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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과학
역사, 이렇게 | 역사 / 과학 2008-09-16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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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숨에 읽는 세계사

역사연구모임 엮음
베이직북스 | 200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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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사란 무엇인가?
 역사에 주관은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에 포함되어야 할 것은 모두 객관적인 사실들만을 나열해야 합니다. 그래서 랑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란 결국 객관적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역사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역사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그 당시 역사가가 서술하고, 또 현재의 역사가가 서술합니다. 여기에 주관이 개입하게 되지요.

 

 그렇다면 주관이 개입된 역사는 객관적 사실이 될 수 없느냐? 그렇지 않다고 카는 말합니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가 한 사람이 말하는 것은 주관적인 해석일지 몰라도 여러 역사가들이 연구를 통해서 말하는 과거의 사실에는 분명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공통점은 비록 주관적 해석에서 일지라도 보편성을 띄므로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역사가들은 자신의 주관적 해석을 입증하기 위해 유적과 유물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결국 이렇게 입증된 역사적 사실은 객관적 사실로써 모두 믿게 될 것이다.

 

2.역사는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과거의 사실을 통해 현재를 알 수 있고, 이렇게 알아낸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 사람은 결국 역사가들 뿐이기에 구태여 어렵기만 한 역사를 일반인이 배우려는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들이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시험에 나오기 때문이고, 결국 대입시험에서 합격하려는 목표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역사를 배운다고 한다면 참 허무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반복되는 것은 원인과 결과만 알면 대책을 세우기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미래 예측>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고, <미래 예측>하는 힘을 길러 삶을 개척하기 위함입니다.

 

 단지 과거의 사실만 암기하여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과거의 사실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헤아리고 같은 방법으로 미래를 점치고 대책을 세울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역사 공부는 단지 <과거의 사실>만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예측>하는 것에 목적으로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를 배우는 진정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것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역사의 흐름을 읽고 현재를 직시해야 올바른 역사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복잡다단한 사실들을 꿰뚫는 안목을 단 번에 익힐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분명 풀지 못할 숙제는 없고, 단지 풀 시간이 부족할 뿐입니다.

 

 어떤 역사학자는 역사를 공부하는 것을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서 조각배를 띄우고 낚싯대 하나 드리운 것과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즉, 전문가인 역사가조차 망망대해와 같은 역사에서 아주 일부분만을 다룬다는 뜻입니다. 일반인들은 말한 것도 없겠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교양을 쌓는다> 언제까지, 얼마만큼 쌓아야 <교양인>이라고 불릴까요? 역사만큼 <교양> 쌓기에 좋은 공부가 없습니다. 또 즐거운 학문도 없지요. 이 글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글이라기보다 저 자신에게 다짐하는 글이길 바랍니다.

 

3.역사에 관한 정의와 담론

 토인비(Arnold Toynbee, 1825~1883)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기록이다."

  많은 문화 유형을 연구하여 세계사를 포괄적으로 다룬 독자적인 문명 사관을 제시하였다. 그리스 이후 쇠티하였던 역사의 반복성에 빛을 부여함으로써 고대와 현대 사이에 철학적 동시대성을 발견하고, 역사의 기초를 "문명"에 두었다.

 

 카(E. H. Carr, 1892~1982)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항상 다시 쓰여진다면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정의하였다.

 

 공자(孔子, B.C.552~479)
 溫古而知新 可以爲師矣

  옛것을 알고 새것을 익히면 위대한 선생이 될 만하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
 "역사는 모든 과학의 기초이며 인간 정신의 최초의 산물이다."

  <프랑스 혁명>의 저자이며, 역사가이다.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
 "역사는 다양한 인간성의 거대한 경험이며 인간간의 오랜 만남이다."

  <역사를 위한 변명>에 나오는 글이다.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역사란 我와 非我와의 투쟁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
 "역사란 결국 객관적 사실이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과학적 역사 연구로 유명하다.

 

4.역사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 창조적인 인간으로서 도약
 - 세계화의 주역과 무대
 - 경험의 축적으로 인류발전을 도모
 -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힘과 불굴의 도전정신
 - 현재와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
 - 인간의 윤리적 규범을 가리는 잣대
 - 진실과 거짓을 규명하는 척도
 - 교양과 지식을 넓혀주는 원천

[출처]<단숨에 읽는 세계사>에서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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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역사, 어떻게... | 역사 / 과학 2008-09-1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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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서술 방식에 따라 <기전체><편년체><기사본말체>로 역사서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기전체>는 인물 중심의 종합적 역사 서술 방식이고, <편년체>는 역사적 사실을 연, 월, 일처럼 시간 순서로 기록해 나가는 서술 방식, <기사본말체>는 역사적 사건 경과를 중심으로 기록을 나열하는 서술 방식입니다.


