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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좋은날 - 이다혜 | 읽은책 2012-12-04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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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책읽기 좋은날

이다혜 저
책읽는수요일 | 201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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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오히려 책이 읽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머리는 복잡한 채 집중이 되

질 않아 읽다만 책이 여러권. 뭔가 자극이 필요하다 싶어 도서관에 갔다가 책 뒷면에 있는 김중혁 작가의 추천문을 보고 빌려오게 되었다. 저자는 영화잡지 <씨네21>의 기자이자 북칼럼니스트로 여행을 가서 읽을 책을 사느라 밥을 굶기도 하고, 책이 쌓여 있어 찾지 못해 똑같은 책을 세번씩이나 사기도 하며, 이사 때마다 책을 정리해 내놓는 일이 골치이지만 책읽는 즐거움을 멈출 수 없는 좌충우돌 독서가이다. 

 

2012년 9월에 나온 이 책은 그동안 저자가 읽어왔던 책 123권에 대한 짦막짦막한 이야기로 간단

한 책 내용과 함께 저자의 생각이 담겨있다. 원래 서평집을 읽으면 관심가는 책들이 생기기 마련

이지만 이 책은 인문, 사회, 의학, 범죄심리, 스포츠, 만화, 추리소설, 고전소설, 로맨스 소

설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있어 유난히 흥미로운 책이 많아 다시금 솟아오르는 독서의지와 함

께 책지름신을 불러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가고 싶었으니..

 

가끔씩 남들은 책을 어떻게 읽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살짝 훔쳐보고(?) 싶어질때가 있다. 그래서 서평집을 읽고 독서에세이를 읽곤 하는데 유명한 서평가들의 책이 내겐 너무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곤 한다. 서평을 잘 쓰기 위해서는 그러한 책도 읽어야 한다지만 마음이 복잡할 때는 편하게 술술 읽히는 글이 땡기는 터. 무엇보다 정말로 책읽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져 오랜만에 나도 그저 책읽기 즐기며 '좋은날'을 보낸듯 하다. 

 

"그래도 여전히 책을 읽는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을 재발견 하고 싶어서 읽을 때도 있고, 모르는 세상으로 한 발 더 다가가고 싶어서일 때도 있다. 내 작은 방에서 도피하고 싶어서일 때도 있고, 지하철 옆자리에서 시끄럽게 떠느는 취객의 말을 무시하고 싶어서일 때도 있다. 정말이지 그냥 혼자 있고 싶어서, 혹은 누구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저 좋아서 읽는다. 무엇을 위해서 읽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사양한다. '해야 하는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책 하나쯤은 온전히 도락으로 남아도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책도 당신에게 그렇게 아무런 목적 없이 남으면 좋겠다. 스마트폰이나 DMB와 '다른' 즐거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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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정한아 | 읽은책 2012-12-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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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달의 바다

정한아 저
문학동네 | 2007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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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신문사 기자 시험에서 떨어져 자살을 결심한 은미. 그런 그녀에게 할머니가 보자기로 싼 두툼한 편지 뭉치를 내민다. 5살 난 아들 찬이를 맡겨놓고 15년동안 연락두절이었던 고모가 사실 미국에서 우주비행사로 일하며 이렇게 매 달 돈과 편지를 보내왔었다고. 거처를 옮겨 연락이 끊기기전에 자기 대신 한번 만나고 와 달라고. 그리하여 은미는 남자이지만 여자가 되고싶어하는 소꿉친구 민이와 함께 미국으로 떠나 고모를 만나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일임을 깨닫게 된다.  
 
고모는 사실 우주비행사가 아니었고 우주 간이역이라는 이름을 붙인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전쟁 같던 시절에,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면서도 자존감에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았듯. 결혼에 실패하고 아들과 따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삶을 후회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고 매일 200개의 샌드위치를 허기가 문제인 곳으로, 길이 보이지 않는 어느 곳으로 보내며 열심히 살았다. 달에 살고 싶어했던 엄마에게 거짓 편지를 쓰며..
 
