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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直指)란 무엇일까? | 고전문학의 향기 2009-03-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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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에는 직지심경(直指心經), 불초직지심체요절, 삼문직지 등과 같이 '직지'라는 말이 들어간 경전이 많이 있다. 直指(곧을직, 손가락지)의 한자를 풀이하면  '곧은 손가락'인데 이것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직지'는 우리나라 불교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종지(宗旨)에도 나오는 말이다. 조계종의 종지는 다음과 같다.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直指人心 見性成佛 傳法度生)

 

조계종의 종지에 대해 조계종 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이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직지인심(直指人心) 가리킴을 바로 보면 사람의 마음이 됨

부처의 교리를 생각하면서 직접 사람의 마음을 교화하고, 수행으로 인하여 마지막에는 부처의 지위(성불)를 성취한다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성품

불성을 찾으면 (견성), 부처의 지위에 이른다(성불)는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이 있으므로 잘못된 일에 유혹되거나 의심을 버리면, 자기 자신의 본래의 모습인 부처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전법도생(傳法度生) :  부처의 가르침을 전함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펴는(전법) 동시에, 부처와 역대 조사(祖師)의 오묘한 법을 스승이 제자에게 전한다.  (도생)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불법으로 제도(중생을 건져내어 깨달음에 이르게 함)하는 것을 말한다.

 

직지란 이 말들의 첫 구절로서, 불교의 가르침과 나갈 길을 압축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직지는 문자의 의미로는 '바른 가리킴' 이며, 숨어 있는 뜻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부처의 가르침이자 명령'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깊은 뜻이 있기에 세속에서는 '직지'가 '임금의 명령' 을 뜻하기도 한다.

 

*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인에서 답변했던 내용을 일부 보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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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배층의 한글 보급 노력 | 고전문학의 향기 2009-03-2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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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조선 시대는 한자를 중시하고 한글을 언문(諺文 : 상말언, 글문)이라 여겨 천하게 여기고 박해까지 했다고 믿고 있다. 과연 세종 대왕이나 집현전에서 한글 창제를 도운 학사들을 제외한 역대 왕이나 사대부들은 한글을 멸시하고 그 보급을 방해했을까?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다음을 통해 알 수 있다.

 

1. 문종의 한글 창제 협조 : 최만리의 한글창제 반대 상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세자는 공적인 일이라면 비록 아주 작은 문제라 해도 참석해서 결정하지 않을 수 없으나, 급하지 않은 일에 무엇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며 마음을 쓰시게 하시옵니까?"

여기에서 세자란 훗날 세종에 이어 5대 임금으로 등극한 문종을 말한다. 문종은 최만리의 반대 상소에 언급될 정도로 부왕의 한글 창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는 비록 2년 3개월 만에 병사하였지만, <동국정운>을 진사시 과목으로 정하고, '정음청'이란 언문 고나련 기관을 운영함으로써 부왕의 한글 창제 유지를 이어 갔다.

 

2. 세조의 한글 창제 협조 및 보급 : 세조는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로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 일로 논란이 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부왕 생존 시에 형님인 문종과 함께 한글 창제에 협조했고, 왕위에 오른 뒤에도 한글의 보급에 대해서는 세종 못지 않은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훈민정음 언해본 중 가장 중요한 해례본을 간행했다. 이 책에는 자신이 한글로 지은 석보상절과 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의 합본인 '월인석보'가 실려 있다. 한글을 위해서 다행인 것은 한글 창제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정인지, 신숙주, 최항 등이 세조의 치하에서도 여전히 권세를 유지하였다는 것일 것이다.

 

3. 경국대전의 한글에 대한 규정 : 경국대전은 조선시대의 헌법과 같은 권위를 가진 법전이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삼강행실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서울과 지방의 양반 사대부의 가장 마을대표 또는 가르칠 만한 사람들로 하여금 부녀자 어린이들을 가르쳐 이해하게 하고…이하 생략"

즉, 삼강행실을 언문으로 번역하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경국대전에는 매년 정월과 7월에 실시하는 녹사(錄事) 시험에 언문을 당당한 과거 시험 과목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것은 한글의 학습과 보급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증좌이다.

