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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2-1. 대한민국은 왜? | 리뷰어클럽을 읽다 2020-11-0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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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고 있는 책

대한민국은 왜?

김동춘 저
사계절 | 2020년 10월

 

2. 읽은 쪽수 : 처음 ~ 38쪽

 

3. 책 읽은 뒤 느낌

  책은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친일파 윤치호를 비교하며 시작되었다. 둘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을사늑약' 이전에는 개화를 주장하며 조선의 독립과 근대에 앞장 섰던 주역이었으며, 천주교와 개신교로 각각 개종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첫머리를 꺼냈다. 그런데 둘은 어찌하여 시작이 비슷하였는데도 각각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로 갈라서게 되었는지 뒤를 쫓으며 '대한민국의 정체성' 가운데 가장 논란이 큰 친일파와 개신교의 행보를 밝혀내고 있다.

 

  구한말의 분위기를 보면 '청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개화의 목소리는 제법 높았다. 허나 '위정척사'를 외치는 양반들의 낡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떨쳐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허나 지배층의 논란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 오히려 아래에서 더욱 뜨겁게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으니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었다. 훗날 '천도교'로 개명을 하는 '동학'은 민초들의 바람을 담아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

 

  허나 일본군의 개입으로 '동학혁명의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누구나 평등한 세상에 살 수 있다는 민초들의 열망까지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천도교'가 허락되지 않자 허락된 '천주교'나 '개신교'로 개종을 하며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부자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세상을 꿈꾸었다.

 

  한편, 개화의 꿈을 키우던 지식인들은 '갑신정변'의 실패와 '독립협회'의 실패를 보면서 자주적인 방법으로 독립과 개혁, 그리고 근대를 실현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고 각자 미국의 힘으로, 프랑스의 힘으로, 일본의 힘으로 조선을 근대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윤치호도 그중 하나였다. 허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희망'을 엿보는 것과 동시에 지독한 인종차별도 겪으면서 '미국의 힘'으로 조선을 근대화시키는데 반감을 갖게 된다. 허나 일본은 달랐다. 같은 '황인종'이라는 동질감과 함께 막 피어오르는 '근대적 일본의 생동감'에 친밀감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윤치호는 썩을대로 썩은 조선을 탈바꿈하기 위해서라면 '일본의 지배'를 받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며 '일본의 편'에 서서 '일진회'에 가담했다.

 

  그리고 '러일전쟁'이 벌어지자 안중근과 윤치호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둘 다 '일본의 힘'을 빌어서라도 조선의 근대화를 이룰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러일전쟁'이 벌어지자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 조선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일본군을 보면서 '일본의 힘'이 조선을 순순히 도와주지 않으리라는 결론에 다다랐고, 그로 인해 '이등박문'을 사살한 것이다. 반면, 윤치호는 '일본의 힘'이 러시아를 무너뜨릴 정도라는 것을 목격하고 더욱 가열차게 친일의 길을 걷게 된다.

 

  이로써 개화를 꿈꾸고 독립에 힘썼던 수많은 이들이 각자 '나름의 길'을 택하며, 한쪽은 독립운동가로, 다른 한 쪽은 친일매국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셈이다. 오늘날 '독립운동가'와 '친일적폐'를 구분하기 힘든 까닭이고, 개신교들 가운데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걷는 이들의 이력을 살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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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1-3. 공리주의 | 리뷰어클럽을 읽다 2020-08-0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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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고 있는 책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저/이종인 역
현대지성 | 2020년 06월

 

2. 읽은 쪽수 : 59쪽 ~ 72쪽

 

3. 책 읽은 뒤 느낌

  공리주의의 원리는 '도덕적 의무감'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반론도 만만찮다. "내 행복은 다른 곳에 있는데 왜 내가 일반 행복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는 거지?"라는 질문에 마땅한 답을 해주어 설득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도덕적인 삶'을 동경한다. 평생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헌신하는 위인들을 보며 존경심이 샘 솟는 까닭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칭찬'과 '포상'을 바라기 때문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또는 남을 돕는 삶을 살지 않으면 '징벌'을 내릴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서 돕는다는 것도 아니다. 굳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도덕적인 기준'에서 칭찬과 징벌을 할 뿐이다.

 

  하지만 대개는 '양심' 때문에 공리주의를 실천하곤 한다. 어떤 상황에서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보다 남을 위한 행동을 할 때 종종 말하는 '양심에 찔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처럼 '선한 마음(양심)'에 따르는 삶은 도덕의 기준이 되기에 더할나위 없다. 그렇다면 양심은 선천적일까? 후천적일까? 아니면 그걸 논할 필요가 없을까? 나에겐 그렇다. 앞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양심'을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양심적인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보다 안락한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들은 이런 '이기적이기 않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자연스런 바람을 갖고 있다. 우리 이웃이 그러길 바라고, 우리 동네,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 더 나아가 우리 국가, 우리 세계가 그러하길 바란다. 이런 확신이야말로 '최대 행복 도덕의 궁극적 바람'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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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1-2. 공리주의 | 리뷰어클럽을 읽다 2020-07-28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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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고 있는 책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저/이종인 역
현대지성 | 2020년 06월

 

2. 읽은 쪽수 : 19쪽 ~ 57쪽

 

