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책 읽어주는 선생님...[책이 있는 구석방]
http://blog.yes24.com/zizi0908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異之我...또 다른 나
이 세상 어디를 싸돌아다녀봐도 가득 쌓인 책방 한 구석 만한 곳이 없더라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2월 스타지수 : 별3,771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Wish List
My Story
나의 리뷰어 도전기
이벤트 및 우수리뷰 선정
개편독서습관
독서습관캠페인
새벽/야밤 독서
이달의 필독서
異之我...또 다른 나
어떤 직업이 있나요?
마르크스를 읽다
이이화의 역사를 읽다
세더잘 교양을 읽다
동화책을 읽다
듄을 읽다
리뷰어클럽을 읽다
한빛비즈를 읽다
인간사랑을 읽다
나의 리뷰
2021년에 쓴 리뷰들
2020년에 쓴 리뷰들
2019년에 쓴 리뷰들
2018년에 쓴 리뷰들
2017년에 쓴 리뷰들
2016년에 쓴 리뷰들
2015년에 쓴 리뷰들
2014년에 쓴 리뷰들
2013년에 쓴 리뷰들
2012년에 쓴 리뷰들
2011년에 쓴 리뷰들
2010년에 쓴 리뷰들
2009년에 쓴 리뷰들
2008년에 쓴 리뷰들
2007년에 쓴 리뷰들
2006년에 쓴 리뷰들
2005년에 쓴 리뷰들
2004년에 쓴 리뷰들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어떤 직업이 있나요?
™구석방 토론회
역사 / 과학
태그
이제좀여유가생겼구만 더넓은세상을경험해야지 겁나안읽힘 검술연습 방어막 베네게세리트 아트레이데스 하코넨 백신접종 이상증세
2021 / 1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최근 댓글
오랫만이세요 ~~~ 
지아님~ 이 주의 우수 리뷰 선정 축.. 
어쩌면 현대인들 모두 지킬박사처럼 이.. 
축하드립니다 ㅎㅎ 
어릴때 본적있지만 그때는 이런 초능력.. 
오늘 299 | 전체 760640
2005-07-18 개설

2010년에 쓴 리뷰들
독서록은 이렇게 쓰는 거야, 엄마가 하는 것을 보렴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31 15:14
http://blog.yes24.com/document/293676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 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책 기부하자! 참여

[도서]나, 오늘 독서록 어떻게 써!

조혜원 글/진정윤 그림
파란정원 | 201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조혜원 선생님은 <행복한 일기 쓰기 365>(삼성당)와 같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위해 아주 쉽고 재밌는 책을 쓰신 훌륭한 선생님이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도 하지만 나를 <독서선생님>의 길로 이끌어준 정신적인 스승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업에 앞서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마음을 앞세우는 교육철학은 특히 본받고 싶은 점이며, 시인으로 활동하시더니 근래에는 <동화작가>를 꿈꾸시며 매사에 열심이신 분이다.

 

  시인하니까 떠오르는데, 혜원 선생님과 처음 만난 날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그날 내 단출한 내 생일잔치를 치르는 자리에서 케잌조각을 담았던 접시에 빵부스러기와 생크림이 묻었더랬다. 그런데 혜원 선생님께서 이 모양을 보시고서는 제게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으셨다. 본뜻을 몰라 머뭇머뭇 거리고 있었는데, 당신께서는 그 모양이 해안가에서 파도놀이를 하는 아이들처럼 보이신단다. 이 말씀을 하시고서 까르르 웃으시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천진하고 무구하시던지 그 길로 <존경모드>로 돌변해서 결국 나를 이 길로 접어들게 만들었다. 이 책 속에서도 이런 깨알같은 사랑스러움이 담뿍 담겨 있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물론, 나름 글쓰기에 자신있다는 아이들마저 <여러 가지 글쓰는 방법>을 제시하는 틀을 기본으로 하여 <왜 글을 써야만 하는지> 그리고 <글을 쓰면 어떤 것이 좋은지> 또, <글을 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손수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이 책을 보면 <다양한 독서록 쓰는 방법>을 배움과 동시에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아이들은 <왜> <어떻게> 독서록을 써야하지? 라는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을 테고, 부모들은 <왜> <어떻게> 아이들에게 독서록을 쓰게 하지? 라는 걱정을 떨쳐낼 수 있는 책일테다.

 

  아이들에게 <독서록>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면 곧잘 쓴다는 아이들조차 대개 <줄거리>로 채우기 마련이다. 이래서는 올바른 글쓰기를 했다고 볼 수 없고, 독서록을 쓰는 의미마저 물색해질테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느낀점> 다시 말해, <감동한 것>을 쓰라고 지도해야 하는데, 이게 막상 아이들에게 '뭘 느꼈니?'라는 또 다른 강압이 되어 부담만 팍팍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일일이 <이 책의 감동은 이런 것이다>라고 가르쳐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건 <어린왕자는 이런 책이야>라며 정답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이건 올바른 글쓰기라고 할 수 없다. 어찌 똑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같은 슬픈책을 읽고도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다르고, 아무리 재밌는 책이라도 깔깔 웃는 아이가 있는 반면, 무덤덤한 아이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는 감동을 표현할 때 그저 <솔직한 느낌을 그대로 쓰라>고 할 뿐이다.

 

  문제는 <감동>을 느끼거나 말거나 이 <솔직함>을 <어떻게> 글로 옮겨야 하는 지, 그 방법을 일러주는 것일테다. 이 책에는 바로 그 해답이 제시되어 있다. 바로 여러 가지 일상 생활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한 편의 동화>를 보여주면서 자연스레 <주인공과 읽는이(어린이독자)>를 <동일시>하게 만들고, 이런 과정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과 읽는이의 감정>의 <비슷함>을 느끼게 하여서 배우게 하는 방법 말이다.

 

  말이 길어서 복잡하게 느낄 수도 있겠으나,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동화속 주인공이 독서록을 쓰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히게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방법이 꼭 쉬운 것만은 아니다. 먼저 <감정이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먼저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워 할테니 말이다. 그래도 이런 방법이 가장 좋은 글쓰기 방법이다. 억지로 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마치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으나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일단 <글>이라면 사색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다른 방법을 보여주며 <독서록>을 쓸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책에는 그런 방법들도 풍부하게 제시되어 있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라도 <그림>을 그리거나, <4컷 만화>를 그리라고 하면 곧잘 그리는 아이들이 있다. 이것도 충분히 훌륭한 독서록이 된다. 또는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책만들기>나 책내용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찰흙으로 만들기> 따위를 하면 능숙하게 해내는 아이들이 있다. 또 좋아하는 직업이 있다면 <역할극>을 하며 책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게 하는 것도 아주 훌륭한 독서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귀찮고 힘든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책을 가까이하는 아이>가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니 걱정마시길..아이들도 그런 활동을 통해 <독서록>을 만드는 것보다 <글로 쓰는 독서록>이 편하다는 것을 몸소 느낄테니 말이다^-^;;

 

  또 글로 쓰는 독서록에도 굉장히 많은 방법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테다. 그렇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책을 보며 엄마가 먼저 독서록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엄마가 먼저 하면 아이들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책만 아이들이게 던져주고서 "우리 아이는 책을 싫어해요"라는 엄마들을 간혹 만나는 데..이런 엄마들 일수록 대개 <책읽기>를 게을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남도 하기 싫기 마련이다. 상대를 변하게 만들고 싶으면 자기부터 변하라는 말은 <엄마와 아이들>을 보면 진리에 가깝다.

 

  엄마가 책을 좋아한다고 자녀가 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녀들이 책읽기를 즐겨한다면 그 엄마나 가족 가운데 책을 좋아하는 이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의 처칠은 말했다. 자기가 처음 읽은 책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가 즐겨보던 책 가운데 한 권이었다고..부모의 습관이 자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독서록>도 마찬가지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공선생, 귀여워~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30 00:03
http://blog.yes24.com/document/293042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 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책 기부하자! 참여

[도서]논어

공자 저/김형찬 역
홍익출판사 | 2005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한국사람치고 <공자>라는 이름을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한 사람이다보니 그를 위대하다고 하는 부류부터 그를 죽여야 나라가 산다는 부류까지 참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그를 평하고 논한 사람도 드물 정도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느 쪽? 다행히도 이 책은 그를 위대하다고 목을 메지도, 죽여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지도 않았다. 그럼 이도저도 아닌 두루뭉술할 것 같은데 그 또한 그렇지 않고 나름 색깔을 갖고 있다.

 

  그것은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가 아닌 그저 평범한 <인간 공자>, 즉 <사람 공선생>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공선생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지도 않았고, 평생을 부유하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말년에는 제자들과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거렁뱅이처럼 <한 자리>를 구걸도 해본 인물이다. 그래서 공선생은 자기 스스로 뛰어난 위치에서 제자를 가르쳤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이 그를 기리며 받들었기 때문에 유명한 인물일 따름이다.

