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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 기본 카테고리 2010-09-02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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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저/박경희 역
문학동네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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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을 아무리 비벼 보아도 글을 오롯이 씹어 삼킬 수 없는 이유는 나의 마음 때문인가 보다. 롤라를 외부에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는 누구인지 혼란스럽다. '나'가 말하는 '네모'가 기숙사 방 안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제서야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귓가에 머무르고 흐릿했던 사물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은 롤라의 죽음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롤라를 죽게 한 사람은 누구인지, 왜 죽었는지에 파고 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롤라는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의 기억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롤라의 죽음으로 '나'의 내부에 억압된 사슬이 스르르 풀려버리고 '나'와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가 함께 바라본 세상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나'와 롤라, 에드가, 쿠르트, 게오르크의 자유가 억압된 삶은 '숨그네'를 떠올리게 만들며 '마음짐승'이 '숨그네'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도 '마음짐승'에서는 죽음을 무심하게 바라보게 만들진 않는다. 단지 침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해 준다. 롤라의 죽음에 대해 이제 모든 독자들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져간 이 가련한 영혼을 기억해줄 이가 있을까. 흰 종이 위에 남겨진 글에서만이 롤라가 이 세상에 있었음을 증명해줄 뿐이다. 그러나 롤라가 남겨 놓은 공책이 사라졌으니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그녀를 기억해내야 한다.

 

독재자 '차우셰스쿠' 아래에서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아가는 이들은 감시원의 시선 아래에서 말을 잃어가고 마음의 빗장마저 닫아 버린다. 자신의 소유물인 트렁크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 수없이 많은 똑같은 열쇠들이 열어 젖힐 수 있는 트렁크는 이미 '억압'의 대상물이다. 편지 속에 머리카락 한 올을 넣고, 트렁크 위에도 머리카락을 둬야 할 만큼 나를 에워싼 모든 것이 나를 감시한다. 편지를 쓸 때는 손톱가위는 심문, 수색은 신발 등 우리들이 평상시에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단어들을 암호로 사용해야할 정도로 영혼까지 억압당한다. 생각들이 자유롭게 흘러 가지 못하고 고여 썩어가고 급기야 '나'와 에드가는 고향을 등지게 된다.

 

얼마동안의 세월이 흐른 후 '나'와 에드가가 고향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그네들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들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쿠르트', '게오르크'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미 언급하여 알고 있었지만 왜 '나'와 에드가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는지 알아가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경감 프옐레가 집요하게 이들을 압박해 오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불행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지만 모든 것에 침묵하지 못했던 이들의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 봐야 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마음에도 큰 상처를 남긴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헤르타 뮐러의 시적 언어는 현실이 잔혹함을 알고 있음에도 물결이 잔잔하게 흐르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억압받는 삶이지만 다른 이들처럼 외면하고 살면 되지 않느냐, 는 말조차 던지지 못하게 막아 버린다. 옷 속에 그림자만 있을 것 같은 지쳐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표현한 글 정도만이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전체주의의 흐름에 거스른 사람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정신이 빼앗긴 이들만이 이 곳에서 살아간다. 도피하고, 떠날 수 있는 자들만이 이곳을 기억하고 죽은 이들만의 기억속에서나마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청춘의 시대에 자유과 정신을 억압당한 이들이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마음짐승"을 누르며 억압하고 나서야 헤르타 뮐러의 아름다운 시적 언어에 의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었으니 이 상황이 참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무릇 역사란, 사람들의 삶이란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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