      -[누구나 알아야 할 단숨에 읽는 세계사(베이직북스)]<서문>에서 발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역사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지?" "이렇게나 방대한 분량을 처음부터 끝까지 무작정 읽어? 그러면 너무 많아서 힘들고. 좀 간단한 방법은 없나?" 그래서 나온 대안이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이지요.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하신 분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역사를 처음 접하시거나 흥미를 느껴 도전하시는 분들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겪으셨을 겁니다.

 

 굵직한 인물을 중심으로 전후 역사 사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자니 너무 띄엄띄엄 역사를 바라볼 것 같고, 그렇다고 시간의 순서대로 공부하자니 역사적 흐름을 파악해서 좋긴 한데, 고대사는 분량이 적어서 그런데로 할 만한데 중세를 지나 근대로 넘어오면 분량이 방대해져서 엄두가 나지 않고, 가장 만만한 방식이 역사 사실의 전후를 파악하면서 시간 흐름대로 따라가는 것인데 이것 역시 웬만한 실력가지고는 중요한 건지 안 중요한 건지 알 도리가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기 때문이다.

 

 가장 추천하고픈 역사 공부법은 초보자에겐 <기전체> 방식을, 중급자 이상에겐 <편년체>와 <기사본말체>입니다. <기전체> 방식의 대표적 공부법은 <사극(역사드라마)>이나 <역사 소설>이기 때문이죠. 물론 드라마나 소설의 재미를 위해 왜곡된 사실이 많고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지 못한 드라마도 종종 있지만서도, 일단 역사에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시키는 공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깊이를 더한 역사책에 도전하시면 좀 더 즐겁게 역사를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딱 어울립니다. 처음부터 암기할 요량으로 역사를 접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재미없습니다.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이보다 더 재미있는 공부가 없고, 이만큼 교양을 쌓는 방법이 없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출처]누구나 알아야 할 단숨에 읽는 세계사(베이직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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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밝히련다(5) | 역사 / 과학 2008-04-0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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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진화를 잡아라!

데이비드 버니 저/김성한 역
궁리출판 | 200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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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얇은데 비해 담긴 내용은 정말 방대하였다. 이 책은 읽는 방법에 따라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 그냥 <텍스트> 위주로 읽으면 [백과사전]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겠고, <*>표를 따라서 읽으면 [다윈이 진화의 법칙을 정리하는 것부터 현재 진화론의 쟁점까지]를 총망라한 방대한 <진화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겠다.

 

 [종의 기원]이란 책을 읽기 전에 <다윈의 삶>에 대한 책, <진화론>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책, <현재까지 쟁점에 오른 진화론과 창조론의 공방>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러 책 중에서 이 책이 위의 세 가지를 가장 균형잡힌 시각에서 보여준 책이었다. 감히 [진화론]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의 [입문서]라고 할 만한 책이었다.

 

 다음엔 <종의 기원(찰스 다윈/홍성표 옮김, 홍신문화사)>에 도전할 셈이다. 좀 늦은 셈이다. 하지만 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는데도 [진화론]의 논점조차 제대로 몰랐었던 나에겐 이마저도 빠른 편이라고 생각한다.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고, 강연회에 다녀온 뒤부터 어렴풋이 '내가 알고 있는 진화론의 개념이 잘못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두꺼운 책이다. 완독하는데 조금 오래 걸릴 듯 하다. 도중에 [진화론]에 관련된 얇은 책을 읽으며 <종의 기원>에 담긴 내용을 총정리할 계획이다. 틈틈이 중요 부분은 정리하며 읽어갈 작정이다. 완독 후에 조금 똑똑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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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밝히련다(4) | 역사 / 과학 2008-03-3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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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윈

