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국어샘 목연 문답
http://blog.yes24.com/yyhome53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목연
인식의 물결이 출렁이더니 사바의 시름이 끊이지 않네. 지혜의 맑은샘 한번 엉기니 인연의 비바람 스스로 멎네.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3·4·9·10·12·13·14·15·16·17기

5기 일상·교육

7기 사진·여행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59,666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작가 블로그
전체보기
홀로 나누는 문답
나의 생각과 독서
오늘 읽은 글
인터넷 서점 이야기
나의 장서
파워문화블로그
목연의 생활
교과서 속의 문학
현대문학의 향기
고전문학의 향기
가톨릭문화의 향기
은막의 향기
교단의 향기
정운복샘의 편지
읽고 싶은 책
나와 인연을 맺은 책들
팔려는 책
내가 아는 정보들
오늘의 역사
나의 리뷰
나의 리뷰
내사랑 만화
독서참고자료
교과서에 실린 작품
나누는 즐거움
영화 이야기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공포감 코로나결혼식 마스크기념사진 마스크축가 신랑신부예외 포항필로스호텔 강림면행정복지센터 강림보건지소 강림119지역대 오충순
2020 / 0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나의 친구
나의 친구들
敎學相長
작가 블로그
최근 댓글
발간시점과 책 제목이.. 
나태주 시인은 쉬운 .. 
저와 목연님이 바라보.. 
와~ 네이버 지식이 55.. 
조국의 반대가 왜 윤.. 
새로운 글

가톨릭문화의 향기
신부님이 싫어서 다른 성당으로 나간다면? | 가톨릭문화의 향기 2018-11-11 18:44
http://blog.yes24.com/document/1082658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저는 한때 네이버 지식인에서 전설적인 활동을 하였는데 *^^*
그때는 답변이나 오픈백과 작성도 열심히 했지만,
질문도 정기적으로 하였지요.
특히 가톨릭 디렉토리에서 많은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들 중에는 '신부님이 싫어서 다른 성당으로 간다면?'이란 것도 있었지요.


10년 전에 올렸던 질문인데 누군가 여기에다 의견을 남겼더군요.

지금 다시 읽다 보니 많은 생각이 떠올라서 제 블로그에 옮기는 것이고요.

,·´''`°³о♡,·´''`°³о♡,·´''`°³о♡,·´''`°³о♡,·´''`°³о♡


목연의 질문 : 신부님이 싫어서 다른 성당으로 간다면?

저는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신부님이 있습니다.
주사파 운운하면서
극우적인 발언을 자주 하면서 방송을 가끔 타는 신부님인데요.
만약에 그 신부님이 우리 성당에 오셔서 미사를 드린다면,
차라리 다른 성당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요.
 
그러면서도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가톨릭 신앙을 거부한 것도 아니고,
그 신부님의 성직 생활에 대해 어떤 방해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정치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싫을 뿐이다.
어떤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자유인 것처럼,
어떤 신부님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나의 자유다.
싫어하는 신부님에게 성체를 받는다면
오히려 마음이 무거울 테니 피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질문입니다.
그런 제 생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겠지만,
고백성사를 보아야 할 정도의 죄일까요?
 
오늘 미사 시간에 시골 본당 신부님이 오셔서 미사를 드렸기에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에 그 신부님이 내가 싫어하는 신부님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그 미사에 참례하지 않고
다른 성당으로 갔다면,
그것이 신앙적인 잘못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³о♡,·´''`°³о♡,·´''`°³о♡,·´''`°³о♡,·´''`°³о♡

 

답변 A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형제님, 저는 무어라 드릴 말씀이 마땅히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잘 정리된 김웅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의
강론 글을 빌려 올립니다.
잘 읽어 보니 무언가 와닿는 게 많았기에
같은 걸 느끼시리라 믿습니다.
 
(중략)
사탄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자와 양을 이간질 시키고 서로 갈라놓게 만듭니다.
얼마나 많은 성당이 서로 반목하고 피를 흘리고 사는지 모릅니다.
어느 쪽 잘못이겠습니까?
같은 사제 입장이라고 해도

아무리 잘 봐 주려고 해도 철딱서니 없는 사제, 수도자들도 있습니다.

