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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8 개설

나의 리뷰
통합교과(과학영역)에 도움이 될만한 책 | 나의 리뷰 2007-01-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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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 바퀴로 가는 과학자전거

강양구 저
뿌리와이파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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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과학전문가가 아니라 비전문가, 즉 일반인이기 때문에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 싫어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래서 이 책도 간단하게 한마디로 소개하자면, <과학>을 전문가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일반인들도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좀더 나아가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책입니다. 그 예로 바로 저자 자신을 들고 있지요.

 

 이 책의 저자는 다들 알다시피 <황우석 사태>를 고발한 프레시안 기자 '강양구' 입니다. 저도 한 때나마 이 사람을 증오했던 사람으로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가졌었고, 그래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과 황우석이 저지른 사기행각을 떠나서 이 책을 바라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이 글은 그 결과이자, 책소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앞에서 말한 이유로, 이 책을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과학>이 어떻게 기업들에게 소외를 당하고 왜곡되고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던데로 <과학>이 그다지 합리적이고 논리정연하지 않고 정치·경제세력들에 의해 철저히 자기네들의 이익대로 선별되고 있기에, 결코 인류전체를 위해서 <과학>이 활용되고 있지 않으니, 이런 사실을 <일반인>들이 널리 알고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일반인>이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과학>같은 어려운 것을 다룰 수 있고, 더군다나 <감시자>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결코 어렵지 않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실례로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시민패널>이 어떻게 <과학의 감시자>로 역할수행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른 감이 안오시면 <MBC 100분 토론>을 떠올리셔도 무방할 정도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 그리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떠오른 것은 '<수많은 과학계의 비리>가 오늘날 강대국들의 원천기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내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도덕성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이 발전을 해야 모든 인류에게 공정하고, 또 진정으로 인류에 공헌할 수 있겠지만, 강대국들의 기득권을 내삼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우리네 심정으로서는 다소 거리가 먼 주장이 아닐까요?

 

 "공평한 세상! 좋지, 좋구말구...그런데 언제 한 번이라도 공평한 세상이 있었느냐구? 기득권층은 몰락을 해도 기득권층으로 다시 탈바꿈하는 것 아냐? 막말로 <황우석>이 조금더 사기를 오래 쳐서 진짜 원천기술에 성공할 수 있었다면 우리 나라도 일약 선진강대국 대열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 아냐? 그런 다음에 도덕성 따지고, 공정성 따졌더라면 밑져야 본전이라구 우리도 <미국>처럼 떵떵거릴 순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기 못 피고 살지는 않겠지. 안그래?"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마음이 <진정한 과학의 길>을 더욱 멀게 하고, 과학자의 <도덕적 해이>에 의한 폐해가 얼마만큼 큰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강양구 저자가 말하는 것이 백 번 지당한 말입니다. 그래도 왠지 떨떠름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아주 좋은 책임에 분명한데도 말이죠.

 

 참, 한 가지만 더 언급할까요^^ 이 좋은 책이 더 잘 팔릴 수 있도록 말이죠. <논술교사>로서 말씀드리는 건데, 이 책은 <과학>, <사회>분야별로 꽤 정리가 잘 된 책이고, 또 주제별로 관련 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제별로 <논술공부>하기에 편리하더군요. 특히 <과학분야>에 말이죠. 세이건의 <코스모스>나 카슨의 <침묵의 봄>같은 유명한 책뿐 아니라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사회>문제에 관련 책들이 골고루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책에 관련된 주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바로 이 책이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논술문 쓸 때 이 책을 정독하면 그만큼 배경지식을 풍부하게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논술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한 것입니다. 청소년이 읽기에 전혀 지루하지도 않은 장점을 빼놓을 수 없겠죠. 아무튼 이래저래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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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하고, '모호'한 답답함에서 벗어나고플 때... | 나의 리뷰 2007-01-05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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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국어실력이 밥먹여준다

김경원, 김철호 공저/오성봉 그림
열린박물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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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야 우리 <국어>가 제자리를 찾아 나랏말로 거듭난지 100년 남짓 되었습니다. 물론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종대왕이 만들어내신지는 더 오래 되었지만, 제대로 된 문자로 대접받지 못하고 <언문>으로 푸대접을 받던 것이 나라를 잃어버린 지경에 처해서야 겨우 대접받기 시작한 때부터 헤아린 덕분이지요. 이처럼 우리 <국어>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이며, 이런 문자를 사용하는 우리를 세계 여러 나가 언어학자들이 '문자학적 사치'를 누리고 있다고 극찬 하고 있지만, 그 사치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처럼 <국어>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크게 두 가지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국력>이란 힘의 논리로 <국어>를 바라보는 관점 때문에 오랜 세월 '한자어'에 밀렸고, 이제 '영어'에 밀려 그만큼 소외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어>적 표현은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기에 차치하겠습니다.