 

4. 성종, 중종 등의 언해(한문 서적을 한글로 번역)를 통한 교화 작업 : 향약집성방, 구황촬요 등 일반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약이나 곡식에 대한 서적을 국가에서 한글로  번역하여 적극적으로 반포했다. 백성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들을 한글로 번역했다는 것은, 한글의 학습을 권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5. 왕과 관리층의 교육에 필수적인 보조 자료인 언문 : 헌종 7년 10월 11일 상소문에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원자가 현재 강독하고 있는 책을 다 마치면, 언해에 잘못된 곳이 꽤 있으니  지금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한문을 배울 때 언해서가 필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6. 선조임금의 언문 교지 : 선조 임금은 왜적에게 잡혔거나 빌붙은 백성들에게 꾀를 써서 빠져나오기를 권유하는 교지를 한글로 써서 발표했다.  이것은 국가의 통치자인 임금이 한글을 통해 백성들에게 뜻을 전했음을 의미한다.

 

7. 국가 포고문을 한문과 언문으로 동시 발표 : 영조와 정조는 구휼(가난 구제)에 관한 윤음을 한문과 언문으로 옮겨서 동시에 발표했다. 비록 백성을 대상으로 실생활에 관한 내용을 적은 글이지만 한글은 한문과 거의 대등한 모습으로 조정의 발표에 쓰인 것이다 .

 

8. 외교 문서로 활용 : 경종 원년(1720년)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고부사 이이명은 왕비 책봉에 관한 청나라에서의 상황을 언문으로 써서 조정으로 알렸다. 한문으로 썼을 경우 비밀 보장에 대한 고육책에서 나온 것이지만, 언문은 외교문서로 까지 활용된 것이다.

 

9. 왕실 여성들의 제도적 언문 사용 : 조선 시대 훈민정음 보급의 일등 공로자는 왕실 여성들이다. 왕실의 여성들이 발행한 공식 문서는 언문으로 되어 있다. 수렴청정을 했던 대비나 대왕대비의 글 역시 언문으로 되어 있으니, 이것은 언문으로 된 문서가 조정의 대신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같은 명작이 나올 수 있었다.

 

10. 사대부의 한글 문학 창작 및 한글 작품에 대한 이해 : 정철, 박인로, 윤선도 등의 시조나 가사 작품 및 김만중의 송강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 등은 사대부들 중에도 한글을 한문 학습의 보조도구를 넘어 문학적으로 심취한 이가 적지 않았다는 증좌이다. 그밖에 허균과 김만중의 한글 소설 역시 같은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자료 출처 : 김슬옹의 '28자로 이룬 문자 혁명'에서 해당 내용들을 발췌하여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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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 고전문학의 향기 2009-03-2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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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5박 6일의 일정으로 중국을 여행하고 왔다. 만리장성은 8월 5일 오전에 관광을 했다. 북경에서 팔달령 만리장성까지 약 2시간 동안 관광버스로가는 도중 조선족 관광 가이드(배송수 씨)에게 많은 설명을 들었다. 그 때 들은 말 중에서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다.'라는 말의 유래담이 있기에 소개한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한국식 한자 발음이며 중국인은 '완리창청'이라고 부른다. 중국인들은 줄여서 흔히 '창청(장성)'이라고 한다. 조선족 가이드는 이 성은 총길이가 6,235km로 실제는 만 리가 훨씬 넘는 것이라는 것과, 대부분의 관광객이 보게 되는 것이 팔달령의 만리장성이라고 설명했다. '팔달'이란 사통팔달로 통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 만리장성에는 모택동의 어록이라는 不到長城非豪漢(부도장성비호한 : 만리장성에 오르지 않으면 영웅이라고 할 수 없다.)을 비석에 새긴 것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그 곳에서 사진을 찍어 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실제로 만리장성에 오르니 모택동 어록비는 상인(사진사)들이 점거하고 있어서 개인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한편,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의 유래에 대해 나는 막연하게 남녀가 함께 자면서 서로 교합하는 것을 비유한 말로 생각하고 있었다. 즉, 남녀간의 사랑이 그만큼 지극하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또, 어느 책에서는 이 속담의 유래에 대해 오랑캐의 풍습에서 나왔다는 설명도 읽었다. 오랑캐들은 단 하루를 숙박해도 경계를 위해 성을 쌓는다고 한다. 그래서, '하룻밤을 자도 만인(蠻人 : 미개한 종족, 오랑캐)은 장성을 쌓는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변해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족 가이드인 배송수 씨는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만리장성을 쌓는 일은 몇 십년에 걸쳐서 진행되는 상당히 큰 공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뽑혀 간 사람은 다시 돌아오기를 기약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대엔가 어떤 시골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 남편이 장성을 쌓는 일에 뽑혀 갔다고 합니다.

