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책 읽어주는 선생님...[책이 있는 구석방]
http://blog.yes24.com/zizi0908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異之我...또 다른 나
이 세상 어디를 싸돌아다녀봐도 가득 쌓인 책방 한 구석 만한 곳이 없더라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1월 스타지수 : 별15,937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나의 리뷰
Wish List
My Story
나의 리뷰어 도전기
이벤트 및 우수리뷰 선정
개편독서습관
독서습관캠페인
새벽/야밤 독서
이달의 필독서
異之我...또 다른 나
어떤 직업이 있나요?
마르크스를 읽다
이이화의 역사를 읽다
세더잘 교양을 읽다
동화책을 읽다
듄을 읽다
리뷰어클럽을 읽다
한빛비즈를 읽다
인간사랑을 읽다
나의 리뷰
2021년에 쓴 리뷰들
2020년에 쓴 리뷰들
2019년에 쓴 리뷰들
2018년에 쓴 리뷰들
2017년에 쓴 리뷰들
2016년에 쓴 리뷰들
2015년에 쓴 리뷰들
2014년에 쓴 리뷰들
2013년에 쓴 리뷰들
2012년에 쓴 리뷰들
2011년에 쓴 리뷰들
2010년에 쓴 리뷰들
2009년에 쓴 리뷰들
2008년에 쓴 리뷰들
2007년에 쓴 리뷰들
2006년에 쓴 리뷰들
2005년에 쓴 리뷰들
2004년에 쓴 리뷰들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읽거나 까무러치거나
어떤 직업이 있나요?
™구석방 토론회
역사 / 과학
태그
이제좀여유가생겼구만 더넓은세상을경험해야지 겁나안읽힘 검술연습 방어막 베네게세리트 아트레이데스 하코넨 백신접종 이상증세
2021 / 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최근 댓글
오래전에 읽었던 지킬앤 하이드는 정말.. 
지킬박사와 하이드 재미있죠. 선과 악.. 
간만에 우수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 
이지아님, 이번 주의 우수 리뷰어로 .. 
축하합니다. 우수 리뷰어로 선정되신 .. 
오늘 277 | 전체 755864
2005-07-18 개설

2005년에 쓴 리뷰들
진정한 학문의 문턱을 기웃거리는 이에게...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12-18 13:50
http://blog.yes24.com/document/8369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스무 살에 선택하는 학문의 길

정운찬, 김용준 등저
아카넷 | 2005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간단하게 책소개부터 하자면, (분과)대학을 지망하는 학생들들이 자신이 선택한 혹은 전공한 학과를 재조명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살필 수 있는 안내서다. 대학은 청춘을 불사를 공간이며 담론의 전당이므로 학문을 탐구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무 살에 선택하는 학문의 길>이란 제목은 이 책에 딱 어울린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안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문에서도 밝히듯 학문에 뜻을 둔 이상 학문에 매진하길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도대체 학문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있는가...이런 당연한 질문을 친절히 설명해준다. 적어도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만큼은 제대로 배우고 익히고 활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늦은 나이에 학문의 길을 걷고 있는 나로서는 참 유익한 책이다. 더구나 하나의 과목을 전공하기보다 모든 학문을 섭렵하고픈 내 욕심에 딱 맞는 책이다. 고등학교부터 이과(화학, 지학)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난 그 쪽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성적이 형편없어 듣도 못한 산업안전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나마 화공이란 과목이 담겨 있어 그런대로 재미있게 강의를 들었지만, 다른 과목은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결과는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20대 초중반을 방황으로 보냈다.

과학(화학, 지질학, 천문학) 이외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난, 역사로 눈을 돌렸다. 그 곳에서 내 길을 찾았던 것이다. 역사는 내가 관심 많던 과학도 언급하면서 더욱 폭넓은 세계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른바 학문으로서 첫 걸음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내 나이 하나 모자른 서른. 대한민국의 삼십대에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넓지 않다. 그러나 2002년은 나에게 기폭제가 되었다.

나도 할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을 항상 머리속에서 되뇌었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독서이력은 해가 거듭될 수록 늘어가기 시작했다. 첫 해 80권, 둘 째번 해 120권, 올해 목표 150권을 넘어 172권째다. 그러면서 내가 평생을 업으로 삼을 만한 것도 찾았다. 독서지도가 그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배우는 학문의 길은 즐겁다.

만약 누가 나에게 성적올리기가 아닌 배움의 즐거움을 좀더 일찍 가르쳐 주었다면, 아니 내 스스로 학문의 길이 이토록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역사에서 '만약'은 금물이라지만, 이만큼 즐거운 상상이 어디있을까...난 이제 내 길을 찾았다. 난 이제 내가 찾은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을 찾아 새로운 길을 밝혀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쭉 이 길을 밝히는 등대지기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꾸준히 나를 갈고 닦고, 내 지성의 예리함을 잃지 않게, 내 이성의 밝음이 흐려지지 않게 할 것이다. 그리고 <학문의 길>이 인도하는 그 곳을 바란다.

