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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8 개설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10-1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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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간호윤 저
김영사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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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에서조차 소설이라는 것에 대해 Brooks와 Warren은 그들의 공동 저서 《소설의 이해》에서 아예 "소설 개념의 정의는 필요 없다. 모든 사람이 ㅅ설이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소설을 정의 내리는 것에 강한 회의를 두거나, 프레드릭 제임슨이 《정치의 무의식》에서 말한 "소설은 장르의 끝이다" 등 장르의 모호함을 지적하는 발언에 힘입는다면, 우리 소설의 구도와 시각을 확장하는 것 또한 분명치 않은가? (24쪽)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나라 최초의 소설을 《금오신화》로 알고 있다. (중략) 중국은 소설의 시작을 8~9세기로, 일본조차 10세기 정도로 보고 있다. 근거로, 중국은 한말(漢末, 3세기)부터 육조(六朝)시대의 남조(南朝, 5~6세기)까지 일어난 기괴한 일들을 적은 짧은 이야기인 지괴(志怪)에서 당나라 중기(8~9세기)에 전기(傳奇)의 형성 시기를, 일본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8~12세기)에 발생한 모노가타리(物語)를 든다. 그런데 유독 우리만 15세기 후반의 작품을 소설의 효시로 본다는 것은 동아시아의 문화 수수관계로 볼 때 납득할 수 없다. (25쪽)

 

  우리 소설의 장적을 정리한 이는 18세기 학자인 통원(通園) 유만주(兪晩柱, 1755~1788)다. (중략) 유만주의 소설 개념을 정리하자면, '여러 전기류(傳奇類) 가운데서 취하여서는 비속한 말로 진실에 바탕을 둔 허구를 꾸미되 인정물태(人情物態)를 극진하게 표현하면서도 뜻이 거리낌 없는 이야기'이다. (22쪽)

 

  따라서 통원 유만주의 소설 개념을 바탕으로 소설의 정의를 '소설이란 민간에 떠돌고 있는 신이(神異)한 이야기를 취하여 허구적 구성으로 인정물태를 총체적으로 드러낸 욕망의 서사체(敍事體)이다'로 조심스레 정리한다. (26쪽)

 

 

  고소설과 현대소설의 경계를 1906년 이인직의 <혈의 누>까지, 이후 1917년 이광수의 <무정>을 전후로 재단하는 것에도 찬성하지 않았고, '소설'이란 명칭을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백운소설》에서 근거하였다는 것에도, 우리 나라 최소의 초설을 김시습의 《금오신화》로 보는 것에도 나름의 근거를 들어 '그대로' 받아들이길 꺼린다. 흥미진진하다. 이제 들어가는 글을 읽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출처]<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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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니까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08-1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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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부

김열규 저
비아북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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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공부를 해서 머리에 챙겨 넣으면 언제까지나 그 배움은 머릿속 창고에 보관된다. 그렇게 머릿속 창고에 보관된 배움은 영원한 밑천이자 재산이 된다. 그렇기에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해서 남 주랴?"라는 한마디 금언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그렇다고 공부가 인색한 구두쇠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남달리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머릿속 창고가 넘쳐날수록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더 자주 나누어주게 된다.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데도 머릿속 창고에 재어놓은 지식의 재고량이 줄어드는 일은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느라 머리를 쓰면 쓸수록 이미 챙겨져 있는 지식이 새로운 생기를 얻기도 한다. 공부란 그런 것이다. 공부에서 얻은 수확은 그런 법이다.

 

 

  <국경없는의사회>란 책을 보았을 때도, 자원봉사를 할 때 남을 돕겠다는 <마음>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남이 명령하고 시켜주길 기다리는 것만큼 쓸모없는 봉사도 없기 때문이란다. 오히려 그런 마음만 가지고 뛰어든 봉사자는 제 풀에 쓰러져 남을 돕기는커녕 방해만 하기 십상이란다. 그러므로 남을 돕는다는 <마음>은 참 고맙지만 진정으로 남을 도우려거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단다.

 

  한마디로 공부를 해야 남도 도울 수 있단 얘기다. 참 공부를 못하면 세상에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 되겠구나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오히려 <공부해서 남 준다>는 말로 여겼다. 물론 공부한 내용은 온전히 제 것이고, 남에게 빼앗길 수도 없는 것이지만, 김열규 교수님의 말씀마따나 차고 넘치면 충분히 남을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공부>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자기만을 위해서도> 공부를 해야 하고, <남을 위해서도>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럼 공부 안 하면? 세상에서 아무짝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살 수 없으니 말이다.