 

그 이웃에 사는 젊은이는 아름다운 부인에게 욕심을 품고 있었고요. 젊은이가 자주 유혹의 태도를 보이자, 그 부인은 그 젊은이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나를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은 잘 알겠다. 나도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남편보다 당신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 당신의 청을 들어주겠다. 그러나 당신도 알다시피 남편과의 인연이 있지 않은가?

내 마음을 전하는 글을 남편에게 보내서 지금까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 그 편지를 남편에게 전해준 뒤, 남편의 답장을 받아 오라. 당신이 그 부탁을 들어주면  평생을 함께 하겠다.’

 

그러면서 부인은 그 젊은이와 하룻밤 정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극진한 태도로 젊은이에게 사랑을 표현했고요. 젊은이는 자신을 향한 부인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부인과 맺어지기 위해 다음 날 편지를 가지고 떠났지요. 그는 장성을 쌓는 현장으로 가서, 장성의 공사책임자를 만났습니다. 그 편지를 여인의 남편에게 전해 주기를 부탁했고요.

 

그 편지 속에는 ‘제 남편은 몸이 허약하고 병이 있으니 돌려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대신 건장한 이 남자를 보내니 남편과 바꾸어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있었고요.

 

안타깝게도 젊은이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고 합니다. 장성의 공사 책임자는 그 편지를 읽어본 뒤, 그에게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냐고 물었답니다. 젊은이는 그 부인과의 관계를 묻는 것인 줄 알고 그렇다고 대답했고요. 공사 책임자는 그 젊은이를  공사장으로 보낸 뒤 남편을 돌려보냈습니다. 물론, 부부는 다시 만났고, 그 젊은이는 평생을 장성 쌓기에 보내야 했지요.

 

그로부터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속담이 생겼다고 합니다. 즉, 단 하룻밤만 맺은 인연이라도, 평생을 바쳐 만리장성을 쌓아야 할 만큼 큰 짐을 질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남녀간의 관계는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이고요.”

 

이상의 이야기가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가이드에게 이 말의 출처를 물으니, 회사(자신이 소속된 관광회사)에서 교육 받은 내용이라고 한다.  그 속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관광객들이 가장 흥미 있게 듣는 것이 이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대개의 가이드들이 애용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관광 회사나 가이드들도 나름대로 공부를 하여 관광객에게 안내를 하는 것이고, 설명하는 내용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곳에 소개한다.

 

* 자료 출처 : 중국 여행 중 조선족 관광가이드(배송수 씨)에게 07.08.05일에 들은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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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역속담 | 고전문학의 향기 2009-03-2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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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역속담(漢譯俗談)이란 우리말 속담을 한문 문장으로 옮겨 놓은 것을 말한다. 우리말 속담의 보존을 위해 조선시대 학자들에 의해 추진되었던 것인데 현묵자(玄黙子)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이담속찬(耳談續纂),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의 열상방언(洌上方言) 등 여러 권의 속담집이 전해지고 있다. 그밖에도  중국의 경서에 있는 명언이나 고사성어가 우리말 속담으로 된 것도 있다. 널리 알려진 한역속담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 去言美 來言美(거언미 내언미)
가재는 게 편이다. : 草錄同色 (초록동색)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 附肝附念通(부간부염통)
개천에서 용 난다. : 開川 龍出乎 (개천 용출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 鯨戰蝦死(경전하사)