이 책이 모든 것을 다 밝혀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정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스무 살..진정한 학문과 담론의 장을 엿보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사랑은 진리탐구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11-14 12:45
http://blog.yes24.com/document/33588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저/정영목 역
청미래 | 2002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바로 연애의 시작과 끝마무리까지의 여정을 지은이가, 개인적인 경험으로 썼는지, 지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찌되었든, '쓴' 소설입니다. 읽어보시면 이 사람 참 사랑 어렵고도 복잡하게 한다고 느끼실 겝니다. 거참~ 사랑하는 데 이렇게 생각이 많아서야 어디 해먹겠어...제가 읽어본 느낌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사랑이야기와 중간중간 이어지는 또 하나가 바로 진리탐구입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지금껏 수많은 철학자가 연구했고, 전문가, 비전문가를 포함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진리를 탐구하고, 추구하고, 밝혀내길 원하고 있지요. 우리가 유치원부터 늙어죽을 때까지 하는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진리을 밝혀내는 것 아니겠습니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란 말의 의미부터 명확히 해야겠지요. <眞理>...바른 이치라는 사전적 의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란 말을 그대로 해석해보자구요. 진리. 쉽게 말하면 진짜 이론. 즉,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 누구나 인정하고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이 바로 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잖습니까. 그러면 진리를 탐구하면 뭐가 좋길래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일까요?

돈벌기 위해서? 물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리를 발견하면 돈방석에 앉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탐구하는 모든 이가 돈방석에 앉기 위해서 공부하진 않죠. 위대해지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이것도 아닐겁니다. 왜 공부하는 것이죠? 공부하면 뭐가 그렇게 좋길래?

실제로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던 저명한 학자(내가 얘기했다고 하면 믿지 않을 테니까^^a)가 공부하면 좋아지는 것 딱 한가지를 발견했답니다. 다름아닌 <시야가 넓어진다>랍니다. 이건 누구나 공부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고, 또 유일한 공통점이라고 하네요.

경제를 열~~심히 공부하면 경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정치를 열~~심히 공부하면 정치판이 한 눈에 들어온답니다. 바로 이것이 진리탐구를 하면 얻을 수 있는 거랍니다. 그래서 전 사랑의 반대말은 진리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긴 설명을 했구요.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구요. 이제부터 설명들어갑니다.

사랑에 빠지면 뭐가 보이나요? 이 책에서 주인공이 클로이에게 사랑에 빠졌을 땐 뭐가 보였고, 사랑이 식어가면서 뭐가 보이든가요? 사랑에 눈멀면 시야가 좁아지며, 결국 사랑밖엔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이 때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고, 사랑에 미친(?)사람입니다. 반대로 사랑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면 딴여자가 보입니다. 딴사람이 보입니다. 딴세상이 보입니다. 이 때를 정상(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죠.

자, 이 오묘한 진리를 깨우치셨나요? 이해가 잘 안되시나요?
여기 가운데에 점(·)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이 점(·)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겁니다. 이 점(·)에서 왼쪽으로 가면 당신은 진리에 통달한 거구요.

사랑에 빠진 당신에게 무엇이 보입니까? 잘 안보이시나요? 그럼 더 오른쪽으로 가보세요. 이제 무엇이 보이나요? 바로 당신이 사랑하는 이성(그/그녀)이 보이실겝니다. 아주 잘 보이죠. 묻겠습니다. 세상의 진리가 보이십니까? 잘 안보이죠. 이 순간 당신의 진리의 모든 것이 이성에게 집중되어있습니다.

다시 가운데 점(·)으로 돌아오세요. 이제 진리의 세계로 빠져봅니다. 왼쪽으로 걸어가시면, 당신은 세상의 모든 이치(진리)를 깨닫아 버린 사람이 됩니다. 도사가 되어도 좋고, 종교적인 교리를 가지고 계시다면 신의 영역까지 들어가보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제 사랑의 반대말이 진리라는 제 말이 이해하되시나요? 오른쪽 끝으로 다다른 분들은 하나의 점이 점점 응축되어 아무것도 안보이게 됩니다. 물론 실제로는 존재하는 것이고 사라지지는 않죠.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곳이 잘보입니다. 바로 그 곳의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이지요.

왼쪽 끝으로 다다른 분들은 점이 점점 커져서 모든 것을 통달하게 되어서 아무것도 안보이게 됩니다. 이 때도 역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지만 너무 커서 한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곳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에게는 너무도 잘 보이는 곳이죠.

색즉시공, 공즉시색...불가에서 말하는 진리는 바로 이런 뜻이랍니다. 사랑에 빠진 당신은 모든 진리가 그/그녀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셨을 거에요.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죠. 너무 잘보이면서도 아무것도 안보이는 이 상태.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진리를 반추해 보아도 <사랑>의 반대말은 <진리>라는 제 견해가 맞지 않을까요.ㅋㅋ

그럼 이제, '왜 알랭 드 보통이 사랑에 빠졌으면 사랑에 충실할 것이지, 뭐하러 이렇게 주절주절 떠드는 게야' 하고 느꼈던 의문을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철학과 진리를 주절거린다. 왜 작가가 원초적 본능에 충실해야 할 순간에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막시즘, 칸트 등등 떠들었던 이유가 이해되시나요^^ 바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맛나게 읽으시려면 작가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시면 안됩니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이 쓴 줄거리 중간중간에 모래구덩이같은 함정을 파놓고 독자들을 빠뜨리기 바랍니다.
또, 작가의 함정에 빠져주세요. 그러나 거기에 심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연인과 사랑을 나누면서 철학을 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사랑을 철학적으로 논하며 자신은 이런 사랑을 했노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벼운 설명은 이해해줘야하죠. 그렇지만 각각의 설명의 옳고 그름 또는 반박논조 따위는 필요없다는 겁니다.

