙겨드렸다. 집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밤에는 다시 폭설이 예보되어 있다. 

 

마을이 사라졌다 

 

주간보호센터에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자립생활 불능으로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은 매우 곤란해진다. 도움을 청하거나 도움을 받기 힘든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추억 속 시골 동네 풍경은 옆집 숟가락 갯수가 몇 개인지 알 정도로 가깝고도 친밀했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고 빈집은 늘어나고 농촌 시골은 점점 더 '과소화'되고 있다. 

 

'과밀화'의 반대말인 '과소화'는 인간이 기본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기반시설과 사회적 인프라가 붕괴 지경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면 소재지에서도 떨어진 외곽 마을인데, 반경 3km 안에 병원, 약국, 슈퍼마켓, 학교 등이 한 개도 없다.

 

하루 네 번 정도 다니는 버스를 이용해서는 일상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기 어려우므로 자가용은 필수품이 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놓인 이들이 농촌의 노인들이다. 과소화는 사람들간의 연결을 끊어놓는다. 고립과 단절, 관계망의 해체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악화와 삶의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도시라고 다를까? 사람과 자원이 집중된 도시는 '과밀화'의 역습을 당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감염병의 손쉬운 공격 대상이 되었다. 쪽방촌의 비극, 생계 비관 자살, 고독사 등이 보여주듯이, 도시의 사람들은 모여 있으나 연결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축적이 쌓아 올린 거대한 도시 문명의 디스토피아 안에서 각자 외로운 섬으로 존재한다. 

 

각기 다른 양상이지만 도시와 농촌 모두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공동체의 붕괴는 취약계층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친다. 노동시장의 주변에 존재하거나 복지를 '구매'할 수조차 없는 이들은 더 많은 사회적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복지'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다시 희망을 꿈꾸며 스스로 살아나갈 힘을 줄 수 있을까? 

 

연결의 회복, 새로운 복지의 가능성
 
영국의 사회학자 힐러리 코텀은 책 <래디컬 헬프>에서 돌봄과 복지 제도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대의 복지제도는 20세기 세계대전 이후에 고안된 것으로 21세기에 다양하게 맞딱드린 사회적 문제와 위험 앞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저자가 보기에 전후 사회의 디딤돌이자 실질적인 지지 체계였던 20세기 복지시스템은 거대한 '관리 당국'으로 변모했다. 시스템은 필요와 위기 수준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복지 대상자들을 관리할 뿐이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복지 급여와 서비스 체계도 복잡해진다. 한국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서비스의 종류는 360여 가지가 넘는다. 행정부처별로 나뉘어져 서로 통합되지 않는 데다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도 그 내용을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방대하다.

 

큰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과 수고에 비해 안전망은 여전히 허술하다. 삶의 벼랑 끝에서 그 어떠한 사회적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비참하게 죽어간 이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질 때마다, 복지 시스템을 손본다며 호들갑을 떨지만 그다지 바뀌는 것은 없다. 

 

저자는 질문을 바꿀 것을 제안한다. '기존 서비스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의 곁에 서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로 바꾸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부딪친 문제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근본에서부터 탐색해야 한다.

 

복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키워드는 '연결'이다. 개인, 가족, 지역 사회가 배우고 일하고 건강하게 서로 맞닿으며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한 지원이 실질적으로 가능한 새로운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새로운 복지는 사람들의 의존성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삶의 어느 시점에서는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럭저럭 잘살고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방향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양쪽으로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를 관리만 하기보다는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사람 사이의 만남과 관계를 엮어갈 수 있도록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40쪽)

 

영국에서 '파티서플'이라는 단체를 만든 저자는 2006년부터 5개의 사회 실험을 디자인하면서 새로운 복지의 가능성을 연구해왔다. 폭력과 약물중독으로 위기에 놓인 가정, 일자리를 잃고 빈곤의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 병원에 의존하는 삶을 사는 노인 등과 함께 하며, 그들의 해체된 사회적 연결망을 재조직하고 스스로의 힘을 키워 자립해나가는 과정을 지원했다. '욕구를 관리하는 복지'에서 '역량을 강화하는 복지'로의 전환적 시도는 새로운 복지의 가능성을 창출했다. 

 

예컨대, 위기 가정의 자립을 지원하는 '라이프 프로그램'은 가족이 스스로 미래의 비전과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왔다. 꿈을 설계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역량을 기르는데 필요한 사람과 자원을 연결했다. 가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지원 체계를 고안해냈다.

 

이 과정은 가족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권력을 당사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복지 서비스 대상 자격을 평가하고 요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회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탐색하는 것으로부터 접근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복지 시스템의 운영 논리는 이런 식이다. 즉, 나를 평가하고, 나를 의뢰하고, 나를 관리하라. 이러한 시스템은 투입(구축 및 전문적 개입 시간)과 산출(위험 행동 감소)을 계산한다. 이 시스템에는 접근이 제한되며 소요 비용이 관리된다. 우리의 실험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했다. 우리 모두가 번성할 수 있도록 핵심 역량을 키워라. 필요하다면 우리가 역경에 처했을 때 반드시 지원을 받도록 하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포함시켜라. 자유롭다는 느낌, 목적의식,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등의 측면에서 변화와 우리 삶의 질을 측정하라. 이것이 바로 래디컬 헬프,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완전히 새로운 돌봄체제이다." (257쪽)

 

'행복한 삶'을 위한 급진적인 대안 

 

현대 복지 체계의 시작은 1942년 영국에서 발표된 '사회 보험과 관련 서비스'(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라는 보고서이다. '베버리지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문건의 슬로건이 '요람에서 무덤까지'였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사회보장은 모든 국민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표방했으며, 빈곤을 예방하기 위해 아동수당, 보편적 의료 서비스, 완전 고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래디컬 헬프>는 21세기의 달라진 정치 사회적 위기를 '베버리지 보고서'의 틀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현대의 빈곤은 돈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연결망의 해체, 관계와 공유해 온 경험의 단절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며 "관계의 결핍은 세상에 대한 이해와 지금까지 누려온 풍성한 향유와 물질적 기회들에 영향을 준다"(66쪽)고 진단한다. 
 

