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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독서일기)
『글쓰기의 최전선』 | 책과 함께 (독서일기) 2022-08-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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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저
메멘토 | 2015년 04월

 

 

글쓰기는 '나'와 '삶'의 한계를 흔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삶'은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의 지루한 반복이다. 기쁨과 슬픔을 자아냈던 대소사의 나열은 삶의 극히 일부분이다. '나'의 범위 역시 피와 살이 도는 육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신의 총체이기도 하며 관계의 총합이기도 하다. 나는 나 아닌 것들로 구성된다.

 

 내가 쓰는 언어를 보자. 그간 읽었던 책, 접했던 언론, 살았던 가족, 만났던 애인, 놀았던 친구의 말의 총합이다. 깊은 밤 빗소리에 홀로 상념에 젖어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썼다면 그것 역시 '비'라는 자연 현상이 마음을 건드린 덕분이다.

 

 한 개인의 사생활도 어떤 사람, 어떤 사물, 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이다. 남의 경험이 내 경험에 들어 있듯, 내 경험도 남의 경험과 연루되어 있다. 글쓰기에서 공과 사라는 영역은 그렇게 서로 유동하고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의 줄임말이고, 나의 경험이란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의 합작품'인 것이다. 누구도 삶의 사적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과 경험의 코뮨적 구성 원리를 인식한다면, '경험의 고갈'이라는 난감한 사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pp.53-54)

 

코뮨(commune) : 공동체

코뮨주의 : 국가와 자본에 사로잡히기를 거부하며, 자유로운 개인들의 개성과 차이가 존중되는 공동체적 삶을 꿈꾸는 사상적 경향, 자본주의 시장 경제나 그를 지지하는 정치 체제를 거부하고 삶의 전 부문에서 평등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동안 개인주의 문화에 물들어 나만의 생각과 관념에 너무 사로잡혀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란 반성을 해보게 되는 글인 것 같다. 나의 글에는 내 생각 뿐만이 아니라, 내 삶의 전반을 이루는 여러 상황과 여건들, 그리고 나의 가족, 지인들과 수많은 책들을 통해 포개어지고 겹쳐진 생각들의 총합이 깃들어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은유 작가는 빗소리를 맞으며 감성에 젖어 연인에게 편지를 썼다면 그것은 자신의 생각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닌 자연, 즉 '빗소리'에 감성이 자극되어 연인에게 편지를 쓸 수 있었다고, 이 또한 자연의 도움 덕분이라고 말한다.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이란 글이 무척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어떤 작가는 삶이란 사람과 사람이 서로 더불어 사는 삶이라 했던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서로의 영향을 받고 공생관계를 이룬다면 우리의 삶은 곧 나만의 삶이 아닌 셈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일이란 내 경험 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경험을 논하는 것이며, 글의 소재 또한 무궁무진할 수 있음을 작가는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p.s: 우리 삶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작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타인에게 빚진 삶"이라는 표현으로 글을 썼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사고와 관념들 또한 우리 자체의 생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이지요...따라서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소재는 우리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데, 자기 자신의 경험 뿐만이 아니라 내 가족들, 이웃들, 또는 책 속의 다양한 사연들이 우리의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하지요. 그렇기에 "경험의 고갈", 즉 글쓰기의 소재가 고갈되는 일이 없다고 작가는 다양한 사연과 경험들을 소재로 하는 글쓰기에 겁내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라는 의미에서 이 글을 썼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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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책과 함께 (독서일기) 2022-07-20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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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저
메멘토 | 2015년 04월

 

 

좋은 글은 질문한다. 선량한 시민, 좋은 엄마, 착한 학생이 되라고 말하기 전에 그 정의를 묻는다. 좋은 엄마는 누가 결정하는가, 누구의 입장에서 좋음인가, 가족의 화평인가, 한 여성의 행복인가. 때로 도덕은 가족, 학교 등 현실의 제도를 보호하는 값싼 장치에 불과하다. 일상의 평균치만을 관성적으로 고집하며 살아가는 순치된 개인을 길러낸다. 하지만 평균적인 삶도 정해진 도덕률도 없다. 천 개의 삶이 있다면 도덕도 천 개여야 한다. 자기의 좋음을 각자 질문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게 중요하다. 작가는 그것을 촉발해야 한다.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차이를 보편으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로부터 기존의 보편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글이 생명력을 갖는다. 내가 쓴 글이 숨 막히는 세상에 청량한 바람 한 줄기 위안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막을 옥토로 만들 물음의 씨앗을 품고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질문하는 글"은 "생성하는 삶"으로 이어진다. 왜라고 묻는 글, 자신을 다양한 존재로 개방하도록 등 떠미는 글, 도덕 위에서 춤추도록 깨달음의 오르가슴을 선사하는 글, 모든 글(책)의 최종 목적은 "감동"이다. 그리고 진정한 감동은 신체가 바뀌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다.   (p.118-119)

