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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물론 나의 추억인 세 남자의 겨울 | 나의 리뷰 2022-08-1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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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 남자의 겨울

이병욱 저
문학여행 | 2022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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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주일 전에 작가에게 선물로 받았고 이틀 만에 완독을 했다. 모두 237쪽인데 첫날 92쪽까지 읽은 뒤에 1차 리뷰를 썼으고, 다음 날 완독을 했으며, 나흘 뒤에 2차 리뷰를 써서 마무리를 지었다. 1차 리뷰는 바로 썼음에도 불구하고 2차 리뷰 작성에 나흘이 걸린 이유는……, 1차 리뷰를 너무 길게 썼기 때문이다. 5천여 자에 원고지로 25장 분량이니, 다른 리뷰의 거의 두 배 분량이 된다.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개인적으로 작가는 물론 작품과도 깊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고교와 대학의 선배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학창생활을 했으니, 고교 시절에는 같은 건물에서 생활을 하였다. 대학 시절에는 같은 과였으니 활동 공간이 비슷하다. 서로 만나서 대화를 한 적은 거의 없지만, 소맷귀만 스쳐도 인연이라지 않은가? 작가와는 시공의 인연을 통해서 아마 수백 번 이상 마주쳤을 것이다.

 

그런 인연의 작가에게 귀한 책을 받았으니 리뷰라도 써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요즘 리뷰를 쓰기는커녕 독서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으니 혹시 못 읽고 못 쓸지도 모르겠다는 조바심에 1/3쯤 읽은 상황에서 1차 리뷰를 쓴 것이다. 마무리를 못하더라도 1차 리뷰를 썼으면 성의 표시는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흘 만에 1차 리뷰와 비슷한 분량의 2차 리뷰를 썼다. 이 글은 1~2차 리뷰에서 미진했던 부분을 몇 곳 고친 뒤에 두어 항목과 몇 장의 사진들을 덧붙였다. 정리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작가와 작품과의 긴 인연에 대한 나의 관심이 그만큼 컸으므로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와 친숙한 사이였다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학창생활을 했지만 선후배의 관계이니 같은 교실에서 만난 적이 거의 없다. 또한 고교 시절에 전국적인 글짓기 대회에서 두 번이나 입상함으로써 촉망은 받은 작가에 비하면 나는 문학적으로는 투명 인간이었다.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고 할까. 작가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던 나와는 달리 작가에게 있어서 나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작가 입장에서도 고교 동문이면서 대학의 같은 과를 비슷한 시기에 함께 했던 학연은 많지 않을 테니 아마 나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작품과 만나는 인연이 생긴 듯하다.

 

춘천을 대표하는 작가라면 중고교 교과서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동백꽃』의 김유정, 현대문학에서 주목을 받았던 『우상의 눈물』의 전상국이 아닌가 싶다. 이어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한수산, 그다음 세대가 이 책의 저자인 이병욱 작가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네 분 중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춘천의 작가는 김유정과 이병욱 작가라고 생각한다. 전상국 작가는 춘천에서 학창생활을 하였으며, 지금까지 춘천에 거주하면서 원로 작가로 존경을 받고 있으나 고향은 홍천이다. 한수산 작가는 인제가 고향이며 그의 활동 무대는 춘천을 넘어서고 있다. 그에 비해 김유정 작가와 이병욱 작가는 춘천에서 성장해서 춘천을 무대로 생활하면서 춘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춘천의 작가라고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두 분 중에 애정을 느끼는 쪽은 이병욱 작가이다. 30년도 꽉 채우지 못하고 너무 일찍 떠난 김유정 작가에 비해 이병욱 작가는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춘천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을 쓰지 않았던가.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작가와의 인연 외에도 작품 속의 배경인 1973~1974년의 춘천은 나의 학창 생활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모든 공간과 시대적인 배경은 나의 체험이기도 하니, 마치 함께 성장한 이웃사촌의 일기장을 보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실명 실화 소설인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외수 작가와도 약간의 인연이 있으니 친근감이 느껴졌다. 내가 생활한 시공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보니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많았다. 그런 인연을 통해 만난 책을 모두 읽으면서 느낀 생각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반가움을 느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강원대학교에 재학하고 있으며, 가족들은 춘천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이외수 작가는 인제 출신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춘천교대에 다니다가 자퇴를 하고, 인제에서 생활하던 중에 춘천에 사는 주인공에게 의탁하고 있다. 좀 심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기생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춘천고교, 어머니는 춘천여고를 졸업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효자동, 운교동, 교동, 석사동 등의 지명들은 내가 수십 번도 더 간 곳이다. 내가 살던 곳이 효자동이기도 하니, 작품 속의 시간과 공간과 학교는 나의 생활과 일치하기도 한다. 소설을 통해 이런 작품을 만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둘째, 현대문학과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인상이 다시 떠올랐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 시골에서 성장한 나는 교과서의 작품 외에는 현대문학을 읽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학교는 물론 시골 지역에 도서관 자체가 없었으니 현대문학전집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던 중 춘천에 진학하니 학교 도서관에 현대문학전집 전질이 비치되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많은 세월이 흘렀으므로 그때 읽은 작품이나 작가들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나의 기억으로 대부분 우울하고 답답한 내용이었다.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고, 이런저런 고생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상태가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속 시원한 결말이 있는 작품은 한 편도 없었던 듯하다.

 

예를 들면 송병수의 『쇼리 킴』의 주인공은 6.25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이다. 그는 미군부대에 얹혀 지내면서 그들의 잔심부름, 구두닦이, 청소 등으로 연명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다. 그러던 중 미군부대 주변 창녀인 따링 누나를 만나서 그나마 온정을 느낀다. 따링 누나는 악성 성병 때문에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창녀촌에서 쫓겨나고 쇼리 킴은 다시 거리로 내몰린다. 그게 끝이다. 등장인물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현대문학 전집에 담긴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대부분 이런 식이다. 가난한 주인공들은 온갖 고생을 다하다 결말 부분에서까지 암담한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죽음이나 비극이 예고되어 있다. 그나마 편안하게 읽은 것이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정도인데, 이 작품도 밝은 내용은 아니다. 전처소생의 아들인 현규와 후처가 데리고 온 딸 숙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번민하다가 졸업한 뒤에 외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외국에 간다고 행복할 것 같지가 않았다.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고전소설이나 동화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현대문학 작품들은 읽고 싶지 않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예전에 읽은 현대문학 작품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나열하는 이유는 학창 시절에 읽은 이병욱 작가의 옛 작품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되어서 제목이나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지만 이야기 자체는 몰입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결말은 하나같이 어두웠던 듯하다. 지금 이 작품도 그렇다. 가난한 작가(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명 소설이니 가난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와 한심하게 보일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한 아버지, 주인공 부자보다 더 가난한 이외수 작가가 작품 속의 '세 남자'이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친구인 장호까지도 가난하다. 1/3쯤 읽은 시점에서 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훗날 작가나 이외수 작가는 나름 성공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이 작품은 1973년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아마 결말도 그리 시원할 것 같지 않다. 작가를 알게 된 뒤 반세기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이런 내용의 작품을 만나고 있으니, 이게 아마 인연인가 보다.

