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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2. 그대여,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말라 | 2021년에 쓴 리뷰들 2021-09-1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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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말괄량이 길들이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정유선 역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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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두 번째 책으로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꼽았다. 물론 그동안 읽은 책이 그것 뿐은 아니었으나 요즘 글이 좀 안 써지는 관계로 '셰익스피어 읽기'에 게을러진 것은 사실이다. 우선 <4대 비극>과 <5대 희극>을 중점적으로 읽고 있다. 원활한 리뷰 생활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되는데로 써보려 한다. 서론이 긴 까닭도 바로 손가락에 기름칠 좀 하려는 까닭이다. 다시 시작이다.

 

  여자를 '길들인다'는 표현에 시작부터 난관에 빠져들었다. 누가 누구를 길들인다는 표현이 요즘에는 부적절한 탓이다. 근래에 저질러지는 '데이트 폭력'과 '가스라이팅', 그리고 '스토킹'과 같은 성폭력에 끔찍한 느낌을 받고 있다면 이 책이 달갑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전문학>이라고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해도 노력해도 말이다. 더구나 극의 결말이 누구도 못말리는 말괄량이 카타리나를 순종적인 아내인 케이트로 변신해서 수많은 남자들이 원하는 여인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매우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과연 길들여진 케이트가 '우리 시대가 원하는 여인상'일까?

 

  우리가 읽어야 할 고전문학으로 '셰익스피어'를 꼽는데 주저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어린이 필독서로 '셰익스피어의 문학'을 선정하는 것에 반감을 갖는 학부모도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대문호의 작품속에서 교육적으로도 인성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내용'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은 놀라움, 그 자체가 되고 만다. 모름지기 <고전>에서는 시대를 거슬러 변하지 않은 아름다운 지혜를 배울 수 있기에 아무런 의심도, 거부감도 갖지 않는 '믿음'이 밑바탕을 깔고 있을 진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코 바람직하지 않는 내용'이 담겨 있다니...

 

  <햄릿>에서도 셰익스피어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라는 명대사를 남기며, 유혹에 약하고, 이성적인 사고력에 뒤쳐지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곤 했는데,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도 꼭 같았다. 그나마 '카타리나'의 첫 등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버지나 구애자들에게 당당하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피력하며, 때로는 마음에 차지 않으면 거칠게 말하고, 그에 걸맞게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 말이다. 21세기 여성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주위의 평판은 형편없다. 카타리나는 바람직한 여성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그녀를 자식으로 둔 아버지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내며,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미래의 남편감'에게 애도를 표하는 방식으로 카타리나를 '돌려까기' 하기 일쑤다. 심지어 동생인 비앙카도 언니인 카타리나를 '심술쟁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식으로 에둘러 비꼴 뿐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카타리나는 '페미니즘(여성운동)'의 선구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작품속 무례한 남정네들과 무지한 여인네들 덕분에 카타리나는 스스로 '여성운동의 선구자'인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오늘날의 페미니즘은 그 갈래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로 단순한 '여성운동'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난 '여성운동'에 찬성하고, 진정한 '양성평등'을 지지하기 때문에 당당한 여성에게 큰 매력을 느끼며 응원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런데도 나를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운동을 진심(?)으로 펴 나갈 수 없다고 하고, 진정한 여성운동은 오직 순수한 '여성'만이 할 수 있다고 한계를 정해버린다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모름지기 '한쪽 날개'만으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없으니까 말이다. 페미니즘의 완성은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도 함께, 또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운동으로 지향되어야 할 것이다.

 

  암튼, 카타리나는 구혼자로 등장한 페트루키오에 의해 철저히 '길들여'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육체적인 힘을 앞세워 폭력적인 행위로 길들이지는 않았다. 페트루키오를 '베로나의 신사'로 소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회적인 지위에 걸맞는 엄청난 부를 앞세워 눈부시게 아름다운 카타리나를 아내로 맞이할 것을 많은 이들에게 맹세하며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순수한 사랑'을 전해서 카타리나의 마음을 얻어낼 것이라고 호언장담 한다. 카타리나의 성깔을 잘 아는 이들은 모두 페트루키오를 안쓰럽게 여길 뿐이다. 카타리나가 못말리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저럴 수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페트루키오도 만만찮은 성격 파탄자(?)였다. 그는 누구도 못말리는 카타리나보다 더 망나니처럼 굴면서 카타리나의 기를 꺾어버린다. 막무가내로 결혼식을 밀어붙였고, 첫날밤에는 빵 한조각도 먹지 못하게 굶겼으며, 꽃과 같이 아름다운 아내에게 어울릴만한 드레스를 준비하고서도 카타리나 눈 앞에서 형편없다며 드레스를 내다 버렸다. 또한 처댁 방문차 여행중일 때는 한낮의 태양을 보고도 달이라고 우기고, 길을 지나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아가씨라고 소개하며 카타리나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했다. 이 모든 행위들이 괄괄한 성격의 카타리나를 길들인다는 '남편의 당연한(?) 권리'라면서 말이다.

 

  못말리는 카타리나는 어처구니 없는 남편의 성화를 견디다 못해 '바른 소리'를 말했고, 남편의 오류를 지적하며 '논리정연한 반론'을 제시하며 남편의 우격다짐을 바로 잡으려 했으나, 끝끝내 길들여지고 만다. 너른 초원을 마음껏 내달리던 야생마가 올가미에 걸리고, 갈기를 휘어잡힌 채, 함부로 등에 올라탄 사람을 떼어내려 날뛰다가 끝끝내 떨궈내지 못하고 길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며 페트루키오가 카타리나를 길들이는 장면을 묘사했으나, 내 눈에는 딱 '그렇게'밖에 보이질 않았다. 결국 카타리나는 '만인이 원하는 바'데로 순종적인 아내가 되고 말았다. 아니 그보다 더욱 심하게 변절(!)하여서 다른 여인들 앞에서 '순종적인 여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일장 연설을 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희곡은 수많은 남정네들이 변절한 카타리나를 극찬하면서 막을 내린다.

 

  <고전문학>을 읽을 때에는 '시대상'을 반영하며 읽어야 한다고 곧잘 말한다. 이른바 '반영론적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나는 일개 '독자'일 뿐이기에 '효용론적 관점'으로 읽어야 마땅하다고 반론을 말하고 싶다. <고전문학>을 옛날 옛적의 '시대상'만을 고려하며 읽어야 한다면, 결코 시대를 '초월'해서 읽어야 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그랬어"라고 <고전문학>이 이야기한다면, 오늘날의 독자는 "그건 그때고, 지금은 달라졌어"라며 읽어야 한다고 말이다.

 

  분명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지금 읽어도 위트가 넘치는 대사 덕분에 미소가 지어지는 재미난 희극임에 틀림없다. 비극과는 달리 '해피 엔딩'이 넘쳐나며 극중 인물들이 벌이는 저마다의 사연을 엿보는 관객들에겐 함박웃음이 가득해질 것이 틀림없다. 허나 딱 거기까지다. 극중 초반에 카타리나의 당당한 모습에 흡족해졌다가 페트루키오의 '길들임'이 보여질수록 알게 모르게 불쾌감이 샘솟다가 완벽하게 길들여진 카타리나의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할 것, 역시 틀림없다. 남자나 여자나 똑부러진 '자기 주장'을 펼치며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로 인해 감동적인 나날을 보내는 것이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행복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런 행복을 누구나 편견없이 누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거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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