 

  그럼 이런 인물이 세 살에 천자문을 뗀 천재였는가? 그도 아니다. 그가 <위정편>에서 말하길, 자신은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뒀으며 서른이 되어서야 겨우 자기 학문을 세운>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뒤의 행보를 보면 남다르다. 마흔이 되면 학문에 치질 법도 한대 지치지 않고 스스로 <그 어느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더니 쉰에는 자칭 <하늘의 뜻>을 깨달았다고 당당히, 예순에는 무슨 일이든 듣는 족족 이해를 했으며, 일흔에는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고 하니 참으로 괄목할 성장이다. 과연 무엇이 평범한 이를 이토록 큰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일까?

 

  어느 정도는 시대가 영웅을 만든 경우가 아닐까 한다. 공선생이 전국을 떠돌던 시기는 중국의 <춘추시대>. 아직은 주나라 천자를 중심으로 한 예의와 법도가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은 시대. 그렇기에 공선생은 <착하게 살자>라고 주장할 수 있었고, 당시 군주들도 완전 무시당하지 않고 '그래, 공선생이 말한대로 옛날에는 참 살만한 세상이었어'라면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착함(仁)>이 통했기에 공선생은 주목을 받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건 그렇고 2천 년 전 가르침을 오늘날에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있을까? 당근 공선생이 말씀하던 것을 곧이곧대로 따르기엔 200% 모자르다. 우리는 고작 600년 전에도 공선생 말씀대로 살아보았고, 3~40년 전 만해도 공선생의 말씀을 따르려다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으며, 오늘날에도 오롯이 살아남아 <전통>으로 떠받들어진 덕목이 있는가 하면, 이에 맞서 <폐단>으로 지적받아 퇴출당한 폐습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공선생이 말씀하시길>이라는 '떠받드는 식'으로 읽었기 때문에 생기는 <폐단>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그러니 다르게 읽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닐까. 이제는 <사람 공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라는 '따지는 식'으로 읽어야 제대로 읽힐테다. 사실 춘추시대 당시의 공선생의 말씀도 따지고 들 것이 많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남은 한이 없다>고 말해놓고 막상 '저녁'이 되자 <살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니라>라며 제자가 물음을 던질 때마다 앞뒤가 맞지 않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이렇게 변죽이 들끓던 인물에게 과연 '무슨' 매력이 있었을까?

 

  적어도 난 고상한 체 하지 않고 사람냄새 물씬나던 그의 <변덕>과 궤변에 가까운 <엉뚱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귀엽지 않은가? 진짜 삶은 저 너머 어딘가에 있다던(이데아) 플라톤같은 사랑(플라토닉)은 밥맛이다. 아니 사랑하면 어디 마음 속으로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육신의 한 곳이 잔뜩 꼴리고 부푸는 것이 솔직담백한 사랑인 것을 애써 감추며 고상한 척하는 사랑이 어디 사랑인가 말이다. 플라토닉한 사랑을 한다던 이들이 과연 순수하기만 할지 의심이 드는 나다.

 

  그래서 난 배고플 땐 메리를 드시고, 짐짓 메리가 내 뱃속 구경을 하고 싶어서 소원을 들어주어 메리의 도리를 다하게 하였다며 너스레를 떠는 공선생이 귀엽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넌 뭐냐? 도대체..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29 21:46
http://blog.yes24.com/document/292989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 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책 기부하자! 참여

[도서]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우치다 타츠루 저/이경덕 역
갈라파고스 | 2010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모든 학문의 본질이 우리가 학문 이전보다 잘 살고 행복해지기 위함"이라는 뒤친이(옮긴이)의 맺은말로 끝맺는 이 책은 인문학 가운데 <구조주의 입문서>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즉, 웬만해선 어렵다는 인문학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덮은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구조주의>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할 따름이다. 이는 내가 이 책을 이해할만한 깜냥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책이 말하는 구조주의가 어렵기 때문일까?

 

  "이 책은 입문자들을 위해 쉽게 쓴 구조주의 해설서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의 <들어가는 말>은 아주 친절하고 아주 쉽디 쉬운 내용으로 '인문학의 어려움'을 죄다 드러내어 말하고서 '입문자를 위한' 책을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본내용으로 들어간 인문학에 대한 풀이들은 <직설적>이고, <친근(?)한> 내용인데도 마치 <이 빠진 징검다리>를 건너듯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무릇 평범한 읽는이(독자)들이 인문학에 다가가기 어려운 까닭은 이 책을 쓴 글쓴이도 지적했다시피 '그들만의 파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초보자와 전문가가 노는 물이 다르기 때문이고, 초보자는 전문가들 노는 틈에 낑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전문가들이 초보자들을 따로 따돌리기보다는 전문가들이 편하면 초보자가 이해를 못하고, 초보자가 편하면 전문가가 따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둘은 함께 있기에 껄끄럽고 서로가 불편해서 함께 있길 꺼릴 뿐이다. 이런 둘은 보다 가깝게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또 초보자를 준전문가로 만들기 위해서 <인문서>가 쓰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런 본래의 취지에 가까워지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인문철학분야에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이해는커녕 오히려 그 <순수성>을 잃어버려 오히려 <인문학적 잡탕>이나 <인문학계의 삼선짬뽕> 정도가 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이 책은 <구조주의 4총사>, 즉,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라캉, 푸코>가 말한 구조주의를 아주 쉽게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어요"라는 식으로 풀어 놓았다. 예컨데, 구조주의자 레비스트로스는 <우리 모두 사이좋게 살아요>, 바르트는 <언어 사용이 사람을 결정한다>, 라캉은 <어른이 되어라>, 푸코는 <나는 바보가 싫다>라고 말한 것이었단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한 것만으로는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기 너무도 어려웠다. 책내용이 어려웠느냐하면 <입문서>답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각각의 구조주의자들의 이론을 설명한 것을 이해할 만은 했지만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왜? 마치 <수학정석해설서>에 나온 풀이과정대로 풀었는데 답을 맞추어보니 서로 답이 맞질 않아서 당최 무엇이 틀렸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듯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또 구조주의의 역사를 <마르크스의 사상>으로부터 프로이트, 니체를 <구조주의에 영향을 준 사상가>로, 소쉬르를 <구조주의의 창시자>로, 그리고 본격 구조주의 전공자로서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 라캉>을 '4총사'라 일컬으며 풀어주었다. 그런데 이 같은 계보(?)도 <예술사>의 그것처럼 알기 쉽지가 않아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것이 대부분 내 깜냥의 모자름 덕분일테지만..그래도 왠지 억울하다. 난 내 스스로 그렇게 무식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이 책을 덮고 나서도 당최 <그래서..구조주의가 뭔데?>라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말 구조주의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그런데 더욱 궁금한 것은 <구조주의가 뭔데?> 같은 질문이 아니었다. 구조주의를 이해한 이와 이해하지 못한 이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들어서니 더욱 억울해졌다. 나름 <입문서>를 읽고서도 구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는데, 구조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면 <무엇>을 손해보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어 더 속상하다. 과연 구조주의를 이해하지 못한 이는 이해한 이보다 <무엇>을 손해보는 것일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양인들은 서양인과 달리 따로 구조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이미 오래전부터 생활 속에서 <구조주의>가 녹아 있단다.

 

  그렇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동양인인 우리는 이미 <음양, 천지, 명안, 군신, 부자, 사제 등 인간 활동과 우주의 여러 현상의 다른 분야 사이에 연관성을 찾아내는 사고활동>에 대해 깊이 이해하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기에 딱히 구조주의를 알지 못해도 그닥 손해볼 것이 없다는 것 말이다. 즉, 우리는 이미 이런 <관계>에 대해 수천 년 전에 고민해보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벌써 찾았기에 <서양의 구조주의>를 알지 못하더라도 별반 손해볼 것이 없다고 말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구조주의>라는 것이 그뿐이라면 나는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도 억울할 것이 없을 것이다. 괜히 시간만 낭비한 셈일지라도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그뿐이다. 이번 기회에 <구조주의>가 무엇이라고 가닥은 잡은 셈이니 말이다. 휴~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8)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잔소리..쫌!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27 14:45
http://blog.yes24.com/document/291922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 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책 기부하자! 참여

[도서]출똥 오장군

박현숙 글/유설화 그림
문공사 | 2010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제목을 보고서 이 책의 내용이 떠오르지는 않는가? 맞다. 이 책은 변비에 걸린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린 <변비탈출소년기>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이름은? 맞다. '오장군'이다.