 


 이 책 『글쓰기의 최전선』 은 은유 작가를 알고 난 뒤, 그녀의 필력에 흠뻑 매료되어 구매해서 읽게 된 책이다. 은유 작가의 글은 우리에게 깊은 통찰과 사고의 힘을 길러준다.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안목과 지혜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좋은 책을 통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니체의 철학과 문장을 좋아하는 은유 작가는 그래서 철학적 글쓰기와 생활문을 접목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일상적인 삶속에서 맘껏 사유하며 사색하는 글쓰기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묻는다. "때로 도덕은 가족, 학교 등 현실의 제도를 보호하는 값싼 장치에 불과하다." 란 글에서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선량한 시민, 좋은 사람이란 프레임은 누가 결정하는가"라고 묻는다. 우리 사회의 도덕이란 과연 진정한 윤리의 기준을 따르고 있는 것인가의 문제점을 제시한다. 사회가 바라는 인간상을 한 개인의 삶에 주입시키려는 그동안의 사회적 관습과 관성 안에 길들여진 채로 그것이 바로 온전한 도덕적 삶을 사는 것마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아마도 우리는 어떠한 깨우침이 없다면 그렇게 사회에 길들여진 채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기존 관습의 프레임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고, 온전한 자기 모습과 마주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상생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련지....., 

 

 작가는 책이 주는 진정한 감동은 그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이 말은 곧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 게다. "변화"란 우리가 앎을 실천으로 옮길 때만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의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정희진 작가가 쓴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 텍스트를 통과하기 전의 내가 있고, 통과한 후의 내가 있다."라는 말과 오버랩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도 책을 통해 진정한 감동을 받고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책을 통한 진정한 감동은 내게 아직 오지 않은 셈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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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안목』 | 책과 함께 (독서일기) 2022-07-19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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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안목

신기율 저
더퀘스트 | 2022년 07월

 

"역할을 다하면 사라지는 인연"

 

 인연 중에서도 특히 해석하기 힘든 어려운 만남이 있다.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역할인연이다. 역할인연은 자신이 상대에게 꼭 해야 할 역할이 있어서 만나게 되는 관계를 말한다.  (p.242)

 역할인연은 해야 할 역할이 끝나면 더는 서로에게 끌림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오묘한 끌림을 신의 계획으로 해석하여 신연이란 말로 부르기도 한다. 혹시 누군가가 나의 역할인연으로 느껴진다면 상대를 신이 내게 보낸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p.244)


 

 어떤 책에서는 "시절인연"이라고도 부르는 "역할인연"역할을 다하면 사라지는 인연이라고 한다. 이 인용문은 참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역할인연은 우리의 모든 성장 과정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도 있을 수 있다. 

 

 작가는 다양한 인연들 가운데서도 "역할인연"에 주목한다. 작가의 대학 시절 낯선 후배가 자신을 찾아와서 "고전독서모임" 이란 동아리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낯선 여자 후배가 자신에게 선뜻 제안을 하는 것이 황당했던 작가는 자신을 어떻게 아냐며 물어봤는데, 후배는 과 선배의 추천을 받아 작가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렇게 낯선 여자 후배와 "고전독서모임 동아리"를 창설하게 되었다. 그런데 1년 만에 여자 후배는 동아리를 탈퇴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하면서 여자 후배와의 관계를 "역할인연"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역할인연" 보다는 "시절인연"이란 말이 더욱 공감이 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성장 과정속에서 그 시절별로 만나야 할 인연들이 있었고, 그 시기가 지나면 깨끗하게 잊혀지는 인연들이 있다. "시절인연"에는 어린 시절 유치원 선생님부터 대학 은사님까지, 그 시절 친구들과 동창들까지, 다양한 시절인연들이 우리 곁을 지켜주었고, 스쳐지나갔음을 깨닫게 된다. 역시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시절인연"들을 생각해보니 더욱 뚜렷하게 되새겨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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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안목』 | 책과 함께 (독서일기) 2022-07-1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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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안목