옛날부터 자식은 아비를 잘 만나야 되는데

그 아비가 아무리 못났다 하더라도

자식이 아비를 때릴 수는 없습니다.
못났다고 아비를 감옥에 가둘 수 없습니다.
자식은 아비를 위해 기도하고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서울에 피정을 시키러 갔을 때 피정 시간이 좀 남아서

그 동네 아는 신자 집에 차(茶) 한 잔 마시러 들어갔습니다.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사람이 나오지 않고

아파트 문은 열려 있길래 들어갔더니

현관 안에 신발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몇 번 헛기침을 했지만 말들을 하느라고 제가 문 밖에 서 있는 걸 몰라서
본의 아니게 현관 앞에 서서 2, 30분 동안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천주교 신자들이 구역모임을 하느라고 모여 있었는데

주제가 뭐였냐,하면 본당신부 욕하는 거였습니다.
신부 소리도 안 하고 “그 인간, 그치, 그거 언제 가?”더군요.


저는 현관에 서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본당신부가 어떻게 처신했길래

어쩌다 신자들에게 저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가!’

잠시 조용해지길래 그때야 큰 목소리로 기침을 했습니다.
으음, 흠흠~”

어, 손님 오셨나 보지?”
현관 앞에 내가 장승처럼 서 있으니 주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아유, 신부님 언제 오셨어요?”
“한 30분 되었다.”
“그럼……. 저희들 하는 말 다 들으셨어요?”
“그럼 뚫린 귀인데 못 듣겠니?”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안에 있던 여자들이 튀어나가기 시작하는데,

못 나가게 하려고 내가 신발을 다 흩어버렸어요.
“안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자기들이 지은 죄가 있는지라 제 앞에 일곱 여자가 쪼르륵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도 저런 소리 듣지 않고 살아야겠다, 라고 반성을 했소.

그런데 당신들에게 물어봅시다.
본당신부님이 그런 모습을 보였을 때 당신들 중에 감실 앞에 와서

예수성심께 우리 본당신부님 살려달라고

눈물로 기도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보시오.”


없지요?
감실 앞에서 기도했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신부, 난도질 안 합니다.

당신들 중에 신부님이 사람 입에 오르내릴 때,  묵주를 붙들고
성모님, 우리 신부님 일어서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면

그렇게 모여 앉아가지고 신부를 토막 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본당신부들 말고도 여러 신부님들을 겪었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여러 신부님들을 겪을 거예요.
그러나 사제 한 사람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사제 하나가 예수님을 다 못 보여 주어요.
내가 피정 다니면 피정 끝나고 신자들이 내 손을 잡고
'이고, 신부님 본당 신자들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감곡에 가서 살고 싶어요.'

나는 속으로 이러지요.
‘너도 와서 살아봐라!’
예수님이 본당신부를 해도 반은 본당신부 편이 아닙니다.

그전에 젊은 신부 시절에는
‘왜 이유도 없이 내가 자기들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름대로 열심히 사목하는데 나를 씹고 돌아다닐까!’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러나 세월이 지나 보니까 ‘씹는 놈은 누가 와도 계속 씹더라!’
예수님이 본당신부로 부임을 해도 씹는 놈은 이가 부러질 때까지 씹어요.
이제는 그것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안 받아요.
다시 말하면 어느 성당이던지

100% 본당 신부 편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본당 사제에게서 예수님의 한 조각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 신부님은 성인 사제입니다.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발을 보여주고 갑니다.
- 성질은 괴팍한데 가정방문은 끝내 줘.
- 레지오 단원이 병자 방문 가면 벌써 신부님 다녀가셨대.

참 부지런 떠는 신부님들 있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일 년에 한 번씩 가정방문 다녀요.
그렇게 부지런한 것, 아무나 못해요.
예수님의 발바닥 보여주고 가는 신부가 있어요.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 착한 심성을 닮은 신부님이 있어요.
강론은 지지리도 못해, 그런데 그 신부님 다 좋아해.
너무너무 착해~~
그 신부님 곁에만 가도 착한 게 뚜두둑~ 떨어져.
‘우리 신부님, 참 착해!’
강론 못하는 게 다 덮어지는 거야.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 보여 줘요.
그 신부님 만나려면 사제관 가는 것보다

성당으로 찾아가는 게 훨씬 빨라요.
늘 빈 성당 안에 틈날 때마다 감실 앞에서 예수님 친구가 되어드려.
그 모습을 보고 신자들이 하나둘씩

그 뒤로 성체 조배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해요.
예수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제도 있어.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입을 보여주고 가요.
입만 열었다 하면 말씀의 카리스마를 받아서

사람을 뒤집어 놓았다~ 바로 세웠다~ 울렸다~ 웃겼다~
삶을 변화시키고 치유시켜줘요.

