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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까지 내어주는 나무 | 정운복샘의 편지 2020-06-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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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한샘고등학교 정운복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글들을

제 블로그에 소개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여러모로 일이 밀려서 두어 달 동안 밀려 있네요.

 

정운복 선생님은 우리 문화신문에도 매주 칼럼을 연재하고 계시는데

2020년 6월 1일 칼럼을 소개합니다.

----------------------------------

그루터기는 나무가 잘려나가고 땅에 박힌 뿌리만 남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루터기에는 나이테(연륜)가 드러나 있어

그 나무가 지나온 세월을 짐작할 수 있지요.

한때의 성장과 영화로움을 뒤로한 흔적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이 지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마지막은 이러합니다.

사랑하는 소년에게 열매와 나뭇가지 몸통까지 다 내어주고

그루터기가 된 사과나무는

이제 늙어 아무런 욕망도 남지 않은 소년이 찾아왔을 때

평평해진 몸통을 펴며 여기 앉아 편히 쉬라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노라고...

그 사랑의 깊이가 너무 깊어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식물은 생명의 유연성을 자랑합니다.

동물에 비하여 이동의 자유가 없는 식물을 표현할 때

"식물인간", "식물국회" 등등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동원하지만

실제로 유전자지도를 그리면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동물은 작은 상처에도 목숨을 잃기 쉬운 반면에

식물은 몸통이 통째로 잘려나가 그루터기만 남은 상태에서도

싹을 틔워 생을 이어가는 삶의 유연성이 있는 것도 장점이지요.

 

산을 오르다보면 톱으로 쓱쓱 베어간 흔적의 그루터기를 만납니다.

그루터기만 보고 살아있는 나무를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위풍당당했던 굳건한 역사의 단면은 쉬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만물 불문미악 개유요용처(萬物 不問美惡 皆有要用處)라 했습니다.

만물은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간에

모두 다 요긴하게 쓰이는 곳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루터기는 오랜 세월을 지낸 만큼

다리 아픈 사람에게 쉼을 제공하기도 하고

개미나 놀래기가 깃들어 살도록 서식처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길 가에 놓인 돌 하나 풀 한포기도 의미가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의 위대함을 봅니다.

세상엔 무시당해도 좋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자료 출처 : 우리문화신문의 정운복의 아침시평에서 갈무리했습니다.

   주소를 클릭하면 다른 시평들도 볼 수 있고요.

http://www.koya-culture.com/news/article_list_writer.html?name=%EC%A0%95%EC%9A%B4%EB%B3%B5+%EC%B9%BC%EB%9F%BC%EB%8B%88%EC%8A%A4%ED%8A%B8&user_no=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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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어 축제에 다녀와서 | 정운복샘의 편지 2020-02-28 11:32
http://blog.yes24.com/document/1214938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다음은 춘천 한샘고등학교 정운복 선생님이

2020년 2월 17일에 제게 보내준 글월입니다.

----------------------------------

안녕하세요.

 

화천 산천어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130만 명이나 다녀가는 축제를 진행한다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 한 일입니다.

 

지난 주말 지인과 함께 축제장을 찾았습니다.

따뜻한 겨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환경단체의 동물보호 주장의 악재 속에서

열기가 예전만 하지는 않더군요.

사람이 너무 많아 북적이고 주차할 때도 없고 줄이 길어지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명제가 의심되기도 하는데

나름 쾌적해서 좋았습니다.

 

따뜻한 겨울, 얼음이 얼지 않은 덕에

임시 설치된 가교 위에서 낚시를 하였습니다.

요즘 TV에서 정글의 법칙이나 도시 어부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마음속에는

수렵 및 채집 본능과 같은 DNA가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산천어를 잡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겠지요.

 

낚시는 루어라로 부르는 인조 미끼를 사용하는데

아래위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고패질을 해야 산천어를 유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낚여져 올라오는 산천어를 보면 부러움이 들기도 하지요.

연어과이고 송어만큼 큰 산천어를 낚아 올릴 때 손맛의 짜릿함을 기억합니다.