 

공든 탑이 무너지랴. : 積功之塔不墮(적공지탑불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 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 金剛山食後景(금강산식후경)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 烏飛梨落 (오비이락)
꿩 대신 닭 : 雉之未備 鷄自備數 (치지미비 계자비수)

 

남의 잔치에 감놔라 배놔라 한다. : 他人之宴 曰梨曰柿(타인지연 왈리왈시)
낫놓고 기역자 모른다 : 目不識丁(목불식정-丁자같이 쉬운자도 모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 晝語雀聽 夜語鼠聽(주어작청 야어서청)
내 배 부르면 종 배고픈 줄 모른다. : 我腹旣飽 不察奴飢(아복기포 불찰노기)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어라. : 量吾被 置吾足 (양오피 치오족)

 

닫는 말에 채찍질 : 走馬加鞭 (주마가편)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 昔以甘茹 今乃苦吐 (석이감여 금내고토)
도둑은 뒤에서 잡지 앞에서 잡지 못한다. : 盜以後捉 不以前捉(도이후착 불이전착이)
도둑이 제 발 저리다. : 盜之就拿 厥足自足 (도지취나 궐족자마)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 始用升授 還以斗受(시용승수 환이두수)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 : 蔬之將善 兩葉可辨(소지장선 양엽가변)
등잔 밑이 어둡다. : 燈下不明 (등하불명)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 飛者上有乘者(비자상유승자)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한다. : 婦家情篤 拜厥馬익 (부가정독 배궐마익)
말 많은 집 장맛 쓰다. : 言多家醬不甘(언다가장불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 騎馬 欲率奴 (기마 욕솔노)
먼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하다. : 遠親不如近隣(원친불여근린)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 橫步行 好去京 (횡보행 호거경)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 : 渴而穿井(갈이천정)
물과 기름 사이다. : 水上油(수상유)
물이 지극히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 : 水至淸則無魚하고, 人至察則無徒니라. (수지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 予所憎兒 先抱之懷 (여소증아 선포지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 針盜盜牛(침도도우)
밤 잔 원수 없고, 날 샌 은혜 없다. : 經夜無怨 曆日無恩 (경야무원 역일무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 無足之言 飛于千里(무족지언 비우천리)
배 먹고 이 닦기 : 食梨兼而濯齒(식리겸이탁치)
백릿길은 구십이 반이라. : 行百里者 半於九十(행백리자 반어구십)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느니만 못하다. : 百聞 不如一見 (백문 불여일견)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 : 夫婦戰刀割水(부부전도할수)

 

사흘거리를 하루에 가고 열흘을 앓아 눕는다. : 三日之程 一日往 十日臥(삼일지정 일일왕 십일와)
산돼지 잡으려다 집돼지 잃는다. : 獲山猪失家猪(획산저실가저)
새가 오래 머물면 반드시 화살을 맞는다. : 鳥久止면 必帶矢라. (조구지면 필대시라.)
새벽달 보자고 해질 녘부터 나앉는다. : 간신월좌자석(看晨月坐自夕)
서당개 삼년에 풍월을 읊는다. : 堂狗風月(당구풍월) / 堂狗三年 吟風月 (당구삼년 음풍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 三歲之習 至于八十(삼세지습 지우팔십)
쇠귀에 경읽기 : 牛耳讀經 (우이독경)
식후 담배 한 모금 : 食後不燃 偶然得病 必然客死(식후불연 우연득병 필연객사-식후에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우연히 병을 얻어서 반드시 객사한다.)