작가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면 어떻구, 칸트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사랑에 정답이 없는데...주인공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다고 말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제가 아닌 바로 주인공이 주제가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설명한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적 사랑을 이야기한 것일 뿐이구요. 별거 없어요.

그런데 철학자들이나 딴지 걸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거 넘어가지 못하지요. 작가가 말한 철학적 논지들에 이러쿵저러쿵 반박논리를 펴다가 아차~! 싶죠^^ 내가 속았구나...이 책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주 괘씸한 작가죠. 독자를 우롱하니..ㅋㅋ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10-31 21:59
http://blog.yes24.com/document/7512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

이은희 저/류기정 그림
살림출판사 | 2005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저자의 세번째 책(하리하라의 생물학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이다. '여자가 과학을 알면 얼마나 알겠어'라고 말한다면, 큰일날 말씀!! 기술적인 부분을 제외하곤 과학과 철학은 일맥상통한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출발이 똑같다. <다빈치 코드>의 저자. (음...언뜻 이름이 생각 안나는데...)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를 읽어본 분이라면 쉽게 이해하실게다. 종교와 과학을 동일한 학문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듯 과학은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단지 학창시절에 페러데이니, 플레밍이니...물리를 위시한 화학, 지구과학, 생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괴롭혔던 기억이 과학과 멀어지게 만들었던 주요 원인이다.

과학에 대한 편견을 버리기 위해 조금만 더 설명하자면, 과학은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를 탐구하는 여러 방법의 하나다. 즉, 각각의 종교가 추구하는 절대진리인 신의 말씀을 쫓는 것처럼, 과학은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절대진리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감히 건드릴 수 없다는 신의 영역(진리)을 종교는 관념과 직관으로 접근하는 것이고, 과학은 실증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종교의 입장에 선 분들이 쉬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실지는 몰라도, 과학자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지도 종교적 신앙심만큼 거룩하다는 것만 이해해주시면 고맙겠다.

각설하고, 이런 구차한 예시가 아니더라도 과학은 따분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 이것만 이해하시면 만사 오케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그 근거가 되는 책이 바로 저자 이은희의 <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이하 과·블)>다.

문명발달은 물론 생활의 편리함을 가져오는 과학의 이면에는 환경파괴와 인류의 생존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이를 흔히 양면성이라고 하는데, 크나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뿐인 지구를 놓고 인간이 한 판 도박을 벌이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10가지 주제(항생제, 유전자 조작, 시험관 아기, 장기이식, 비만, 환경호르몬, 백색식품, 다이너마이트, 원자력에너지, 석유에너지) 중 어느 것 한 가진들 현재 인간이 살아가는데 불필요하면서 위협적이지 않은 것이 있는가. 마치 인간은 허공에서 아슬아슬 외줄을 타는 삐에로 같다. 비록 웃고 있지만 속으론 울고 있는...

다니엘 퀸의 저서 <고릴라 이스마엘>에서는 이런 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진화의 최종 종착의 역할을 맡았는가?"

일면 진화의 끝이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으면서 인류의 만행을 폭로하며, 인류를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하던 시기로 묘사하고 있다. 즉, 자전거에 날개를 날고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모습. 그리고 결국 추락하는 모습이 바로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라고 역설하고 있다. 바닥에 떨어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냐, 다행이 추락직전에 날아오를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인류에게 달려 있다면서, 진정 어떻게 할 것인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 책도 바로 그런 점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여 공포감을 조성하려는 건 아니다. 적어도 <과·블>는 이 점에서 자유롭다. 인류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분명 희망찬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게 이 책의 진정한 메세지다.

<과·블>는 과학에 이제 막 관심을 가진 분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동안 과학을 어렵게만 느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과학은 호기심이다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10-17 23:19
http://blog.yes24.com/document/4951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맛있는 자연 공부

김기명 저/김영민 그림
청년사 | 2005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저자인 김기명 선생님은 서울교육대학을 졸업하고 20년 넘게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현재 서울신명초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고 계신단다. 필자의 모교(신명초교 4회 졸업생)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다는 말에 이 책이 더욱 솔깃해진다^^*

<과학>이라고 하면 종종 손사레를 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너무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과학>이 아이들에게 어려운 이유는 용어가 생소하기 때문이다. 이슬점이니 건구, 습구 온도계, 풍력, 풍압, 헥토파스칼, 밀리바, 승화, 권층운, 적란운, 오오츠크기단, 북서계절풍 등등 뜻을 한 눈에 가늠하기 힘든 용어를 사용하며 수업이 진행된 결과다.

재미있는 시나 즐거운 이야기가 우리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어려운 용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쓰이는 말의 이해가 우선된다면 <과학>도 별로 어려울 게 없다. <과학>도 시나 이야기처럼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과학>은 멀리 있지 않다. 실생활에서 우리는 숨은 과학을 금방 찾아낼 수 있다. 그런데 꼭 그런걸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어렵게 배우지 않아도 대충 살아도 사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는데 왜 어려운 <과학>을 배워야 하는 걸까?