아무리 못된 사제라 해도 여러분이 못 보았을 뿐이지.

예수님의 한 조각도 안 보여주는 신부님은 없어요.

며칠 전에 인터넷 카페에 어느 신자가 글을 하나 올렸는데
제목이 ‘호랑이 신부님’이었지요.
어느 날 신부님이 한 분 부임해 오셨는데

너무나 근엄하고 무섭게 생겨서 자기는 근처에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었대.
그런데 언제 그것이 다 무너졌느냐!
고백소에 들어갔는데 그렇게 자상하게 성사를 봐 주시더래.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그 신부님한테 위로를 받고 나왔대.
그때부터 ‘아. 내가 저 신부님한테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어느 신부님이나 예수님의 한두 조각씩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제껏 겪었던 사제들의 조각조각 기억들…….
여러분이 겪고 살았던 사제들의 한 조각 한 조각을

여러분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분의 영혼의 도화지에 모자이크를 하면

그때야 예수님의 모습 한 조각이 만들어져요.

다시 말하면 사제는 사제단으로 존재할 때 그리스도의 실체가 만들어지지
사제 한 사람으로 예수님 전부를 다 보여줄 재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사제들이 인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일 때 돌로 치지 마세요.
그건 기도하라는 뜻이지, 그 사제를 내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제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힘들 때마다 일어서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는 우리 신자들
지금도 나를 위해 묵주 들고 있는 내 어머니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우리 레지오 할머니들…….
그분들의 모습을 보고 지치고 힘들 때 일어나는 거야.
목사님들은 괴롭고 힘들면 집에서 위로라도 받잖아!

신자들의 기도를 먹고 살아가는 게 사제입니다.
신자들이 사제들을 지켜주셔야 된다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동네 어귀에 가면 동네우물이 있었어요.
사제는 어떤 존재냐?
공동우물과 같은 존재지, 개인 수도가 아닙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와서 퍼가는 공동우물이 바로 사제예요.

본당에 이런 말 저런 말 나오는 것 보면, 물론 그 사제 잘못도 있어요.
어느 신부님은 어느 신자를 편애한다!
다른 신자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그 신부에게 잘 보이려고 여러 가지를 한다.
그런 것 때문에 본당에 분열이 생기고, 신자들 사이에 상처를 받고…….
사제는 공동우물이라는 것,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날입니다.
사람에게는 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영은 영성과 인성으로 분리됩니다.
여러분, 인성과 영성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영성보다 수백 배 중요한 것이 인성입니다.
인성이 개떡이 되어 있는데 어찌 영성생활을 하겠습니까?
인성이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데 무슨 영성생활을 하겠습니까?
세례 받고 2~ 30년, 50년이 지나도 왜 예수님께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왜 맨 날 그 모양 그 꼬락서니인가!
그것은 인성 속에 있는 상처가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성 안에도 생각이 나는 상처가 있고,

무의식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상처가 있을 거예요.
무의식 속에 있는 상처를 예전에는 가계 상처라고 했지만

지금은 주교님들이
그 단어를 기복이 되기 쉬워서 금지하고 안 씁니다.

무의식 속에 있는 상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1살 2살, 내가 기억 못 하는 상처도 분명히 있다, 이겁니다.
의식이 생기면서 아버지한테 받은 상처, 엄마한테 받은 상처,
오빠한테 받은 상처, 신자 생활하면서 교우들에게서 받은 상처,
사제에게 받은 상처. 수녀들에게 받은 상처…….
의식 속에 또렷이, 또는 무의식 속에서,

돌에 새겨 놓은 상처가 바로 인성의 상처예요.

이 인성의 상처가 해결이 안 되면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학공부를 20년, 30년으로
늘린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사제로써 올바로 살아갈 재간이 없습니다.

신학교 교수들을 피정을 시키고 영성지도 신부들을 면담을 해보면
그 신부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것이 뭐냐?
신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신학생들의 인성은 손을 댈 수가 없다는 겁니다.
본인들이 찾아와서 마음을 오픈하지 않는 한,

지금 저 신학생 뱃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길이 없대요.
남들 하는 것처럼 기도하고 공부하고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되어 독서직 받고,
시종직 받고, 부제품 받고 사제가 되어요.
그런데 뱃속에 다이너마이트가 몇 개씩 들어 있어.
그게 언제 터질지 몰라!
꼬리 딱 내리고 세월 지나가면 사제가 돼요.