[출처]035쪽, 036쪽 <공부해서 남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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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08-1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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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부

김열규 저
비아북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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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머리 노동한 것만큼만 얻는다.

 

  이것이 공부의 으뜸 원칙이다. 결국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 공부이다. 공부는 공든 탑이다. (중략) 그 탑은 공부에 공짜가 없음을 말없이 웅변해줄 것이다.

 

  (중략) 그렇다. 불로소득이 없고 공짜가 없는 머리의 중노동이 공부라면 필경 공부는 노력이고 또 땀일 것이다. 억척 부리기이고 심하게는 악지이고 악짓손일지도 모른다. 악바리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 눈씨며 눈정기가 쏠린 나머지, 그것도 강하고 뜨겁게 쏠린 나머지 책의 페이지에 구멍이 뚫릴지도 모른다. 밤늦도록 책을 읽다가 그만 깜빡 좋아서 이마가 책상에 박힌 나머지 책상이 온통 진땀으로 젖어 있기도 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여름이면 더운 것도 잊고 오랫동안 의자에 붙박이듯이 앉아서 공부하다가 문득 조금 쉬어보자고 일어서는데 그만 의자가 엉덩이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던, 조금은 익살맞은 경험! 땀에 전 엉덩이 밑에서 의자 바닥이 온통 땀으로 불어 있었던 그 경험! 책상 위에 손수건을 놓아두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곤 하는 것은 이에 비하면 그야말로 양반이다. 땀도 땀 나름이다.

 

  이렇게 공부는 노력이고 땀이다. 땀으로 공부는 보석 알처럼 아름답게 결정結晶을 이룰 것이다. 학생으로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마에 줄줄이 어리는 땀방울! 그것은 마음과 정신이 이룩해낸 보석 알이다.

 

 [낱말풀이]

 * 악지 : 잘 안될 일을 무리하게 해내려는 고집.

 * 악짓손 : 무리하게 악지로 해내는 솜씨.

 * 눈씨 : 쏘아보는 시선의 힘.

 * 눈정기 : 눈의 광채.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으뜸 목적이 바로 이런 <공부의 참맛>, 곧 <공부하는 즐거움>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것은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다. 무엇이든 좋다. 푹 빠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즐거움을 최고로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공부도 마찬가지라는 것.

 

  이 간단한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아니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해보아야만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으뜸 걸림돌이다. 스승은 경험했을 지언정, 그 경험 그대로 아이들을 같은 경험에 이르게 하지는 못하는 <공부의 참맛>. 그 경험에 이르도록 방법을 일러주어도 저마다 아이들마다 그 참맛에 이르는 길은 각기 다르기에 구체적으로 이끌어내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절대로 가르칠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들도 만나게 된다. 그럴 땐 절망에 가까운 느낌에 휩싸이게 된다. 내가 한없이 무능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간단히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다시 다른 방법을 찾아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친다. 지식과 지혜, 슬기와 눈썰미가 아닌 진정한 <공부>를 가르치려고 한다. 이것은 천편일률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철저히 눈높이를 맞춘 가르침만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저 아이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아니라, 공부를 안 하는 아이도 아니라, 아직 그 방법을 깨우치지 못한,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각성하지 못한 아이일 뿐이라 생각하고 다짐하며 나를 세뇌시킨다. 그래야만 으뜸 선생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처]029쪽 <공부는 배신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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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이 날 땐, 역지사지 먼저..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08-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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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중해 마을 느리게 걷기

최상운 저
북웨이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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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프랑스에서 어학원에 다닐 때 만났던 터키인 구라이(Gurai)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곧장 그 얘기부터 꺼냈다.

 

  "터키가 옛날에 한국에 전쟁이 났을 때 도와준 거 알고 있어?"

 

  라고 말이다. 난 어떤 외국인들이 한국하면, 바로 한국전쟁을 말하는 게 좀 짜증난다. 그것밖에 모르면 교양이 부족한 것이고, 딴 것도 알면서 일부러 그것만 얘기하는 건 인간성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구라이의 표정과 말투에선

 

  "이제 너희가 좀 살지 모르지만, 옛날엔 우리 덕에 살았어."

 

  뭐 이런 으스대는 분위기가 약간 나서, 안 그래도 부족한 인내심이 더 바닥나는 걸 느꼈다. 그래도 많이 참고 처음에는 잘 알고 있다고, 한국인들은 고맙게 생각한다고 나름대로 정중하게 말해주었다.