 

행복한 삶을 위한 역량 <래디컬 헬프>의 저자 힐러리 코텀은 행복한 삶을 위한 4가지 역량으로 일과 학습, 건강과 활력, 지역사회공동체, 관계를 제시했다. 
 

복지당국은 '급여'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복잡해지는 현대의 빈곤 문제로부터 사회적, 정서적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돕지는 못한다. 과학기술과 복지제도가 인간의 수명을 늘리기는 했으나 '좋은 삶', '행복한 삶'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복지는 행복한 삶을 창출하기 위한 역량을 키울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행복한 삶을 위한 네 가지 역량이란 ① 일과 학습 ② 건강과 활력 ③ 지역사회공동체 ④ 관계이다. 

 

관리와 통제의 복지에서 역량 중심의 복지로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연결을 회복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필요한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사람과 자원이 유연하게 연결되고 지지할 수 있는 체계를 고안해야 한다. 이는 기존의 관료적인 복지 행정 시스템의 차원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이다. 사람에 주목하고 사람을 연결하는 데 집중하려면 권한이 지역으로 더 분산 이양돼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더 이상 기계적으로 권력을 좌우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대신, 정원을 설계하고 식물을 심고 돌보고 가꾸며 필요하면 잡초도 뽑는 수석 정원사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전환은 점진적 단계들을 밟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단계들이 우리 모두와 각자가 번성하는 삶이라는 더 크고 공유된 비전에 연결됨으로써 비로소 급진적이 된다." (340쪽)

 

2026년 한국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다. 초고령 사회의 충격을 감당할 만큼 국가적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물음표'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은데 혁신은 답보 상태다.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복지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선포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통합돌봄)는 아직 어느 지역에서도 실효성 있는 모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래디컬 헬프>에서 말하는 급진적인 대안을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공동체 복지'라고 생각한다. 관료행정이 우선되는 복지가 아니라 관계가 회복되고 공동체가 살아나는 복지이다. 더 이상 서비스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명확히 분리되고, 국가와 시장이 그 자격 여부를 판별하여, 혜택을 줄 것인지 말 것인지 '급'을 매기는 복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동체 복지는 상호 의존 체계 안에서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이 열리는 복지이다. 

 

오래 사는 것보다 잘 늙는 것이 중요하다. 잘 연결되어야 잘 늙는다. 폭설에 쌓인 어르신 댁을 방문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동네였어도 이런 불안함, 위기감을 느꼈을까. 관계가 풍성하고 다양한 연결이 가능한 공간에서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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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로컬이 미래다

추창훈 저
에듀니티 |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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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교육-지역-삶의 선순환을 위해, 추창훈 교사 지음 '로컬이 미래다'


"인류는 전례없는 혁명기를 맞이했다. 우리가 아는 옛 이야기들은 다 무너지고 있는 반면에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이야기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가 한 말이다. 코로나19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문명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지금 즉시 전환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는 강력한 경고 말이다.  


낡은 것을 전복하는 사고, 변방으로의 탈주, 구패러다임의 과감한 해체 없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틀을 바꾸고 판을 엎어야 하는 것은 교육도 예외가 아니다. 산업화 대량생산체제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근대 학교 교육의 유효 기간은 끝났다. 획일화, 표준화 된 학교 교육의 문법은 새로운 시대와 더 이상 호응할 수 없는 낡은 교리일 뿐이다. 


'로컬에듀'의 진화

 

추창훈 교사가 쓴 책 <로컬이 미래다>는 전라북도 완주군(소양면, 고산면)이라는 한 농촌 마을에서 교육을 바꾼 이야기다. '로컬푸드' 운동으로 경제협력공동체를 이뤄가는 완주에서, 저자는 학교와 지역이 협력하는 새로운 완주 교육 시스템 '로컬에듀'를 창안했다. 완주형 지역교육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로컬에듀'는 아이들이 지역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전체가 학교와 교육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체계이다.


아이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수도권 진입 경쟁을 벌이지 않고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학교를 졸업하고도 지역 안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는 혁신교육의 차원을 넘어서는 지역에서의 '삶'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 한마디로 '지역 교육 문제는 지역 스스로 해결하자'는 것이 로컬에듀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책 <로컬에듀>(2017년)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로컬이 미래다>에서 교육의 패러다임을 '국가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국민을 키우는 교육'에서 '지역 시민을 키우는 교육'으로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가 차원과 지역 차원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학교(교육청)와 지자체의 역할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교사-학부모-지역주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상세히 제안하고 있다. 


책은 '지역재생'의 융복합적 관점에서 지역교육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지역사회란 경제-주거-교육-문화-의료-복지가 결합된 삶의 공간이다. 지역의 정주여건이 악화되면 사람들이 떠나가고 지방 교육의 공동화를 부른다. 지방 교육의 공동화는 다시 정주여건의 악화로 이어진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악순환을 끊어내지 않는다면 축소와 소멸의 길에 접어든 지역의 미래는 없다. 지역이 죽는다면 비정상적으로 비대화된 수도권 대도시 삶의 질도 함께 추락할 것이다.