모든것을 알게 된 은미가 묻는다. "왜 할머니한테 가짜 편지를 쓴 거야?" 고모는 웃으며 말한다. "즐거움을 위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은 인생을 살아갈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 수술도 할 수 없는 폐의 낭종이 생겨 갑자기 죽을지도 모를 앞날을 대비해 엄마에게 달에서 살게 될것이라고 말하는 고모를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거짓이라고 할지라도 엄마와 자신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쓴 편지들이 짠하고 애틋하다. 
 
지구에서 보면 노랗고 예쁘지만 실제로는 회색빛이라는 달처럼 우리들의 인생도 그런것이 아닐까? 겉으로는 평범하고 잔잔해 보이는 삶도 안으로는 고통과 슬픔이 존재하고. 현실은 항상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 결국 은미는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갈비집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시작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은미의 거짓말로 고모가 잘 지낸다고 믿게 되고, 민이는 성전환 수술을 받았으며, 고모의 아들 찬이는 엄마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그들은 꿈은 이루는 것보다 꾸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해준다. 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더라도 절망하지 말자고 따듯하게 위로해 준다.
 

 

- 밑줄긋기

 

저는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지구가 알사탕만하게 보이는 곳으로, 그러니까 제 잘못이나 슬픔도 알사탕의 티끌로 보이는 곳으로요. 엄마, 저는 그 모든 순간을 즐겼고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이걸 위해서 희생했던 것들, 제가 저지른 실수와 오류들 말이에요. 사는 게 선택의 문제라면 저는 제 손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싶거든요.

 

이렇게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이라 해도, 낭떠러지 같은 절망 속에 있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별일 없는 듯.

 

"넌 그깟 시험에서 떨어진 게 뭐 그렇게 대단하다는 거야? 사람들은 누구나 다 떨어져. 원래 시험이란 게 몇 명만 붙고 나머지는 다 떨어지는 거야. "

 

그녀는 나에게 일반적인 의미의 고모가 아니었다. 나는 책을 읽는 법, 친구를 사귀는 법, 일기를 스는 법, 노래를 부르는 법까지 모든 것을 그녀에게서 배웠다. 생김새나 습관까지도 고모를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 일로 돈을 벌어서 밥도 사먹고,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따뜻한 옷을 사입을 수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한 양 첸 할아버지를 향한 끓어오르는 질투심과 함께 문득 '나는 한 번도 기사를 쓰는 일을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시험에 붙어야 한다고,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누군가 어리석은 내 머리를 톡, 톡, 치는 것 같았다.

 

달에서 '바다'라고 부르는 지역은 지구의 깊고 푸른 바다와는 달라요. 그것은 조악한 천체망원경으로 달을 연구하던 시절에 관측자들이 달 표면의 어둡고 평탄한 지역을 바다로 오해했기 때문에 비롯된 명칭이죠. 실체가 밝혀진 뒤에도 명칭을 바뀌지 않았어요.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

"그래서?"

"자유지."

 

달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회색빛이에요. 지구에서 봐온 포근한 노란색은 어디에도 없죠. 흑백의 모래더미를 바라보고 있으면 간혹 제가 달에 있는 건지 시골의 채석장에 있는 건지 잘 구분되지 않아요. 팀원들 중 몇몇은 그 때문에 자신들의 환상이 깨져버렸다고 투덜거리기도 하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달의 진짜 빛깔이 어떨지 그 누가 알 수 있겠어요? 화성에서는 달이 분홍색으로 보일 수도 있고 금성에서는 녹색으로 보일 수도 있죠. 외계인에게는 파란색으로, 물고기들에게는 주황색으로 보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저 바라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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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문제들 - 안보윤 | 읽은책 2012-12-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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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소한 문제들

안보윤 저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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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학창시절은 따듯하고 아련한 기억들로 추억된다. 지나고나면 그마저도 추억이 된다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와 아이들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에 비해 순수할 뿐 그리 순수하지 않았다. 지금 보다는 나은 시절이었을지는 모르나 그때부터 가난과 경쟁과 그에 따른 서열이 존재했고,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모자란 아이들을 기가막히게 찾아내 놀리고 이용하는 아이들이 존재했었다.