 

  '목숨 바쳐서 도와주었다니 그 정도 인사는 할께, 그런데 넌 남의 나라 전쟁에 참가하는 게 그렇게 자랑스럽냐?'

 

  이런 마음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잘난 체하고 싶었던 건지 만날 때마다 그 얘기였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그건 60년이 다 된 옛날 얘기고, 한국은 이제 그때의 한국이 아니지. 그리고 한국에는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도 있어서 이미 고마움을 잘 표시하고 있거든."

 

  라고 최대한 참는다는 표정과 말투로 대꾸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구라이는 나를 피하게 되었다.

 

 

  그래.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하면 아무리 좋은 얘기라도 짜증이 날만도 하다. 그런데 터키가 어려움에 처한 우리를 도와준 역사는 사실이고, 이를 자랑스런 역사로 여기고 있는 터키인들에게 우리가 야멸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오랜 옛날부터 "우리가 일본이란 나라에게 정말 많은 것을 전해주었거든."라면서 뻐기던 우리 모습과, "야, 이젠 일본이 너네보다 더 잘 살거든. 그리고 너넨 일본이 식민하면서 참 많이 도와줬거든. 그러니 잘난 척 좀 그만할래."라고 얘기하면 발끈하는 우리 모습을 터키인과 비교하면 그닥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짜증이 날 땐, 이럴 경우에 짜증이 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허물이 없는지, 혹시 있었는데 미처 인식하지 못해 바로 사과하지 못했는지도 살펴보아야 겠다.

 

  나도 참 짜증을 많이 내는 편인데, 짜증을 내고 나서 후회도 참 많이 한다. 짜증이 날 땐, 역지사지를 먼저..그 다음엔 정중하게 짜증을~



[출처]226쪽, 229쪽 <터키인의 유별난 한국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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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한 자들이니 조롱하지 말라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08-0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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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

최효찬 저
바다출판사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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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난독'이라는 말이 있다. 책의 내용이나 수준 따위를 가리지 아니하고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마구 읽는 경향을 뜻한다. 난독은 독서광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모든 것은 순서가 있는 법이고 책도 마찬가지다.

 

  쉽게 말하자면 독서의 순서는 처음에는 '개론'을 보고, 다음에는 개론의 한 부분을 전문적으로 쓴 책을 읽는 식이 좋다. 예를 들어 철학을 공부하고자 할 때 서양이나 동양의 철학사를 개관한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 철학사> 정도를 읽고 전반적인 사상사의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뒤에 자신이 더 공부해 보고 싶은 철학이나 공부해 보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난독을 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율곡처럼 기본 도서목록과 심화 도서목록을 짜고 여기에 더해 보충 도서목록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기본 도서를 읽고 이어 심화 도서를 읽고 마지막으로 보충 도서를 읽는다면 이상적인 독서라고 할 수 있다.

 

  도서목록을 만들 때에도 가능하면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거나 아이들이 주변에서 형이나 삼촌, 또는 학교 선생님 가운데 독서 멘토를 찾아 자문을 구하도록 하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난독을 피할 수 없다.

 

 [참고]

  율곡의 기본 도서목록 : <소대논 맹중시 예서주춘> 즉, <소학,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예기, 서경, 주역, 춘추> 순서로 읽어야 함.

  율곡의 심화 도서목록 :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주자어류> 등

  보충 도서 : <장자, 도덕경, 주역, 사기, 역사> 등 동양고전 ,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변신> 등 서양고전 철학과 문학 등

 

 

  물론 훌륭한 분의 추천도서목록 순서대로 읽으면 쉬움서부터 어려움에 이르기까지 이해하는데 손쉬울 뿐만 아니라 커다란 사상의 흐름까지 익힐 수가 있으니 더할나위없이 좋은 책읽기가 된다.

 

  그러나 훌륭한 분들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반드시 모자람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모자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난독> 즉, 어지럽게 읽는 것밖에 없다. 앞서 가는 사람은 스승이 없으니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때로는 험난한 길일망정 어지럽게 흐트러진 것에서 자기만의 눈썰미로 새로운 <법칙>을 찾아내야만 할 때도 있다. 또 그래야만 앞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난독>을 우습게 보지 말라. 감히 아무나 할 수 있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한 길을 가는 사람을 조롱하지도 말라.



[출처]같은 책, 257쪽~258쪽 <난독을 경계하라, 하지만 난 달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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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거북처럼 책 읽는 사람을 눈여겨 보라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08-0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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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율곡의 스승이기도 한 퇴계 이황은 평소 제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기를 강조했다.

