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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9 개설

정혜윤피디의 글모음
[스크랩] 이 글이 우리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 정혜윤피디의 글모음 2007-09-1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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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
호치민에 살았던 베트남 여성 후인마이가 대한민국 천안시 문화동의 한 방에서 전과 6범의 남편에게 구타당해 늑골 18개가 부러져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쉼보르스카의 <베트남>이란 시가 생각이 났다.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무엇이냐?-몰라요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 출신인가?-몰라요
왜 땅굴을 팠느냐?-몰라요
언제부터 여기에 숨어 있었느냐?-몰라요
왜 내 약지를 물어뜯었느냐?-몰라요
우리가 당신에게 절대로 해로운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가?-몰라요
당신은 누구 편이지?-몰라요
지금은 전쟁 중이므로 어느 편인지 선택해야만 한다-몰라요
당신의 마을은 존재하는가?-몰라요
이 아이들이 당신 아이들인가?-맞아요


인용된 시는 쉼보르스카가 베트남 전쟁 때 구찌 땅굴에 살았던 베트콩 여인을 생각하며 쓴 시겠지만 이 시대의 후인마이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수많은 질문에 도리도리 고갯짓을 하며 ‘몰라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녀는 죽어서 한국 땅에서 화장됐다. 천안의 여성단체들은 호치민시의 가족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전화기 너머 연결된 나이 어린 여동생은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엄마 아빠는 아픕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여성단체들은 그녀를 위해 장례식을 치러 주려 모금 활동을 했지만 모금액은 190만 원에 불과했다. 후인마이는 죽기 전날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는 그 편지가 유언장이 될 줄은 추호도 생각을 못 했었다.

“나는 당신에게 무슨 음식 먹어? 물먹어? 라고 물으며 식모처럼 잘해주고 싶었어. 나는 결혼하기 전에 호치민에서 일했어. 우리 가족에게 어려움 있었어. 가족을 위해 고생스러운 일 많이 했지만 월급은 적었어. 어느 해는 냉동식품 회사에서 일하고 어느 때는 가구 공장에서 일하고 어느 때는 고무 농장에서 일했어. 일 없으면 남의 논밭에서 일했어. 나는 힘든 일과 고생스런 일을 잘 알아. 나는 한국에 와서 당신에게 이야기 많이 하고 싶었지만 잘 안 되었다. 하느님은 나에게 장난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하는지 당신을 잘 모를 거다.” (베트남어로 썼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은 하나님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여인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아주 짧았다. 베트남 여성 사망 기사의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나는 천안에 전화를 걸어보아야 했다. 그리고 처음 알았다. 결혼한 지 2년 안에 이혼하는 이주여성은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다는 것, 국제결혼 중개업체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운영된다는 것, 지방자치단체들은 결혼 건당 지원금을 지불한다는 것.

‘베트남 새댁, 남편에게 맞아 죽다’ 같은 사회면 기사, 소위 말하는 단신이란 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런 단신에 사진 처리를 해준다면 어떤 배경을 써야 하나? 많은 경우 그런 단신은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영화를 닮았다.

“(<위대한 독재자> <시티라이트> 같은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의 살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을 코미디언의 연기로 알고 박장대소한다. 즉, 코미디의 기원은 그런 잔인한 맹목성, 상황의 비극적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찾아야 한다.” (지젝,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 중에서)

우스꽝스럽다는 것은 어느 경우엔 아주 슬프다.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에 나오는 한 젊은 남자. 그는 우스꽝스러움과 슬픔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려준다. 그는 전방부대에서 태권도 훈련을 받다가 가랑이가 찢어져 평생 엉덩이를 뒤로 빼고 펭귄처럼 걸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보폭으로, 남들은 한 걸음에 걸을 거리를 열 걸음으로 나눠 걸어갈 때 그의 등 뒤엔 코흘리개들의 얼레리 꼴레리 소리가 따라붙는다. 그의 애인 루시는 자위용 인형이다, 입은 기괴하게 크고 다리는 벌린 루시에게 그는 속삭인다. 너만 사랑해, 믿어줘.

백가흠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도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한 어린아이가 대낮 여관의 옷장에 숨어서 남녀의 정사신을 눈 하나 꼼짝 않고 살펴본다. 그 아이의 아빠는 죽으면서 자신의 재산을 가족이 아니라 동성의 애인에게 남긴다. 그 아이의 엄마는 분노해서 아이를 여관의 주인이기도 한 남편의 동성 애인에게 던져놓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런 이유로 아이는 학교 대신 모텔방을 전전한다.

-고아원 동기인 젊은 부부는 애를 낳자마자 족족 고아원에 넘긴다. 만삭의 아내는 변기에 앉아 힘을 주다가 그만 변기 속에 풍덩 아이를 낳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를 꺼내서 닦아 놓고 보니 눈과 코가 없었다.

-평생 가정을 가져본 적 없이 무료 급식으로 연명하는 폐품팔이 할아버지는 어느 날 가출 소녀를 만나게 된다. 노인은 마냥 좋아 십대의 가출 소녀를 ‘아가’라 부르며 집안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가족이라 생각하며 가출 소녀를 매일 기다린다.

신문 단신 속 인물들의 바탕화면 같은 이야기를 쓴 백가흠은 그래도 자신의 소설보다 현실이 더 가혹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 실제로 신문의 사회면을 자주 본다는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허구라기보다는 의사소통할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내키지 않는 고백이나 회고처럼 읽힌다.

백가흠 소설 속의 하잘것없고 우스꽝스러운 주인공들이 우리 곁에 온다면 우리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단박에 알게 될 것이며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만 사랑하려는 경향이 얼마나 편리한 경향인지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란 말을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은 그 이웃이 좀 떨어져 있을 때인지 모르겠다.

커트 보네거트
(Kurt Vonnegut, 1922~2007)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사람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그가 놓인 배경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제5도살장』의 작가 커트 보네거트는 『나라 없는 사람』에서 「레퀴엠」이란 제목의 이런 글을 썼다.

십자가에 못 박힌 지구가
목소리를 갖게 되고
아이러니가 무언지 알게 된다면
우리가 저지른 학대에 대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는 게 바로 아이러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속으로는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더 흰색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남들을 더 검은색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을 종종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을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보아서는 안 될 것 같다. 오늘날의 적은 근본주의자들이라기보다는 쿨한, 거리두기를 아주 능수능란하게 해낸 결과, 결국 뭐든지 복종하게 만드는 냉소주의자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 “이론에 있어서만큼은 네가 원하는 만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체하라, 그러나 네 일상생활에서는 지배적인 사회적 게임에 참여하라!”라는 말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멋진 인간이 되라고 촉구하는 것 같다. 시니컬한 줄 알았더니 뜨거운, 안 할 줄로 알았는데 하는, 관심 없는 줄 알았지만 관심 있는, 쿨한 척하지만 찐득찐득한, 무정한 줄 알았더니 껴안아주는, 다른 줄 알았는데 닮은, 혼자인 줄 알았는데 옆에 있어주는,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고. 호통치면서도 존중하고, 경멸하면서도 끌어안고….

쉼보르스카가 『끝과 시작』에서 쓴 <우화>란 시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어부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유리병을 낚아 올렸어요. 그 병에는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써있었답니다.

“사람들이여, 나 좀 구해주세요! 나 여기 있어요. 대양이 나를 파도에 싣고서 무인도에 갖다 버렸답니다. 모래사장에 나와 도움을 기다리고 있어요. 서둘러 주세요, 나 여기 있을게요.”

“이 쪽지에는 날짜가 누락되어 있군, 틀림없이 이미 늦었을 거야. 유리병이 얼마나 오랫동안 바다를 떠다녔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첫 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게다가 장소도 적혀 있질 않군, 대양이 한둘도 아니고, 어디를 말하는지 통 알 수가 없어.”
두 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늦은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야. 여기라는 섬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세 번째 어부가 말했습니다.

불현듯 어색한 분위기와 함께 침묵이 흘렀습니다. 원래 다 그런 법,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병 속에 든 메시지는 언제 생명력을 갖게 되는가? 누군가 주워서 병뚜껑을 따고 읽어볼 때라기보다는 바다에 던져진 바로,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 우리 주위에 있는 신문의 사회면 단신 속 이야기들은 어쩌면 아직 건져지지 않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난파선 밖으로 던져진 병 속에 든 메시지일지 모른다.

*덧붙이는 말 :
방송사 가을 개편으로 <침대와 책> 연재를 마칩니다.
저는 다음 기회에 곧 빨리, 당장 만났으면 좋겠지만….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안녕 안녕.
목이 메이는 안녕 안녕.
커튼 콜을 기다리며, 뒤돌아보며 안녕 안녕.
여러분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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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별일 없이도 기분 좋아지고 싶은 날 | 정혜윤피디의 글모음 2007-09-1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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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
-언젠가 늦은 귀갓길에 달을 보다가 달이 움직이는 평면은 지구가 움직이는 평면에 기울어져 있는데 이건 태양과 달, 지구 사이의 인력과 관련 있단 걸 생각해내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성으로도 진리를 알지만 감성으로도 진리를 알 수 있단 말은 또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더운 밤에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으면 참 좋다. 중세의 유서 깊은 도시에 퍼지는 물결 찰랑 소리가 그들의 비운을 달래주는 듯 내 귀에도 애잔하게 들린다.

-오늘 아침에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를 캐럴 킹 버전으로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

-먼 곳에 친구가 있어서 꼭 전해줄 책이 있다고 핑계를 대면서 찾아오면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나에겐 ‘지금 뭐해?’라고 문자를 보내는 후배가 있다. 그러면 나는 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난다. ‘지금 뭐해?’ 난 대답한다. ‘딱 너를 기다리는 시간이지.’