‘내 신부만 한 번 되어봐라!’
속에서는 피를 철철 흘리는 인성의 상처가 있는데

그것 해결을 못하고 신학생 생활하고…….
수녀원에서도 마찬가지지요.
오픈하지 않는 한 그 속을 어떻게 압니까?
무슨 가시가 잔뜩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어린 시절에 허구한 날 빚쟁이들이 집을 드나듭니다.
빨간 압류 딱지가 붙고,

무능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 때문에 돈에 한이 맺힌 아이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왜 저렇게 무능해!’
‘세상살이가 재미가 없겠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왔다고 합시다.

하느님은 동기가 불순하더라도 그 동기를 가지고 부릅니다.
신학교에 들어와서 정화를 시켜야 되는데 그 속에 있는 걸 그대로 담고
‘내 신부만 되어봐라!’
이런 사람이 사제가 되면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강론 대에서는 흑백논리로 나갑니다.
부자는 마귀, 없는 자는 천국 가고 부자는 지옥 간다!
어릴 때부터 돈에 대한 한이 맺혀 있기 때문에 강론도 흑백논리로 나갑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본당신부님, 여러분들이 보는 사제, 수녀님들이 보여주는 그 인성,

그 마음은 신학교 들어오기 전에, 수녀원 들어오기 전에

그 아버지, 엄마한테서 그대로 받은 겁니다.

신학교에서는 한 사람, 한사람 속을 다 뒤집어 낼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기본적인 인성은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받은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사랑이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신부님도 사랑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사제가 되더라도 굉장히 차갑고 무섭습니다.
그건 수녀들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본당에 많은 수녀님들이 지나갔을 거예요.
어떤 수녀님은 이목구비는 뚜렷하고 예쁜데 곁에 갈 수도 없지요.
찬바람이 쌩쌩~~ 불어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톡톡 쏴부치기 일쑤입니다.
잘 되던 공동체도 그 수녀가 들어가서 한 번 휘저으면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어요.

어떤 수녀님은 참 호박 덩어리같이 생겼어도

그렇게 엄마 같고, 누님 같고 언니같이 편해!
본당이 깨져도 그 수녀님만 들어가 휘저으면 본드가 되어서 다 붙어.
사랑이 많아, 그저 다 주고 싶어가지고~

말 한마디 하더라도 그렇게 정이 있어.

그 사람의 마음은 대개는 얼굴에 나타난다고 그러지요.
다 맞지는 않지만 많은 경우에 그대로 드러날 때가 많아요.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돼요.
(중략)

 

* 다른 답변들도 많았는데, 어떤 이유인지 올라가지가 않네요.

다른 답변들을 보시려면 네이버 지식인에서 직접 보시기를…….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902&docId=49404193&ref=me2lnk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        
연광흠 신부의 '너는 나의 종' 음반 출시 | 가톨릭문화의 향기 2017-01-12 22:16
http://blog.yes24.com/document/921053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생활성가 노래패 ‘FOR’로 20년간 활동해 온

연광흠 신부(대전교구 봉산동 성당 주임)님이

신의 이름을 건 앨범 '너는 나의 종'을 처음으로 냈다고 합니다.


연 신부님은 2016년 12월 30일 자신이 사목하고 있는 봉산동 성당에서

1집 앨범 봉헌 미사를 드리면서 신년음악회를 열었답니다.

이날 그는 트로트풍의 ‘주님은 내비게이션’을 포함해서

“너는 나의 종” 앨범 에 담긴 곡들을을 선보였다고 하고요.


앨범의 취지에 대해 연 신부님은 이렇게 밝혔다고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서로 다르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포용이 풍요로움으로 성장한다고 깨달은 것처럼

나의 성가를 통해 기쁜 신앙의 풍요로움을 드리고 싶다”

신기하네요.

나와 성이 같고 이름이 비슷하면서

같은 신앙까지 지니고 있는 분이 앨범을 냈다는 소식을 들으니 *^^*

나는 연광흠 신부님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씨는 인구가 많지 않고,

한 할아버지의 혈통을 이어 받은 단일본입니다.

나의 형제 항렬은 촌수가 아무리 멀다고 해도 50촌 이내이고요.