 

이 책에도 따듯하고 아련한 학창 시절의 모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황순구'는 못생기고 뚱뚱하다고 따돌림을 받는 '아영'에게 자신이 당해온 폭력을 되풀이 한다. (그런데 아영에게 가하는 폭력이 읽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끔찍하다.) 아영은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하게되고 헌책방으로 숨어들게 되는데, 이 헌책방의 주인 '두식'은 대학 시절부터 좋아한 성현이 자신을 이용함을 알면서도 이용당해주는. 은둔형 외톨이 동성애자다.

 

불행과 외로움과 절망을 가지고 있던 두식과 아영이 함께 살며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를 통해 위로받다시 삶 속으로 돌아가게 되지만, 역시 이들의 문제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영이 없는 빈자리를 인형처럼 예쁘지만 모자란 아이 '송곳니'가 대신하고 있었고, 끔찍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 했던 아영의 방화로 인해 의도치 않은 송곳니가 목숨을 잃는다. 누군가가 폭력에서 벗어나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야 하는 꼴이라니. 끔찍하고 잔인했다.

 

작가는 이렇게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이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음을, 사소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이 되어가고 있음을 담담하면서도 서늘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부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로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도 이렇게 쓸쓸한 그림자가 팔을 벌리고 있을 것 같아 책 장을 덮고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고무줄로 꽁꽁 묶은 머리카락 때문에 드러난 목이 팔만큼이나 가늘다. 하얗고 앳된 목. 그러나 그 아래 급격히 부푼 살덩어리가 경계선을 짓듯 깊은 주름을 만들어낸다. 그 아래로 퍼진 비대한 등. 두식은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이의 발밑으로 쓸쓸하고 불행한 그림자가 헐겁게 늘어져 있다. 두식은 그림자의 불행과 외로움을, 절망을 알아본다.

여자아이와 두식은 그런 식의 동류인 것이다. p44

 

한번붙은 꼬리표는 어떤 방법으로도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 입학식 때 간질발작을 일으켰던 아이는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게거품으로 불리고 있다. 문방구에서 샤프를 훔치다 걸린 아이는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의심 섞인 눈초리를 받았다. 체육시간에 큰 소리로 욕을 해 벌을 받았던 아이도 수행평가 대마다 최저점수를 경신했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추한 면면을 결코 잊지 않았다. 쉽게 잊지 않도록 이름을 새기고 꼬리표를 붙였다.

 아영은 꿀꺽 침을 삼켰다. 자신에게 붙을 꼬리표는 무엇일까. 상상만으로도 구역질이 일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꼬리표는 입과 입을 통해 인터넷과 전화선을 통해 간단히 그러나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아이들의 손쉬운 표적이 되어 이리저리 휘둘리다 종내에는 바닥까지 떨어질 것이 뻔했다. 이 이상 얼마나 더 깊은 나락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 몹시 깊고 캄캄하고 더러울 것이었다. p125

 

"우리 애가 내성적이고 말도 잘 못하는 건 알겠는데, 그게 왜 뼈까지 부러질 이유가 되는지 모르겠어. 이전 학교에서는 계단에서 떠밀리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어. 가위로 뒷 머리를 잘라놓는 바람에 머리를 짧게 깎아주면, 그게 또 맘에 안 든다고 애를 괴롭혀. "

" 깨진 뼈야 아무것도 아니지, 금세 붙을 테니까. 새끼발가락? 그것도 어떻게든 고쳐줄 수 있어. 문제는 깨진 마음이야. 그건 무얼해도 안 붙어.."p193

 

두식은 조용히 아영을 배웅한다. 아영은 이제 숨기려는 기색 없이 오른다리를 끌며 걷는다. 발밑으로 헐겁게 늘어진 그림자가 매달리듯 질질 끌려가고 있다. 그것은 여전히 불행하고 쓸쓸해 보인다. 두식은 그 고독한 절망이, 자신과 똑같은 깊이이 그 슬픔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한다.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아저씨, 슈렉은 정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그렇게 물은 아영은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돌아섰다.