-더운 날 막 뛰어가서 “사장님! 여기 맥주 한 병이요. 큰 걸로!” 이것도 정말 좋다. 추운 날 막 뛰어가서 “여기 정종 한 잔이요. 큰 걸로!” 이것도 정말 좋다.

-이유 없이 기분 상하는 날이 있다면 이유 없이 기분 좋아지는 날도 있는 법. 내게 주어지는 상황이 있다면 찾아나서야 하는 상황도 반드시 있게 마련인 법. 그런 날은 책상을 탁 소리가 나게 집고 일어난다.

-‘처음처럼’이란 말을 하며 결의에 가득 찬 건배를 남들이 외칠 때 (개인적으로는 ‘처음처럼’이란 말이 참 답답하다. 수많은 실패의 순간을 수많은 가치 있는 순간으로 돌려놓지 않고선 ‘처음처럼’이란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지? ‘처음처럼’이란 말은, 한때는 우리 모두 순수한 사람이었단 희망 넘치는 단서 정도로만 남겨두고 싶다.) 속으로 다른 구호를 외칠 때. 이를테면 ‘나방처럼!’ ‘쇠똥구리처럼!’ 이런 작은 배반의 순간에 기분이 좋다.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 1904~1973)


-호수의 동심원 무늬 물결을 보면서 ‘내가 나를 떠나서 멀리 퍼져 나간다’란 생각을 할 때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민음사)에 나오는 시구의 힘을 빌리면 더 기분이 좋아진다. “나긋나긋한 황갈색 여자, 나를 네게로 끄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게 나를 더 멀리 실어간다.” (이건 내가 거의 졸도할 만큼 좋아하는 구절이다. 나를 더 멀리 실어간다는 말!)

덩달아 네루다의 다른 시구가 생각나면서 인생의 다른 순간들이 떠오를 때 기분이 좋다.

“내 심장을 위해서는 네 가슴으로 충분하다.”
“나는 멀리 떨어져서 내 말들을 관찰한다. 그것들은 나의 것이라기보다는 너의 것이다.”
“내 말들은 네 사랑으로 얼룩졌다. 너는 모든 걸 점령했다. 너는 모든 걸 점령했다.”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우아함을 통해 살아가리.”
“제일 큰 별들이 너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대체로 책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많다. 공원에서 한가로이 다리를 흔들며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전망 좋은 방』(열린책들)의 제비꽃 가득한 키스신이라든가,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현대문학)에서 문화혁명 시기의 청년이 재봉사의 아름다운 딸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가죽점퍼 안쪽에 발자크의 소설을 베껴 써 넣고 고소공포증에 떨면서 산을 기어 내려가는 장면이라든가, 『제인 에어』(민음사)에서 제인 에어가 점쟁이로 변신한 로체스터에게 꼬박꼬박 자신 있게 말하는 장면이라든가, 『콜레라 시대의 사랑』(민음사)에서 식당에서 다른 사람의 아내 된 이를 비췄던 거울을 어떻게든 사버리는 장면이라든가… 그런 장면들은 인간이 서로 닮은 귀여운 존재란 걸 알게 해줘서 기분이 좋다.

-물론 살아오는 내내 내가 성실한 독자였단 뜻은 절대 아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는 영재여서 ‘너는 책을 그렇게 좋아하니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란 말을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집엔 상대적으로 많은 책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린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책들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순간 완전히 기분이 좋아졌던 적이 있고 그러다 보니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 말에는 항상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가 잘 모르는 책 이야기를 하면 무관심한 척 있다가 득달같이 서점에 달려가 일단 사놓고 보는 충동적인 쇼핑광이고 그 결과 가방 속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언제나 책이 한 권씩 들어 있게 되었다. 내 자동차 바닥엔 읽고 던져 놓은 책이 하도 많아서 내 차를 타려는 사람은 모두 두 발을 들고 타야 해서 결국은 사람들이 내 차에 동승하는 걸 거절하게 되었다. 운전하다가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있을 때 ‘그새를 못 참고’ 책을 읽다가 뒤차의 우렁찬 클랙슨 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있고 (나에게만) 아주 재미있는 책을 읽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맥락 없이 말해서 분위기가 썰렁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늘 ‘그새를 못 참고’ 망신당하는 사람들의 편이고 ‘분위기 파악 못 해’ 쩔쩔매는 사람들의 편이다.

책 때문에 ‘인기폭발’한 경험도 있다. 입사해서 가장 어리어리한 피디로 사람들이 ‘과연 저 신입사원이 제대로 된 피디가 될 수 있을까’ 이구동성으로 의심할 때 신경숙의 『외딴 방』(문학동네)을 거의 통째로 재연하다시피 이야기해줘서 새롭게 각광받았고, 그 결과 국장님이 어딘가에 기고할 「나의 청춘」이란 글의 대필을 부탁하는 영광스런 일까지 벌어져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오늘)를 참고로 1950년대의 시대상을 묘사한 후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혜원출판사)을 좋아해 불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했고 김승옥의 『무진기행』(문학동네)을 좋아하며 대학 생활을 마쳤으나 지금은 글과는 거리가 멀어진 중년이 되어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남자의 자서전을 써보기도 했다. (물론 실리지 않았다.) 그때 ‘한 사람이 평생 읽은 책으로 그의 자서전을 꾸며 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요즘도 책을 통째로 이야기해주는 버릇은 남아 있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이나 『브로크백 마운틴』(미디어2.0)『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문학동네)『달의 궁전』(열린책들)의 앞부분은 얼마나 자주 이야기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요새 새로 추가한 책은 구효서의 『시계가 걸렸던 자리』(창비)와 쑤퉁의 『이혼 지침서』(아고라)에 나오는 「처첩성군」이다. 그러다 보니 교통 체증 구간의 뻥튀기 장사를 보면서 ‘나라면 교통 체증 구간의 책 이야기해주기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라도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가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참았던 일도 있다.

휴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턱까지 올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날, 박영한의 『우묵배미의 사랑』의 한 장면을 생각하면 슬슬 웃음이 나온다. (난 이 장면을 ‘한국 문학 사상 가장 따뜻한 아침 신’이라고 부른다.) 『우묵배미의 사랑』의 주인공은 아내의 타박을 받으며 일어나기 직전까지 잠자리에 누워서 춘자나 영자 같은, 이름도 아련한 역전 주변 여자들의 벌거벗은 몸을 생각하며 따뜻한 자기의 사타구니를 꼼지락거리는데 내가 가장 매료되는 순간은 그때 그 방 앞에선 가금류가 꾹꾹거리고 있는 그 장면이다. 돼지나 소가 아니라 가금류가 먹이를 쪼아대는 소리라니, 집은 그런 곳 아닐까? 나의 방과, 온기가 남아있는 이부자리와 또 하루가 시작됨을 알려주는 어떤 신호들. 난 그때부터 ‘가금류’란 말을 들으면 꼭 한 남자가 나름대로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꼼지락거리는 작은 온돌방이 생각난다. 그런 순간이면 책 때문에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라우라 에스키벨
(Laura Esquivel, 1950~)
부엌에서 카레라이스를 만들려고 양파 껍질을 벗기다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분 좋아지는 것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민음사)을 생각할 수 있어서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티타는 부엌 식탁 위에 툭 떨어지듯 태어나 가문의 요리를 담당하게 되는 막내딸이다. 맨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가슴이 벌렁벌렁, 자꾸 생각났던 장면은 티타가 사랑하는 페드로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선물 받고는 기뻐서 꽃을 너무 세게 안는 바람에 손가락과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로 물들어 버린 꽃잎으로 메추리 요리를 했을 때 벌어진 일을 묘사한 장면이다.

“(메추리 요리를 먹은) 헤르트루디스(티타의 언니)는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간절해서 샤워 준비를 하러 달려갔다. 하지만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몸에 닿기도 전에 증발해 버렸기 때문에 불행히도 헤르트루디스는 샤워를 즐길 수 없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어찌나 강했던지 임시 샤워실의 나무판자가 뒤틀리면서 불이 붙었다. 헤르트루디스는 불길에 휩싸여서 타죽을까 너무 두려웠던 나머지,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샤워장에서 뛰쳐나왔다. 그때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장미향은 멀리, 아주 멀리까지, 혁명군과 정부군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던 마을 바깥까지 퍼져 나갔다. 그들 중 유독 한 군인이 출중한 용기 때문에 돋보였다. 헤르트루디스는 그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달리던 걸음을 멈췄다. 강렬하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헤르트루디스는 천사와 악마를 반반씩 섞어놓은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오랫동안 산에서 싸우며 억눌려 왔던 후안의 욕정과 맞물리면서 크나큰 장관을 이루었다. 후안은 그녀를 말에 태우고 열정적으로 껴안고 키스하느라 말고삐를 놓쳤지만 말은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아는 것처럼 계속 질주했다. 말의 움직임과 그 둘의 움직임이 하나가 되어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열기가 주위에 일으키는 화학작용을 생각하면 이 장면조차도 과장으로 읽히지 않는다. 난 요리사 티타가 딱 요리하는 방식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게 좋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는 팔팔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집어넣었을 때의 느낌이란 이런 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얼굴과 배, 심장, 젖가슴, 온몸이 도넛처럼 기포가 몽글몽글 맺힐 듯이 후끈 달아올랐다.”

“성대한 연회가 끝나고 나니 접시에 달랑 하나 남은 칠레 고추보다도 더 외로웠다.”