그 이유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해와 달이 뜨는 이유도, 비나 눈이 오는 이유도, 무서운 번개가 치는 이유도 모두 신의 탓으로 돌렸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이 가만히 지켜보니까.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 지겨울텐데 매일매일 해가 뜨고 지고, 또 뜨고 지고 하니 얼마니 지겨울까...혹시 제는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도는 거 아닐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또는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까.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커다란 물항아리가 있나보다. 한 번 가볼까? 으잉! 없잖아. 그럼 땅에서 솟아나는 걸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까? 혹시 비가 내려서??? 그럼 그 비는 어디서 나온 걸까? 하늘에 커다란 물항아리가 있는걸까?'

이런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벌써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가 배우는 모든 학문이 바로 이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 중에서 주관적인 것을 제외한 객관적인 방법으로 통찰하고 설명할 수 있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날씨에 대한 과학. 즉, 24절기를 통해서 본 날씨 과학 이야기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 책의 활용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무턱대고 이런 게 <과학>이라고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 이유와 적절한 설명을 가르치는 것이 과학적 교육방법이고, 또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어려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날씨 과학을 쉽고 재밌게 풀이해놓은 김기명 선생님의 책을 보자. 한장 한장 24절기가 뜻하는 의미를 쉽게 설명해주고, 각 절기마다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날씨 변화는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 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의 저자도 제시하고 있지만, 초등학교 자연교과서와 같이 보면 도움이 되는 책이다. 맨 뒤에는 학년별로 교과서를 표지하고 있어 색인도 가능하게 하였다. 또 김영민 만화가의 <한 장 만화>로 생각열기를 꾸민 것도 이 책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과학>은 알고 나면 뻔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그 뻔한 내용을 알기까지 수많은 세월이 지났고, 수많은 학자들의-때론 목숨을 잃기도 한-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호기심 때문에 시작된 과학이 오늘날 인류의 생활에 없어선 안 될 정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엔 배워도 안배워도 별 차이가 없었지만, 이제는 꼭 배워야 하는 학문으로 자리 잡았다. 기왕에 배워야 한다면 적어도 지루하게는 배우지 말자. 이 책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날씨 과학,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날씨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4        
꿈보다 해몽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10-03 18:29
http://blog.yes24.com/document/8664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랑의 환국 1

신상득 저
이채 | 2005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만, <꿈보다 해몽이 좋다>이다. 3권 중반을 넘기면서 문득 들은 생각인데, 마지막으로 치달으면서 본문에도 똑같은 문구가 나와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만큼 이 책의 내용은 솔깃하다.

또, 주인공인 <김정>의 역사관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서 좋았다. 이는 종교적 관점을 말하는 것인데, 그는 기독교의 교리를 배웠음에도 역사 속의 단군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군을 숭상하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단군을 신화가 아닌 왕의 이름으로 보았다. 나같은 불가지론자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종교를 가진 분들에겐 조금이나마 거슬리는 내용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런 김정 역시 한계를 보여줬는데, 3권 마지막 부분에서 서술하고 있는 우리 역사와 덕암의 무예를 논할 때 보이는 그의 말은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듯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역시 신학을 공부하며 대학3년을 보내면서 말하는 품이 어느 새 닮아버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부분은 지루하면서도 솔깃하다.

그나저나... 작가 신상득은 왜 이 책을 <소설>이라고 이름하였을까? 이 책에 가득한 온갖 음모론의 책임을 조금이나마 회피하려는 목적으로 그랬을까? 아님 어차피 허구스런 이야기를 하면서 책을 어려워하는 민족에게 판매고를 올리려는 속셈이었을까? 짧지 않은 세 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내 품었던 생각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아니 소설로 폄하되면 안 된다는게 내 생각이다. 어찌 한 나라의 역사(갈[武]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허구성이 짙은 용어인 소설을 차용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실록이나 기록으로 이름했어야 했다. 그래야 이처럼 재미없는 소설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법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을 읽는 법은 <소설>로서의 접근이 아닌 <다큐>를 접하는 마음가짐으로 읽어 내려야 한다. 그래야 오해가 없다. <소설>로 읽을 때의 폐해는 1권에서 보여준 <봉대 이야기>가 허구로 비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증할 수 없는 이야기이니 허구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이 이야기를 허구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진짜라고 믿고 싶고, 진짜처럼 보여야 한다.

그런데 <소설>이라 이름붙여 놓았으니 1권을 다 읽는 동안 거짓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2, 3권을 읽으면서 1권에 나왔던 거짓말이 진실처럼 느껴진다. 작가 스스로 의심했던 역사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보며, 믿기 시작했기 때문에 글 속에 담긴 진심이 서서히 엿보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세 권을 써내려가며, 작가는 앞에 했던 말을 증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식의 오류를 범했다. 증거가 부족하고, 없는 사료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는 다케다 소카쿠와 덕암 최봉술...그리고 현존하는 한풀 창제자 김정에 대한 큰 흐름을 아전인수 격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커다란 오류이다. 온통 물증은 없고, 심증만 가득한 이야기에서 무엇을 바라겠는가? 단지 작가가 뿜어내고 기운에서 <솔직함>이 뭍어나고 있어, 그나마 이 책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이야기가 온통 거짓부렁이라고 해도 좋다. 이미 작가나 주인공 김정은 세간의 평이 우찌되었든 자신의 믿음을 향해 그 묵직한 행적을 남길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나는 그들을 믿어볼란다.