 

  주인공 오장군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변비에 걸린 까닭은 <만성스트레스> 때문이다. 다들 이런 경험들 한 번 쯤 있으실 테다. 화장실에 앉아 오랜만에 변선생을 만나려는데 변선생이 나올락 말락 하는 순간에 전화벨이 울리거나 누군가 애타게 나를 찾는 소리 덕분에 그 후로 오랫동안 변선생을 만났을 수 없었던 사연을 말이다. 화장실에 있는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고 오직 자기자신과의 만남의 시간이 될 정도로 편안하기에 절에서는 화장실을 따로 <해우소>라고 부르는 것일 테다.

 

  그런데 초등학생일 뿐인 주인공이 <만성스트레스> 때문에 오랫동안 변선생을 못 만났다니 무슨 까닭일까? 그건 다름 아닌 오장군의 담임선생님이기도 한 '엄마의 잔소리' 때문이다. 집에서만 듣는 것도 짜증이 날 법한데 학교에서까지 감시에 잔소리가 끊이질 않으니 <만성스트레스>가 생길만도 하다.

 

  사실 초등학생이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을 얻는 일은 요즘 굉장히 흔한 일에 속한다. 어른 못지 않은 빡빡한 일정에 과도한 업무(학원숙제과 수행평가과제 따위)는 물론이고 각종 시험이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다가오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란다. 그런데 거기에 덧붙여서 <엄마의 잔소리>까지 듣는 상황이라면...까무러치지 않는 것이 용하다.

 

  그래서 오장군은 엄마가 집을 비울 때마다 <내가 왕이다>를 외치며 집안의 모든 것을 향해 신하에게 명령하듯이 근엄하게 행동하는 놀이(?)를 하곤 한다. 딴에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과연 <엄마의 잔소리>는 정말 효용이 있는 걸까? 잔소리는 '가장 훌륭한 명언이면서 동시에 가장 하릴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유명한 사람의 격언을 조금 흉내낸 것인데, 정확히 누가 한 말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고, 정확한 구절도 생각나지 않아 대충 흉내내 보았다. 수업중에 가끔 훈게조로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긴 하지만 이건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가 될 때가 다반사다. 간혹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줄 때에만 뿌듯할 뿐, 대게는 벌레 씹은 표정을 지으며 딴짓을 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그러면 잔소리를 하다가 욱하고 성질이 솟구쳐서 반협박조로 말을 하곤 하는데...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잔소리를 늘어놓을 때면 늘 하는 생각이 '이건 내가 어릴 적에 늘 듣던 말인데..나도 이런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는데.."하며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나름 추억의 부스러기라고나 할까? 아무튼 <초등학생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잔소리>라고 하니 나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잔소리를 줄여야 겠다. 대신에 이 책에서처럼 조그만 일에도 칭찬을 해주어야지~라는 작심삼일일게 뻔한 다짐을 또 한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6)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4        
차가운 도시 남자를 위한 인문학은 있다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27 13:44
http://blog.yes24.com/document/291911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 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책 기부하자! 참여

[도서]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박가분 저
인간사랑 | 2010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책을 읽으니 예전에 잠깐 논란이 있었던 <리뷰>, <서평>, 그리고 <독서감상문(독서후기)>의 구분법에 대한 여러 주장들이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분은 이렇게 주장했다. 리뷰는 영화로 치면 예고편에 해당하고, 서평은 평론가와 같이 전문가들의 영역이며, 독서감상문은 일반관객의 관점으로 쓴 글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리뷰를 쓰시는 분들은 하릴없이 스포일러가 되지 말고 예고편 수준으로 책을 소개해달라는 대강 이런 내용의 주장이셨다.

 

  공감한다. 그래서 적어도 내 리뷰는 책내용(특히 줄거리)을 주절거리는 법이 없이 책내용에만 충실히 쫑알쫑알대는 방식으로 쓰는 편이다. 물론 리뷰를 읽는 분들의 처지에서 보면 이런 리뷰가 참 곤혹스러울 테지만 그저 <예고편>에 불과한 글이니 리뷰를 읽고 마음에 드시는 점이 있다면 꼭 책을 읽어주십사하는 마음(특히 행사를 통해 받은 책은 어김없이 이런 마음을 담아 쓴다)에서 그렇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

 

  어쨌든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박가분의 붉은서재>는 이런 <예고편>의 수준을 훨씬 넘어 <철학/인문학/문화/시사> 등에 폭넓은 혜안으로 깊이깊이 사유한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고작 얇디얇은 교양서적을 리뷰하는 내 깜냥으로써는 도저히 이 책의 깊이와 가치를 가늠하기조차 너무 힘들었다. 다만 <독서후기>라는 이름의 글에 <참고문헌>과 <주석>까지 달아놓은 저자의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날 뿐이다.

 

  그런데도 자신이 이런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단지 <인문학적 위기>라는 어느 교수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담담히 소개한 부분에서는 살짝 얄밉기까지 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바보는 천재의 위대함을 모르기 때문에 천재를 곁에 두고도 행복할 수 있지만, 수재는 천재의 위대함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자신은 그의 발치에도 미치지 못하기에 늘 슬플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다. 정말 내가 바보였다면 이 책이 그저그런 책이거나 당최 뭔 소리를 이렇게 재미없게도 써놓았을까하고 푸념을 늘어놓으며 던져버렸겠지만, 나는 어느 정도 수재이기에 박가분이라는 천재가 부럽고 또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렇게라도 나의 현재 수준을 <수재>의 위치에 놓아야 조금이나마 샘과 분을 풀 수 있을 듯 싶어서 주절거린 것이다. 여기에 조금 더 보태자면, <박가분>이라는 블로거도 그닥 뛰어난 천재가 아니지 싶다. 이렇게 말하고나니 조금쯤 속이 시원하다^-^;;

 

  이렇게 잘난 글과 저자에게 조그만 흠을 들춰내자면, 나와 같은 수재(일반 독자)를 위해 현학적인 글을 좀더 풀어 썼으면 하는 점이다. 물론 철학과 인문학이 어려운 학문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마치 식자층만의 향연을 벌이는 듯한 낱말들의 나열은 글을 보는 이로 하여금 아주 질리게 만든다. 이 책에는 유달리 <칸트철학>을 인용한 표현이 많은데, 칸트를 모르는 분이 칸트를 비판한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을까? 또 배트맨 다크나이트의 등장인물과 칸트철학을 적절히 가미한 부분에 이르면 잘 몰라도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마땅히 비판할 것이 없다. 일반독자들은 조커를 그저 악당으로 보지 <칸트철학적 순수한 악>이기에 악당보다 더 가공할 악당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식의 나열이라면 그동안 수없이 답습하지 않았는가? <대한민국의 인문학적 위기>는 주로 <아시는 분들만의 향연>으로 그쳤기 때문에 왔다고 본다. 다시 말해, 현학적 어투를 사용하면 할수록 멋스러워지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일반대중의 이해에서는 멀어지게 되고 결국에는 외면받아 따로 노는 소수로 전락할 뿐이란 말이다. 마치 차진 밀가루 반죽을 늘릴수록 처음 대중들은 신기함에 박수를 치며 열광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탄성의 한계에 도달해서 다시 대중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따로 떨어진 소수로 전락하고 만다는 얘기다.

 

  또 이 책에서 가끔 보이는 <외래어 수식>은 좀 삼가해주었으면 한다. 이 책의 서문(12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좋은 문학이란 부르주아들을 화나게 하는 문학이라고 선언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다시 한 번 패러프레이즈하자면.." 기껏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친절하게 풀어 설명한다는 말을 꼭 paraphrase(쉽게 풀어)로 써야 좋은가? 굳이 이런 표현을 즐겨쓰는 똑똑한 분들이 심보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런 외래어 수식을 남발하기보다는 우리말 표현을 널리 쓰는 것을 니즈(needs)하는 바이다. 자꾸 이런 식이라면 우리말은 점점 사라지고, 어느 언어학자가 우려한대로 <우리말은 토씨(조사)만 남고 모두 외국어로 채워질까>봐 걱정이다.

 

  옥에 티 같은 실수가 있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절대로. 오히려 이런 눈엣 가시 같은 것들이 눈에 띠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을 때 좀 재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 블로거라서 이 정도의 흠을 잡아낼 깜냥밖에 없는 나는 짜장짜장 부끄러울 따름이니까.

 

  아무튼 2011년 새로운 목표가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생겼다. 2011년에는 <박가분처럼 리뷰쓰기>를 하겠다는 목표 말이다. 물론 나만의 개성을 살린 글쓰기가 될 테지만 <붉은서재>의 '차분한 열정'만큼은 꼭 배우고 싶다. 글을 쓰건, 말을 하건 쉽게 흥분해서 제 감정을 못 이기는 성격이라서 박가분의 글을 보고 많은 것은 느꼈다. 따라할 테다. 그래서 나도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가 될테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사교육비를 확실히 줄여주는 책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26 18:1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291648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 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책 기부하자! 참여

[도서]아깝다 학원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저
비아북 | 201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참깨를 직접 기르고 참기름까지 만드는 부부가 있었다. 절대로 참깨 이외에는 다른 것을 섞지 않고, 제조과정에서 생산량을 일부러 늘리려는 수작을 절대로 부리지도 않은 순수한 참기름을 만들겠다고 다짐한 착한 부부였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드디어 <진짜 참기름>을 만들어낸 부부는 기뻐서 얼싸안고 밤새도록 울었단다. 그렇게 대중들에게 선보인 <진짜 참기름>은 어찌 되었을까?