 

셋째, 우리 시절의 가난에 대해서 생각했다. 작품 속에 나타난 작가의 가정은 지금 상황에서는 생활보호 대상자에 가까울 만큼 가난했다. 용돈은커녕 학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가족(부모와 형제자매)의 유일한 희망은 작가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해서 교사가 되는 것이다. 또한 작가와 이외수 작가의 꿈은 멋진 작품을 발표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것이었는데, 이 작품의 시점에서는 그것이 별로 쉽지 않아 보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작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학창 생활을 했다. 내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동기동창이 108명인데, 내 기억으로 그중에서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는 30명 안팎, 고등학교까지 진학한 친구는 20명이 채 안 된다. 대학까지 마친 친구는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한 나는 상황이 괜찮은 것일까? 선친은 6.25전쟁 때 중상을 당하시고, 그 후유증으로 40대 초반에 작고하신 국가유공자이다. 나와 우리 형제들이 그나마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보훈자녀로서 학비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나도 넉넉한 가정은 아니었던 것이다. 역시 대학을 졸업한 작가도 극도로 빈곤했으니……. 그 시절의 우리나라는 그랬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다고 할까?

 

내 기억으로 1970년대까지도 걸인이 있었다. 장날이면 그 사람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구걸을 하곤 했다. 어디선가 어떤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풍문도 들리곤 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잘 살고 있는데, 왜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결말이 대부분 어두웠던 작가의 작품을 포함한 현대문학은 이런 미래를 예언하는 복선이었을까.

 

넷째, 춘천의 문화 토양에서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춘천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을 세 편 읽었다. 이완우 작가의 『누가 사랑을 저어하랴』, 이순원 작가의 『춘천은 가을도 봄』, 지금 읽고 있는 이병욱 작가의 『세 남자의 겨울』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1970년대의 춘천과 강원대학교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세 명의 작가가 1970년대에 강원대학교에서 학창생활을 했다는 것이고, 그 당시의 캠퍼스와 춘천의 분위기가 곳곳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병욱 작가의 『세 남자의 겨울』은 강원대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작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명소설로 1973년을 전후한 춘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작가 부자와 이외수 작가이다.

 

완우 작가의 『누가 사랑을 저어하랴』는 1980년을 전후해서 강원대학교(교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춘천에서 중등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은 강원대학뿐)를 졸업하고 국어교사가 된 여 교사가 학창 시절과 교단 시절에 여러 남자를 만나는 내용이 펼쳐지고 있다.

 

이순원 작가의 『춘천은 가을도 봄』은 1980년대를 전후한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주인공의 고향인 강릉과 대학생활을 한 춘천이 작품의 배경이다. 주인공들은 춘천을 무대로 사랑을 나누면서 청춘의 고뇌를 겪고 있다.

 

내가 춘천의 문화 토양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나와 연고가 있는 고향인 홍천, 살고 있는 원주와 횡성에서는 위의 세 작품처럼 우리 시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홍천과 횡성이야 군지역이니 어떤 한계가 있겠지만, 원주는 춘천보다 인구가 더 많고 역사적으로 더 유구한 곳이다. 서로 다른 작가들이 각각의 개성을 살리면서 이런 작품을 창작할 토양을 갖춘 도시, 그런 작가와 작품을 배출한 춘천에 자부심을 느껴도 되지 않을까?

 

다섯째, 실화 실명 소설이라고 해서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과 선친의 이름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인 이외수 작가의 실명을 밝혔다. 이 부분은 사실일 듯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저자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와 이외수 작가에 대한 일화들도 상당 부분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의 연애담에 등장하는 인물인 명자(작중에서 저자의 같은 과 여대생)와 영미(작중에서 저자의 첫사랑)의 이야기는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는 듯하다. 리뷰 1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저자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후배이므로 저자의 체험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학창생활을 했다. 내 기억으로 저자의 같은 과 동기 중에서 '명자'라는 여학생은 없었다. 또한 저자는 2~3년 후배인 사회교육과 후배 영미와 첫사랑을 나눈 것으로 설정되었는데, 그 무렵 강원대학교에 사회교육과는 없었다.

 

비록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이 책에서 실명을 밝히기는 곤란할 것이다. 실명 실화 소설이라고 해서 초상권이나 사생활에서 면책특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의 연애 자체가 사실이라고 해도 이름이나 학과를 바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수기나 자서전이 아니라 허구의 문학인 소설이니 당연할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실명 실화 소설'이라고 해서 작품 속의 모든 내용이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인물들도 약간의 윤색이 있었거나 여러 인물을 복합해서 재구성했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가공인물이나 상당 부분의 허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여섯째, 이외수 작가에 대한 여러 시각을 생각했다. 저자는 작품 속에서 이외수 작가가 어린 시절에 외가에서 성장했으므로 이름을 '외수'라고 했다는 비화와 함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 속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일부에서 기인으로 알려진 이외수 작가의 삶도 이해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외수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고 리뷰를 남기기도 했고, 그가 성장했던 인제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두세 번 만난 적도 있으므로 나름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병욱 작가의 이 책을 포함해서 이외수 작가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는 다른 소설도 읽어보았고, 이외수 작가와 학창생활이 겹치는 사람으로부터 견해를 들은 바 있다. 그것들을 비교해 보겠다.

 

가. 이외수 작가에 대한 나의 생각 : 대체로 긍정적이다. 호감을 갖고 그의 작품을 읽었으며, 인제에서 중등 교사를 하던 시절에 향토출신 작가로 이외수 작가를 조사해서 수업 시간에 소개한 바 있다. 또한 2009년에 네이버 명예 지식인의 날 행사에서는 나의 요청이 계기가 되어서 이외수 작가가 명예 지식인들의 책에 서명을 해주기도 했다.

 

나. 이병욱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이외수 : 술 좋아하고, 생활에 대한 대책이 없으며, 춘천 교대에 10여 년을 다녔지만 졸업을 못할 정도로 생활력이 없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문학을 좋아하고 순진무구한 면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등 대체로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다. A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이외수 : 그 작품에서는 실명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외수 작가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등장한다. 학업이나 생활에서 무기력한 것은 이병욱 작가의 작품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여성 편력이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작품에서는 문학을 좋아하는 어떤 여학생에게 빌붙어 살면서도 큰소리만 치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라. B 교사의 눈에 비친 이외수 : 나는 선배인 초등의 B 교사와 친교가 있었다. 그와 대화 중에 이외수 작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B 교사는 재학 중에 이외수 작가와 스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외수 작가를 후배들을 찾아다니면서 밥이나 술을 요구하며 무전취식하는 불량배와 다름없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동일한 이외수 작가에 대해서 보는 입장이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따라 여러 시각이 있는 듯하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마음껏 이야기를 펼치듯, 인물에 대한 평가 역시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이외수 작가가 2009년 명예 지식인의 날에 초대되어서 명예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들려준 말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겠다.

 

내가 만난 지식인

 

내가 만난 지식인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계곡으로 가서 개구리를 잡았는데, 그 소년이 위치를 지정해 준 곳에 망을 갖다 대고 그가 돌을 들추면 어김없이 개구리가 나왔지요.