요하네스 헴레벤 저/권세훈 역
한길사 | 199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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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길로로로] 시리즈를 좋아한다. 위인전처럼 의도적으로 영웅을 만들지도 않고 평전처럼 딱딱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저 역사속의 한 인물을 담담히 그려내어(때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드러내어) 객관적인 서술자 관점을 읽는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종의 기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책을 읽은 게 벌써 4권째다.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냐고 물어본다면 '어렴풋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선 <진화론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다윈은 <진화론>의 근거로 100% 타당한 '연역적' 근거를 들지 않고, '귀납적' 근거를 들어서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촛불의 온도는 섭씨 230도이기 때문에 뜨겁다]가 아니라, [모닥불, 횃불, 촛불, 난롯불 등이 뜨겁기 때문에 모든 불은 뜨겁다]로 <진화론>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진화론>의 최대 맹점이다. 이렇게 증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진화론>이 우리 눈에 보일 정도로 급격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그 증거가(46억년이란 장구한 시간에 비해서 밝혀진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하고 굉장히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론> 등의 반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로 <자연선택>이나 <적자생존>과 같은 <진화적인 용어>에 대해서 사람들의 반감이 굉장히 심하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비슷한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 점인데 나로서는 의외였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그 이유는 <인간>과 <다른 생물>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인간과 다른 생물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본능>보다는 <이성>이 우위에 있다는 믿음 때문인데, 한마디로 <인간>을 <다른 생물>처럼 <본능>에 충실하다는 사실, 인간과 동물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에 <진화적인 용어>에 강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의 기원>에 대해서, 또 <진화론>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창조론>보다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종의 기원>을 읽지 않은 당연한(?) 사실(나도 그 중의 하나다)은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단세포동물→다세포동물→무척추동물→척추동물(어류)→양서류→파충류→조류→포유류]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치고 이 도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 묻겠다. 단세포동물이 짠~하고 포유류로 진화할 수 있는가? 마치 [포켓몬스터]에서 몬스터들이 <진화>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비유가 굉장히 비약적이라면,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는 질문은 어떤가? 아직도 많은 선생님들이 간단히 <진화론>을 설명하면서 하는 비유라는데, 다윈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이는 <진화론>을 잘못 설명한 대표적인 예다. 비교적 정확한 설명을 한다면 원숭이와 인간은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공통조상이 있다라고 설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원숭이가 아무리 진화를 한다고 해도 인간과 비슷해질 가능성은 거의 없고, 수많은 변종과 아종만이 생길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는 진화의 핵심이라고 하는 유전자가 인간과 98% 이상 일치한다는 침팬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음 책은 현재까지 대두된 <진화론 논쟁>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진화를 잡아라!(궁리 출판)]를 읽을 계획이다.

 

 추신.. 책을 일관성 없이 읽는 경향이 드러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종의 기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일 터이다. 언젠가 <종의 기원>에 대해 소상히 알게 되는 날이 오면 [읽기 쉬운 책부터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책까지] 목록을 만들어서 보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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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밝히련다(3) | 역사 / 과학 2008-03-2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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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다윈의 종의 기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이중원,정은주 저/박종호 그림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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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책의 구성부터 소개하자면,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엔 <다윈>과 <다윈이 살던 시대의 상황>에 대해 설명되어 있고, 2부엔 <종의 기원이 다루는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이 일목요연한 만큼 가볍게 읽을 수는 있으나 주요 설명 부분에서 간략히 넘어가는 바람에 속속들이 이해하기엔 한참 모자랐다.

 

 역시나 무엇인가 궁금하다면 관련된 내용을 <완역한 책>을 읽어야지 <간략히 소개한 책>을 읽고서 읽었다고 생색을 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부쩍 든 책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발간한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인문학의 위기>를 인식하고 해결해야 겠다는 취지 말이다. 이 책을 읽은 학생들이 얼마만큼 <종의 기원>에 관심을 둘 지는 모르겠지만 <인문학적 교양>을 쌓는데는 충분할 것이다. 물론 좀 더 깊이 공부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여기서 잠깐, 내가 <종의 기원>이란 책을 읽어내기 전에 이렇게 다양한 책을 섭렵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겠다. <종의 기원>을 밝힌다면서 이책 저책 헤매는 이유 말이다.

 

 난 교사다.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 교사다. 전문적으로 독서지도를 다루는 <독서지도사>다. 이 쪽에 계신 분들이 대부분 여성교사이고 보니 <문학>쪽은 해박한 반면, <비문학>쪽(특히 과학)은 굉장히 빈약한 것을 느낀다.

 

 또 한편으로는 <인문학의 위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인문>, <사회(역사)>, <과학> 등에 관심이 별로 없다보니, 아이들마저 [책]이라고 하면 <문학 장르>에만 도통할 뿐, <인문학 장르>의 책을 권해줄 만한 것도 별로 없고, 아이들도 잠깐 흥미를 보이다 수준에 맞는 책을 구하기 힘들어서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관련된 책들을 섭렵하여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일 때 권해주려는 목적에서 시작해 보았다.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무지 게으른 내가 어디까지 해낼지 스스로도 궁금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려 한다. 물론 나에게도 굉장한 공부가 될 것이다.

 

 다음 책은 <다윈의 생애>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책으로 골랐다. [한길로로로]에서 출판한 [다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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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밝히련다(2) | 역사 / 과학 2008-03-2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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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윤소영 저
사계절 | 200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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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감이 왔냐고? 음...( --)a

 

 책은 얇지만 상당히 방대한 양의 내용이 담겼었다. 한마디로 <종의 기원>에 대해 밝혔다기보다는 내게 숙제를 더 많이 남긴 책이었다.