신기율 저
더퀘스트 | 2022년 07월

 

"마음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많은 사람이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지는 상대를 만나면, 자신의 소심함이나 부족한 사회성을 탓하며 어떻게든 불안한 감정을 없애려 노력한다. 어쩌면 이런 관계는 세상에는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운명의 가르침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억지로 불안한 사람과 가까워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마음의 반응이 내가 그를 멀리해야 하는 가장 정확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p.265)

 

 이 책의 작가는 마음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알수 없는 불안감이 생겨서 만나기가 꺼려지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말이다.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솔직히 낯설게 느껴졌으니, 생경한 이야기를 듣고 처음부터 공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곰곰히 생각을 되짚어보게 되면 우리 인간한테는 불안에 대응하려는 직감과 예감이 발달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는듯 싶었다. 사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정확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불편하거나 불안한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었던 것 같다. 누구보다 직감이 발달한 나는 왠지모르게 찝찝한 느낌을 주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면서도 어는 정도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후련해졌다. 

 


 이 책 <관계의 안목>은 얼마 전 리뷰로 올렸던 관계심리학 서적이다. 300페이지 가량의 분량인 책의 내용을 리뷰로 다 올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책의 구성과 차례를 밝히고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들을 인용해서 올리는 것이 보편적인 리뷰의 사항일 것이다. 사실, 위에 있는 인용문은 리뷰에 올리고 싶었지만, 전체적인 주제의 내용에는 이질감이 생길 듯한 내용의 글이라서 빼놓게 되었다. 하지만, 작가의 독특한 인연의 방식들이 너무 재미 있었고, 나에게도 이런 생경한 일들이 있었음에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따로 올리게 되었다. "마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는 작가의 경험적 글들을 읽으면서 무조건 관계의 확충망을 늘리기 보다는 신중을 가해서 질적인 관계의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경구가 섞인 글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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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쌍소 | 책과 함께 (독서일기) 2022-07-0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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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이 거닐기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된다.

(파스칼)

 

 

 한가로이 거니는 것, 그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게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따라서 더 이상 긴장감 속에서 경계심을 품은 채 이 세상을 조사. 관찰하지 않아도 된다. (...)

 

 지나치게 주위를 경계하며 관찰하는 태도는 한가로이 거니는 즐거움에 방해가 된다. 거리의 풍경이나 행인들의 얼굴을 지나치게 관찰하면 그것들은 갑자기 낯선 모습이 되어서, 본래와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변질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한가롭게 거리를 걷는 사람은 그 순간의 행복을 잃게 된다. (...)

 (중략)

 사실 한가롭게 거닐 때 느끼는 행복은 우리의 시선을 통해 발견되는 것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걷는 행동 그 자체에서, 자유로운 호흡 속에서, 그리고 아무것도 기분을 거슬릴 것이 없는 시선 속에서 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누리는 것이 정당한 일이기나 한 듯이 세상 안에서 느끼는 여유로움 속에서 오는 것이다. 

(pp.41-44)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쌍소 저/김주경 역
동문선 | 2000년 06월


 

 "삶, 그것은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다가오고, 햇살처럼 쫙 퍼져 나간다. 그것은 세차게,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물이나 거세게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이기보다는 섬세한 작은 물방울들 같은 것이다. 그것은 강한 힘이기보다는 부드러운 빛과 같은 것이다.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부여된 이 삶이라는 특권을 참되게 누리기 위해서, 나는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   (머리말 中에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구매한 지가 벌써 20여 년이 흘렀다. 98년도에 샀으니, 그 뒤로 조금씩 자주 읽었으나, 워낙 프랑스의 철학가가 집필한 책이라서 그런지 현학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어서 나에게는 늘 수면제가 되었던 이 책을 지금에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중간 중간 생략한 부분들은 작가의 생각과 사유에 대한 글인지라 지면상 글이 하염없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이 책의 핵심 내용에 닿는 인용문들만을 발췌하였다. 

 

 사실, 가장 나에게 현실적인 공감이 많이 갔던 문장들이었기에 이렇게 다시 올리게 되었다. 요즘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들이 내게 조금은 부담으로 와닿게 되었는데, 이는 곧 몸이 주는 신호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란 책이 오늘의 지친 나를 품어준 것은 아닐까......,

 

 그냥 아무런 걱정과 사념없이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한가롭게 거닐다보면 어느 순간 유유자적한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빠르게 걷는 운동을 위한 산책도 좋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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