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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힘들 때마다 내가 '역사책'을 꺼내 읽은 까닭 | 2020년에 쓴 리뷰들 2020-01-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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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역사의 쓸모

최태성 저
다산초당 | 2019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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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다보니 아무래도 역사책을 좀 많이 읽었다. 초짜 선생일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르치기도 했다. 7시간 넘게 내가 아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열변을 토할 때면 아이들도 '역사적 사실'을 받아적기 바빠서 질문 한 번 제대로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한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역사는 배워서 어디에 써 먹어요?" 난감했다. 뭐라고 대답해주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흔한대답은 해주나 마나다. 그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 어디쯤에 있는 길인지 언제나 끝이 날지도 알지 못하는 길인데 뭐라고 설명을 해주냔 말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성적에 도움이 되지. 대학 안 갈거야?"라며 면박주듯 답을 하고 말았다. 진심은 '나도 모르니 쓸모 없는 질문 따위는 하지 마라'는 거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답변을 해주고 난 뒤에 수많은 '심적고통'에 시달렸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는 역사를 왜 가르치나?', '나는 역사를 왜 좋아했나?', '나는 왜 역사책을 읽으면 즐거워 하나?'...내 스스로 던지는 그 어떤 질문에도 적절한 답변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이들 수업을 위해 <유관순 위인전>을 읽을 때였다. 몹시 부끄러웠다. 나는 열일곱, 열여덟에 일제의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국하신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으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그 나이에 뭘 하고 살았나?' 아니 '나는 지금이라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큰 뜻을 품고 독립만세를 목놓아 부를 수 있을까?'...아니 못 할 것 같았다. 유관순은 일제를 향해서도 당당히 대꾸했다. "나는 내 나라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나를 죄인 취급하지 마라"...이 말에 몹시 부끄러웠다. 왜냐면 나는 '친일파'들을 욕하면서도 그들의 변명에 따져 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픈 시대'에 태어난 죄밖에 없으니 살려고 거짓부렁을 했을 뿐이다...그 시절에는 다들 그랬다. 안 그랬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지나간 과거는 묻고 밝은 미래를 건설하자...이런 변명을 늘어놓는데도, 따끔하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냥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기적이라서 자기 이익을 위해선 때론 '비겁'해질 수도 있는 법이라는...그런 이해 말이다. 그런데 '유관순 열사'는 달랐다. 아니 모든 '독립운동가들'은 다 그랬다. 비겁하게 사는 것보다 당당히 죽음을 택하는 삶이 더욱 값지다면서 말이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아무개들'이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제 한 목숨을 산산히 부서지도록 내던진 것처럼 말이다. 친일파들은 이런 아무개들을 '개죽음'에 비유하며 조롱하지만 비겁하게 살아남아서 내뱉는 변명일 뿐이다. 그러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고 말이다. 이렇게 '정리'가 되고 나니, 역사를 왜 배우는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역사책'을 읽으며 즐거웠던 까닭도 답을 찾게 되었다. 그 답은 바로 '내가 본받을 삶을 찾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만약 홀로 살아간다면 정말 막막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막막하기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동안 배운다. '먼저 살다간 사람의 발자취'를 살펴보며 살아간다. 흔한 드라마 소재 중에 "난, 엄마처럼 살지는 않을 거야"라면서 집을 박차고 나간 딸이 20년 뒤에 '엄마'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 것들이 많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려서부터 '엄마'를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란 바로 이런 '딸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바로 '역사'인 셈이다. 역사를 가르치다보면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리 자신을 지켜나가는 선조들의 반복적인 모습을 'DNA'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우리는 반만년이나 이 땅을 지켜오며 다른 민족에게 결코 굴하지 않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한무제의 공격을 1년 넘게 막아내고, 수나라 당나라의 공격을 거듭해서 막아내며, 거란의 침입과 몽골의 침입, 왜적의 침입 등등 몽땅 다 막아내었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분란을 일으키지만 않고, 단결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넘볼 수 없으니 '자긍심'을 가지라고 말이다. 너희들의 몸 속에 그런 'DNA'가 있다고 말이다. 이런 두루뭉술한 표현을 좀 더 확실히 하면 '우리 선조들의 삶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배울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책, <역사의 쓸모>는 바로 이러한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성적을 위해서, 대입을 위해서 외우고 또 외웠던 '역사적 사실'을 달달 외우는 것에는 아무런 쓸모를 느낄 수 없으니 진정한 역사를 배운다는 건 '역사적 인물의 삶'을 참고해서 '내 삶의 목표'로 삼아도 좋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쓸모'라고 말이다. 읽자마자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역사의 쓸모'는 [역사 바로 읽기]에도 유용하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세종대왕과 이순신이다. 특히, 이순신은 23전 23승, 무패 신화를 작성하며 임진왜란을 승리로 거든 장군이기에 모두들 존경하길 마지 않는다. 그런데 이순신과 같이 싸웠던 '원균'은 어떤가? 그도 '조선의 장수'였으며 전장에 나가서는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웠다. 물론 원균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비판할 때는 '정확한 근거'를 들어서 해야 한다. 아무런 까닭도 없이 무조건 미워한다면 그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된다. '원균의 잘못'은 동료 장수인 이순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런 감정을 자신의 입신양명의 기회로 삼은 것에 있다. 이런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이순신과 늘 '전공'을 다퉜고, 더구나 적의 계략에 빠져 이순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했다. 더구나 '칠천량 해전'에서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이기지도 못할 전투에 나서서 애써 키운 '조선 수군'을 한순간에 궤멸시켜버린 점에 있다. 이렇게 '비판'을 하고 나서 '이런 잘못된 삶'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점을 깨우친다면, 역사를 바르게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역사의 쓸모'를 잘못 활용하고 있었다. 바로 '일제의 역사왜곡'으로 말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순신전>은 '춘원 이광수'와 '단재 신채호'가 각각 썼다. 하지만 당시 '일제의 검열'은 춘원의 책은 널리 읽히도록 했고, 단재의 책은 금서로 읽지 못하게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춘원의 책은 조선 민중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지 못하고 갈라지게 하며, 단원의 책은 조선 민중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독립운동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춘원의 책을 읽으면 이순신이 충성을 바친 조국(선조)을 미워하게 하고 같이 싸운 장수(원균)마저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제는 이를 통해서 춘원의 책을 널리 읽혀서 '이순신 같은 영웅조차 죽음으로 내몬 선조와 원균을 증오하는 마음'이 들게 해서 독립운동의 구심점을 앗아가버린 셈이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일제는 '이순신은 참 훌륭하다. 일본에 이런 영웅이 있다면 성웅으로 떠받들 것이다'라는 뉘앙스를 풍겨서 너도나도 친일을 하도록 유도했다. 반면에 단재의 책은 비록 선조와 원균의 잘못된 판단으로 위기를 겪기는 하였으나 우리 민족은 그런 위기조차 슬기롭게 이겨내어 끝끝내 이순신과 같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었다. 조선민중들이여, 우리 모두 이순신과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나라를 구하자는 내용을 심어주었다.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이처럼 일제는 '역사 왜곡'을 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그 '쓸모'를 이용한 셈이다.

 

  이처럼 역사는 쓸모가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꺼내서 읽을 수 있는 '인생 메뉴얼'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의 삶을 본받을 것인가를 추천할 것도 없다. 이사람, 저사람의 '삶'을 엿보다보면 저절로 내가 살고 싶은, 본받고 싶은, 존경하는 분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또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바로 '역사'다. '개인의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내가 그동안 힘들고 괴로울 때 이유도 없이 '역사책'을 꺼내 읽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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