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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근 시인의 강물 속에 핀 꽃과 제자의 사연 | 나의 리뷰 2020-02-0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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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

신승근 저
달아실 | 2018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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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올해 첫 리뷰는 신승근 시인의 『저 강물 속에 꽃이 핀다』였습니다.

학창시절의 벗이었던 시인에게서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벗이 아니라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해서 반가웠고요.

오늘 벗들의 카톡에서 신승근 시인의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나는 오늘 너무 가열찬 글을 읽었다.

물론 이런 헌사를 받을만한 삶을 살아왔다고는 자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글이 남은 내 생에 밑줄을 그어줄 것이라 믿는다.

후생가외를 넘어 그가 내 스승이다."

 

제자가 쓴 리뷰를 보고 느낀 감동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글이기에' 라는 생각에서

그 제자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문학에 대한 이해, 스승에 대한 사랑에 놀라면서

제 블로그에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시인의 허락을 받고 이곳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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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는 꽃잎에도

이제는 지는 꽃잎에도

눈길 머무네.

퍼지르듯 주저앉은 모란꽃이나

깨끗하게 순절하는 산목련, 그

어느 것인들 목숨 건 생이

아니었으리.

 

그림자도 지쳐 시드는 햇살 속으로

작렬하듯 살 뿌리는

꽃잎을 보네.

멸망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하기로 저

혼절하는 꽃잎에야

어이 견주리.

 

생애의 절정에서 폭발하는

영혼만큼, 아름다운 것 또

어디 있으리.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 걸까. 난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들이 사람들이 보지 않거나 못 보는 것을 창조의 원천으로 삼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는데 삶이라는 게 지극히 산문적이고 다큐에 가까우니 특히 언어를 벼리고 또 벼려내는 시인이야말로 운명이다 싶다. 결이 섬세하고 예민한 시인들은 늘 시대와의 불화에 괴로워하며 그 사이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생의 전부를 바치는 사람이 아니던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어떤 공간일 수도 있고 특정한 표정이나 목소리 같은 신체적인 특징이 될 수도 있다. 또 드물게는 그의 가치관, 언어습관인 경우도 있다. 화인(火印)이 강렬하다면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마치 곰삭은 식혜나 홍어처럼 웅숭깊은 맛으로 남아 이리 말하든 저리 말하든 다 통하게 되기도 한다. 달리 부를 호칭이 마땅치 않아 애매하면 다 선생님이라 하지만 내게 生의 自存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단 한 분 신승근 선생님이셨다.

 

여고생이 반백의 나이가 되었어도 여전히 선생님은 큰 얼굴과 큰 키, 무심한 듯 말씀하시며 때때로 먼 데로 가있는 시선을 황망히 잡아오시던 교단에서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 시절엔 시인으로 사시는 선생님들이 참 많았었다. 지금도 동시와 동화를 쓰시는 외삼촌도 중학교 교단에서 정년을 마치셨는데 어쩌면 학생들이어서 야만의 시대에도 시인의 감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시인 교사와 시인을 선생님으로 둔 학생들은 시대를 딛는 내밀한 동거인이었으니 서로에게 든든한 배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88년 교육민주화를 외치시는 선생님들께 힘을 드리려고 대학 간 친구들과 강릉에서 일일찻집을 한 적이 있었는데 2집 시집에 사인을 받은 걸 보면 그때 한번 뵀던 모양이다. 까마득하게 잊고 나는 나대로 시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망각하며 살았다. 졸업 후 교육현장으로 나간 친구들에게 선생님과 함께 근무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어떤 느낌일까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작년 가을이었나 우연히 페북에서 선생님을 뵙고 너무 반가워 인사를 드렸는데 차마 친구 신청하기 송구하여 멀찌감치 근황을 짐작하기만 했다. 세 번째 시집은 품절이라 아쉽다 하던 차에 시선집을 내셨다기에 주문하여 읽다가 1,2집을 꺼내 읽다 보니 몸은 언어도 기억하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한달음에 시를 읽던 그때의 내 마음과 그리운 친구들까지 소환하게 한 것이다.