 

‘아’다르고, ‘어’다르다. : 於異阿異(어이아이)
아는 것이 병, 모르는 것이 약 : 聞則疾 不聞藥 (문즉질 불문약)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 不燃之突煙不生(불연지돌연불생)
안되는 사람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 窮人之事 飜亦破鼻 (궁인지사 번역파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 牝鷄之晨(빈계지신)

 

업은 아기 삼 년 찾는다. : 兒在負三年搜(아재부삼년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 水深可知 人心難知(수심가지 인심난지)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 十斫木 無不斫 (십작목 무불작)
열 사람이 한 도둑 막기 어렵다. : 十人守之 不得察一敵(십인수지 부득찰일적)
열 사람 한 술 밥이 한 그릇 푼푼하다. : 十飯一匙 還成一飯 (십반일시 환성일반)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 : 邀處無 往處多 (요처무 왕처다)
오이 밭에서는 신을 들이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 : 瓜田에 不納履하고 李下에 不整冠이라. (과전에 불납리하고 이하에 부정관이라.)
옷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오랠수록 좋다. : 衣以新爲好 人以舊爲虎(의이신위호 인이구위호)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으랴. : 王侯將相이 寧有種乎리오. (왕후장상 영유종호)
우는 아이가 젖 준다. : 泣兒受乳(읍아수유)

 

우물안 개구리 : 井底之蛙(정저지와) / 井蛙不知海 夏蟲不知氷 (정저부지해 하충부지빙)
우연히 가니 형방이 있는 곳이다. : 偶然去刑房處(우연거형방처)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 對笑顔唾亦難(대소안타역난)
윗 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 上濁 下不淨 (상탁 하부정)
음지가 양지 된다. : 陰地轉陽地變(음지전양지변)

 

자식을 길러봐야 어버이의 공을 안다. : 養子息知親力(양자식지친력)
잠결에 봉창 두드린다. (잠결에 남의 다리 긁는다.) : 睡餘爬錯 正領之脚 (수여파착 정령지각)
제 논에 물 대기 : 我田引水 (아전인수)
제 버릇 개주나? : 渠所習 不以與狗 (거소습 불이여구)
제사를 돕는 사람은 음식을 맛보고 싸움을 돕는 사람은 다친다. : 佐祭者嘗 佐鬪者傷(좌제자상 좌투자상)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다. : 良藥은 苦於口나 利於病이요, 忠言은 逆於耳나 利於行이라. (양약 고어구 이어병 충언 역어이 이어행)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 陰地轉 陽地變 (음지전 양지변)

 

참새가 방앗간 그저 지나갈까. : 未有瓦雀 虛過雄閣 (미유와작 허과웅각)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 百里者 半於九十 (행백리자 반어구십)
첫술에 배부르랴. : 才食一匙 不救腹飢 (재식일시 불구복기)
친구 따라 강남 간다. : 隨友適江南 (수우적강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 種瓜得瓜 種豆得豆 (종과득과 종두득두)

 

하늘 보고 쏘아도 과녁에 맞는다. : 仰射空貫革中(앙사공관혁중)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 天雖崩 牛出有血(천수붕 우출유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 一日之狗 不知畏虎(일일지구 부지외호)
호랑이 굴에 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 : 不入虎穴 不得虎子(불입호혈 부득호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 虎死遺皮 人死遺名(호사유피 인사유명)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 談虎虎至 談人人至(담호호지 담인인지-호랑이를 말하면 호랑이가 오고, 어떤 사람을 말하면 그 사람이 온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이다. : 谷無虎 先生兎 (곡무호 선생토 - 호랑이가 없는 골짜기에서 스승은 토끼이다.)

 

* 자료 출처 : 제가 아는 상식과 인터넷의 여러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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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위인들과 인터뷰를 하는 방법 | 고전문학의 향기 2009-03-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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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또는 사회과 등 기타 교과)에서는 학생들에게 역사적인 위인들과 인터뷰를 해오라는 과제를 내주기도 한다. 이런 과제는 많은 시간이나 생각이 필요한 것이므로 주말이나 방학 과제로 내주는 경우도 많다. 학생 입장에서 그런 과제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터뷰'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인터뷰란 다른 말로 면접·대담·회견 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사람이나 단체에 대하여 좀더 깊이 파악하거나, 알려지지 않았자만 유용한 가치가 있는 내용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 사람이나 단체의 관련자(대표나 실무 책임자)를 직접 만나서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교사가 과제로 내주는 '위인과의 인터뷰'는 학생에게 그 위인을 직접 만나서 조사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 되는 위인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역사적인 인물이거나, 생존해 있다고 하더라도 어린 학생의 입장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위인과의 인터뷰'를 과제로 내주는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 위인에 대해 좀더 깊이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인터뷰 형식으로 상상속에서라도 위인과 직접 대화를 나눠본다면 그 인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아울러 인간적으로 친밀해지는 가운데, 위인의 생애에서 더 큰 교훈이나 감동을 받으라는 뜻이다.

