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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1-7. 징비록 | 독서습관캠페인 2020-11-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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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2. 읽은 쪽수 : 185쪽 ~ 222쪽

 

3. 책 읽은 뒤 느낌

  이듬해 10월, 임금이 한양에 되돌아 왔다. 하지만 남쪽으로 물러간 왜적들은 여전히 행패를 부리며 농성을 일삼았다. 이에 명나라 황제는 "일본에 작위를 줄테니 조선에서 꺼져라"라는 명을 내리고, 심유경을 사신으로 삼아 일본에 보냈다. 허나 풍신수길은 "조선의 왕자가 직접 와서 사의를 표하라"라는 강짜를 부리며 심유경에게 아무런 답도 건네지 않고 쫓아버린다. 애초에 심유경이 고니시 유키나가와 짜고서 황제와 풍신수길을 속였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만 것이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한 사이에 이순신이 하옥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은 너무도 유명해서 조선측에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헌데 이를 역이용해서 고니시가 꾀를 낸 것이다. 고니시의 부하 요시라가 경상 우병사 김응서랑 친하게 지내면서 '거짓 정보'를 슬쩍 흘렸는데, 그 내용이 "가토가 다시 공격해온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이때를 노려 가토를 공격한다면 격퇴시킬 수 있다며 꼬드긴 것이다. 김응서는 옳다고 여기고 이를 조정에 보고 했는데, 정작 이순신은 적의 계략이라 짐작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이순신은 한양으로 죄인의 몸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정탁의 만류가 없었다면 죽은 목숨이 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사건이었다. 고니시에게는 계략이 성공하면 경쟁자인 '가토'를 없앨 수 있어서 좋았고, 실패해도 '이순신'을 잡을 수 있는 묘책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이로 인해 이순신의 지위는 박탈되었고, 그의 뒤를 원균이 도맡았다가 '조선 수군'을 괴멸시켜버리고 말았으니 자칫 나라가 망할 위기에 봉착하였던 것이다.

 

  그무렵 육지에서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허나 전황은 일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 조선군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명군은 관망하기 일쑤였다. 남의 나라에 와서 목숨을 다해 싸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탓이었다. 이시기에 권율 장군도 오락가락 하였던 탓에 주위에서 파직하라는 상소가 올라왔으나 임금은 그를 중용하였다. 한편, 다시 '백의종군'한 이순신은 남쪽으로 가서 권율 휘하에 있다가 '삼도수군통제사' 직책을 다시 맡은 다음, 배설이 빼돌린 10여 척의 배를 찾는 등 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히 이순신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이순신의 명을 따르며 차곡차곡 힘을 모으고 있었다.

 

  이때 명나라에서 수군 제독 진린을 파견하였다. 조선 조정에도 포악하기로 유명한 진린을 다루지 못하고 쩔쩔 맸는데, 이순신은 그를 맞이하기 위해 성대한 잔치를 마련하고, 때마침 쳐들어온 왜적의 수급을 잘라 몽땅 진린에게 선사하니 진린은 이순신을 매우 흡족해하며 '하늘이 내린 장수'라는 칭송을 하며 사이좋게 지냈다고 전한다. 허나 이렇게 큰 공을 세우고도 노량해전을 끝으로 이순신은 전사하고 만다.

 

  <징비록>에서 이순신의 활약은 그닥 자세히 전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렇게 간단한 정황만 설명하고 '이순신의 죽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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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1-6. 징비록 | 독서습관캠페인 2020-11-03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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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2. 읽은 쪽수 : 154쪽 ~ 185쪽

 

3. 책 읽은 뒤 느낌

  명의 원군이 오자 조선은 반격을 준비했다. 원군이 먹을 군량과 말들에게 먹일 풀도 단단히 준비하고서 하루라도 빨리 왜적을 물리치길 바랐다. 명나라 군대도 초반에는 적극적이었다. 일본군의 기세가 무섭다는 우리 측의 조언도 무시할 정도로 시기충천이었다. 허나 딱 평양성 수복까지만이었다. 평양성을 손쉽게 수복하는 것 같더니 퇴각하는 일본군을 곧바로 추격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던 셈이다.