 

그렇게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뒤에 나도 개구리 잡기에 대해 어느 정도 요령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개구리가 있을 법한 돌인데도 그 소년은 그대로 지나치더군요.

 

"얘야, 여기도 한 번 들춰 보자."

"에이! 거긴 없어요."

 

그렇게 몇 번 지나친 뒤에, 내가 그래도 들춰보자고 하니까, 그 소년은 그러면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합니다. 그 아이가 지목한 곳에서는 어김없이 개구리가 나오는데 내가 보자고 한 곳에서는 개구리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물어보았습니다.

"얘야, 너는 어떻게 개구리가 있고 없고를 정확히 아는 것이냐? 그 비결을 좀 알려 다오."

 

그러자 그 아이는 한 마디로 대답했습니다.

"딱 보면 알아요."

2009년 3월 14일 이외수 작가의 강연에서 갈무리

 

이외수 작가는 '딱 보면 아는 것'이 참지식이며, 그것을 깨닫기까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그 비결은 "그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 명예 지식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딱 보면 아는 경지에 이른 참지식인'이며, 그렇게 되기까지 '해당 분야를 사랑하면서 그 지식과 하나가 된 사람'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 말은 덕담이면서 그런 경지에 이르는 지식인이 되라는 격려의 메시지로 들렸다. 네이버 명예 지식인들을 위한 특강으로 알맞은 예화라고 생각했다. 이 강연을 할 때의 이외수 작가는 아마 이병욱 작가가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일곱째, 액자소설도 한 편의 작품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저자가 작중에서 쓰려는 작품이 간간이 소개되고 있는데, 내용은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과 간호장교의 사랑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 이야기가 '작품 속의 작품'의 역할을 하니 액자소설이라고 할까.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를 보완해서 독립된 작품으로 만들어도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덟째, 지적이라기보다는 아쉬움을 적는다면 배경에 대해서 보다 자세했으면, 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실명 실화 소설이다. 주인공인 작가 부자와 이외수 작가는 물론 등장인물들의 모교인 춘천고, 춘천여고, 인제고교, 강원대학 등이 실명으로 표현되었다. 효자동, 석사동, 교동, 운교동 등의 지명과 팔호광장, 춘원국도 등도 현실 그대로 묘사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겪은 그 무렵의 춘천을 기억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배경을 좀 더 사실적으로 그렸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최근에 이 책과 비슷하게 1970년대의 춘천을 배경으로 하면서 강원대학교가 등장하는 작품을 세 편 읽었다. 그중에 이순원 작가의 『춘천은 가을도 봄』에서는 육림극장, 중앙시장, 공지천 등의 풍경을 거의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그 시절의 풍경을 보는 듯했다. 작품의 재미와 함께 추억을 더듬는 매력을 느낀 것이다. 이완우 작가의 『누가 사랑을 저어하랴』는 춘천과 강원대학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주변 풍경을 그리 자세하게 묘사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쉬움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 작품은 여주인공이 여러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주제이니, 공간적인 배경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자의 『세 남자의 겨울』은 작가와 등장인물들의 학창생활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등장인물들의 여러 인연이 서린 공간을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더 강하게 현실감을 느끼면서 독자들의 향수를 자극할 것이고, 그것은 작품에 몰입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 예로 이 작품에서는 시민아파트가 등장하는데, 이 아파트는 강원대학교 부근이라서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작품에서 묘사한 시민아파트의 풍경은 내가 아는 그곳이 맞나,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 작품은 작가가 실명, 실화 소설을 표방한 작품이다. 보다 상세하면서 사실적인 배경 묘사가 있었다면, 시공에 있어서 작가와 추억을 공유했던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으리라고 생각한다.

 

아홉째, 저자의 문운이 왕성하기를 기원했다. 저자는 고교 시절에 전국 규모의 작품 공모에서 연이어 당선되었다. 학원장학회와 우석대학교에서 전국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에서 거듭하여 당선되면서 주변에서는 천재 작가의 출현에 큰 기대를 했다. 당시에는 전국 규모의 공모전이 많지 않던 시절이니 모교는 물론 지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현재의 저자는 국어교사로서 성실하게 근무하다 퇴임을 한 뒤 창작에 전념하는 동안 작가로서 나름의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고교 시절의 빛나던 문재를 충분히 발휘하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다. 이제 70대인 작가에게는 또 한 번의 학창 시절이 다가올 것이다. 부디 더 큰 꽃을 소담스럽게 피우기를 기원한다.

 

덧붙여서 저자는 학원 세대의 막내이다. 이렇다 할 볼거리나 여가를 즐길 시설이 없었던 1950~1970년대 초까지의 중고교 학생들에게 있어서 김익달 선생이 펴낸 청소년 잡지 『학원』은 유일한 벗이자 스승이었다.

 

우리나라에는 학원 세대라고 구분 지을 수 있는 특이한 세대가 있는데,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닌 지금 70대 전후의 연령층이다. 이들이 학창 시절에 애독했던 잡지가 바로 학원(學園)인데, 우리나라의 어떤 잡지도 자신의 이름을 딴 세대를 만들지 못했다. 오직 『학원』만이 그것을 이룬 것이다.

 

"한국문학사에는‘학원 세대’로 기억되는 특이한 세대가 있다. 우리는 1952년 11월 창간호부터 1979년 종간할 때까지 학생잡지 『학원』을 읽고 성장한 이들에 대해 ‘학원 세대’ 또는 ‘학원파’라고 명명한다. 김원일, 문정희, 박동규, 이청준, 조세희, 최명희, 황동규, 황석영, 이승훈, 안도연 등 일급의 문인들을 비롯해 사회 각 분야의 지성인들 가운데에는 스스로를 ‘학원 세대’라고 호명하며 무한한 자긍심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이 있다. (장수경의 『학원과 학원세대』 출판사 리뷰에서 갈무리)"

 

1960년대 말에 학원장학회의 문학상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이병욱 작가는 학원 세대의 막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 할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스스로는 학원세대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자가 뛰어난 문단 선배들의 문명을 넘어서는 작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열째,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외수 작가의 추천사가 예언으로 승화되기를 빈다. 저자가 2018년에 두 번째 작품집인 『K의 고개』를 발간했을 때, 이외수 작가는 이런 글로 추천의 마음을 보냈다.

 

"그 시절 함께 춘천을 배회하던 대다수의 문청들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시인으로 또는 작가로 데뷔해서 비중 있는 문인으로 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왠지 이병욱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소문이 들렸고 문단과는 아예 담을 쌓은 듯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이병욱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독자들의 문학적 불신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 있는 보검을 오래도록 갈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읽어 보시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소설은 문학적이면서도 감동적입니다.