떠나야 한다. 다른 것들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모든 것이 끝났으니 이제 그만 떠나야 한다. 게으른 슈렉조차 무언가를 얻기 위해 늪을 떠나지 않았던가. 침묵한 대가라면, 외면한 대가라면 이제 충분히 치렀다. 이제부터 아주 먼길을 이 낡은 몸으로 걸어내야 한다. 꾸준히 걸어낸다면 그간 놓쳤던 행복의 퍼즐 하나쯤은 손에 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식은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나선다. 그림지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점점 더 빨리 걷는다. 뒤돌아보면 팻말 바로 옆에, 두식이 떼놓고 온 불행하고 쓸쓸한 그림자가 팔을 벌리고 서 있을 것만 같다. 탁탁 소리와 함께 두식은 힘차게 달리기 시작한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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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 은희경 | 읽은책 2012-12-0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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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태연한 인생

은희경 저
창비 | 201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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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남의 이야기와 사연 듣기를 싫어했다. 자기 인생이 대하소설이라고 스스로 감탄하는 사람의 이야기일수록 상투적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꼭 한번 소설로 써보라는 사람에게 요셉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니 당신이 직접 쓰라고 대답해왔다. 조언과 충고를 구하는 사람도 질색이었다. 의욕적인 계획을 늘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오직 동의를 원할 뿐이었다. 충고를 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희망을 기대했다. 비관이 신중함이고 냉정해야만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셉의 충고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결국 시간만 아까웠다. 

 

요셉은 숨소리 때문에 특히 개를 싫어했다. 도무지 태연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고통은 관계의 고독이고 고독은 개인됨의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 둘을 섞었을 때 어머니의 인생은 비로소 납득할 만한 것이 되었다.

 

그때는 십년 뒤 지금과 같은 결정적인 절망이 다시 오리란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절망 뒤에 절데 절망이 남아 있고 아무리 고독한 사람에게도 더 고독해질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젊은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

아직 미완성인데 세상은 어른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지. 그래서 허겁지겁 이런저런 형식과 모델, 유행하는 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거야.

 

에피소드의 형태로 등장하여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버스 가운데 어떤 것이 일회성 우연이며 어떤 것이 내 인생의 플로승로 가는 노선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포착하고 무엇을 흘려보내야 할까.

 

- 자기가 준 것을 다 계산해놓고 그걸 빚으로 생각하는 게 문제지. 너는 뭘로 갚을 건데 하는 식이면 그게 맡겨놓은 거지 선물이야? 내가 잘해준 거 잊지 마, 이러는 놈들도 조심하라구. 생색내거나 보상을 받으려고 하는 건 진짜 주는 게 아니다.

 

어머니가 적국에 부역하는 포로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이데올로기의 딜레마 속에 살았다면 아버지는 남의 나라에 태어난 소년이었다. 그곳에서는 태어날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하며 그것을 상실이라고 불렀다. 가장 아름다운 매혹을 보아버린 뒤 그들이 보는 모든 것은 상실이라는 이름의 풍경이었다. 아버지가 태어난 곳은 상실의 세계였던 것이다.

 

요셉은 낡은 형판으로 상투적인 본을 찍어내는 패턴이라는 권력에 신물이 났다. 그것을 집행하는 자들은 외과의사처럼 누군가 메스와 소독가위를 건네주면 그것으로 환부를 잘라낼 뿐 고통의 고유성에는 관심이 없다. 요셉은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가 존엄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고유함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고유함이 없다면 인간은 시간이 되면 꺼지는 기계처럼 패턴에 의해 소비될 뿐이다. 패턴에는 매혹이 없었다. 타인이 지겨운 것은 관계를 맺기 위해 그런 패턴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환멸에는 그나마 고독이 위로가 되었다. 환멸을 완성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염증이었다. 류가 공책에 쓴것과 달리 어두운 숲을 물려받은 자에게 움직이는 숲을 보는 날은 오지 않았다. 요셉은 검은 보자기로 덮인 어둠 속에서는 노래할 수가 없었다.