“이글거리는 시선, 춤추는 듯한 매력적인 동작, 거친 숨소리, 욕망, 그 모두가 두 사람 것이 아닌 한 사람의 것 같았다. 모든 물질이 왜 불에 닿으면 변하는지, 평범한 반죽이 왜 토르티야(멕시코 요리)가 되는지, 불 같은 사랑을 겪어보지 못한 가슴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밀가루 반죽 덩어리에 불과한 것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많은 사람이 좋아해서 밑줄 쳐놓은 부분은 이곳이 아닌가 싶다.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갖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 없다고 하셨죠.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죠.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된다니 양파 껍질에 눈물 콧물 흘리면서도 산소와 촛불과 성냥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여간 요리사는 요리사의 방식으로, 피아니스트는 피아니스트의 방식으로, 유치원 선생은 유치원 아이들의 방식으로 자기를 읽는다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 음악처럼 화려하게 들릴 것이다.

마르틴 아우어
(Martin Auer, 1951~)
책을 아주 귀엽게 실용적으로 써먹어서 덕 본 일도 있다. 『파브르 평전』(청년사)의 이 문장을 들어보라. 이 문장을 써먹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나는 그날 저녁을 산누에나방의 저녁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나방은 흰 모피 목도릴 두르고 밤색 비로도 옷을 입은 것 같은 생김새다. 5월 6일 아침, 암컷 나방이 서재의 책상 위에서 번데기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나방을 종 모양의 철망으로 덮는다. 저녁 9시경에 내 아들 폴의 방에서 쿵쾅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아들 폴이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빨리 오세요. 새처럼 큰 나방들 좀 보세요. 제 방 전체가 나방들로 가득 찼어요. 나는 급히 건너가서 녀석이 흥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들의 흥분이 이해가 된다. 거대한 나방들이 우리 집에 침입한 것이다. 거기서 본 것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커다란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커다란 나방들이 철망 주위를 맴돈다. 어떤 놈은 우리 어깨에 내려앉고 어떤 놈은 우리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사랑에 빠진 산누에나방들이 사방에서 날아든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아침에 내 서재에서 태어나 결혼 적령기가 된 암컷에게 사랑을 다짐하러 온 것이다. 그다음 주까지 매일 저녁 나방들이 날아들었다. 나방들은 성숙하면 짝짓기를 위해서만 산다. 성숙한 나방들은 입이 구부러져 결코 먹이를 먹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곧 지쳐버린다. 이틀 내지 사흘 저녁의 몇 시간 동안만 짝을 찾아 사랑의 축제를 벌이는 것이 수컷에게 허용되어있다. 삶의 환상과 수고가 모두 끝나는 순간이다. 사로잡힌 암컷은 철망 속에서 여드레를 살았다. 그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는 수컷 150마리가량을 유인했다. 수컷들은 먼 곳에서 와야 했다.”

나는 이 긴 글을 한 남자에게 인용하고 딱 한 마디만 덧붙였었다. “나방만도 못하진 않겠지?” 물론 나를 더 사랑해 달라는 뜻이었다. 아주 멀리서도 나임을 금방 알아보고 달려와 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파브르 평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은 「꿈」이란 제목이 달린 부분이다.

“나는 꿈에 잠길 때마다 단 몇 분만이라도 우리 집 개의 뇌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세상의 사물들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인가?” (‘천 겹 모기의 눈으로 나를 봐주세요. 개의 뇌로 나를 봐주세요!’ 한 번은 부장님께 잘못 써먹어서 회사에서 쫓겨날 뻔하긴 했지만.) 하지만 난 아직도 여름밤의 윙윙거리는 모기를 보면 모기와 눈을 맞추는 상상을 한다.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1913~1960)
변두리의 어린이 도서관 앞을 지나갈 때, 어린이들이 와글와글 나오는 장면을 보면 까뮈의 『최초의 인간』(열린책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할머니와 장애인이나 다름없는 어머니와 알제리에 사는 지독하게 가난한 소년 자크(까뮈의 자전적인 모습)는 매주 도서관에 간다. 그 도서관의 위치부터가 상징적이다. “그 길의 한쪽 편에는 고급 빌라들이 늘어서 있었고 다른 한쪽은 값이 싼 작은 공동주택들”인 곳의 경계에 있었다.

“그 책들 속에 담긴 내용은 따지고 보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도서관에 들어가면서 우선 받게 되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이 보게 되는 것은 검은색의 책들이 아니라 문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자기 동네의 편협한 삶에서 그들을 낚아채 가는 어떤 공간과 다양한 지평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이 빌릴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받아 옆구리에 끼고 그 시간이면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대로로 걸어 나와 플라타너스 나무의 열매들을 밟으며 큰 골목에 이르러 자신들의 즐겁고 탐욕스러운 희망을 북돋우어 줄 어떤 구절(가령, ‘그는 범상치 않은 정력을 지닌 사람이었다’)을 골라보려고 이제 막 켜진 가로등의 불빛 아래서 그 책들을 펴보기 시작하는 그런 시간이 오는 것이다.”

자크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뭐든지 다 알고 싶어 하는’ 소년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자크는 어른이 된 내가 더 나이 들어서까지, 삶이 계속되는 한 영원히 닮고 싶은 모습이다. 그래서 난 해질 무렵 책을 옆구리에 끼고 가로등 밑을 걸어 지나가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참 좋다.

『최초의 인간』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명장면이 몇 개나 더 있는데 -이를테면 마흔 살이 된 자크가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젊은) 스물아홉 살에 죽어버린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궁금해 하는 장면 같은 것, ‘어쨌든 난 스물아홉 살에 살아있었잖아!’라고 자기 인생을 긍정하는 장면- 난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끈적끈적해서 기분 나쁠 때 『최초의 인간』의 첫 장면을 떠올리면 멋진 연작화를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사흘 전에 구름들은 대서양 위에서 부풀어 올라가지고 서풍을 기다렸다가 가을 바닷물 위를 대륙 쪽으로 곧장 날아가 모로코의 물마루에서 실처럼 풀렸다가 알제리의 고원 위에서 양떼들처럼 다시 모양을 가다듬더니 이제 튀니지, 국경에 가까워지자 티레니아 바다 쪽으로 나가서 자취를 감추려고 하는 것이었다. 숱한 제국들과 민족들이 수천 년 동안 이동해 온 것보다 더 빠를 것도 없는 걸음으로 그 이름 없는 고장 위를 지나 북쪽으로는 요동치는 바다가, 남쪽으로는 얼어붙은 듯이 정지한 모래의 파도가 보호해주고 있는 그 거대한 섬 같은 지역의 하늘 위로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 오고나자 뻗쳐오르던 기운이 쇠했는지 그중 몇은 어느새 굵고 드문 빗방울로 변하며 네 사람의 여행자들 머리 위 마차 포장마차를 후려치면서 투탁거리기 시작했다.”

이 긴 문장은 단 하나의 목적, 젊은 부부가 타고 있던 포장마차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묘사하는 데 바쳐졌다. 이런 표현이야말로 세계와 나를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해준다. 우리는 스커트를 적시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오호츠크해 기단을 궁금해 해야 하는 존재 아닌가?

수잔 손택
(Susan Sontag, 1933~2004)
좀 다른 방식으로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책도 있다. 이를테면, 인생의 문제로 이것인가 저것인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불을 밝히듯 해답을 들이미는 책이 있다. 어느 해 겨울 길거리에서 신장 180센티미터의 선배가 팔짱을 낀 채 나보다 대략 십 센티미터 위의 높이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선언했었다.

“너의 가장 큰 약점은 감정이입이다. 손쉬운 감정이입을 하는 한, 넌 행동하지 못한다.” 나는 이 말에 어리둥절했었다.

이 말을 제대로 해석해준 책은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후)이다. 수잔 손택은 “당면의 과제가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선언한다.

수잔 손택은 ‘사람들은 왜 전쟁의 참사를 기록한 끔찍한 사진을 보는가?’라고 묻는다. 수잔 손택이 우리에게 경계하라고 말하는 것은 재빠르고 편안한 연민이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오로지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 그것은 내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은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과 같기 때문이다. (혹은 같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우리라는 말을 쓸 때 가슴에 손을 얹고 조심하게 되었다. 뭔가 행동해 줄 수 있을 때에만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할 때)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우리’라는 말을 하는 관계를 늘리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사회에서 할 일이다.

“책이 당신을 기분 좋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책은 고독 속에 있으면서도 끝없이 세상과 연결하고 대면할 기회를 갖게 한다는 점 때문이라 우선은 대답하고 싶다. ‘우리는 그 무엇이긴 하지만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을 알게 되는 것. 그건 참 기분 좋은 양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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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밉고 싫고 감정은 파도치고 삶은 휘청대는 날 읽는 책 | 정혜윤피디의 글모음 2007-09-1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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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
‘사소한 충돌들, 의견의 불일치들, 논쟁이랄 것도 없는, 눈치 보며 주저하는 소신 없는 갈등들, 짜증, 신경질, 흥분, 좌절, 실망, 배신이랄 것도 없는 배신, 왜소함, 질 떨어짐, 무릎이 팍 꺾이는 느낌. 비난, 책임 전가, 무능력, 콤플렉스가 엿보이는 과민반응, 흉보기, 토라짐, 맹목적인 편 가르기, 등에 꽂히는 싸늘한 시선들 혹은 무심한 시선들, 눈동자에서 아무런 의미도 읽을 수 없게 하는, 심드렁하고 쿨한 얼굴들, 무관심함, 면도 자국에서도 냉담함을 읽게 만드는 자신만만한 사람들, 나보다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더 옹호하는 주위의 공기. 텔레비전 화면 속의 회색빛 재해같이 일순간 멍해지게 하는 일들, 이민 가버릴까? 확 때려치울까? 그만두면 그만이지 뭐, 다시 안 보면 되지 뭐. 뭐 좀 신나는 일 없어? 인생 이게 다야? 정말 그런 거야? 그럼 왜 열렬히 살아야 한다는 거지?’ 이런 쌍둥이 같은 단어들과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우왕좌왕하는 날들은 도대체 뭘 해야 한단 말이야?