 

 우선 [다윈]에 관해 얽힌 책들(읽어야 할)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다. 일단 [진화론]의 <급진론>과 <완만론>(나름대로 한 표현임)인 [굴드]와 [도킨스]의 저서들을 읽어야 할 판이다. 그나마 [진화론]에 찬성하는 과학자의 책들만 거론한 것일 뿐,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창조론]의 저서들까지 읽을라면...고생길이 훤하다ㅋㅋ

 

 또 하나는 [진화론] 자체의 논란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진화론]의 저서를 읽으면 [진화론]이 틀림없는 이론인데, [창조론]자들의 <창조과학론>의 맹공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진화의 메카니즘] 자체가 엄청 복잡하고 눈에 보일 정도의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증명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화론]은 연역적인 증명이 아닌 귀납적인 증명이기 때문에...더 어려운 설명인가(" )a

 

 예상했던대로, 여성과학자의 친절한 설명은 책 읽기의 부담을 확실히 줄어주었다. 그렇지만 너무 쉽게 풀어 써주어서 문제였던가? 비유적인 표현 때문에 원 저서를 읽고 난 뒤에 읽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듬뿍 드는 느낌이 강했다.

 

 암튼 다음 책은 [생명의 진화를 밝힌다, 다윈의 종의 기원(삼성출판사)]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기획하고 물리학자인 이중원과 역사학자인 정은주가 공동집필한 책이다. 이 책보다는 좀 더 쉬운 설명을 곁들인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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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밝히련다(1) | 역사 / 과학 2008-03-1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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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글호에서 탄생한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원작/기획집단 MOIM 구성/신웅 그림
서해문집 | 200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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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책 읽기, 첫 번째] 책이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읽은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우선 만화 형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주요 내용은 찰스 다윈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크게 3가지, 즉 <어린 시절의 다윈>, <비글호를 탄 다윈>, <5년의 항해를 끝내고 돌아온 다윈>로 구성되어 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이해하기 위한 초석으로써 <다윈의 생애>를 살펴 볼 수 있었고, 다윈이 <진화론>에 눈 뜨게 되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화 형식이란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다음 책은 [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이다. 출판 순서로 본다면, 이 책보다 이전에 쓰인 책이지만 만화 형식이 아닌 이유 때문에 아이들이 조금 힘들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여성과학도이자 선생님이 쓴 책이기에 어렵지 않게 읽힐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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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멸망 원인을 알아보자<1> | 역사 / 과학 2007-07-20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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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의 최후

김윤희,이욱,홍준화 공저
다른세상 | 200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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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의 최후


 현재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산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바통을 받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제국의 멸망의 바통을 받아 일제식민지시절에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대한제국의 전신은 바로 <조선>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조선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도 <조선>이란 나라가 어떻게 망해갔는지, 왜 망했는지 소상히 알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저 ‘조선은 세계의 정세를 파악하지 못해서 스스로 개혁할 힘을 잃고, 일본의 침략에 의해 멸망하였다’는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조선은 무능하였다고 자학하거나, 아니면 조선은 위대한 나라였는데 일본이 못돼 처먹어서 남의 나라를 침략했기 때문에 멸망하였다고 분개하는 것이 고작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면 다른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제부터 <조선의 최후>에 대해서 알아보자.


1-1. 역사학자마다 조금 다른 견해를 보이지만, 대개 조선이 500년 동안 명맥을 유지한 것 자체가 미스터리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심지어 조선은 조일전쟁(임진왜란, 1592) 당시 멸망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나라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300년간이나 나라의 기틀이 흔들이지 않고 왕조가 유지될 수 있었던 점이 알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기간 동안 조선은 부흥할 가망성이 없었는가? 있다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 요즈음 <조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주로 이 부분에 관심을 둔다.


 첫째는 <개혁군주의 역량>이다. 조일전쟁이후 <광해군>과 <정조>, 그리고 <고종>이 새롭게 부각되는 실정이다. 세 군주의 공통점은 ‘국제정세’를 살펴 나라의 국력을 신장시키려 하였다는 점이다. <광해군>은 명․청 교체기에 등거리외교와 같은 ‘실리외교’를 정책으로 삼아 전쟁으로 기울어진 국력을 키우려고 있기에 <개혁군주>로 부각되었다. 그리고 <정조> 역시 청나라의 문물과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강개혁에 힘썼다는 점에서 꼽은 것이고, <고종>은 망국군주로도 명망이 높지만 나름대로 <조선>을 살리려는 노력한 점이 속속 밝혀지는 실정이어서 <개혁군주>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만약 이들 세 군주의 개혁이 성공하였다면 <조선>이 또 어떻게 변하였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것이 없다곤 하지만…