 

이런 과제를 받은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도 있다.

"도대체 본 적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위인과 어떤 형식으로 인터뷰를 하라는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과제를 해결해 보자.

 

1. 해당되는 위인에 대한 자료를 여러 방면으로 조사를 한다.

위인을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자료(위인전, 사전, 인터넷 사이트 등)는 많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그 위인에 대한  여러 자료(성장, 가족관계, 업적 그의 사상 등)를  찾을 수 있다.

 

2. 해당되는 위인에 대해 알아야 할 내용, 또는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을 정리해 본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질문을 만들어 보자.

가. 그의 훌륭한 점은 무엇인가?

나. 그가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했는가?

다. 그가 업적을 남기기까지 겪어야 했던 어려운 점은?

라. 내(또는 많은 사람들)가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마. 기타 그의 특별한 점이나,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 등 

 

3. 위인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이 작성한 질문에 대해 답을 정리한다.

2항의 질문에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통해 답을 써본다.  이 때는 자신이 해당 인물의 입장이 되어서, 그 위인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할 지를 추측해서 쓴다. 정확한 답이 나올 수 없는 문항은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보다 흥미있고, 명확한 답이 나올 질문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4. 작성된 질문과 답면을 바탕으로 인터뷰 형식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이 때는 작성자의 소설적인 창의성이 들어갈 수도 있다. 자신이 타밈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가서 해당 위인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형식일 수도 있고, 그 위인을 현대로 초대해서 만나는 형식일 수도 있다.

 

이 때는 실제로 그 위인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므로 약간의 허구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그 허구도 사실에 바탕을 둔 상상이거나, 그럴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예)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성왕과 인터뷰를 할 경우에 "지금 심경이 어떤지요?"라는 질문에 대해 동명성왕이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에 몹시 속이 상한다." 라고 답을 하는 것은 가능하다. 동명성왕의 입장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에서 아름다운 선녀들을 만나서 사랑에 빠져 있다." 라는 답변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5. 완성된 인터뷰에 오류가 없는지 검토한다.

해당 인물과 실제로 만났다면 인터뷰를 어떻게 진행하고 무엇을 물을 것이며, 그의 대답이 어떤 식일까 등을 생각하며, 인터뷰 내용이 타당성이 있는 지 등을 점검한다. 이 때 맞춤법에 어긋난 것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은 기본이다.

 

특히 터무니없는 허구적인 사실이 포함되지는 않았는지. 사실을 왜곡한 것은 없는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참고로 예전에 오픈백과에 올렸던 위인과의 인터뷰 한 편(안시성의 영웅 양만춘 장군)을 덧붙인다. 나는 이 글에서 중학교 교사로서 양만춘 장군을 만나서 안시성 싸움의 경과를 듣는 형식으로 작성했다.

 

안시성 싸움의 경과는 백과사전 등에 있는 내용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나, 양만춘 장군과 당태종이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소설적으로 꾸민 허구이다. 또한 나와 양만춘 장군의 대화 역시 소설적인 구성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상상은 용인이 되리라고 본다.

 

 

 

안시성의 영웅 양만춘

 

목연 (이하 문) : 저는 강원도의 시골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목연입니다.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전국의 학생들에게 장군의 위업을 전하기 위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우선 안시성의 승전을 축하합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라는 당태종을 격퇴한 것은 청사에 길이 빛날 쾌거였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인지요?
양만춘 장군 (이하 답) : 감사합니다. 동명성제 등 열성조의 가호와 성안의 모든 주민들이 군사들과 함께 일치단결한 결과였습니다. 나는 그저 그것을 이끌어 냈을 뿐이지요.