이 책은 교육과 지역이 선순환함으로써 교육도 살리고 지역도 살리는 해법을 제시한다. 교육만 떼어놓고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재생과 발전의 관점에서 교육의 진로를 논한다. 


교육의 지역화 전략을 수행할 역량은 지역에서 자생적이고 자립적으로 생겨나야 한다. 학교와 지역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교사-학부모-지역주민은 마을교육공동체의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교육청과 지자체는 지역교육 발전의 로드맵을 공동으로 수립하고 지역의 교육 현장에서 요구하는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자원과 역량을 배분해야 한다.


'로컬에듀'는 완주라는 지역에서 이를 실현하는 과정을 담은 보고서이다. 나는 '로컬에듀'가 사례를 넘어서는 모델로, 지역적 차원이 아닌 전국적 차원의 실천으로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학교의 전환

 

학교는 아이들이 서울 등 수도권으로 떠나가게 할 목적으로 교육활동을 한다. 지역 역시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을 걱정하면서도 그런 현상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힘을 보태고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은 지역에 남아 행복하게 살아가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어렵게 되고 말았다. 학교에서 국민을 키우는 교육만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한 이 악순환을 멈출 수 없다. 만약 이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국민을 키우는 교육'에서 '지역의 시민을 키우는 교육'으로 학교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전환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83쪽)


학교 교육의 현 주소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날카롭다. 오늘날 지역교육에 '지역'은 없다. 많은 지역에서는 인재육성을 명목으로 수도권 대학에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 자원을 쏟아붓는다. 아이들이 지역의 시민으로 성장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으니 지역사회 안에서의 선순환은 기대하기 어렵다. 선순환하지 않는 지역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원인을 찾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겠으나, 학교 교육 문제가 크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이제 학교 교육을 큰 틀에서 새롭게 재구조화해야 할 때"라며 "학교에서 잘 가르치는 것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학교가 지역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에 기여하고 지역을 살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86쪽)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 모든 학교에서 '지역교육과정' 도입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미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학교와 마을의 협력을 통한 교육과정 연계를 시도하는 지역들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가능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학교와 지역이 지역교육의 목표와 방향, 내용과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해 지역교육의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이를 교육과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지역은 지원과 협력이 가능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다면 학교와 지역사회의 관계는 전환된다. 학교와 마을의 분리와 단절을 넘어 지역사회 주체들과 학교의 지속적인 협력체계가 구축될 것이다. 지역의 교육적 요구를 학교 운영에 반영하고 배움의 영역을 확장하며 학교와 지역이 함께 교육을 만들어 나간다. 이는 독점적이고 관료적인 근대 학교 교육 모델에서 탈피해 지역사회 기반의 협력적 교육네트워크로 학교의 상을 재구조화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을 전환하려면 자율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국가교육과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 지역교육과정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계획하고 교실 안으로 도입할 수 있는 권한이 학교와 교사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학교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학교 교육에서 지역성을 강화하는 것은 요원하다. 로컬 중심의 교육 혁신, 그 시작은 자치의 확대이며 그 종착지는 교육 자치 시스템의 완성이 될 것이다. 


저자는 "지역의 소속 학교 대부분이 자치역량을 갖춘다면 그 지역의 교육력은 당연히 돋보일 것"이라며 "지역사회와 학교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형식과 내용면에서 실질적인 교육자치를 이뤄내는 과정을 지역교육자치라 부를 수 있다. 이제 학교자치를 넘어 지역교육자치로 새롭게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91쪽)고 강조한다. 


풀뿌리 지역교육

 

이제 교육의 주도권이 국가에서 지역으로 이관될 때가 왔다. 지금과 같이 모든 학교에 적용되는 획일적인 국가 중심 교육에서, 지역의 다양성과 특수성이 인정되고 존중되는 지역 중심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중략)...이제 지역은 국가나 중앙정부에 기대지 않고 우리 지역의 아이는 우리 지역의 힘으로 키운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지자체이다. 교육은 주민의 삶의 질을 결정하고, 지역의 정주여건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81~82쪽)


'풀뿌리 지역교육'이란 국가에서 마을과 지역으로 교육 주체의 전환을 뜻한다. 읍면동 단위의 '마을학교공동체'가 모여 시군구 단위의 '지역교육공동체'를 형성하는 그림을 그려보자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을 지역의 건강한 시민으로 키움으로써 선순환의 교육생태계를 만들어야 지속가능할 수 있다.


특히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는 곳에서 지자체가 교육의 핵심 주체로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지역은 "더이상 소외되고, 부정적이며,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도전과 변화, 희망과 창조의 상징으로 새롭게 부각되어야"(77쪽) 한다. 


'지역교육력'은 지역사회가 학생들과 주민들의 인격 형성과 사회화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체험과 상호작용을 통해 배움을 확장하고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 강화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을 살리는 교육을 하려면 지역이 교육의 중심에 서야 한다. 지역주민들이 교육의 주체로 각성하고 지역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지역사회내 공공, 민간 기관들도 지역 교육력 강화에 협력해 나서야 한다. 