 

매혹은 지속되지 않으며 열정에는 일정한 분량이 있다. 그 한시성이 그들을 더욱 열렬하게 만든 것이었다. 류는 그들에게 주어진 매혹과 열정의 시간이 끝나버리는 날 자신이 혼자 비행기에 실려 돌아오리라는 걸 예감했다. 요셉과 다른 점은 그것이었다. 둘 다 뜨거웠지만 류는 요셉과 달리 자신을 속이지 못했다. 매혹이 사라진 이후의 사랑은 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틀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류는 자기만의 부역보다는 상실을 택했다. 고통보다는 고독을 택한 것이다. 그것을 요셉에게 납득시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여름 s시를 혼자 떠나올 때 류는 울었지만 요셉과의 관계에서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놓고 되돌아와버린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았다.

 

어머니는 비행기처럼 기류를 따라 자유롭게 흘러가라는 뜻으로 류의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페라 속 비극적인 여인의 이름을 따서 류에게 붙였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뜻밖의 일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며, 운명이란 주어진 운명에서 도망치려 할 때 바로 그 도망침을 통해 실현된다.

 

은희경 작가와 함께한 이동진의 빨간책방 '태연한 인생'편을 듣다가 바로 읽기 시작하였으나 생각보다 읽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가 처음으로 카페에 나가 그때그때의 주변 흐름을 잠깐씩 붙잡아 썼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한 호흡으로 읽기가 힘이 들었다. 책을 덮은지 며칠이 지난 지금 기억에 남는 거라곤 고통과 고독의 세계, 곧 사라질 매혹과 열정, 패턴속에서도 태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간중간에 와닿은 문장들은 많았는데 그때의 순간을 읽기만 하고 책 전체의 이야기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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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 김연수 | 읽은책 2012-12-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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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저
마음의숲 | 2012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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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인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일이 벌어진다면 그게 진짜 인생이다.

 

행복과 기쁨은 이 순간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즉각적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를 기다리는 행복과 기쁨이란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겨울에 눈이 내린다면, 그날은 행운의 날이다. 내일의 달리기 따위는 잊어버리고 떨어지는 눈이나 실컷 맞도록 하자.

 

내 인생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쳐다보고 싶다.

 

내가 누구냐면 말이다, 가만히 두면 자꾸만 아래로만 내려가려는 존재다. 언덕 오르기는 내게 주어진 이 숙명을 거슬러 나를 조금 위쪽으로 옮겨 놓는 일이다. 정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뛰지 않는 가슴들도 모두 유죄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은 공기를, 더 많은 바람을, 더 많은 서늘함을 요구해야만 한다. 잊을 수 없도록 지금 이 순간을 더 많이 지켜보고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이 맛보아야만 한다. 그게 바로 아침의 미명 속에서도 우리가 달리는 이유다. 그게 바로 때로 힘들고 지친다고 해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 삶을 마음껏 누리는 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맘에 와닿는 문장이 많아서 하나씩 붙이다보니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책을 읽고 집에 와서도 되새기고픈 마음에 공책에 하나씩 옮겨적었다. 우울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예전 같았으면 이 책을 읽고 나도 달리기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멋있다 싶은 사람은 무작정 따라하기. 그러나 나는 뛰는 것보다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저자처럼 달리기를 시작하진 않겠지만 나도 내 인생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살펴보고 싶어졌다.    

 

 충동적으로 사놓은 두꺼운 인문학책들이 많은데 이렇게 나의 감성을 건드려주는 에세이가 또 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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