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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4. 적어도 그는 반역자는 아니었다 | 2021년에 쓴 리뷰들 2021-02-2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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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김재규 장군 평전

김삼웅 저
두레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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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을 하얼빈에서 저격해서 사살한 것을 영웅적인 행위라 칭하길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김재규 장군이 박정희를 저격한 것은 무어라 평가해야 할까? 여기서 김재규를 '장군'이라 칭한 까닭은 딱히 존경의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다. 그저 김재규 스스로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김재규를 존경할 수 없는 까닭은 그도 박정희와 함께 '쿠테타'를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쁜놈'이 아흔아홉 가지 죄를 저지르고 단 한 번의 선을 베풀었다고 해서 '좋은놈'이라고 부를 까닭이 없다는 단순한 까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아니었다면 '유신독재'를 누가 멈추게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조선의 평화를 넘어 동양의 평화를 간절히 바랐던 안중근이 권총을 든 것처럼 김재규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기꺼이 권총을 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김재규 장군의 생애를 다시금 조명해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딴에는 격동의 시절을 살아간 이들이 말하는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싶은 맘도 있다. 전세계가 '냉전'을 맞아 미국의 편이 아니면 소련의 편을 들어야만 했고, 해방 후에 남북으로 분단이 된 한반도에서는 더욱 극심한 '이념 갈등'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또한, 경제가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하지 않으면 민주화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는 점에서도 '독재정권'들의 변명에 뭐라 반박하기 힘든 무엇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법치국가'를 포기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의 재산을 가로채는 불법을 저지르고서도 "그때는 모두들 어쩔 수 없었다"고 늘어놓은 변명에 무죄를 선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냔 말이다. 마찬가지로 이승만 독재가 물러간 자리에 '민주적인 혼란'이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군사독재'로 모든 것을 밀어붙여서 19년 동안 권력을 독점하고 부정과 비리에 눈감고 전횡을 일삼았다면 '국민의 심판'을 달게 받았어야만 했다. 헌데도 권세욕이 하늘을 찔러버린 '독재자'는 지금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그 '독재자'를 처단한 이는 불명예스럽게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은 채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마치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폄하하고 훼손시키는 세력과 다를 게 무어냔 말이다.

 

  이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잘못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에 대한 사사로운 평가는 논외로 치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가진 그가 저질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명정대한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 그리고 그 평가는 '독재자'라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불법적이고 부정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국민과의 약속도 헌신짝처럼 바꾸고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들이 그런 독재자를 사랑(?)해마지 않았던 까닭은 '경제 살리기'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 덕분이다. 물론 그가 집권하던 시기에 대한민국의 경제가 급성장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급성장한 경제로 혜택을 받은 이들은 누구누구였던가? 자신을 비롯해서 자신의 측근과 비리로 얼룩진 대기업들과 그 밑의 특정 기업들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헐벗고 못 살았다.

 

  민주화에 대한 평가는 형편없다. 그가 집권하던 시기에 '민주화 운동'은 철저히 탄압되었다. 더는 국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남산(중앙정보부)'에만 가면 묻히기 일쑤였다. 으레 산꼭대기에서 외친 목소리는 메아리가 울려퍼지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또한 '반공'을 국시로 삼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며 한다는 짓거리는 거의 대부분 '대한민국의 국민'을 위협하며 '박정희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차단하는데 혈안이 되었을 뿐이다. 심지어 이후락는 김일성을 만나서 '박정희 정권'을 유지하는데 공공연한 협조를 얻어내는 일까지도 저질렀다. 그토록 '반공'에 철저한 정권이라면 해서는 안 될 일이지 않았느냔 말이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자신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럼에도 민주화의 물결이 멈추지 않자 박정희 정권은 '유신'을 꺼내든다.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긴급조치'를 연달아 내놓은 저의는 다름 아니라 '영구집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약 '김재규'가 권총을 쏘지 않았다면, 영구집권이라는 서슬퍼런 독재를 무엇으로 막을 수 있었느냔 말이다. 그래서 김재규에 대한 평가를 다시금 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허나 김재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그리 좋을 리 없다. 일제시대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유학도 다녀왔고, 해방 후에는 군인의 신분으로 박정희와 함께 쿠테타에 참여했으며, 박정희가 오랜 집권을 하는데 협력한 사실이 어렵지 않게 확인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독재자의 공범'인 셈이다. 그런 그가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는지 박정희가 '영구집권'의 야욕을 벌이자 그의 심장에 총부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사전에 계획된 것인지 우발적인 사건인지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유신정권을 뒤이어서 '전두환 독재'가 이어졌기 때문에 김재규를 서둘러 사형시켜버리고 관련된 기록을 은폐해버리거나 날조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박정희를 영웅대접하느라 온국민이 함께 은폐하고 날조하는데 동참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10·26 사건'이 벌어진 지 40여 년이 넘어서야 다시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반석에 놓여지고 난 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혁명가'인가, '반역자'인가? 나는 적어도 '반역자'라는 평가는 지워버려야 한다고 본다. 그를 혁명가로 부르기에는 그의 생애 대부분이 '박정희'와 함께였기 때문에 부적절하다고 본다. 하지만 '반역자'라는 낙인은 당연히 떼어 내야 한다고 본다. 그가 한 일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지, 독재자의 편에 서지 않은 반역자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저격이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정점을 찍지는 못했다. '유신독재'를 막아내긴 했지만, '신군부 세력'의 등장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 의해 처형 당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무력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그의 결단 덕분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신군부의 독재'를 비교적 빠르게 끌어내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87년에 '6월 항쟁'이 성공적으로 치뤄졌기 때문이다. 김재규의 거사가 아니었다면 '유신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더욱 힘들었을 것이고, '박정희 신드롬'에 빠져 있던 국민들 틈바구니에서 '민주화 운동'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거라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재규는 '의사'라는 칭호를 받지는 못하지만, 그가 평생 자랑스럽게 여기던 '군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장군'이라는 칭호를 주는 것은 그닥 나쁘지 않은 것 같기에 그를 '김재규 장군'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기도 하다. 물론 존경의 의미까지는 아니고 말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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