지역단위의 교육목표 수립과 이행을 위해서는 민관학의 상설적인 연계와 협력을 위한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특히 일반자치와 교육자치가 분리되어 있는 한국적 현황에서 거버넌스 구축은 읍면동 단위의 학교-마을, 시군구 단위의 교육청-지자체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학교와 마을의 분리, 학교와 지역의 분리, 교육청과 지자체의 분리 구조를 넘어 이를 연결하고 통합함으로써 학교 혁신과 지역 혁신을 융복합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 


2017년 완주에서는 완주교육지원청과 완주군청이 관내 12개 읍, 면 지역에 함께 찾아가 2천여명의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을 만났다. 이를 기반으로 양대 기관이 끈질긴 논의 끝에 혁신교육특구 협약을 만들어내고 완주교육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교육청과 지자체의 실질적인 협업이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지역 교육 현황의 분석에 기초해 지역의 교육 예산을 조정, 통합,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길은 '지역'으로 통한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했던 반세기 전 간디의 외침은 21세기에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할 '패러다임 대전환'의 선언이 되었다. 마을은 자본주의 세계화 전략에 맞선 지역화 전략의 거점이자 상호연대와 호혜 협동의 원리로 삶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터전이다.


지금 '마을'이라는 이름을 달고 벌어지는 모든 활동들은 자율, 연대, 생태, 자립, 자치와 같은 삶의 방식으로 사회를 재구성하려는 집합적인 움직임이다. 자본주의 경쟁 논리와의 싸움을 동반하는 마을의 부활은 화려한 귀환이 아닌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기 위한 쉽지 않은 여정일지 모른다.


교육도 같은 맥락이다. 입시위주 경쟁과 서열화 구조속에서 교육이 소비상품으로 전락해버린 현실은 '배움의 실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낳았다. 이제 본질을 회복해야 할 때다. 로컬 지향의 시대, 길은 '지역'으로 통한다. 고르게 존중받고 고르게 행복한 세상을 위해, 지금 당장 '지역에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어제와 다르고, 오늘보다 나은, 교육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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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당긴 방아쇠, '미래의 학교'는 어때야 할까 | 글 읽기 삶 읽기 2020-10-2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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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래교육이 시작되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저
테크빌교육(즐거운학교)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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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재확산은 올해 초 신천지 집단 감염 사태보다 더 큰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신천지 때 '대구'라는 지역적 제한성은 감염의 확산을 통제하기에 용이했다. 대구 지역 바깥으로의 감염만 효과적으로 막는다면 전국적인 대유행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수도권 발 집단 감염은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국에 산발적으로 번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체감 공포가 신천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이유다. 


대규모 감염병 유행 상황에 학교 현장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교직원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생경한 상황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원격수업 도입, 온오프라인 수업 병행, 긴급돌봄서비스 등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나름대로 선방했다. 코로나 국면에서 확인된 교실의 위기, 학교의 위기는 교육 패러다임 전환 논의의 기폭제가 되었다.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를 기반으로 한 미래 학습 환경 구축과 관련해, 사회적 관심이 증폭됐다. 


미래 교육을 위한 조건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에서 펴낸 책 <미래 교육이 시작되다>(2018)는 코로나 유행 전에 출간되긴 했으나 미래 교육의 본질과 방향을 논하는 데 풍부한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들은 '헬조선'으로 통칭되는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할 시작점도 '교육'이요, 그 마침표도 '교육'에 있다고 본다. 더 나은 삶과 행복을 위해 지금의 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과거와 같은 지식 암기 위주의 교육이 아닌 창의력, 융합력, 협동정신, 세계시민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교육의 틀 안에서 새로운 교육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서구에서 출현한 공교육 시스템은 근대의 산물이다. 국가 주도의 근대 교육은 산업시대 인력 대량 생산의 필요성으로부터 태동했으므로 관료주의와 관련성이 깊다. 21세기는 '탈근대'의 시대다. 책은 "국가적 목적을 위해 소수의 엘리트 교육이나 다수의 인적자원 양성을 하던 교육은 이제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 이제는 교육의 본질을 회복할 때이다. 교육은 개개인의 행복을 추동하는 시스템으로 견고해져야 한다"(13쪽)고 비판한다. 


학생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를 아우르는 교육공동체의 협력, 즉 교육에 관여하는 모든 주체들이 협력하는 새로운 교육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유네스코에서 제안한 '모두를 위한 교육'(EPA : Education for All) 정책과 관련이 있다. 유네스코는 '행복한 학교'를 위한 두 가지 전략으로 첫째 '시민사회가 교육 개발 전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하는 것', 둘째 '책임있는 지역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것'(14쪽)을 제안한다.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일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오늘을 거세해버리는, 삶과 동떨어진 교육은 '성찰의 힘'을 잃어버렸다. '삶과 불일치' 하는 학교 교육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마을'이 호출되었다. 2010년대 초부터 전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 운동'은 이 같은 시대 변화와 교육 혁신의 요구를 반영한 지역의 자발적인 실천이다. 


지역에 기반하고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교육은 '마을을 통해서' 가능하다. 주체적인 사고, 자립적인 문제 해결 능력, 자치적인 협력 능력을 갖추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을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 이는 배움이 확장되는 공간, 마을에서 가능하다. 학교와 지역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 


'스마트 학교'로의 전환을 위해


2016년 다보스포럼 '일자리의 미래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7세 아이들의 65%는 지금은 없는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 한다. ICT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차세대 산업혁명인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요구되는 능력은 무엇이고 필요한 교육은 어떤 것들일까? '미래 교육'이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키우는 교육이다. 


미래 사회는 지식정보와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 다양한 사회그룹에서 관계를 형성하고 협동하고 이해충돌을 제어하고 해결하는 능력, 거시적이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 등을 요구한다. 이런 역량 어디에도 문제를 잘 풀고 정답을 잘 맞추고 점수를 높게 받는 능력은 포함되지 않는다.