예전에 더 어리고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을 땐 집에 와서 남반구에서 만들어진 세계지도를 마룻바닥에 펼쳐놓고, 세상의 중심이 서울이 아니라 시드니, 오클랜드, 난디 같은 도시인 지도들의 의미를 읽어보곤 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와 완전히 거꾸로인 지도들의, 의심할 바 없어서 처음엔 어처구니없지만 나중엔 당당해지는 의미들. 트레이싱 페이퍼에 그 지도들의 선을 따라 그리다 보면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란 걸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고 관점이 이동되면 차분해지곤 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 명함은 트레이싱 페이퍼 용지다. 내 명함은 항상 다른 명함 속의 이름들을 읽게 해준다. 희미하긴 해도 원한다면 나는 읽을 수 있다. 내 명함에는 회사 이름과 직책 대신 결코 표현된 적은 없었지만 사실은 꼭 알아줬으면 싶은 이력들을 써넣는 상상을 한다. “아마추어 여행 작가, 고기 요리를 싫어함, 귀를 뚫지 않았음, 스타킹 수집가, 증명사진 싫어함. 옆얼굴에 더 자신 있음, 자고 나서 푸석푸석할 때 가장 예쁨, 출신 대학과 직책을 말하는 것을 싫어함. ‘어쩔 수 없다’란 말을 싫어함. 예외 없다는 말을 싫어함. 누군가를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을 싫어함, 누가 나를 안다고 말하면 깜짝 놀람, 프로보다 아마추어를 편애함, 나의 장점을 찬양하는 사람보다 나의 단점에 웃어주는 사람을 편애함.”

그리고 또 이런 짓도 한다.

-지는 해를 보면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말을 떠올리지 않기. (즉, 쉽게 희망을 품지 않기. 희망의 자리는 안달복달 다음 자리.) 차라리 가라앉는 태양이 나에게 빛을 던져주는 이유를 따져보기, 가라앉는 태양빛 때문에 백 배는 더 나은 어떤 광경들에 시선을 두기. (나의 얼굴도 대체로 그런 편이니 혹시 궂은 일 속에 내 얼굴이 더 고유한 미감을 갖지 않을까? 은밀하게 생각하기.)

-퇴근하다가 비 걷힌 텅 빈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서 철봉에 박쥐처럼 매달려 보기.

-비틀즈의 ‘she loves me’를 틀어놓고 그들의 목소리에 흘러넘치는 자긍심을 들어보며 정확하게 그 감정으로 나를 위해 그 노래 불러주기.

-지금 입체영화 전용 안경(스테레오 스코프)을 끼고 입체영화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난 어떤 착시 같은 것은 것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인간이 남들 앞에서 벌거벗지 않는 이유는 자신을 숨기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분노를 일으켜서’라는 말을 알고 있긴 해도 샤워하다가 뛰어나와서는 정말 아무에게도 벗은 몸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걸까 궁금해 하기. 정말? 한 사람도?

-사람이 입을 맞추기 위해서는 먼저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스탕달(Stendhal, 1783~1842)
-수천 가지 연애감정을 적어놓은 스탕달의 『연애론』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읽기.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확고한 성격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의 위에 타인의 영향을 느낀 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는 사람은 깊은 호감을 받지는 못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은 사랑이 깊지 않을 때뿐이다’ ‘사람은 그 정신의 크기에 준하여 의무를 갖는다’ (시계 소리가 울릴 때마다 횡격막을 때리는 촉감으로 소리를 느끼는 것도 『연애론』을 읽고 생긴 버릇이다. 세상 모든 감정을 연애 감정과 비교하면 감각의 전이가 이뤄지고 비루함까지도 열렬함을 부르는 감정 같다.)

-내 스트레스성 위경련의 이유는? ‘최선의 것을 배우지 못했으며 모든 것을 너무 일찍 너무 빨리 배웠고 제대로 씹어 먹지 못했기 때문에 위장에 탈이 나는 것이다’라고 니체가 이미 말했던 것을 떠올린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을 자꾸만 거울로 들여다보기. ‘입술이 아래로 처져 있는 이유는 지상에서의 작은 소망이 아직도 그 입술 위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니체)’라는 말 떠올리기. 혹은 ‘너 자꾸 화내면 미워진다’라는 충고를 떠올리기. 혹은 ‘나는 너무 빨리 늙었다. 온실 속에 살아서’란 취지의 플로베르의 말을 떠올리며 내가 지금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니란 것에 다소 안심하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란 캔디의 노랫말을 거부하기, 하지만 운다면 히치콕 영화의 금발 여주인공들처럼 우아하게, 아니면 아주 비통하게. (인간은 언제 비통하지? 사실은 누군가 미치듯이 그리울 때 아닐까? 아니면 사회적인 분노를 느낄 때?) 즉, 비통함보다 낮은 수준의 감정일 때의 눈물은 사실은 눈물이 아니라 제스처다.

-모든 고통은 과장이 있다고 생각하기.

-내가 고통스러운 것은 실제로 내가 감당 못할 만큼 나쁜 일이 있어서인가? 아니면 내 머릿속의 적합지 않은 기대감 때문이었나? 즉, 내 자작극의 혐의는 없나?

-경박한 열등감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순간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만 끝없이 마음 쓰는 순간.

-내가 지금 불쾌하거나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혹시 예전에 너무나 큰 것을 이미 맛본 뒤인 측면은 없나? 그렇다면 난 기분 좋게 감당해야 한다.

-언제나 마음에 들어 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부분. 아리아드네의 실 이야기. (영웅 테세우스가 괴물 미노타우루스를 물리치려 미궁에 들어갔을 때, 그는 미궁 밖에서 실 뭉치의 끝을 잡고 기다려주던 공주 아리아드네 덕분에 성공적으로 미궁 밖으로 나온다.) 나는 누군가? 너는 왜 책을 좋아하느냐? 혹은 여행을 좋아하느냐? 물으면 그건 어떤 경우에도 내가 길을 찾게 해주는 아리아드네의 실 같은 것이 내겐 책이고 여행이라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나의 포지션은? 테세우스인가? 아리아드네인가? 혹은 미궁 자체인가? 어쩌면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 영웅을 탄생시키기 위해 죽어야 하는 괴물은 아닌가?

-여행자였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도시를 만나면 재빨리 스쳐간다(차라투스트라가 그랬듯이)는 것을 일상에도 적용해야 한다. 모든 감정에 다 힘을 뺄 수는 없다. 보낼 풍경은 보내야 한다.

-어렸을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미지는 액자 속에 있던 스페인 대형 범선의 이미지였다. 그것이 (정치적 맥락은 잠시 차치하고) 위대해 보였던 이유는 (훗날 발터 벤야민이 힌트를 줬다) 늘 먼 바다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위대해지기 위해선 내 배경으로 먼 바다의 수평선 같은 게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사회적 인간인 이유다. 고쳐 나가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불행히도 지금 당장 내 옆에 아무도 없어도 나 자신을 위해 뭔가 들려주려고 애쓴다는 것. 한숨을 쉬더라도 힘이 없더라도.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오늘 내가 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책장에서 뽑은 책은 발터 벤야민의 『일방 통행로』 그리고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이런 책들은 반성을 권하지 않아서다. 이런 책들은 반성하라고 말하는 대신 성찰하라고 말한다. 쉽게 화해하라고 말하는 대신 오랫동안 싸우라고 말한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사랑하라고 말하는 대신 극복한 연후에 사랑하라고 말한다. 내가 온몸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삶뿐이며 삶을 증오할 때가 삶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알려준다.

먼저 발터 벤야민 방식. 그는 우리 주위의 물건을 끝까지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인생의 결정타 같은 힌트들이 주위에 무한히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피가 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주위의 일이 품고 있는 가시를 요령 있게 잘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피가 나는 일이 없도록, 이란 말을 입술을 꽉 깨물고 읽는다. 피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깨물고.

내가 읽는 동안 사랑스러운 미소로 화답할 수밖에 없는 구절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오로지 그에게만 열렬히 빠져 있을 때는 거의 모든 책 속에서 그의 초상을 발견하게 되는 경험을. 그렇다. 그는 주연인 동시에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온갖 이야기 속에서 장단편 관계없이 다양한 소설 속에서.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의 상상력은 무한히 작은 것 속에서 해답을 구할 수 있는 능력, 즉 내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모든 것 속에서 새로운, 압축된 충만함을 담을 수 있는 어떤 외연적인 것을 찾아내는 재능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펼쳐졌을 때야 비로소 숨을 쉬고 새로 넓은 공간을 확보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모습을 안쪽에서 활짝 펼쳐 보이는 부채의 그림처럼 받아들이는 재능이라고 말이다.” 나는 오늘 접힌 그림 속에서 어떤 이미지들을 찾아내고 있는가? 그것이 해답이다. 그는 토르소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과거란 기껏해야 운반 도중 사지가 잘려나간, 지금은 덩어리밖에 남지 않은 아름다운 조상과 같은 것으로 그는 그러한 덩어리로부터 자기의 미래의 상을 깎아내야만 한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낙담하고 쓰러져 있을 시간이 없이 당장 인생에 정과 끌을 들이대고 뭔가 조각하고 싶다. 내가 토르소에 달아줘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는 피렌체 세례당을 보면서 힌트를 준다. “피렌체 대성당 정문에 조각가 안드레아 피사노의 {희망(spes)}, 그녀는 앉은 채 아무래도 닿지 않을 과일 쪽으로 맥없이 양팔을 뻗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날개가 달려 있다. 이것보다 더 진실인 것도 없다.”

