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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수학 공부중 | 2014년에 쓴 리뷰들 2014-09-19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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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

이광연 저
한국문학사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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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면 사실 <수학>은 참 재밌는 학문이다. 거의 모든 학문의 '기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상생활과 밀접한 학문이기 때문에 <수학>을 모르고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유독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수학>이 참 재미없는 학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단언컨대 그 까닭은 우리가 <수학>을 잘못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지금 30대가 넘은 분들은 초등시절에 <산수>를 배웠을 것이다.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나시는가? <수와 연산>이라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의 기초연산을 주야장천 배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실 것이다. <도형>이라는 단원을 배울 때에도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배우자마자 둘레의 길이와 면의 넓이를 구하고 푸느라, 또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하셨을 것이다. <측정>이라는 단원도 마찬가지다. 센티미터를 배우기 바쁘게 밀리미터, 미터, 킬로미터를 배우고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하기 바쁘다. 무게의 그램이나, 부피의 리터라는 단위도 마찬가지였다. 고학년에 올라 <확률과 통계>를 배울 때에도 끝없이 덧셈, 뺄셈...아니 사칙연산으로 계산하기 바쁘다. 그나마 <규칙성과 문제해결>이라는 단원을 배울 때는 사칙연산의 고통에서 벗어나 <수학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출제된 적은 거의 없는 단원이기에 교육현장에서 빼고 가르치지 않기 일쑤였다. 이런 현상은 초등시절 뿐만 아니라 중고등시절에도 반복되는 현상이다.

 

  이렇게 지루하게 사칙연산을 강요하는 수학을 12년 간 배우게 된다. 우리나라 학생이라면 누구나 말이다. 비록 '수'와 친하게 하고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사칙연산'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꼭 필요한 학습이라 하더라도,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문제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수업이 재밌을 턱이 없다. 외국에서는 이런 폐단을 막고자 웬만한 연산은 '계산기'가 담당하게 하고 있다. 그런 탓에 '계산기'의 도움이 없으면 일의 자리나 십의 자리 연산을 손으로 휘리릭 풀어내지 못하는 불상사가 나타난다해도 <수학교육>의 목적이 열 자리 이상의 수를 척척 암산하고 곱셈구구 빠르게 외우는 것이 아닐 바에야 '기계'의 도움을 받아 연산을 배운들 그리 나쁠 것이 없을 터인데...암튼 <수학>이라면 진절머리를 치는 까닭 가운데 으뜸은 지루하도록 연산만 반복하는 불합리한 교육은 일치감치 바꿔야 할 것이다.

 

  <수학>은 논리적인 학문이다. 그런 까닭에 앞뒤 이해설명이 주절주절 늘어질 까닭이 없다. 문제에 주어진 단서들을 찾아내 원하는 정답을 구하기까지 명쾌하기 이를데가 없는 학문이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으며 범인을 찾아내 미스테리한 사건을 해결해내는 명탐정이 된 듯이 풀어내면 되는 학문이다. 그런 까닭에 논술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논술을 잘하는 비법'으로 수학공부를 권하곤 한다. 수학문제를 풀이하면서 문제를 푸는 안목을 기르기에도 <수학>만한 것이 없고, 논술의 핵심인 '문제해결력'을 탄탄하게 쌓아주는 것이 <수학>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수학> 공부를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요소를 없애야 할 때다. 융합수학, 스토리텔링 등등 기왕 수학교과서를 건국 60년만에 싹 바꾸었다면, 이젠 '교육방법'도 함께 바꿔야 할 것이다. 교육현장에 머무는 수업이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 다양한 <수학>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과학을 글로 배운 학생보다 실험으로 배운 학생이 더 흥미를 느끼고 잘 배울 수 있듯이 수학도 몸으로 직접 체험하며 일상에 숨겨진 수학의 비밀을 찾아내며 배운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물론 단박에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꾼다고 바꾼 수학교과서가 여전히 아이들을 '연산반복'을 유도하고 있다면 대안이 필요할 것이다. <수학, 인문으로 수를 읽다>는 바로 그 대안으로 안성맞춤일 게다. 다만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겠으나 열공하는 중고등학생이라면 능히 읽어낼 수 있을 것이며,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쳤던 일반인들에게 수학의 참재미와 더불어 수학적 교양을 한껏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뒤에는 또 다른 <수학인문교양서>를 찾게 될 것이다. 이미 다른 <수학인문교양서>를 읽은 뒤라면 이 책도 권하는 바이다. 단언컨대 어렵고 난해한 <수학>이 쉬워지지는 않겠지만, 당신을 <수학>의 참 매력에 젖어들게 할 것이다.

