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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2.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영웅, 홍범도 | 2020년에 쓴 리뷰들 2020-10-12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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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평전

김삼웅 저
레드우드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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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읽는 '김상웅의 평전'이었다. 지난 번에 읽은 책은 <의열단>에 대한 책이었고, 이번엔 <홍범도>다. '김상웅의 평전'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는 '애국지사에 대한 찬사'다. 허나 결코 가볍지 않다. 업적을 드높이기 위해 '꾸밈'을 넣지 않기 때문이다. 또 '사실'에 대해 가감이 없다. 공사의 구분이 명확하게 평가를 내리고, 공과의 내용도 있는 그대로 전한다. 우리가 <평전>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풀이고 걸러내는 일을 벌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김상웅의 평전'은 일단 그런 점에 대한 걱정을 내려두고 읽어도 괜찮을 듯 싶다. 그의 글 하나하나에서 '최대한 객관적 서술'을 하려고 애쓰는 대목들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잊혀진 영웅, 홍범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영웅이며 '대한독립군'을 조직하고 일제의 정규군대와 맞서 싸워 승리한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첫째는 그가 머슴을 살던 '평민 출신'이라서, 둘째는 그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공산주의자라서, 셋째는 그의 일가족 모두가 '무장독립투쟁' 중에 사망해서 후손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곤 한다. 홍범도의 첫 번째 부인은 일제의 가혹한 고문을 받고도 남편의 행적을 발설하지 않았으나 끝내 고문후유증으로 순국하셨으며, 첫째 아들은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비다가 일제 정규군과 교전중에 중대원과 함께 전사하였으며, 둘째 아들은 자신과 함께 전장을 누비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병사하고 말았단다. 그렇게 홍범도 장군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을 모두 잃고 홀홀단신으로 살다가 끝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이국타향에서 광복 2년 전에 75세의 나이로 순국하셨다.

 

  물론, 광복 뒤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다 감출 수는 없었다. 허나 광복 직후에 혼란스런 정국과 분단, 끝내 '한국전쟁'이 벌어져 이념으로 인한 분단에 이르자 '소련 공산당'에 투항해서 민족을 배반한 영웅으로 깎아내려지고 만다. 이렇게 잘못된 평가를 내리게 된 '결정적 원인'은 <청산리 대첩>에서 함께 싸웠던 '이범석'이라는 위인 때문이었단다. 이범석은 '김좌진 장군'의 휘하에 있던 장교였는데, 훗날 이승만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경력도 있을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살았고, <우등불>이란 '자서전'도 남겼는데, 이 책에서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크게 깎아내리고 김좌진 장군의 업적만 드높이면서 상대적으로 김좌진 장군의 휘하에 있었던 자신을 내세운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홍범도 장군은 싸웠다 하면 '연전연패'를 하였고, 훗날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였다면서 '반공주의'를 외치던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 '홍범도 장군'은 홀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잊혀진 영웅'이 되고 말았던 셈이다. 더구나 후손도 남기질 못했으니 '조상의 업적'을 기려줄 이도 없었던 탓이 가장 큰 셈이다. 친일과 매국을 했던 경력이 있는데도 자신의 조상을 '위대한 영웅'이라고 선전을 하던 뻔뻔한 후손들 덕분에 광복이 된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찬밥 취급을 받던 것을 생각하면 열불이 터질 지경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독립군'이었으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홍범도 장군'의 업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왜냐면 일제는 대규모 정규군대를 풀면서 오직 '홍범도 장군'만을 쫓았으며, 홍범도를 소탕하려다 도리어 '독립군들의 매복'에 걸려서 전멸하거나 '홍범도 장군'의 귀신 같은 용병 전술에 걸려들어서 자기들끼리 교전을 하다 몰살을 당하는 등 몇 날 며칠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며 대승을 거둔 것이다. 그러고도 홍범도 장군은 자신의 전공이 아닌 '독립군' 모두의 전공이라며 공을 모두에게 돌려세우는 겸허한 영웅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독립군들이 그의 말을 따르고 의지하며 힘든 전쟁을 치루고 또 치뤘던 것이다.

 

  허나 <청산리 대첩> 이후에 일제의 보복으로 이루어진 '간도참변'으로 독립군을 안팎으로 도와주던 '한인들' 수천 명이 몰살 당하는 일을 당하고 말았다. 홍범도에게 패배한 일제는 자신들의 치욕을 되갚겠다는 일념으로 '한국인'을 보이는 족족 다 죽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북간도 일대'에서 활약을 하던 독립군들이 러시아땅으로 움직였고, 홍범도가 이끌던 독립군도 '연해주'로 들어가게 되었다. 허나 그곳에서도 반겨주는 이들은 없었다. 당시 러시아는 일본과 함께 1차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서 지위를 누리던 때였기 때문에 '한인들'에 대해서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본이 '만주'를 탐내고 있던 터라 러시아도 일제를 견제하기 위해서 '한인들'을 이용하고 있었지만, 당장 시급한 문제는 '볼세비키'가 저지른 '공산 혁명'이었다. 다급해진 러시아는 '극동지방'에 관심을 둘 수 없었고, 그 틈을 노린 일제는 연해주 일대에 군대와 밀정을 파견하는 등 '한인과 독립군'을 소탕하기 위해 혈안이 되던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공산 혁명'은 성공을 거두고 러시아는 무너졌다. 뒤이어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들어서면서 여러 갈래의 공산주의 파벌 싸움이 한창 벌어지자, 그 여러 세력들에 의해 '한인'과 '독립군'의 운명도 갈래갈래 찢어지고 말았다. 그 혼란속에서도 초지일관 '독립운동'에만 몰두하던 인물이 바로 '홍범도 장군'이었단다. 그는 평민 출신이고 무장(장수) 체질이었기 때문에 '먹물'들이 벌이전 이념 투쟁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한 가지'로 힘을 모으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 하고만 있었단다.