 

  망했다. 그것도 쫄딱 망했다. 소비자들은 <진짜 참기름>과 <가짜 참기름>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대기업에서 만든 절대 순수하지 않은 참기름맛에 길들여진 소비자들에게 진짜 참기름맛은 이상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에 철저히 외면 당했더란다. 자, 여기 <참기름>에 <참공부>를 대입해보시길, 직접적으로 <참사교육>이라고 대입해보아도 상관없다.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진짜 순수한 참사교육맛>을 아는지요?

 

  지금부터 <대한민국 사교육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서 쓸데없이 늘어난 사교육비를 확 줄어줄 수 있다는 이 책을 아주 자세히 요점정리해드립니다. 저 역시 현재 사교육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에 절대공감하며, 진짜 참사교육을 하고픈 제 소박한 욕심에 불을 댕긴 이 책을 빌어서 제 속마음을 까발리려고 합니다.

 

  지금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든 <대한민국 사교육>을 당장 그만두어도 여러분들의 자녀의 성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학교시험대비 전과목 종합학원>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습니다. 당장에 성적이 올라가는 것 같아도 이는 학생 당사자와 부모님들을 눈속임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정말 100% 장삿속으로 속임수를 부리는 것이니 제발 그만 끊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설령 아이들이 스스로 이런 종합학원에 가고 싶다고하더라도 웬만하면 보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면 학원에 공부하러 간다기보다는 홀로 남아 심심할 것이 두려워 놀러다니는 것이 확실하니까요. 물론 간혹 진짜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 학생이 종합학원에 가서 <진짜 공부하는 방법>을 배워와서 열심히 하고 성적도 쑥쑥 오르고, 자기주도학습에 철저한 학생들도 몇몇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아이들은 각각의 학원에 한두 명이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소수일 뿐이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 학원의 임대료와 전기값만 대신 내주러 다니는 꼴이다. 그러니 이참에 속시원히 정리하실 것을 적극 권한다.

 

  그래도 맞벌이 부부에게는 학원에 보내놓으면 아이들을 공부도 시키고, 부모 몰래 나쁜 행동을 일삼지 않을 것이고, 학원은 개별지도도 가능해서 아이들이 철저히 관리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 철저히 수준별로 관리하고 아이들을 성적뿐만 아니라 인성적, 정서적으로 관리해주는 사교육자도 분명히 있다. 그런 사교육자인지 아닌지는 철저히 부모님께서 직접 만나서 상담도 해보시고 꼼꼼히 따져서 고르셔야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서 전화상담만으로 믿고 보낸다든지 입소문만을 믿고 보내면 안심은커녕 사교육자와 학생 사이에 갈등의 골이 생겨 뜻하지 않게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학원도 부모님이 꼼꼼히 따져보시고 고르셔야 제대로 고를 수 있다는 사실.

 

  앞서 종합학원이 나쁜 이유로는 바로 <선행학습>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님들이 <선행학습=예습>이라고 착각하시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예습은 지금 현재 학생의 실력보다 조금 어려운 내용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 <맛보기>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을 말하지 지금 난이도보다 반년, 1년, 심지어 3~4년을 앞서 배우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를 <선행학습>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미리 배워놓았다고 절대로 자기 실력이 되는 것은 아니란다.

 

  여기까지 서술한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의 훈련에 빗대어 설명해본다. 주니어시절부터 탁월한 기량과 안정된 기술을 선보이며 각종 대회를 석권한 김연아였다. 여기에 훌륭한 코치와 안무가를 만나서 각종 시니어 대회까지 섭렵한 뒤에 드디어 <그랑프리 파이널, 세계선수권, 동계올림픽>까지 휩쓸어 사실상 현존하는 피겨여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보통은 뛰어난 선수에게 '프린세스'라고 호칭하던 것을 김연아에게는 더이상의 찬사가 없을 정도로 '퀸', 즉 '여왕'이라 칭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부모치고 자기 아이를 '연아'처럼 키우고 싶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간단한 대입을 한다면, 탁월한 기량과 안정된 기술은 <김연아 선수가 원래 가지고 있던 천부적 재능에 공교육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피겨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피겨사교육에 해당하는 교육은 전무한 상태니까 말이다. 즉, 김연아선수는 마치 공교육만으로 철저히 기초를 닦은 셈이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시스템은 미국대통령(오바마)가 극찬을 하지 않아도 세계적인 수준임에 틀림없다. 물론 다른 문제(입시 따위)가 많아서 그렇지 전세계를 돌아다녀보아도 수준급임에는 틀림없다는 말이다.

 

  그러다 사교육을 만났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데이빗 윌슨 안무가다. 이들의 만남은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그러나 코치와 안무가에게, 다시 말해, 사교육선생에게 <김연아>는 '차려진 밥상'이고 그저 숟가락만 놓아도 충분할 정도로 완성되어 있던 학생이었다. 이들은 김연아가 해오던 것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연아가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물고를 터주는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이다. 모르긴 몰라도 오서 코치와 윌슨 안무가가 김연아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쳤다는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그저 <자기주도학습>을 철저히 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뿐이다. 이 사교육의 결과는 아시다시피 굉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원래 사교육이란 것은 이래야 한다. 기초(공교육 수혜)가 탄탄한 학생에게는 <자기주도학습>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편안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말이다. 가끔 힘들고 지칠 때는 선생이 아닌 인생선배로서 조언을 해주는 것..물론 공교육에서도 가능한 일이지만 개별과외가 아닌 이상에야 일일이 상담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이는 사교육의 몫이 당연하다고 본다.

 

  그런데 김연아와 같은 학생은 정말 몇몇 뿐이다. 대다수의 학생은 기초(공교육)가 모자라서 사교육을 찾는 이들이다. 이런 학생에게는 <자기주도학습>을 학생 스스로에게 맡기기보다는 조금 더 관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연아보다 실력이 조금 떨어지던 아사다 마오같은 학생이라면 <점프의 기본>이 닦여지지 않았으므로 <잘못된 점프 습관>부터 단단히 고쳐야 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본과 기초가 없는 학생일수록 예습보다는 철저히 <보충학습, 복습>위주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학원들은 학생들에게 모자른 기본과 기초를 철저히 닦아주는 <보충, 복습>은커녕 오히려 <선행학습>만을 강요한다. 이는 학원이 철저히 장삿속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거듭 강조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보충, 복습>을 하는 것보다 <선행>을 하는 것이 돈을 벌기 쉽기 때문이다.

 

  학부모에게 상담을 한다고 치자. 학부모는 아이의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학원에 따지러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충, 복습>을 시켜주는 학원이라면 발뺌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철저히 학원의 실수이고, 강사의 자질이 모자라서 학생의 실력을 제대로 진단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행학습>을 하였다면 이런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차피 선행이라면 학생이 아직 그정도 학습실력을 쌓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성적도 나오지 않은 것이고, 이는 전적으로 학생의 잘못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은 것이라는 결과에 도달한다. 여기에 학원관계자는 살짝 부모에게 겁만 주면 학원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제 다시 예습과 선행학습의 차이를 살펴 보자. 김연아가 점프의 교과서라고 할 정도로 기초를 닦기까지 과정을 상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당연히 1회전 점프를 시도하고 성공한 다음에 2회전, 3회전에 도전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으리라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다. 각각의 단계에서 연아도 분명 정체를 느꼈을 것이고, 이 정체를 뛰어넘기 위해 다른 선수들의 점프를 보면서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며 자신의 점프에 접목시키려 노력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바로 <예습>이다.

 

  그런데 <선행학습>은 연아가 겨우 1회전에 성공했을 뿐인데 2회전은 건너뛰고 3회전 점프에 무리하게 도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설령 성공했다손치더라도 그 점프가 과연 탄탄하다고 할 수 있을까? 혹시 아사다 마오처럼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착각의 늪에 빠진 것은 아닐까? 분명 마오는 주니어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지만 잘못된 엣지를 사용하는 바람에 두고두고 점수를 깎아먹기 일쑤였다.