 

: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장군의 위업은 한민족의 가슴에 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장군께서 지키신 안시성이란 어떤 성입니까?

: 안시성은 당태종 침공 당시 인구 약 10만에 이르던 고구려의 영지입니다. 지금은 애석하게 중국에 속해있지요. 행정구역으로는  랴오닝성[遼寧省] 하이청[海城] 남동쪽에 있는 잉청쯔[英城子]이고요.

 

: 당태종은 안시성에 왜 침공한 것인가요?

: 당태종의 목적은 안시성이 아니었습니다. 643년에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해달라는 신라의 요청을 받은 당나라는 우리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차후 신라를 침범하지 말도록 권유하였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에 불응하자 당나라는 고구려의 대막리지인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영류왕(榮留王) 살해 및 대신(大臣) 학살사건의 문책을 표방하고 644년 11월 당 태종이 직접 3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구실에 불과했습니다. 당태종의 야심은 고구려를 아예 멸망시키겠다는 더러운 것이었지요.

 

: 전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 645년(보장왕 4년) 4월부터 당나라 침략군은 우리 고구려의 개모성(蓋牟城:瀋陽 동남쪽) ·비사성(卑沙城)·랴오양[遼陽]·백암성(白巖城)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6월에는 제가 성주로 있는 안시성을 공략하기 위해 진격하였지요.

: 그 때까지 고구려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이 없었습니까?

: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안시성은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요충이었습니다. 이 곳이 무너지면 평양성도 안전할 수 없으니까요. 조정에서는 북부욕살(北部褥薩) 고연수(高延壽)와 남부욕살 고혜진(高惠眞)을 대장으로 한 15만의 군사를 원병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군에게 패했고, 오히려 3만 6800명의 장졸을 이끌고 항복하고 말았지요. 그로 인해 우리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당군에게 포위된 것입니다.

 

: 그랬군요.  몹시 힘든 상황이었는데요. 성의 공방전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 당태종은 이세적(李世勣)을 시켜 안시성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하였지요. 그 휘하 장수 도종(道宗)은 먼저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안시성 남쪽에 토산(土山)을 쌓아올려 점점 성높이와 같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군사들도 역전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성 안에서도 이에 따라 성을 높여 막았지요.  당군은 하루에 6∼7차례 충거(衝車 : 큰 나무로 성에 충격을 주는 공성기 攻城器)·포거(抛車:돌을 날리는 공성기) 등을 동원하여 성을 파괴했고요. 그러나 우리도 성 안에 목책을 세우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 정말 눈물겨운 분전이었군요. 그로 인해 당군은 퇴각한 것입니까?

: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군도 끈질겼습니다. 당나라 장수 도종은 연인원 50만을 동원하여 토산을 높이기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작전으로 높은 곳에서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이었지요. 그것을 간파한 나는 함께 흙을 쌓아서 성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성안의 흙에는 한계가 있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 그야말로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네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 안시성 사수의 최대 위기였습니다. 결국 당군은 60여일 만에 안시성보다 높은 성을 쌓기에 성공했으니까요. 성을 완성한 당군은 부복애()라는 장수로 하여금 토산의 정상을 지키게 했습니다. 다음날이면 안시성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할 계획이었지요.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투쟁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며, 만사가 끝장나는 것이었습니다.

 

: 소름이 끼칠 만큼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지요?

: 그러나 고구려의 혼이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갑자기 토산이 무너졌습니다. 아마 급히 쌓느라고 기반을 튼튼히 하지 못한 탓인 듯합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군사들을 성에서 내보내 토산을 뺏는데 성공했습니다. 당군으로서는 그야말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지요.