 

- 이 리뷰는 [한국문학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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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인물에게서 철학적 사색을 즐기다 | 2014년에 쓴 리뷰들 2014-07-28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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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슈퍼히어로의 에로틱 라이프

마르코 만카솔라 저/박미경 역
오후세시 | 201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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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물간 슈퍼히어로의 성생활에 대한 책이라니 그닥 반갑지 않았다.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도 아니고 허구라고 하기엔 터무니 없는 상상의 존재가 일반인처럼 늙고 병들고 평범한 일상에 파묻혀 지내는 상상이 결코 유쾌하지 않은 까닭이다. 더구나 우리가 익히 알던 영화속 '슈퍼히어로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원작 만화의 정서로 만들어진 '슈퍼히어로의 이미지'가 낮선 까닭에 책 속으로 쉽사리 젖어들지 못하는 것도 반갑지 않은 일이다. 섹스에 굶주린 슈퍼히어로라니...여긴 미국이 아니라고(--)

 

  허나 '슈퍼히어로'라는 단어 대신에 '유명인'이라고 대입하니, 그닥 낯선 내용은 아니었다. 유명인의 삶은 사사로움과 공공스러움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위태롭기 마련이니, 완전한 개인의 삶은 포기해야만 하고 완전한 공공의 삶 또한 강요될 수 없다. 그러니 일반인의 관심이 '유명인'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로 생각할 수밖에 없고, '유명인' 또한 자신의 삶이 까발려지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그런데 그 까발려지는 사생활이 '성생활'이라니 난감하다.

 

  알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을 수도 있을테지만 대놓고 알려고 하면...흠흠..점잖치 못한 일이니 말이다. 더구나 실존 인물도 아니고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캐릭터'의 비밀스런 성생활에 관심을 쏟는 모양새가 그닥 좋아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벼운 영화가 아니라 [원작만화]가 주는 무거움을 생각해보면, '슈퍼히어로의 성생활'은 어쩌면 철학적인 내용으로 분석하며 보는 것이 올바른 책읽기가 될 듯 싶다. 굳이 어렵게 미쉘 푸코의 <성의 역사>를 예로 들지 않아도, 성이라고 하는 것을 철학적으로 풀이하면 인간이 추구하는 본성 가운데 하나인 '쾌락'과 연관 지을 수 있다. 사람이 살면서 '쾌락'을 놓치고서 살 수 있을까. 그만큼 인간의 본성이 쾌락의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쾌락'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섹스'이고 말이다.

 

  암튼 이렇게 분석을 마치고 나면, 이 책은 슈퍼히어로처럼 엄청난 사람도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인 쾌락을 누리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배경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판타스틱4의 일원이었던 리드 리처드는 자신의 아들 또래인 젊은 여자와 애정행각을 벌인다. 또 배트맨은 양성애적 성향 때문에 파트너조차 어린 로빈이었고, 로빈이 죽은 뒤에는 로빈보다 더 어린 소년소녀를 대상으로 탐욕스럽게 쾌락을 즐긴다. 그러다가...배트맨이 죽는다. 어린 소녀와 변태성향의 섹스로 한껏 쾌락을 즐기다. 그 정점에서 생을 마감한다. 벌거벗은 채 살인을 당한 것이다. 그 뒤에 고무인간 리드 리처드도 딸뻘인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이루어질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황혼에 찾아온 쾌락을 멈출 수가 없다. 그정도 쾌락으로 만족하기만 했다면 리드 리처드도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러질 않았다. 못하지 않은게 아니라...