따뜻한 날씨 속에서 한 시간 반 동안 네 마리나 낚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회센터에서 회를 떴는데

먹다 지쳐 결국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잡을 때는 적어서 걱정이었는데 먹을 때는 많아서 걱정이더군요.

살아가면서 욕심을 줄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또한 생각해 보면 산천어를 잡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겠지만

잡히는 산천어에겐 갑자기 닥치는 횡액이 되겠지요.

같은 현상이라도 입장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지는 해석은

우리네 인생에서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축제도 끝나고 봄이 멀지 않았습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이

이 힘든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목연 생각 : 많은 생각을 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잡을 때는 적어서 걱정이었는데 먹을 때는 많아서 걱정…….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을 아주 좋아했지요.

젊은 시절에는 벽 한 쪽을 책으로 가득 채운 서재를 갖는

낭만적인 꿈을 꾸기도 했고요.

지금은 벽 한 쪽이 아니라 사방을 책으로 채우고도

둘 곳이 없어서 창고와 침대 밑 등이 책상자로 채워져 있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책이 나오면 책값 때문에 망설였는데,

지금은 저 책을 사서 읽은 뒤에는

어디에 두어야 하나가 큰 걱정일 지경입니다.

 

살아가면서 욕심을 줄이는 것은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산천어축제는 다행입니다.

코로나19 창궐 이전에 끝났으니까요.

다른 축제를 포함한 지역 경제가 큰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는 옹호하면서 중국 탓만 하는 야당 정치꾼,

코로나는 야외에서 안 걸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이비 목사,

전국적인 코로나 강타의 원인이면서 사과는커녕

자신들이 최대 피해자라고 하는 어느 종교를 보면서

그저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지나가겠지요.

우리가 단결해서 슬기롭게 대처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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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동락 | 정운복샘의 편지 2020-02-26 15:23
http://blog.yes24.com/document/1214224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다음은 춘천 한샘고등학교 정운복 선생님이

2020년 2월 13일에 제게 보내준 글월입니다.

----------------------------------

안녕하세요.

 

가끔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고백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눈물 흘릴 때 조용히 손수건을 내미는 친구도 좋지만

같이 울어주는 친구가 더 좋습니다.

 

비를 맞고 서 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는 친구도 좋지만

같이 비를 맞아주는 친구가 더 좋습니다.

 

항암치료로 모든 털이 다 빠졌을 때

조용히 가발을 내미는 친구도 좋지만

미용실에서 머리를 홀랑 밀고 민머리로 나타난 친구가 더 좋습니다.

 

맹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나라 선왕은 사냥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개인 사냥터를 만들고

그 안에 온갖 짐승을 넣어 사냥을 즐기곤 했지요.

그런데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는 맹자에게 묻지요

주나라 문왕의 사냥터는 사방 70리였는데 백성들이 작다고 여기고

저의 사냥터는 사방 40리 밖에 안 되는데

크다고 여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맹자는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 나라에 들어오면서 나라에서 금하는 것을 물어보니

왕의 동산이 사방 40리인데 동산 안의 사슴이나 고라니를 죽이는 자는

살인죄와 마찬가지로 다스린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나라 안에 사방 40리의 함정을 만들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크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왕은 사방 70리의 사냥터를 갖고 있었지만

백성들이 꼴 베고 나무하며,

꿩과 토끼 등 동물을 잡는 것을 같이했으니

백성들이 작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더불어 하는 것,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고요.

성어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빛을 감주고 티끌 속에 섞여있다는 뜻이지요.

자신의 뛰어남을 드러내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대함은 지극히 평범한 것일 수 있습니다.

머리를 숙이면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겸손으로 더불어 살아야 함을 생각합니다

 

* 목연 생각 : 나는 교사로 있을 때

교실 청소를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퇴임 직전에는 그런 일이 많았는데,

나의 경우는 여민동락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청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가정에서 청소를 거의 안 했는지

아이들에게만 맡기면 쓸었는지 닦았는지 분간이 안 되었으니까요.