과거가 우찌되었든,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엔 그런 묵직한 믿음이 꼭 필요한 때이다. 온갖 가짜가 판을 치고, 짝퉁이 진짜인냥 세상을 어지럽히는 시기에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인간형이다. 난세에 영웅을 꿈꾸 듯,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영웅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슈가 될 <한풀>이라는 무예의 진위 여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소인배의 짓일 듯 싶다. 마치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를 읽으며 예수가 결혼을 했니? 안했니? 떠드는 것처럼... 물론 <랑의 환국>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될 리는 만무하다. 솔직히 재미는 없걸랑^^;;

그러나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그리고 니네 나라가 반만년의 역사를 가졌다면 그 증거를 대보아라는 외국인을 만났을 때, 우리는 육신(몸뚱이)의 역사가 아닌 정신(영과 혼)의 역사. 즉, <랑의 역사>를 가졌다고 자랑스럽게 뻥쳐보시길 바란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판타지의 고전을 찾아서...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09-28 14:08
http://blog.yes24.com/document/34353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퍼 피어스 글/수잔 아인칙 그림/김석희 역
시공주니어 | 200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간절히 원하는 두 마음이 <시간>을 초월한 만남을 이루워지게 한다.'


홍역을 피해 격리된 소년과 아무런 정당한 이유없이 정원에 갇히게 된 소녀가
과거도 미래도 볼 수 없고 오직 현재만을 보여주는 매정한 <시간>을 초월하여 만나게 되는 사연을 읽노라면,
간절히 원하는 마음만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아이들의 무구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무슨 소린고하니,
조목조목 따지다보면 줄거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고, 줄거리를 미리 이야기해버리면 이 책의 재미가 반감될 터이니 간략하게 핵심만 이야기하자면,
한창 너른 벌판을 뛰어놀 남자아이가 홍역이라는 전염병을 피해 격리되면서 갑갑한 다세대 주택에 갖히게 되고,
<시간>을 달리하여,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몰인정한 큰어머니에게 격리 아닌 격리를 당하게 되는 여자아이가 서로 만나 <같은 시간>을 보내는 수퍼울트라캡숑판타지 동화라는 이야기다.

이 곳에선 현실 세계(1차 세계)와 판타지 세계(2차 세계)가 동떨어진 것이 아닌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그 경계를 <시간>으로 삼고 있다. 물론 그 경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있는데, 바로 <괘종시계>다.
이렇듯 전형적인 판타지의 형식을 띄고 있는 이 작품은 20세기 판타지의 교과서라고 할 만큼 정교한 짜임새를 보여준다.

또 확연한 1차와 2차의 세계와 대비되는 것처럼
소년과 소녀를 대변하는 <아이들의 세계>와 이모부와 큰어머니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판타지의 세계를 좀더 화려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그렇게 부각되는 공간이 바로 <해티(소녀)와 톰(소년)의 정원>이다.

각각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의 특징도
정확한 시간을 보여주지만, 매 시를 알리는 종은 제멋대로인 판타지적인 <괘종시계>를 등장시킴으로써 아이들에게 더욱 궁금증을 일으키게 만든다.
즉, 새벽 1시에 종이 열세번 울리는...앞서 얘기했듯이 시간은 정확히 새벽 1시다.

이런 아이들의 궁금증과 증폭된 호기심을
톰의 동생인 피터를 통해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그런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암시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 피터는 홍역을 피해 멀리 떠난 톰과는 달리 홍역에 걸렸기 때문에 자신의 방에서 꼼짝도 못한다.
이렇게 고립된 피터는 형 톰의 편지를 통해서 해티와 정원에 대해 알게 되고 동경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것을 통해 이 책이(1958년 영국에서 나왔으니..)교육에 있어서 아동의 위치가 얼마나 형편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곧 아이들은 <철없는 호기심>따위보다 어른들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던 시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훗날 이 책을 계기로 <아동>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졌으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책을 읽으며 두 명의 작가가 떠올랐다.
한 명은 연금술사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료>와 시간여행을 다룬 <코니 윌리스>.
코엘료는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당신의 소망을 이루어 주려고 도와준다'라는 유명한 문구로 내 가슴에 파고 들었고,
윌리스는 <개는 말할 것도 없고...>와 <둠즈데이 북> 두 권을 통해서 <시간여행>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이 두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을 합친듯한 느낌...
그 느낌을 필리퍼 피어스의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재밌었다는 말이지^^V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아멜리 노통...행복을 꿈꾸다.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09-20 21:42
http://blog.yes24.com/document/32830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 저/김남주 역
문학세계사 | 2015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아멜리 노통의 책이 늘상 그렇듯...이 책 또한 그러하다.
벨기에 사람인 노통은 데뷰작(살인자의 건강법)부터 과감히 프랑스 문학을 비꼬기 시작한다.


...남들은 대부분 이런식으로 아멜리 노통을 평하기 시작하는데..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더더구나 프랑스 문단에 대해선 깡통이다.
그러니 아멜리가 소설 속에서 뭐라뭐라 표현한 부분이 문학계의 지성인들을 비꼰다고 하여도 알 재간이 없다.