3. 책 읽은 뒤 느낌

  '공리주의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너무나도 많은 반론을 접하고서는 '공리주의'가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먼저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면, '공리(功利)'는 공명과 이욕을 추구하는 것이고, '공리주의'는 쾌락이나 행복, 이익 따위를 행위의 목적과 선악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주의로, '쾌락주의'의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공리(utility:유용, 효용)'를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일반적인 '쾌락'과는 정반대라는 생각에 '공리주의'를 '쾌락주의'로 이해하면 모순이 되지 않느냐는 생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하는 '쾌락'이란 '육체적 쾌락'이나 '즉물적인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 괘락'이면서 동시에 '형이상학적 쾌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남녀가 서로 부등켜 안고 격렬한 유흥을 즐기는 쾌락이 아니라 백 권의 책을 다 읽고도 백 권의 책을 더 주문하면서 얻는 쾌락과 같은 '높은 이상'을 가진 쾌락을 말한다. 다시 말해, '쾌락주의'란 나 혼자만의 이익을 챙겼을 때 얻는 기쁨(쾌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한 행위가 전적으로 남을 위한 행위가 되고,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며, 더 나아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얻는 '쾌락'을 이르는 것이다. 굳이 우리 말로 '뿌듯함'이라고나 할까.

 

  그렇지만 '공리주의'가 놓치고 있는 점은 굉장히 많다. 흔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대변하고 있는데, 여기에 준한 행동을 하고서도 '절대 선'이 아닌 행동들이 너무나 많다는 지적이 바로 그렇다. 이를 테면, 친구에게 빌린 돈 1백만 원을 갚지 않고 자선단체에 기부를 해버리는 행위는 분명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 행한 행동이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행위다. 또한 오직 1명만 구조할 수 있는 상황에서 2명이 물에 빠진 경우, 어머니와 의사 중 누굴 구할 것이냐? 그 의사는 지금 재난 현장에 긴급 투입된 첫 번째 의사이며 수백 명의 생사를 가르는 '골든 타임' 안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의사선생님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어머니를 버리고 의사선생님을 구해야만 한다.

 

  이처럼 '공리주의'는 빈틈이 많은 도덕적 명제이기도 하다. 급박하면 할수록 '제1의 도덕원칙'이 필요한 법인데, '공리주의'를 따랐다가 오히려 낭패를 보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이런 '반론'을 들어서 '공리주의'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도덕적 원칙'을 적용할 때는 일반적으로 긴급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며, 첨예하고 민감한 주제로 고민에 빠질 정도로 심각한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이익'은 잠시 묻어두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고 결정하는 '공리주의'를 따르는 것이 뭐가 그리 큰 잘못이란 말인가?

 

  말이 나왔으니, '공리주의'가 아니더라도 친구의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해버리는 똘아이는 맴매로 다스려야 할 것이며, 어머니와 의사선생님 중에 누굴 먼저 구해야 할 상황에 처하면, 백이면 백, 모두 어머니를 구할 것이다. 그토록 긴급한 상황에서 "당신은 누구입니까? 내가 당신을 먼저 구할 명분을 말씀해주십시오. 저분은 제 어머님이십니다. 나는 내 혈육을 먼저 구할 작정입니다. 이보다 더 큰 명분이 당신에게 있습니까?"라고 묻기도 전에 이미 어머니를 먼저 구하고 다른 이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행여나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대답'을 들었다고 한들, 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당에 '거짓 진술'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이는 애초부터 '반대를 위한 반론'일 뿐이다.

 

  이처럼 '공리주의'를 못마땅해하는 이들은 참 많았지만, 그럼에도 '공리주의'는 참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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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1-1. 공리주의 | 리뷰어클럽을 읽다 2020-07-2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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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고 있는 책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저/이종인 역
현대지성 | 2020년 06월

 

2. 책 읽은 뒤 느낌

  옳고 그름을 따지는 학문인 '도덕'은 인류와 함께 탄생했다고 볼 수 있지만, 여지껏 제대로 정립되지 안흔 학문이다. 그 까닭은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고, 이쪽의 설명을 들으면 이쪽이 옳게 들리고, 저쪽의 설명을 들으면 저쪽이 옳게 보일 정도로 애매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루기 힘든 것이 '도덕'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제1원리'를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옳다고 여기고, 그르다고 여기는 '기준'은 무엇으로 정해야 할까? 여기서 '도덕 법칙'의 밑바탕이 되는 두 가지, '선험'과 '경험'을 예로 들 수 있다. '선험(아프리오리: a priori)'은 경험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으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는 도덕명제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보고 나니까 '나쁘다'는 것을 깨달아서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경험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해보니 알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험은 '직관적'이고, 경험은 '귀납적'이다. 그러나 두 가지 원리는 모두 '연역적'인 방법으로 귀결이 되어야 하므로, 역시 '도덕원리'를 먼저 세우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럼 '도덕의 제1원리'에는 어떤 것을 내세워야 할까? 당연히 '공리주의'를 내세워야 한다. 어떤 행위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도덕률 가운데서도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원칙'이 있다면, 그것도 '다수의 행복'이 보장되는 방법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따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모두의 행복을, 다수의 행복을 따르지 않는다면...여기까지 다루고, 본론으로 넘어가려 한다. 내일은 '공리주의란 무엇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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