내가 함께 청소를 하면

아이들도 그런대로 열심히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교사의 임무가 청소를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공부건 청소건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사의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밀린 터에

매일 교실 청소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고요.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도록

거기까지만 지도를 했어야 하지 않나,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하는 것이

과연 잘한 것인가, 그런 생각도 드는군요.

 

아직 정답은 모르겠습니다.

여민동락도 중요하지만,

군주는 군주가 할 일이 있고,

백성은 백성이 할 일이 있을 텐데,

무조건 함께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요.

 

한편 군주가 할 일은 무엇이고,

백성이 할 일은 또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경계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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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망태 | 정운복샘의 편지 2019-12-25 10:54
http://blog.yes24.com/document/1192587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다음은 춘천 한샘고등학교 정운복 선생님이

20191223일에 제게 보내준 글월입니다.

----------------------------------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 캐럴에 묻혀 또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인간의 수명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 여름, 가을, 겨울을 채 100번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소풍을 끝내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 백번 중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려 합니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나온 세월을 반추해 봅니다.

때론 돈의 노예가 되어 무언가 모아두지 않으면

헛헛함을 인내하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고

손해나는 일은 모른척하고 이익에 함몰되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나의 상처만 생각하고

남을 보듬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세월도 많고

작은 일에도 쉽게 생채기 내고 상처 주며 살아온 세월로 점철된

굴곡진 삶이 지난 세월 속에 들어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그리 큰일도 아닌데…….

왜 그때는 그리 인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가슴 저미게 살아온 것일까요?

세월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겠지만

불행하게도 세월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걸망을 지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 망태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한 번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출세, 권력욕, 황금만능이나 배금주의,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닌지…….

 

문제는 그런 것들이 행복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지요.

망태에 허허로운 바람처럼 가볍게 내려놓음, 배려와 나눔,

사랑과 봉사를 넣을 수 있다면

100번의 계절을 지낸 후에 온화함과 행복함이

얼굴에 자애롭게 새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생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일생(一生)으로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시간이니

그 삶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 목연 생각 :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던가요?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지학)

30세에 홀로 설 수 있었으면, (而立, 이립)

40세에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不惑, 불록)

50세에 하늘의 뜻을 알았으며, (지천명, 知天命)

60세게 귀가 순해졌다.(이순, 耳順)

 

저 글을 읽을 때마다 민망한 것은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지 못했고,

20세에서부터 나머지 나이가 될 때까지

공자님처럼 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주변을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듯하더군요.

30이 넘도록 마마보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도 있고,

40이 넘은 나이에 유혹에 넘어가는 이도 많으며,

50이 넘은 나이에도

하늘의 뜻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니까요.

 

다른 사람을 볼 것도 없이

국민의 대표로 뽑혔다는 여의도에 국회를 보세요.

내가 보기에 그들은 최소한 30세가 넘었고,

60세가 넘은 사람도 다수이지만

아직도 홀로 서지 못하고 대표의 눈치만 보는 이도 있고,

유혹에서 자유로운 이는 거의 없는 듯하며,

하늘의 명을 아는 사람이 과연 있나 모를 정도니까요.

 

그렇다면 지학, 이립, 불혹, 지명, 이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그 나이가 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 나이가 되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가만히 보면 옛사람들이 준 교훈은

사람들이 하도 안 지키니 답답해서 정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가을이 되어도 독서를 안 하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강조를 하고 있고,

허송세월로 청춘을 보내는 이가 많으니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으며,

효도를 하는 사람이 너무 없으니

부모님 은혜가 하늘보다 높다고 일깨운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남들이 그런다고 해서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해서

내가 그래도 된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일생(一生)으로

단 한 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시간인

나의 삶을 보다 소중히 여기면서

겸허한 마음을 지니자고 다짐한 아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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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답지 않은 겨울 | 정운복샘의 편지 2019-12-20 10:08
http://blog.yes24.com/document/1190640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다음은 춘천 한샘고등학교 정운복 선생님이

20191219일에 제게 보내준 글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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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연의 변화의 추이에 따른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인류가 가져온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인류의 마음대로 자연을 다스릴 수 없는 것도 틀림이 없습니다.

 

유년 시절, 한 시간을 걸어 초등학교를 다니던 길…….