팔이 닿지 않으면 날개라도.

그는 거리의 아크등을 보면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지금 나에게 희망 없음은 지금 내가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어스름 저녁에.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진행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지각하는 것이 저 먼 미래를 예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결정적이라고 말해준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전조, 예감, 신호들을 해석할 것이냐 이용할 것이냐의 문제만 남는데 발터 벤야민은 비겁과 태만은 (전조를) 해석할 것을 권하고 냉정과 자유는 (전조를) 이용할 것을 권한다 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지체 없이 ‘이용’해야 한다. 그는 또 미래에 대해 막연히 불길한 느낌을 충실한 ‘지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땅에 오르다가 쓰러질 뻔하자 양팔을 크게 벌리고 ‘나는 너를 품에 안는다. 아프리카여!’라고 승리의 암호를 외쳤다.” “카이사르는 배에서 상륙하려다가 바다 속으로 떨어졌을 때조차 이 사고를 길조로 바꿨다. ‘나는 너를 품에 안는다, 아프리카여!’라고 외치며.” 그 둘은 재앙의 전조, 불운의 표징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을 몸으로 순간과 결합시켜 자신을 신체의 막일꾼으로 만들어서 위대해졌다고 벤야민은 찬양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할 일은 몸으로 불운의 표징을 바꿔버리는 것이란 말이다. ‘오라! 불운한 순간이여. 나는 너를 품에 안는다! 너를 열렬히 환영한다.’

벤야민은 우리의 하루하루를 가장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매일 아침 우리 침대 위에 깨끗이 빨아놓은 셔츠처럼 하루가 놓여 있다. 이 비할 수 없이 섬세하고 촘촘한 직물, 이 순수한 예언의 직물은 우리 몸에 딱 맞는다. 이어질 24시간 동안의 운은 우리가 그것을 손에 쥘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내겐 처세에 관한 한, 두 번 다시 없을 웅변적인 걸작이다. 웅변적인 걸작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남보다 체온이 높은 사람은 폭포 속으로 돌진하듯 읽어야 하는 책이다. 폭포 속으로 일단 뛰어든 자는 더 단단해지지 않으면 다시 나오지 못한다.

“나는 용감한 자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양날의 칼이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누구를 벨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을 억제하면서 지나가 버리는 데에 보다 큰 용기가 들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보다 어울리는 적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아끼는 것이다. 그대들은 증오할 가치가 있는 적을 가질 뿐 경멸할 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다 어울리는 적을 맞이하기 위해 아 벗들이여, 그대들은 자신을 아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대들은 웬만하면 스쳐 지나가야 한다.”

“그대들은 왜 그렇게 연약하고 굴욕적이고 유순한가? 그대들의 마음속에는 왜 그렇게 많은 부정과 거부가 들어 있는가? 그대들의 눈길에는 왜 그렇게 시시한 운명 밖에는 들어 있지 않은가? 가장 고귀한 자만이 완전하게 단단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머리 위에 이 새로운 서판을 내건다. 단단해져라.”


오늘 차라투스트라는 내게 준비하고 아끼라고 말한다. 멋진 사냥꾼은 멋진 사냥을 해야 한다. 자기의 화살을 찾아 욕정에 이글거리는 활처럼, 자신의 정오를 맞아 준비를 갖춘 성숙한 별처럼.

지금부턴 내가 좋아하는 몇 구절을 그저 베껴 쓰기만 하겠다. 베껴 쓴 텍스트는 그것을 옮겨 적은 자들의 영혼에 호령할 수 있다 했다. 오늘 나에게 호령할 수 있는 유일한 자는 차라투스트라다. 그 누구도 안 된다.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
“아 나의 영혼이여, 나는 그대에게 벌레가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과는 다른 경멸을 가르쳤다. 가장 경멸할 때에 가장 사랑하는, 커다란 경멸, 사랑에 넘치는 경멸을 가르쳤다.”

“아 나의 영혼이여, 나는 그대에게 가르쳤다. 바다에게 자신의 높이에 이르도록 설득하는 태양처럼, 그대가 그대의 근거들을 그대에게 오도록 설득하라고 말이다.”


(인생의 목표란 것도 그렇다. 목표를 향해 계단을 올라가는 게 인생이 아닌 것 같다. 목표가 나에게 오는 것이다.)

-중력의 영에 대하여
“모든 것의 맛을 볼 줄 아는 완전한 만족감, 이것이 최선의 미감은 아니다. 그렇다와 아니다를 말할 줄 아는, 아주 반항적이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혀와 위장을 나는 존경한다.”

“참고로 나도 기다리는 것을 배웠다. 그것도 철저하게 배웠다. 그러나 나는 다만 나를 기다렸을 뿐이다.”

“나의 가르침은 이렇다. 언젠가 나는 것을 배우려는 자는 우선 서서 걷고 달리고 뛰어오르고 기어오르고 춤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한꺼번에 배우지 못하는 법이다.”

“여러 가지 길과 방법으로 나는 나의 진리에 도달했다. 나의 눈길이 저 먼 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그 높이에 이르기 위해 단 하나의 사다리만을 타고 오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길을 물어본 것은 언제나 마지못해 그랬을 뿐이다. 길을 물어본다는 것은 언제나 나의 미감에 거슬렸다. 오히려 나는 길 자체를 물어보았고 시험해 보았다. 시도와 물음. 그것이 나의 모든 행로였다. ‘이것이 지금 나의 길이다. 그대들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나는 나에게 길을 묻는 자들에게 대답했다. 말하자면 모두가 가야 할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소하게 만드는 덕에 대하여
“그들은 더 왜소해졌고 점점 더 왜소해지고 있다. 행복과 덕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그대들이 의욕하는 바를 언제든 행하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의욕할 수 있는 자가 되라. 그대들의 이웃을 언제나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지만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되도록 하라.”


-방랑자
“인간이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하는 존재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아끼기만 하는 자는 결국 그렇게 너무 아끼다 병들고 만다. 많은 것을 보려면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한다. 인식하는 자로서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어떻게 만사에 있어서 겉으로 드러난 근거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을 터인가?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자신을 넘어서 올라가야 한다. 위로 더 위로! 그렇다. 나 자신과 나의 별들마저도 저 아래로 내려다보는 것, 나는 그것을 나의 정상이라 부른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정상으로 내게 남겨진 것들이다. 가장 높은 산들은 어디서 오는가? 라고 일찍이 나는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이 바다로부터 온다는 것을 배웠다. 그 증거는 산의 바위와 산 정상의 암벽에 씌어 있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깊은 것으로부터 나와서 그 높이에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문장만 더. 내가 생각하는 금세기 최고의 사랑의 문장이 있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데 있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는 자로서 살 뿐 그 밖의 삶은 모르는 자를, 왜냐하면 그는 건너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 마음껏 경멸하는 자를, 왜냐하면 그는 마음껏 숭배하는 자이며 저편 물가를 향해 날아가는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 자신의 덕으로부터 자신의 미감과 운명을 만들어내려는 자를. 그런 자는 자신의 덕을 위해 살려고 하고 또 죽으려고 한다.
나는 사랑한다. 너무나 많은 덕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자를, 하나의 덕은 두 가지 덕보다도 뛰어난 법, 왜냐하면 덕이란 운명을 묶어주는 매듭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 자신의 영혼을 낭비하는 자를, 그리고 감사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려고도 하지 않는 자를, 그런 자는 언제나 주기만 할 뿐 자신을 지키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한다. 주사위를 던져 얻은 행운을 수치로 여기고 나는 사기 도박꾼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행동에 앞서 황금의 말을 던지고 언제나 약속한 것 이상으로 행하는 자를. 나는 사랑한다. 다가올 미래의 세대를 옹호하고 인정하며 지난 세대를 구제하는 자를, 그러한 자는 오늘의 세대와 씨름하면서 파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그는 말한다. 상처를 입어도 그 영혼의 깊이를 잃지 않는 자를. 자기 자신을 잊은 채 만물을 자신 안에 간직할 만큼 그 영혼이 넘쳐흐르는 자를 사랑한다고.

결국 우리는 말한다. 차라투스트라식으로. “용기는 말한다.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러면 다시 한 번.” 내가 던진 돌에 내 머리통이 깨져도 다시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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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이 끝나버린 걸 아는 날 읽는 책 | 정혜윤피디의 글모음 2007-09-1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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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
어느 날 우리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르러 갔다. 그날 밤은 조용필의 그 노래 가사 “사랑이 외로운 건 전부를 걸기 때문이지”에 바치는 밤이었다. 우리는 사랑이 외로운 건 전부를 걸기 때문이란 팀과 사랑이 외로운 건 전부를 걸지 않기 때문이란 팀으로 나뉘어서 각자 다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열띤 논란을 벌였다. 다들 자신은 전부를 걸었다 생각하고 자신을 떠나버린 그분은 전부를 걸지 않았다 회고했다. 그날의 잠정적인 결론이 있었다면 순정을 간직한 사람들답게 조용필의 노래 〈Q〉의 가사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사랑은 끝이 났다”였다. 사랑을 끝내는 순간에는 청승과 자기 연민만이 두말 않고 벗이 되어주므로.