귀한 신부님이 되신 아우님의 음반 출시를 축하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은혜가 신부님의 영혼과 육신은 물론

신부님의 음성과 음반에도 가득 담기기를 기도합니다.

* 자료 출처 : 글의 내용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배선영 기자의 글에서 참고했고,

동영상은 연광흠 신부님이 유튜브에 올린 것을 옮겼습니다.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412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렘브란트-탕자의 귀환 | 가톨릭문화의 향기 2012-01-02 20:35
http://blog.yes24.com/document/588251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렘브란트가 그린 명화 '탕자의 귀환'입니다.
루가복음 15:10~15:32절에 있는 내용이고요.

 

어느 부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큰아들은 아버지를 도와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아버지께 재산 분배를 요구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몫을 챙긴 뒤에 집을 떠나지요.
그는 얼마 동안은 즐거운 나날을 보냅니다.
하지만 허랑방탕하게 낭비한 돈은 곧 사라지게 되고요.

빈털털이가 된 작은아들은 남의 집에 머슴살이를 합니다.

행랑방에서 자면서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지요.
그제야 뉘우치며 집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나는 그 아버지 품을 버리고 떠난 탓에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내가 아버지께 가서 사정하리라.'

 

작은아들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엎드려 사죄의 말씀을 올리고요.

 

"아버지여!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감히 아들이라 말할 수도 없사옵니다.
저를 품꾼의 하나로 여기시고 거두어 주옵소서."

이 그림은 돌아온 아들을 사랑으로 맞으며 큰 잔치를 열어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처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큰아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함께 그림을 감상해 볼까요.

아버지 시선을 보세요.
아버지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선이 없음을 알게됩니다.
매일같이 아들이 떠난 길,

그리고 다시 돌아올 그 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눈이 짓물러 멀게 된 아버지의 눈은 초점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시력을 상실한 노인은

눈이 멀기까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말해준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손을 보세요
아들을 감싸 안고 있는 아버지의 손은 서로 다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 손은 힘줄이 두드러진 남자의 손이고
오른쪽 손은 매끈한 여자의 손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강함과 어머니의 부드러움을

화가는 이 손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작은아들의 머리를 보세요.
죄수와도 같이 삭발한 머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뉘우치는 모습입니다.
그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어머니의 뱃속에 머물고 있는 태아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래의 고향인 하느님 품을 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돌아온 작은아들은

누더기의 속옷을 걸치고 겨우 몸만 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는 빡빡 깎여 있습니다.
그 동안 그가 감옥에 있었는지 수용소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모습은 개성을 박탈 당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황갈색의 찢어지고 핏기 어린 속옷은

그의 참담했던 생활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신발이 벗겨진 왼발은 상처투성이고,
오른발은 망가진 신발이 겨우 부분적으로 감싸고 있어
그의 삶이 얼마나 가난에 찌들렸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잃은 자의 모습입니다.
더구나 작은아들의 머리는 엄마의 자궁에서 갓 태어난 아기의 모양이고
얼굴은 태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렘브란트는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긴 인간의 모습을
엄마의 자궁 속에 있던 아기의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이신 하느님의 품에 안긴 인간을 그린 것이지요.

이번에는 큰아들을 살펴 볼까요.
그는 작은아들의 귀향에 대한 목격자입니다.
이 목격자는 아버지와 달리 아무런 기쁨 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습니다.

이 그림의 주제는 분명 작은아들과 그를 안고 있는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 전체의 오른 편에서 약간 거리를 두고 서있는 큰아들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큰아들은

작은아들보다 훨씬 아버지를 닮은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수염을 길렀고 붉은 겉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적 유사성이 둘 사이의 공감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얼마나 다릅니까?
아버지는 작은아들을 향해 몸을 굽히고 있습니다.
반면에 큰아들은 꼿꼿하게 서있고
긴 지팡이는 그의 자세를 더욱 강하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큰아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스스로 주님의 선택을 받은 척 교만에 빠진 채
가난하고 억압 받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기성 교회
현대의 바리새이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봉사의 마음을 잊어 버린
회칠한 무덤같은 신자들의 모습이 아닐지요.

(저는 자신이 큰 권세라도 갖고 있는 양 

감히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어떤 사람을 연상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보세요.
렘브란트가 그린 아버지의 모습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 안에 드러나는 신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염을 기른 반 실명 상태의 노인,
황금빛의 옷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돌아온 자식을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절대적인 자애와 조건 없는 사랑,

영원한 용서와 같은 신성의 실재를 보게됩니다.