 

(중간 줄임)

 

그는 오래도록 침묵하고 있었지만,  결코 녹슬지 않은 감성과 필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놀라움과 탄복을 금할 수가 없었지요.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실하게 증명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 년이 지나도 식지 않을 문학적 열정과, 만 년이 지나도 퇴락하지 않을 감성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 작품집 『K의 고개』 출간에 즈음해서 진심으로 기대와 기쁨을 표명하면서, 작가 이병욱에게 축복과 영광과 사랑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18년에 발간한 저자의 두 번째 작품집 『K의 고개』에서 이외수 작가의 추천사 갈무리)"

 

추천사에서 '그 시절'은 아마도 이 작품의 배경인 1973년 무렵도 포함될 것이다. 고인이 된 이외수 작가는 하늘에서도 저자의 '축복과 영광과 사랑'을 소망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이외수 작가의 삶을 조명했는데, 나아가 이외수 작가의 소망이 예언으로 승화되도록 정진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중학생 이상이면 읽을 수 있을 듯하고, 1970년대를 전후해서 춘천에서 학창생활을 했던 세대라면 향수를 느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이외수 작가의 숨겨진 비화와 춘천의 자랑인 김유정 문학촌의 계기라고 할 수 있는 김유정 문인비의 건립 비화 등 작품의 재미와 별도로 얻을 수 있는 앎의 즐거움들이 쏠쏠하다.

 


1972년 9월 16일에 인제 객골 분교에 소사로 근무하던 이외수 작가가

춘천에서 강원대학교에 다니던 저자가 '보고 싶다'며 보낸 엽서이다.

이 책에는 이외수 작가가 저자에게 보낸 그림도 실려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던 1973~1974년의 강원대학교이다.

이 작품은 나의 추억과도 상당수 겹치므로 

내 앨범에 있는 사진들을 갈무리해서 덧붙였다.

 

사진은……,

1. 구본관 (가동)

2. 도서관(마동)

3. 강의동(나동)

4. 임학관(라동)

5. 화학관(다동)

6. 행정본관

7. 각의 종 (당시 강원대학교의 상징)

 

* 가~마동이란 당시 강의시간표에서 표시한 약칭이다.

  그 시기에 학창생활을 한 이들에게는 가~마동이 친숙할 듯하다.

 


왼쪽 사진은 1968년 5월에 의암호 주변에 세워진 김유정문인비이다.

저자의 선친은 문인비 건립의 주무로서 건립비의 상당 부분을 부담했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은 1975년 11월에 내가 김유정 문인비를 방문했을 때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이 나의 체험과 상당히 일치하기에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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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추억을 보는 듯한 세 남자의 겨울(2) | 나의 리뷰 2022-08-0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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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 남자의 겨울

이병욱 저
문학여행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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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만에 완독할 정도로 쉽게 읽히는 책이고, 스토리도 흥미진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를 쓰기는 쉽지 않았는데, 1/3쯤 읽고 쓴 1차 리뷰에서 너무 많은 내용을 썼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마무리는 해야겠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몇 가지만 덧붙이겠다.

 

다섯째(리뷰 1에 이어 다섯째로 시작한다.), 실화 실명 소설이라고 해서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과 선친의 이름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인 이외수 작가의 실명을 밝혔다. 이 부분은 사실일 듯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저자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와 이외수 작가에 대한 일화들도 상당 부분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의 연애담에 등장하는 인물인 명자(작중에서 저자의 같은 과 여학생)와 영미(작중에서 저자의 첫사랑)의 이야기는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는 듯하다. 리뷰 1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저자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 후배이므로 저자의 체험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학창생활을 했다. 내 기억으로 저자의 같은 과 동기 중에서 '명자'라는 여학생은 없었다. 또한 저자는 2~3년 후배인 사회교육과 후배 영미와 첫사랑을 나눈 것으로 설정되었는데, 그 무렵 강원대학교에 사회교육과는 없었다.

 

비록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해도 이 책에서 실명을 밝히기는 곤란할 것이다. 실명 실화 소설이라고 해서 초상권이나 사생활에서 면책특권이 있는 것은 아니니, 그런 연애 자체가 사실이라고 해도 이름이나 학과를 바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수기나 자서전이 아니라 허구의 문학인 소설이니 당연할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실명 실화 소설'이라고 해서 작품 속의 모든 내용이 사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다른 인물들도 약간의 윤색이 있었거나 여러 인물을 복합해서 재구성했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가공인물이나 상당 부분의 허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여섯째, 이외수 작가에 대한 여러 시각을 생각했다. 저자는 작품 속에서 이외수 작가가 어린 시절에 외가에서 성장했으므로 이름을 '외수'라고 했다는 비화와 함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 속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일부에서 기인으로 알려진 이외수 작가의 삶도 이해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외수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고 리뷰를 남기기도 했고, 그가 성장했던 인제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두세 번 만난 적도 있으므로 나름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병욱 작가의 이 책을 포함해서 이외수 작가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는 다른 소설을 읽어보았고, 이외수 작가와 학창생활이 겹치는 사람으로부터 견해를 들은 바 있다. 그것들을 비교해 보겠다.

 

가. 이외수 작가에 대한 나의 생각 : 대체로 긍정적이다. 호감을 갖고 그의 작품을 읽었으며, 인제에서 중등 교사를 하던 시절에 향토출신 작가로 이외수 작가를 조사해서 수업 시간에 소개한 바 있다. 또한 2009년에 네이버 명예 지식인의 날 행사에서는 나의 요청이 계기가 되어서 이외수 작가가 명예 지식인들의 책에 서명을 해주기도 했다.

 

나. 이병욱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이외수 : 술 좋아하고, 생활에 대한 대책이 없으며, 춘천 교대에 10여 년을 다녔지만 졸업을 못할 정도로 생활력이 없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문학을 좋아하고 순진무구한 면을 지닌 것으로 묘사하는 등 대체로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다. A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이외수 : 그 작품에서는 실명을 밝히지 않았으나 이외수 작가를 연상시키는 인물이 등장한다. 학업이나 생활에서 무기력한 것은 이병욱 작가의 작품과 유사하다. 다른 점은 여성 편력이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작품에서는 문학을 좋아하는 어떤 여학생에게 빌붙어 살면서도 큰소리만 치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라. B 교사의 눈에 비친 이외수 : 나는 선배인 초등의 B 교사와 친교가 있었다. 그와 대화 중에 이외수 작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B 교사는 재학 중에 이외수 작가와 스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외수 작가를 후배들을 찾아다니면서 밥이나 술을 요구하며 무전취식하는 불량배와 다름없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동일한 이외수 작가에 대해서 보는 입장이나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따라 여러 시각이 있는 듯하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마음껏 이야기를 펼치듯, 인물에 대한 평가 역시 개인의 자유일 것이다.

 

이외수 작가가 2009년 명예 지식인의 날에 초대되어서 명예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들려준 말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겠다.

내가 만난 지식인

 

내가 만난 지식인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와 함께 계곡으로 가서 개구리를 잡았는데, 그 소년이 위치를 지정해 준 곳에 망을 갖다 대고 그가 돌을 들추면 어김없이 개구리가 나왔지요.

 

그렇게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뒤에 나도 개구리 잡기에 대해 어느 정도 요령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개구리가 있을 법한 돌인데도 그 소년은 그대로 지나치더군요.

 

"얘야, 여기도 한 번 들춰 보자."

"에이! 거긴 없어요."