그러나 사랑을 잃어버리는 순간의 진실은 사랑을 잃어버리면 한 세계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너에게”라고 서명이 되어 있는 책을 받아볼 일이 없어지는 것이고 “오늘 회식 때 맛있는 식당을 발견했어. 우리 꼭 담에 같이 가자”라는 말을 들을 일이 없어지는 것이며 “공원인데 햇볕이 정말 좋아.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 “네가 좋아하는 꼬막 철이야. 노량진 수산시장에 꼬막 먹으러 가자”라는 말, “너랑 비슷한 여잘 봤어.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네가 훨씬 더 예뻤어.” “오늘 잡지에서 봤는데 말레이시아가 멋있다더라, 꼭 같이 가자.” “세일하는 와인을 몇 병 샀어. 치즈 사 와. 같이 먹게”란 말을 들을 일 역시 없어지는 것이다. 또 이런 문장을 잃는 것이다.

“가늘고 높은 코가 약간 쓸쓸해 보이긴 해도 그 아래 조그맣게 오므린 입술은 실로 아름다운 거머리가 움직이듯 매끄럽게 펴졌다 줄었다 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중에서)

얼굴을 붙잡고 콧날과 입술을 자세히 들여다볼 시선을 잃는 것이며 ‘너는 정말 아름다워’라고 말하는, 진짜로 홀린 듯 진지한 (동시에 반쯤 풀린) 시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단 하나의 일념으로 그 모든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그 꿈을 이루기도 전에 나를 배신하고 절대 치유할 수 없는 절망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고 내 곁을 떠났다고 원망했다. 나는 로사가 나를 갖고 놀았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키스도 단 한 번밖에 해보지 못했다며 따졌다. 나는 로사에 대한 추억과 채울 수 없는 간절한 욕망으로 내 사랑을 꾸려 나가야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녀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려 했는지에 대해서 얘기했다. 즉, 로사가 내 말을 들을 수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별의별 소리를 다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나는 어느 여자한테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이제 다시는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날 밤 가장 강렬하게 느낀 감정은 그런 분노나 혼란이 아니라 좌절된 욕망이었다. 내 손길로 그녀의 몸을 애무하고픈 그 간절한 욕망을 이젠 절대 이룰 수 없었다.”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 중에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혼녀 로사가 어느 날 아버지의 정적 때문에 암살당하자 그녀의 묘지 앞에서 약혼자였던 에스테반이 혼자서 절규하는 장면)

이런 문장을 잃는다는 것은 ‘너와 헤어지면 다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고백하는 목소리를 잃은 것이며 애무하고픈 달뜬 욕망에 시달리며 길 잃은 장님처럼 헤매는 손가락을 잃는 것이다.

또한 상큼하고 아름다운 몸속에 교활함과 느긋함, 기교와 단순함, 조용함과 활달함이 뒤섞인, 미묘하고도 경쾌한 아름다움의 소유자, 냉정과 열정과 동정을 동시에 발산하는, 치명적으로 매력 있는 여자 ‘지나이다’와 첫사랑의 열정에 들떠 충만한 감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감정이 흩어져 달아날까 봐 베개에 머리를 누일 때조차 조용하게 눕혔던 열여섯 소년이 나오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의 그 문장. “나는 오래전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고, 그녀와 알기 전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마치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생각되었다”를 잃는 것이다.

마치 모든 사랑이 첫사랑인 것처럼, 그 사랑을 알기 전에는 마치 아무 경험도 없었던 것처럼. 마치 단기기억상실 환자처럼. 난 이런 대단한 개나리는 처음이야. 난 이런 대단한 벚꽃은 처음이야. 이런 폭설은 내 인생 처음이야. 이렇게 멋진 노을은 처음이야. 철새가 날아가는 것 처음 봐. 저 달 좀 봐. 계절이 바뀌나 봐. 호들갑인지 과장인지 착각인지 모를 개인에겐 영광인 순간들을 잃는 것이다. 열렬히 사랑하는 동안에는 우리 모두 열여섯이 되는 그 순간을 같이 잃는 것이다.

“잠시라도 지나이다가 내 곁에 없으면 쓸쓸하고 울적했다.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날마다 그녀 생각만 하고 있었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녀 앞에 서면 그런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괜한 질투심에 불타올랐고 자신의 초라함을 스스로 의식하거나 괜히 뽀로통한 표정을 짓거나 어리석게도 노예처럼 굽실거렸다. 억제할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나를 그녀에게로 끌어당겼다.”

“근심과 걱정, 즐거움과 기쁨, 미래에 대한 예감과 희망, 삶에 대한 두려움. 마음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감정들 중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뭐라고 꼬집어 지적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단 하나의 명칭으로 불렀는지 모른다. 지나이다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도시의 스카이라운지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동안 저 아래 한강변을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보면서 불빛만큼 애틋하고 따뜻한 감정에 젖는 시간을 잃는 것이다.

“제 남편은 방문 판매를 하는 영업사원이었어요. 그이는 항상 이것저것을 팔러 다녔어요. 그이는 변화무쌍한 삶을 좋아했지요. 항상 멋지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곤 했어요. 하루는 그이가 군수용품 상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냈지요. 전쟁이 막 끝난 참이라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찾아낼 수 있었던 때였어요. 그이는 그것을 자기가 끌고 돌아다니는 고물 자동차의 배터리에 연결해서 고정시켰죠. 그리고는 저한테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로 올라가라고 말했어요. 자기가 뉴욕을 돌아다니면서 가끔씩 내가 자기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하늘로 빛을 쏴서 나를 비추겠다고 하더군요. 낮에는 안 보였어요. 완전히 깜깜해지면, 일단 빛이 보이면 정말 놀라웠어요. 그이의 불빛만 빼면 뉴욕의 모든 불빛이 다 꺼진 것 같았죠. 첫날밤이 기억나요. 여기 올라와 있는데 다들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가리키며 전망을 굽어보고 있었죠. 볼만한 구경거리가 너무나 많았어요. 하지만 거꾸로 자기를 가리키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은 저 하나뿐이었죠. 그이가 죽은 뒤 난 다시 여기로 왔어요. 그이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대낮에 그의 불빛을 찾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내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불빛이 저기 있을 것만 같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중에서 -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간 뒤 다시는 내려가지 않고 그곳에서 산다. 그녀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빌딩 건축은 1930년 3월에 시작, 공사 기간은 일 년하고 45일, 칠백만 노동시간, 건축 비용은 40,948,900달러, 높이 381미터, 6만 톤의 강철로 지탱, 6,500개의 창문, 10,000,000개의 벽돌, 70대의 승강기가 분당 180미터에서 430미터의 속도로 운행, 해마다 350만 명 이상이 <러브 어페어, 1957>에서 캐리 그랜트가 데보라 커를 헛되이 기다렸던 곳이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운명적으로 만났던 곳인 86층에 들렀다 가는 곳이며 해마다 만 마리의 새가 창문에 부딪혀 죽는 곳이다’라고.)

이 긴 문장이 주는 단 하나의 메시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언젠가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라!’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그런 일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니?’ 하며 새침하게 입술을 삐죽거리는, 가짜로 오만한 이의 앙증맞은 귀에 이런 말을 속삭여주는 사람을 잃는 것이다.

“아이누 말로 그립다는 게 뭘까? 그러고 보면 요전에 네가 말했었지. 아이들을 잃고 서럽게 울다 눈이 먼 어머니의 노래. 호-야 레호. 호-야 레호. ‘그리워’를 영어로 말하면 ‘아이 미스 유’라지. 내 존재에서 당신이 빠져 있다. 그래서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라지. 모두 그럴 테지. I miss you, 그리워 혹은 존재에서 네가 빠져 있어.”(쓰시마 유코의 소설집 『나』)

‘알겠지? 나는 네가 있어야 완벽해.’ 이렇게 고백하는 떨리는 목소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잃어버린 후 우리는 결국 다른 세계를 보게 된다. 지지난해 사랑의 실패 후 극심한 슬픔에 젖어 있다가 뜨개질을 하는 방식으로 생산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내 후배가 또 실패했다. (차마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철인 3종경기에 도전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둥, 좀 늦은 감은 있지만 고시 공부에 도전하는 건 어떠냐는 둥) 우리는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예술의 전당 국악원이 있는 우면산 자락에 갔다. 나는 김소희 명창의 음반과 진짜 멋진 할머니 시인인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쉼보르스카의 시집 『끝과 시작』을 갖고 갔다. 거기서 우리는 귀에 이어폰을 나눠 꽂고 육자배기와 진도 아리랑을 들었다. 나는 쉼보르스카 시선집의 몇 구절을 읽으며 비에 살짝 젖은 벤치에 누워버렸다. 나는 그녀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매료되었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추억을 되살리기보다는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고 싶다
…………
이것은 옷핀, 저것은 머리빗
종이로 만든 장미와 노끈, 주머니칼이 여기저기
내가 한 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뭐 아쉬운 게 하나도 없네요.”
…………
바람이 빼앗아 달아났던
작은 풍선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내가 한 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쯧쯧, 여기에 이제 풍선을 가지고 놀 만한 어린애는 없단다.”

자, 열려진 창문으로 어서 날아가렴
저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 하고 외쳐주세요
바야흐로 내가 와락 울음을 터뜨릴 수 있도록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중에서)


- 도도하게 굴어야 할 이유는 속마음을 들키지 않고 울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이여, 너를 필연이라 명명한 데 대해 사과하노라
필연이여,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혼동했다면 사과하노라
행운이여, 내가 그대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도 너무 노여워 말라
시간이여, 매순간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데 대해 뉘우치노라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
벌어진 상처여, 손가락으로 쑤셔서 고통을 확인하는 나를 제발 용서하라
…………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여, 새벽 다섯 시에 곤히 잠들어 있어 참으로 미안하구나
막다른 골목까지 추격당한 희망이여, 제발 눈 감아다오,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
진실이여, 나를 주의 깊게 주목하지는 마라
…………
모든 사물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음을
모든 사람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각각의 모든 남자와 여자가 될 수 없음을
내가 살아있는 한, 그 무엇도 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느니
왜냐하면 내가 갈 길을 나 스스로 가로막고 서 있기에
언어여, 제발 내 의도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다오
가볍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열심히 짜 맞추고 있는 나를…
(「작은 별 아래서」 중에서)


- 아름다움이여, 미안하구나. 그가 부여한 아름다움을 내 고유한 것인 줄로 알아서
행복이여, 미안하구나. 너에게 눈이 멀어서.
내가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이여, 미안하구나.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단 것을 외면해서.
웃음이여, 미안하구나, 오로지 나 때문에만 웃었기에.
청춘이여, 미안하구나, 영원히 젊을 줄 알아서.
밤이여, 미안하구나. 낮의 미망인 걸 잊어서.
슬픔이여, 용서해라. 너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환영하지 않아서.
심장이여, 용서해라, 네가 내 몸 안에만 있는 줄 알아서.
나를 찾은 사람들이여, 용서해라. 내가 오로지 초대한 사람들만 환영해서.