 

  물론 우리 측 실수도 있었다. 대동강 이남에서 퇴각하는 일본군을 섬멸하라는 명을 받은 군대가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지레 겁을 먹은 장수와 공을 독차지하겠다고 독자행동을 한 장수가 따로 행동을 하면서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만약 이때 고니시 유키나가를 잡거나 그의 군대를 괴멸시켜버릴 수만 있었다면, 한양에서 머물고 있었던 우키타 히데이에라는 어린 장수 하나와 함경도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가토 기요마사만이 남았으니 기세가 오른 명군과 함께 각개격파를 하기만 했더라면 임진왜란도 그닥 큰 피해를 받지 않고 평정할 수 있었을 텐데, 머뭇거리는 명군과 손발이 맞지 않는 우리 군사들의 실책으로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평양성에서 대패를 하고 남쪽으로 후퇴한 고니시 유키나가와 그의 군대는 대열을 갖추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가 한양을 지날 때에는 한양의 백성들을 참혹하게 말살하고 식량과 무기가 될 만한 것도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갔다. 조선군이 한양으로 되돌아오게 되면 조선에 이로운 일이 될 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한양에는 백성들의 시체가 길을 뒤덮을 지경이었단다. 죽은 어미의 젖을 빨며 울던 아이를 명나라 장수가 데리고 가 키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류성룡은 자신이 직접 본 상황을 <징비록>에 실으며 군대를 따라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백성들의 참상을 낱낱이 기록하였다.

 

  명의 원군이 도착하고서 전황은 나아졌다. 권율 장군이 행주대첩에서 신승을 거둔 뒤에 조선 정부의 발언권도 세졌기 때문이다. 허나 여전히 명나라 군대는 머뭇거린다. 그러다 심유겸이 다시 돌아왔다. 류성룡은 그가 일본군 진영에 가서 무슨 내용으로 회담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행보가 탐탁스럽지는 않았다. 그가 일본군에 갔다올 때마다 "조선땅에서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는 얼토당토 않은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말인즉슨, "강화회담이 진행중이나 양측의 다툼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그 사이에 일본군은 왜성을 쌓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기 때문에 조선군으로서는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급기야 부산 일대에 견고한 왜성을 쌓고 방어태세를 갖추고 나서는 지난 날의 복수를 하겠다며 '진주성'을 공격했다. 지난 1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 장군에게 대패를 하고 물러났던 것을 핑계 삼아 복수하겠다는 으름장을 내놓은 것이다. 명나라 군대는 이를 은근히 방조하는 모양새를 취했고, 조선군은 다급했지만 지켜야 할 곳은 많고 부족한 것 투성이라 '응원군'조차 보낼 여력이 없었다. 김시민 장군이 죽은 뒤에 진주 목사에 부임한 서예원과 김천일, 최경회, 황진 등이 남아 일본군을 막으려 했지만, 중과부적이었으며, 특히 서예원과 김천일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전투중에서도 지휘가 혼란스러웠으니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이었다. 끝내 진주성은 함락되었고 목사 서예원은 전투중에 전사했으며, 김천일과 최경회는 촉석루에서 몸을 던져 자결했다. 무너진 성벽으로 밀고 들어온 일본군은 진주 백성들은 남김없이 죽이며 임진왜란 이래 가장 참혹한 전투가 끝났다.

 

  이렇게 진주성을 함락시킨 일본군은 부산으로 되돌아갔고, 명나라의 강화 통지를 받은 뒤에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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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2. 읽은 쪽수 : 124쪽 ~ 154쪽

 