 

: 생각할수록 통쾌한 일이었습니다. 당군은 그래서 퇴각한 것입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당태종으로서는 포기하기에는 그 동안 안시성에 들인 노력이 너무나 컸겠지요. 당군은 토산을 탈환하기 위해 3일 동안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결사적으로 사수하였지요. 그야말로 뺏느냐, 뺏기느냐를 판가름하는 마지막 사투였습니다. 날마다 6∼7회의 가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우리 군사들의 용맹성에 당태종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당군이 안시성을 포위한 지 3개월이 지났고, 때는 9월에 이르렀습니다. 차가운 추위가 만주 벌판을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병마()의 양식은 떨어지고, 힘들게 쌓은 토산마저 빼앗겨서 군사들의 사기마저 저하된 당태종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서는 눈물을 머금고 철군을 결정했을 것입니다.

 

: 그런 격전 중에 장군의 활솜씨가 당태종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면서요.

: 그렇습니다. 조급해진 당태종은 몸소 성아래까지 와서 독전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것이 내 눈에 띄였고요. 나는 활을 날렸고, 그것이 당태종의 눈에 정통으로 박혔습니다. 침략자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자 하늘의 심판이었지요. 아마 그것도 철군을 결정한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였으리라고 봅니다.

 

: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후련한 마음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침략자에 대해 가장 통쾌한 교훈을 준 장면이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군께서는 철군하는 당태종을 전송하셨다고요?

: 적장에 대한 예우였습니다. 철군을 앞둔 당태종은 아쉬운 마음으로 성을 돌아보고 있을 때였지요. 이미 여러 정보를 통해 당군의 퇴각을 알고 있던 터라, 그에게 전송의 말을 전한 것이지요?

 

: 그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요?

: 비록 적장이지만, 몸까지 상하고 쫓겨가는 그가 불쌍했습니다. 또 나 역시 같은 장수로서 패장의 비참한 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왕으로서의 예우를 갖추고, 위로의 말을 해주었지요.

  "잘가오, 당나라 황제시여, 옥체를 상하심은 전쟁의 소치이지 소장의 사감은 아니었습니다. 모든것을 잊으시고, 먼길을 조심해 가시기를…."

 

: 당군이나 당태종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 적장들 중에는 격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신들에 대한 비아냥이라고 본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나 당태종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성주는 훌륭한 분이시오. 그대의 용맹성은 역사에 길이 전해질 것이요. 앞으로도 고구려 왕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꽃다운 이름을 보존하시오."

  그는 적()일지라도 나의 영웅적인 지휘력에 감동했다면서 비단[] 100필과 함께 고구려 국왕에 대한 충성을 기렸습니다.   

 

: 다시 생각해도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전과였습니다. 한민족의 지혜와 용맹성을 만천하에 과시한 쾌거에 대해 다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저희 후손에게 전할 말씀이 있으면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 동명성제께서 세우시고, 광개토태왕 등 역대 열성조들이 호령하던 이 만주는 한겨레의 유산입니다. 나와 우리 고구려 병사들이 피땀으로 지켰던 이 안시성을 비롯한 고구려의 옛 땅을 대한의 후예들이 꼭 다시 찾아주기를 빕니다.

 

: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또한, 긴 인터뷰에 응해주신 점에 대해서도 거듭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고맙소. 웅비하는 한겨레의 기상을 지하에서마 성원하며 지켜보겠소.

 

 

양만춘 장군과 인터뷰를 하는 형식의 위 글은 안시성 전투를 중심으로 전쟁의 진행 상황을 알아보는데 중점을 두어서 작성했다. 위와 같이 어떤 사건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문답을 나눌 수도 있고, 그 인물의 일생 전반에 걸쳐서 화제를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인물의 연애담이나 가정사에 대한 질문도 한두 꼭지 포함시키면 흥미있는 인터뷰가 되리라고 본다.

 

그밖에 해당 인물의 심리적인 상황이나 사상에 대해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그 인물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을 벗어나서 지나치게 허구적인 내용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 자료 출처 : 지식 Q&A에서 답했던 것을 일부 보완했으며, 내용은 제가 알고 있는 상식과 예전에 작성했던 오픈백과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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