그녀를 따라서 얼마든지 우리는 이런 시를 지을 수 있다. 사랑이 끝난 우리에게 쉼보르스카는 감사에 대해 이렇게 말해준다, “나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또 그녀는 “행복한 사랑이란 좀처럼 없기에 그것만으로 결코 지구를 채울 수 없다”라고 말한다. 행복에 대해서 그녀는 “어찌어찌 하다 보니, 나는 지금 네 옆에 서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무엇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라 말한다. 생에 대해서는 “나 생을 향해 말한다 -너와 견줄 만한 대상을 찾지 못했노라. 그 무엇도 똑같은 솔방울을 만들어낼 수는 없으리라, 그보다 낫지도 못하지도 않은 바로 그 솔방울은 더 이상 없으리라.” 심장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내 심장아, 정말 고맙다. 한 번, 또 한 번, 나를 전체에서 분리시켜 주어서, 심지어 꿈에서조차 나를 끄집어내 주어서.” 웃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조그만 계집아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으랴, 만일 팔자가 좋아 오래오래 살 수만 있다면 결국엔 절망조차 득이 된다는 사실을.”

- 조용필은 틀렸다. 사랑이 외로운 건 전부를 걸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이 외로운 건 다른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과잉이건 결핍이건 간에 그저 고개 한 번 까닥이면 그만일 뿐인 것이라 알려준다. 희망은 망각이 주는 선물이라고 다독거려준다. 더 이상 청춘이 아닌 순간은 거짓에서 진실로 향하는 여정이라고도 했다. 말로써 서로 끊임없이 상처를 안겨주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나 불행 따윈 아주 없을 때나 하는 짓거리라는 것도 그녀가 알려줬다. 하나 더!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나를 뒤흔드는 건 심장이 아니라 말라비틀어진 화석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까지.

나는 나이 들면 쉼보르스카 할머니처럼 되고 싶다는 웅대한 꿈을 품고 그녀의 책을 덮는다. 사랑이 끝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녀의 「끝과 시작」이란 시의 첫 문장에 나와 있다.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리!” 자기만의 전쟁을 치르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지금은 청소를 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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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상, 거침없이 하이킥 | 정혜윤피디의 글모음 2007-09-1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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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
안전모를 쓴 인부들은 벌써 철골 구조물 위에 올라가 있고 헬스클럽 운전기사는 버스 좌석을 정리하고 있고 아이들은 횡단보도 앞에 서 있고 소나타 2의 운전자는 라디오의 아침 종합 뉴스를 듣고 있고 청소부는 빗자루로 청소를 하고 있고 몸집이 큰 남학생은 공원에서 3점슛 연습을 하고 있고 그 옆엔 등산복 차림의 여인들이 경보하듯 걷고 있고 그 옆을 달리는 빨간 쿠페 안의 여자는 밥 딜런의 음악을 들으며 빨간 샤넬 립스틱을 바르고 있고. 이건 어제 아침이기도 하고 일 년 전 아침이기도 하고 오늘 아침이기도 하다. 이런 걸 보면 지구는 돌지만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는 않다는 걸 알겠다.

나로 말하자면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 안에서 원피스의 어깨끈을 올리고 누드핑크 립스틱을 바르고 하이힐의 굽을 살펴보았다. 하이힐의 굽이 튼튼히 박혀 있나 몸을 숙여 굽을 만져볼 때 일주일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을 시작하는 일이 하이힐의 굽만큼이나 단순 명징하면 얼마나 좋을까?

‘일상’ 하면 생각나는 풍경이 백 가지는 되는데 그중 내가 사랑하는 남자 리스트.

1. <쇼생크 탈출>의 죄수 앤디의 영상 (팀 로빈스) - 다른 죄수들은 모두 터벅터벅 걸어다닐 때 그 홀로 산책 나온 사람처럼 어슬렁어슬렁 교도소 뜰을 걸으며 조용하다기보다는 고요히 있던 모습, 묵묵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보여주는 차분한 시선,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죄수들의 머리에 틀어놓고 우아하게 다리를 뻗는 모습. 죄수의 머리 위에 쏟아지던 아리아의 가사는 ‘해가 지면 이따가 우리 둘이 오늘 밤 정원에서 만나요’ 이런 취지였을 거다. 일상을 이보다 더 사무치게 표현할 수 있을까?

2. <흐르는 강물처럼>의 폴 (브래드 피트) - 낚시는 네 박자임을 오른팔 전체에 체득하고 열 시에서 두 시 방향으로 낚싯줄을 던지는 모습. 옷이 몽땅 젖어도 블랙풋 강의 찬물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고 그럴 때 담배가 물에 젖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 강물 소리와 네 박자 리듬과 물고기가 튀어오를 거란 희망을 잃지 않고 햇볕 속에 벌렁 드러눕는 모습. 그 때문에 어떤 체제보다도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것. “형, 우리 블랙풋 강에 낚시하러 간 지 너무 오래되지 않았어?” 난 이런 류의 대사가 좋다. 일상을 이보다 더 기쁘고 설레며 흥미진진하게 기대에 가득 차 표현할 수 있을까?

3. 프레모 레비의 『주기율표』에 단역쯤으로 나온 젊은 화학도 산드로 - 기술보다는 본능에 의지해 암벽을 기어올랐고 자신의 악력을 믿었으며 튀어나온 바위에 매달릴 때는 얄궂게도 규소, 칼슘, 마그네슘에 인사했다. 누군가는 산에 올라가면서 바위의 규소, 칼슘을 본다니? 일상에 뿌리내린다는 것은 이런 것 아닐까? 자기만의 시선으로 볼 뭔가를 갖는 것 혹은 뭔가를 볼 때 자기만의 시선을 갖는 것.

4. 니컬슨 베이커의 소설 『구두끈은, 왜?』의 주인공

그는 우리 대한민국 남자들의 분신 같다.

펜트하우스 같은 잡지를 사면서 주의를 분산하려고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더 고른 적이 있고, 여자들이 옷을 입은 채 브래지어를 벗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입 냄새를 확인해 보려고 일부러 기침을 하는 버릇과 혀를 닦는 버릇이 있고, “저 친구가 코털을 뽑고 있더라고. 얍 하더니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온몸을 부르르 떨잖아. 아마 실수로 세 개를 뽑았나 봐.”란 동료들의 웃음소리 때문에 부끄러워한 적이 있고, 음반 케이스나 담뱃갑의 비닐 포장을 벗기려고 가는 끈을 잡아당겼는데 비닐 포장은 그대로 있고 끈만 떨어져 나갔을 때 낙담했고, 휘파람 불기, 손가락으로 딱 소리내기, 물구나무서기, 한 손으로 달걀 깨기, 에스컬레이터 계단 한가운데 발을 안전하게 올려놓기, 손으로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가늠하기야말로 인간의 지혜라고 생각하고, 편의점의 여점원이 작은 봉지를 꺼내더니 손목을 터는 것처럼 벌리는 것을 보고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체온계를 털 때와 같은 동작을 연상하고, 에스컬레이터의 틈새를 보고 흰긴수염고래의 배에 난 홈, 갈퀴로 긁은 땅이나 써레가 지나간 밭에 난 홈, 얼음 위에 스케이트가 지나간 한 가닥 홈, 양말에 신축성을 부여하는 홈, 볼펜으로 따라 내려갈 수 있는 코듀로이의 홈 등을 떠올렸으며, 여자화장실 앞을 지나가다가 여자들이 립글로스를 바르고 입술을 내밀어 부루퉁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자신의 여자 친구가 단장하던 날을 떠올렸으며, 엘리베이터 통로 안의 바람 소리를 들었을 때 수직의 무역풍이 우는 소리를 떠올렸다. 머그잔에 커피를 마실 때, 손잡이를 무시한 채 두 손바닥으로 머그잔을 감싸면 여배우들이 부엌 식탁에서 일상적인 대화 장면을 연기할 때처럼 보여서 머그잔이 커피잔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구두끈을 매면서 층층이 엮인 구두끈의 질서를 보고 ‘한 인간이, 아낌없는 넝쿨처럼, 수많은 생명을 지지한다./그는 자신이 껴안는 힘으로 힘을 얻는다’라는 시구를 생각한다.

그는 아마 “앞일이 어떻게 될지 두려울 때는 없나요?”란 질문을 받으면 상인들이 연필을 귀 뒤에 꽂아두면 편리하다는 걸 짐작이나 했겠는가요? 자동차 앞유리 와이퍼가 광고 전단을 남겨두기 편이한 장소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요? 알 수 없이 선택되는 일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조율하는 일들만 남아있는 법이라고요, 라고 대답할 것이며 “권태로울 때는 없나요?”란 질문을 받으면 철도 직원이 되었다고 상상해요. 버려진 역, 숨겨져 있거나 지나쳐 온 터널을 지난다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집중하고 있는 생각에서 잠시 벗어남으로써 생각은 날개를 달고 진정한 이해로 나아갈 수 있어요, 라고 대답할 것이다. 또 “일상에서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죠?”란 질문을 받으면 전보다 더 멍청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 그때만 우리는 진실로 복합적인 인생의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니까. 인생에서 겪는 변화에, 산전수전에서 얻는 지혜에, 낙담했을 때나 무력감을 느낄 때 남들이 대처하는 방법에 관심이 가니까, 라고 대답할 것이다.