 

邊方에서

새가 한 마리 날아오른다. 邊方에서,

비 내리는 산 마루턱 등잔불이 떠오른다.

풀들이 눕고. 여름이 가고 있다.

젖은 땅 젖은 붙이들은 모두 오너라.

누가 외로운 山 하나를 불러서

邊方에서 맞아 죽은 새 한 마리를 줍겠느냐.

사금파리 하나가 하늘에 떠서

죽은 새의 깃털만 자르고 있다.

-1집 <<바람이 접시에 닿고 있을 때>>, 1981

 

세상과 인생은 그 자체로 부조리하다는 걸 깨달아가던 즈음 선생님을 만났고 시대와의 불화에도 ‘변방에서 새 한 마리 줍는’ 시적 화자와 조우함으로써 만용하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임을 깨달았다.

 

“아우라지 강뚝에 와서/굽이치는 물이 되어 휘돌아보라//가슴부터 하얀 자갈밭에 와서/맨발의 바람 되어 머물러 보라”거나 “뼈가 있다면/그 뼈로 말하라//죽은 뒤 흔들리는 달빛. 물풀처럼 우리도 흔들린다. -중략- 푸른 마타리꽃 하나가 허리를 접고, 어디메 어디메 불려가는 곳. 오,/아름답다.” ('정선아라리 4,2')

 

어쩌면 시인도 간신히 땅과 시대에 그 자신을 붙들어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엔 핍박받는 것이 분명한데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존엄을 잃지 않으셨다. 그것은 얼마나 큰 울림이었던가.

 

그러다 야자가 끝나고 가끔 바바리맨이 숨어있던 골목을 지나 달이 휘영청 떠오른 남대천 다리를 건널 때면 “아아, 달빛에 가슴 썰리는/패랭이꽃 하나야.” ('정선아라리 1')를 읊으며 덩달아 패랭이꽃이 되고 했더랬다. 어릴 땐 자신이 가장 빛나는 존재이므로 세상의 중심은 ‘나’로 말미암은 것이라 생각하는데 내가 서 있는 곳도 변방일 수 있겠구나, 어쩌면 세상의 참된 진리는 패랭이꽃이나 마타리꽃, 강가에 자갈 같은 것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시인의 1집 시집인 <바람이 접시에 닿고 있을 때>는 그렇게 나의 고3과 함께 했다. 세로 편집인 데다 활판 인쇄를 하던 시절이라 마치 점자처럼 뒷장에 활자의 흔적을 남기는데 다시 시집을 펴니 그 시절 뒷면의 오돌토돌한 글자를 더듬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랬어, 저랬어 하시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항상 “그건 무슨 뜻이냐?”, “이건 어떠냐?”하시는 것이 고아하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레테의 강은 심연이 깊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 시절의 선생님보다 더 허연 머리가 되었어도 기억을 대체하는 징검다리들이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내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내 삶의 원천이 되어준 게로구나 싶다.

 

2집 <<그리운 풀들>>(1988)은 이미 대학생이 된 후에 나온 시집인데도 한편 한 편 마치 어제인 양 기억이 새롭다. 학과가 아닌 학보사에 파묻혀 허구한 날 밤샘 아니면 술과 세미나로 살면서도 시는 꽤 열심히 읽었었구나 싶어 내 머리를 쓰담쓰담 해줬다.

 

풀꽃 · 1

걸어서 갔지만 큰 꽃들은

보이지 않았다.

민들레, 패랭이, 꽃다지만 작열했다.

숨죽이며 작은 손을 접어

인사를 했다.

공기 같았다.

 

시인의 <풀꽃> 연작시는 약한 생명에 대한 경외와 연민, 그리고 그리움이다. ‘각시풀만 홀로 있었다/아주 작은 상처의/영혼들만/홀로 있는 거’라며 상처받은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물에 빠진 구름에도/눈이 아파’하며 ‘보고도 보이지 않는다고/꽃 하나도 제 자리에 못 두는 이 땅’의 절망을 ‘닿을 수 없는 나라/그리운 풀들’이라며 체념인 듯 기다림인 듯 무심하게 펼쳐 놓는다. 마치 쟁기질하느라 흙 묻은 손 성급히 바지에 닦아내고 칭얼대는 아기 토닥거리듯. 혁명가는 내일을 위한 오늘을 말하고 시인들은 정지된 시간 속으로 살며시 들어가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들일까.