 

그렇게 몇 번 지나친 뒤에, 내가 그래도 들춰보자고 하니까, 그 소년은 그러면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합니다. 그 아이가 지목한 곳에서는 어김없이 개구리가 나오는데 내가 보자고 한 곳에서는 개구리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물어보았습니다.

"얘야, 너는 어떻게 개구리가 있고 없고를 정확히 아는 것이냐? 그 비결을 좀 알려 다오."

 

그러자 그 아이는 한 마디로 대답했습니다.

"딱 보면 알아요."

2009년 3월 14일 이외수 작가의 강연에서 갈무리

 

이외수 작가는 '딱 보면 아는 것'이 참지식이며, 그것을 깨닫기까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그 비결은 "그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즉, 명예 지식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딱 보면 아는 경지에 이른 참지식인'이며, 그렇게 되기까지 '해당 분야를 사랑하면서 그 지식과 하나가 된 사람'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 말은 덕담이면서 그런 경지에 이르는 지식인이 되라는 격려의 메시지로 들렸다. 네이버 명예 지식인들을 위한 특강으로 알맞은 예화라고 생각했다. 이 강연을 할 때의 이외수 작가는 아마 이병욱 작가가 생각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일곱째, 액자소설도 한 편의 작품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저자가 작중에서 쓰려는 작품이 간간이 소개되고 있는데, 내용은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한 군인과 간호장교의 사랑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 이야기가 '작품 속의 작품'의 역할을 하니 액자소설이라고 할까. 그들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를 보완해서 독립된 작품으로 만들어도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덟째, 저자의 문운이 왕성하기를 기원했다. 저자는 고교 시절에 전국 규모의 작품 공모에서 연이어 당선되었다. 학원장학회와 우석대학교에서 전국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에서 거듭하여 당선되면서 지역에서는 천재 작가의 출현에 큰 기대를 했다. 당시에는 전국 규모의 공모전이 많지 않던 시절이니 모교는 물론 지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현재의 저자는 국어교사로서 성실하게 근무하다 퇴임을 한 뒤 창작에 전념하는 동안에, 작가로서 나름의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고교 시절의 빛나던 문재를 충분히 발휘하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100세 시대이다. 이제 70대인 작가에게는 또 한 번의 학창 시절이 다가올 것이다. 부디 더 큰 꽃을 소담스럽게 피우기를 기원한다.

 

덧붙여서 저자는 학원 세대의 막내이다. 이렇다 할 볼거리나 여가를 즐길 시설이 없었던 1950~1970년대 초까지의 중고교 학생들에게 있어서 김익달 선생이 펴낸 청소년 잡지 『학원』은 유일한 벗이자 스승이었다. 

 

우리나라에는 학원 세대라고 구분 지을 수 있는 특이한 세대가 있는데,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닌 지금 70대 전후의 연령층이다. 이들이 학창 시절에 애독했던 잡지가 바로 학원(學園)인데, 우리나라의 어떤 잡지도 자신의 이름을 딴 세대를 만들지 못했다. 오직 『학원』만이 그것을 이룬 것이다.

 

"한국문학사에는‘학원 세대’로 기억되는 특이한 세대가 있다. 우리는 1952년 11월 창간호부터 1979년 종간할 때까지 학생잡지 『학원』을 읽고 성장한 이들에 대해 ‘학원 세대’ 또는 ‘학원파’라고 명명한다. 김원일, 문정희, 박동규, 이청준, 조세희, 최명희, 황동규, 황석영, 이승훈, 안도연 등 일급의 문인들을 비롯해 사회 각 분야의 지성인들 가운데에는 스스로를 ‘학원 세대’라고 호명하며 무한한 자긍심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이 있다. (장수경의 『학원과 학원세대』 출판사 리뷰에서 갈무리)"

 

1960년대 말에 학원장학회의 문학상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이병욱 작가는 학원 세대의 막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 할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스스로는 학원세대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저자가 뛰어난 문단 선배들의 문명을 넘어서는 작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중학생 이상이면 읽을 수 있을 듯하고, 1970년대를 전후해서 춘천에서 학창생활을 했던 세대라면 향수를 느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이외수 작가의 숨겨진 비화와 춘천의 자랑인 김유정 문학촌의 계기라고 할 수 있는 김유정 문인비의 비화 등 작품의 재미와 별도로 얻을 수 있는 앎의 즐거움들이 쏠쏠하다.

 

1972년 9월 16일에 인제 객골 분교에 소사로 근무하던 이외수 작가가

춘천에서 강원대학교에 다니던 저자가 '보고 싶다'며 보낸 엽서이다.

이 책에는 이외수 작가가 저자에게 보낸 그림도 실려 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던 1973~1974년의 강원대학교이다.

나의 추억과도 상당수 겹치니 내 앨범에서 이 사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왼쪽 사진은 1968년 5월에 의암호 주변에 세워진 김유정문인비이다.

저자의 선친은 문인비 건립의 주무로서 건립비의 상당 부분을 부담했다고 한다.

오른쪽은 1975년 11월에 내가 김유정 문인비 주변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이 나의 체험과 여러 모로 일치하기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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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추억을 보는 듯한 세 남자의 겨울(1) | 나의 리뷰 2022-08-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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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 남자의 겨울

이병욱 저
문학여행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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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에게 선물로 받았다. 개인적으로 작가는 물론 작품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작가는 고교와 대학의 선배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학창생활을 했으므로, 고교 시절에는 같은 건물에서 생활을 하였으며, 대학 시절에는 같은 과였으니 활동 공간이 비슷하다. 서로 만나서 대화를 한 적은 거의 없지만, 소맷귀만 스쳐도 인연이라지 않은가? 작가와는 시공의 인연을 통해서 아마 수백 번 이상 마주쳤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와 친숙한 사이였다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학창생활을 했지만 선후배의 관계이니 같은 교실에서 만난 적이 거의 없다. 또한 고교 시절에 전국적인 글짓기 대회에서 두 번이나 입상함으로써 작가로서 촉망받던 작가와 문학적으로는 투명 인간이었던 나는 격이 다르다. 나는 작가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작가에게 있어서 나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작가 입장에서도 고교와 대학의 같은 과를 비슷한 시기에 함께 했던 인연은 많지 않을 테니 아마 나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작품과 만나는 인연이 생긴 듯하다.

 

춘천을 대표하는 작가라면 중고교 교과서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동백꽃』의 김유정, 현대문학에서 주목을 받았던 『우상의 눈물』의 전상국이 아닌가 싶다. 이어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한수산, 그다음 세대가 이 책의 저자인 이병욱 작가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네 분 중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춘천의 작가는 김유정과 이병욱 작가라고 생각한다. 전상국 작가는 춘천에서 학창생활을 하였으며, 지금까지 춘천의 원로 작가로 존경을 받고 있으나 고향은 홍천이고, 한수산 작가는 인제가 고향이며 그의 활동 무대는 춘천을 넘어서고 있다. 그에 비해 김유정 작가와 이병욱 작가는 춘천에서 성장해서 춘천을 무대로 생활하면서 춘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춘천의 작가라고 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두 분 중에 애정을 느끼는 쪽은 이병욱 작가이다. 30년도 꽉 채우지 못하고 너무 일찍 떠난 김유정 작가에 비해 이병욱 작가는 노익장을 과시하면서 춘천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을 쓰지 않았던가.