 

  아무튼 예습과 선행학습의 차이는 이렇다. 그럼 과연 연아와 마오의 차이는 예습과 선행학습의 차이였을까? 아니다. 지금의 연아와 마오를 만든 것은 예습도 아니고 선행학습도 아니고 바로 철저한 <보충과 복습> 덕분이었다. 모자른 부분은 충분할 때까지 보충학습하고, 깨달은 개념과 원리는 철저히 복습하여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연아와 마오가 있었던 것이다. 모 광고에서 연아가 점프에서 실패하고 또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뛰는 모습을 보았다면 <보충과 복습>이 <예습과 선행학습>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원에서는 학생마다 실력이 천차만별인 것을 <보충하고 복습시키려>하기 보다는 성적에 대한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 홀가분한 <선행학습>으로 학부모를 현혹시켜서 효과가 전혀 없는데도 돈만 계속 쓰게 만들 뿐이다. 간혹 선행학습의 폐해에 눈을 뜬 학부모에게는 "지금 멈추면 아이 성적은 더 뒤떨어질 뿐이다."라며 협박에 가까운 상담도 일삼으면서 꾸준히 수입을 챙길 뿐이다.

 

  그렇다면 개념이해가 어려운 <수학> 과목 같은 경우에는 선행학습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중학과정과 고등과정을 배울 때 시간이 충분치 못하니 미리미리 배워두면 분명 도움이 될 것도 같은데 말이다. 물론 현행 고등학생들은 고3 때 입시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3년 과정>인 수학교과를 <2년 과정>에 모두 마치고 3학년에 올라가서는 철저히 문제풀이를 반복하여 성적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를 본따서 수학선행을 고교과정은 중학교 때, 중학과정은 초등학교 때 해두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학원의 상술이다.

 

  그러나 <선행학습>을 하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소견이다. 아무리 미리 배워둔다 한들 기초 개념이 형성되기도 전에 미리 배운 내용은 달달 외운 암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최대 3개월 전에 배운 내용만을 기억할 뿐이란다. 그 이상은 아무리 미리 배워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단다. 마치 1층을 다 쌓기도 전에 5층, 6층을 쌓는 것과 마찬가지란 말이다.

 

  같은 근거로 <조기유학>도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또 <언어>의 특성 때문에 모국어가 완성되기 전에 쓸데없이 많은 언어를 주입하면 아이는 모국어가 없는 혼란스런 상태에 빠지기 일쑤이고, 모국어가 완성된 뒤에 천천히 아이가 외국어에 흥미를 느낄 때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으며, 심지어 만학도들도 곧잘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보면 <외국어를 배우는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다시 말해, <조기유학>이나 <조기영어교육> 같은 것도 순전히 학원들의 상술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 <적절한 시기>라는 근거도 알고 보면, <외고>와 같은 명문고, 명문대 진학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부모의 불안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해먹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정말 알면 알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교묘한 상술이다.

 

  정리를 하면, 사교육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사교육은 안 하는 것이 상책이다. 진짜로 공부를 하고 싶다면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사고력을 길러주는 학습, 즉, 독서와 체험과 같이 장래에 자신의 꿈과 진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주는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래도 사교육을 시키고자 한다면 <독서와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사교육을 선택하면 좋다는 말씀이다.

 

  고백을 하자면, 나 역시 많이 모자른 사교육 선생이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면 <독서지도사>라는 이름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독서로 스스로 생각하고, 관심 가는 것에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자부했지만, 이 책을 보면서 많이 찔리는 점을 어쩔 수가 없었다.

 

  먼저, 경제적인 면에서 선생질이 유일한 밥벌이다보니 아직 기초도 쌓여있지 않은 학생들에게 부모님을 만족시켜줄만한 결과물을 보여주려다보니 <자기주도학습>은커녕 선생님 나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나약한 학생을 만드는 짓도 참 많이 하였고, 단기간에는 절대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는 아이인 것을 뻔히 알면서 부모님과 상담을 하면서 만들어주겠다고 거짓부렁을 얘기하기도 하였으며, 학생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과제를 내주면서 '이건 순전히 내 책임만은 아니야'라고 자기합리화를 시켰던 적도 있었다. 물론 그런 나쁜 마음을 먹고서 가르쳤던 학생들은 얼마 안가 그만 두는 바람에 경제적 보탬도 되지 못한 채 '나는 나쁜 선생이 되었고, 그 학생은 상처만 받았구나'라며 후회하기 일쑤였다.

 

  다음은 교육적인 면에서 나는 과연 학생들에게 수업을 하기에 앞서 철저히 준비하는 선생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천성이 게으르고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는 버릇 때문에 그저그저 겨우겨우 닥친 일만 해결하기에 급급한 선생이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진정한 참사교육 선생>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뿐이다. 즉, 나쁜 사교육은 무엇이고, 좋은 사교육은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내 주변에도 정말 열심인 사교육 선생님들이 많다. 늘 그 분들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데,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언제 혼자 마음 먹은대로 되지는 않더라...그저 과제만 많이 내달라는 막무가내형 어머님, "그저 책이라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라면서 시작한 수업인데 나중에는 "우리 아이 성적이 왜 안 올라가는 거죠?"라는 돌변형 어머님, 아이들의 하루일정을 꼼꼼히 챙기며 손발놀림(일거수일투족)까지 참견하는 감시형 어머님 등등 상담을 하면 할수록 <참선생>이 되겠다는 신념은 멀찌감치 버려버리고 그저 어머님들의 욕구만 잘 눈가림해도 돈 벌어먹기 참 쉽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이런 어머님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할 테다. 사교육의 상술에 넘어가 엄청난 사교육비로 가정경제가 휘청거리게 하지 마시라고 말이다. 비록 내가 하는 수업을 가장 먼저 끊어버린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나눔, 받는 사람의 표정을 보고서야 비로소 느끼는 따뜻함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21 19:23
http://blog.yes24.com/document/289699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 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책 기부하자! 참여

[도서]나눔동화 1

박경아 저/한호진 그림
문공사 | 2005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나눔>은 그 자체로 참 아름답다. 나눔을 실천하기에는 아직도 욕심이 많은 편이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것 가운데 <넘치는 것>을 덜어 주고, 내 것 가운데 <남는 것>을 나누어 주고, 그리고 이미 내 것이 된 몫 가운데 <조금쯤> 떼어내어 남을 돕는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주 천천히 깨달아 가는 중이다. 나는 말이다.

 

  이 책 속에는 나눔의 세 가지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방법이다. 자기가 가진 <재산>을 나누어 주는 방법 말이다. 이런 방법은 너무 쉬운 나머지 나눔을 실천하더라도 크게 감동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편이고, 아직은 남들 못지 않게 살지 못하여서 좀 더 <부자>가 된 다음에 돕겠다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재산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바로 <자기가 버는 돈의 1%를 기부>하는 방법 말이다. 어느 종교단체에서는 이를 <십일조>라고도 하던가?

 

  둘은 요즘 한참 관심을 받고 있는 <재능나눔>이다. 요즘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재능(탤런트)을 살려서 공연을 하고 받은 수익금으로 나눔을 실천하기도 하는데, 굳이 이렇게 멋진 재능일 필요는 없다. 책 속에서는 매 주마다 온가족이 배운 <미용사 기술>로 이들의 손길이 필요한 마을로 가서 머리를 만져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누구나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도 얼마든지 남을 도울 수 있다.

 

  셋은 재산이 넉넉치 못해도, 딱히 별다른 재능이 없어도 건강하기만 하다면 할 수 있는 <노동나눔>이다. 노동나눔하면 농활이나 겨울철에 불우이웃에게 연탄배달하는 모습이 상상되곤 하는데, 이 책에서는 쓰레기장으로 바뀐 마을빈터를 아름다눈 꽃밭으로 가꾼 할머니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요즘에 지정된 곳도 아닌데 쓰레기를 불법으로 투기해서 지저분해진 곳이 많은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 좋은 방법이 떠오를 법도 하다. 얘기인 즉슨, CCTV로 감시하여 적발하겠다는 험한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예쁘고 아름다운 곳으로 가꾸면 사람들이 절로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하긴 얼마전에 <1박2일>에 나왔던 '천사날개'그림에 온갖 낙서가 그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이 방법도 특효처방은 되지 못하겠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훈훈한 감동을 전해주는 이야기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라 믿는다.