 

 이 책에서도 <감사하다/고맙다>나 <마음먹다/결심하다>에서 '우리말'보다 '한자어'가 더 격식을 차리고 품격 높은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물론 현재 많은 이들이 어감상 그렇게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처음부터 그런 뜻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통일신라'이후 관제나 법제, 심지어 '왕'이란 호칭까지 '우리식 표현(이사금, 마립간)'보다는 '중국식 표현(왕)'에 따르고 더 대우를 하다보니 그랬을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런 면을 도외시하여 논외로 보고 있어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애매모호>한 표현 때문입니다. 정작 '애매하다'와 '모호하다'의 구분도 우리는 쉽게 구분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쓰고 있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애매하다'는 '이것과 저것을 구분하기 힘들게 비슷할 때' 사용하는 말이고, '모호하다'는 '이것과 저것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애써 똑부러진' 것 보다 '두루뭉술한' 것을 선호하는 우리 민족적 성향에 근거하는 것이라 마냥 매도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허나 <언어규칙> 등 '똑부러진' 면이 필요할 때에도 '똑부러지'지 못하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엉덩이/궁둥이>와 <밑/아래>의 경우가 위와 같은 경우라 하겠습니다. '엉덩이'와 '궁둥이'의 경우엔 '엉덩이>궁둥이'격인 표현이므로 엉덩이는 궁둥이보다 큰 범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애매하게 활용되고 있더군요. 이를 테면 주사를 놓을 때는 '엉덩이'에 놓는 것이고, 몽둥이로 때릴 때는 '궁둥이'를 때리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 하였습니다. 맞는 표현인가요? 절대로 틀릴 수는 없나요? 이렇게 우리는 '애매'한 표현을 하고, 엉덩이와 궁둥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코 밑'과 '코 아래'는 '코' 혹은 '코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요? 과연 인중은 '코 밑'인가요, '코 아래'인가요? 둘 다 맞다면 이런 것으로 우리는 헷갈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렇게 적확하게 구분하여 쓰고 있나요? 지금 우리가 이 따위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 '그렇다', '아니다' 논쟁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책이 읽힐 가치가 있는 것이고,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똑부러지게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그 활용자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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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과 이야기 속에 담긴 과학 이야기 | 나의 리뷰 2007-01-0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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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리하라의 과학블로그 2

이은희 저/류기정 그림
살림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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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대립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비과학>입니다. 이른바 <사이비과학>이라고 일컫는 <오컬티즘occultism>, 즉 <신비주의>가 내뿜는 '근거 없는 그럴듯함' 혹은 '근거 불충분한 그럴듯함'입니다. 예를 들면 '가슴이 큰 여자는 멍청하다'라는 속설 따위를 말하는 거죠. 이 책은 우리가 잘못 맹신하고 있는 과학적(?) 믿음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힌 친절한 안내서라고 보면 적절합니다.

 

 저자는 '이은희'입니다만, 본명보다 '하리하라'라는 필명이, 필명보다는 '과학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여자'로 더 유명합니다. 그녀의 책이 벌써 네 번째라는 사실을 아신다면 이 책을 재밌게 읽은 다음엔 꼭 읽게 될 겁니다. 실제로 저도 그런 독자 중에 한 명이니까요.

 

 그녀가 과학을 들려주는 방식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과학을 '있는 그대로' 들려줄 뿐이죠. 그런데도 그녀가 들려주는 과학은 재미납니다. 그건 그녀는 과학지식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특별한 재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따분한' 과학자인데도 말이죠.