 둘째는 <백성들의 역량>이다. 이런 관점은 우리의 주된 역사관으로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던 점이다. 주로 <왕조사>나 <왕과 지배세력의 관점>에서 역사를 풀어보았기 때문에 나라가 멸망한 책임도, 나라가 흥한 책임도 모두 ‘왕을 비롯한 지배세력’의 몫이었다. 그러나 한 나라가 망하고, 흥하는 것에 백성, 즉 민중을 무시해야만 할까? 민심은 천심이라 하고, 왕이 된 자나 지배세력들은 민심잡기에 여념이 없었으면서도 일국의 흥망의 책임이 과연 지배층에게만 있을까? 발해의 멸망 원인 중에 피지배층이었던 흑수부 말갈족의 반란 때문이었다던데, 꼭 <발해>만의 특수한 상황이었을까? 그렇다면 <조선의 멸망>원인으로 민심의 배반은 없었나? 살펴볼 일이다.


2.조선의 멸망원인 - 첫째, <왕권만 강화하면 나라가 바로서나?>


 왕조국가의 국력은 똑똑한 임금이 강력한 왕권을 휘두를 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왕조들은 강력한 왕권보다는 늘 신하들의 권력(신권)에 눌려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였다. 특히나 조선은 신권이 더욱 심했다. 성리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개국된 조선은 왕도정치가 발현된 나라였으며, 이로 인한 왕권의 강화는 항상 견제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 조선중기이후 고지식한 사림파의 대두로 인해 왕다운 왕은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조선의 <개혁군주>들은 하나같이 <왕권강화>에 열을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왕권강화>만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할 수 없는데도 왕은 왕권강화에만, 신하들은 기득권 확보에만 열을 올렸다. 그래서 조선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본다.


2-1. 정조는 날로 약화되는 국력을 구명하고자 <왕권강화>를 시도하였다. 당시 신하들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든 말든 자기 배만 불리는 형편이었으니 정조의 <왕권강화>는 분명한 대안정책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너무 빨리 죽었다. 그 때문에 <독살설>이 난무한 것이다.


 정조는 우선 왕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였다. 아시다시피 사도세자는 영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겉으로는 세자자질을 의심받아 완고한 아버지의 손에 죽은 것 같으나 이는 정권유지를 위한 정략적 살인이었으며 영조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불우한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 영조는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없었는데도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노론>의 결정을 거부할 수 없었고, 이 <노론>의 정략에 의해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는 제거되어야 했다. 한마디로 사도세자가 <노론>의 눈 밖에 났기 때문에 왕인 영조조차 자신의 아들을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영조는 왕권이 약한 임금이었다. 또 정조가 영조를 이어 왕위를 이은 것도 드라마틱하다. 자신의 두 눈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서도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 세손(정조)은 살아남기 위해 연극을 할 수밖에 없었고,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이 연극은 계속되었다. 이 연극에 속은 영조는 세손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사도세자가 아닌 다른 아들의 양자로 입적하여 자신의 왕위를 잇도록 하였다. 정조는 이런 모욕을 견디며 왕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래서 정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론>에 반기를 들었다는 증거로 자신의 아버지는 ‘사도세자’라고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수원 화성을 지어 여기에 아버지의 능을 옮겼던 것이다. 즉 왕의 아버지다운 대우를 하여 왕의 권위를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이는 당연히 <노론(벽파)>의 원성을 샀다. 또 규장각을 설립하여 학문을 발달시키고, 인재를 발굴하였다. 그러나 인재발굴이 정조의 개인감정에 의한 ‘측근인사’ 경향이 강했다는 점(홍국영 등)에서 성급한 점이 발견된다. 또 탕평책의 일환으로 실시되던 ‘호대’를 무시한 인사등용은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하였으나 왕 스스로 원리원칙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미흡하였다. ‘호대’란 판서에 노론 출신이 뽑혔다면, 참판에는 소론을, 참의에는 남인을 등용하여 당파싸움을 방지하던 인사정책이었다.


 이렇게 개혁의 시초로 시행되던 왕권강화책을 실시하다 정조가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정조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한 죽음이었다. 어쨌든 정조의 정책은 어린 순조(11살에 등극)에게 떠넘겨졌다. 정조는 죽기 전 높은 학덕을 갖춘 김조순(김상헌의 후손(서인). 병자호란 때 척화파)의 딸과 순조를 혼인시켜 외척세력을 이용해 자신의 정책이 유지되길 바랐다. 아마도 정조는 순조가 자신을 대신해 왕권강화를 완성해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조가 끌어들인 외척세력은 60여년 세도정치의 서막을 열어준 셈이 되었다.