 

이 글은 리뷰가 아니다. 나는 학창 시절의 교지와 학보에서 작가의 작품을 자주 접한 것은 물론이고, 졸업 이후에도 지역 언론을 통해서 작품을 만나곤 했지만, 문학에 있어서는 작가와 비교가 안 되는 처지이다. 그런 입장에서 어떻게 리뷰를 쓸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려는 용기를 낸 이유는 작품 속의 배경인 1973년을 전후한 춘천은 나의 생활과 거의 일치하고, 또 다른 주인공인 이외수 작가와도 약간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활한 시공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실명 소설이니 리뷰는 아니라도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많았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을 펼치며 느낀 생각을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반가움을 느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강원대학교에 재학하고 있으며, 가족들은 춘천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이외수 작가는 인제 출신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춘천교대에 다니다가 자퇴를 하고, 인제에서 생활하던 중에 춘천에 사는 주인공에게 의탁하고 있다. 좀 심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기생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춘천고교, 어머니는 춘천여고를 졸업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효자동, 운교동, 교동, 석사동 등의 지명들은 내가 수십 번도 더 간 곳이다. 내가 살던 곳이 효자동이기도 하니, 작품 속의 시간과 공간과 학교는 나의 생활과 일치하기도 한다. 소설을 통해 이런 작품을 만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둘째, 현대문학과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인상이 다시 떠올랐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 시골에서 성장한 나는 교과서의 작품 외에는 현대문학을 읽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학교는 물론 시골 지역에 도서관 자체가 없었으니 현대문학전집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던 중 춘천에 진학하니 학교 도서관에 현대문학전집 전질이 비치되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 많은 세월이 흘렀으므로 그때 읽은 작품이나 작가들은 생각이 나지 않지만, 나의 기억으로 대부분 우울하고 답답한 내용이었다.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고, 이런저런 고생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런 상태가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속 시원한 결말이 있는 작품은 한 편도 없었던 듯하다.

 

예를 들면 송병수의 『쇼리 킴』의 주인공은 6.25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이다. 그는 미군부대에 얹혀 지내면서 그들의 잔심부름, 구두닦이, 청소 등으로 연명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다. 그러던 중 미군부대 주변의 창녀인 따링 누나를 만나서 그나마 온정을 느낀다. 따링 누나는 악성 성병 때문에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창녀촌에서 쫓겨나고 쇼리 킴은 다시 거리로 내몰린다. 그게 끝이다. 등장인물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현대문학 전집에 담긴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대부분 이런 식이다. 가난한 주인공들은 온갖 고생을 다하다 결말 부분에서까지 암담한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죽음이나 비극이 예고되어 있다. 그나마 편안하게 읽은 것이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정도인데, 이 작품도 밝은 내용은 아니다. 전처소생의 아들인 현규와 후처가 데리고 온 딸 숙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번민하다가 졸업한 뒤에 외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외국에 간다고 행복할 것 같지가 않았다.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고전소설이나 동화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현대문학 작품들이 읽고 싶지 않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예전에 읽은 현대문학 작품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나열하는 이유는 학창 시절에 읽은 이병욱 작가의 옛 작품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되어서 제목이나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지만 이야기 자체는 몰입하면서 읽었던 듯하다. 하지만 결말은 하나같이 어두웠던 듯하다. 지금 이 작품도 그렇다. 가난한 작가(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명 소설이니 가난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와 한심하게 보일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한 아버지, 주인공 부자보다 더 가난한 이외수 작가가 작품 속의 '세 남자'이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친구인 장호까지도 가난하다. 1/3쯤 읽은 시점에서 보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훗날 작가나 이외수 작가는 나름 성공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이 작품은 1973년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아마 결말도 그리 시원할 것 같지 않다. 작가를 알게 된 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이런 내용의 작품을 만나고 있으니, 이게 아마 인연인가 보다.

 

셋째, 우리 시절의 가난에 대해서 생각했다. 작품 속에 나타난 작가의 가정은 지금 상황에서는 생활보호 대상자에 가까울 만큼 가난했다. 용돈은커녕 학비를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 가족(부모와 형제자매)의 유일한 희망은 작가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해서 교사가 되는 것이다. 또한 작가와 이외수 작가의 꿈은 멋진 작품을 발표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것이었는데, 이 작품의 시점에서는 그것이 별로 쉽지 않아 보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작가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학창 생활을 했다. 내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동기동창이 108명인데, 내 기억으로 그중에서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는 30명 안팎, 고등학교까지 진학한 친구는 20명이 채 안 된다. 대학까지 마친 친구는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을 졸업한 나는 상황이 괜찮은 것일까? 선친은 6.25전쟁 때 중상을 당하시고, 그 후유증으로 40대 초반에 작고하신 국가유공자이다. 나와 우리 형제들이 그나마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보훈자녀로서 학비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대학을 다닐 수 있었던 나도 넉넉한 가정은 아니었던 것이다. 역시 대학을 졸업한 작가도 극도로 빈곤했으니……. 그 시절의 우리나라는 그랬다. 나라 전체가 가난했다고 할까?

 

내 기억으로 1970년대까지도 걸인이 있었다. 장날이면 그 사람들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구걸을 하곤 했다. 어디선가 어떤 사람이 굶어 죽었다는 풍문도 들리곤 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잘 살고 있는데, 왜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결말이 대부분 어두웠던 작가의 작품을 포함한 현대문학은 이런 미래를 예언하는 복선이었을까.

 

넷째, 춘천의 문화 토양에서 자부심을 느꼈다. 나는 춘천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을 세 편 읽었다. 이완우 작가의 『누가 사랑을 저어하랴』, 이순원 작가의 『춘천은 가을도 봄』, 지금 읽고 있는 이병욱 작가의 『세 남자의 겨울』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1970년대의 춘천과 강원대학교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세 명의 작가가 1970년대에 강원대학교에서 학창생활을 했다는 것이고, 그 당시의 캠퍼스와 춘천의 분위기가 곳곳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병욱 작가의 『세 남자의 겨울』은 강원대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작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명소설로 1973년을 전후한 춘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은 작가 부자와 이외수 작가이다. (아직 완독을 못했으니, 줄거리에 대한 느낌은 2차 리뷰에서 마무리하겠다.)

 

완우 작가의 『누가 사랑을 저어하랴』는 1980년을 전후해서 강원대학교(교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춘천에서 중등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은 강원대학뿐)를 졸업하고 국어교사가 된 여 교사가 학창 시절과 교단 시절에 여러 남자를 만나는 내용이 펼쳐지고 있다.

 

이순원 작가의 『춘천은 가을도 봄』은 1980년대를 전후한 시기를 다루고 있는데, 작중 주인공의 고향인 강릉과 대학생활을 한 춘천이 작품의 배경이다. 주인공들은 춘천을 무대로 사랑을 나누면서 청춘의 고뇌를 겪고 있다.