내 나름대로의 노통표 소설의 맛은 <쾌활>이다.
유쾌, 상쾌, 통쾌로 이어지는 삼(3)쾌한 이야기와 활달, 활발한 그녀의 문체는 읽는 이로 하여금
사악한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ㅡ-)씨익
<오후 네시>, <살인자의 건강법>, <적의 화장법>을 보라. 주인공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두려움과 떨림>, <사랑의 파괴>를 보라. 능청스럽게 자신의 자서전을 팔어먹는다.
<시간의 옷>에서 보여준 황당함은 또 어떤가...


<로베르 인명사전>은 시작부터 피범벅이다.
임신으로 시작하여 출산, 살인, 자살로 성큼성큼 달려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를 지나 작가 자신을 죽여버리는 결말로 치닫는다.
그러나 오히려 왜 죽으려 했는지 의문이 남는 결말이다.

왜? 우여곡절 끝에 행복을 찾으려는 주인공에게 딴지를 걸어 작가 자신을 죽여야 하는가?
자신의 작품에서 해피엔딩이 나오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다는 작가적 고집인가?
아님 작품의 일관성을 위해 누군가 죽어야만 했는데 차마 행복을 찾은 주인공을 죽이지 못하고 대신 죽은 것인가?

왠지 노통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억지로 죽고 싶어하는 느낌마저 든다.
아니면 한 번쯤 자신이 만든 주인공에게 죽임을 당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생각이 들리 없는 이야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노통에겐 너무도 당연한 그런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결말은 그렇다치고...
아름다운 플렉트뤼드에게 주어진 운명이란 무엇인가?
예언하듯 자식의 운명을 정해주고 자살을 한 친엄마 뤼세트.
자신의 조카 겸 딸을 못다한 꿈의 대용품으로 전락시킨 이모 혹은 양엄마 클레망스.
그리고 슬그머니 자신의 소설 속으로 침입한 아멜리 노통.
이 네 명의 여자가 이끌어 가는 이야기는 숨막히도록 섬뜩하다.
그리고 똑같은 꿈을 꾼다. 행복이라는 꿈을...

뤼세트의 행복은 자신의 딸이 <플렉트뤼드>로 살아가는 것이다.
클레망스의 행복은 플렉트뤼드가 발레로 성공하는 것이다.
플렉트뤼드의 행복은 클레망스가 자신을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불운한 사고로 플렉트뤼드는 클레망스의 기쁨을 망쳤다.

클레망스는 플렉트뤼드를 미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딸로서 남겨놓지도 않았다.
플렉트뤼드는 클레망스 대신 뤼세트의 행복을 쫓는다.
그런데 뤼세트는 열 아홉에 자신을 낳고 자살했다. 플렉트뤼드도 그러리라 다짐한다.

그럼 아멜리 노통의 행복은 무엇인가?
노통은 플렉트뤼드를 죽이려 했다.
노통은 자신의 작품에서 주인공이 행복을 찾는 끔찍하고 시원찮은 이야기가 되는 걸 못 견뎠다.
마치 뤼세트가 변변찮은 파비앙의 소박한 행복을 거절했던 것처럼...

아멜리 노통은 탕기라든지 조엘같은 평범한 소설을 증오했다.
아니 자신의 작품은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플렉트뤼드 같은 특별함을 지녀야 했다.
노통은 스스로 거부한 것이다. 평범한 작품..뻔한 결말에 자신의 이름이 실리기를...
그래서 차마 자신의 딸(소설)을 죽이기보다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노통의 마니악적인 매력에 이끌린 <노통표> 꼬리표가 붙은
이미 그저 그런 평론가가 되버렸는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아멜리 노통에겐 그 어떤 수식어도 전부 노통스러울 뿐인걸...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그의 두 번째 작품을 기다리며...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09-08 23:18
http://blog.yes24.com/document/9576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달팽이의 뿔

권정현 저
노블마인 | 2005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중국의 옛 유물이 나타나고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막바지에 접어든다.
거기에 때를 맞춘듯 전개되는 옛이야기...

다섯 병정과 다섯 후보의 상관관계를 찾아내는 재미로 시작하는 <달팽이의 뿔>은
마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보듯...시종 흥미진진하다.

그렇지만 신인 작가의 역량 부족일까? 한계일까?
작품의 일관성을 떨어뜨리는 결말에서 허무감이 드는 건..비단 나 뿐만이 아닐게다.
다섯 병정과 다섯 후보간의...막말로 까발리기 식의 풍자와 해학을 담아내길 기대했는데...ㅋㅋ

<달팽이의 뿔>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옛 유물을 통해서 살펴본 우리 역사의 정체성일게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에게도 왕조가 있었고 찬란한 문화가 있었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보여지는 반만년의 역사는 누구하나 알아주는 이가 없다.
자국의 국민이 이럴진데...외국의 역사학자가 우리 역사를 알면 얼마나 알 것인가?
작가는 이것을 안타까워했던 것일게다.