 

 이 책이 주목을 끌만한 또 하나의 이유는 '제목'에 있다고 봅니다. 제목이 <과학 블로그>이죠. 요즘 젊은이치고 자기만의 블로그를 하나쯤 가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블로그>는 대중화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말하는 <과학>이 '대중성'을 띠고 있다는 반증이랄 수 있겠죠. 또 많은 사람들이 자기 블로그가 있음에도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들르는 이유는 자기와 취향이 비슷한 많은 사람과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고, 쉽게 친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따분한 과학자의 이론투성이 책이 아니라 쉽고 재미있고, 더구나 유익하기까지한 '이은희'만의 과학이야기를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녀의 과학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인생의 한 단면을 찾아내고 공감하는 것처럼, 이은희는 과학적 사실에서 일상 생활의 일부분을 보여주어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는 것이죠. 이런 패턴은 <하리하라의 생물학카페>에서부터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하튼 과학이 어렵고 지겹고, 그런데도 꼭 해야만 알아야만 하는 분께 적극 추천합니다. 이 책을 읽고도 과학에 정내미가 떨어지시는 분이라면 일짜감치 과학을 멀리하시라고 귀뜸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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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놀라워라 | 나의 리뷰 2007-01-01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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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산문답

홍대용 글/이숙경,김영호 공저
꿈이있는세상 | 2006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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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의 <의산문답>을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의산문답>이라고 해서 의학관련서적인줄 알았었다. 그런데 읽어보니 그렇지 않음을 알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고정관념을 확~뜯어고치는 책이라 하겠다. 먼저 성리학만이 전부인 줄 알던 조선사회에 성리학 이외의 학문을 받아들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고, 또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에 만물이 평등하다는 주장을 하며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조선에서 보면 조선이 세상의 중심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 하늘이 둥글고 땅이 모난줄만 알던 사람들에게 지구가 둥글고 스스로 돌기까지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홍대용은 당시 양반의 신분으로서 말하기 힘든 처지에서도 뼈 있는 말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면이다. 기득권층에 속해 있으면서 기득권으로 편하게 삶을 구가할 생각을 버리고 도탄에 빠진 백성의 편을 드는 것으로 모자라 같은 처지인 양반들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기 때문이다. 쉬웠을까?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홍대용은 자신의 주장이라고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실옹>을 내세워 당시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허자>를 만들어 대신 꾸짖고 있는 것이다. 실상은 <실옹>은 홍대용 자신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 책의 가치는 동양 최초로 <지구자전설>을 주장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성리학적 폐단인 중화사상에 빌붙어 소중화로 만족하고 있던 조선시대 기득권층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 있으며, 부익부 빈익빈으로 양반들만 호의호식하던 사회를 꼬집어 모든 사람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고자하는 염원도 담겨 있다. 여기서 더 발전하여 ''만물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내세워 오직 인간만이 최고라는 오만에 찬 성리학에 결정타를 날린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날에 비추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합리적인 사상임에 틀림없다. 과연 이 책이 18세기에 쓰여진 책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감히 이 책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면 첫째는 동양의 자연과학의 금자탑을 이루었다 하겠고, 둘째로는 만물이 평등하고, 누구나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객관적 합리주의에 있다 하겠다.

정말 놀라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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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맛을 아는 자는 바다에 뛰어들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 나의 리뷰 2006-12-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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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희망의 인문학

얼 쇼리스 저/고병헌,이병곤,임정아 공역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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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을 선택했을 때 제목만 보고서 내용을 잘못 짚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요즘 ''인문학이 고사 상태에 빠져있다''는 심각한 사회 현상속에서 단지 <인문학>에 관심을 끌려는 여타의 책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이공계열전공''이라는 핑계로 위안삼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것을 보충해보자는 심사로 이 책을 읽으려 했던 점이다.

이 책에는 한마디로 인문학에 관심을 끌기 위한 재미있고 유쾌한 인문학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그런 의도시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대신 한국 사회의 인문학 침체현상에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분이거나 이 땅에 빈곤을 종식시키고자 마음 먹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또한 자기 스스로 지긋지긋한 가난을 평생도 모자라 자식에게 되물림하고 싶지 않은 분들에게도 적극 권하고 싶다.

얼 쇼리스가 말하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법''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는 만만치 않은 방법인,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공부>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자격증''이나 ''훈련''을 쌓는 공부가 아닌 ''인문학적 물음에 의문을 품는 것''만이 진정 빈곤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한다.

당장 배고파 죽겠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싶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배고픈 자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말이 바로 얼 쇼리스가 말하는, 클레멘트 코스가 말하는 진정한 의의이다. 요즘엔 한술 더 떠 "물고기를 잡는 법보다 물고기 맛을 가르치라"는 말이 이 책에 딱 어울리는 표현일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것은 단기적인 효과 뿐이다. 이 효과를 지속시키려면 일을 해야 한다. 실제로 노숙자들에게 한 끼의 식사도 중요하지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단지 일자리만 제공한다고 가난한 생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근본원인인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더 중요하고, 이를 스스로 깨닫는 것이 빈곤탈출의 지름길일 것이다. 이런 의욕과 깨달음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가? 얼 쇼리스는 바로 <인문학>에서 그 길을 찾은 것이다.