3. 책 읽은 뒤 느낌

  선조가 의주에 머물고 있을 때 이순신의 승전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이 특히 반갑고 기쁜 까닭은 평양성을 함락시키고도 머뭇거리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우리 수군 10만이 또 서해로부터 도착할 것이다. 조선 임금께서는 이제 어디로 가실 예정인지요?"라는 글을 보냈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일본군은 수군과 육군이 합세하여 조선을 공격하려 했었다. 그런데 이순신이 서해로 가는 길목을 단단히 지키고 있으니 일본 육군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이제 가을이다.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 북쪽의 매서운 추위는 일본군이 경험하지 못한 또 하나의 복병일 것이다. 장기전은 절대 불리하다. 하지만 평양성을 비우고 공세를 취하다 조선 임금을 잡지 못하면 '장기전'이 될 것이고, 농성을 한다고 해도 애초부터 부족한 식량과 보급이 막혀서 싸울 힘도 잃고 후퇴할 길도 막혀버리고 말 것이다. 이순신의 승리가 얼마나 큰 공이었는지를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선조가 이순신의 품계를 올려주려 하자, 너무 지나치다는 이유를 들어 깎아내리고 만 것이다. 임금 또한 이순신의 공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

 

  바다 위에서 승전보가 전해지자 육지에서도 곳곳에서 승전 소식을 전해왔다. 특히 이장손이 발명한 '비격진천뢰'가 큰 공을 발휘했다. 일본군은 하늘에서 떨어진 무쇠공을 처음 본 터라 신기한 듯 이리저리 굴려보며 장난을 치다가 벼락같은 괴성과 함께 사방으로 분산되는 쇳조각에 맞아 즉사하고 말았다. 그자리에서 죽은 일본군만 서른 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되었다. 그 뒤부터 일본군은 '비격진천뢰'와 비슷한 것만 보아도 사방팔방으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오늘날로 치면 '작렬탄'에 해당하는 비격진천뢰는 '시한장치'가 되어 있어서 폭발까지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고, 대완구로 쏘면 5~600보까지 날려보낼 수 있었으니 성안에 틀어박혀 농성을 부리거나 배 위에다 쏘면 대열이 흐트러지며 지리멸렬하기 일쑤였단다.

 

  그 무렵, 곳곳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혁혁한 공을 세웠다. 양반은 물론 중인과 서얼, 농민과 천민, 그리고 승려들까지 일본군이 포악한 짓을 하면 할수록 의병들의 기치는 더욱 활활 불타올랐다. 경상도 의령의 곽재우, 고령의 김면, 전라도 담양의 고경명, 광주의 김덕령, 충청도 청주의 조헌, 공주의 영규, 묘향산의 서산대사(휴정), 금강산의 사명당(유정) 등은 그 이름만큼이나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로써 일본군은 바다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육지위에서도 꽤나 큰 곤란을 겪었다. 허나 한양을 점령한 일본군은 경기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강원도에서도 전쟁 초반에 큰 인물들이 전사를 하는 바람에 힘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피해는 말로 다 할 수 없었고, 골목마다 시체가 넘쳐날 정도로 참혹하고 끔찍했다고 한다. 일본군의 만행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전쟁통에 굶주린 백성들이 길가에 쓰러져 죽고 방치된 탓에 전염병이 돌아 더욱 처참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명나라의 구원군이 도착했다. 이여송을 앞세워 대군을 보내왔는데, 과연 이들이 조선을 도와 난을 평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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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2. 읽은 쪽수 : 93쪽 ~ 124쪽

 

3. 책 읽은 뒤 느낌

  임금이 평양성에 머물 때다. 일본군은 대동강 앞까지 진군해 있는 상황이었고, 함경도는 이미 함락되고 말았다. 헌데도 이 사실을 모르고 평양성을 떠나 서쪽으로 떠날지, 동쪽으로 떠날지 고심하고 있었단 말이다. 이 사실을 눈치 챈 평양백성들은 성문밖에서 조정관료들이 행차하는 것만 보면 울며불며 시위를 하곤 했다. 임금이 또다시 평양성을 버리고 자신들도 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임금이 버린 백성은 누굴 의지하며 살 수 있단 말이냐는 하소연은 조정관료들조차 할 말 없게 만들어버리곤 하였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평양성을 최후의 보루로 삼고 명나라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틸 생각도 했다. 류성룡도 그 생각에 동의해서 하루라도 빨리 원군을 요청하려 했으나 명나라에서 온 사신은 날마다 잔치를 열고 대접을 융숭하게 받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던 터라 답답할 지경이었다. 이즈음에 일본군이 대동강가에 진을 치고 소규모로 강을 건너와 공격하려는 시도를 하였고, 이때 일본군의 총탄이 성안의 기둥까지 날라와 깊숙이 박히곤 하니, 그제서야 겨우 원군을 불러오겠노라고 떠날 차비를 하였다.