 

  아니 어쩌면 슈퍼히어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쾌락'이 아니라 '강박'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좋아서 죽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죽음에 이르는 열쇠는 '강박'이 더 어울리니 말이다. 그렇다면 슈퍼히어로의 죽음들은 '강박에 따른 자살?' 아니아니. 배트맨은 어린 소녀에게 죽임을 당했다니깐. 그렇다면 슈퍼히어로들을 '강박'에 이르게 한 '살인자'가 또 있다는 말인가? 그 살인자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배트맨의 죽음, 바로 뒤에 나타난다.

 

  그 뒤 이야기는 살인자가 살인을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또 그 뒤 이야기는 살인자가 또 다른 살인을 하는 이야기...어찌 보면 기-승-전-결이 완벽한 이야기 구조로 만들어진 수작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왠지...서스펜스를 느끼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뭐랄까. 흥겨운 리듬곡을 늘어진 테이프로 듣는 느낌이랄까? 사건 전개는 진부할 정도로 '일상의 묘사'만으로 길게..길게 늘어진 나열을 하였다. 이는 돌연변이 초능력자 미스틱에서 더욱 심하달까...바로 앞에서 살인자의 등장으로 심장 박동을 올려놓았는데도...그 살인자가 벌이는 살인행각을 읽기 위해 부지런히 책장을 넘겨야 했다.

 

  미스틱 역시 '강박'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던 모양인데, 그 '강박'이 주는 서스펜스는 에드가 엘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 이후에 좀 시들하지 않은가. 마치 '반전'이 주는 이야기의 재미도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 짐작과 예상으로 그 흥미가 '반감'되는 것처럼 말이다.

 

  노쇠한 초능력자들의 일상과 섹스, 그리고 죽음이라는 흥미거리로 독서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할 수는 있겠지만, 금요일밤만 되면 섹스파트너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고 다니는 표범 아닌 하이에나 같은 미국인들의 일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 속에 감춰진 블랙유머를 이해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슈퍼히어로에 대한 색다른 이해를 얻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책이 견문을 넓혀줄 것이다. 마블코믹스나 DC코믹스 같은 '원작만화'를 읽으며 서로 비교하며 읽어도 손색없는 책일 것이다. 차라리 소설이 아니라 원작만화였다면 더 생생한 느낌을 받았을 텐데...늙어버린 슈퍼히어로를 쉽사리 상상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은 유명인의 섹스스캔들에 환장하고, 슈퍼히어로의 활약에 환호하는 독자들에겐 새로운 견문을 넓혀줄테고, 원작만화를 심취한 독자라면 낯익은 스토리 전개에 슬며시 미소를 지을 만한 책이다.

 

- 이 리뷰는 [오후세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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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일까? 모르는 것이 약일까? | 2014년에 쓴 리뷰들 2014-07-02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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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드 신화와 반신화

샹탈 토마
인간사랑 | 199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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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난, 궁금증 때문에 '사드'를 읽기 시작했다. 청소년들도 종종 읽는 유명 출판사의 문학전집 속에 어찌하여 '사드의 목록'이 왜 낑겨 있는 것인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아니 도대체 왜? 추잡한 이름의 대명사인, '사드'가 청소년 권장목록에 들어갈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런 의문에서 집어들었던, 그 전집 속에서 만난 '사드'는 추잡하고 더없이 추잡하지만 뭔가 읽을거리가 있다는 지식인들의 견해가 담겨 있었다. 도대체 그 '뭔가'가 뭘까? 그래서 그 전집들(사드의 소설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 뒤쳐져(번역되어) 있는 사드에 관해 풀어놓은 책들)을 찾아서 탐독해 나갔다. 뭔가 있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깜냥을 믿고서 말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찾기 힘들었다. 외설적이고 변태적인 내용까지는 어떻게 견딜 수 있었지만,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지독하리만치 약자에게 가학을 하는 행위들을 보면서 역겨웠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추잡한 책나부랭이를 호기심 왕성한(?) 청소년들에게 읽히라고? 읽혀서 무엇을 엿보게 한단 말인가? 도무지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채 '사드'에 대한 의문은 기억의 저편 속에 덩.그.라.니...