2-2. 순조 역시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에 의해 번번이 방해를 받았다. 즉 신하가 왕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순조는 이를 어쩌지 못하고 자신의 아들 효명세자에게 넘겼다. 즉 대리청정(임금이 세자에게 정치권력의 일부 혹은 전권을 넘겨줌)을 하였다. 그러나 효명세자 혼자서는 벅찼던지 외척(풍양 조씨)을 끌어 들이는 결과만 낳고, 대리청정 3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이가 바로 불운의 왕세자, 익종이다.(헌종이 추대함)


2-3. 효명세자의 어린 아들, 헌종(8살)이 등극하였다. 헌종 역시 왕권 강화에 주력하였다. 정조 때부터 훈련도감을 개편(훈련도감→5군영)하여 왕의 친위대로 삼았는데, 헌종 역시 자신의 세력기반을 세우기 위해 총융청을 총위영으로 승격하여 친위대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왕권강화는 쉽지 않았고, 세도정치만 날로 심해졌을 뿐이다.


2-4. 세도정치는 왕도 자기 입맛대로 고르기에 이르렀다. 후사가 없던 헌종의 뒤를 이어 강화도령, 철종이 왕위에 올랐다. 한마디로 허수아비 왕이었다. 사실 헌종과 철종은 조카, 삼촌 사이였다. 즉 조카의 왕위를 삼촌이 잇는 쿠데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왕위계승이 세도가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단종과 세조를 기억해보라. 왕족 간 피를 불러일으킬만한 이 사건은 풍양 조씨의 재집권을 막기 위한 안동 김씨의 농간이었다. 사실, 허수아비 왕, 철종은 안동 김씨의 리모컨에만 작동하였다.


※세도정치가 욕먹는 이유

 1. 서울의 몇몇 가문이 관직 독점. (→당연히 부정부패 만연)

   영․정조 때만 해도 지방 사람도 관직을 얻었다. 그런데 세도정치 때엔 10여 개의 유력 가문 출신만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지방 수령직까지 서울 출신이 매점하였다.


 2. 부정부패에 이은 매관매직으로 관리들은 본전 생각에 자기 뱃속만 챙기려고 백성들을 주리 틀었다.


   이에 농민들은 분노하였고, 1862년 진주에서 농민항쟁이 물꼬를 트자 세도정권은 ‘대원군’에게 정권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세도가들은 제 2의 허수아비를 내세울 요량이었지만…


2-5. 대원군이란 정상적인 왕위 계승과정을 거치지 않고 종친으로 있다가 왕위에 오른 이의 생부를 일컫는 일반명사다. 조선엔 4명의 대원군이 있었는데, 선조아빠 덕흥대원군, 인조아빠 정원대원군, 철종아빠 전계대원군, 그리고 고종아빠 흥선대원군이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을 제외하고 아들이 왕위 등극 당시엔 이미 살아있지 않았다. 오직 흥선대원군만이 살아있었기에 <대원군>하면 흥선대원군을 지칭하게 된 것이다.

 대원군은 고종을 앞세워 섭정에 들어갔다. 그 역시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는 최선책으로 <왕권강화>를 내세웠다. 대원군은 집권하자마자 ‘인사문제’와 ‘왕권강화’에 탁월한 정치실력을 행사하였다. 마치 ‘준비된 대원군’처럼. 그러나 당대 세도가들은 똑똑한 국왕을 원치 않았다. 여기서 조선은 망국에서 기사회생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나라를 경영하려면 국내의 문제뿐 아니라 국외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데 조선은 왕조 내내 왕권과 신권의 기싸움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로 국력낭비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으르렁 거리던 두 세력이었는데도 대원군이 강력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데는 세도정치가 한 몫 했다. 세도정치의 수렴청정 같은 왕권을 대신하는 관행이 60여 년간 지속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대원군은 그 자리를 대신한 것뿐이었고, 대원군의 강력한 권력행사 역시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인한 백성들의 불만 덕분에 세도가의 강한 반발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세도가에겐 원치 않은 무저항이었을 뿐, 대원군에 대한 불만은 점점 쌓여만 갔다.


 그런데도 대원군은 자신의 정치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착각하였다.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원군은 왕권강화에만 급급하였다. 다시 말해 대원군의 목표는 백성들이 잘살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조선왕조재건이었을 뿐이다. 이는 당시 시대적 과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데 미흡한 정책으로 알 수 있다.


 대원군 당시 시대적 과제란 세도정치의 폐단이었던 조세․토지제도 개혁에 따른 백성들을 위한 정책과 국제 정세를 살펴 열강들의 침략에 대비하는 것인데도 대원군은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못했다.


 집권 초기에 대원군은 호포제와 사창제 개혁을 통해 양반들의 기득권을 빼앗았다. 이는 백성들도 원하는 것이었다. 호포제는 양반들에게 면제되던 군역을 백성과 똑같이 부과하는 제도이고, 사창제는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여 양반들이 백성들에게 고리의 이익을 얻지 못하게 한 정책이었다. 이는 백성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백성들이 원하는 것은 세금감면과 안정된 생계를 유지할 토지개혁이었는데 대원군의 정책은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원군의 정책이 직접적인 망국의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 개혁의 일환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국제 정세를 망각한 <쇄국정책의 고수>가 큰 문제였다.