 

  겨우 한시름을 놓은 것 같았는데, 이제는 평양성 방비가 중요해지고 말았다. 허나 성을 지켜야 할 관군들이 하나같이 용렬하기 그지 없어 믿음직하지 않았고, 적들의 진격이 예상되는 길목은 서로 미루며 지키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대동강의 수심이 깊어서 적들도 쉽사리 넘어오지는 못했지만, 비가 오지 않아 점점 강물이 말라가는 것이 우려스러웠다. 이에 각종 사당에서 '기우제'를 벌이며 비를 내려달라고 정성을 쏟았지만, 끝내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러다 적과 소규모 접전을 치룬 것이 화근이 되었다. 다른 곳은 수심이 깊어 함부로 넘어오기 힘들었지만, 강의 상류 근처에 수심이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는 비교적 얕은 길목이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다 알지만 외지인은 쉽사리 구별할 수 없던 곳이었다. 그런데 적들과 대치하다 불리해지자 이곳을 통해 우리측이 후퇴하며 강을 건너는 모습을 지켜보고 일본군이 결국 대동강을 건너오게 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임금은 또다시 짐을 꾸려 달아났다. 이번엔 의주였다.

 

  그때 마침 요동에서 이름 난 장수였던 조승훈이 1차 원군을 이끌고 당도했다. 그는 손쉽게 일본군을 격퇴하고 '평양성'을 되찾아오겠다고 큰 소리를 쳤지만, 성안에 매복하고 있던 일본군에 의해 거의 전멸을 하고 후퇴하고 말았다. 그는 살아남은 부하장수를 거느리고 고개를 떨군 채 요동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허나 일본군은 웬일인지 '평양성'에서 한발짝도 나오질 않았다. 그 틈에 조선군은 '안주'에서 머물며 원군을 기다렸고, 류성룡은 만반의 준비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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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2. 읽은 쪽수 : 62쪽 ~ 93쪽

 

3. 책 읽은 뒤 느낌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왔지만 조선에도 '천혜의 요새'가 있었다. 바로 '문경세제'다. 지금도 이곳을 가면 길목은 좁고 산세는 험한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애초에 일본군도 이곳을 지날 때에는 '척후병'을 보내며 조심조심 올라왔다고 한다. 혹시라도 조선군의 매복이 있다면 꼼짝없이 발목이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을 조선 최고의 명장 '신립'이 지키고 있었다. 헌데 신립은 '천혜의 요새'를 비우고 '탄금대' 벌판에서 배수진을 치고 적들이 지나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훗날 명나라 장수 이여송도 일본군을 추격하며 이곳을 지날 때 "신립이 이곳을 두고도 왜적을 막지 못했으니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었구나"하며 한탄을 했단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신립 장군'이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머리 나쁜 장수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략' 없이 '용맹'하기만 한 장수였다는 평가로 볼 때, 신립은 '지키는 전투'보다는 '이기는 전투'만을 머리에 그리고서 일본군을 얕잡아 보고 무작정 덤빈 셈이다. 이런 신립이었으니 말을 타고서 뻘밭을 달려 일본군과 한판 붙었다가 전세가 밀리자 후일을 도모하지도 않고 탄금대에서 강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만약에라도 전략을 세울 줄 아는 '용병술'을 갖춘 장수였다면 '조령'을 단단히 지키면서 '응원군'과 '의병'이 지원해주길 기다리면서 전세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럼 '조령'이 뚫리더라도 일본군을 보기만 해도 도망가기 바빴던 조선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라도 생겨서 명나라의 도움 없이도 능히 지켜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한양까지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선조는 '파천'을 결심한다. 일본군의 진격속도보다 더 빠르고 비밀리에 실시된 '파천'은 백성들의 울부짓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의문'을 지나 '임진강'을 건너 개경을 지나, 평양을 스쳐지나면서, 의주에 도착하고도 '압록강'까지 건너려고 하였다. 일본군이 한양에 당도해서 놀란 것은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도주한 것보다 저토록 빠른 속도로 도주할 수 있는 능력이었을 정도였다.