 

  그러다가 흔히 말하는 <예술과 외설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도 떠올렸다. 그렇다. 사드가 추구한 것은 '쾌락'이다.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달콤한 키스는 얼마나 좋은 것이냔 말이다. 쪼옥~해도 좋지만 츄르르룹츄릅 해도 좋으렸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사드는 아주 지독하게 츄르릅한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사드를 용납하기는 힘들다. 쾌락을 추구한 것을 탓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도덕'이란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쾌락을 얻고자 다른 이의 고통을 나몰라라하고, 더 나아가 그 지독한 고통을 통해 쾌락을 얻을 수도 있다는...끔찍한 결실을 눈 뜨고 볼 수 있을까?

 

  한편, 도대체 사드는 왜 이토록 추잡한 쾌락을 추구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의 일생을 다룬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집어 든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사드, 신화와 반신화>.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사드를 옹호하는 측도 있고, 매도하는 측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보니, 사드는 동시대인에게도 인정받기는 매우 힘들었고, 귀족 신분에 걸맞지 않는 행보 때문에 매번 매도 당하기 일쑤였단다. 그가 일생의 대부분을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가 죽지 않고, 또는 죽임을 당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귀족이라는 신분 덕분이었고, 아이러니 하지만, 귀족답지 않게 '글쓰기 실력(희곡과 소설과 혁명적 팜플렛 등)'에 목숨을 걸었던 특별함,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시대적 혼란이 사드에겐 삶의 버팀목이었던 모양이다.

 

  또 사드는 귀족이었기에 젊은 시절에 프랑스를 위해 군인 신분으로 전쟁에 참전한 경력도 있었단다. 바로 이 군시절에 방탕한 삶을 시작한 듯도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아닌 듯 하고, 부모와의 서먹서먹함이나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도 결정적인 원인은 아닌 듯 하다. 짐작일 따름이지만 '자유'분방한 사드를 그 지독한 사상(쾌락적인 부분이든,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유를 갈망하는 부분이든 간에 말이다)으로 내몰았던 것은 <감옥과 정신병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 감옥에서 나오려고 애쓰는데 장모가 탐탁치 않아 했던 점도 사드는 멈출 수 없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 조심스레 짐작할 따름이다.

 

  물론 책 속에서도 무엇이 결정적인 원인인지 서술하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왜냐면...사드 따위, 알게 뭐람? 사드에게서 중요한 점은 '원인' 따위가 아니라 '결과' 인 것을. 사드가 지독하고 추잡한 쾌락주의자가 된 까닭 따위는 호사가들의 관심거리에 지나지 않을 게다. 오늘날에도 사드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시대를 앞서도 너~무 앞선 그를 도대체 언제쯤 대단한 선구자로 인정하는 사회가 도래할까?'라는 원색적인 호기심일 것이다. 성(性)에 대해 자유분방함을 넘어 관대해진 21세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사드'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으니 말이다. 벌써 그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났다.(1814년 사망). 아니 현실에서는 그 어떤 사회도 사드를 용납하는 사회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사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는 소설 속 '허구의 세계'나 영화 속 '상상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영역을 더욱 넓힌다면 지식인들의 '담론의 세계'이지 않을까? 아니 그렇다면 이미 사드는 용납되어진 인물이자 사상일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대놓고 사드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꿈의 해석>을 통해 프로이드가 물꼬를 터놓았고, 에로틱한 분야인 '포르노그라피'에서는 사드가 갈망한 세상이 녹아들어 갔으니 말이다.