니컬슨 베이커
(Nicholson Baker, 1957~)
그의 머릿속을 따라다니다 보면 진정으로 매력 있는 사람은 매일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게 하는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는 앞차의 운전자가 좁은 창틈으로 담배꽁초를 휙 던졌을 때, 영화 <위험한 청춘>에서 시카고의 지하철 차량이 어둠 속으로 불꽃을 내며 사라지는 장면을 연상하며 담배를 피우던 입술과 허파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친밀한 무언가가 작별을 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이 모든 생각은 구두끈이 끊어진 날 아침부터 구두끈을 사러 가기까지 머릿속의 생각이다. 그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우리와 일상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아의 일부란 걸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를 보면 일상과 자아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처럼 공동 진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상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과도 같다.

5. 닉 혼비의 『하이 피델리티』의 로브는 당신은 “어떤 타입인가요?”란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말할 거다. “나의 비범함은 엄청난 양의 평균치를 한데 모아 하나의 틀에 꽉꽉 채워 넣었다는 데 있다. 나 같은 사람이 수두룩하다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음악적 취향을 가졌지만 독서와는 담을 쌓았고 많은 녀석들은 책을 좋아하지만 뚱뚱하고 많은 녀석들은 우디 앨런식 유머감각을 가졌지만 술을 많이 마시고 많은 녀석들은 운전대만 잡으면 멍청한 행동을 일삼고…. 난 그런 짓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내가 여자들과 잘 지낸다면 그건 내가 가진 장점 덕분이 아니라 내가 가지지 않은 단점 때문이다.”

견해는 없지만 리스트는 있어서 늘 좋아하는 것 넘버 5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가 좋아하는 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책,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영화는 <베티 블루> <대부>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저수지의 개들>) 닐 영이 부른 <사랑만이 상처를 주네only love can break your heart>, 스미스의 <어젯밤 나는 누가 나를 사랑해주는 꿈을 꿨어last night some body loved me>, 아레사 프랭클린의 <내게 전화해call me> 혹은 〈love hurts〉 이런 노래를 들으며 노래 때문에 슬픈 건지 자신의 처지 때문에 슬픈 건지 헷갈린 적 있으며 여생을 독신으로 살까 봐 절대 차이지 않을 여자를 고른 적이 있고 자신보다 더 얌전한 사람들, 더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과 만나면 큰소리로 떠들고 호들갑을 피운 적 있으며 (나를 좀 봐,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 그렇게 지루한 사람이 아니야, 나도 인생을 즐길 줄 안다니까, 그런 메시지로) 여자 친구랑 헤어진 것보다 헤어진 애인의 새 남자 친구가 잠자리 기술이 좋다는 걸 받아들이기 더 힘든 적이 있다. 생일날 혼자서 <총알 탄 사나이 2> <터미네이터 2> <로보캅 2>를 빌려다 거실의 커튼을 치고 보다가 여기저기 구걸하듯 전화했던 적이 있으며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글래디스 나이트의 <당신은 내 인생에 일어난 일 중 최고you are the best thing that ever happened to me> 노래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때늦은 고통으로 절규하기를 꿈꾼 적 있다.

‘챔피언십 비닐’이라는 한적한 변두리의 레코드 가게 주인인 (사실 거의 망해가는) 그가 자신감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음반을 정리할 때다.

“이로 인해 나는 실제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가 되었다. 나에게는 음반이 수천 장 있다. 만약 당신이 이 중에서 음반 하나를 찾아내려면 내 머릿속에 들어오고 나 아니면 나에 관한 박사가 되어야한다. 예를 들어, 조니 미첼의 BLUE를 듣고 싶다 치자. 그럼 1983년에 누군가에게 주려고 그 음반을 샀다가 그녀에게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기억해 내야 하는데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음반 찾다가 두 손 두 발 다 들겠지? 내게 찾아달라고 애원할 거고. 그런 생각을 하자 웬일인지 대단히 위안이 된다.”

닉 혼비(Nick Hornby, 1957~)
그가 우여곡절 끝에 깨달은 것은 대부분의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작은 병에 꽉 차 있던 물을 커다란 빈병에 쏟아 부은 거나 마찬가지 행동을 늘 하고 있다는 것. 누구보다 심술궂은 사람은 바로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다는 것, 날씨나 아랫배 근육 같은 것이 자기 대신 내 마음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브리지트 바르도의 가슴이나 본드걸이 아니라 사랑하는 시선이란 것, 셀룰라이트나 눈가의 주름이 아니라 시선이 남녀 관계를 결정한다는 것.

수다쟁이 음악광 로브가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무엇일까? 일상이란 다음 주에나 그 다음 주에도 계속 그대로 있을 것 같은 클럽에 놀러 가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 일상에 좋은 날이란 결혼식 피로연이나 생일파티, 금혼식, 은혼식같이 인생에 어쩌다 한 번씩 끼어 있다는 것이다. 일상을 사랑하는 것은 “나란 사람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속해 있다!”라고 주먹을 불끈 쥐고 어떻게든 고쳐나가려 애쓰는 행위라는 것이다. 또한 넘버 5 리스트를 만드는 건 아주 즐겁다는 것, 자신만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구성하는 것도 재미있다는 것. 넘버 5를 다 채우기 어려워도 너무 위축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나로 말하자면 어떻게 일상을 사랑하나? 나도 오늘은 『하이 피델리티』식의 리스트를 만들어보고 싶다.

1. ‘인생에는 통달했지만. 심장이 팔짝팔짝 뛰게 하는 남자에 대해서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여자라야 착한 여자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인생에 통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따로 있다는 듯이 군다.

2. “안전벨트를 꽉 매세요, 요란한 밤이 될 거니까요.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무서워서 롤러코스터도 못 탄다)”라고 사기 친다. (가끔 사기를 치면 사람들이 나에게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다.)

3. 사막의 지평선 저 끝에 있는 작은 점 하나가 천천히 인간의 모습으로 커지는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를 상상하던 데이비드 린 감독의 머릿속(그 결과 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만들었다)을 아주 가끔은 상상하려 애쓴다. 나에게도 늘 작은 점은 있으니까.

4.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수는 없어도 사로잡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5. ‘보통 크기의 매듭인 여덟 번 교차하는 매듭의 경우 256가지 방식으로 밧줄을 위아래로 배치할 수 있다. 이중 하나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매듭이 되거나 아예 매듭이 만들어지지 않는다.’(『시핑 뉴스』에 나오는 애슐리 매듭서 중에서) 일상은 과연 매일 똑같을까?

6. 일상의 문제는 스타일이다. 일상의 문제는 깊이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그러니 느리게 살자거나 빠르게 살자거나 하는 말은 내겐 의미가 없다. 느리거나 빠르거나가 아니라 뜨겁거나 차갑거나.

7. ‘영화는 역이 아니다. 영화는 기차다.’(장 뤽 고다르) ‘즐거움은 여행길에 있고 슬픔은 목적지에 있다’의 대체가능한 또 다른 버전이 일상이다. ‘일상은 역이 아니라, 일상은 기차다. 즐거움은 일상에 있고 슬픔은 목적지에 있다.’

8. ‘일본의 목조 건물은 왜 오래가는가? 궁 목수는 절을 지을 나무를 고르는 데 남쪽 벽에서 쓸 나무는 산의 남쪽에서 자란 것을 쓰고, 서쪽 벽을 지을 나무는 산의 서쪽에서 자란 것을 쓴다.’ 내가 나무라면 나의 산은 뭘까? 바로 나의 일상이겠지 뭐.

9. 지구의 경우 반경 9mm로 압축하면 블랙홀이 된다는데 나도 압축적으로 뜨겁게 살면 뭘 빨아들일지 모른다.

10. 영화 이야기로 마무리 짓고 싶다. 쉰들러는 체코슬로바키아로 이송해 올 1,100명 노동자의 명단을 만들라는 지시를 스턴에게 내리는데 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명단은 정말로 훌륭합니다. 명단에 드는 것은 목숨을 구하는 거죠, 명단의 모퉁이마다 거대한 심연이 놓여 있군요.” 이상하게 난 이 말이 자주 생각난다. 인생의 모퉁이를 돌 때 가끔 이 대사가 생각나면서 정신이 반짝 난다. 일상의 소중함을 이보다 더 간절하게 절절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내 지금의 일상이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의 명단에 든 덕택이라 생각한다면?

P.S. 이 글을 쓰는 동안 스물세 명의 한국인이 아프간 탈레반에게 피랍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글을 마치고 난 다음 날 아침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읽다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피랍된 차혜진 씨의 동생 성민 씨가 탈레반 지도자와 누나에게 쓴 편지를 읽어서였다.

탈레반 지도자에게는 “제발 그들을 무사히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렇게 무사히 빕니다. 제발 돌려보내 주세요. 이렇게 빌고 또 빕니다. 제발…” 이렇게 썼고, 누나에게는 “누나! 걱정하지 마. 누나가 돌아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온가족이 모여 편하게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그러자. 이런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정말 너무 너무 사랑한다. 누나” 이렇게 썼다.

정말 그들이 꼭 무사히 그들의 일상으로 돌아오길 저 또한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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