 

  그런데 2% 모자란다. 책이 주는 감동은 <짜장(진짜)>인데, 이를 전해주는 이야기는 <짜장>이 아니기 때문일까? 차라리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을 생생히 전해주었으면 더욱 깊은 뜻을 담을 수도 있었을 것을. 그렇지 못하고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로 꾸미는 바람에, 아니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이기에 순수한 그 모습 그대로를 전달해주었다면 더욱 좋았을 터인데..살짝 아쉬움이 느껴진다. 마치 곱다시한 여고생에게 스모키화장(?)을 두텁게 발라 순수한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어색한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동화> 형식으로 꾸미다보니 <나눔의 현장>을 생생히 살리기보다는 <나눔의 기쁨>을 극대화시키려다보니 살짝 어색해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 사실은 [책나눔 행사]를 하다보니 실제로 책(재산)을 나누어주려는 마음은 쉽게 결정한 반면, 보내드릴 주소를 모으는 과정이라든지, 직접 보내는 작업을 하는 것이 여간 까다롭고 번거로울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행사를 하면 바로바로 책도 깔끔하게 포장해서 정확한 주소로 착착 보내드려 받으시는 분들이 "어머나~"를 연발하게 하여서 <멋진 나눔>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실상은 바리바리 책을 싸들고서..우체국까지 직접 들고..하나하나 포장을 하고..또 일일이 주소를 적고..각각 무게를 달고..우편요금을 지불하기까지..어디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역시 <초보나눔>인 걸 팍팍 티를 내고서야 홀로 파김치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서 하나를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카드를 긁는 것이라는 걸.>

 

  <나눔의 기쁨>은 나누어 주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감정이다. 또 나누는 행위 자체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받는 사람의 표정>을 보고서야 비로소 느껴지는 감정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택배라는 아주 편리한 방법으로 나눔을 행한 나는 그 진정한 따뜻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다음엔 직접 만나서 책을 나누어주는 행사를 해볼 참이다. 그 따뜻함을 느껴보고 싶어서.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그녀들에게 절실한 것은 따뜻한 관심이다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13 00:59
http://blog.yes24.com/document/2862542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 쓰고 어려운 이웃에게 책 기부하자! 참여

[도서]오합지졸 배구단 사자어금니

강민경 글/신민재 그림
파란자전거 | 2009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우리 나라는 단일민족국가일까? 나는 중등교육시절 국사선생님에게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곧 의문을 품었다. 우리 나라는 지정학적으로 <교량 역할>을 했다고 같은 선생님에게 들었을 때다. 대륙의 힘이 셀 때는 대륙문화를 받아들이는, 해양의 힘이 셀 때는 해양문화를 받아들이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문화 교류>도 활발하고, <외세의 침략>도 참 많이 받았다고 들었을 때 말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섞일>텐데..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섞일텐데...그런데도 우리 나라는 <순수성>을 잃지 않았기에 더욱 위대한 민족이라고 선생님은 강변하셨다. 국사선생님은 여자선생님이셨는데도 어찌나 열변을 토하시던지...

 

  그때부터 의문을 품었던지라 요즘 들어 <다문화시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깊이 공감하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우리 나라에서도 <외국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 그들과 혼인을 하여 <다문화가정>을 이루기도 하고,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인>이 되고자 귀화를 하는 외국인도 점점 늘고 있는 추세란다. 또 외국인노동자는 불법체류자까지 포함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서 머물고 있는 셈이다. 이른바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일자리를 찾아서 온 사람들이다.

 

  까닭을 따질 것도 없이 이들 모두는 충분히 <한국인>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아직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곧 떠나거나 쫓겨나야 할 사람일지라도 그들은 <대한민국의 장점>에 반해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시선은 그들이 짐작하던 따뜻한 시선이 아니라 따가운 시선일 따름이다. 왜 그럴까? 어쩌면 <단일민족의 신화>가 그들에게 텃세를 부리게 된 까닭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텃세는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다분히 한쪽으로 치우쳤다. 부유한 백인이 <한국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와 가난한 흑인과 황인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분명히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절대로 <자랑스런 한국인>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 내세울 수 없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 책은 <외국인 며느리>가 아니라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인이 되고자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다시 말해, 요즘 <다문화가정>에서 겪는 온갖 힘겨운 상황들만을 모아서 한 편의 이야기로 엮은, 어찌 보면 가슴 아프고 짐짓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이야기다.

 

  자기보다 열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베트남 여자를 엄마로 인정할 수 없는 소년, 준수가 외국인에 대한 편견 가득한 시선을 가졌었는데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까닭없는 미움>을 거둬들이고, <주위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상처받고, 이를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글쓴이는 주인공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깨고 <남>이 아닌 <우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책에는 여러 나라에서 우리 나라 남성과 결혼한 <외국인 며느리>들이 <배구단>을 만들어서 친목도 다지며, 알게 모르게 받은 멸시와 괄시를 <배구>를 통해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배구단에는 일본에서 시집온 마사코, 베트남에서 시집온 레티와 메이언, 몽골에서 시집은 짱이, 카자흐스탄에서 시집온 보랏, 그리고 필리핀에서 팔려온(?) 마라테스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에 온 며느리들이 함께 있다. 물론 이 책의 중심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들이기도 하다.

 

  이 <외국인 며느리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레티는 준수의 엄마를 대신해서 준수아버지가 서둘러 재혼한 베트남 여성이다. 한국말도 설고, 한국문화도 설어서 힘든데, 준수는 노골적으로 레티를 엄마로 인정하지도 않고 말썽을 부린다. 이런 레티와 동향사람인 메이언은 레티의 힘겨운 삶을 달래주는데 레티에게 배구단을 소개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메이언은 위암3기다.

 

  마사코는 일본인이라는 까닭만으로 잘못된 반일감정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모자라 자신의 아들과 딸까지 <튀기>라며 <쪽발이>, <왜놈>이라는 놀림을 받아서 힘들다. 몽골에서 혈혈단신으로 남편만을 사랑해서 한국에 왔는데 그만,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카자흐스탄에서 시집온 보랏은 어떤 일에도 당차고 열심인데도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까닭만으로 온갖 편견에 시달려서 힘들다. 그리고 마라테스는 한국인 남편이 가난한 형편에도 큰돈을 내고 사왔는데도 아이도 낳지 못하고 집안일과 힘든 농사일도 잘 못한다고 흠씬 맞고 산다.

 

  더이상은 책 내용을 언급하지 못하겠다.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살짝 울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단 말이다. 그렇지만 눈물을 떨꾸진 못했다. 그녀들의 힘겨움을 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국제결혼이나 귀화, 그리고 외국인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대한민국에는 50만 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물론 현재다. 남쪽만 따져보아 총인구가 5천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무려 온국민 가운데 1%를 차지한 셈이다. 이는 우리 나라도 아주 빠른 속도로 <다문화사회>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편 <다문화사회>의 대표나라인 미국사회를 살짝 엿보면 소수민족의 숫자가 전체인구의 1%를 넘어서면 미국사회에 그 민족의 문화가 섞이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예를 들면, 차이나타운이나 코리아타운과 같은 그 나라의 문화를 미국사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펼치며 살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아직까진 우리 나라에서 하나의 민족이 전체인구의 1%를 차지하지는 못하고, 모든 외국인의 수를 헤아려야 겨우 1%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큰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생긴지 오래 되었고, 곳곳에 화교들이 모여사는 마을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안산에는 외국인노동자들의 임시숙소가 있어서 그곳 주민들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무튼 이제 우리 나라도 <다문화시대>를 맞아 변화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요즘 TV를 장식하는 공익캠페인 가운데 <다문화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밉게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둬야 한다는 내용이 참 많다. 맞는 말이다. <다름은 차이일 뿐, 차별의 까닭>이 될 수는 없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충분히 배웠다. 그런데도 이게 한순간에 쉽게 바꿀 수 없다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 가운데 <단일민족의 신화>가 정말 뿌리 깊히 박혀 있어서 더욱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바로 이 점이 부끄럽다는 말이다.

 

  온누리 어디를 둘러봐도 <대한민국>처럼 가난과 아픔을 딪고 <빠른 경제성장과 빠르게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는 없다. 그래서 참 자랑스럽다고도 하는데, 어째서 <멋진 나라>는 빠르게 될 수 없었느냔 말이다. <무엇>이 모자라서. 이 책을 읽어보니 <다름>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녹여내는 힘이 무척 모자라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단일민족이란 환상을 심어서 <우리끼리>는 참 잘도 힘을 모았는데, 여러 문화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단점도 장점으로 되살려 더 큰힘을 모으는데 쓰지를 못했느냔 말이냐. 이는 <또 다른 쇄국>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 정도다.

 

  또 글이 길었다. 요즘에 쓰는 리뷰는 온통 열받음투성이다. 날은 추워지는데 옆구리가 시려서 일 것이다. 가슴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만지는데 이는 사랑으로 방출하지 못하니 자꾸 열만 내는 것 같다. 여러분~저...관심받고 싶어요T ^T) 이 땅에 모든 외국인 며느리..아니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려는 그녀들처럼.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6)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나는 우리말글살이를 아끼고 가꾸는 일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12 01:16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285810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2010년 총결산 - 내가 뽑은 최고의 책 참여

[도서]사쿠라 훈민정음

이윤옥 저
인물과사상사 | 201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일제식민 36년 동안 <우리말> 속에 침투한 일본어찌꺼기는 해방 65년을 맞이한 요즘에도 널리널리 쓰이고 있다. 말(언어)이라는 것이 <사회적 약속>인지라 억지로 쓰게 하고 싶다고 해서 널리 쓰이고, 널리 쓰지 못하게 한다고 억지로 쓰지 못하게 할 수 없기에 우리말 속에 침투한 일본말투를 하루 아침에 솎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말 속에 <침투>한 일본말투는 솎아내야만 한다. 물론 이웃한 나라의 말이 사람들의 이동에 따라 서로 섞이기 마련이고, 이런 과정이 오랜 시간을 거침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리말이 이웃나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고, 또는 이웃나라의 말이 우리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본말은 이렇게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서 우리말에 들어오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실히 솎아낼 <필요성>이 있는 게다.