 

  아마도 사드의 사상은 현실에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영원히 말이다. 그러나 문학 속에서, 학문 속에서 꿈틀꿈틀 살아움직이고 있다. 이미 말이다. 그런데 괜찮은 걸까? 현실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 '허구'와 '상상'과 '담론'의 세계에서는 꾸준히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말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비록 '상상의 나래'일지라도 언젠가는 현실 속에 '실현'되어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그 '상상 속'에서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나왔다가는 '괴물' 취급 받으며 쫓겨나기 십상일테다. 아니 그 괴물은 나오지 않더라도 '아는 것'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 괴물이 위험하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 나오지 못하게 단단히 막을 수 있는 것일까?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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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아픔을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본다 | 2014년에 쓴 리뷰들 2014-06-0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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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근세 백년 중국문물유실사

장자성 편/박종일 역
인간사랑 | 2014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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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영박물관'이니 '루브르 박물관'이니 하는 열강들의 박물관이 얼마나 악랄한 도적질의 결과물인 줄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니 얼마나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약탈과 파괴였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그렇게 약탈해 간 문물들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돌려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채택한 법률에 근거해봐도 남의 물건을 훔치면 그에 상당한 죄값을 치루기 마련이고, 또 훔친 물건은 '장물'로 취급하여 주인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것이 원칙이며, 행여나 '장물'을 팔아치웠다하더라도 장물을 팔아서 생긴 이득은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하고 '장물'을 구매한 사람도 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국가가 앞장서서 파괴하고 훔쳐간 '문물'들은 왜 되돌려 받을 수도 없고, 왜 보상 받을 수도 없는 것인가? 한마디로 보상은커녕 되돌려줄 계획도 없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열강들에게 빼앗긴 문물들을 되찾아올 의지도 없고, 보상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 피해 당사국들이 태반이라는 말이다. 아니 무엇을 빼앗겼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저 열강들의 박물관을 찾아가서 그 웅장함에 넋이 나가고, 그 웅장한 장소를 빛내는 '빛나는(?) 조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만을 아쉬워 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허나 정작 미워해야 할 대상을 미워하지 못하고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들만 애처로워해야만 하는 까닭에 치밀어 오른 울화통을 내뿜지 못하고 장탄식에 묻을 수밖에 없음이 답답하고 또 답답할 따름이다.

 

  이 책은 지난 백 년간 중국문물이 어떻게 빼앗기고 사라져 갔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줌과 동시에 당췌 무엇을 빼앗겼는지 조목조목 목록으로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되찾아와 와야 할 '우리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책이다. 우리 나라도 중국과 같은 시기에 파괴되고 빼앗긴 유물이 부지기수이며, 역시나 되찾아와야 할 목록이 절실하기에 이 책의 내용이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중국 특유의 '과장'한 듯한 뉘앙스가 느껴져서 감정이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실'에 근거하여 설명한 부분이 대다수이기에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불현듯 이 책을 읽으며 병인양요 때 유실된 '외규장각'을 프랑스에서 되돌려 받기까지 과정이 떠올랐다. 분명히 약탈이었고 주인이 분명했는데도 되돌아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 과정중에서 가장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단연 '어느 한 프랑스 사서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은 십분 이해가 될 듯 하면서도 몰염치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아 굉장히 불쾌하던 기억이었다. 어쨌든 '외규장각'은 되돌아왔다. 기쁘다. 그런데 답답하다. '외규장각'처럼 빼앗긴 것이 확실하면 되돌려받을 명분이라도 있겠지만 우리 내부의 몰염치한 놈들에 의해 외부로 반출된 문물들은 되돌려받기가 요원하니 말이다. 이 책 속 중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열강들의 약탈과 파괴로 잃어버린 문물도 상당하지만, 그 가치와 귀중함을 알고서 혹은 모르고서 빼돌린 문물 또한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우리라고 '남 일'이 아니기에 함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한편 의아한 대목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중국을 약탈한 적도 없을 터인데, 중국의 문물이 약탈된 나라 가운데 '한국'이 포함된 사실이 말이다. 그것도 시기적으로 열강들이 약탈하던 시기와 딱 맞는 그 시기에 약탈한 중국문물이 우리 나라에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훔쳐온 문물은 아니다. 중국이 약탈 당하던 시기에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약탈전문가(?) '오타니 고즈이'가 실크로드를 훑으면서 약탈한 중국 문물을 그당시 조선에 보관하고 있다가 해방이 되었을 때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남은 문물들이다. 이를 '오타니 콜렉션'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 문물의 약탈국 가운데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