여기서 인성과 신성, 부서지기 쉬운 연약함과 강인함,
늙음과 영원한 젊음이 함께 표현되고 있습니다.
거의 눈 먼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의 등을

육체적인 시력이 아니라  내적인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그림의 핵심은 아버지의 손에 있습니다.
이 손에 모든 빛이 모여있고
이 그림의 다른 두 목격자들의 시선도 아버지의 손에 쏠려 있습니다.

그 안에서 자비가 몸을 취한 의미와 화해와 용서,
치유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반쯤 장님인 노인이 흐느끼면서 아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상처받은 아들을 축복하는 모습이 표현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위로 받는 아들뿐만 아니라

위로를 하는 아버지도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권위의 남성상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것은 이 그림의 손에서부터 드러나는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버지의 두 손은 서로 다르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들의 어깨를 만지는 아버지의 왼손은 매우 강하고 근육질입니다.
손가락들이 펼쳐져 있고 아들의 등과 어깨를 넓게 감싸고 있습니다.
일종의 누르는 힘과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 특별히 엄지손가락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오른손은 얼마나 다릅니까?
이 손은 누르거나 잡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매우 세련되고 부드러우며 섬세합니다.
손가락들이 모아져 있고 아주 우아합니다.

이 손은 아들의 등 위에 부드럽게 얹혀져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안도감과 위로를 주는

어머니의 손인 여성의 손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 그림의 아버지처럼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너무도 늦게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지금에야 겨우

어떤 의미를 느끼게 되었네요.

 

제 블로그를 찾은 손님들께서는

좀 더 일찍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 채시고
이그림과의 만남이
그분의 품에 안기는 은혜와 축복의 인연이 되기를 빕니다.

주여!
올해는 당신 품에 돌아가서 안기고 싶습니다.
받아 주옵소서.

 

자료출처 : 렘브란트의 그림은 인터넷 게시판에 떠도는 것이며,

  내용도 어디선가 본 것을 토대로 제가 약간 고쳤습니다.

  새해가 되니 갑자기 신앙의 그림자가 느껴져서 여기에 올려 봤습니다.

 

* 렘브란트 판 레인(또는 램브란트 판 레인)은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7.15~1669.10.4]

  네덜란드의 화가입니다.

  그는 회화가 성숙함에 따라 외면적인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내면적인 것,

  인간성의 깊이를 그리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지면서

  종교적(또는 신화적) 소재나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유화와 에칭에서 유럽 회화사상 최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고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4)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서석천주교회의 추억 (31/마지막) | 가톨릭문화의 향기 2011-10-15 20:43
http://blog.yes24.com/document/527662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제 일기장에서 나눈 문답입니다.

목연샘!

그대의 고향 서석천주교회에서의 추억을 들려줄 수 있는지요?

--------------------


나의 고향 서석,
그리고 신앙의 터전이었던 서석천주교회의 추억을 펼치려면
며칠 동안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정겨웠던 분들의 사랑은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고요.

그러나 아쉽게도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가 많지 않고
저의 기억력 역시 좋지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부분이 잊혀졌고,

이곳에 적은 내용도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30회에 걸쳐 연재하는 동안 이곳에 올린 80장 가까운 사진들이

저와 추억을 공유했던 분들에게는 아름다운 기억을 돌아보는 자료가 되리라고 봅니다.

고향을 생각하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뒷날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면
다시 덧붙이게 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쉬움을 접으며 고향의 성당 이야기는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서석천주교회의 추억 (30) | 가톨릭문화의 향기 2011-10-15 20:33
http://blog.yes24.com/document/527660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제 일기장에서 나눈 문답입니다.

목연샘!

그대의 고향 서석천주교회에서의 추억을 들려줄 수 있는지요?

--------------------


서석천주교회는 내고향인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에 있습니다.
서석면 최초의 천주교 신자였던 선친께서
공소에서 본당으로 발전하기까지 주축의 한 분으로 활동하셨고,
나는 선친의 영향으로 초창기의 주일학교 학생이자
중등부 학생회 활동을 하기도 하였고요.

내게 있어서 선친을 비롯하여 임숙녀 회장님, 조필립보 신부님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신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추억들을 이곳에 옮겨보겠습니다.

         춘천교구의 열 분의 신앙선조들


천주교 춘천교구 사목국에서는

춘천교구 7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선조 우리터전>이라는 책자를 펴냈습니다.