 

  "대개 독서하는 사람은 비록 문장의 뜻을 이해하고 있더라도 그 문장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읽은 후 즉시 잊어버린다. 그래서 마음에 간직할 수가 없다. 이미 공부한 것은 반드시 익숙해지도록 더욱 힘을 써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마음속에 간직할 수가 있으며 흠벅 젖어드는 묘미를 느낄 수 있다."

 

  다음으로, 율곡은 책을 읽을 때 바삐 책장을 넘기지 말고 숙독하고 정독하라고 당부한다. 책을 읽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한 권의 책도 미처 이해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책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 이는 독서광에게 흔히 나타나는 폐단이다. 율곡은 다독과 속독보다 한 권의 책이라도 숙독하고 정독하는 편이었다.

 

  "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한 권의 책을 숙독하여 뜻을 모두 알아내고 꿰뚫어 의심이 사라진 다음에야 다른 책으로 바꾸어 읽어야 한다. 많이 읽기를 욕심내 바삐 책장을 넘겨서는 안 된다."

 

  공자는 "빨리 이르려고 하면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세종은 정독 스타일. 특히 수불석권,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자세를 평생 지녔다.

 

 

  나도 독서광인지라 다독을 즐겨한다. 그러나 속독만큼은 왠지 할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책을 정독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숙독, 즉, 알 때까지 읽고 또 읽는 것 또한 못하는 편이다.

 

  한 달에 읽어야 할 분량만으로도 열다섯 권에서 스무 권 정도 되다보니 다독은 숙명처럼 해야 하였고, 속독과 정독은 어릴 적부터 몸에 벤 습관이라 잘 바뀌지 않았으며 바쁘다는 핑계로 숙독은 게을리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숙독을 대신할 <책 읽은 뒤 꼭 글쓰기>를 결심한 뒤로 숙독과 비슷한 효과를 노려본다. 읽고 난 뒤 곱씹을 수 있기 때문에 숙독에는 못따르겠지만 그래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읽는 습관>과 <좋은 글쓰기>는 단번에 이룰 수 없다. 한 번에 100권을 읽을 수 없고, 100편의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권씩, 한 편씩 쌓이고 쌓여야 이룰 수 있다. 느린 거북이 재빠른 토끼를 제치고 이길 수 있었던 방법을 책읽기와 글쓰기에 써먹으면 1년 뒤, 10년 뒤엔 분명 <위대한 유산>이 될 것이다. 틀림없이.



[출처]같은 책, 254쪽~255쪽, <다독과 속독, 그리고 정독, 더 나아가 숙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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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조건 - 우리 것도 많다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08-0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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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

최효찬 저
바다출판사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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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을 읽는 것은 수천 년을 이어져 온 인류의 위대한 정신적 산물과 지식, 철학을 섭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세계관이 형성되는 10대 시절에 반드시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독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무엇이 고전이냐는 물음이 뒤따른다. 다음은 내멋대로 꼽은 <고전의 조건>이다.

 

  먼저 <옛것>이다. 우리는 반만 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으로 삼는다. 바로 <역사>교육이 고전일 것이다. 고조선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장엄하고 아름다운 우리 역사를 어린 시절부터 알게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운 역사관을 가르치는 것은 금물이다. 내 나라, 내 민족만이 최고라는 <우월주의>는 자칫 세계정복의 망상만을 심어줄 뿐이니 옳은 역사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왕>이나 <왕조> 중심의 역사교육도 그닥 필요없다.

 

  차라리 우리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나 바른 정치와 나쁜 정치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 우리 위인들의 삶과 고뇌를 곱씹어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른 역사교육일게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조상들 것 가운데 <사상>이나 <도덕>과 같은 <철학적 유산>이 별로 없는 것이당. 대부분 외국의 것을 우리 입맛대로 바꿨을 따름인데..그렇다고 <신토불이>적 노력이 쉽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으로 우리의 후학들에게 미루어 놓은 숙제일 수도 있겠으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으로 <유명>하면서 <유익>한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읽히고 많이 생각하게끔 해야 한다. 더불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같은 치밀한 계획과 오랜 세월을 엮은 기록유산을 자랑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임에 틀림없다.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화랑세기>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또 권력에서 밀려난 양반들이나 민중들의 바람이 담긴 <한문소설>과 <한글소설> 또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 <고전소설>이 서양의 것에 비해 다소 빈약한 소재와 사상적 한계를 지녔다고는 하나 <우리의 정서>가 한껏 녹아서 만들어진 작품들이니 이보다 더욱 친숙하고 친밀한 것도 없다. 누가 뭐래도 제 고향마냥 그립고 편안한 것만큼 소중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옛것이면서 유명하고 유익한 우리 고전과 외국의 고전을 두루 섭렵한다면 더할나위없는 훌륭한 교육이 될 것이다.