 

  어찌 보면, 억울하게 오명을 뒤집어 쓴 셈인데 그 문물의 양이 상당하니 중국으로서는 무시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오타니 콜렉션'을 중국에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하다. 물론 아직 돌려주지는 못했다. 우리의 약탈된 문물도 되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만 돌려주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설령 돌려준다고 해도 맨입으로 돌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심리 덕분일게다. 허나 '세계의 모든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는 시발점이 '오타니 콜렉션 반환운동'이 될 수 있을 테니, 우리 손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세계사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칼자루를 우리가 쥐고 있다는 묘한 기분. '오타니 콜렉션 반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섣부른 상상부터 하기에 앞서 '목록'부터 만들어야 하겠다. 이 책을 뒤친 이(번역자)의 말을 엿보니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잃어버린 문물의 목록'조차 없는 모양이다. 칼자루를 휘두르기 전에 되찾을 내 물건부터 당당히 말할 근거부터 마련해야 더 멋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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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를 새삼 다시 읽는다 | 2014년에 쓴 리뷰들 2014-05-29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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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왜 지금 한비자인가

신동준 저
인간사랑 | 2014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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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이 아무리 유혹할 지라도 <한비자>를 왜 읽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보다 <한비자>는 어떤 내용인가? 부터 풀어내는 것이 이야기를 더 쉽게 풀어내는 순서인 듯 싶다. 한비자는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 중국 한(韓)나라에서 살았던 법가사상가다. 이 또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쉬운 방법이 아니니, 한비가 집대성한 <한비자>, 바로 이 책이 진시황으로 하여금 혼란한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풀어내면 쉬울 듯 하다.

 

  각설하고, 진시황은 <한비자> 덕분에 중국의 오랜 혼란을 잠재우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한비자>는 대단하다. 그런데 그 대단한 <한비자>를 마냥 달갑게만 볼 수 없다. <한비자>가 마치 '독재'를 찬양하는 것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세기를 <식민과 전쟁과 독재로 이어지는 아픈 시대>로 겪었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다시 나타난다는 생각만으로도 진저리를 칠 분들이 많다. 그런데도 <왜 지금 한비자인가>라는 제목을 끄집어 냈을까? 아마도 글쓴이는 <한비자>가 진정으로 독재를 찬양한 것이 아니라는 오해의 소지를 불식시킴과 동시에, 지금이야말로 <한비자>가 필요할 때일 만큼 혼란한 시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설명하자면, '공자, 맹자'가 인의로 백성들을 다스려야 태평한 세상이 찾아오고, '노자, 장자'가 도덕적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무릉도원 같은 세상이 만들어진다고 말할 때, <한비자>는 앞선 방법들이 모두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실현되지도 않을 것이니, 군주가 비열하고 잔학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엄격한 상벌제도'를 만들어 다스려야 도리어 백성들을 평안하게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역설하였다. 왜냐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본래 추한 것이라서, 인의와 도덕을 앞세우는 성인군자는 드물고, 그런 성인군자를 좇으려는 사람은 더욱더 드물기 때문이란다. 모름지기 평범한 사람은 당장의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려하지 않고 이익이 생기더라도 더 큰 쪽으로 움직이려 발버둥치기 마련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한비자>는 뜬구름 잡는 식의 허튼 사상과 비효율적인 방법은 철저히 배격하였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읽는다면, 단언컨대 그 누구라도 천하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될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진시황이 <한비자>의 방법으로 혼란했던 전국시대의 중국을 통일하였고, 서양의 '한비자'에 비유되는 '마키아벨리'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이탈리아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혼란한 시대를 이어 가야할 수밖에 없었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한비자>가 필요할 정도로 혼란한 시대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비자>의 내용이 지극히 효율을 강조하는 내용이기에 태평한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혼란한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니 아니 물을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지금 우리 나라를 네 글자로 표현하자면, '내우외환'이라 말하고 싶다. 나라 안팎으로 근심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북한의 연이은 위협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중국과 일본의 다각적인 대립의 끝이 군사강국화로 치닫는 모양새가 볼썽사나운지 오래이고, 서양의 판세도 미국이 흔들, 러시아가 흔들 하는 통에 전세계가 장단 맞춰 들썩이는 꼬락서니가 뭔일이 터져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거기에 우리 나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떠한가? 세월호 사건을 필두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정치경제사회계를 뒤흔들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어제도, 오늘도 화재와 방화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도대체 과거의 아픔을 통해 배우는 것이 전혀 없는 무뇌적인 행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지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한비자>에서 새삼 강조하는 것이 바로 '상벌제도'인데, 사건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 평소에 '사형제'를 반대하고 있었지만, 관련자들에게 사형을 판결 내린다고 해도 전혀 반대하고 싶지 않은데 솔직한 심정이다.