 

  일제는 우리 나라를 침탈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민족말살>을 꾀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말, 우리글>을 쓰지 못하게 막아 끝내 <우리얼>마저 송두리채 빼앗아 <일본스러운 것들>로 바꾸려 하였다. 이런 못된 생각과 뜻으로 얼룩진 <일본말투>를 여지껏 뿌리 뽑지는 못할망정 되려 우리말인줄로 착각하면서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쓰메끼리(손톱깎기)니, 소데나시(민소매)니, 와리바시(나무젓가락), 요지(이쑤시개), 다데기(양념장), 오뎅(어묵) 등과 같은 일상적인 일본말부터 서정쇄신, 땡깡, 수우미양가, 정로환, 부락, 참배 같은 말들은 정말 뿌리 뽑아야 겠다. 책을 읽지 않은 분들도 꼭 알고서 쓰지 말아야 할 이런 일본말을 좀 뜯어 보자. 그냥 쓰지말라고 하는 것보다 왜 쓰면 안 되는지 알아야 확실히 뜯어 고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먼저 <서정쇄신>이란 말은 국어사전에 '정사를 처리함에 나쁜 폐단을 없애고, 그 면목을 새롭게 함'이라고 풀이하였는데, 이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대신해서 식민통치를 하던 때에 <일본인이 조선인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조선총독이 쓰던 말이었다. 이런 말을 새해 첫 날이 되면 대통령담화라는 내용에, 심지어 교장선생님의 훈화에서도 종종 들을 수 있다는 말에 깜딱 놀라고 말았다. 더구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참뜻도 모르고 그저 좋은 뜻으로만 알고 고개를 끄덕였으니 참으로 원통하고 분할 뿐이다.

 

  여기에 <땡깡>이란 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리말로는 <간진발작>이란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귀엽게 앙탈부리거나 칭얼거릴 때, 또 투정부릴 때 <간질발작 일으키지마!>라는 뜻으로 <땡깡 부리지마!>라고 흔히 쓰니 문제라는 말이다.

 

  또 <수우미양가>라는 것도 사무라이가 적의 수급을 베어온 성적(?)에 따라 많이 베어오면 '빼어남', '우수함', '양호함', '이 정도면 좋음'이란 뜻으로 쓰였단다. 이런 평가법에 우리 나라에서는 '아름다움'을 덧붙여서 아이들 성적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지금까지 쓰고 있단다. 80점 이상을 받아 빼어나고 우수한 것은 이해가 가도, 겨우 70점을 받고서 아름다울 것이 무언가 말이다. 60점이면 양호하고, 50점 정도면 좋다고 평가하는 방법이 가당키나 한가?

 

  <정로환>이라는 약을 아실테다. 배탈, 설사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좋은 약인데, 일제시대 때 배앓이로 고생하는 일본군을 위해 만들어서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지는 약이다. 한자로 쓰면 <征露丸>이고, 뜻을 풀면 <러시아를 정벌한 알약>이다. 지금은 러시아의 항의로 이름을 <正>을 쓴 '정로환'이라 쓴다지만 어디까지나 일본의 얘기고 우리 나라에서도 <정로환>이라 불릴 까닭이 없잖은가 말이다. 더구나 요즘엔 우리 기술로 더욱 탁월한 효능을 뽐내는 알약을 만들었단다. 그런데도 이런 이웃나라에게 흉측한 이름까지 베껴올 필요가 있을까? 하루 빨리 고치자는 글쓴이의 주장에 정말 공감한다.

 

  <부락>은 과거 일본에서 최하층민이 살던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마치 현재 인도에 살고 있다는 '불가촉천민'쯤 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나 다른 마을과 전혀 왕래하지 않는 마을을 가리키는 낱말이란다. 설령 우리 역사 속에서도 그런 '천민마을'이 있었다손치더라도 굳이 남의 말을 빌려서 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더구나 좋은 뜻의 말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오늘날 <부락>이란 말은 나쁜 뜻은 사라지고 마치 추억을 가득 담은 듯 '시인'들이 아름다워야할 '시어'로 종종 쓴다고 하던데...참 씁쓸할 따름이다.

 

  <참배>라는 말은 '신사참배'의 줄임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인데, 국립묘지에서 독립운동가나 국가유공자의 넋을 기릴 때도 <참배>한다고 말하고, 민주화에 앞장선 열사에게도 <참배>한다고 종종 말한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테다. 우리 국민에게 치욕스런 낱말을 오늘날 뜻을 왜곡해서 국민들을 우롱하려는 세력이 아니고서야 적절한 우리말로 반드시 순화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아주 조금 책의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먼저 우리말 속에 침투한 일본말들을 솎아내려는 글쓴이의 목적이 엿보이는 책이다. 그 다음 목적으로 일본말을 대신해 쓸 수 있는 우리말이 있을 경우에는 우리말을 살려 쓰고, 대신할 우리말이 없을 경우에는 새롭게 만들어서 쓰며, 새롭게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면 쓰되 적확한 뜻을 밝혀 잘못 쓰이는 일이 없게 하려는 목적이 엿보인다.

 

  물론 <외래어>도 분명 우리말임에 틀림없다. '야구글러브'는 '야구장갑'으로 바꿔서 쓸 수 있다. 그러나 '버스'나 '컴퓨터'처럼 애초에 우리에게 없던 것을 우리의 편의에 따라 들여온 것이라면 '그것'을 가리키는 말까지 들여서 쓸 수 있다. 이것게 굳어진 표현이 우리말에 녹아들면 더이상 '그것'은 <외국어>가 아니라 <외래어>인 것이다. 쉽게 말해, <외국어>는 우리말로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데도 우리가 즐겨 쓰는 말이고, <외래어>는 우리말로 달리 나타낼 수가 없어서 우리것으로 녹여낸 말이다.

 

  그러나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일본말>은 우리가 스스로 바라서 들여온 말이 아니라 우리얼을 없애고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고 강제로 들여온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걸러줘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적 약속>이란 한둘의 노력이나 소수의 억지로 바꿀 수 없는 것이기에 현재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을 다른 무엇으로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말은 서럽다>는 책에 보면 이런 어려움을 엿볼 수 있는 말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먹거리>라는 말이다. <이야기거리>, <웃음거리>와 같이 '무엇'의 재료가 될 때 쓰는 '거리'를 붙여 <먹을 것>에 '거리'를 붙여 <먹을거리>. 이를 좀더 느낌이 확 살아나게 <먹거리>라는 말로 바꿔 썼다. 그래서 한참을 잘 써먹었는데...결론만 말해서, <국립국어원>에서 딴지를 걸어 <먹거리>는 그른 표현이고, <먹을거리>만이 옳은 표현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 뒤로 <먹거리>는 물론이고 <먹을거리>라는 표현도 쓰지 않게 되어 요즘에는 <푸드>라는 말이 더 널리 쓰이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째 우습지 않은가? 없던 말을 우리말로 살려 잘 쓰도록 가꾸지는 못할망정 애꿎게도 딴지를 걸어 초를 친 셈이다. 우리말에 섞인 한자말(중국말)과 일본말, 그리고 미국말을 쓰지 말고 오로지 우리말만 살려서 쓰자는 얘기가 아니다. 온누리말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뜻으로 만들어졌다는 우리말을 우리가 아끼지 않고 홀대한다면 누가 아끼겠는가 말이다.

 

  이 책에 있는 말만 고치면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은 그저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남탓을 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을 읽고 <공감>한다면 그저 나부터 고치고 참뜻을 살려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면 그뿐이다.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이 쓰고 고치려하면 언젠가는...언젠가는...온누리에 우뚝 선 자랑스런 한글을 만나게 될 것이다.

 

  비록 만들어질 때부터 반기지 못하고 오랫동안 함부로 다뤄지다가 백성들이 먼저 그 편리함과 그 우수성을 깨닫고 널리 쓰려했으나, 당시 지식인들의 철저하게 외면을 받아 <학문>이나 <학술>을 하는 말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아픈 마음과 솔직하고 무구한 생각을 담아주었던 우리말과 우리글이었다.