 

여고에는 처음 부임하셔서 적응이 잘 안 된다시던 선생님은 꽤 오랫동안 눈 둘 데를 찾지 못하곤 하셨는데 그래서 더 시선이 먼 데를 향했는지도 몰랐다. 한 번은 왜 선생님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수업하느냐 여쭤본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내가 팔도 길고 손도 큰데 한 손에 책을 들고 한 손을 내리고 있으면 큰 손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덜렁거리는데 그것이 멋쩍고 안쓰러워서 주머니에 넣는다고 대답하셨더랬다. 그때 시인들은 다 저런가? 하고 생각했던 것까지 떠오른다. 그 후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의 덜렁거리는 팔이 길긴 길었다.

 

‘망치에게 묻는다, 외로움에 관하여’ 연작시는 또 어떠한가.

 

“한 줌의/공기로 머문다. 세상에//주먹을 펴면/이름 모를 별들이/와 쌓인다./가슴빛 깨끗한/돌이 반짝인다.//한 줌의 공기로 아름답게,/아름다움이 아름다움처럼./세상에”라며 그리움과 외로움은 한 몸이며 결국 유리알 같은 순수함만이 빈 곳을 채울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 줌의 공기로 머무는 시인의 마음은 얼마나 충만한 것인지, 聖과 俗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부드러움만이 세상을 아니, 당신과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장난기를 감춘 무뚝한 얼굴로 넌지시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오월 저문 하늘가에/칼을 디민다./상처뿐인 감수성에/칼을 디민다.”면서 “갈매기 상처가, 내 상처보다 아름답다는//수평선 끝에 묻어있는/갈매기 눈썹이 아름답다”고 위로를 건네는구나.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을 시인학교로 돌아간 것이 틀림없을 김종삼 시인의 부고를 받은 후였을까, “절룩이는 마음들이 모여/날아가는 푸른 깃의/그대를/보았다 한다” (‘金宗三’) 했던 시인은 그토록 원하던 대로 "유년이 불쑥 해맑은 얼굴로/너른 강을 건너오고 있"('귀향')는 정선 아우라지 강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땅을 섬기고 사신다 한다. 그곳에서 “봄 파종은 대추나무에 앉은 참새가 안 보일 때까지는 해도 된다”는 기막힌 삶의 진리에 무릎을 치고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그리하여 부드러운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흙으로 돌아가 그 자신이 자연이 되고 풍경이 되어 종내는 詩가 되기를 소원하며 사시는 듯하다.

 

신승근 시인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 속으로 빠져들던 열아홉에게 어른으로서 부끄럽다고 말해준 유일한 어른이었다. 이후에 많은 책들이 나를 키웠지만 그 누구보다 삶을, 자신을 사랑하라고 가르침을 주신 스승이시다. 주어진 일상이기에 충실했던 국어시간과 두 권의 시집이 나의 뿌리가 되고 잎을 틔워올릴 수 있는 자양분이었음을 지금 문득 돌아보니 잘 알겠다.

 

선생님과 선생님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시가 있어 감수성에 상처받지 않고 어른으로 자랄 수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감히 아는 바 없이 내 멋대로 선생님의 시를 이리저리 끌고 다녀 송구하지만 詩의 소비가 아닌 詩와의 만남이 어떻게 거름으로 삶에 스며드는지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일종의 師父曲이니 널리 혜량하여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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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시절에 신승근 시인에게 국어를 배운

강미숙 님이 신승근 시인의 페북에 남긴 글입니다.

 

좋은 시를 쓰는 좋은 시인이 되었고,

좋은 제자이면서 좋은 독자를 둔

나의 좋은 벗 신승근 시인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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