※대원군의 쇄국 정책 고수 원인

 1. 러시아 남하에 위기감을 느낀 대원군은 프랑스에 도움을 바랐다가 실패하였다. 이 때문에 천주교와 프랑스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고, 이는 천주교 탄압과 병인양요를 불렀다.

 2. 독일 상인 오페르트에 의한 대원군 아빠묘(남연군) 도굴 사건.

 3. 미국 상선의 횡포로 인한 신미양요


 이와 같은 원인으로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고, 국방력 강화와 쇄국정책을 확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정책들이 대원군과 적대관계에 있던 지방 유생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게 되었다. 당시 유생들은 화이론(서양과 오랑캐는 같은 넘들)에 입각한 <위정척사론>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세계정세에 대한 무지를 나타내는 것들이고, 아울러 서양의 과학문명이나 국제 정세에도 눈을 가려버리는 못난 짓이었다. 그 증거로 열세 겹 면포방탄복 생산→여름철 군인들 고열로 코피, 학의 깃털로 만든 배(飛船)가 포탄에도 끄떡없다는 말만 믿고 생산→띄우자마자 침몰, 청의 양무운동(서양의 배워서 국력을 기르자)을 비웃고, 두 차례 양요에 승리한 것에 우쭐하며 서양의 힘을 무시하였다.


※쇄국, 그 결과

1.일본보다 덜 위협적이던 미국과의 통교를 하지 못하여 일본․중국에 비해 20년 뒤지는 결과 초래.

2.신미양요 후 미국은 중국과 통상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조선과 통교를 맺고자 적극 추진하였는데, 대원군 거부.

3.결국 일본과 최초 통교를 맺게 됨으로써 열강과의 통교로 인한 자국 손실 보상을 원하던 일본에 의해 식민지 전락.


2-6. 대한제국 황제, 고종 → 그러나 역사의 중요한 전환기를 맞아 왕권과 국권을 혼동했던 황제.

 고종은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나라를 위험에 빠트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이라면 자국군이든 외국군이든 적으로 삼았던 속 좁은 황제였다.

 친정을 한 후 임오군변(1882)에 의해 권력이 다시 대원군에게 넘어가자 고종과 민왕후는 권력을 다시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청에 군대파병을 요청하였다.(민왕후 주도). 그러자 3천 명의 청군이 파견되었고 대원군은 청으로 압송되었고, 구식군대는 해산(체포, 사살)되었다. 이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위해 자국민의 생명을 외국군의 수중에 넘긴 사례이다.


 어쨌든 한 번 파병된 군대는 돌아가지 않았고 내정간섭이 점점 심해졌다. 이에 반발하여 김옥균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실패하자 조선은 청의 속국이 되었다. 청의 내정간섭이 도를 넘자 고종은 은근히 반청 태도를 보이며 러시아와 접촉하려 하였다. 그 와중에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났고, 고종은 청의 군대로 자국민을 진압하라고 명령하였다. 본격적인 청군 개입은 일본군의 조선 진주를 불렀고, 청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이번엔 일본의 내정간섭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일본이 요동반도를 점령하려다 프랑스․독일․러시아에 의해 실패하는 일(삼국간섭)이 벌어졌다. 자기 왕권을 되찾을 희망을 러시아에서 찾은 고종은 러시아와 접촉을 시도하였다.(역시 민왕후가 적극 주도). 이에 발끈한 일본은 낭인들을 보내 궁궐 안에서 왕후를 시해하였고,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내뺐다.(아관파천). 1년 뒤 환궁한 고종은 1897년 2월, 대한제국 선포를 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을 건국한 고종은 시대가 요구하는 백성들의 나라가 아닌 황제의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독립협회가 주장한 ‘헌의6조’와 황제가 칙령한 ‘대한국국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즉 입헌군주제가 아닌 전제왕권제로 복귀하려던 고종의 속셈인 것이다.


 독립협회는 대한제국 이전부터 당시 민중을 대표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고종에게 개혁을 계속 요구하였고, 독립협회는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독립협회 주최로 ‘관민공동회’를 종로에서 개최하였다. 여기에 일반 지식인, 학생, 부인, 상인, 승려, 심지어 백정까지 사회 각층 1만 영이 모여 ‘헌의6조’를 의결하였고, 이를 근거로 정부 개혁을 촉구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헌의6조

 1. 외국에 의존하지 말고 관민이 합력하여 전제황권을 공고히 할 것.

 2. 광산, 철도, 석탄, 산림 및 차관, 차병과 외국과의 조약은 각부대신과 중추원의장이 합동으로 서명하지 않으면 시행되지 못하게 할 것.