 

  또 그나마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을 겪고 나서야 정신차린 지식인들에 의해서 갈고 닦여서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한 때 일제의 군홧발에 짖밟히면서도 꿋꿋하게 이어져 오던 우리말과 글이 이제야 온누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 빛을 찬란히 밝힐 날을 기다릴 뿐인데, 아직도 한쪽에서는 이를 애써 외면하고 <세계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또다시 우리말글살이에 먹칠을 하려 하는 요즘이다.

 

  살짝 열이 받았나보다. 아무쪼록 나는 우리말글살이를 함에 있어 온누리 어디에 가서도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그날을 꿈꿀 따름이다. '샌드위치'를 미국본토발음으로 하지 못해 미국에서 빵쪼가리 하나 먹을 수 없어서 굶었다는 되지도 않는 우스개소리를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할 따름이다. 영어몰입교육? 영어는 우리가 필요해서 배우는 외국어일 뿐이지 아름다운 우리말글살이를 해치면서까지, 엄마말(모국어)을 하기에 앞서 선행학습해야할 말글이 아니다.

 

  정규교육 12년을 배우고도 한마디도 못할 정도로 영어가 어려운 말일까? 지금도 충분히 온국민이 영어몰입교육을 하는 환경이 갖춰졌다. 그런데도 못하는 까닭은...말을 글로 배우려는 촌극(?)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영어문법시험>만 초중고등학교에서 없애버리고 그냥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본질적인 언어교육>을 하기만 하면 저절로 영어를 잘 하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엄마말>과 우리 전통과 문화부터 충분히 익힌 다음에 10살~14살 때부터 영어를 접하며 배워도 늦지 않다고 본다. 영어유치원? 내가 가르쳤던 국제초등학교 1학년은 영어와 중국어로 수업을 듣고 있는데, 영어로 부르는 노래는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고, 중국어는 그저 낱말을 말하는 수준이다. 다른 나라말 못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큰 문제는 이 아이가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우리글(받아쓰기)조차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에구...책과는 상관도 없는 말을 너무 길게 했지만 쓴 글이 아까워 지우지는 못하겠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외로울 땐...가족만큼 편한 구두를 신어볼까? | 2010년에 쓴 리뷰들 2010-12-05 16:35
http://blog.yes24.com/document/283425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저/전은경 역
뮤진트리 | 2010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한 남자가 섬에 산다. 결혼도 했다. 하지만 아내도 자식도 없이 혼자 산다. 아내는 오래 전에 죽었고, 둘 사이에서 자식은 없었다. 한때는 잘 나가던 의사였지만 지금은 은퇴하고 이렇게 외딴섬에서 홀로 지낸다. 아니 완전하게 홀로 지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늙은 것만큼이나 늙어버린 개와 고양이와 함께 산다.

 

  이 섬에 찾아오는 이라고는 의사에서 은퇴해버린 주인공을 주치의라고 일방적으로 여겨버리는 살짝 무뢰하기짝이 없는 우편배달부 뿐이다. 외부와는 달리 연락할 까닭조차 없이 홀로 사는 남자이기에 찾아올 이도 없고, 편지도 보내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뻔질나게 찾아오며 일방적으로 말벗이라도 해주니 고맙지 않냐고 소탈하게 웃을 때는 얄미울 정도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아픈 곳이 있으면 큰 병은 아니냐며 집요하게 물어보며 진료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통에 귀찮을 지경이다. 그래도 남자는 이런 그가 떠나고 나면 자기 삶을 평화롭게 해주는 적막함이 찾아오기 때문에 잠시만 참으면 그 뿐이다.

 

  이런 그에게 40여 년 전에 떠났던 애인이 찾아왔다. 그녀가 떠난 게 아니라 자기가 떠나버려서 다시 찾아오기도 민망하여서 찾지 않고 있었는데, 그녀가 남자를 찾아왔다. 고칠 수 없는 병이 든 몸으로 헤어지기 전에 남자가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한 <연못>이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며 함께 가자고 한다. 남자의 <평화>롭던 삶에 금이 생겼다.

 

  그녀와 남자는 연못으로 향하고 연못에 도착해서는 돌아오던 길에 그녀는 딸을 만나러 가자고 한다. 남자는 직감한다. 그녀와 자기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라는 것을. 직감은 사실로 확인되고 남자는 그녀에게 가볍게 책망하듯 물어본다. 왜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냐고. 만약 그랬다면 내 삶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고. <무엇이>...

 

  남자는 갑자기 찾아온 그녀와 딸을 잠시 떠나 자신이 섬에 갇히듯 살게 된 <이유>를 찾아가려 한다. 그 이유는 실수였다. 그러나 남자는 의사였고, 의사의 실수는 또 다른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남자는 그 실수로 한 여자의 삶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았다. 유망한 수영선수의 멀쩡한 팔을 절단하였다...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남자는 자신이 분명히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용서 받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섬에 갇히듯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듯 했다. 물론 온전히 그것 때문에 섬에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남자가 찾아간 <실수>는 새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의 아픈 과거로 방황도 했고 각종 신(神)도 찾아다녔지만 결국 봉사하는 삶만이 자신의 아픔을 달래준다는 사실을 깨우치고서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 실수는 남자를 무덤덤히 맞이한다. 용서? 그건 이미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유통기한이 지나고 지나 이미 폐기처분된 감정이었다. 실수는 새 삶에 만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살짝 의아해한다. 자신의 예상밖의 상황에...

 

  남자는 홀로 섬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무엇>인가 달라졌다. 남자의 삶에는 다시 여자가 생겼다. 아내처럼 살았던 옛 연인이 다시 찾아왔고, 생전에는 없을 것으로만 알았던 딸이 생겼으며, 실수로 간직되어 마음의 짐이 되었던 여자도 이젠 더이상 짐이 아니었다. 그리고...또 한 여자가 찾아와 남자에게 <죽음>을 선물하였다.

 

  그 죽음을 선물한 여자는 실수가 데리고 있던 여자아이였다. 남자와 첫만남 때부터 일본도를 들이밀며 위협을 하던 여자였다. 이 얘긴 빼자. <죽음>은 그 이후로 계속 이어지니...난 죽음을 태연히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젊은 나이다. 너무...

 

  이 책은 외롭다. 한 남자가 섬에 홀로 산다는 것도 외롭고, 남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가 옛 연인을 찾아와 오래된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도 외롭고, 평생 자식이라고는 없는 줄 알고 지내다가 그 딸이 훌쩍 커버리고서야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상황 자체가 엄청 외롭다. 갓난아기 때 기저귀를 갈아본 적도 없고, 배냇짓하는 것도, 어리광을 피는 모습도 남자의 기억 속에선 없다. 이 모든 것이 남자를 외롭게 하고, 독자들도 외롭게 한다. 적어도 나는 너무 외롭게 읽었다.

 

  산다는 게 그렇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래도 외롭고 싶지 않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싸우는 나날들이라고 할지라도 안 싸우는 나날들만 가득한 밋밋한 삶은 더이상 노땡큐다. 그렇지만 살다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외로움에 휩싸여 살아갈 때가 있다. 그럴 때 순간순간 찾아오는 <무엇>이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는 시작이 된다.

 

  이 남자가 사는 집 방 한켠에는 <개미집>이 있다. 집 안에 개미집이 자라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아스럽지만, 이 개미집이 그 남자의 <외로움>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개미집을 치우는 날이 바로 외로움을 떨쳐버리는 날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상징을 언급하자면, 바로 제목이다. 제목이 <이탈리아 구두>인데, 도대체가 이 책에서는 구두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다. 그래도 찾아본다면 이 남자의 아버지가 늘 하던 말 가운데, '식당을 평가하는 방법 가운데 웨이터의 구두를 살펴본다'는 것이나, 그 남자의 딸이 '굽이 높고 빨간 하이힐을 고집한다'는 것,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 와서야 도착한 1년 전에 주문했던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한땀 수을 놓듯 정성을 들인 수제 구두>의 등장이 전부이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홀로 살아가는 삶이라면 구두를 <멋지게> 신을 필요도 없고 <깨끗하게> 닦을 필요도 없다. 그저 <편한> 슬리퍼나 운동화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구두>가 등장하는 까닭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데 <척도>가 되기 때문일 게다. 아버지의 구두처럼 구두는 사람이나 장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도 하며, 딸의 구두처럼 사람이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 필요한 고집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맞춤 구두>처럼 편한 구두를 신었을 때만큼 만족스러운 삶은 없다. 이 구두를 남자에게 선물한 이들은 바로 그녀와 딸이었다는 것이 편한 구두을 선물한 의미를 더욱 증폭시킨다. 이 세상에서 가족만큼 편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그런 편한 구두를 삶의 끝자락에 와서야 신을 수 있다는 것이 외롭고, 비록 끝자락이지만 신을 수 있다는 것이 삶의 또 다른 행복으로 느껴졌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5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인간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