 

  그때 '자유시 참변'이 벌어진다. 소련 공산당은 '독립군'에게 일체의 무기와 식량을 지원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며 '무장해제'를 요구했는데, 이 '무장해제'를 두고 독립군들 간에 의견충돌이 벌어졌고, 무장해제를 하네 못하네, 지원을 얼마큼 받았네 못 받았네, 그리고 이념과 이를 둘러싼 파벌 간의 이해가 서로 충돌하면서 '독립군'들끼리 내전이 벌어지는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소련의 부적절한 조치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더욱 안타까운 일은 '우리 동족들'끼리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서로 총질을 하여 우리 스스로 '독립군 해체'라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애초부터 홍범도와 휘하 부대원들은 '공산주의자'도 아니었고, 이렇다할 '이념'도 갖고 있질 않았기 때문에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한 발 물러 서있었지만, 훗날 이 일이 빌미가 되어 홍범도가 목숨을 잃어버릴 뻔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홍범도는 여러 차례 중재를 하며 사태를 일단락 시키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결국 소련 공산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무장해체'를 하고 만다. 국내진공작전이 실패하고 북간도와 연해주에서 연이은 '한인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소련의 힘을 빌어서라도 '일제'와 싸울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결정이라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련에서 정착해서 토지를 지급 받고 농사라도 지을 땅을 배급 받기 위해서는 '공산당원증'이라도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 사연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결정'은 아니었다. 상황이 급변해서 소련과 일본은 서로를 '불가침한다'는 조약을 맺게 되고, 연해주에서 일본군이 철수를 해버리자 더는 '한인과 독립군의 도움'이 필요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약속했던 무기지원과 토지배급도 받지 못한 채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망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시작'이었다.

 

  그나마 '홍범도 장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한 화려한 전적이 '레닌'과 '트로츠키'에게 호의로 작용했기 때문에 한줄기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소련의 1인자와 2인자가 홍범도에게 '영웅 칭호'를 하며 '권총'과 '금화 100루블'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소수민족 가운데 유일하게 받은 '호의'였다. 이로써 한인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 보장되겠다 싶었지만, 1년 뒤에 레닌이 사망하고, 트로츠키 또한 추방을 당하며 '스탈린'이 집권을 하자, 상황은 급반전하고 말았다. '고려인의 강제이주'가 시작된 것이다. 연해주를 출발해서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지금의 '카자흐스탄'까지 몇 달을 달려간 '강제이주'는 황폐한 땅에 버려지는 것 이상의 고통이었다. 그리고 '소수민족' 가운데에서 가장 먼저 강제이주를 당한 터라 일종의 '본보기'가 되었고, 강제이주의 '실험쥐'가 된 셈이라 도착해서 사망한 사람보다 '이동중'에 사망한 이가 더 많을 정도로 참혹한 처사였다. 더구나 버려진 곳에서 '지급'받기로 했던 땅과 식량, 그리고 집도 못받기 일쑤였기 때문에 그야말로 '버려진 민족'이었다.

 

  허나 우리의 조상들은 그 차가운 황무지를 개간하고 물을 끌어들여 벼농사에 성공하며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처음엔 냉소적이었던 '현지주민들'조차 우리 조상들의 인내와 끈기, 그리고 불굴의 의지에 감탄하며 서서히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더욱 악랄했다. 약속했던 땅(?)에서 그나마 먹고 살만해지자 이번엔 '한국어 금지' 명령을 내렸다. 나라를 빼앗긴 민족이 받는 수모는 설움에 더해 '민족의식'마저 끊어져 버리게 된 것이다. 홍범도를 비롯해서 우리 민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스탈린의 강압적인 정책으로 '한국인'은 군인이 될 수도 없었고, 교사가 되는 일도 절대 불가였다. 평생은 '무장'으로 살아온 홍범도에게 일제와 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빼앗겨버린 셈이다. 그럼에도 홍범도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백발백중의 '사격솜씨'를 보이며 일제와 싸울 수 있는 전장에 내보내달라며 소리쳤지만, 소련 당국은 일제와 싸울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홍범도의 솜씨에 박수를 치면서도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쓸쓸히 지내던 차에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주위에서는 늙은 몸으로 홀로 살아가며 제대로 먹지도 못한 것이라며 '재혼'을 권유했단다. 두 번째 부인에게는 '손녀딸'이 있었는데, 그녀의 재롱을 보며 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것이 인생 말년의 유일한 낙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그의 일대기를 '연극'에 올리고 싶다는 제안을 받게 되고, 결국 <홍범도 일지>가 완성되며 '연극'이 공연되었단다. 이 연극은 망국의 설움을 딛고 만리타향에서 살고 있던 '한인들'의 가슴을 적셨으며,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와중에는 '현지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패망 2년을 앞두고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사인은 '노환'이었다.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던 장군이 끝내 '독립'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75세의 나이로 서거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최근에서야 소상히 알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공산주의자'로 낙인을 찍어버려 역사에서 지워버렸고, 우리는 그렇게 잊어버렸던 셈이다. 하지만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100주년을 맞이했으니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고 스러진 영웅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유일한 '대한독립군 대장 홍범도'는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영웅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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