 

내가 춘천의 문화 토양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나와 연고가 있는 고향인 홍천, 살고 있는 원주와 횡성에서는 위의 세 작품처럼 우리 시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홍천과 횡성이야 군지역이니 어떤 한계가 있겠지만, 원주는 춘천보다 인구가 더 많고 역사적으로 더 유구한 곳이다. 서로 다른 작가들이 각각의 개성을 살리면서 이런 작품을 창작할 토양을 갖춘 도시, 그런 작가와 작품을 배출한 춘천에 자부심을 느껴도 되지 않을까?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아직은 모르겠다. 1/3쯤 읽은 시점에서 헤아려 볼 때, 어렵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중학생 이상이면 읽을 수 있을 듯하고, 1970년대를 전후해서 춘천에서 학창생활을 했던 세대라면 향수를 느끼며 책장을 넘길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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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농촌소설 흙무당 | 나의 리뷰 2022-08-0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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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흙무당

이석배 저
연천향토문학발굴위원회 | 201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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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배 장편소설 『흙무당』은 지인에게 선물로 받은 책이다. 책을 받았을 때는 부담스러웠다. 작품이나 작가 모두 생소한데다, 제목의 의미도 이해가 안 되며, 분량도 530여 쪽이나 되었다. 책을 펼치자니 중압감부터 느껴졌다. 그래도 아침 녘에 일어나서 읽기 시작한 책에서 느낀 마음을 적어보겠다.

 

첫째, 순식간에 빨려 들 정도로 흡인력이 있었다. 예상 밖이었다. 저자는 1929년 생으로 20여 년 전에 작고한 뒤에, 아드님에 의해서 발간한 유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소년기를 보냈으며, 1960년대 이전에 청춘기를 보낸 연배이다. 지루한 옛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뜻밖에도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저자가 60대 시절에 마지막 열정을 기울였다는 의미가 담긴 책이다.

 

주인공은 농촌과 흙을 몹시도 사랑한 50대 내외의 여성이었다. 흙에 미치다시피 빠져있고, 흙과 소통하는 듯하다 해서 동리에서는 ‘흙무당’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녀의 모습에서 나의 어머니나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흙무당은 미녀와는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해서 새마을 지도자도 아니다. 그저 억척스럽게 평생 동안 농사만 지은 우리 어머니들 같은 분이다. 어머니들의 추억을 보는 듯해서 때로는 숙연한 마음도 들었다.

 

둘째,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마음에 와닿았다. 기생충같이 흙무당(추간남)의 단물만 빨아먹는 남편 이준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가출한 장녀 초순이와 차녀 차순이, 심성과 외모 모두 나무랄 데 없는 효녀 삼순이, 아버지를 빼어 닮은 듯한 아들 달기……. 그들은 1970년쯤에 태어난 시골 아이라기보다 그보다 10년쯤 전에 출생한 세대처럼 보였다. 내 고향 마을에도 초순이와 차순이, 삼순이, 달기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준보와 추간남 같은 부부도 있었던 듯하다. 흙을 사랑했던 고향의 옛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다.

 

셋째, 책장을 넘기면서 오랜만에 행복한 종말을 기대했다. 흙무당같은 분이 행복한 삶을 살기는 쉽지 않은 나라이다. 삼순이 같은 처녀가 고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성장하기에는 우리 농촌은 너무도 안녕하지 못하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라도 그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생각을 간절히 했다.

 

모두 12부 534쪽의 이 작품은 단숨에 읽기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다. 오늘 5부 211쪽까지 읽었다. 앞으로 사흘에 걸쳐서 읽으면서 그날 그날의 느낌을 적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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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1929년생의 작가가 작고 직전인 20년 전에 쓴 소설이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때 학창생활을 했고, 1960년대 이전에 청춘기를 보냈다. 당연히 근대소설 태동기의 작품을 보는 듯한 문체가 느껴진다. 또한 고전소설처럼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어찌 보면 세련되지 못한 형식처럼 보이면서도 책장을 넘길수록 강한 흡인력을 느끼면서 매력을 발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흙에 집착하는 흙무당의 생각이 우리가 지니고 지켜야 할 농민의 생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녀의 언행이야말로 신토불이의 신념이자 실천이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등장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이 소설과 유사한 시골에서 성장했다. 흙무당과 준배의 가족은 물론 오리골의 전통적인 권세가인 윤 씨와 박 씨 일가, 지서주임, 공장의 사장 등에서 나의 어린 시절의 이웃을 만나는 듯했다. 특히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삼순이! 70년대 이전의 시골에는 어느 동리나 그런 처자가 한둘은 있지 않았을까?

 

여섯째, 한국전쟁의 비극도 실감이 났다. 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의 통치가 뒤바뀌는 가운데 각 마을에서 일어난 비극, 국군에 복무하다 부대에서 낙오되어 고향에 왔던 나의 선친도 그 비슷한 체험을 했다. 다만 흙무당의 아버지같이 비극을 당하지는 않았으며, 종전 이후 밀고자들을 용서하고 포용함으로써 이웃과 불화로 이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모두 12부 534쪽의 이 작품은 단숨에 읽기는 분량이 너무 방대하다. 이틀째에는 9부 391쪽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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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 뜻밖에 흥미진진하게 읽으면서 감동을 느꼈다. 뜻밖이라고 표현한 것은 작가도 생소한 분이고, 출판사인 고글도 메이저 업체가 아니다. 또한 인터넷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알려지지도 않은 작품이다. 내게 감동을 준 책들은 대개 ‘작가, 출판사, 지명도’ 등이 삼위일체가 되거나 최소한 한 조건이라도 성립된 경우였다. 이 작품은 그중 어느 조건도 성립되지 않은 경우이므로 재미 면에서는 거의 포기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작품에서 이렇게 큰 감동과 재미를 함께 느꼈으니 그야말로 모래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쁨이다.

 

여덟째, 흙무당의 흙사랑 외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으로 인한 아픔도 담겨있다. 삼순이의 외할아버지는 좌익으로 몰려 국군에게 죽었고, 영규의 할아버지는 반동분자로 몰려 인민군에게 죽었다. 두 사람의 죽음에는 각각 양가의 가족이 연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삼순이와 영규가 사랑을 속삭이는 것이 가능할까? 특히 흙무당은 피를 토할 정도로 반대한다. 영규는 흙무당을 설득하기 위해 이렇게 호소한다.

 

삼순 씨로부터 양가의 비극을 상세히 들었고, 저도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두 집안의 비극이요, 민족의 비극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씨와 박 씨 간에 자고로 무슨 원한이 있었겠습니까? 분단의 상황에서 양가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불행하게도 시대적 제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 양가는 공동의 희생자입니다. 때문에 이와 같은 비극도 좋게 말하면 인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양가는 서로 앙숙관계가 아니라 가장 근접한 사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동으로 두 가문을 희생시킨 원흉들에게 복수를 가해야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씨 할아버지(삼순이의 외조부)는 이승만이가 죽이고, 박 씨 할아버지(영규의 조부)는 김일성이가 죽였습니다. 그들 뒤에는 냉전체제하에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세력이 군림하면서 약소민족을 조율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씨는 노태우 정부에, 박 씨는 김일성 정부에 희생의 대가를 요구해서 보상받아야 합니다. 황당한 주장이라고 비웃겠지만, 저의 생각으로는 이와 같은 절차가 인도적 차원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404쪽)”

 

그러면서 영규는 두 가문의 원수는 이승만과 김일성이지 상대방이 아니며, 자신들의 결혼이 그런 비극적 요소를 도려내는 길이라고 역설한다.