21세기는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학습내용, 학습방법, 학습환경(공간) 등 학교 시스템의 총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획일적이고 표준화된 학습법 대신 논리력, 사고력, 창조력, 표현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키우는 방향으로 학습과 배움의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SMART라는 단어는 최근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스마트교육'에서는 자기주도적(self-directed) 학습방법, 흥미로운(Motivated) 학습방법, 내 수준과 적성에 맞는(Adaptive) 학습방법, 풍부한 자료를 가진(Resource enriched) 학습방법,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Technology embedded) 학습방법의 합성어를 의미한다. 이 용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마트교육이 단순히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수준과 적성에 맞는 개별화교육을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0쪽)


주지하다시피 '스마트 교육'이란 스마트 기기 사용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아니다. 저자는 "과거 지엽적인 교육방법론에서 벗어나 미래형 학교로서 '스마트학교'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43쪽)고 설명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개별화 교육'과 '교과간 융합형 프로젝트 학습'을 제안한다. 


'맞춤형 개별화 교육'에서 수업은 디지털 플랫폼 기반으로 온라인 소프트웨어를 통해 학생들이 원하는 주제를 선택해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선택한 주제에 대해 프로젝트 학습을 지원한다. 학습의 전 과정은 프로그램에 기록되고 학생들은 학습 성취도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며 소통한다.


수업의 변화와 함께 학교 시스템도 변해야 한다. 현재의 분절적인 교과 시간표를 그대로 두고서는 융합형 프로젝트 학습을 진행 할 수 없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학교별 교육과정 구성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장해야 한다. 


교사는 국가교육과정을 전달하는 중개자 혹은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의 주체적인 학습을 지원하는 조력자이자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이에 관해 저자는 "교사부터 스마트해져야 한다. 교사가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교육이 SW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역량을 길러내기 위한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며 "지식을 넘어서는 융합의 가치와 의미를 학생들이 직접 체화할 수 있도록 충분한 훈련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63쪽)고 강조한다.


특히 교사의 자율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 뿐만 아니라 교사도 학교라는 공동의 장에서 배움의 상호작용을 통해 민주시민으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사고하는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사고하는 교사가 우선해야 한다. 교사의 사고를 통한 자유의지 발현은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더불어 성장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지식의 재구성을 통해 학생 사고의 성장을 바라는 것, 그리고 나아가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돕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과정의 재구성을 통해 교사 사고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으며, 이에 의한 전문성과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성장은 결국 아동과 같은 맥락에서 성숙한 민주시민 사회 구현에 이르는 길이 된다. 그리고 사회 혹은 학교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학교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교사 스스로가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다. 결국 현재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에 맞는 '유의미한 교육활동'이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195~196쪽)


미래 교육은 어디쯤 와 있나?


어쩌면 코로나19는 교육의 일대 전환을 촉진할 일종의 '트리거'(trigger)일지도 모른다. 이제 '미래 교육'의 개념을 세우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재구조화하는 문제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새로운 시대와 호응하지 못하는 교육은 외면받을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바꾸어야 하고 이를 운용할 체제와 사람도 변해야 한다. 


미래교육의 키워드는 소통력, 관계력, 협동력이다. 학교를 넘어 마을로, 마을을 넘어 지역사회로, 지역사회를 넘어 세계로 소통하고 유연하게 관계 맺으며 협력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작게는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크게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일구는 데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다. 


획일화 표준화 된 방식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근대 학교 교육의 문법은 바뀌어야 한다. 다른 방식의 새로운 배움을 상상하자. 교육이 변한다면 사회도, 미래도 바뀔 수 있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좀 더 행복한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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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인 아빠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국 교육 | 글 읽기 삶 읽기 2020-10-2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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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삶을 위한 수업

마르쿠스 베른센 저/오연호 역
오마이북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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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읽는 내내 그랬다. '그룬트비'의 후예들이 만들어가는 '덴마크 교실'은 부러움 그 자체였다.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의 삭막한 교실과는 천지 차이. 나는 덴마크와 한국의 정반대인 학교 모습에 몹시 부끄러웠다. 우리의 아이들도 덴마크처럼 행복한 학교에서 배우며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육, 절망의 한복판에서   


아무리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서도 오늘의 교육이 민주시민을 키워내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 현재의 아이들을 민주시민으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는 염치없다.


경쟁을 교리로 삼는 교육이 바뀌지 않는 이상 행복은 불가능하다. 불안하고 불행한 삶들이 늘어갈수록 사회는 점점 더 피폐해질 것이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병폐와 사회 문제들도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교육'이다.

 

책 <삶을 위한 수업>의 저자인 덴마크 저널리스트 마르쿠스 베른센은 2014년부터 한국 생활을 해왔다. 에너지 넘치고 따뜻한 분위기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덴마크와는 전혀 다른 한국의 교육시스템 만큼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알아갈수록 내 아이를 한국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줄어들었다"며 "한국의 교육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16쪽)고 했다. 


나는 세 명의 아이를 둔 학부모다. (좀 과장된 표현으로) 대한민국 교육에 세 아이를 맡기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학교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편이다.


그러나 나 역시 베른센처럼 한국의 교육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쇳말이 아니라 여전히 '문제 그 자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절망적이다. 교육이 '희망의 엔진'이 아닌 '절망의 수레바퀴'라는 것에 대한민국의 비극이 있다.


단서를 찾고 싶었다. 한국의 교육도 덴마크처럼 변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었다. <삶을 위한 수업>은 덴마크 교육에 대한 일방적인 예찬이라기보다는 한국 교육에 대한 성찰적 문제 제기에 가깝다.