먼 그리스 아테네 사람인 소크라테스가 사용했던 <산파술>은 소피스트(궤변론자)들을 골려주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무엇인 필요한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다. 얼 쇼리스는 이것을 중우정치에서 탈피한 진정한 민주주의의 힘이고 이 민주주의를 이용해야만 빈곤탈출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어렵게 들릴테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공부하라는 말이다. 다시말해 물고기를 잡는 법(직업훈련)이 아니라 물고기 맛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인문학)을 공부하라는 말이다.

이 땅에 이미 <클레멘트 코스>가 정착되었다. 이젠 활성화시키면 된다. 아니 활성화해야 한다. 꼭 빈곤을 탈출하는 방법으로서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연예인 뒤꽁무니나 정치인들 잘근잘근 씹는 것을 멈추고 인문학적 사고를 할 때에야 비로소 <대한민국>은 구차하고 빈곤한 모습을 벗고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새단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의 힘은 단지 개인적인 빈곤을 벗어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학문의 거친 대양을 향해 과감히 돛을 펼치는 용감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데 있다. 남들이 잘 사는 모습에 진정 반했다면 질투와 시기만해서는 위로는 될 지언정 정작 잘 살 수는 없다. 잘 살고 싶은가? 부자가 되고 싶은가? 인문의 바다에 풍덩 빠져라.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 방법을 모르겠다고? 책 한 권 손에서 떨어트리지 않으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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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 | 나의 리뷰 2006-12-22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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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큐정전ㆍ광인일기

루쉰 저/정석원 역
문예출판사 | 200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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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를 초월해서 읽히는 책은 과거 어느 특정한 시대를 배경으로 썼지만, 오늘날에 비춰보아도 그대로 녹아드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아Q정전>도 그런 책 중에 하나이다. 이 책에서 아Q를 보고, "뭐, 이딴 놈이 다 있어."라고 생각하셨다면 작가가 의도한대로 제대로 읽은 셈이다. 루쉰은 20세기 초반 서구열강의 중국 침탈에도 저항다운 저항도 못해본 채 열강에게 이권을 빼앗기고 마는 조국과 국민들의 안이함을 고발하고자 <아Q정전>을 썼다.

 그럼 오늘날에는 무엇 때문에 10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책이 읽히는 것인가?

 

 그건 오늘날에도 '아Q'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강자 앞에선 비굴하게 행동하면서, 약자에겐 가혹하리만큼 강자행세를 하는 사람은 시대를 초월해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또 주는 것 없이 괜시리 밉고,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뭐든지 미운 사람도 있다. 일만 했다하면 말썽에, 그나마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언제나 희희락락하다. 예를 들면, 동네 건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서도 아Q는 "애들이 한 짓이야, 세상 말세라니까. 허허."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도, 동네 건달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힘없는 어린 비구니에게 욕지기를 하며 화풀이 한다. 치졸한 인간의 전형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일 때야 '아Q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제 힘도, 분수도 모른채 성정만 거칠어서 힘센 자에게 대들었다가 뼈도 못추스릴 정도가 되면 '아Q'만도 못한 못난 사람이 될게다. 적어도 아Q는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본능'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벗어 던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아Q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중적 가치관을 가진 기회주의자 혹은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마치 <태평천하>에 나오는 윤직원처럼, <꺼삐딴 리>에 나오는 의사양반처럼 약삭빠른 인간이 사회에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루쉰은, 즉 쑨원은 자신의 조국이 피폐해져 가는 아쉬움과 국민들이 대다수 '아Q스러워' 지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제발 깨어나자, 구(舊)사회의 폐습과 인습에 절어 열강의 침탈에 속수무책인데도 대국주의(大國主義)에 빠져 나태해진 국민들에게 일침을 놓기 위해 이 책을 썼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쑨원의 진의(眞義)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약싹빠르게 살 것인가? 아니면 무지에서 깨어나 한 번 인간답게 살아볼 것인가? 쑨원은 아Q가 마지막 총살을 당하면서 "살려줘."라고 말한 것은 <마지막 희망>을 말한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격동의 시대에 몰지각하게 살다 허무하게 죽게 될지언정 마지막 순간에라도 제 잘못을 깨달았다면 미래는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쑨원은 미래를 점쳐 보았을 것이다. 비록 신해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제2, 제3의 혁명이 일어나 바르게 우뚝 선 중국의 모습을 예감했을 것이다. 비단 중국뿐만 아닐 것이다. 우리도 가능하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수많은 목적 중 하나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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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 베개휴대 의무화를 상상하며... | 나의 리뷰 2006-12-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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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지철학