 

  허나 조선은 온갖 '빈틈'을 다보여주고 만다. 최초의 승전보를 거둔 장수 신각을 '도망간 쫄장부'의 비겁한 핑계 한 마디에 처형했다가 뒤늦게 승전보를 받고서 후회한 장면, 임진강을 방패 삼아 일본군의 진격을 막는 장수가 일본군의 '거짓 퇴각'에 속아 패배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중지란'을 일으키며 싸워보지도 못하고 평양으로 후퇴한 장면, 왕자의 신분으로 전쟁통에서조차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리다 백성들의 반란에 일본군의 수중에 포로로 잡히는 장면 등등 지금 보면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일 정도로 허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애초에 <징비록>을 쓴 목적이 바로 이런 빈틈을 매워 다시는 전란에 빠지지 말라는 '반성'과 '경계'를 담았는데, 이를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끝내 '병자호란'을 또다시 겪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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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2. 읽은 쪽수 : 34쪽 ~ 61쪽

 

3. 책 읽은 뒤 느낌

  1591년 봄, 통신사로 갔다 돌아온 황윤길과 김성일 일행은 선조 앞에 나아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서인 황윤길은 일본이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라고 하였으며, 동인 김성일은 정반대로 그럴 일은 없다고 하였다. 류성룡이 이를 의아하게 여겨 김성일에게 다시 물어보니, "어찌 일본이 쳐들어오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겠소만, 일본이 쳐들어온다고 똑같은 보고를 올리면 민심이 동요되어 나라에 해를 끼칠까 걱정한 까닭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결론인즉, 쳐들어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다. 훗날 김성일은 왜적이 쳐들어오자 가족도 돌보지 않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다 순국하였으니 '충신'이라는 칭호는 아깝지 않지만, 전쟁을 1년이나 앞두고 변변한 대비도 하지 못하도록 한 죄값은 결코 씻을 수 없게 되었다.

 

  허나, 이는 김성일만 탓할 수 없는 노릇인 것이 당시 조선은 오랜 평화로 인해 해이해질대로 해이해졌기 때문에 대비를 했다손치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탄금대에서 유명을 달리한 '신립 장군'을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류성룡이 조선의 군대가 기강이 해이해졌으니 장군께서 기강을 바로 잡으셔야 한다는 말에도 '평화'를 운운했고, 왜국의 조총이 큰 위력을 발휘한다고 하니 조심하라고 일렀어도 '명중률도 낮고 재장전도 느린 무기'라고 깔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북쪽 오랑캐인 여진족의 침략이 잦아지자 선조 임금이 뛰어난 장수를 천거하라고 이르자, 류성룡이 '이순신'을 천거한 것이 유효적절했다. 실제로도 이순신은 북방에서 여진족을 소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허나, 부패하고 무능한 상관들 때문에 실력을 인정받기는커녕 목숨이 달랑거릴 정도로 박대를 당할 뿐이었다. 이순신이 이 당시에 '백의종군'을 경험했으니, 훗날 왜적의 계략과 원균의 무능으로 인해 고초를 겪은 것이 두 번째인 셈이다.

 

  암튼, 조선은 전쟁발발 1년 전을 이렇듯 허무하게 보내고 있었다. 다만 민심이 동요되고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는 피부로 느낄 정도로 느껴지고 있었다. 왜국 사신들의 무례함이 나날이 높아지고 경상도 일대에서 왜인들의 자취가 싹 사라진 것을 눈치 채고 나서야 부산 앞바다에 왜적의 배들이 새까맣게 다가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1592년 4월 13일이다.