수많은 절망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교육 현장에서 길을 찾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처럼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길은 분명히 있다고, 지구 반대편 작은 나라 덴마크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빨리 포기하지는 말라고. 


교실의 '행복 서클' 가능한 이유


저자가 만난 덴마크의 교사들은 뚜렷한 교육적 소신을 갖고 아이들과 함께 자율적인 배움의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참여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덴마크의 교실에서 배움의 주체는 철저히 학생 자신이다. 

 

"만약 학생들이 '우리 교실의 모든 권력은 선생님에게만 있어'라고 느낀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참여가 어떤 의미인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학생들이 어떤 의견을 말해도 항상 교사가 최종 결정을 한다면, 학생들은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신이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이런 경험은 뭔가를 하고자 하는 동기를 죽입니다...(중략)...이런 상황이야말로 교사인 제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거든요. 왜냐하면 이런 환경에서는 학생들이 새로운 탐험을 주저하고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도전 정신을 잃고 단지 안정만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배움이 아닙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호기심과 동기를 유지할 수 없어요."(38~39쪽, 헤닝 아프셀리우스, 고등학교 교사)


이 교사는 "학생들이 뭔가를 배우고 있음을 느낄 때, 그래서 그들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느낄 때 행복하다"(46쪽)고 했다. 이러한 순간들이 쌓이면 교사는 행복해지고 그 기운을 받아 아이들은 더 성장하는 '행복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배움'이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학생들 스스로 지식을 획득하고 세상을 알아나가며 성장하는 과정이 곧 '배움'이다. '배운다'는 것을 이렇게 규정한다면 '시험'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다. 학생마다 배움의 과정과 성장의 속도가 다를 것이기에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많은 헌신적인 교사들도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선생님들도 덴마크 교사들처럼 '배움의 본질'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교사들은 많이 억눌려 있다. 교사의 자율성보다는 학교-교육청 조직의 위계가 더 중요시되는 문화다. 경쟁에 순응하고 권위에 복종하는 한국의 학교 문화에서 덴마크의 교실과 같은 '행복 서클'이 작동할 수 있을까. 


한국과 달리 덴마크는 '학교법'에 따라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국가교육과정에 따라 공통교육목표는 정해져 있으나, 수업방식은 전적으로 교사의 결정이다. 수업 방식에 대한 교사의 자율성은 누구도 침해하거나 개입할 수 없다. 교장도, 학부모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다. 이러한 존중과 신뢰의 문화가 바탕을 이루고 있으므로 한국처럼 '교권 하락'이 이슈가 될 일도 없다. 


행복한 교육, 행복한 사회


교육을 바꾸려는 모든 혁신적인 노력들을 빨아들여 버리는 입시경쟁의 블랙홀이 버티고 있는 이상 학교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불평등과 차별이 해소되어야 제대로 된 교육, 행복한 학교도 꿈꿀 수 있다. 교육은 한국사회 정치사회적 맥락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학교도 사회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


입시경쟁체제는 배움의 본질과 학교의 존재 이유를 변질시킨다. 'in 서울'의 그럴듯한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왜곡된 신념은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았다. 대화할 시간, 느낄 시간, 놀 시간, 쉴 시간, 잠잘 시간 등을 빼앗아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경쟁으로 내몰았다.


시간을 빼앗았다는 것은 권리를 빼앗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권리를 빼앗긴 자리에 '삶'은 없다. 스트레스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자기 자신를 괴롭히면 우울증, 자살이 되고 남을 괴롭히면 학교폭력이나 범죄가 된다. 

 

"학생들은 조만간 학교 밖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삶이 과정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죠....(중략)...진짜 무서운 게 뭘까요?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어느날 아침에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닐까요? 그동안 부모, 학교, 사회가 만들어 준 길을 그저 따라가기만 했다면 조만간 힘든 시기가 찾아올 겁니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스스로 자기 인생을 관장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연습은 일찍 할수록 좋습니다."(100~101쪽, 킴 륀베크, 초중등학교 교사)


진짜 교육은 길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내는 역량을 키워내는 것이다. 학교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의 '오늘' 뿐만 아니라 '미래'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학교를 만들 것인가?"라는 물음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물음과 일맥상통한다.


오늘의 학교에서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이 미래 사회의 주인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교육이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 이 당연한 이치는 '행복한 사회가 행복한 아이들을 길러낸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덴마크 교사가 충고한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 그들을 '젊은 어른'으로 바라봐야 한다"고.(133쪽) 학생을 한 명의 시민으로 대접하고 존중해야 그들도 세계의 시민들을 존중할 것이다. 

 

"내가 노력하면 세상을 멋지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학생들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극이 되어 공부든 일이든 더 열심히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는 아이를 길러낸다는 것은 그저 한두개의 과목을 잘 가르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131쪽, 안데르츠 슐츠, 고등학교 교사)


책에 소개된 덴마크 교사들의 경험과 고민, 창의적인 노력들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길을 찾아야 할까. 한국적 현실과는 엄연히 다른 조건의 덴마크 교실을 그대로 베껴올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교실에서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내야 한다. 기존의 학교를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도 필요하다. 학교를 혁신하는 것,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모두 교사들만의 몫도 아니다. 