 

물론 흙무당은 대로 하면서 영규를 몰아치지만, 영규의 호소를 들으면서 우리의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가장 큰 원수는 나라를 삼킨 일본이고, 다음 원수는 남북을 분단시킨 미국과 소련이 아니겠는가? 또한 세 번째 책임을 묻는다면 그 하수인이 되어 분단을 고착화시킨 이승만과 김일성 및 그 후계자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좌익이니 종북이니 수구니 친일파니 하면서 피해자끼리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일까? 큰 원수들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못하면서……. 이 작품과 관계없는 내용이겠지만 영호남의 갈등도 주범은 박정희와 김대중이다. 그러나 현실은 경상도놈이니 전라도놈이니 하면서 피해자끼리 아웅다웅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책에서는 그 밖에도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 등 곳곳에서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그 밖에도 군대에 간 흙무당의 아들 달기를 놓고 돈을 써서 면제를 시키지 않았다고 나무라는 부녀회장과 문답을 나누는 장면도 가슴을 치게 했다.

 

우리 얘야 벌써 옛날에 다 돈 들여 단도리 했지. 지금껏 그냥 있겠어. 무슨 수를 쓰든지 써서 군대를 빼는 게 장땡이라구. 지금 군대 가는 사람들은 정말 돈 없고, 빽없고, 권세 없는 바보들이나 가는 거라구. (부녀회장의 말 455쪽)”

 

우리 같이 무식헌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나유. 그런 것은 회장님같이 똑똑현 사람들이 하는 짓이쥬. 저희는 지금도 사내자식은 누구나 군대에 가는 걸루 알고 있쥬. (흙무당의 말 455쪽) ”

 

부녀회장의 말이 맞다. 군대는 빼는 게 장땡이다. 군대는 불쌍한 바보들이나 가는 거다. 군대 갈 시간에 공부하고 돈 벌어야 장관이나 총리, 심지어 대통령도 되고, 하다못해 큰소리치며 살 수 있고…….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선친은 한국전쟁 때 중상을 입은 국가유공자로서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40대에 일찍 떠났으며, 나와 아들은 사병으로 만기 제대를 한 우리 집안은 무엇인가?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는 바보 문중인가 보다.

 

아홉째, 우리말 속담과 토속어의 보고이다.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을 가리켜 우리말의 보고라고 격찬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몇 번이고 실감했다.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을 다시 느꼈다. 많이 쓰는 속담은 물론 속담 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속담과 관용어들이 곳곳에서 숨 쉬고 있다. 흙무당의 욕설을 듣노라면 걸찍한 각설이 타령을 듣는 듯 후련하기도 하다.

 

사흘 만에 완독한 책으로 12부 534쪽의 대작이다. 나로서는 드물게 속독을 한 작품이었다. 이 글에서는 전에 3편으로 나누어 썼던 리뷰를 이 작품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한 편으로 정리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재미와 감동과 교육적 효과가 모두 어우러진 작품이다. 쉬지 않고 토하는 흙무당의 비속어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욕쟁이 할머니의 욕도 화제가 되는 세상이다. 그것마저도 넓은 의미에서 산 공부가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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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의 기도에 대한 생각 | 나의 리뷰 2022-07-2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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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생 계단 오르기

하봉수 저
맑은샘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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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na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600620

(주소를 클릭하면 「사돈의 기도」원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여행하면서 어느 신문사 사이트에서 하봉수 작가의 「사돈의 기도」를 보았다. 하 작가는 이웃 마을에 살고 있고, 그의 작품집인 『인생 계단 오르기』를 읽고 리뷰를 쓴 인연도 있기에 관심을 갖고 읽은 것이다. 이웃사촌의 작품을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소재가 재미있었다. 기도의 소재는 대부분 주체가 자신이거나, 부모나 자녀 등인 경우가 많다. 교회나 성당에 가는 경우에는 목사님이나 신부님의 기도일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입시를 앞둔 부모나 수험생, 삶에 지치거나 구원이 필요한 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글감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사돈의 기도’를 소재로 한 것이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 작가가 기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공감했다. 작가는 6.25전쟁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너나없이 어려운 시기였다. 개인은 물론 나라까지 어려웠으므로 돈이 없으면 중등교육은 물론이고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도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저런 잡부금이 많던 그 시절에 공장에 다니던 누님의 월급으로 학비를 내던 작가는 밀린 돈을 재촉 받을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누님이 월급을 받아오게 해달라고……. 그러다 누님이 우연히 돈을 가지고 오게 되어서 학비를 해결했을 때는 기도의 힘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 시절 교회나 성당에 가면 무엇인가 얻기도 했다. 외국의 원조가 종교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목회자로부터 신심이 깊은 신자로 보이기 위한 어린 작가의 노력이 눈물겹기도 하다. 작가보다는 후배 세대이지만, 나 역시 비슷한 경우를 보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셋째, 며느리를 통한 인연이 사돈의 기도를 이해하게 된 배경도 자연스러웠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 신앙을 접하기는 했지만 신심이 깊은 편이 아니었던 듯하다.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무엇인가 얻기 위해 교회에 다닌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처자를 며느리로 맞게 되었을 때 곤혹스러운 마음, 며느리가 가풍에 적응하면서 사돈네와 친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그런 과정에 장로가 될 정도로 신심이 깊은 사돈네 교회에 나가고, 가족 모임에서 사돈에게 기도를 청하기도 하는 작가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기도란 ‘자신이 희망하는 바를 이루어지길 비는 것’이면서, ‘기도는 해결의 방법이 아니고 자기극복의 방법이면서 삶의 모색의 방법이다’라는 작가의 깨달음도 공감했다.

 

넷째, 사돈의 기도 예화가 덧붙여졌다면 더 실감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 제목이 「사돈의 기도」인데, 정작 사돈의 기도는 없었다. 사돈이 어떤 기도를 했는지, 작가가 그 기도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있었다면 독자의 공감이 더 컸으리라고 본다. 사돈의 기도 중에서 작가의 심금을 울린 기도가 있었다면, 혹시 가족들에게 큰 힘을 준 기도가 있었다면……, 그것은 독자들에게도 같은 감동과 위로를 주리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특이하게도 네 개의 군번을 가지고 있다. 사병으로 입대해서 사병 군번을 받았고, 부사관에 지원해서 근무하게 됨으로써 부사관 군번을 받았으며, 뜻한 바가 있어서 장교 시험에 응모해서 장교로 복무하게 되어서 장교 군번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역 후에는 군무원(예비군 동대장)이 됨으로써 순번(예비군 장교는 순번을 받게 됨)까지 받았으니, 작가가 네 개의 군번을 받게 된 배경이다. 작가의 그런 삶의 여정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가 『인생 계단 오르기』이다. 이 작품을 포함해서 작가의 삶과 글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 책을 펼치면 더 깊게 알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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