 

  부산포 앞바다에 아무런 저항없이 상륙한 일본군은 곧바로 한양을 향해 진격을 시작하였다. 부산포를 지키던 첨사 정발은 준비할 새도 없이 공격을 받고 전사하고 말았다. 부산포를 점령한 일본군은 이틀 뒤에 동래성에 다다랗고 부사 송상현은 용감하게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배하자 항복도 하지 않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에 감동한 일본군이 후하게 장사 지내주었다고 전해진다. 동래성이 무너지자 인근 고을도 힘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은 '제승방략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조선 초기에 '진관 제도'가 지역 방어에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삼포왜란 당시에 왜적이 대규모로 쳐들어오자 각개격파를 당하며 속수무책이 되자 여러 지역의 진관을 하나로 묶어서 대규모로 반격을 하니 이것이 바로 '제승방략 제도'다. 이 제도는 중앙에서 파견한 지휘자가 도착할 때까지 대규모로 군사를 모아놓고 방어를 하는 등 꾸준한 군사훈련이 필수였는데, 삼포왜란 뒤에도 변변한 군사훈련을 하지 않았던 조선으로서는 100여 년동안 전란으로 다져진 수십 만의 일본군에 맞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어쨌든 외적이 쳐들어왔으니 당당히 맞서 싸워야 함에도 한양에서 '응원군'을 모집해서 전장으로 보내기 위해 군사를 모았는데, 관복을 치렁치렁하게 입고 손에는 서책과 붓을 들고 머리에는 관모를 뒤집어 쓰고 징집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허약한 유생들이 대다수였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을 뿐이다. 이에 전장으로 나아가야 할 이일 장군은 이들을 내버려두고 홀로 떠나니 '임진왜란' 초기에 허무하게 평양까지 밀려버린 것이 우연이 아니었으며, 평양에서 겨우 진군을 멈추게 한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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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1-1. 징비록 | 독서습관캠페인 2020-10-2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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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매인증이력

징비록

유성룡(류성룡) 저/김흥식 역
서해문집 | 2014년 11월

 

2. 읽은 쪽수 : 처음 ~ 34쪽

 

3. 책 읽은 뒤 느낌

  <징비록>은 10여년 전부터 벼르던 책이었다. 하지만 여러 출판사에서 계속 출간될 때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해놓고 이제사 겨우 읽게 되었다. 아마 이 책도 여러 출판사의 책들을 섭렵하며 읽게 될 듯 싶다. 인문학 책은 곱씹어 볼수록 맛이 달라지는 법이니 말이다. 우선 가장 먼저 눈독을 들였던 [서해문집]의 책을 골라 들었다. 물론 <징비록>도 일사천리로 읽어가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드문드문이라도 내 눈에 띈 이상 결코 읽힐 수밖에 없다. 1만 편의 리뷰가 작성되는 그 날까지 말이다.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 7년간에 보고 듣고 경험했던 일을 총망라해서 기록해놓은 '기록문학'에 속한다. 조선에서 '기록문학'이라는 것도 흔하지 않지만, 서애의 <징비록> 이전에는 거의 없다시피한 귀한 자료라고 한다. 그런데도 이 책이 1백년 뒤에 일본에서 먼저 널리 읽히고 난 뒤에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짐작컨대 끔찍한 역사를 경험하고도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조선사회'에서 의도적으로 소외시켰거나, 동인의 갈래인 남인 출신인 서애의 저서인 탓에 '서인'이 정국을 주도한 뒤로는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암튼, 조선시대에 관심밖이었던 것은 둘째치고, 오늘날에도 관심밖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다시금 역사를 되돌아보며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역사의 목록'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으뜸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와야 할 지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참혹했던 전쟁 가운데 으뜸인 <임진왜란>을 다시금 조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징비록>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인 셈이다.

 

  이 책의 시작은 성종 때 생을 마감한 신숙주의 유언이다. "전하, 일본과 친하게 지내시옵소서" 이는 일본이 예뻐서라기보다는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오랑캐를 잘 감시해야 뒤탈이 없을 거라는 '경고'의 말이렷다. 하지만 조선은 신숙주의 '경고'를 무색케 할 정도로 태평성대를 누렸고, 그 시절을 거듭된 사화로 시간낭비를 하고 말았다. 조선은 개국 이래 200년의 평화를 끝으로 환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조선도 손을 놓고 당하길 기다린 것만은 아니다. 나름의 선견지명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이를 대비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율곡의 '십만양병설'이 그중 하나이고, 서애의 '이순신, 권율 천거'가 또 하나다. 하지만 율곡의 의견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백성들에게 위기감만 조성한다는 이유로 시작도 하지 못했고, 서애의 천거만 겨우 실행에 옮겨졌을 뿐이다. 이 두 사람이 <임진왜란>때 혁혁한 공을 세운 것만 보아도 서애의 공은 나무랄 데가 없을 지경이다.