멍윈젠 저/이영옥 역
책과함께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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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한 평을 결론으로하여 먼저 말하자면, 제목만큼 호락호락한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제목인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라는 점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한 권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은 느낌이 물씬 난다. 또 '모두를 위한 철학소설'이라는 책소개에도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다. 차라리 '철학에 관심있는 모든 분에게 권하는 소설'이라고 정정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이 책의 내용에 어울리는 좀 더 친절한 설명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절대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지철학>이기에...
 
 그러나 이 책이 '모두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담론'을 주체로 한 철학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철학에 관심 있는 분들이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철학의 내용'이 아니라 '철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거지'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말해 철학의 초보자들은 어렵고 심오한 철학의 내용에 반해서 철학에 관심을 보이기보단 철학을 설파하는 사람들의 고상한 행동거지와 능수능란한 말투에 반해 관심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이지철학>이란 제목이 붙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이 책에 왜 이런 반어적인 제목이 붙었는지 이 책을 다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즉, 이 책의 내용이 쉽다는 것이 아니라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가 쉽다는 취지에서 <이지철학>이란 제목이 어울리는 것이다.
 
 정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처럼 우리 일상 속에서 담론의 문화가 꽃피웠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생각하기>를 힘들어 하게 되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논하라 하면, 그따위 고리타분하고 정답도 없는 것을 무엇에 쓰려고 핏대 세우며 이야기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한술 더떠 '시간낭비'라고 못 밖아 비난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토대에선 '사상(개념)'은커녕 '사고(생각)'조차 발전할 수 없다. 도대체 학문(공부)을 한다면서 생각조차 하길 꺼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도 생각하는 학문은 어려운 학문이라고, 비생산적인 학문이라고 무조건 꺼린다.
 
 이 책은 은연 중에 이런 주장들에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철학은 분명 어려운 학문이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조차 어렵지는 않다고, 분명 쉬울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왜냐하면 철학자들은 이름만 거론하여도 뭔가 있어보일만큼 멋지기 때문이다. 현재 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시리라 짐작한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어려운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나요?"라는 질문에 "철학자가 멋있어 보여서요."라는 대답이 정답이지 않을까? 물론 궁금증을 탐구하고 현상의 실체를 발견하기 위해 철학을 선택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또 중국인 작가가 철학을 논한만큼 동양사상철학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철학자'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리스', '칸트', '데카르트', '헤겔' 등등 서양철학자만 열거하고, 서양철학만 진정한 철학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이미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철학에서 한계를 발견하였고,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동양사상에 관심을 기울인지 오래다. 이에 동양사상학자들도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융합점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동양사상이 중국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저자의 본거지인 중국 편파적인 부분이 아쉽고, 고대 인도사상과 근대이후 일본철학과 일본근대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조선성리학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것들 모두 수록되어 있다면 절대로 <이지철학>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폄하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결코 쉽지 않은 <이지철학>. 학문을 위한 담론을 위해, 일상의 교양을 쌓기 위한 풍부한 이야기꺼리를 제공하기 위해 온국민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읽다가 주무시는 분들을 위해 베개를 준비하시라고 권하는 것을 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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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경제를 잘 몰라요. | 나의 리뷰 2006-12-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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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상도의 우당탕탕~ 경제 특급 작전!

한국무역협회 저
주니어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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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경제분야 중에서도 '무역'에 대해서 쉽게 설명된 책이다. 무역의존도가 큰 우리나라가 겪게 될 위험성과 돌파가능성이 보이는 대안들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경제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아쉬운 점은 극복과정을 단순하게 도식화한 경향이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반면에 쉽게 오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2005년에 출판된 책이라 황우석 신드롬에 대한 여과없는 서술이나 현재 '한미FTA'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이런 상황 때문에 현재 '품절'상태이다.)