필자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먹고 살기 힘들 때일수록 지킬것은 지켜줘야 한다.
<급할 수록 돌아가라>란 옛 말이 우리에겐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과거 거대한 중국대륙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근·현대사에서 그 질긴 명줄을 놓치지 않았던 것은
입에 겨우 풀칠이나 하며, 수차례 똥구녕 찢어면서도 우리 것을 지키려는 고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우선시되는 가치관은 <물질만능주의>가 되었다.
돈이 최고가 되었으며, 무식해도 돈만 있으면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이 되었다.
안타깝다...이런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면, 권정현 작가 같은 신인이 나오고 있다는 것 일게다.
그래서, 기대에 조금 못미치는 작품이지만, <달팽이의 뿔>을 읽으며 웃을 수 있었다.

시대의 트랜드를 작품에 담아내는 재능이 있는 작가의 책이라고 평을 하겠다.
이제 난 권정현 작가의 두번째 작품을 기다린다.
진정한 평가는 다음으로 미루며...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이 세상의 주인은...누구?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07-07 11:21
http://blog.yes24.com/document/8211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고릴라 이스마엘

다니엘 퀸 저/ 배미자 역
평사리 | 2004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결론이 무어냐. 인간은 지금까지 누려오던 삶을 바꿔야한다. 파괴를 일삼는 행위를 근절하고 어머니 지구를 보전하고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른바 '역할을 맡은 자들'의 입장 변화가 필수 불가결하다. '역할을 맡지 않은 자들'이 이야기하는 신화에 우리는 귀기울여야 한다..."

-지아오빠,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글쎄다. 뭐부터 얘기해야 좋을지 정리가 안되는걸...

-그래. 이런저런 설명에 앞서 너에게 한가지 물어볼께. 넌 인간이 진화의 최종 단계라고 생각하니?

-진화? 다윈의 진화론을 말하는 거야?...음...질문의 요지를 잘 모르겠는걸. 진화의 최종 단계가 무엇을 뜻하는 거지?

-말 그대로 진화의 끝. 단세포 생물이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고...물고기가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조류나 포유류로, 포유류 중의 한 갈래가 인간의 조상으로...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그러니까 그 진화의 최종 목적지가 인간이었냐, 아니면 인간이 아니냐...이런 뜻인거야?

-비슷해. 넌 어떻게 생각하지?

-음...잘 모르겠는걸. 진화론만 따져본다면 인간도 언젠가는 진화하겠지...오빠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는...후훗, 나도 마찬가지야. 잘 모르겠다. 좋아. 그럼 질문을 살짝 바꿔보자. 인간이 이 세상의 주인인가?

-아니야. 이 세상의 주인은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과 죽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만물이지.

-그런데 왜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 행세를 하는 걸까?

-주인 행세를 한다고? 어떤 면에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는 달리 인간이 누려야 할 것들을 정해놓고 모든 생명체들이 따르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면서, 그것을 고도의 발달입네, 인류의 획기적인 정복입네 하면서 이 세상을 지배하려 들고 있잖아. 아닌가?

-그러고 보니 오빠말에 일리가 있네. 인간이 참 몹쓸 짓을 많이 했지. 그래서 인간이 이 지구에서 주인행세를 왜 하냐고 물어보는 거구나. 그러네. 인간이 세상의 주인인냥 행세를 하고 있었네. 근데 그건 인간이면 당연한 거 아닌가?

-넌...인간과 동물이 다른 특성을 종속적인 관계로 보는 거 같구나. 인간을 제외한 동물은 인간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으나 동물이 인간을 지배하는 건 있을 수 없다. 맞니?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인간이 코끼리나 호랑이에게 지배를 받는다...과연 인간들이 가만 있을까? 까불면 혼내줘야지..ㅋㅋ

-후훗, 이야기가 딴데로 흐르는 구나. 난 인류가 이 세상의 지배자가 아니고 다른 생명체들과 같이 공존해야하는 존재로 지내야하고, 인류가 진화의 끝이 아니고 언젠가 인류의 너머에 등장하게 될 생명체들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하는 내용을 주장하는 <고릴라 이스마엘>의 작가 다니엘 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저기 저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그 책에 수록된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고...

-그 책에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 건데...

-글쎄...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말을 하고 있더구나. 이를테면 A가 B를 먹고, B가 C를 먹고, 다시 C가 A를 먹듯이 인간도 그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어.

-A가 B를 먹고, B가 C를...먹이 사슬에 관한 이야기야?

-맞아. 하지만 작가는 A는 우리집 식구이고, B는 옆집 식구들이고, C는 뒷집 식구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지.

-뭐..뭐!! 그럼 사람끼리 서로 잡아 먹으라는 이야기야?

-궁극적으로는 그런 이야기지만...좀더 들어봐봐. 사자가 사슴을 잡아 먹을 때, 떼로 지나가는 사슴 몽땅 다 잡아 먹는 건 아니야. 그지?

-그..그렇지.

-그 무리 중 일용할 양식..즉, 배가 부를만큼만 잡아 먹는다는 거야. 사슴도 마찬가지로 초원에 널려있는 풀을 씨가 마를 때까지 뜯어 먹는게 아니라 배가 부른 만큼 먹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거지...이른바 먹이사슬. 먹고 먹히는 관계가 지속되지만 결코 멸망에는 이르지 않는다.