 

  이쯤해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한비자>가 그토록 필요한 시대라면, 이 책에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글쓴이 신동준은 <한비자>에서 어떤 방책을 꼽아 이 책에 정리하였을까? 글쓴이는 '관계'를 강조하였다. 오늘날이 '전국시대'와 같은 혼란기라고 하더라도 분명 당시와는 다른 시대이다. 당시에는 군주와 같은 독점적 권력을 갖춘이가 등장하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시대였으나, 오늘날에는 그런이는 당치도 않기 때문에 '권력'을 갖추되 국민들이 동의할 수 없는 '비상식적 독점적 권력'은 있을 수 없다는 전제하에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가 설명하였다.

 

  다시 말해, 인위적인 권력욕은 당치도 않으며, 권력을 갖게 되어도 티를 내지 않고, 주어진 권력으로 공명정대한 상벌을 내려 누구 하나 부당하다는 생각을 국민들이 느끼게 해야 올바른 권력자라고 하였다. '한비자'가 살았을 당시에는 '힘'을 가진 자가 '권력'도 갖는 것이 당연하였지만, 오늘날에는 '힘'과 함께 '국민의 동의'도 갖춘 자가 '권력'을 가질 수 있으니 '관계'를 무시하고서는 올바른 권력을 사용하지 못함을 이르는 것이다.

 

  이는 '인간관계학'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국민이 권력자를 따를 턱이 없으니 권력자와 국민,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평등한 '관계'에서 권력을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권력자가 권력을 행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학창시절 반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의 '권력'에는 쉽게 굴종하면서도 반장의 '권력'에는 쉬이 반기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권력'이 만만해 보이면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자칠 '평등 관계'를 해칠 수 있기에 위험천만할 따름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평등한 관계 속에서 '권력'의 효율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를 테면, 거두기에 앞서 퍼줘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히 내야 하는 세금이지만 이조차 거두기에만 급급하면 '조세저항'을 받기 일쑤일게다. 그러니 세금을 낸 이들에게 세금의 혜택을 톡톡히 느끼게 해주는 것이 당연지사란 말이다.

 

  마지막으로 '응용관계학'에서는 <한비자>에서 얻은 비결을 오늘날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특히 G2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나라가 취해야 할 방책 등을 여러 동양고전 속에서 비교하며 서술하였다. 그리고 책속 부록의 성격으로 '한비자'의 죽음에 대한 오해와 진상을 고찰한 논문이 담겨 있는데, 우리가 익숙하게 알던 '한비자'와는 색다르니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읽을 수 있도록 남겨두겠다.

 

  요즘 [인간사랑]에서 출간한 신동준 저자의 책들을 통해 동양고전을 새롭게 접하고 있다. 기존의 책들과는 방점을 달리하였음을 느끼곤 하지만, 아직 깊이가 부족한 독자이기에 뭐라 풀어써야 할 지 몰라 몇 개의 글자조차도 남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기약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으로는 동양고전을 다시 읽는 계기로 삼을 것이며, 최대한, 시간이 허락한다면 동양고전에 대한 신동준 저자의 남다른 혜안을 풀어쓸 수 있는 깜냥을 발휘해보련다. 이 책을 읽으며 <한비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조차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이것과 저것 가운데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어설픈 독자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한비자>를 새삼 다시 읽게 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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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경제학, 인문의 경계를 넘나들다