 

  허나 위기는 바다 건너에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통일을 하더니 칼의 방향을 조선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칼의 움직임은 '대마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마도주는 조선의 '번국'으로 왜국보다는 조선과 더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헌데 히데요시의 통일 이후에는 왜국의 편을 들어 조선침공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되니 역사의 아이러니는 참으로 '극적'이다. 만일 조선이 신숙주의 '경고'를 기억하고 대마도의 움직임이라도 예의주시했으면 참변을 막을 수 있는 대비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은 없다. 조선의 평화는 그 끝을 보이고 '피바람'은 점점 더 세게 불어올 뿐이다.

 

  임진왜란 직전에 오랜만에 조선은 '통신사'를 파견하기로 결심한다. 정말 전쟁을 일으킬지 아닐지 확인할 기회라는 서애의 의견을 들은 선조가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상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정을 대표로 보냈는데, 1590년에 간 통신사는 1951년에야 되돌아오게 된다. 일본의 관백이 된 히데요시가 조선에 통신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고서 차일피일 미룬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더구나 히데요시는 '통신사 일행'을 푸대접하기 일쑤였다. 이에 부사 김성일이 일일이 예법을 들먹이며 노발대발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체면'을 겨우 차리고 돌아올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무엇 때문일까? 통신사의 수장은 '서인 출신'의 황윤길이다. 그런데 이 책에도 '황윤길의 행적'이 그닥 적혀 있지 않다. 왜국이 조선 사신을 접대하는 방식이 불손할 때마다 불평불만을 드러낸 것은 '부사 김성일'이었다고 콕 집어서 서술하고 있다. 이는 '김성일'이 류성룡과 같은 '동인 출신'인 때문은 아닐까? 초점이 온통 '상사'가 아닌 '부사'에 맞춰져 있는 것이 묘하다. 대개는 '우두머리의 행적'을 논하기 마련 아닌가. 그런데 <징비록>은 '이인자'인 김성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 읽어보고 다른 책도 읽어보면서 확인해봐야 할 부분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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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9-10.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 독서습관캠페인 2020-10-2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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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매인증이력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고병권 저
천년의상상 | 2020년 03월

 

2. 읽은 쪽수 : 208쪽 ~ 완독

 

3. 책 읽은 뒤 느낌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재생산력'에 주목했다.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생산해내는 능력을 '생산력'이라고 한다면, '재생산력'이란 노동자가 생산할 수 있는 힘을 얻거나 회복하고, 또 다른 노동자를 탄생하는 능력까지 모두 포함한 능력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왜 '재생산력'에 주목했는가? 그건 '노동자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기계는 망가지면 고치거나 부품을 갈아끼우거나 새 기계로 교체하면, 그뿐이다. 허나 노동자는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중히 다뤄줘야만 한다. 그리고 노동자의 유일한 생산수단이 '노동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노동자가 노동을 한 뒤에는 충분히 쉬고 노동력을 회복하며 쾌적한 환경에서 가정을 꾸리며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생산성'만 고려해서 임금을 줄 것이 아니라 '재생산성'도 충분히 고려해서 넉넉한 임금을 지급해야만 한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9권을 마쳤다. 현재 10권까지 출간되어 있고, 내년즈음에 12권이 완간이 될 예정이다. 그래서 잠시 쉬려고 한다. 올해에만 9권을 독파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자본론>이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더구나 '경제'에 문외한인 까닭에 정말 한권 한권을 어렵게 읽었다. 심지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나도 모를 소리를 손가락이 이끄는대로 써내려간 적도 많다. 그래서 고병권의 <북클럽자본> 시리즈는 잠시 내려놓고 '단행본'을 읽어보려고 한다. 일단 마무리를 해놓은 뒤에 읽어보려 했는데, 9권을 읽으면서 너무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뭐라도 '개념'을 익히고 다시 도전해볼 생각이다. 그 사이에 '독서습관'은 구입한 잡다한 책들을 써내려갈 계획이다. 잠시 쉬었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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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9-9.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 독서습관캠페인 2020-10-2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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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매인증이력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고병권 저
천년의상상 | 2020년 03월