-그럼 뭐야. 인간들도 서로서로 배부른만큼씩만 서로서로 잡아 먹고 살면 멸망하지 않을 거다. 뭐 이런 얘긴가...끔찍한데.

-아니 인간으로서 설마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니. 작가는 그 이야기를 빌어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게지. 여기서 '역할을 맡은 자들'과 '역할을 맡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

-'역할을 맡은 자들'은 뭐고, '역할을 맡지 않은 자들'은 또 뭐야?

-물론 인간을 지칭하는 표현이지. 이런 표현이 해석의 오류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암튼 책에선 'Takers'와 'Leavers'란 표현을 쓰더라고...뭐라고 해석했더라...할래 말래?? 이게 무엇을 '할래 말래'라고 하는 거냐면, 인간이 농경생활을 함으로서 고도로 발달된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뜻으로 '문명인'으로 남겠느냐, 반대로 농경생활을 하지 않은 채집수렵생활, 즉 '미개인' 수준에 머무를 거냐...라는 개념으로 'Takers'와 'Leavers'라는 단어를 사용했어. 이를 번역자가 '역할을 맡은 자들'과 '역할을 맡지 않은 자들'이라고 번역했지.

-뭐, 그리 복잡해...그냥 '문명인', '미개인'이라고 하면 되지.

-그게 그리 단순하지가 않아. 지금에서야 '문명인'과 '미개인'의 차이가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농사를 처음 시도했던 그 시기엔 별 차이가 없었을 거란 말이야. 먹거리를 구하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 '농경인'이나 '채집수렵인'이나 거기서 거기란 이야기지. 이해가 되남?

-흐음...딴엔 그러네. 그래서?

-그렇게 나눈 두 개의 부분을 좀더 분석해보면 이런 해석도 나와. "파괴를 일삼는 자",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자".

-가만가만...그럼 '문명인'과 '농경인'들이 파괴를 일삼는 부류에 속하고, '미개인'과 '채집수렵인'이 "자연의 섭리를..."...오빠, 가만 있어봐. 이게 뭘 뜻하는 거지?

-그래. 네가 생각하는 데로야. 인간은 왜 세상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파괴를 일삼는가.

-'문명인'과 '미개인'...'농경인'과 '수렵채집..' 그럼 그 작가가 주장하는 게 뭐야. 모든 인간이 문명을 누리길 포기하고 미개인들처럼 수렵과 채집...심지어 서로 잡아 먹으면서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거야?

-글쎄다...그 작가가 뭐라고 했드라^^

-뭐야...빨리 말 안해.

-글쎄...기억이 잘 안난다니까.

-오빠, 이리 안와. 빨랑 말해줘~~언능

-나 잡아봐라...그럼 가르쳐 주지. 하하하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도서관 24시... | 2005년에 쓴 리뷰들 2005-05-24 19:08
http://blog.yes24.com/document/10248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대한민국 희망보고서 유한킴벌리

KBS일요스페셜팀 취재/정혜원 저
거름 | 2004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근로자의 날(5월 1일)에 쉬는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부럽기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우수한 기업이 많이 생기기 위해선, CEO가 앞장서야 할까? 근로자가 앞장서야 할까?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로 입씨름하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다.

문국현 사장이 주장하는 노동력 창출방법이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공감한다.
하지만 인식과 패러다임을 쉽게 바꿀지는 미지수이다.

고도성장을 이룩하던 7,80년대 대한민국에선
노동자들은 기업의 봉이었고, 가장 이윤 남기기 쉬운게 사람장사였다.
오죽했으면 90년대에 파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노동자가 아니라는 소리가 나왔고,
그 당시 뉴스를 장식하던 것이 인신매매였지 않은가.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라고 손가락질 하였지만,
이미 사람장사는 기업과 경제 전반적인 풍토였던 것이다.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국제통화기금)시기에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법을 가장 먼저 도입한 것만 보아도 우리의 기업과 경제풍토가 얼마나 사람장사에 깊이 빠져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저런 면면에서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사장같은 분들이 기업의 풍토를 바꿔주고,
우리의 근로자들이 이런 경제적 풍토에 힘을 실어주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대한민국에 희망을 주는 지름길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바이다.

문사장도 예를 들며 설명하였지만,
어서 빨리 공공기관에도 이런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다른 건 몰라도 도서관만이라도 유한킴벌리의 4조 2교대 방식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어떨까.

책은 학생과 주부와 백수만이 읽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쁘게 생활하는 샐러리맨들이 더욱 많이 읽어야 하고,
치열한 경제생활의 주축인 아빠들이 책과 더 가까이 해야 한다.

문학에서도 여자들의 입맛에만 맞는 작품들만 수두룩하게 나오고,
그에 따라 출판사에서도 여성고객에 마케팅 초점을 맞추는 형편에서

'남자들은 책을 읽지 않으니까'

'남자들은 고리타분한 실용서만 읽으니까'

라며 배제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가...

그런데 어째서...
공공도서관은 해가 지기 무섭게 문을 굳게 닫아 걸고서
책을 읽을 기회를 일방적으로 박탈하는 것인가.

왜?

아쉬우면 책 사서 읽으라는 이야기는 하지말자.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책 값을 아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이 책의 제목에서
<유한킴벌리>라는 큰 글자보다 <대한민국 희망보고서>가 더 크게 보인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0        
1 2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
인간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