[출처]같은 책, 230쪽 <고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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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권하기 전에 부모 먼저 읽어라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07-3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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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

최효찬 저
바다출판사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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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성미가 아주 급한 사람이었는데도 이 쉴 새 없는 방해(어린 밀이 아버지에게 여쭙는 수많은 질문들)를 참고 견뎠으며, 그런 방해 속에서 <영국령 인도사> 여러 권과 그밖에도 여러 해 동안 아버지가 써야만 했던 다른 모든 글을 썼다."

 

  많은 부모가 자신은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으면서 자녀에겐 책 읽어라, 공부하라고 주문한다. 그런 부모의 말이 과연 자녀에게 호소력이 있겠는가? 부모가 먼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본보기는 없을 것이다.

 

 

  자주 듣는 상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음과 같은 말이다. "우리 아이는 책을 안 읽어요.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을까요?" 차마 대놓고 뭐라 그럴 수 없어. "어머니께선 한 달에 몇 권이나 읽으시나요?"라고 노골적으로 물어봐도 바로 알아듣지 못할 때엔 어찌 상담해야 할 지 참 난감할 지경이다.

 

  <솔선수범>은 학창시절에만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니랍니다. 어른이 되어서 더욱, 부모가 되어서 더욱 지켜야 할 덕목이랍니다.



[출처]같은 책,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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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만성, 책만 가까이 한다면 얼마든지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07-3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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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

최효찬 저
바다출판사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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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바람은 자식이 글을 읽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글을 읽으라는 말을 듣지 않고도 글을 읽으면, 부모 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자 없다. 아아! 그런데 나는 어찌 그리 읽기를 싫어했던고."

 

  연암의 뒤늦은 탄식이다. 뒤늦게 공부하고도 조선 최고의 문장가가 된 그를 보며 부모들도 너무 애태우지 않기를 바란다. 자녀들이 지금 책을 읽지 않아도 성급하게 실망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라도 책을 가까이 한다면 자기 분야에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초등4학년 성적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요즘은 일찍 공부에 눈을 뜬 아이들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중학시절에 눈 뜬 아이도 있고, 고교시절을 지나 대학에 가서야 겨우 정신 차린 아이도 있다. 심지어 군대에 가거나 복학한 뒤에 공부에 불이 붙은 이들도 허다하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20~30년만 사는 것이 아니고, 70~80을 넘어 100살까지 엿보는 요즘이다. 고작 10살에 삶을 결정하고 그 삶에 얽매이는 풍토가 얼마나 웃기느냔 말이다. 남보다 조금 늦은 20대, 30대에 <공부>에 눈을 뜬다고 70~80대에 삶이 그닥 다르지도 않다. 오히려 아무 목표없이 <성적에 따라> 삶을 결정한 사람은 나이를 먹을 수록 더욱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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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뜻대로 자란 아이와 아이의 뜻대로 뒷바라지하는 부모 사이에서.. |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2010-07-3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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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

최효찬 저
바다출판사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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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교를 중퇴한 헤세를 헤세의 아버지는 시게공장 기술 견습공으로 보냈다. 열일곱 살이던 헤세는 공장에서 매일 선반 앞에 서서 줄질을 하고, 구멍을 뚫고, 납땜과 인두질을 해야 했다.

 

  "공포와 증오와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시인으로서의 자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미친 듯한 질풍노도의 시간은 다행히도 지나갔다."

 

  혹시 자녀가 부모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안달하지 말기 바란다. 어쩌면 헤세처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가야 할 길과 가능성을 찾아낼 수도 있는 법이다.

 

 

  부모가 아이의 꿈과 소질을 고려치 않고 미래를 강요하는 일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또한 아이가 제멋대로 자라는 데도 아무런 간섭도 훈육도 하지 않는 방관적 부모도 아이의 미래를 그르칠 수 있는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다.

 

  아이 교육에 있어 <적절히> <적당히> <대충>이란 말은 금물이다. 때론 아이와 심각한 다툼이 일지라도 부모는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신>을 꺾지 말아야 하며, 아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노력과 끈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이 둘에 있어 <적절한 타협>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부모자식 사이의 연을 끊는 일만은 하지 마시길. 강하면서도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면서도 무쇠를 끊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어찌보면 이것이 <자식교육>이지 않을까 싶다.



[출처]같은 책, 171쪽~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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