이 책은 '질문'이다. '숙제'다. 덴마크 교사들이 묻고 있다. "진짜 배움은, 진짜 학교는 무엇이어야 하냐"고. 교사들만이 아니라 학부모, 교육행정관료 등 대한민국 교육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답해야 한다. 이 질문 앞에서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교육에서 손을 떼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받고 가슴 한켠이 저릿하다면 아직은 희망적이다. 질문을 품은 이들이 교육을 바꿔나갈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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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세금에 관해 잘 모르는 '모든 것' | 글 읽기 삶 읽기 2020-10-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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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장제우의 세금수업

장제우 저
사이드웨이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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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게으름과 편견을 넘어, 장제우의 '세금수업'


누군가 내게 '좋은 책의 기준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남에게 권할 수 있는 책'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에게 깊은 깨달음과 위안을 주는 책은 다른 사람에게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권할 수 있는 책은 작가의 전유물을 넘어 독자들 안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재탄생한다. 통계분석가이자 독립연구자인 장제우의 <세금수업>은 오래간만에 만난 그런 책이었다.


나라의 세금은 누구로부터 얼마나 걷힐까. 또 어디에 얼마나 배분되어 쓰일까. 세금은 국가 경영의 철학을 가늠해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세금이 어떤 제도와 정책을 발전시키는데 쓰이는지 시민의 눈으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 잘 감시하려면 잘 알아야 한다. 만약 인생의 '필수과목'이 있다면 '세금수업'이 아닐까.


이 책은 객관적인 통계와 과학적 근거를 들어 낡은 세금관을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저자는 이념과 정파를 불문하고 세금에 관해 갖고 있는 허상과 편견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잘 몰라서, 혹은 공부할 기회가 없어서 대충 '그렇다'고 믿고 있었던 부분들을 교정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세금에 관한 이해가 깊어지니 복지국가의 진로를 보여주는 '나침반'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몇 가지 단상


1. 손 안의 '모래' 같았다. 움켜쥐었지만 이내 스르륵 빠져나갔다. 코로나19 사태로 지급된 긴급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지급된 최초의 보편적 '현금성 복지' 혜택이다. 예상했던 대로 반짝 효과였다. 잠깐 숨통이 트이긴 했으나 재난지원금이 소진되자 소비는 다시 축소되었다. 재난상황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호할 수 있는 확고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긴급재난지원금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일시적' 처방임은 분명하다.


2. '전국민고용보험 대 기본소득제'. 시대 변화에 맞춰 복지 제도를 바꾸자는 것인데, 어느 쪽으로 가든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세금이 든다는 말이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 논쟁에 납세자인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양쪽의 주장이 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을 해야 할까.


3. 모든 시민이 시군구, 읍면동에 신청하면 받을 수 있는 복지급여는 대략 360여가지에 달한다. 한국은 '신청주의'이기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이 신청하지 않으면 복지급여를 받을 수 없다. 2018년 국가예산 429조원 중 복지예산은 146조2천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상당한 국가재정이 소요되는 복지분야의 돈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국민들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복지효능감'이 떨어지니 당연히 세금을 더 내고 싶은 마음도 잘 들지 않는다.


4. 생계 곤란으로 폐지를 줍는 대한민국 노인 인구는 180만명에 이른다. 'K-방역'의 성공으로 국격을 치켜세우고는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은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율 1위의 나라다. '미래 노인'의 삶이 어떠할 것인지는 '현재 노인'의 삶을 보면 가늠이 된다. 누구나 언젠가는 다 노인이 된다. 나의 노년기는 과연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겠다. 언젠가 늙고 병들었을 때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별로 없다. 미래를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이유다.


미신과 편견

 

결국 세금과 복지의 문제다. 장제우는 책 <세금수업>에서 "세금과 복지의 균형점을 잘 잡아내고 세금과 복지를 지혜롭게 이용하자"(9쪽)고 제안한다. 그러려면 먼저 세금에 관한 편견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은 상품을 구매할 때 납부하는 소비세(간접세) 인상에 대한 증세 반감이 심하다. 부자와 서민이 똑같은 세율로 세금을 내는 것은 저소득층에게 훨씬 불리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간접세로 인해 저소득층의 삶이 더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의 소비세 비율은 OECD 36개국 중 30위에 불과하다. 한국보다 더 많은 간접세를 부과하는 나라들은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고 있으며 삶의 만족도와 행복지수가 훨씬 높다.


'간접세를 올리면 서민 생활만 어려워진다'는 '미신'의 배경에는 '오염된 통계'가 있다. 저자가 보기에 한국은 직간접세의 비율을 계산하는데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OECD나 유럽 통계청은 재산 관련 거래세를 직접세로 분류하지만 한국은 간접세에 포함시키고 있다. 1979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의 거래세는 OECD 국가들 중 단연 1위다. '소비세+거래세'를 간접세로 볼 경우, 거래세가 간접세를 부풀리게 되므로 당연히 간접세 비율은 올라간다. 일종의 '착시 효과'인 셈이다.


통계의 오류를 걷어내면 직간접세 논란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를 '세금의 확대-복지의 확대-삶의 질 상승'이라는 선순환 구조로 재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저자는 "한국은 지금껏 저소득층 복지를 소홀히 하면서 간접세를 억제하여 서민을 챙기겠다는 '가식'의 나라였다"며 "간접세를 올려서라도 강화해야 할 복지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국민을 위하는 길은 복지에 필요한 세금을 확보하는 것이지 간접세 증세를 배척하는 게 아니다"(129쪽)라고 지적한다.


현실의 왜곡


뿌리깊은 증세 반감과 조세 저항은 현실의 왜곡을 낳는다.