 

2. 읽은 쪽수 : 190쪽 ~ 207쪽

 

3. 책 읽은 뒤 느낌

  마르크스는 '성과급제'도 비난합니다. 임금을 지급하는 '형태'만 달리해도 자본가들에게 엄청난 이득이 된다면서 말입니다. 마르크스가 제시하는 '성과급제의 특징'은

 

  첫째, 노동의 질에 대한 관리가 쉽다. 평균적 품질 검사만 실시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노동자는 알아서 제품 생산에 신경을 쓰게 된다.

 

  둘째, 노동강도에 대한 관리가 쉽다. 시간당 생산량만 확인하면 된다.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임금을 깎던가, 해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의 질이나 강도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감독노동의 필요가 줄어들어 하청을 양산할 수 있다.

 

  넷째, 임금이 생산량에 따라 지급되기 때문에 노동자들로서는 임금을 더 받기 위해 노동강도를 스스로 높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체적인 노동 강도가 높아지게 된다.

 

  다섯째, 노동자들의 개인적 차이가 부각된다. 따라서 임금을 더 받는 노동자와 덜 받는 노동자 간에 갈등이 조성되고 노동자들의 연대가 어려워진다.

 

  여섯째, '근로'를 조장하는 도덕적 효과가 생긴다. 임금을 적게 받으면 '게으른 노동자'라는 탓을 하기 쉽다.

 

  일곱째, 자본가는 불황이든 호황이든 무조건 이득을 얻게 된다. 왜냐면 시장 변동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호황일 때는 '성과급'을 통해 생산량을 쉽게 늘릴 수 있고, 불황일 때도 '생산량'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판매가 저조하다는 이유를 들어 생산량을 줄이고 임금도 줄여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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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9-8.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 독서습관캠페인 2020-10-2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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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매인증이력

임금에 관한 온갖 헛소리

고병권 저
천년의상상 | 2020년 03월

 

2. 읽은 쪽수 : 168쪽 ~ 189쪽

 

3. 책 읽은 뒤 느낌

  마르크스가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하려고 했던 까닭을 이제사 이해하게 되었다. 흔히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을 왜 '노동'이 아닌 '노동력'으로 환산해서 받아야만 하는지도 말이다. 그 까닭은 바로 '노동시간에 따라 받는 임금'에는 노동자가 생산력을 회복할 만한 여력을 남겨두지 않고, 결국 노동자의 '생명력'을 갉아먹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노동자는 '노동력'을 유일한 생산도구로 쓰고 있는 탓에 땀흘려 일한 뒤에는 반드시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까지 고려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노동자는 먹고 살 수가 없게 된다.

 

  그렇다면 '노동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6만 원인 경우에 8시간 노동을 했다면, '시간당 6/8만 원'을 번 셈이다. 다시 말해 '시급 7500원'을 번 셈인데, 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요즘 물가를 반영한다면 매우 적은 시급이긴 하지만 이해하기 편하게 예를 들자면 말이다. 이렇게 30일을 일하면 한 달에 180만 원을 번다. 연봉으로 치면 2160만 원을 벌게 되므로 '서민 라이프'를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버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시간'으로 임금을 받게 된 노동자는 일 년동안 거의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게 된다. 휴일이나 휴가를 가게 된다면 수입이 깎이게 되고 '서민 라이프'가 아니라 '빈자 라이프'를 살게 된다. 혹시라도 질병에 걸리게 된다면...'극빈자 라이프'로 고고씽 하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유휴수당'이라는 것이 도입되어 있다. 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당을 챙길 수 있는 제도다. 이는 노동자의 '생명력'을 갉아먹지 않고 노동자의 건강과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노동시간에 따른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에 따른 임금'을 지급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노동자의 삶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바로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노동'과 '노동력'을 그토록 구분지으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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