이 책에는 교구 설정 70주년 동안
모범적인 신앙 활동을 펼치신 열 분을
신앙의 선조로 소개하고 있고요.
이 열 분은 주교님 두 분과 신부님 두 분,
그리고 평신도 여섯 분입니다.

이 열 분 중에는 저에게 견진성사를 주신 구토마스 주교님.
저에게 첫영성체를 해주신 조필립보 신부님,
저에게 유아세례를 주시고 교리를 가르쳐 주신 임숙녀 전교사님,
저의 선친이신 연규필 회장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분들이
열 분 중에 네 분이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선조 우리터전
춘천교구 사목국에서 교구설정 70주년을 맞이하여
2010년 3월에 펴낸 기념 책자입니다.


우리선조 우리터전에 실린 네 분
위의 두 분은 구 토마스 주교님, 조 필립보 신부님,
아래 두 분은 임숙녀 전교사님, 연규필 회장님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책자에 실린 열 분 중에
제가 정리한 것은 저의 선친에 대한 것밖에 없으므로
이곳에서는 선친에 대한 내용만 소개합니다.
이 글은 2009년 7월 12일과 7월 19일에
춘천교구 주보에 실렸을 때 춘천교구 사이트에서 옮겼습니다.


             연규필 안드레아(Ⅰ) 1930. 7. 25 ~ 1974. 4. 28
                          -2009년 7월 12일-

 

연규필 안드레아 회장은 1930년 7월 25일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수하리에서 태어났다. 연회장의 부모는 전혀 종교를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당연히 연회장 자신도 신앙과는 무관한 성장기를 보냈다. 더구나 강원도 산골에 교회란 찾아볼 수 없었고 온갖 미신과 무속이 성행하던 때였다. 훗날 연회장은 그런 환경에서 자란 자신이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연회장은 해방 후 비교적 어린 나이에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인제군 신남면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군에 입대한 얼마 후 전쟁이 일어났고, 전쟁은 그의 모든 삶을 바꾸어 놓았다. 전쟁 중에 그는 전선의 한 가운데에 있었고, 매우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양쪽 다리에 총상을 입게 되었다.

 

후방의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전시의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치료는 불가능했고, 결국 두 다리 모두를 절단해야 했다. 젊은 나이에 다리를 잃는 치명적 상처 속에서 그는 하느님을 만났다.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던 중 천주교를 알게 되어 세례를 받은 것이다. 하느님은 그를 복음의 사도로 쓰시기 위해 먼저 당신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섭리 하셨다.

 

상이군인으로 고향에 돌아온 연회장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그 무엇을 찾게 되었고, 세례 받은 신앙에 따라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서석에는 성당은커녕 천주교 신자 한명 없었다. 동네에 교회라곤 감리교 하나뿐이어서 그곳을 찾아가 성당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성당은 없으니 그냥 감리교에 나오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으나, 연회장은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며 물어물어 성당을 찾았다.

 

결국 1956년 홍천성당을 찾아 조선희 필립보 신부를 만난 연회장은 조신부에게 서석에 성당을 세워줄 것을 간청했다. 그 당시 죽음의 행진을 거쳐 3년 간의 전쟁포로 생활에서 생환한 조신부는 새로운 사목적 열정으로 홍천지역에 대한 선교활동을 모색하는 중이었다. 지리적으로 매우 넓고 교통이 불편하여 복음의 씨앗이 전혀 뿌려지지 않았던 서석 지역에 대한 선교에 어려움을 겪던 조신부에게, 연회장의 존재는 하느님이 보내주신 선물이었다. 조신부는 즉시 서석 지역을 답사한 후 성당 부지를 매입했고, 임숙녀 보나 회장을 전교회장으로 임명하여 서석에 파견하였다. 이로써 서석 지역 복음화를 위한 세 명의 사도가 함께 활동하게 되었다.

 

서석에 공소가 설립되었고 연회장은 공소회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공소 초기 선교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미신이 만연한 시골에서 외국인 사제와 젊은 여성 전교회장, 그리고 목발을 한 공소회장에게 전교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도우심과 연회장의 굳은 믿음은 차츰차츰 그 결실을 맺어 갔다. 예비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세례 받은 새 신자들이 또 다른 예비자를 교회에 데려 왔다. 젊은 청년들이나 어린 학생들도 성당에 나오게 되었고, 차츰 공소의 틀이 갖추어 지기 시작했다. 처음 공소를 시작한 초가는 날이 갈수록 좁아져, 결국 조신부의 결정으로 장차 본당으로 승격한 후에도 쓸 수 있는 공소 경당을 건축하게 되었다.