한국은 세금을 통한 복지보다 사보험 의존율이 극단적으로 높은 나라다. 민영 보험료의 합이 '소득세+사회보험료'를 앞지르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보험이란 미래의 위험에 대한 대비인데, 한국은 사회연대방식이 아닌 각자도생의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매년 사보험 해지로 손해를 보는 규모가 10조원에 달한다고 하니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한국의 서민들은 십 년도 넘게 사보험을 해지하느라 해마다 10조원도 넘는 돈을 그냥 '버려왔다.' 그렇게 돈을 허비하느니 복지 자금 조성에 일익을 담당하는 게 100배는 더 이득이다. 그런 낭비가 세금으로 걷힐 수 있고, 이에 부가하여 인상되는 다른 이들의 세금까지 탄탄한 복지 인프라를 만드는데 쓰인다면, 그로 인해 가장 이로운 사람들은 돈이 필요하다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사보험을 깨던 그들, 우리 자신이다."(55쪽)


소득세를 올리는 것은 '악'이고 기업의 법인세를 올리는 것은 무조건 '선'이라는 생각도 '미신'이다. 현실적으로 법인세는 아무리 많이 올린다 한들 소득세의 규모를 따라갈 수 없다.


덴마크는 기업의 세금 부담이 낮은 대신 노동자의 임금이 많고, 반대로 스웨덴은 기업의 세금 부담인 높은 만큼 노동자의 임금은 덴마크에 비해 낮다. 그러나 두 나라의 '시간당 노동 비용'(임금+기업의 사회보험료 납부액)은 유럽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한국에서만 유독 강하게 작용하는 소득세와 법인세에 대한 선악 이분법은 광범위한 조세 저항을 부추기고 오히려 복지 확대의 발목을 붙잡는다.


'낙수효과'와 '부자증세'는 어떠한가. 저자는 부자증세나 낙수효과 모두 조세저항을 기저에 깔고 '대기주의'를 종용한다고 일갈한다. 그는 "낙수효과가 부유층의 조세저항을 합리화한다면, 부자증세는 부자가 아닌 이들의 조세저항에 정당성을 부여한다"(163쪽)며 "표면적으로는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 있으라'를 종용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해친다는 측면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공짜 복지'의 허구성


복지는 세금을 통해 실현하므로 국민이 마땅히 분담하는 것인데도 '무상복지'라는 말을 남발하게 되면 '복지는 공짜'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역효과를 초래한다. 이는 실제 복지 발전에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복지를 논할 때 반드시 함께 거론해야 하는 세금의 문제, 책임의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복지에 상당하는 세금을 충분히 납부하고 있다고 국민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때, 복지를 공짜라 부르건 무상이라 부르건 전혀 상관없는 환경이 조성된다. 공짜냐 무상이냐를 따지는게 무의미한 복지강국으로 가야 하지, 무상복지는 공짜복지가 아니라고 억울해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정치가 국민에게 떳떳이 증세를 말하고, 국민이 그 책무를 당당히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복지는 본래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간다."(183쪽)


복지의 민영화, 시장화는 사회 전체의 복지 비용을 줄이는 대신 그 부담을 개개인에게 부과했다. 의료, 주거, 교육 등의 영역에서 개인이 지출하는 복지 비용은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다.


복지국가는 재분배의 도구다. 재분배 방식은 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20세기의 가장 성공한 정치기획이었던 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들은 정치의 우선성과 공동체주의 바탕위에 세워졌다. 정치에 대한 열망과 실망이 역동적으로 교차하는 한국사회에서 기존의 체제와 구조의 벽은 여전히 단단하고 연대와 협동의 원리가 작동하는 복지국가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사각지대 없이 공적 복지의 영역에서 최대한 많은 시민을 포괄하며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복지를 결합함으로써, 광범위한 사회연대를 통한 평등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 바로 '보편적 복지국가'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절감했듯이 복지의 확대 없이 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복지의 확대를 위해 증세는 필수다. 적극적인 증세없이 국가 패러다임 전환은 어렵다.


증세없이 복지국가 없다

 

"사람들은 늘 세금이 줄줄 새고 복지가 부족하다고 불만이지만, 콕 집어 이 때문에 정치판을 갈아엎기는 어려운 정황이다. 국민으로서는 이래저래 답답한 환경이지만 저급 정치인들에겐 한국같은 꿀단지가 따로 없다. 높은 조세 저항과 낮은 세금은 팍팍한 삶의 근원인 동시에, 정치에 대한 허술한 감시망의 토양이기 때문이다....(중략)....정치의 기강을 바로잡는 세금의 위력을 감안할 때 증세는 '호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언제 어느 때나 정치는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고 그들에게 있어 '얼마든지 세금을 늘리라는 국민'처럼 무섭고 불편한 존재도 찾기 힘들다. '진짜' 세금폭탄을 얻어맞는 복지강국의 국민은 사소한 낭비나 비리에도 냉혹한 심판을 내린다."(156~157쪽)


정치가 경제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시대, 재분배의 도구로서 복지국가는 훼손되고 있다.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노동의 양극화, 높은 실업률, 빈곤의 확산과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등 복지국가는 전방위적으로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1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유럽 복지국가들의 프로세스를 따라가기에 한국의 상황은 그다지 여유롭지 않다. 유럽처럼 강력한 노동운동이 복지의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10%의 조직력도 안 되는 노동운동이 강해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경제위기로부터 촉발된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현실적인 해법이 '복지'에 있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간절히 필요로 하는 변화는 아래로부터 강제되어야 한다. 세금에 관한 편견과 우상을 걷어내고 증세와 복지 확대를 주장해야 한다.


산발적인 복지담론들을 복지정치의 의제로, 이를 실현한 복지 정치의 주체들이 등장해야 한다. 복지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복지국가에 대한 시민의 열망을 조직하며 사회적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정치를 바꾸고 보편적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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