검정고무신에서 털신으로 갈아 신은 날은 기분이 떠나갈 듯 좋았습니다.

물론 비포장 길에 질척거리는 길로 인하여 늘 젖어있을 때가 많았고

아침에 부뚜막에 올려 따뜻하게 덥힌

뽀송뽀송한 신을 신고 집을 나설 때의 설렘을 생각합니다.

 

춘천댐에서 나고 자랐는데

시골이 얼마나 추웠는지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밖에 놓아둔 소주병이 얼어 터지기도 했고

윗목에 놓아둔 자리끼가 아침이면 꽁꽁 얼기도 했고

가마솥에 물을 덥혀

마당 끝에서 머리를 감고 잠깐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에도

머리가 얼어붙어 서석 서걱 하기도 하였고

문창호지 하나로 겨울을 마주해야 했던 때라

문고리를 잡으면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쩍쩍 달라붙기도 했으니까요.

 

그 땐 1223일 정도에 방학을 했는데

방학 전에 꽁꽁 언 춘천호의 얼음위로 걸어 등교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가장자리에도 얼음이 시작되지도 않은 겨울을 마주하게 됩니다.

 

칼바람에 두꺼운 내복을 두벌 끼어 입어도 추위를 피하기 어려웠고

손과 발은 동상으로 힘들었던 계절이고

어쩌다 허리까지 눈이라도 내리면 넉가래를 들고

마을 어귀까지 근 2Km를 치우고 나면 해가 중천에 걸리곤 했습니다.

참으로 혹독하고 무서운 계절이었지요.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삶의 무게 앞에

당당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군고구마를 싸들고 지게지고 나무하러 다니던 것도 그 시절이고

강추위 속에서 계곡물이 얼어 빙판이 되면

톱날을 잘라 만든 외발썰매로

온종일 얼음을 지치던 시절이기도 했으니까요.

그 땐 옷감으로 나일론이 사용되었는데 작은 불똥에도 큰 구멍이 나서

모닥불 앞에서 잠시 몸을 녹였을 뿐인데도

집에 들어가면 어머님께 큰 야단을 듣기도 했지요.

 

겨울답지 않은 겨울의 연속입니다.

날이 따뜻하다 보니

겨울로 인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이나 축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계절이라고 하는 것은 오랜 세월을 두고 유지되어 온 것이 사실이고

그 흐름에 맞은 날씨라야

동식물과 생태계에 건강한 균형이 유지될 것인데

어쩌면 포근한 날씨 뒤에

예기치 못한 자연의 역습이 있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스런 마음도 듭니다.

 

* 목연 생각 :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도 시골이었습니다.

교문 앞에 집이 있던 나는

통학의 어려움을 한 번도 겪지 않았지만,

10리나 20리 길을 걸어오던 친구들은

눈비를 맞으며 고생이 많았겠지요.

 

초등학교 때 엄격하던 담임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지각을 하면 교실 뒤로 나가서 5분 동안 서 있게 하셨지요.

어느 눈이 오는 날

10리를 걸어서 학교에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1교시가 시작되고도 10분 정도 있다가 교실에 들어섰지요.

 

우리는 당연히 담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라 생각했고요.

그러나 뜻밖에도 선생님은 그 친구를 난로 옆에 앉히더군요.

고생했다면서 거기서 수업을 받으라고요.

눈길을 헤치고 학교로 온 그 친구의 노고를 아셨던 것이지요.

 

교단에 선 뒤 어느 시골에 근무했을 때

내게도 똑 같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10여리를 걸어서 온 두 학생이

1교시가 시작되고 잠시 지난 뒤에 교실에 들어서더군요.

나는 그 학생들을 난로 옆에 앉게 하고 수업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환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고요.

먼 곳 학생들을 이해한 나의 배려가 고마웠나 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나의 힘이겠습니까?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우리에게 해주셨던 것을

그대로 따라 했을 뿐이지요.

그런 것이 교육의 힘이 아닌가 싶네요.

그 교실의 학생 중에 선생님이 된 친구가 있다면

그의 학생들에게 나와 똑 같이 해주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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