 

 

                   연규필 안드레아(Ⅱ)
                          -2009년 7월 19일-


홍천본당 주임 조선희 필립보 신부의 지원으로 서석공소를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가난한 살림에 건축비를 부담할 수 없었던 신자들은 대신 자신들의 몸으로 온 정성을 다했다. 평일에는 순번을 정해서, 주일에는 모든 교우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곡괭이나 삽, 호미를 들고 터를 닦고 흙을 옮기며 성전을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 본격적인 건축이 시작된 후에는 강에서 자갈을 주워 오고, 돌을 깨고 벽돌을 찍는 등, 비신자들도 감탄할 개미역사가 계속되었다.

 

두 다리에 장애가 있던 연회장은 직접 노동에 참여할 수는 없었으나, 신자 공동체를 이끌며 문제를 해결하는 등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가끔은 너무 오래 서 있다 보니 의족에 닿은 살이 갈라져 피가 나기도 했다. 연회장을 중심으로 하나가 된 신자들의 헌신적이고 눈물어린 노력으로 마침내 1958년 10월 30일 서석공소의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연회장은 서석공소의 회장으로 오랫동안 교회를 위해 봉사했다. 평상시에는 공소예절이나 모임을 주도하고, 주임신부가 오는 날이면 모든 신자들에게 연락하여 미사를 준비시켰다. 심지어 수업 중인 학생들도 미사에 참례할 수 있도록 직접 학교를 찾아가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회장의 열성적인 활동과 봉사의 결과 1965년 9월에는 생곡에도 공소가 설립되었고, 1968년 5월 드디어 서석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신자 한 명 없던 지역에 연회장이 조신부를 찾아가 성당을 세워줄 것을 간청하여 공소가 설립된 후 열두 해 만의 일이었다.

 

본당으로 승격한 후 연회장은 본당회장이 되어 여전히 교회를 위한 봉사를 계속했다. 일찍이 어린 나이에 결혼한 연회장은 자식들을 위한 신앙교육에도 매우 엄격했다. 미사가 있는 날이면 공심재를 지키기 위해 아예 아침식사를 굶기기까지 할 정도였다. 자녀들을 성당에 보낼 뿐 아니라 비록 어린아이들이라도 교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봉사는 알아서 하도록 가르쳤다.

 

세상일에서도 항상 바쁘게 살던 연회장은 늘 전쟁으로 인한 부상의 후유증으로 고생했다. 그러던 중 어린 아들을 잃는 인간적 상처를 당하면서 갑자기 건강이 나빠졌고, 짧은 투병 기간을 거친 후 1974년 4월 28일 마흔다섯의 젊은 나이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연회장과 더불어 활동했던 임숙녀 보나 전교회장은 이렇게 그를 회고했다. “연회장은 참으로 훌륭한 주님의 사도였다. 생각해 보면 서석본당의 기원은 우리나라 초대교회의 그것과 유사했다. 최초로 세례 받은 이승훈 베드로가 선교사의 파견을 요청하여 조선교회가 시작되었듯이, 연회장 역시 그러했던 것이다. 처음 조신부를 찾아왔을 때 그는 하반신을 나라에 바친 스물다섯의 젊은이였다. 그리고 나머지 상반신은 하느님 사업에 봉헌했다.” 절망의 나락에서 하느님을 만나 나머지 삶을 그분과 함께 살았던 연규필 안드레아 회장은 주님이 뽑아 세우신 믿음의 사도였다.


 춘천교구 사이트에 실린 연안드레아 회장

 2009년 7월 무렵 춘천교구 사이트에서 캡처했습니다.


* 자료 출처 : 천주교 춘천교구 주보(2009년 7월 12과 19일 2회 연재)와

  춘천교구 사이트에서 옯겼습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트랙백이 달린 글
스프링복 이야기
일의 선후
스크랩이 많은 글
[서평단 모집]★문재인 대..
[서평단 모집]★나태주★..
[서평단 모집]『미안하다..
[서평단 모집]『명작의 공..
[서평단 모집]★천년의상..
많이 본 글
오늘 155 | 전체 7350239
2007-03-12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