 3. 전국의 재정은 모두 탁지부에서 관할하여 정부의 타기관이나 개인회사가 간섭하지 못하게 하고 예산과 결산을 인민에게 공포할 것.

 4. 중죄인을 공판에 회부하되 피고가 자복한 후에 재판할 것.

 5. 칙임관은 황제가 정부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 임명할 것.

 6. 장정(章程, 중추원 개조안)을 실천할 것.


 헌의6조는 전제왕권 강화, 재정 일원화, 이권양여 반대, 자주외교, 의회의 설립 등에 관한 내용이었다. 즉 전제황권이 외국에 의존하고 있음을, 정부의 재정이 개인회사와 황실에 의해 침해받고 있음을, 관료의 임용이 황제의 전권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비판한 이 개혁안은 황제권을 제한하고 인민의 알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대중집회에 놀란 고종은 일단 결의문을 수용하는 듯 했지만 관민공동회가 해산되자 곧바로 독립협회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에 ‘만민공동회(1898)’를 개최하여 고종의 기만적 행위를 항의하였다.(20여 일 계속). 여기에 서울 시전상인들이 동조하여 상점 문을 닫아버렸다.


 고종은 협회해산 명령을 번복하였다. 그러나 보부상 당체인 황국협회 회원을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양측이 난투극을 벌이자 고종은 독립협회와 황국협회를 동시 해산시켰다. 이제 더 이상 황제권에 도전하는 세력이 없자 고종은 ‘대한국국제’를 선포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국국제

 제1조, 대한국은 세계 만국에 공인되온바 자주 독립하온 제국이니라.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이전부터 오백 년 간 전래하시고 이후부터는 항만세(恒萬歲) 불변하오실 전제정치이니라.

 제3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무한하온 군권을 향유하옵시느니 공법(公法)에 이르는 바 자립 정체이니라.

 제4조, 대한국 신민이 대황제의 향유하옵시는 군권을 침손할 행위가 있으면 그 행위의 사전과 사후를 막론하고 신민의 도리를 잃어버린 자로 인정할지니라.

 제5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국내 육해군을 통솔하옵셔서 편제(編制)를 정하옵시고 계엄․해엄을 명령하옵시니라.

 제6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법률을 제정하옵셔서 그 반포와 집행을 명령하옵시고 만국의 공공(公共)한 법률을 효 방(效倣)하사 국내 법률로 개정하옵시고 대사․특사․감형․복권을 명하옵시느니 공법에 이른바 자정율례(自定律例)이니라.

 제7조, 대한국 황제께옵서는 행정 각 부부(府部)의 관제와 문무관의 봉급을 제정 혹은 개정하옵시고 행정상 필요한 칙령을 발하옵시느니 공법에 이른바 자행치리(自行治理)이니라.

 제8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문무관의 출척(黜陟)․임면을 행하옵시고 작위․훈장 및 기타 영전(榮典)을 수여 혹은 체 탈(遞奪)하옵시느니 공법에 이른바 자선신공(自選臣工)이니라.

 제9조, 대한국 대황제께옵서는 각 국가에 사신을 파송 주찰(駐紮)케 하옵시고 선전․강화 및 제반 약조를 체결하옵시느니 공법에 이른바 자견사신(自遣使臣)이니라.


 이는 황제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은 물론 군통수권과 기타 모든 절대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었다. 결국 대한제국의 정치․외교․군사, 경제, 재정에 이르는 모든 권한이 황제에 귀속됨을 천명한 것이었다.


 이로서 독립협회가 건의했던 ‘헌의6조’에서처럼 황제가 행사하는 모든 일을 인민이 알려고 하거나 황제의 고유권한인 행정, 사법, 입법권을 정부관료 및 중추원 의원들이 견제하려고 하면 ‘전제군권을 침해하거나 감손하는 행위는 반역행위’라고 선언한 대한국국제가 용서치 않았다.


2-7. 이렇게 <조선의 멸망 원인 - 첫째, 국왕의 왕권 강화>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살펴본 바로써 왕권 강화는 필요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일본의 메이지이신(明治維新)이 천황의 권한을 강화했던 것처럼 조선의 왕도 강력한 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일본의 그러한 역사가 긍정적인 측면만 가져온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왕권보다 신권이 강했던 조선으로선 신하들이 스스로 개혁할 리가 없으니 신하들이 기득권을 양보하여 왕권을 강화시키고 중국의 양무운동처럼 지도자의 구호 아래 온 백성이 발맞추었다면 조선의 운명이 조금쯤은 달라졌을 것이고,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은 멸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 본 것이다. 이외에도 원인은 많은 것이다. 다음 시간에 더 알아보자.

[출처]<조선의 최후>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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