오형규 저
한국문학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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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과 인문학을 접목시켰다는 것을 짐작케하는 책제목부터 눈길이 갔다. 요즘 웬만한 책쟁이(간서치)들이라면 인문교양도서쯤은 필독서에 가깝고, 거기에 먹고 살기 힘든 요즘에 가장 인기가 있다는 경제학도서를 접목하였다니 정말 글쓴이는 센스쟁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또 가볍게 읽어도 풍부한 지식이 쌓일만큼 유익한 지식과 정보가 쉽고 재미나게 담겨 있는 책이다. 각설하고, 장담컨대 이 책은 어렵고 딱딱한 경제학 입문서를 대신해서 읽어도 손색이 없겠고, 거기에 신화와 소설, 역사와 과학, 그리고 영화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두루 갖추었다면 책 읽는 재미가 더욱 솔솔할 것이 틀림없다.

 

  요즘처럼 경제에 관심이 많은 때도 없다. 그만큼 먹고 살기 힘든 탓도 있겠지만, 나라경제가 성장하고 팽창한 만큼 경제가 점점 복잡한 탓도 무시할 수 없을 게다. 거기다가 여유롭고 부유한 삶을 누리고자하는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가고, 누구나 남다른(?) 노력만 하면 참살이(웰빙)까지는 몰라도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은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돈에 참 관심이 많은 시대일 수밖에 없는 듯도 하다.

 

  그렇다고 국민 모두가 <경제학원론>을 읽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읽는다고한들 그 낡아빠진 경제이론을 공부하여도 현실에선 그닥 쓸모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컴퓨터 공부를 한답시고 진공관과 트렌지스터로 만든 전기회로를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 아님 에니악과 MS도스, 윈도우 3.1을 다뤄보겠는가? 말이다. 요즘과 같은 복잡한 경제를 다룰 때에도 이미 철 지난 옛 원론서적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경제를 다루는 복잡다단한 서적을 탐독하는 것은? 경제전문가들도 답을 몰라 이게 맞다, 또는 저게 맞다며 정답은 고사하고 온갖 예측만 난무한 마당에 전문가들이 참고하는 어려운 책을 읽을 텐가?

 

  바보 같은 짓이다. 경제전문가가 되고 싶지 않다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같은 책은 권해주고 싶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시장 경제원칙만 알면 저 두꺼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정도니까 말이다. 케인즈가 나오는 책도 읽고 싶지 않다. 그가 주장하는 경제원칙은 '큰 정부'로써 정부가 시장에 직접 규제를 가해야 경제가 바르게 돌아간다는 원리인데, 미국에서 분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움직이는 시장에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꼼수를 썼다. 그래서 '뉴딜 정책'과 같은 것이 나오긴 했지만, 엉뚱하게도 '경제대공황'을 극복한 것은 히틀러가 벌인 '2차 세계대전' 덕분(?)에 극복하고 말았다. 우쨌든 공부는 쉽고 재밌게 해야지 어렵고 복잡하게 하면 작심삼일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인데, '인문학'이 오래도록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인문학은 그 익숙함이 부담감을 확실히 덜어준다. 또한 그 만큼 쉽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없이 다루고 저마다 즐거운(?) 주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그러하다. 이 책을 쓴 글쓴이가 주절주절 거린 내용조차 정답은 아니다. 글쓴이의 주장에 딸린 근거가 귀에 솔깃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문학의 익숙함에 경제학의 유익함을 담아 복잡다단한 경제논리를 쉽고 재미나게 엿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책이 말이다.

 

  참으로 절묘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밌다. 무릇 독서란 교양과 재미가 동반될 때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교양만 주는 책은 딱딱하기 일쑤고, 재미만 있는 책은 자칫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줄 따름이다. 모처럼 교양과 재미를 다 갖춘 책을 읽으니 흐믓하다. 딱딱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말랑함과 쫀득함만이 가득한 즐거운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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