 

 이런 단점에도 경제에 문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나 경제를 좀 더 쉽게 배우고 싶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어렵다 여기면 한없이 어렵기만한 경제의 흐름을 잡아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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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이, 모두가 만족할 책 | 나의 리뷰 2006-11-2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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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납작이가 된 스탠리

제프 브라운 글/토미 웅게러 그림/지혜연 역
시공주니어 | 199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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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벌레가 되어버린 카프카의 소설처럼 이 책의 주인공인 스탠리는 커다란 게시판에 깔려 납작이가 되었다. 다행이 아무런 고통은 없었다. 만약 고통이 수반되었다면 끔찍한 이야기가 되었을텐데^^;;

이렇게 납작이가 된 스탠리는 처음엔 다른이의 편견과 눈총에도 아랑곳 없이 잘 지낸다. 납작이로 지내는 것이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방문 틈새로 드나들 수도 있고, 비싼 비행기나 기차요금을 치르지 않고도 우편요금만으로도 먼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편지봉투에 들어가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납작해졌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다. 하수구에 빠진 엄마의 반지도 꺼내주고, 결정적으로 벽에 걸린 그림으로 위장하여 고가의 미술품을 훔치는 도둑을 잡아내서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장점은 오래가지 않았다. 도둑을 잡은 바람에 신문지상에 사진이 실릴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한 때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유명해지고 나서 이상한 모습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 쉽상이었다. 그래서 우울해진 스탠리는 동생의 기발한 생각으로 원래의 몸으로 되돌아 간다.

기발한 상상력에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으며, <다름과 차이>의 교훈까지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독서에 재미를 붙이려는 아이에게도, 독서교육에 관심있는 엄마에게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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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장갑에서 잇자국을 찾으며 | 나의 리뷰 2006-11-22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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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저/최용준 역
열린책들 | 200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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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이 책을 다 읽었다는 안도감에 스스로에게 대견함을 느껴 듬뿍 격려를 해주었다. 장장 700여쪽인데도, 한 쪽당 빽빽히 30행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29행간까지 치밀한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지치게 혹은 뿌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는 마치 철인3종경기를 완주해낸듯한 착각에 빠져들게도 만들었다. 더구나 이것을 20시간만에 주파했을 때에 내 심장은 의자에 앉아 있음에도 100미터를 숨도 안쉬고 달린 듯 헐떡거렸다. 한마디로 책에서 손을 때지 못하게 하는 뭔가가 있는 책이었다.
 
 이 책 속에는 큰 반전이 있다. 두 개의 반전이 있는데 그 중에 첫 반전의 충격이 장난이 아니다. 총 3부로 나뉘어 <수전의 이야기>, <모드의 이야기>, <다시 수전의 이야기>로 진행되는데. 각각의 이야기가 넘어가는 부분에 반전을 마련해두었다. 1부에선 속고, 속이며, 마침내 독자마저 속이는 반전이라면, 2부에선 1부의 반전을 뒤집는 또 하나의 반전을 안배해두었다. 3부에선 이 반전들을 마무리하였다.
 
 이 책을 출판사에선 <빅토리아 시대의 레즈비언 이야기>라고 포장하여 시장에 내놓았는데, 자칫 포르노르라피로 오해하시고 읽으실 독자들에겐 실망을 금치 못할 지도 모른다. 물론 이 책 속에 지저분할 정도로 농염한 성묘사가 담겨 있다. 또 이 책의 작가인 <새라 워터스>는 다른 작품에서 '딜도'라는 단어도 서슴치 않고 썼다고 한다. '딜도'가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도 모르는 독자의 순결을 위해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새라 워터스의 섹슈얼 리얼리즘은 이 책에서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남성의 성적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여성의 오르가즘처럼 절정에 다다른 격렬함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긴 여운으로 묘사되었다. 이런 점에선 남성독자가 이 책을 읽을 경우 대부분 중반에 읽다읽다 지치지 않을까 싶다.(난 남자다)
 
 또 남성독자들이 싫어할만한 점을 꼽으라면 배신과 복수가 난무한 작품인데도 누구하나 그럴싸한 파멸된 인물이 없다는 점, 죽을 만한 인물들이 죽는데도 술에 술탄 듯 맹탕하게 죽어버린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화끈한 활극장면이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이 책의 감동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단지 남성독자가 읽기엔 감동따로, 여운따로 느껴지는 밋밋함을 맛 볼 것이다. 이런 점은 여성독자들에겐 정반대로 제대로 눈물샘을 자극하겠지만.
 
 여하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책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책 겉표지에 인상깊게 장식된 노장 장갑의 주인이 누구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노란 장갑 어딘가에 수놓여져 있을 이니셜과 사무치게 물어뜯었을 잇자국을 찾으며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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